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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신선 4

 

신림동 신선..

앞에서 말했듯이 그들도 사회적 동물이자, 하나의 인격체이며, 외로움도 탈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불꽃튀는 사랑을 할 열정이나 마음이 남아있진 않을 거라고 말하는 건 우리네 인간들에 대한 무지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다 타고 난 장작의 마지막처럼 뭉근한 따뜻함은 더 깊고 소중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부터 풀어내는 이야기는 내가 2차과목 스터디를 참여했을 때 직접 본 그들의 사랑이야기이다. 사랑이야기라고 해서 무슨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거창한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 우리네들이 평소 듣고 보던 그런 소소한것을 내가 보고 들은 관점에서 적어보고싶었기에,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펜을 들었다. 아니, 사실 폰으로 쓰는중이지만 펜이라고 해두자.

나는 2013년도 초에 2차시험과목을 준비하고있었다. 주관식 문제인데다 답을 논리적으로 서술해내야하기 때문에 나혼자의 시점으로 공부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 같이 편파적이고 중심이 없는 사람에게 2차과목을 홀로 공부하는 것은 나도 신선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일 수 가 있었기에 스터디에 가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신림동에서는 2차과목에대한 스터디가 활성화가 되어있고 스터디 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은 흔하게 찾아 볼 수 있었기에 그룹스터디에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식의 스터디는 어떤 걸까라는 호기심과 약간의 긴장, 거기에 기대까지 곁들여져 살짝 들뜬 모습이었던 것 같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나 할까?
내가 들어간 스터디는 다들 나이대가 좀 있는 분들이었는데 모두 괜찮아보이는 분들이었다. 그들과 나이차이가 좀 나는 나를 격의 없이 반겨주었고, 이따금씩은 농담도 섞어주며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주었다.
스터디의 구성인원은 나를포함 5명이었는데, 남자분이3명, 여자가 나포함 2명 이렇게 구성이 되었다. 나 말고 다른 여자 분도 나랑은 나이차가 꽤나 나는분이셔서 내가 초반에 많이 어려워 했는데 그 분은 나를 동생처럼 대해주셔서 생각보다 편하게 그 스터디에 녹아들 수 있었다.

거기 계신 분들은 다들 공부가 어느 정도는 일정 궤도에 오르신 분들이었고 실력들이 나보다는 굉장히 좋은 분들이라 나는 거의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된 적이 많았다. 그 분들을 따라가려고 당시에 나도 나름 무척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에서 뭔가를 아주 열심히 했던, 몇 안 되는 기억이다.

그렇게 그들 틈바구니에서 섞여가며 공부를 하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친밀도도 조금씩 높아지고 그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그런 시간들 역시 자연히 늘어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도 그 사람들에게 해주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나의 시야가 넓어질때 쯤 나는 그 그룹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걸 눈치챘다.

터키 속담에 기침과 가난, 그리고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볼 때마다 감탄하곤 한다. 내가 어린시절 이 속담이 맞는지 실험을 해보고 싶어, 나오는 기침을 매번 참아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켁켁거리는걸 끅끅거리며 참고있으니 엄마가 미친년이 다 되었네라고 하실 때까지 그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 이후로 그냥 어린 마음에 나는 저 격언을 매우 멋진 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저 표현을 우리 스터디 이야기에서 써먹을 수 있게되어 영광스럽다.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 스터디에는 여자가 두명뿐이었다. 여러 분들이 궁금해하는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저 다른 여자분인걸 나는 알기에 그 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그 언니는 그 때 당시에 나이가 30대 중반 쯤 되는 분이셨는데, 나이에 비해 동안인데다 꽤나 미인형 얼굴을 갖고 있었다. 나와 둘이 있을때면 웃으면서
"언니가 젊었을 적엔 남자 좀 울리고 다녔었지 호호"
라며 농담을 하곤 했는데 아마도 진짜였을 것이다.
말투도 다정다감한 면이 있고, 하고 다니는 모습도 여타 고시생과는 좀 다르게? 옷도 예쁘게 입고 잘 꾸밀 줄 아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예전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그 언니를 좋아하는 남자가 바로 그 당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스터디를 같이 하는 남자3명 중 한 분이 그 언니를 좋아하고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을 처음부터 나는 알아채진 못했는데 그 남자분이 무척이나 티를 안내려고 노력하셨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나서야 그 미묘한 흐름을 알 수 있었고, 처음 내가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다른 스터디원들은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내가 늦게 알아챈 건 내가 눈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스터디에 늦게 합류하였기 때문이다.
음..그렇게 믿고 싶다. 여러분은 그렇게 믿으시면 된다.

