역사

[히틀러의 결단] ④ 키예프 포위전편 2/3

 

 

 

 

이러한 결단이 내려지게 된 경위는 전후 공개된 국방군 작전문서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오늘날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되어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게 됐습니다. 이하의 내용은 프렐린저 도서관의 자료를 토대로 제가 직접 조사했기 때문에 다소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키예프 포위전에 관한 역사서나 군사서를 반드시 참고하시면서 읽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이탤릭체는 국방군 작전문서의 원문 표기임.)

 

이미 설명드린 바와 같이, 히틀러는 처음부터 우크라이나와 캅카스 일대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부의 회의적인 시각과 타협하면서 잠시 주장을 접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고 1개월이 되어가던 194176일부터 85일 사이에 중앙에서 스몰렌스크 전투가, 1941715일부터 88일 사이에는 남부에서 우만 전투가 모두 독일군의 대승으로 마무리되면서 대소 전쟁은 점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몰렌스크 전투에서 분명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오히려 소련군의 저항은 거세졌고, 모스크바에 대한 중앙집단군의 진격은 확실하게 둔화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우만 전투에서 승리하고 깊숙이 진격할 수 있게 된 남부집단군은 진격축선 사이에 아직도 엄청난 전력의 소련 남서전선군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키예프를 중심으로 독일군 전선 쪽으로 튀어나온 돌출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 돌출부 안에는 남부집단군이 섬멸하지 않고 지나친 소련 남서전선군의 제5군이 버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히틀러는 제5군의 존재를 목에 걸린 가시처럼 여겼으며 하루빨리 일소하고 전선을 안정화시켜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키예프 전투 지도.png

<키예프 부근의 전선상황>

 

이러한 발상에서 히틀러는 스몰렌스크 전투가 채 끝나기도 전인 1941717일의 독일군 최고사령부 작전회의에서, 중앙집단군 소속인 구데리안 장군의 제2 기갑집단과 막시밀리안 폰 바익스 장군의 제2군은 빨리 스몰렌스크에 대한 공격을 마무리짓고 남하하여 남부집단군의 북익과 연결, 키예프 돌출부의 소련 남서전선군 제5군을 일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추후 모스크바 공격에 앞장설 제 2기갑집단과 제2군을 남서부로 돌려서라도 키예프 돌출부의 제거가 우선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전선 상황도.png

 

<히틀러가 제시한 대규모 포위작전.>

 

Weiter wünscht der Führer, daß die durch den Vorstoß der 4. Armee in der Mitte aufgebrochene Feindfront endgültig auseinandergerissen wird. Hierzu soll Pz.Gr. 2 nach Erledigung des Kessels von Smolensk mit starken Infanterie Verbänden der 2. Armee nach Südosten angesetzt werden mit dem Ziel, die vor dem Südflügel der Heeresgruppe Mitte stehende russische 21. Armee und im Zusammenwirken mit dem Nordflügel der Heeresgruppe Süd, die im Räume Korosten befindliche russische 5. Armee zu vernichten. Im weiteren Verlauf sollen die rückwärtigen Verbindungen der russischen 6. und 12. Armee (vor der Heeresgruppe Süd) ostwärts des Dnjepr durchschnitten werden.

 

히틀러는 이어 719일 상기 내용을 정리해 전쟁수행을 위한 총통지시령 제33호로 발령, 722일에는 최고사령부의 빌헬름 카이텔 원수의 명의로 해당 지시령을 수행하기 위한 지침이 하달됐습니다.

 

1.) Südostfront:

 

Der noch westlich des Dnjepr befindliche Feind muß vernichtend geschlagen und zur Auflösung gebracht werden. Sobald es die operative und Versorgungslage erlaubt, ist ostwärts des Dnjepr die Pz. Gr. 1 und 2 unter der 4. Pz. Armee zusammenzufassen, um, gefolgt von Inf. und Geb. Divisionen, nach Gewinnung des Industriegebietes von Charkow über den Don nach Kaukasien vorzustoßen.

 

Die Masse der Inf. Div. hat zunächst die Ukraine, Krim und das zentralrussische Gebiet bis zum Don zu besetzen, wobei die Sicherung des Gebietes zunächst südwestlich des Bug dem rumänischen Heer zu überlassen ist.

 

이러한 히틀러의 결단에 많은 독일군 장성들이 불만을 가졌습니다. 우크라이나보다는 모스크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남부집단군에게 공을 빼앗길 것이 염려된 일선 장군들과 참모본부에서는 히틀러의 결단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히틀러의 생각을 더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보고가 올라왔으니, 723일의 정찰보고였습니다. 이 보고에 의하면 중앙집단군 전방의 소련군은 32개 보병사단과 3개 기갑사단으로 구성된 반면, 남부집단군에 맞서는 소련군은 독일군의 기존 예상을 뛰어넘는 26개 보병사단, 6개 기갑사단, 2개 기병사단으로 구성되어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키예프 돌출부는 무려 80만 명을 넘는 어마어마한 소련 남서전선군의 대병력이 방어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보고를 들은 히틀러는 중앙집단군에서 2개 군을 차출해 남부집단군을 도우라고 지시한 자신의 결단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725일 중앙집단군과 남부집단군은 협력하여 돌출부의 적 병력을 일소하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더해 히틀러의 확신에는 독일군 기상대가 제공한 정보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독일군 진격에 큰 장애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을 장마에 대하여, 독일군 기상대가 소련 남부에서는 9월 중순에 장마가 시작되지만 중부에서는 10월 중순에서야 장마가 시작된다고 보고한 것입니다. 히틀러는 84일 중앙집단군 최고사령부 회의에서 이 보고를 근거로 소련 남서부에 대한 진격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소련 남서집단군이 이토록 대병력인 것을 볼 때 소련에게는 모스크바가 그리 중요한 가치를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Nach den vorangegangenen Feststellungen steht die Lebenswichtige keit des Gebietes Moskau für den Gegner erst an dritter Stelle. Deshalb erscheint die Operation nach Südosten vordringlich, während man wahrscheinlich nach Osten zunächst besser defensiv bleiben wird. Auch die Berichte der Sachverständigen für Jahreszeit und Witterung in Rußland sprechen dafür, daß die Operation in Richtung Osten voranzustellen ist, weil die Herbst=Regenperiode in Süd Rußland im allgemeinen bereits Mitte September, im Moskauer Raum dagegen erst Mitte Oktober begin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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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높은 소련의 가을 장마는 독일군의 진격에 큰 방해요소였다.>

 

히틀러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제시한 작전의 주역을 맡아야 할 구데리안부터가 모스크바가 더 중요하다며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히틀러는 끝까지 결단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810일과 812일에도 역시 같은 말만 반복한 것입니다.

 

Schwerpunktangriff der Heeresgruppe Mitte Richtung Moskau für Ende August vorbereiten in einer Form, die späteres Abdrehen der Panzergruppe Guderian aus der Verfolgung heraus im Zuge des Don nach Südosten ermöglicht.

 

Führer betont erneut, daß die Voraussetzung aller weiteren Operationen die Beseitigung der Feindkräfte sei, die in der Flanke, besonders der Südflanke der Heeresgruppe Mitte, ste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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