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 시절 잔다르크 이야기 애국부인전 제칠회

 

차설. 이 때 연설할 기한이 이르매 약 원수가 군사를 불러 연설장에 나아가 포치를 정제히 하고 식장을 수축하니 그 연설장은 십분 광활하여 가히 수십만 명을 용납할 만하고 또한 연설대는 그 중간에 있는데 천생으로 된 조그마한 돈대라.

 

돈대 위에는 나무 수풀이 있어 푸른 가지는 하늘을 덮었고 무르녹은 그늘은 일광을 가렸는지라 사방에서 관망하기도 좋으며 또한 이 때는 오월 천기라 정히 노는 사람에 합당함으로 방청하는 남녀노소가 원근을 불게 하고 인산인해를 이루어 심히 초장에 사람 성을 둘렀는지라.

 

이 날 상오 십 점종에 이르매 원수가 연설대에 오르니 남녀 인민의 분잡함과 헌화하는 소리 정히 번괄할 즈음에 홀연 방포 일성에 여러 귀를 깨어 장중이 정숙한데 국기를 높이 달고 일개 미인이 머리에 계화관을 쓰고 몸에 백금포를 입고 손에 몸기를 두르며 붉은 라상은 땅에 끌리고 비단 요대는 남풍에 표불하니 완연히 보름달 빛과 구슬 광채같이 찬란하게 연설장 중으로 쏘여 오매 온 장중 수십만 사람의 두 눈빛을 모두 모아서 한 사람의 몸뚱이 위에 물 대듯 하며 모두 하는 말이,

 

‘저 여장군이 참 전일 소문과 같이 신기하고 이상한 여자로다. 평일에 꽃다운 이름을 여러 번 익히 듣고 한번 보기 소원이더니 오늘이야 그 아름다운 용모를 보매 참 천상의 사람이라. 세상에 어찌 저러한 인물이 또 있으리오. 우리가 자연히 공경할 마음이 생기도다.’

 

하며 일제히 장중이 정숙하고 천상 귀를 기울여 연설 듣기를 바빠하더니 이 때 원수가 몸기를 두르며 한 점 앵두 같은 입술을 열고 삼촌 연꽃 같은 혀를 흔들어 두 줄기 옥을 깨치는 소리로 공중을 향하여 창자에 가득한 열심하는 피를 토하니 그 연설에 가로되,

 

 

“우리 법국의 동포 국민된 유지하신 제군들은 조금 생각하여 보시오. 우리나라가 어떻게 위태하고 쇠약한 지경이며 오늘날 무슨 토지가 있어 법국의 땅이라 하겠소. 북방 모든 고을은 이미 다 영국에 빼앗긴 바 아니오.

 

남방에 있는 고을은 다만 한낱 아리안 성을 의지하지 아니하였소. 이 한 성도 불구에 함몰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만일 이 성 곧 잃으면 법국의 종사가 전수이 멸망하는 날이 아니오. 또한 우리 국민이 모두 남의 노예와 우마가 되는 날이 아니오.

 

다 알으시오. 대저 천하 만고에 가장 천하고 부끄럽고 욕되는 것이 남의 노예가 이 아니오. 국가가 한번 망하면 인민이 다 노예가 될 것이요, 한번 노예가 될 지경이면 일평생을 남에게 구박과 압제를 입어 영히 하늘 날을 볼 날이 없지 않소. 심지어 재물과 산업도 필경 남에게 빼앗긴 바가 될 것이요, 조선에 분묘도 남에게 파냄이 될 것이요, 나의 처자도 남에게 음욕을 당할 것이니 애급 나라를 보았소.[1]옛날에 유태국 사람을 어떻게 참혹히 대접하였소. 이것이 다 우리의 거울 할 것 아니오. 저러한 사정이 다 유태국 사기에 자세히 있지 아니하오. 우리나라도 비록 이 지경이 되었으나 여러 동포가 동심협력하여 발분 진기하면 오히려 일맥 생기가 있겠거늘 만일 인민이 다 노예가 되고 토지가 다 점탈할 때를 기다려 그제야 회복을 도모코자 하면 그때는 후회한들 할 수 없을지라.

