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걸어서 땅끝마을까지_0화

주의! 감성적이고 사적인 여행담이므로 껄끄러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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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땅끝마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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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https://www.dogdrip.net/216707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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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화창 

 

차일 피일 미루던 국토종단을 시작했다. 

8월 초에 예정을 했었지만 태풍으로 인해 어지간히 비가 내리던 탓에, 그리고 어디선가 모를 나의 마음 속 깊숙한 곳의 두려움 때문에 여정이 조금 늦어졌다. 일본 여행을 가려고 했을 때나, 무슨 큰 일을 하려고 할 때면 항상 찾아오던 그 약간의 두려움은 이번 여정에 있어서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듯이 내 마음 속을 헤집어 놨다. 

 

시간의 압박과 카톡으로 언제 여행을 떠나는지 물어보는 엄마의 재촉에 나는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재촉은 엄마한테 있어서는 그저 날짜를 물어보는 것이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몰래 휴학을 하고 진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왠지 모를 죄책감을 가지고 출발했다. 

 

무겁다면 무겁고, 가볍다면 가벼울 그런 배낭을 짊어지고 여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학교 기숙사에 사람들이 들어오는 날이었던 것 같았다. 자취방과 학교가 상당히 가까웠고, 지하철을 타려면 학교를 거쳐가는 구조였기에 많은 학생들을 지나쳐갔다. 꽤나 댄디하고 캐주얼 그리고 투블럭한 남자들이 이어폰을 끼고, 무거워 보이는 캐리어와 함께 질질 끌면서 내가 가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나는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있었고 누가 봐도 여행가는 것처럼 보이는 꽤 큰 등산가방을 메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짊어진 어깨 끈에서 삐걱 거리는 마찰음과 함께 등산 신발을 신고 이동하고 있었다. 

 

버스터미널에 가는 것조차 두려웠으며,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나칠 때마다 무섭고 순간 정신이 아찔해 지기도 했었다. 또한 그들은 내 옆을 지나치면서 나를 쳐다볼때면 마치 비웃는 듯한 표정을 하는 듯 해보였다. 물론 행인들은 전혀 그러지 않겠지. 아니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호기심때문에 그랬을 것이고, 대부분은 나의 피해망상이 만들어낸 착각이었을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꽤 멀리 이동해서 터미널에 도착했을 무렵, 벌써부터 등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덥지는 않았는데, 아마 주변 사람들을 의식한 부끄러움에 따른 땀이었을 것이다. 

무사히 터미널에 도착했고, 속초행 버스표를 끊은 뒤 주변을 조금 둘러보고 다이소가 있길래 들어가서 부족한 생활용품을 구매했다. 모든 물건을 매달을 수 있다고 광고하는 캠핑줄과 비상용으로 쓸 값싼 초코바 몇 개 그리고 혹시나 부족할까 싶어 여행용 휴지를 구매했다. 

그리곤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올라탔고, 거기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내좌석에 앉았고, 어제 긴장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한 졸음이 쏟아지듯 그대로 뻗어서 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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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꽤나 익숙한 해변가가 보였다. 양양의 낙산 해수욕장. 군대 가기 전이므로 4년전 쯤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직후였는데, 왠지 모르게 국내여행도 한번쯤 해보고 싶어 무작정 강릉으로 출발했었다. 그러다 사정이 생겨서 바로 집으로 되돌아갔었지만, 당시에 봤었던 동해는 지금과 여전히 다를바 없이 멀리 수평선만 보일 뿐이었고, 그 해수욕장 또한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여기에서 변한건 나였을 뿐이었다. 그들은 그냥 그곳에 있었다. 변함없이 말이다. 

하지만 과연 확실히 변한게 있는 나였을지, 아니면 그들처럼 변함이 없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이로 따진다면 자신이 변한건 맞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냐고 묻는다면 그리 크게 변한건 느끼질 못했다. 많이 바뀐듯 하면서 전혀 성장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게으르고 계획성이 없고 충동적이며, 집안에서 나올 생각을 안하고 아마도 매번 자아성찰을 하는 척 했지만 다음날 변하는 것은 전혀 없었다. 항상 그러했다. 아주 변함없이 하염없이 말이다. 

