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 조선은 로마처럼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는가?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어보면, 조선은 물류가 발달하지 못해서 해안에서는 거름으로 쓰는 청어가 한양에서는 한줌에 한냥이나 나간다는 한탄이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왕조는 한양에서 부산까지는 보름, 두만강 까지는 편도로 3주나 걸렸다고 하니, 유통의 발달이 상당히 더뎠다는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동시대 다른 동아시아 국가인 중국이나 에도막부에 비해서도 조선왕조는 유독 유통이 약했죠. 혹자는 이렇게 약해진 유통이 물류의 교류를 약화시켜 중앙 재정을 빈곤하게 만들고, 상공업을 정체하게 만들어 조선의 쇠퇴를 불러 왔다고도 합니다. 실제로 그런지는 논란거리지만요. 그런데 왜 유독 조선왕조는 도로유통이 약했을까요? 그건 아래의 사진을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조선왕조, 아니 한반도는 예로부터 유독 산맥이 많고 강이 자주 형성되어 있는 지형이었습니다. 부산이나, 목포, 두만강, 의주 등 사방 어디서든 중간인 한양에 오려면 산맥이나 강 둘 중 하나는 거쳐야 했습니다. 평야나 숲이라면 모를까, 산줄기를 따라서 도로를 내거나 큰 하천을 건널 가교를 만드는 것은 상당한 비용과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었겠죠. 일본도 산맥이 많기는 하나, 평야지대에는 한반도보다 큰 강이 적어 도로를 만들기가 비교적 용이했습니다. 지형상 차라리 물줄기를 조절하고 작은 연결운하를 여러개 파서 강을 따라 배로 물자를 수송하게 하면 모를까, 굳이 다리놓고 도로 포장할 이유는 없었을 겁니다. 게다가 운하파고 물길 조정하던 기술은 고구려 시대인 수나라에, 물길 조정 등 정교한 기술도 전부 명나라때는 있었던 기술입니다. 화약이 그러했듯, 운하파고 물길 정돈하는게 기술적으로도 포장도로 만들기 보다야 더 쉬었을 겁니다.

게다가, 중앙집권이 고려때부터 시작된 조선왕조와는 달리, 에도막부는 최초로 중앙집권을 시도하던 차라, 정권 안정 차원에서도 좀 더 강하게 지방-중앙 간의 교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었죠. (그게 참근교대) 조선왕조는 지방관을 파견하면 그럭저럭 중앙 (임금)의 권력이 안정적으로 지방 행정에 알아서 반영이 되었으므로, 굳이 지방의 향리나 유지들을 중앙으로 부르려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방의 유지들이 과거시험, 상소, 교육/문화 자원 접근 등을 위해 알아서 한양으로 진출하려고는 했습니다. 무엇보다 조선은 농본유교국가라, 대규모 토목공사를 매우 꺼려해서 경복궁 조차도 몇백년간 수리를 안하고 내버려 두기도 한 정권입니다. (민중의 부담과는 별개로) 중앙 조정의 재정도 낮은 세율 때문에 꽤 부족했고요.

이명박 정권 때 한반도 대운하라는, 뭔 말도 안되보이는 계획이 발표되었다고 언론에서 한창 난리 법썩일 때가 있었습니다. 몰론 경인운하에서 보듯, 현대국가에는 큰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게 자명해 보입니다만, 이걸 조선왕조때 만들었다면 얘기가 조금 다를 듯 합니다. 위에 지도와 비교해 보면, 한반도의 강줄기와 한반도 대운하의 지도에 거의 차이거 없습니다. 강변을 다듬어 정리하고, 중간중간의 지점들만 운하를 파거나, 도로를 만들어 연결해 주면 거의 완벽한 자연 물류망이 완성됩니다. 강원이나 함경도, 남해안과 서해안 등은 해안가를 통해서, 내륙지방 물류는 강줄기를 따라서 서로 유통하게 하면, 굳이 도로 따위 안 만들어도 물류의 원활한 교통이 가능했을 듯 합니다.

실제로 조선의 물류는 수레가 아니라 거의 조운선이 담당했습니다. 세금을 걷을 때도 조운선을 썻고, 경강시장 등 큰 시장들도 강변에 생겨났었죠. 조운선은 한번에 1000석을 보통 욺기지만, 수레는 한번에 10석을 욺기는게 고작이니, 효율성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육상교통의 속도가 해상 교통을 능가한것은 19세기의 철도나 자동차의 발명 이후입니다. 그 이전에 배들은 보통 시속 10Km 정도는 낼 수 있었지만, 짐을 실은 우마차는 시속 6~7Km가 고작이었습니다. 보부상 등 사람의 걸음은 아예 시속 4~5Km 정도가 고작입니다. 이러니, 속도의 측면에서도 육상교통을 고려할 필요성은 적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치안이 완벽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육상교통의 경우 산적이나 호환을 걱정해야 했지만, 배 타는 건 왜구나 풍랑만 만나지 않으면 훨씬 안전했습니다. 안정성, 속도성, 효율성 모든 면에서 해상교통은 육상교통에 비해 우월한게 근세까지의 전 세계적 현상이었습니다. (애초에 대항해 시대와 대서양무역도 해상운송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왕조는 지형적인 요소 마저도 해상운송에 최적화 되어 있었네요. 물자의 운송 자체도 조세나 지역내 교류를 제외하면 별로 없었지만, 만약 전국적인 물류망을 개척할려고 했더라도 강가를 정비해서 해상운송을 장려하지, 굳이 내륙에 고속도로 처럼 도로를 깔 이유는 없었을 겁니다. 비싼 수고를 들여 도로를 깔아봤자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그걸 활용할 수단이 없었으니까요. 몰론 행정상 이동이나 기본적인 이동 자체는 가능하게 만들어 놓을 필요는 있었고, 그래서 역참이나 주막이 그 역활을 충실히 해주었습니다. 즉, 문경새재 등 사람이 걸어서 다니면 될 수준의 산길과 중간 기착지들만 있으면 육상로는 그걸로 충분했겠죠.