 

그런고로 내가 오늘날 요긴한 문제 하나가 있어 여러분에게 질문코자 하노니 여러분들은 독립 자유의 인민이 되기를 원하느뇨, 그렇지 않으면 천하고 염치없는 남의 노예가 되고자 하는가?”

 

이 말에 이르러서는 온 장중이 모두 괴괴하면서 머리털이 하늘을 가리키고 눈빛이 횃불 같으며 다 소리를 질러 가로되,

 

“결단코 아니하겠소. 결단코 아니하겠소. 우리들이 어찌 외인의 노예를 지으리오. 차라리 함께 죽을지언정 노예는 아니 되겠소.”[2]

 

하는 소리 만장일치로 떠드는 지라. 약 원수가 인심이 저렇듯이 감동되어 모두 열성이 솟아남을 보고 상을 크게 치며 소리를 질러 다시 연설하되,

 

 

“동포 제군께서 이미 노예 되는 것이 부끄러운 욕 되는 줄 아시니 이렇듯 좋은 일이 없나이다. 그러나 다만 부끄러운 욕 되는 줄로 알기만 하고 설치할 생각이 없으면 모르는 사람과 일반이 아니요. 대범 세계상에 어떤 나라 사람이든지 진실로 인민 된 책임을 다 하여야 당연한 의무가 아니오. 그러한 고로 나라의 원수와 부끄럼이 있으면 이는 곧 온 나라 백성의 원수요, 부끄럼이 아니겠소. 또한 온 나라 사람의 함께 보복할 일이 아니오. 이러므로 유명한 정치가의 말이 ‘모든 국민 된 자는 사람사람이 모두 군사 될 의무가 있다’ 하니 그 말이 웬 말이오.

 

사람이 생겨 국민이 되면 사람마다 주권에 복종하며 사람마다 군사가 되어 나라를 갚는 것이 당연치 아니하오. 이것은 자기의 몸과 힘으로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함과 일반이오. 그런고로 나라의 부끄럼과 욕을 씻는 것은 곧 자기 일신의 부끄럼과 욕을 씻는 것과 일반이요, 이것은 우리 국민 된 자가 사람사람이 다 마땅히 알 도리가 아니겠소.

 

또한 오늘날 이러한 시국을 당하여 어떠한 영웅호걸에게 이러한 책임을 맡겨두고 우리는 일신을 편히 있기만 생각하고 마음이 재가 되며 뜻이 식어 슬피 탄식만 하고 나라의 위태하고 망하는 것만 한탄한들 무엇에 유익하며 무슨 난을 구하겠소. 또한 그렇지 않고 보면 어떤 사람은 염치를 잃고 욕을 참으며 부끄럼을 무릅쓰고 적국에게 항복하여 외인의 개와 돼지 됨을 달게 여기니 이러한 통분한 일이 또 있소.

 

대저 나라의 흥망은 사세의 성패에 달리지 않고 다만 인민 기운의 강약에 달렸나니 청컨대 고금 역사의 기록한 사적을 보시오. 한번 멸망한 나라는 천백 년을 지내도록 그 백성이 능히 다시 회복하고 설치한 날이 있나이까. 이런 증거가 소연치 않소. 그런고로 오늘날 우리들이 동심동력하여 열심을 분발하면 어찌 부끄럼을 씻을 날이 없겠소. 나라 위엄을 떨치고 나라 원수를 갚는 것이 우리들의 열심에 달렸소.