사람은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런 한 사람의 애정전선을 알게 되자 그 오빠(라고 부르긴했지만 나이가 많으셨다.40대초반이셨는데 마땅한 호칭이 없어 오빠라고 불렀다. 내가 아저씨라고 부르면 그 뒷감당은 여러분 몫이 되었을테니까)의 작은 행동들도 뭔가 큰 의미가 있어보이고, 그 언니 앞에서 뭔가 긴장한듯도 하는, 그런 모습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굳이 그런 의미부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 언니를 바라보는 눈빛' 그것이었다. 언니를 바라보는 눈에는 한 없는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고, 마치 양봉하는 분들마냥 꿀단지를 눈으로 흘리고 계셨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이를 먹어도 사랑은 숨길 수가 없구나. 대단한 격언이야..

그렇게 시간도 봄볕을 받으려 따스하게 흘러가던 어느 날, 오빠가 나에게 조용히 물어볼 것이 있다며 나를 불러내었다. 당연하게도 그 언니에게 어떤 선물이 좋을까를 물어보셨는데 언니의 생일이 머지않았기 때문이었다. 음..사실 난 언니 생일이 가까워졌다는 걸 그때알았다. 스터디 내내 어떤 문제에도 자신감 있게 해법을 내놓고 스터디원들의 답안지도 같이 봐주며 많은 조언을 해주던 분이 여자 선물을 나에게 묻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책을 읽고, 별처럼 많은 문제를 풀었어도, 사람마음 한켠을 알기는 어려운 것이었던지 그렇게 나에게 조언을 구하셨다.
선물이라.....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라고 농담하기엔 사뭇 진지한 표정이셨기에 나도 같이 고민을 하다 '머플러'라고 말해드렸다. 언니가 평소에 머플러를 뭘 살까 나에게 이야기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격적인 면에서도 큰 부담도 적고 언니가 얼마전에 언급했던 것이라 그것이 좋을거 같다고 말해드렸더니, 성탄절 앞둔 어린이처럼 기뻐하며 고맙다고 하시곤 총총걸음으로 자리를 뜨셨다.

그렇게 스터디원언니의 생일이 지나갔다. 나는 괜히 초조하고 걱정이 되었는데 혹시 선물도 못준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 언니 앞에만 서면 바람앞의 등불처럼 위태위태하고, 뺑덕어미 만난 심봉사처럼 맥을 못추던 분이라 그랬다. 나이를 얼마를 먹어도 사랑하는 사람앞에선 언제나 처음처럼 어려운 법...

보름이 지났던가. 나의 그런 사소한 걱정도 잊혀져갈 그 무렵. 언니가 그 날 머플러를 매고 왔다. 무척예쁘다고 내가 말했더니 매우 좋아하시길래 산거냐고 묻자 언니는"아니 선물받았어"라며 미소지었다. 누가 줬느냐고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 오빠가 기쁨을 참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속일 수 없다.

나나 스터디원들이나 2차 시험 준비에 점점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시험이 가까워져 갈수록 해야할 것들이 많았고 답안 작성을 위해 하루에도 수십장씩 a4용지를 써내려가곤 했다. 그 때 즈음에 두사람의 관계는 우리가 바빠져갈수록 더 가까워져갔는데, 아마도 시험에 대한 압박이 두사람의 마음을 더 가까이만드는것 같았다. 우리네 사랑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랑역시 어려운 시기에 더 아름답게 꽃피우고 있었다.

  사실 그 때까지만해도 난,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은 풋풋한 느낌이 없을 것이라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보며 그건 나만의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두사람의 마음은 비 내린 후의 가을구름처럼 잔잔하고, 이른아침의 새소리 처럼 고아했다. 사랑을 시작하는 나이에는 많고 적음이 없다는 걸 두 사람이 말해주는 듯 했기에,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곤했다.