 

스스로 그 당시의 나와 변한게 있냐고 묻는다면, 한가지 정도 쯤은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무엇을 하던지 가슴이 더 이상 뜨거움을 느낄 수 없게된 것과 그에 따른 열정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정도 되겠다. 꾸준함은 없었지만, 무엇이든 도전 했던 그때와 무기력함이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늪에 빠져 하루하루를 사니까 사는 지금.. 어떤 것이 날 이리도 변하게 했을까. 

군대? 하긴 군대에서 열심히 해봐야 소용없다는 좌절감을 처음 느낀 곳이기는 했지만, 자신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 정도는 별것도 아닌 일 마냥 넘겼을 것이다. 나이기 때문에 헤어져 나오질 못한 것이다. 결국 그런 부정함에 순응하게 된 건 결국 내가 스스로 자처해서 그 늪으로 머리를 쳐박은 것이었으리라.  

 

속초에 도착했고 남들 따라 천천히 내렸다. 아직 여름이 완전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꽤 많이보였다. 커플, 여행객, 지역 주민들 다양한 사람들이 수 많은 모습으로 그 곳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일단은 내리자 마자 숙소 위치를 파악했다. 터미널에서 약 4km 즉 1시간 정도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어차피 가는 길에 해수욕장을 지나치기 때문에 일단 그 망망대해의 수평선이 보이는 동해를 보기로 결정하고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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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동해는 멋졌다. 그리고 쓸쓸해 보였고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마지 누구도 범접 할 수 없는 화려한 연예인 같은 느낌이랄까. 바다 위에 배들 몇 척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수평선 넘어에는 그저 바다만 있었을 뿐이었다. 혼자 외롭게 말이다.  

해수욕장에는 가족들이 텐트를 치고 또 커플들이 해변가를 걷고, 누구는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해변가를 따라 쭉 이어진 길을 걷고 있었다.  

해변가의 모래는 등산화를 신고 이동하기 참 불편했다. 부드러운 지면은 오랜만에 느껴서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너무 땅이 푹푹 꺼지기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평소보다 많은 힘이 소모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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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따라가 보니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이 보였고, 이곳에서 동해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리고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는 모를 외로워 보이는 오래된 의자도 하나 있었다. 누가 왜 가져다 놓은 것일까? 너무나도 궁금했지만, 그 대답은 그저 철썩거리는 바다 소리 뿐이었다.

 

해변가의 끝이 보였고 슬슬 인도 쪽으로 향해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나와 같은 백패커들은 아쉽게도 보이지 않았다. 출발하기도 애매한 위치이기도 하고, 요즘 누가 혼자 국토종단이나 할까.. 힘들고 재미도 없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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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높은 언덕에 우람한 모습으로 롯데계열 호텔이 보였다. 그리고 그 내리막 왼쪽으로는 항만에서 작업을 하는 인부들과 배들이 보였다. 길이 평탄해질 무렵 가로수에 묶여있는 말이 보였다. 아마도 마차를 이용해 투어하는 관광상품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앞에는 포터에 말 우리를 개조해 놓은 차량이 있었는데, 그 우리 안에도 말이 한 마리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약간은 슬픈 듯 해보이는 눈빛이었다. 물론 말이 기쁠지 슬플지 즐거울지 외로울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으로 보았을 때는 그랬다. 아니면 그냥 그 말을 통해서 내 처지를 투영해서 보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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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꽤 멋져 보이는 등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등대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방파제 위에 있었고, 그 길로 가려면 상당히 높은 계단을 지나쳐 가야했다. 그리고 방파제를 따라 쭉 이어진 끝에는 그 멋진 등대가 있었다. 높이 때문인지 올라갔을 때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었다. 정말 시원했다. 그리고 여행객들을 위한 포토존이나, 앉아서 바닷바람을 즐길 수 있게 콘크리트 의자와 나무의자들이 여기저기 설치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짠내나는 바닷바람이 좋아 한동안 딱딱한 콘크리트 의자에 앉아서 내심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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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게 바람을 맞이하고 다시 그 무겁게 느껴지는 배낭을 짊어지고 다시 숙소를 향해 이동했다. 원래는 계획에 없던 행동이었지만,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다시 사람들이 많이 있는 시내 쪽으로 이동하면서, 한 편의점을 지나칠 때 순간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중년인지 노인인지 어중간한 분이 여기 와서 앉으라고 고함을 질렀는데, 뒤돌아서 보니 나에게 하는 소리였었다. 하지만 그의 눈을 보았을 때 괴로움이 보였고, 마치 술을 먹은듯 눈이 약간 풀려있었고, 내가 그곳에 앉으면 바로 소주를 사와 한잔 드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냥 내가 갈 길을 갔다. 그리고 다행이 그는 나를 향해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서 보니 게스트 하우스라기 보다는 그냥 여관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후기에 쓰여있는 그 유명하다는 조식에 관해 물어보니 과연, 소개해준 주방은 꽤 그럴듯하게 꾸며, 여행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줄수 있는 납득 할만한 수준이었다. 하루밤 머무를 방에 들어가보니 딱히 좋지도 싫지도도 않은 필요한 물건들이 구비되어 있는 4인실이었다. 이미 누가 있었는지 큰 캐리어 1개와 약간 작은 캐리어 1개가 있었다. 아마도 외국인이겠지 생각하며 내 짐을 풀고 슬슬 저녁을 먹으러 나갈 준비를 했다. 