 

제군, 제군이여! 이미 남의 아래에 굴복치 아니할 뜻이 있을진대 반드시 일을 하여 보아야 참 굴복치 아니하는 것이 아니오. 제군들은 생각하오. 우리나라가 이 지경되어 위태함이 조석에 있으니 만약 아리안 성을 한번 잃으면 우리나라는 결단코 보전치 못할지라. 그 때가 되면 제군의 부모처자가 반드시 남의 능욕을 당할 것이요, 제군의 재산 분묘가 반드시 남에게 탈취한 바가 될 것이니 그 때에 이르러서 남에게 우마와 노예가 아니 되고자 하여도 할 수 없으리라.

 

상담에 이르기를 ‘눈 없는 사람이 눈 없는 말을 타고 밤중에 깊은 못에 다다른다’ 하니 만일 한번 실족하면 목숨이 간 곳 없을지라. 정히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하는 말 아닌가. 만약 급속히 일심으로 자기의 생명을 놓고 적국과 항거치 아니하면 이 수치를 어느 때에 씻으리까. 어서 어서 천 사람이 일심하고, 만 사람이 동성하여 사람마다 죽을 뜻을 두어 가마를 깨치고 배를 잠가서 한번 분발하면 영국이 비록 하늘같은 용략이 있더라도 우리나라가 어찌 적국에게 압복할 바가 되리오.

 

제군, 제군이여! 만약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겁내어 나라 망할 때에 당도하면 남의 학대 자심하여 살기에 괴로움이 도리어 죽어 모르는 것만 못할지니 나는 본래 궁항 벽촌에 일개 외롭고 잔약한 여자로서 재주와 학식도 없으나 다만 나라의 위태함을 통분히 여겨 국민 된 한 분자의 의무를 다하고자 함이요, 차마 우리 국민이 남의 우마와 노예 됨을 볼 수 없어 이같이 군중에 몸을 던졌나니 다행히 라비로 장군의 은덕으로 나의 고심혈성을 살피시고 날로 하여금 군사의 참예케 하시니 오늘날 제군으로 더불어 이때에서 서로 보매 나는 결단코 맹세하기를 몸으로 나라 일에 죽어 우리 국민을 보전코자 하노니 제군 제군이여 이미 애국심이 있을진대 과연 어찌하면 좋을고. 기묘한 방책으로 가르침을 바라고 바라노라.”

 

 

약 원수가 연설을 마치지 못하여 두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흐르면서 일장 방성통곡한데 여러 방청하던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여 애통하며 더운 피가 등등하여 차탄함을 마지아니하여 가로되,

 

“원수는 불과 일개 연약한 여자로서 저러한 애국 열심이 있거늘 우리들은 남자가 되어 대장부라 하면서 도리어 여자만 못하니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리오.”

 

하면서 스스로 꾸짖는 자와 한탄하는 자와 통곡하는 자와 주먹을 치고 손바닥을 비비며 살지 않고자 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가로되,

 

“우리들이 오늘은 맹세코 반드시 나라와 한가지로 죽을 것이요, 만약 나라가 망하면 우리 단정코 살지 못하리라.”

 

하면서 일시에 여러 남녀가 흉흉하여 조수 밀듯 샘물 솟듯 애국 열성이 사면에 일어나서 다 이 원수의 휘하에 군사 되기를 자원하니 그 형세 심히 광대하더라.

 

정히 이 일개 여자가 애국성을 고동한대 백만 무리가 적국 물리칠 기운이 떨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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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주법경에 유태국이 망하여 그 유민들이 애굽에서 박해받다 탈출하여 새 나라를 세운 고사가 전해지니 이는 곧 출애굽의 서Book of Exodus를 말하는 것이다. 

 

2. 본래 구라파주 민초는 충과 예가 희미하니 설사 국가가 망국하고 종사가 흐트러진들 대수로이 여기지 아니하고 새 주군을 받잡아 뫼심이 예사니라. 허나 약안의 고사는 기천년을 넘어 전해지니 이는 필시 법국 홍건지환란Paris Commune적의 논조로써 쓰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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