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걸어서 땅끝마을까지_16화

주의! 감성적이고 사적인 여행담이므로 껄끄러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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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땅끝마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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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비,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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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이동거리 27.90km)

 

아침은 으스스했다. 이제 가을이구나 싶을 정도로 살짝 춥기까지 했다.

 

밖에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빗소리가 들렸다.

 

잠시 발코니로 나가서 얼마나 비가 오는지 확인 해보니, 우비로도 어찌 해볼 방도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냥 하루 더 묵고 이동해야 할지 고민을 하며 일단 씻으러 갔다.

 

씻고 나와보니 비는 전에 비해서 훨씬 적게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9시 넘어서 빗줄기가 확실히 약해지는게 보여 출발 준비를 했다.

 

오늘은 다행이 아킬레스건에 통증이 거의 없다. 

 

매일 스트레칭을 해줘서 그런가? 아니면 익숙해진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고질병인 오른쪽 고관절은 여전히 상태가 별로였다. 그래도 충분히 걸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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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걷지 않아서 무수히 많은 풀들이 반겨줬다. 덕분에 등산화는 흙과 풀 그리고 물로 젖었다.)

 

나와서 이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약해졌던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단 아침 먹을겸 해서 주변 공원에 들러 정자에 앉아 비상식량 빵을 꺼내 먹었다.

 

빵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다시 비는 약해지기 시작했다. 우비를 쓰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정도였다.

 

풀이 무성한 지역에 들어 가서는 고생 좀 했지만, 등산화가 젖은 것 빼고는 잘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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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로가 도중에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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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로가 중간에 끊긴 곳이 많아서 인도, 갓길 번갈아서 걸었다.)

 

점심은 연무읍 이란 곳에서 먹었다.

 

나는 햄버거와 제육볶음을 무지 좋아한다. 그래서 어디에나 있는 롯데리아에 가서 데리버거 세트를 먹기로 했다.

 

먹는 도중에 이상한 기운이 감지 되었다.

 

어디선가 정말 많이 본 까까머리에 모자를 쓴 건장한 남성들과 그 주변에 있는 가족 또는 연인.

 

그때 느꼈다. 논산 훈련소가 코앞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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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곳이 논산 훈련소인줄 알았다. 왠지 사람이 너무 없더라..)

 

연무읍에 나와서 얼마 걷지 않았을 무렵, 수많은 차량들과 호객꾼들 그리고 먹자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위에 있는 사진이 처음에 논산 훈련소인줄 알았다.

 

처음 이곳을 봤을때, 인터넷 짤방에서 돌아다니는 훈련소 정문이 꽤나 멋있게 바뀌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입대하는 사람이 너무 적어보였다. 아니 아예 없어보였다. 

 

이상하게도 줄지어 가던 차량들은 이곳이 아닌 더 먼 곳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가면 갈수록 호객꾼들은 많아져갔다. 식당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분들, 싸구려 전자시계를 파는 사람들 등

 

참 다양한 장사꾼들을 볼 수 있었다. 나름 꽤 장관이라 생각했다.

 

대부분 호객꾼들은 두 팔을 들고 이쪽으로는 들어오라는 몸짓으로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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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에서만 보던 진짜 호국요람. 이때 입대 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지금쯤 전역하지 않았을까?)

 

줄지어진 차량들의 행렬에 뒷자석 또는 조수석에 타고 있던 까까머리 사람들은 다 똑같은 표정이었다.

 

넋나감, 멍때림, 초조함, 불안함 너도 나도 말할 필요 없이 완전 굳어진 표정들이었다.

 

또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그런 표정이었다. 

 

이걸 보니 마치 보이지 않는 쇠사슬을 목에 매달고, 호국요람은 가차없이 사람들을 끌고가는 그런 모습이었다.

 

하얀 바탕에 큼지막한 검은 글자로 호국요람이라 적혀있는 곳으로 다함께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전역한 나로써는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306 보충대를 통해 사단 훈련소로 갔었기 때문에 논산훈련소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친구놈들이 병장마크를 달고 신병 입대하는 친구들을 놀리는 그런 느낌?

 

수많은 인파를 뚫고 조금 더 걷다보니 그 많던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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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를 지나고 나서는 대부분 이런 길이었다.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걷기가 참 편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바로 풍경이 바뀌었다. 

 

사람은 코빼기도 안보이고 차와 도로 그리고 산 뿐이었다.

 

빠른 변화에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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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전라북도에 도착했다.)

 

오늘은 비때문에 늦게 출발하고, 속도도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아서 꾸준히 걸어야했다.

 

날씨가 흐려 금방 어두워질 것을 예상하고 조금 더 빨리 걷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서 고향인 전라북도에 도착했다.

 

대전에 도착했던 것보다 약하지만, 밋밋한 느낌의 성취감이 느껴졌다.