 

아까 본 우람해보였던 롯데계열 호텔로 가보기로 했다. 숙소 주변에 먹을거리가 많았지만, 수산물에 알러지가 많아서 아무래도 먹기가 꺼려졌다.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는 파는 곳이 그 호텔 뿐이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동해안을 따라 짠내음과 함께 그리고 선선한 바람은 계속되었다. 대략 30분 정도 걸었을까.. 워낙 크기도 하고 넓기도 해서 롯데리아를 찾는데만 꽤나 애를 먹었다. 그리고 겨우 찾아서 주문을 하고 먹을 준비를 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핸드폰을 들기 전에 꽤나 불안한 마음으로 화면을 보니.. 역시나 엄마였다. 당연히 내가 휴학할 줄은 모르셨을니깐.. 국토종단을 한다고는 말했었지만, 언제 한다고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는 정신이 있니 없니.. 말도 안하고 멋대로 휴학을해?"

"저번 학기에 정신적이나 육체적이나 너무 힘들었고,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뭔가를 해내려 할때, 끝까지 할 수 있는 믿음을 필요해서 하는거예요."

 

아무튼 그 이후로 20분 정도 싸운것 같다. 내용 중에 확실하게 기억나는건 

"나는 엄마에게 있어서 악세서리인가요? 내 인생은 중요하지 않고 남한테 보이는게 더 중요한가요?"

"그건 니 피해의식에서 나온거겠지.. 엄마는 너를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적 없다. 다만 너를 위해서 했을 뿐이지."

 

엄마와 나의 악연은 길고도 길었다. 부모님이 크게 사기를 당하시고 집안이 많이 안좋아졌고, 그 과정에서 나를 잘 키우기 위해서 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겐 너무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을 뿐이었다. 초등학교때 올백을 맞지 못하면 혼났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는 숙제와 학원을 다 마치고 나서 게임 1,2시간 하는 것에 뭐라하시곤 하셨으니깐.. 뭐 그러다 몰래 pc방 가서 잡혀서 끌려와서 혼나기도 하고.. 아무튼 많은 일이 있었다. 

 

되돌아 오면서 엄마에게 말을 심하게 한 죄책감이 들기도 했고, 분노도 느끼지만.. 어찌되었건 물은 엎질러졌다. 휴학신청은 했고, 학교로 돌아가라고 해도 갈 생각은 없다.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끝에 가선 내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불안하고 두렵지만 아무튼 어떻게든 성공해보이겠다.

 

 

 

ps. 1. 당시 적었던 일기에 지금 살을 붙이기 때문에 인칭이 엉성해 보일 수 있지만 그러려니 해주세요.

     2. 최대한 그당시 느낌을 살려서 적도록 해볼께요. 그리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정말로 감사합니다.

     3. 답글은 친목이니 뭐니 그런것 때문에 못달아드리는거 죄송합니다 ㅠㅠ

     4. 내일은 일이 있어서 못올립니다.     

     5. 다음 화부터 진짜 국토종단입니다..

5개의 댓글

2019.07.09

호텔추

0
2019.07.09

ㅊㅊ

0

말보고 놀랐겠어요 ㅋㅋㅋㅋ

0
2019.07.09

언제쯤 무릎 나감?

0
2019.07.0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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