그 이후로도 그 두 분, 오빠나 언니는 나한테 가끔 연애에 대해 묻곤했는데, 사실 내가 조언해줄만한 건 딱히 없었다. 내가 연애경험이 많은것도 아니고, 사람마음을 꿰뚫어볼 만큼 통찰력이 좋은것도 아니기에 난 그저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주기만 한 적이 많다. 사소한 오해로 다툼이 있을때엔 내가 서로에게 사정을 전해 두 사람의 오해를 푼적만 몇 번 있는게 다였다.
두 사람의 연애는 그렇게 평범하면서도 특별하게 조금씩,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이 되어갔다. 시험 날, 그 이후까지도..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그 해에 수험생활을 관두었다. 변명할만한건 없다. 단지 내 능력이 부족했기에 시험에 붙지 못했고, 그 결과를 비교적 일찍 받아들일 수 있었기에 난 그렇게 그만두었다.

물론 시험을 그만둔 것일뿐, 두 사람과의 관계까지 관둔 것은 아니다. 두 분의 시험결과나 자세한 신상은 밝힐 수 없지만, 작년에 두 사람은결혼을 하여 지금은 가정을 꾸리고 살고있다. 결혼식날 나보고 부케를 받으라고 하던 걸 간신히 거절했다. 부케 받을 나이는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 오빠는 사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신선'이었다. 오랜 수험생활에 지치고 힘이들어 더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었을 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스터디를 추진 한것이라고 했다. 나이만큼이나 긴 수험생활을 청산하고 싶은 마지막 발로였고, 그 곳에서 인연도 만났으니 어찌보면 성공한 셈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이 이야기를 좀 더 드라마적 요소로 양념을 쳐서(이를테면 같은 스터디원의 삼각관계같은) 더 흥미롭게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이 있던게 사실이지만, 여러분들에게 그런 기만은 하지 않기로 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네가 살면서 겪는 일과 다르지 않기에 내 시선으로 온전히 담아보고 싶었고 그거면 충분하기 때문에.

신림동 신선..
이 말은 내가 수험생활 때 모 강사한테서 들은 명칭을 따온것이다. 오랜시간 수험생활을 한 장수생을 \'신선\'이라고 부르는게 생경하면서도 뭔가 친근하여 나도 그렇게 사용하곤 한다. 나는 비록 \'신선\'이 되진 않았지만 그들을 곁에서 보고 경험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쓴다.

또한 그들이 가지는 애환은 우리들도 가지거나 가졌던 근심 걱정들이고,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해보고 싶었다.

프랑스 소설가 생떽쥐베리의 유명한소설 '어린왕자'에는 이런구절이 있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아야만 비로소 보이지."
그들을 처음봤을적엔 나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오래공부만한 그들에대한 나의 시선은 다소 냉소적이었던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마음으로 보게되면서부터 보이기 시작한건 그들이 남겨둔 따스함이었다. 열정도, 희망도, 나아갈 동력도 없어 보였던 그들이 아직도 가지고 있던 건 주변에 대한 따스함. 그것이었기에 난 마음으로 본 그들을 이렇게 글로 적는다.

 

 

신림동 신선 5

 

신림동 신선..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신선이었던 건 아니다. 시험에대해 열정이 충만하던시절이 있었고, 패기가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음.. 사실 그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랬다. 오늘 쓰려는 이야기는, 그들은 어찌해서 신선이 되었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앞서 썼던 이야기들처럼 내가 겪었던 것들이고 수험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내 스스로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다소 무거운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선 가벼운 마음으로 풀어보고 싶다.

이번 이야기는 꼭 고시쪽뿐만이 아니라 그냥 여타 다른시험을 준비해 본 분들이면 아마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거라 생각된다.
내가 준비했던 시험을 기준으로 하면 년초에 1차시험을 치르고, 그 시험에 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름에 2차시험을 치르는 과정을 가지게 된다. 1차는 객관식이며, 2차는 주관식 3차는 면접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1차 2차 3차까지 가진 시험이니만큼 신림동에서는 강의의 과정도 순환식이라 하여, 2차 주관식시험의 일정에 맞추어 각과목을 여러번 강의하도록 한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각 1년의 과정은 2차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커리큘럼이 끝이 나게되는데, 이러한 싸이클덕에 수험생들에겐 1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수험생은 초시기간동안엔,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던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 수 많은 학생들 중에 붙어나가는 학생은 극소수일거라는 강사의 말에 제각각은 '그게 나야'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시작지점에 선 우리들 마음 속엔 쇠도 녹일법한 불길을 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험생들의 눈빛이 처음과 같지 않고, 내가 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들고, 오늘만 쉬고 내일하자 라는식같은 자신과의 협상같은 것들에 대해선 굳이 이야기하지않겠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아시리라.

