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어두운 것은 밤이요, 찬 것은 땅이니.

 

https://youtu.be/71Ti_TdpJ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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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미 항공우주국 NASA는 외우주 탐사선 보이저 1,2호를 발사한다.

 

발사 이후 44년이라는 세월 동안 보이저 1호는 인류가 만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보이저 2호는 화성을 제외한 모든 외행성을 방문했다는 대기록을 세웠다. 

 

특히 천왕성과 해왕성에 대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정보는 보이저 2호에 의해 밝혀진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보이저 2호는 천왕성과 해왕성을 방문한 유일한 탐사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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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저 2호가 해왕성을 스윙바이 하며 촬영한, 지금까지 인류에게 알려진 해왕성의 가장 정확한 모습. (1989년)

 

 

춥고 광활한 우주에서, 보이저는 아직도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2013년에는 보이저 1호가, 2018년에는 보이저 2호가 각각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우주로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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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멸망해도 지속될 위대한 항해 중에 혹시라도 마주칠 외계 생명체에게 인류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할 '골든 레코드' 또한 보이저 호에 실려 있다.

12인치 레코드를 탐사선에 동봉하자는 아이디어는 책 <코스모스>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칼 세이건이 제안했다.

보이저가 발사된 1970년대는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로, 당시 사람들은 핵전쟁이 일어나 인류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지구의 각종 정보와 인류가 보내는 메세지를 담는 작업은 '인류가 남기는 유서'를 준비하는 행위와 같았다.

칼 세이건과 그의 팀은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인류의 마지막 기록에 들어갈 것들을 신중하게 선별했다.

  • 지구의 천문학적인 위치를 나타낸 모식도

  • 인간의 수 체계와 단위

  • 지구에서 쓰는 기호들

  • 인류가 현재까지 알아낸 대략적인 과학 이론

  • 인간의 간략한 해부도

  • DNA에 관한 간략한 정보

  • 지구의 소리

  • 한국어를 포함한 55개국의 언어로 담은 환영 인사

  • 당시 유엔 사무총장 쿠르트 발트하임, 미국 국무장관, 유엔 대표들, 그리고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외계인에게 보내는 환영 메시지

  • 고래 울음소리

  • 천둥이나 빗소리 등 지구의 자연물 소리

  • 인류의 여러 음악

골든 레코드는 극단적인 우주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도록 아주 튼튼하게 제작되었다.

레코드의 바깥 면은 10억 년 이상 버틸 수 있다고 알려졌고, 안쪽 면은 그 수명이 우주의 수명과 맞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즉, 보이저가 항해 중 파손되지 않는다면 이 골든 레코드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인류가 모종의 이유로 멸종하고, 인류가 창조한 지구상의 모든 인공물이 사라진다 하여도, 골든 레코드만은 영원히 남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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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행성에서 보내드린 선물입니다.

여기엔 우리의 소리와 과학과 모습과 감정과 음악 등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자 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언젠가는 우리은하 문명과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이 레코드는 우리의 소망, 결의, 그리고 위대한 우주에 대한 경의를 담은 것입니다.

                     

                                                               - 미합중국 제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

 

 

골든 레코드에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같은 클래식,

세계 각국의 민요와 악기 연주곡,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 척 베리의 <조니 B. 굿>과 같은 록 음악까지 인류를 대표하는 음악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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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Here Comes The Sun> 또한 골든 레코드에 수록될 예정이었고,

칼 세이건이 비틀즈 멤버들을 찾아다녀 허락을 맡았지만 정작 판권이 멤버들에게 없는 관계로 수록되지 못하였다.

 

 

골든 레코드에 수록된 명곡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Dark Was The Night, Cold Was The Ground' ('어두운 것은 밤이요, 찬 것은 땅이니') 라는 곡이다.

이 노래는 1927년, '블라인드 윌리 존슨'이 녹음한 곡이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루이 암스트롱, 척 베리라는 거장 사이에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실제로 그는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무명 가수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Dark Was The Night, Cold Was The Ground'은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지속적인 노숙 생활 등의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곡이며

단 한 마디의 가사도 없이 허밍과 슬라이드 연주가 곡을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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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알려진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사진.

