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퇴판,스압] 진화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아니다?




‘진화’는 생물이 주변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생활 터전이 적대적으로 변화하면 그에 적합한 존재만이 살아남는 ‘자연선택’ 또는 ‘적자생존’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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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메리카 카리브해의 섬 지역에는 119종의 아놀리 도마뱀이 서식하지만 
유사한 환경으로 인해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Wikipedia
유사한 환경에 놓인 생물은 모두 비슷한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환경 상황만 제대로 파악하면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날 것인지 예측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최근 남아메리카의 도마뱀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이처럼 ‘진화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캘리포니아대학교, UC 데이비스, 메사추세츠대학교 등으로 이루어진 공동연구진은 
카리브해의 4개 섬에 서식하는 아놀리 도마뱀(Anoles lizard)을 조사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종인데도 환경이 비슷하면 유사한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논문은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최근호에 게재되었다. 
제목은 ‘도서지역 도마뱀 방산에 있어 거대진화 지형도 상의 예외적 수렴 발견
(Exceptional Convergence on the Macroevolutionary Landscape in Island Lizard Radiation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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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동일하다면 진화를 반복해도 결과물은 같을까?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했을 때 일부에서는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했다. 
환경의 변화가 장기적 진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라는 부분 때문이다.

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생물체가 진화를 거듭한다면, 동일한 환경에 놓인 생명들은 결국 유사한 모습으로 발전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라면 장기적으로는 지구라는 동일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등동물과 유사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가정도 가능하다. 진화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지금과 같은 생명체들이 결과물로 등장할까, 컴퓨터를 재부팅하듯이 리셋 버튼을 눌러도 동일한 결과가 도출이 될까?

자연선택 개념에 따르면 지구의 환경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적용된다면 진화의 결과도 동일해야 한다.
이 부분은 진화생물학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르다.

미국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는 “진화의 시계에 반복은 없다”고 못을 박은 바 있다. 
카세트 테이프를 되돌리듯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특정 지점에서 진화를 재생시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굴드는 급격한 진화 이후에는 장기간 동안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된다는 ‘단속평형설’을 주장해 진화론의 발전에 큰 영향의 끼친 세계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도마뱀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굴드의 주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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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의 카리브해에 서식하는 야생 도마뱀을 조사한 결과, 서로 다른 종인데도 유사한 형태와 서식 습관을 보인 것이다.

진화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관측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유사한 환경에 놓인 서로 다른 종을 찾기도 어렵다. 
그러던 중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카리브해의 도서지역에서 적합한 대상을 발견했다. 아놀리속(Anoles)에 속하는 도마뱀들이다.




종이 달라도 동일한 적응방산 현상 보여
(적응방산현상 : 생물의 한 분류군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식성이나 생활방식에 따라 형태적·기능적으로 다양하게 분화하는 현상.)



여러 개의 섬으로 구성된 카리브해의 도서지역은 여러 국가로 소유권이 나뉘어 있다. 
연구진은 쿠바, 아이티, 자메이카, 푸에르토리코 등 4개의 국가에 속한 4개의 섬을 선택했다. 
이곳에 서식하는 아놀리 도마뱀은 4천만 년 전부터 번성하기 시작해 각기 다른 119종의 생명체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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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 섬의 아놀리 도마뱀 100종을 조사한 결과, 
분산되어야 할 적응방산이 적응지형도 상의 몇 군데 봉우리에 집중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Science
연구진은 100종의 아놀리 도마뱀을 조사하며 각종 데이터를 모았다. 
실제 야생 도마뱀을 채집해 신체치수와 외양을 측정·기록했다. 박물관에 보관된 표본도 목록에 포함시켰다.

이 데이터를 토대로 적응지형도(adaptive landscape)를 구축했다. 
진화생물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적응지형도는 환경과 생물체의 관계를 지형도 방식으로 재구성한 그림을 가리킨다. 
유전자의 조합으로 인한 유사성과 상이성에 따라 생명체를 수평으로 배치하고 환경 적응도가 높은 생물은 수직으로 더 높은 위치를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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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도 상에서 봉우리처럼 뾰족 솟은 부분은 유사한 환경에 서식하는 여러 생명체들이 비슷한 방향으로 적응력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대로 계곡처럼 움푹 파인 부분은 적응이 어려운 환경임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아놀리 도마뱀들은 지형도 상에서 몇 가지 공통적인 봉우리를 형성한다. 
높은 곳의 나뭇가지, 중간 높이의 나무줄기, 아래 부분의 풀밭 등 크게 세 가지의 서식지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4개 섬에 서식하는 각기 다른 종의 아놀리 도마뱀 중 유사한 서식지에 사는 도마뱀들은 모습과 습성도 서로 비슷했다. 
예상 밖으로 뚜렷한 수렴현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 종이 다른데도 서식지 환경이 닮았다는 이유로 진화의 방향이 동일해진 것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세세한 환경 요소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결과물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적응방산(adaptive radiation)이라 한다. 그런데 아놀리 도마뱀들은 적응방산이 오히려 몇 군데로 집중된 것이다.