신선들은 오로지 '지식'의 영역에선 그 수준이 대단히 높다. 초시생들이나 공부가 아직 덜 된 나 같은 사람이 보았을 때는 그들이 정말로 거대한 산 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학원에서 출제하는 모의고사에서 우수한 답안으로 인정받아 수험생들이 그 답안지를 돌려볼때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어떤 수험생은 신선들과 친해져서 그들의 노하우를 얻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시험'이라는 부분은 오로지 그들이 가진 '지식'의 양만으로 판가름 나는것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사소한 시험이라도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험이라는 놈은 한 가지 무기로만 이겨낼 수 있는게 아니다. 그 날의 컨디션이나, 그 시험에 대한 압박감, 내가 그 시험을 잘 치뤄내겠다는 자신감, 모르는 문제에대한 배짱 등등등 수도없이 많은 것들이 필요한데 이 고시란 놈은 유난히도 그런 무기가 많이 필요했다.

어떤 신선은 시험장에만 들어가면 머리가 하얘진다고 했다. 하얀 답안지를 보고나면 자신도 머리가 하얘져서 답을 적어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해가 안가는 분들도 있겠지만 시험이라는 놈은 간절하게 매달리면 매달릴 수록 손에 잡히지 않는듯한 느낌이 있다. 세월은 흘러가고 자신은 초라해지는데 시험이라는 놈은 저만치 달아나고 있다. 신선은 그를 쫓는악몽에 시달린다. 시험장에서 펜을 들어 그 놈을 잡아내야 하는데, 그 동안 시달린 '세월'이 그를 무겁게 찍어 누르는통에 신선은 또 그놈한테 지고만다.

특이한기억으로 남았던 신선이 있다. 그는 15년을 준비했다고 꾸밈없이 말했다. 솔직한 분이셨는데 그 분은 다른 신선과는 달리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공부량에 대해 자랑을 하진 않았다. 2차시험을 한달여 앞두고 그분을 보며 내 러닝메이트로 삼았는데, 그 분은 아침7시에 독서실에 와서 밤11시에 정확하게 퇴근하곤 하셨기 때문이다. 독서실 다른 수험생들은 그분을 '세븐일레븐'이라 불렀고 그만큼 자기관리가 대단한 신선이셨다.

그런 분이기에 나도 자극을 받아 그 분과 비슷하게 시험을 앞둔 한달을 보냈다. 사실 나는 그렇게 하면서도 시험에 확신이 들지않았다. 내 머리에 대한 확신도, 시험을 이겨낼 수 있을거란 배짱도 나에겐 없었다. 이런 불안감은 결국 시험을 그르쳤지만, 그 와중에서도 내가 러닝메이트로 삼은 신선은 다를거라 생각했었다. 여러 날동안 여유로움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듯해보였기 때문인데 시간이 좀 지나 그 분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난 매우 놀랐다.

그 신선은 시험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그 분의 얼굴은 모든 걸 내려놓은듯한 초탈함이 보였는데 깜짝놀란듯한 날 보곤 오히려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번에도 시험장에 들어가서 시험을 보지 못하면.. 그 자괴감을 견딜 수 없을거 같더라고.. 이번에도 실패하면 내 자신에 대해 핑계거리가 없잖아. 그럼 난 어떡할까 싶었어. 누가 물어보면 시험장에 들어가지 않아 시험을 보지도 못했다라고 이야기하면.. 그들이나 나나 그래.. 다음엔 꼭 들어가서 잘보자 라는 합리화가 가능하거든.. 하나의 방어기제지.."

나는 그때 알았다. 신선들이야말로 압박속에 살고 있음을. 기나긴 세월만큼이나 무거운 시간이 그들을 숨도 못쉬게 누르고 있음을.
'날고 싶으면 벼랑끝에 날 세워라'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신선들은 자신을 벼랑끝에 세운사람들이다. 하지만 뛰어내리진 못했고 그리하여 계속 벼랑끝에 서있다. 뛰어내렸는데 날지 못하면 어쩌나 라는 생각이 그들을 계속 주저하게 만들고, 실패하게 만들고 있는것 같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공부한지 얼마나 되었는지 묻지 않는다. 의미가 없기때문이다. 얼마를 공부했으면 그게 훈장이라도 되는게 아님을 우리네들보다 그들은 너무나도 냉정하고 아프게 느끼고 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장수생들에 대한 시선은 대부분이 냉소고 조롱이며 어떨 땐 멸시까지도 담고있다.