 

1897년 미국 택사스 주 펜들턴에서 태어난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본명은 '윌리엄 존슨'이었다.

그의 아버지인 조지 존슨은 소작농이었으며 어머니인 매리 필즈는 그가 태어나고 4년이 지난 1901년에 사망했다.

'윌리엄 존슨'이 '블라인드 윌리 존슨'이라고 불리게 된 까닭은, 그가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는 선천적 시각 장애인이 아니었다.

워낙 알려진 것이 없어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존슨이 7살 때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싸우던 도중 새어머니가 뿌린 양잿물이 존슨의 눈에 들어가 영구적으로 시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는 시각장애의 원인이다.

 

윌리엄 존슨은 어린 시절부터 다녔던 침례교회의 영향으로 전도사가 되었다. 1927년에 'Dark Was The Night, Cold Was The Ground' 와 가스펠을 포함한 앨범을 발매해 그럭저럭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지만, 2년 뒤 발생한 대공황으로 많은 피해를 보고 빈털터리가 된다.

 

그는 재혼을 한 뒤 계속해서 텍사스의 여러 도시를 떠돌며 거리 공연을 하는 등 별 다른 행적 없이 살다가 1945년 버몬트에 교회를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1945년, 그의 집에 불이 나서 파괴되었으나 그 어디도 갈 곳이 없던 그는 이전 집의 폐허에서 계속해서 살아간다.

폐허의 습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이후 말라리아를 앓게 되지만 존슨이 흑인이고 맹인이라는 이유로 그 어떤 병원에서도 존슨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병세는 계속해서 악화되었고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은 1945년 9월 18일 쓸쓸히 숨을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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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존슨의 노래는 1960년대에 재평가 받기 시작한다. 60년대 뉴욕에서부터 시작된 포크 열풍은 밥 딜런, 레드 제플린, 에릭 클랩튼 등이 그의 노래를 재해석하게 했고, 현재도 'Master of blues' (블루스의 제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골든 레코드에 수록될 노래를 선정한 NASA 컨설턴트 티모시 페리스는 말했다.

"존슨의 노래는 그가 인생에서 여러번 직면했던 상황, 즉 잘 곳이 없는 해질녘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이래로, 밤의 장막은 존슨과 같은 역경에 처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그는 맹인이었으며, 노숙자였고, 질병에 시달렸고, 우울에 시달려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노래는 태양계를 벗어났다.

 

비록 존슨은 맹인이었지만, 전 인류가 목격한 우주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우주를 목격했다.

 

인류 문명보다 더 오래 존속될 존슨의 목소리는 지금도 초속 17km의 속도로 우주를 항해하고 있다.

 

 

 

 

 

11개의 댓글

2021.11.13

블라인드 윌리 존슨 진짜 블루스 그 자체임

다크 워즈 더 나이트 듣다보면 존나 내가 겨울에 길바닥 노숙하는 기분 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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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블루스네 글도 좋고 좋은 정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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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좋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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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코드가 어디 이상한 은하 지나가다 식민지 개척하는 고인물 구역에서 확인되면 어뜨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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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5
@입국좀시켜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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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6
@입국좀시켜달라고

그들은 발견하게될거야

극단적으로 무기를 발달시키고 오직 워프기술만 없는 한 종족을..

원래대로라면 화승총 수준에서 같이 발견되었어야할 그 기술을..

정말이지 너무 간단한 그 기술만 우연히 발견하지 못한 이 호전적인 종족에게 끔살당하며 외칠거야

"맙소사 우리가 뭘 깨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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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7
@착한말착한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에서 본 어느 이야기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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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7
@내생각에

히치하이커에도 이런 에피소드까 있었나?

내가 따올린건 가지않은길이라는 단편소설이야

아이작아시모프엿던거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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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5

캬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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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6

님 덕분에 노래 듣는데 와 감성 좋다

옛날 뉴베가스 할때 그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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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3

이건 진짜 잘 쓴 좋은 글인데

유저개드립에도 함 올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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