논문은 4개 섬의 환경이 비슷해 적응지형도 상에서 수렴현상이 유발된 것으로 분석했다. 
달리 말해 도마뱀의 진화를 돌이켜보면 언제 어느 종이 지형도 상의 봉우리 중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지, 
어떠한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면 다른 봉우리로 옮겨가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UC 데이비스의 발표자료를 통해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적응지형도를 작성하고 예측하는 방식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환경 변수를 대입함으로써 진화의 시기와 방향성을 예측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는 이번 연구로 인해 그동안 계속되어 온 진화생물학의 핫이슈가 다시금 뜨거운 논쟁에 휩싸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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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댓글

2013.08.15
난 사실 진화론은 믿지않고 .돌연변이설을 믿어. 혹은 환경변화에따라 생물이 원래 가지고있던 잠재적 크기의 발현이라든가하는 쪽으로.

환경이 바뀌면서 먹이가 풍부해져서 많이먹는만큼 당연히 커진다던가 하는식으로.

사람만 보더라도 가장진화됬다고 하면서 영양상태가 좋냐나쁘냐에 따라서 확연히 성장이 다르니까.
0
2013.08.15
진화론 썰 풀면 한도끝도 없는데, 생물학을 잘 모르면 요약은 안읽는게 좋음. 저건 굉장히 미세한 뉘앙스차이로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되는 이야기야.

당장 곰국은 진화론은 안믿고 돌연변이를 믿는다 캤는데 그게 그거임. 진화론이 아직 론이라고 불리는 이유 몇가지 중 하나가 이거야. 너무 다양한 이야기가 진화 한마디로 요약 가능해. 진화라는 단어 자체에는 생명체는 세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라는 뉘앙스밖에 없어, 어떻게? 왜? 는 아무도 아직 정확히 모를 뿐이야.

이 글의 경우 생명체는 자기가 사는 공간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아 다른 종임에도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요지야. 이건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요약의 오류야. 논문의 원래 취지는 수렴진화, 돌고래 지느러미랑 상어 지느러미가 비슷한 이유, 뭐 그런걸 컴퓨터수치로 분석해내기 위한 작업의 일부야. 말하자면 아직 수렴진화는 반드시 일어난단 보장은 없는거야. 상식적으로 당연하지, 동일한 공간에 동일한 먹을거리를 두고 경쟁하는 물소와 가젤은 전혀 다른 생김, 진화방향, 생태를 가지니까. 이 요약글에선 수렴진화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라고 이야기하는데 애초에 저 논문은 그게 아니란 뜻이지
0
2013.08.15
@되는데요
저 논문을 수렴진화의 증거로 쓰기엔 너무나도 큰 약점이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연구대상이 전부 같은 속의 도마뱀이라는 것, 아빠는 다를지라도 할아버진 같다 뭐 이런 느낌이기 때문에 같은 섬에선 생태를 가져도 이상할 게 없어. 중요한 의의는 같은 환경에 놓여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으로 분류된 그 진화력이 대단한거고, 데이터로 환경변수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지.

다른 하나는 저 도마뱀들이 진짜 비슷한 생태인지 알 길이 없다는거야. 인간만 해도 침팬지나 사람이나 유전학적 말고 생물학적으로도 눈꼽반톨만큼밖에 차이가 없는데 생태는 극단적으로 다르단말이지? 생물학적 차이가 적다고 같은 생태일 수는 없는거야. 어떤놈은 꼬리가 잘 끊어질 수 있고 어떤 놈은 안 끊어질 수 있는데 그런 디테일함까진 신경 안쓰고 그냥 생리학적 공통점만 두고 이야기한거지. 환경변수 데이터화엔 그정도면 충분하니까, 천적여부나 이런건 너무 큰 오류가 생길 수 있거든.

여튼, 굴드의 이론하곤 관계없이 이 논문으론 동일 환경에서 동일진화가 일어난단 보장은 절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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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5
예전에 진화는 수렴한다는 글을 얕게 읽은 적이 있는데 연구결과까지 나와서 놀랍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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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5
@뮐링캣
나도 그 글을 본 적 있어서 하는 말이야. 진화는 절대 수렴할 수 없음
진화는 지구가 자전을 멈추는 날 까지 발산하다 한순간에 멈출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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