왜 저러고 사냐라는 말을 이 글을 쓰는 본인도 자주 했었다. 나의 시선도 많은 분들 처럼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초시를 지나 재시를 치고 그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된 후부턴 나 스스로는 저런말은 하지 않게 됐다.
그들의 삶을 내가 대신 살아줄게 아니기에 나는 그들을 있는그대로 '바라보기'만 하기로 했다. 살이 까질때로 까져 뼈가 드러나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소독약을 끼얹는다 해서 상처가 아무는게 아니듯, 그들의 삶에 대해 방안을 내 줄 것이 아니라면 난 그냥 관조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

바둑을 가장 잘두는 사람은 바로 훈수두는 사람이라는 말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그들은 어찌보면 시험에 대해 '훈수'두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의 수험준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오지랖을 부리는건 훈수두는 사람의 마음처럼 네가 이기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 훈수가 귀찮고 고까워 보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 훈수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 글쓴이의 시선이 '따뜻하다'라고 해주시는 이유가 아마도 그래서 일것이다. 난 그들을 싫어하고 미워하지 않기때문에.

여기에서 처음 하는 말이지만 내가 결국 시험을 관둔 것도 신선의 '훈수'가 크게 작용했다. 내 나름대로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생각했지만 결국 시험에서 낙방했을 때 몰려온 좌절감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것보다도 더 시리고 아팠다. 나는 해낼 수 있을거란 자신감은, 바람앞에 꺾이고 만 선봉장의 깃대처럼 처참하게 부러졌으며, 충격적이고 내 모든 전의를 상실케했다. 그 어디에서도 내 마음의 위로를 찾을 수 없었다. 불합격의 결과를 받아든 날 저녁 신림동 거리를 걷다 발견한 건물뒷편 공터에서 어미와 생이별한 어린애 처럼 울어댔다.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 고작 시험이 날 버린것 뿐인데, 그 당시엔 모든 세상이 날 버린 것처럼 느껴져 그 쓰라림을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어렵게 마음을 추스른 후에야 나는 다시 선택지를 받아 들 수 있었다. 시험을 다시 준비할까, 아니면 여기서 그만둘까.

짐정리를 하러 간 독서실에서 나오는 그 때에, 우연찮게도 신선이랑 마주쳤다. 내가 러닝메이트로 삼았던 신선이었다. 그 분은 얼굴만봐도 수험생이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안다고 농담을 한 뒤에 나에게 자신의 예전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분은 자신이 가진 어설픈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준비만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다. 준비를 시작했던 그때는 내 모든걸 걸고 준비했을만큼 열정도 있던 시절이었는데, 그만둘용기가 없어 그만두지도 못하고 지금처럼 준비만 한다고 말이다. 이 시험도 극복을 못할까 라는 자만심이 결국 자신을 이 구렁텅이에 빠트렸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며 웃으셨는데, 참으로 씁쓸해 보였기에 난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헤어진후에야 나는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용기가 필요하면서도 용기가 부족해 보이는 아이러니한 결정이었다. 포기할때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다시 시작할때도 필요한건 용기기 때문에.

다소 글의 말미가 우울하게 흐른거 같아 여러분들께 죄송스럽다. 재미로 쓰는 글을 재미로 봐주시는 분들께 다소 우중충한 런던날씨같은 글을 써 송구스럽지만 이왕시작한 글 마무리는 짓고싶다. 난 사람과 헤어질 때에는 반드시 작별인사를 하는 사람이다.

류시화 작가의 시집 '사랑하라 단한번도 상처받지 않은것처럼' 이라는 책에는 아픈 돌에대한 시가 담겨있다.
'시험실패'라는 타이틀은 나에게는 '아픈 돌'이었다. 처음에는 그 돌이 너무 아파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이따금씩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돌을 만질 때면 그 모서리와 날카로움에 손이 베이고 꺼내기도 힘들때가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흐르는 물속의 모난 돌이 닳고 닳아 조약돌처럼 변해가듯이, 내 주머니 속의 날카로운 돌도 자주 만지고 쓰다듬을수록 그렇게 아프지 않은 돌이 되어갔다.
그렇게 이제는 그 돌을 아무렇게나 만져도 보고 주머니속에서 거리낌없이 꺼내어도 볼 수 있다. 시간이란 그렇게 많은것들을 치료하고 변하게 한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중에, 현재나 과거의 상처로 쓰라림에 몸부림치는 분들에게, 나도 신선처럼 이야기해드리고 싶은게 있다.
'시간이 흐르는것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 시간의 흐름은 상처를 보듬기 때문에'
그 상처를 웃고 떠들며 내가가진 돌처럼 여러사람에게 담담하게 꺼내어 볼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것이다. 내 돌이 더 예쁘지 않냐며 자랑하고픈 날도 있을것이니, 그 때를 대비하여 지금의 아픈상처를 더 예쁘고 조심스럽게 쓰다듬기를 바란다.

