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궁금증을 가진 것은 우리 뿐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세르주 모스코비치와 마리사 자빌로니도 사람들의 의견이 극단으로 치우치는 이유를 알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실험을 진행했다. 프랑스 일반인을 대상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과 비판적인 사람들을 모아 한 자리에서 토론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사람은 더욱 우호적으로 바뀌었고, 미국에 비판적이었던 사람은 더욱 비판적으로 바뀌었다. 어느 쪽의 주장이 더 논리적이고 합당한 증거를 지니고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또 다른 개인 혹은 집단을 발견 했을 때, 개인의 주장은 더욱 강화되고 극단화 된다”는 점이었다. 학자들은 이를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는 인종, 국가, 문화의 차이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개인적으로 물어보면 온건한 의견을 지녔던 사람도 집단 속에서 토론을 시키면 보다 과격하고 위험하며 극단적인 의견을 주장하게 된다.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을 발견해 용기를 얻어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과 갑론을박하며 감정적으로 나빠지다 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개인은 집단 속에서 항상 극단으로 흘러갔고 리더들은 이것을 똑똑하게 이용해왔다. 집단 극단화 현상이 지배적인 집단에서는 극단적인 리더가 선택된다.
우리는 5공 청문회 이후 이렇다 할 경력 없이 야인으로 떠돌던 노무현이 돌연 대선후보로 당선되던 때를 기억한다. 영원한 아웃사이더 홍준표가 모두가 망할 것이라던 19대 대선에서 24%의 득표율을 얻어 구원투수로 떠오르던 모습을 기억한다. 눈물 나는 이 두 아웃사이더의 성공담은 사실 집단 극단화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노무현과 홍준표는 각 진영에서 가장 위험하고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극도로 분열된 국론은 각 진영이 극단의 선택을 하도록 이끌었다.
집단 극단화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언제 어디서든 발생한다. 나도 극단화를 겪을 수 있고, 당신도 겪을 수 있고, 우리 모두 겪을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때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대방의 주장에도 수용할 만한 것이 있는데 내가 애써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존심 때문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출처 : Going to Extreme by Cass R. Sunstein
우주최강
뻐킹뻐킹
레후
시드니여우
교회다님
달 전 전역
너도. 옳고 니도 옳다 라는 논리또한 좋지 않음
작성자한테 뭐라하는건 아니지만 이 글 보고 중론은 무적권 조은거구나! 하는 나같은놈이 생길까봐 ㅁㅁ
starrynight
달 전 전역
무조건 중간이 좋다! 극단적인건 안좋으니까!
라는 논리였거든
근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나또한 극단적으로 중론을 추구했더라고.
그러다보니 내 의견도 없어지고 좀 병신같았엉
'중론또한 안좋을 수 있다.' 라고 말하고싶었어
물론 흑백논리, 내 의견이 맞음! 나머지 다병신! 같은 논리가 문제인건 당연한거고 ㅎㅎ
고르곤졸라칮소프트콘
양쪽에서 극을 치닫고 있기때문에 그런생각을 하게 되는거임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나랑 다른의견이지만 옳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수용하고 하게 되면 중론이야기가 나올수가 없지않을까
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함
쥐소말
다이아홀릭
그럼 서로 공격을 하면서 극단으로 치우치게됨
starrynight
시드니여우
아타챠
근데 문득 '세상의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라는 논리에는 헛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 속에서 보이는 일들 대부분에 원인이 없을 수는 없으며 그 원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전체적인 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 때쯤 가게 되면 알게 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나름의 가치 판단을 하게 되지.
그런데 여기서 강박적인 중도론에 경도되면 양비론에 빠져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게 된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중도라는게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양 극단을 비판하기 위해 생겨난걸텐데 말야.
비슷한 말로 '유연한 관점이 필요하다'도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필요성의 맥락에서 바라봐야겠지.
극단적인 스탠스도 정확한 사실 관계에 기반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경청의 유무성이 갈라지겠지.
결국은 스탠스를 우선시 할려고 하기 보다 정확한 인과 관계와 팩트를 파악해야 되는게 우선시 되어야겠지.
그렇게 하나 둘 씩 쌓여 나가다 보면 비로소 자신의 스탠스를 파악할 수 있게 될 테고 말야.
어 딜도망가
니는아닌거같지
궁구우님
빅뚝배기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