 

표지판을 찍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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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배?를 타고 낚시를 하시던 아저씨가 인상 깊어서 찍었다.)

 

Wild책을 들으며 계속해서 이동했다. 

 

원래 이어폰 한쪽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서 굉장히 불편했는데, 우연히 고쳐져서 기뻤다.

 

안그래도 한 쪽만 들으니 노래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영 느낌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오늘 들은 책 내용 중에서, 그녀는 가방 이름을 몬스터라고 지었다고 했다.

 

무게도 무게지만, 말도 안되는 크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대체 얼마나 큰건지 ;; 그리고 그걸 가지고 어떻게 걸은건지 ;;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갑자기 나도 지어볼까? 딱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서 다음에 이름을 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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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흥미로운 광경들 + 빠른 걸음 + 많이 덥지 않음 = 생각보다 빠른 도착 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때 징하게 봤던 건물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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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다닐 시절 정문 인테리어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금상인가 대상이었으면 그걸 토대로 정문 리메이크를 하는 공모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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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이 꽤나 좋았던 체육관이었다. 안에 농구대와 2층으로 구성된 관객석에 비품실까지 꽤나 훌륭했었던 체육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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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꽤나 촌스러웠는데 외장재를 바꿔서 꽤나 세련되게 바뀐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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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맞다면 왼쪽이 학교, 가운데가 식당 및 기숙사 오른쪽이 자율 학습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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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다녔던 학교를 보니 나름 추억에 잠기곤 했다.

 

치열하고, 고통스럽고, 즐겁고, 슬프고, 힘들었던 곳이었다.

 

자율학습 시간엔 노트북이나 PMP 전자사전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 몰래 게임하다 뺏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혼나기도 했고, 어쩔땐 공부도 하고 늦은 저녁엔 운동도 했었던 곳이다.

 

당시에 기숙사에서 생활하곤 했었는데, 야밤엔 항상 배가 고팠다. 일반적으로 기숙사에서는 배달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어 있어서 우리는 꼼수를 부리곤 했다.

 

핸드폰으로 치킨집 아저씨한테 전화를 하면 치킨을 가지고 기숙사 뒷마당으로 와서 대기하고 있는다.

 

그러면 우리는 빨래통에 줄을 묶고 거기에 돈을 넣어서 아저씨 쪽으로 통을 내리면, 아저씨가 통에 잔금과 치킨을 넣어 주셨다.

 

그렇게 사감선생님 몰래 먹던 치킨이 아직도 기억이 나곤 한다. 

 

그러다 운없어서 걸리면 뺏길때도 있고, 아니면 적당히 눈 감아주실 때도 있었다.

 

 

그런 추억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을 무렵, 답답한 학습실을 벗어나 잠시 나와있던 학생들이 있어서 가서 대화를 나눠 보기로했다.

 

학교 생활에 큰 변화는 없는 듯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당수의 경험들이 겹치곤 했다.

 

내가 속초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도착해, 과거에 다녔던 학교에 들려 그 친구들과 대화하는게 그 친구들에게는 꽤나 신선한 경험인듯 했다.

 

서로 대화를 나누며 공감을 느끼고 또는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 친구들이 학교 선생님을 만나러 왔냐고 말했을 때, 선생님들과 큰 인연이 없어서 딱히 그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대략 대화를 마무리 할 무렵 그 친구들은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고3 학생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지막 열심히 해서 목표한 대학교에 갈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그 친구들을 뒤로 하고 다시 숙소로 이동했다.

 

그 친구들에게는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못한게 있었다.

 

내가 그 학교를 도중에 그만 뒀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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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안쪽에 있는 분식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학교다닐 시절에 저녁이 영 안땡기거나 주말엔 친구들과 몰래 나와서 분식집에서 저녁을 먹곤 했다.

 

사장님은 옛날에 뵀던 분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는 옛날과 큰 변함이 없었다.

 

제육볶음은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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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필기구를 자주 사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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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와 비교해서 거리에 변화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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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곤 했다.)

 

학교 다닐 시절에 비교해 거의 바뀌지 않은 거리를 보니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 시골이기도 하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그 덕분에 익숙한 노래방, 문방구, 약국, 안경점, 시장을 그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변한건 오직 내가 조금 더 나이를 먹었다는 그 사실 하나 뿐이었다.

 

거리를 걸을때, 그 거리가 날 감싸 안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추억에 빠지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숙소에 도착했다.

 

인근에 있는 모텔이었는데,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시설이었다.

 

변기가 잘 내려가지 않는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오랜만에 추억에 완전 잠기는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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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댓글

2019.08.24

걷다보니 모교 퍄

1
2019.08.24

잘 읽었습니다.

1
2019.08.24

무슨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셨는지 궁금하네요 잘 보고 있습니다

1
2019.08.24

다리 괜찮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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