 

 

신림동 신선 외전

 

신림동에서 지내며 느낀 것 중에 하나다.

어떤 일을 하든지간에 사람이 하는일에는 '휴식'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우리의 체력이나 정신력은 어떤 만화가의 만화처럼 '무한동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험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큼 휴식 역시 중요한데, 이번 이야기는 이런 휴식에 관한 것들이다.

고시라는 시험을, 백미터 달리기의 스프린터 처럼 전력만을 다해 그 목표에 다다를 수 있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하루, 일주일, 일년의 계획을 짜는데 휴식없이 모든 일정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을 본 적도 들은적도 없다.(아.. 소설 속 인물들은 본적이 자주 있다.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라든지 하는)
계획을 수행함에 있어서의 마음가짐은 '하루를 일년처럼, 일년을 하루처럼'.

'슬럼프'라는 말 들어보셨을 것이다. '프로선수도 아닌 니깟게 무슨 슬럼프? 쉬고싶어서 하는 핑계보소ㅋㅋ'라고 한다면 할 말은 딱히 없지만, 이슬을 머금은 새벽 달팽이도 가던 걸음을 멈출때가 있다. 수험생들에게도 이 슬럼프가 찾아온다.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못하면 이 슬럼프는 장기화 되고 심각한 경우에는 당신 마음 속 아궁이에 넣을 '열정'이란 장작마저 사라지게 만든다.

신선들은 휴식에대한 중요성을 어딜가든, 누구에게든 강렬히 주지시킨다. 간혹 이 휴식의 중요성을 설파하다 역풍을 맞는 경우도 가끔 보았는데 이런 것이다.
"휴식은 매우 중요해 니들은 무조건 달리기만 할줄알지?"
"아, 그러셔서 지금 까지 쉬시는지?"
이런 경우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의 생각대로 '사건'이 진행된다.

아무튼, 그럼에도 적당한 휴식은 중요하다. 그래서 난 그 중 몇가지 신선들이 주로하는 휴식의 종류에대해 써보려한다.

가장 흔한 건 역시 술 한잔씩 하는것인데, 물론 '한 잔'이라는 의미는 다들 아실거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있는 곳이 신림동이란 걸 잊고, 자신이 신선인지조차 잊으며, 결국에는 술을 마시는걸 잊을 정도로 마신다. 술잔을 놓고 둥근 달을 보며 시를  읊었다는 이태백이야기처럼, 신선들은 술잔을 놓고 육두문자들을 읊어댄다. 듣다보면 그 대상이 '시험'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삶'인지 모를.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말로 시작하여, 지나간 세월에 대한 한스러운 넋두리로 끝난다.

또 다른 신선의 경우엔 주말 아침마다 동호회에서 하는 '조기축구'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선들이라고 무조건 세속을 멀리하는게 아님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들 중에서도 이렇게 사람 만나는 걸 즐기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은 저런 운동 동호회에 참석하는데, 이런 신선들은 필시로, 나 같은 수험생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곤 한다.

내가 처음 무용담을 들었을 때가 기억이난다.
신선 한 분이 라디오에서 해주는 축구경기처럼 자신의 활약을 리포팅 해주시는데 그 묘사가 마치 '어쩔 수 없이' 고시를 위해 축구를 관둔 메시인 것처럼 들렸다. 메시가 조기축구도 했었나 하는 착각이 들게 만들무렵, 그 분의 말은 이미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설파하는 과정까지 다다랐다. 신랄한 비판을 곁들여가면서..