몰론 흉년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조선왕조가 해상 물류망을 좀더 정비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에서도 이 사실을 모르는게 아니라서, 육로라면 모를까, 조운선에 대해선 여러가지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조정에서 각 지역에 조창을 지어 일종의 물류창고를 신설하고, 신숙주 등 관료들도 각국의 배들을 비교해 보고나서 조운선을 유사시 맹선으로 쓰게 하는 등, 제도적 개선을 많이 해왔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조선왕조의 배만큼 효율적인 선박이 당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드물 정도였고, 선박 제조기술 또한 상당이 뛰어나서, 나중에 판옥선이 일본의 세키부네를 1:10으로도 상대할 수 있게 만드는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그 결과 조선 중후기에는 민간 상인 들의 조운업 활성화 등이 일어나기도 하는 등, 조선의 경제와 물류의 중추망으로 이미 자리잡아 왔습니다.

몰론 조선왕조는 상공업의 발달에 별 관심이 없는 농본정권인지라, 아무래도 이러한 장점을 극대화 했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권 차원에서의 무관심 및 억제 정책이 원인이지, 조선의 물류 자체의 후진성이나 육로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애초에 서구의 패권을 가져다준 산업혁명은 "공업" 혹은 제조업의 혁명이지 상업과 물류의 혁명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대서양을 횡단하고 주식회사가 생겨난 17세기에도 서구의 국력은 무굴제국이나 오스만 투르크, 청나라 등에 미치지 못했으며, 이들 국가에 교역지를 확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몰론, 막대한 국력의 향상이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단순한 상공업을 통한 이윤축적이 아니라, 아메리카, 호주, 인도네시아등 당시 유라시아 문명권에 알려지지 않았던 신대륙의 발견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서양이 신대륙의 발견 없이 단순히 아프리카나 대인도 무역을 통해서만 부를 축적했다면 르네상스 시대의 이태리 이상의 국력을 누리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건 상업과 교역을 귀중히 여기지만 제조업은 약했던, 예를 들어 유럽과 맞먹을 수준의 노예무역을 해왔던 아랍국가들이나, 포루투갈이 전 세계를 정복하는 국력을 보유하지 못했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티무르제국등 아랍의 왕조는 중동을 벗어나지 못했고, 포르투갈은 교역지의 건설 이상은 하지 못했음)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고, 호주나 아프리카, 북미 등 중앙 집권적 국가가 부재했던 지역만이 아니라, 청나라, 페르시아등 기존 문명권까지 전 세계적인 제국주의의 박차를 가한 것은 영국이나 프랑스가 시초였고, 이들은 단순히 상업적 발달이 아니라, 증기기관과 철기선 등 공업적 발달로 이러한 확장을 견인한 나라들입니다. 네덜란드나 포르투갈, 스페인, 엘리자베스 1세의 영국 등의 상업/무역 기반의 제국주의는, 당시에는 거의 빈땅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을 정복하거나, 신규 진입자로써 기존의 왕국들을 분열시켜 정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게다가 접촉이 없던 지역에서 온 만큼, 신대륙에는 없던 전염병이나 화기등을 사용해 좀더 손쉬운 정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중앙집권적이고, 유럽이 가지고 있던 문명의 이기는 왠만큼 다 가지고 있던 기존의 다른 유라시아 제국들에는 써먹기 힘들었죠.

 

서양의 국력이 "신대륙" 정복을 넘어 동양을 능가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부터라는게 정설이고, 이것은 상업의 발달이 아니라 공업의 발달 덕분이었습니다. 조선왕조가 서구에 뒤쳐지고 후일 일본에 뒤쳐저 식민화 된것이 상업발달의 미숙함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죠. 현대에 들어서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열강과 맞먹을 만한 국력을 가지게 된것도 제조업의 부흥과 기술의 발전 덕분이지, 오로지 무역과 금융의 발달로 강대국이 된 사례는 어디에도 없다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껏해야 강소국 정도나 가능하겠지요)

51개의 댓글

2019.07.09

산만 많은게 아니라 산에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도 ㅈㄴ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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