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히틀러의 결단] ④ 키예프 포위전편 1/3

 

 

 

 

1941622일 새벽 4, 300만 독일군이 일제히 독소국경을 넘었습니다. 마침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작전명 바르바로사하에 독일군은 총 3개 집단군으로 편성되어 항공부대와 포병전력의 엄호를 받으면서 소련 영토로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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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바로사 작전에 따라 북부집단군·중앙집단군·남부집단군으로 나뉜 독일군은 각각 다른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부집단군은 레닌그라드, 중부집단군은 모스크바, 남부집단군은 우크라이나와 캅카스 일대의 점령을 목표로 했습니다. 레닌그라드(현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과거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만큼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였고, 스탈린이 있는 모스크바는 당연히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습니다. 한편 우크라이나와 캅카스 일대는 소련 전체를 먹여 살리고 있는 비옥한 농토가 있음은 물론 산업의 중심지였으며 엄청난 천연자원, 특히 유전지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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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지도>

 

그런데 이러한 전략적 목표들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놓고 히틀러와 독일 군부의 의견이 서로 달라 팽팽히 맞서고 있었습니다. 독일 군부는 수도인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자연히 소련의 전쟁수행의지가 꺾일 것이고, 나머지 전략적 목표는 그때 가서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반면 히틀러에게는 우크라이나와 캅카스 일대가 더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애당초 히틀러가 소련 침공을 바랐던 이유는 자원 부족에 허덕이는 독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소련의 풍부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문에 히틀러는 모스크바에 대한 공격을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우크라이나와 캅카스 일대를 먼저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나폴레옹의 사례를 주의 깊게 분석한 히틀러는 모스크바를 점령해도 소련의 전쟁수행의지가 꺾일 것이라 생각하긴 힘들고, 그보다는 자원의 확보가 더 시급하다고 여겼습니다. 군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이것은 모스크바를 목표로 삼은 중앙집단군과, 우크라이나와 캅카스 일대를 목표로 삼은 남부집단군 중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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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키예프(키이우). 우크라이나의 수도로 당시에도 남부 소련의 중심지였다.>

 

결국 의견 차이를 해소하지 못한 채로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면서, 히틀러와 독일 군부는 작전의 진행상황을 보아가면서 판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차의 통과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프리페트(소련명 프리퍄티) 늪지대를 전투지경선으로 하여 중앙집단군은 프리페트 늪지대의 북쪽에서, 남부집단군은 프리페트 늪지대의 남쪽에서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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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바로사 작전도.>

 

페도어 폰 보크 원수가 이끄는 중앙집단군은 휘하에 막시밀리안 폰 바익스 장군의 제2, 귄터 폰 클루게 원수의 제4, 아돌프 슈트라우스 장군의 제9,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의 제2 기갑집단, 헤르만 호트 장군의 제3 기갑집단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가 이끄는 남부집단군은 발터 폰 라이헤나우 원수의 제6, 리터 폰 쇼베르트 장군의 제11, 카알 하인리히 폰 슈튈프나겔 장군의 제17,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원수의 제1 기갑집단과 함께 동맹국인 헝가리군, 루마니아군, 이탈리아군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막대한 수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전쟁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던 소련 공군은 개전 직후 한 번 날아오르지도 못한 채로 비행장에서 파괴되었습니다. 완전히 제공권을 장악한 독일 공군은 독일 육군이 기동전을 통해 전통적인 양익포위를 구사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유럽에서의 전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완전히 그 실력이 정점에 도달한 독일군은 거칠 것 없이 소련군을 격파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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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점점 광적으로 변해가는 소련군의 저항, 길어진 보급선으로 인한 보급난항, 미처 섬멸하지 못하고 후방에 남겨진 소련군의 존재는 히틀러와 독일 군부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줬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과감한 진격을 펼치던 남부집단군의 앞에 나타난 엄청난 전력의 소련 남서전선군은 개전 초기의 대승에 잠시 잊고 있던 논쟁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모스크바인가, 우크라이나인가. 1941년 늦여름의 전황은 미뤄왔던 이 논쟁에 이제는 종지부를 찍도록 강요했던 것입니다.

 

결단

사건 : 키예프 포위전

시기 : 19417

배경 : 소련 남서전선군이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고 있음.

선택 : 남부집단군의 진격을 돕기 위해 다른 방면에서의 공격을 중단해야 하는가?

결단 : 중앙집단군의 제2군과 제2 기갑집단은 모스크바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남진하여 남부집단군과 함께 키예프의 소련 남서전선군을 공격하라.

 

히틀러는 결국 모스크바보다 우크라이나와 캅카스 일대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 결단은 바르바로사 작전 전체의 물줄기를 크게 틀어놓았으며, 이로 인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완전히 뒤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런 만큼 여러 가지 평가가 엇갈리는데, 히틀러의 이 결단은 군사적 무능에서 비롯된 완전한 실책이었다는 주장에서부터 지극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업적이었다는 주장까지 다양하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9개의 댓글

2019.09.11

아무리 생각해도 독소전은 힛총통의 실수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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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개드립

안했으면 소련이 선공날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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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후쿠시마재폭발기원

근데 대원수께서는 총통이 공격 안할줄 알았다던데...

그래서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에 소련군이 밍기적된게 스탈린이 국지적인 전투같으니 반격만 해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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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개드립

그렇게 빨리 공격할줄은 몰랐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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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후쿠시마재폭발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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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개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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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뭐하시는 분이에요?ㄷㄷㄷㄷㄷ

0
2019.09.11
@닭백숙도살자

지금은 담배를 태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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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Volksgemeinsch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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