자신은 분명 축구에 재능이 있었는데 운동을 포기한 이유는 역시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의 문제라면서 말이다.
아인슈타인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면 동네 보습학원에서 재능교육이나 하고 있었을거라든지,  곤충박사 파브르가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면 양봉업자나 되서 꿀을 팔았을거라든지, 노벨은 폭약 만들다 빨갱이로 몰려 사형을 당했을거라든지, 헬렌켈러는 지하철 노숙인이 되었을거라든지하는..

그 분의 말 중 재미있었던 건 우리들이 잘 아는 '에디슨'에 대한 이야기였다. 천재는 99프로의 노력과 1프로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남긴 장본인. 처음 그 분의 얘길 듣고 실없이 웃었던 기억이 있어 적어본다.
에디슨은 어릴적에 닭의 알이 품어져서 깨어나는 과정을 신기해 했다고 한다. 진짜인지는 모르겠다만 그 분의 말씀에 의하면 그랬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는 닭장에 들어가 새로낳은 알을 그 어린 꼬맹이 에디슨이 닭대신 품었다고 한다. 위인전에는 저렇게해서 부모가 자신의 아들이 호기심이 넘치고 천재성이 엿보여, 소위 말하는 '떡잎부터다른' 사람이라고 묘사해놓았다고 하셨다.

근데 그 신선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치동 어머니가 에디슨의 모 였더라면 자기 자식이 저런행동을 한 순간 정신병원에 데려가 지능검사부터 할것이라고 시니컬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내 아들이 어린나이에 미치다니" 라는 상실감에 강남에서 제일잘나가는 과외선생을 붙여뒀을 거라고 말을 이었다. 이 쯤 들었을 때는 나도 실실 웃을 수 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또 그럴거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신선들의 통찰력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뉴턴의 이야기도 더 해주셨다.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중력에 대해 깨우쳤다고?? 아니지 아냐~ 사과는 핑계고 자기이름 위인전에 넣어보고싶어서 한 거짓말이지 안그래? 왜 하필 사과겠어? 자기가 싸는 오줌도 밑으로 떨어지는데? 자기 자서전에 오줌이라고 쓸 수는 없잖아? 그래서 사과라고 한거야~"

이 쯤 듣고는 나도 같이 웃었는데 꽤나 그럴듯하면서도 그 분의 말투가 재밌었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고시 말고 구연동화 하는 쪽 알아보시라는 말에는 짐짓 근엄하게 "애새끼들은 말을 안들어"
라고 말하시더니 쿨하게 사라지셨다. 그 다음 주에 다리에 깁스를 하고 나타나셔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분이다.

아,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저렇게 운동이나 모임에 주기적으로 참석하여 스트레스와 압박을 이겨내는 분들도 많이 계시다는 말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스트레스해소를 위한 휴식은 대체로 '걷기'였다. 대로변이나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거리를 생각없이 걷다보면 주변의 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세상의 소리들. 그래서 난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걷지 않는다. 이런저런 소리들이 오히려 나를 더 편안케 만들기 때문인데, 우리네가 사는 세상이란게 크게 다를바가 없다는 걸 매번 느끼게 된다. 시장에서 에누리하는 상인과 손님, 사랑하는 연인에게 속삭이는 달콤한 말, 아이들끼리 하는 학교이야기, 오늘이 딸 생일이라며 가던길을 재촉하는 어떤 아저씨 등등..

그런 세상의 소리들은 내가 수험생활에 빠져있는 순간을 '세상속'에 나 역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로 깨우쳐 주곤 했다. 나 홀로 이 길을 걷고 있는게 아니라는 어떤 안도감이 나를 압박 속에서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특이한 취미생활을 가진 신선이 있었는데 그 분은 '빨래하기'가 취미라고 하셨다. 이유가 뭔고 하니, 빨고 빨아서 깨끗해지는 세탁물을 보면 자신의 삶도 시간도 저렇게 처음처럼 변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흐를대로 흐른 시간과는 다르게, 자신은 때묻은 세탁물처럼, 인생에 오점을 남긴 것 같아 생긴 취미같다고 말하셨다. 웃을 수 없는 진지한 이야기이기에 내가 할 수있던 말은 별로 와닿지 않을 한 마디의 위로 정도였다. 사실, 어떤 위로도 저 분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지 못했을 것이다.

아주 드물게는 시간을 잡아 며칠씩 다른곳으로 '휴가'를 다녀오는 신선도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신림동을 벗어나야겠다는 욕망의 발로로, 아주 먼 곳으로 갔다오는 것이다. 목적지는 딱히 중요한게 아니라고 말하며 사람이 많은 관광지는 오히려 피한다고 하셨다. 여기도 사람이 미어터지는데 거기까지가서 사람들한테 치일 일 있냐며..

우리가 휴가를 떠날때 여러가지 짐을 챙기고 사진기도 가져가고 뭐 이런식으로 떠나는 건 아니다. 그냥 그 분들은 '몸'하나만 간다. 그냥 바닷가를 가든 어디를 가든 몸만 다녀온다고 했다. 사진이라도 찍지 않느냐는 내 말에
"눈으로 본거 사진으로 저장해두면 뭐해. 오히려 사진같은게 없어야 나중에 또 가고싶지"
라며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휴식이란 건 우리의 삶 전체로 보았을 때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흐른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삶의 고삐를 쥔 건 우리이기에 속도를 늦춰 주변을 바라 볼 수는 있다.
외국의 한 길거리에는 '서행하시오'라는 표지판이 있는곳이 있다. 그 거리의 풍경이 아름다운데, 속도를 내며 달리면 그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없으므로 달아놓은 표지판이라고 한다. 우리네 삶처럼 속도가 능사가 아님을 그들도 알고있는 것이다.

화사하게 쌓인 '첫 눈'위를 지날때 우리는 우리의 발자국이 예쁘게 찍혀 보기가 좋기를 바란다. 우리들 스스로의 삶의 발자취가 예쁘길 바라는 것처럼. 그래서 우린 그 첫 눈위를 걷다가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곤한다. 우리가 지나온 길이 예쁜지 아닌지.

휴식이란 그런 돌아보는 과정이 아닐까.
우리는 그렇게 돌아보는 시간동안, 다시 눈길을 걸어갈 때 어떻게 걷는게 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흘러버린 나의 시간이 마음에 들지않는다고해서 그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 처럼, 그 동안 걸어온 발자국이 다소 마음에 안든다해서 발자국을 옮겨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렇게 눈 위를 걷는 우리가 뒤를 돌아 다시보기하는 시간과도 같이, 휴식 역시도 우리네가 사는 삶의 순간순간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여유로운 발걸음이라 생각한다.

그 시간 동안 지나간 세월의 좋았던 추억도 환기하고, 그렇지 못한 실수같은 것들에 대해선 방향을 바로잡으려는 다짐을 하는것처럼, 나도 여러분도 이따금씩 '서행'하면 된다. 되돌아 보는 방법이나 서행의 방식은 각자가 다를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앞을보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발자국을 남길 수 있는 여지가 있는것처럼 우리네 삶에도 앞으로의 시간역시 존재한다. 우리는 아직 걸어간 적 없는 눈 위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평생 결정적인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 쳤지만,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사진작가로서, 사진으로 평생을 결정적인 모습을 담으려 했는데, 지나보니 자신이 지나온 시간 모든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들이었다고 고백한다. 흘러가는 삶이 신을 내며 빨리 달리는 구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방향을 위한 잠시나마의 '서행'역시 우리의 '결정적인' 한 부분임을 안 것이다.

글이 길어졌다.
나의 시간이 남들보다 늦고, 내가 밟는 삶의 페달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아서, 조바심이 드는 순간. 그래서 주변을 바라보지 못할 때 나 스스로가 기억해두었으면 하는 말로 이 글을 마치겠다.

"주변이 아름다우니, 서행하시오"

 

 

 

 

 

출처) 기타 국내 드라마 갤러리

7개의 댓글

2020.11.04

몇년전에 참 재밌게 읽었던거같은데 이분 지금은 뭐하고 살까 궁금허네

0

나 신림동에서 자취하는데

실제로 지금 이 시간쯤에 피자스쿨 가면 피자 하나에 콜라 하나 주문한 남자 셋이서 국정에 대해 토론하는 거 심심찮게 볼 수 있음.

0

주변이 아름다우니 서행하시오.

 

사법고시가 없어지며 개천용이 날 길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고시낭인을 생각하면 오히려 개천 이무기들은 사법고시 준비가 더 어려운게 아닐까 싶어

0
2020.11.05

진짜 보면 볼수록 글 너무 잘쓴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올라오는 글이야

0
2020.11.10

사시 2차만 6번 봤다

질문 안받는다

0
2020.11.10
@질투
0
2020.11.10
@슬픈페페

성취하지 못하면 미련이 남는 법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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