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물은 기존 개드립에 등재된 '[험짤ㄴㄴ] 도카이무라 방사능 유출 사고' 게시물에서 사진 추가 및 오류 수정된 최종 본 입니다.
원게시물 : https://www.dogdrip.net/299350388
이 게시물에는 혐오한, 잔인한 사진이 없으나 기존 개드립 게시물에서 사진 몇 장이 추가되었습니다.
굳이 잔인한 사진을 찾자면, DNA가 검게 타버리며 재멋대로 변형 된 것 한 장 입니다.
혹시나 궁금하신 분들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KBS, MBC, 나무위키 등'에서만 간략하게 찾아보시고,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분들은 구글에 검색하셔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단, 관련 정보를 찾으며 끔직한 사진이나 정보를 접한 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한 책임은 본 필자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참고로 구글등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6개의 컷으로 돼있는 피폭자 얼굴 변화 사진은 '시노하라 마사토'입니다.
▲사진은 고3 시절에 촬영된 사진
오우치 히사시 (1964~1999) - (20V 피폭 추정, 일반인 연간 피폭 허용량의 20,000배)
-1964년생 도카이무라 출생
-신체 175cm, 몸무게 76kg
-고등학생 시절 럭비선수를 할 만큼 다부진 체격
-고등학교 3학년 즈음 치즈루 라는 아내를 만나 7년 연애 후 아들을 낳았다.
-1980년대 중후반에 JCO회사에 취직하여 일하기 시작.
사고 과정
- 1999년 9월 30일. 이른 아침에 아침 밥을 먹고 담배 한 개비를 핀 후 JCO에 도착하여 고농축 재료의 재처리 작업을 함.
- 작업 중 기존의 우라늄 깔때기를 잡고 있었던 '요코카와 유타카'와 교대.
- 오우치 히사시는 우라늄 깔때기를 잡고 있었으며 요코카와 유타카는 다른 방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며 침전조에 붓는 작업은 '시노하라 마사토'가 함
- 약 10시 35분 '파짓!' 하는 소리와 함께 체렌코프 현상을 목격.
- 곧바로 공장에서 '감마선 경보'가 울림
- 다른 방에 있었는 '요코카와 유타카'가 도망쳐! 라는 소리와 함께 다들 방사선 관리구역 밖으로 벗어나기 시작
- 탈의실에서 오우치 히사시가 구토를 하며 쓰러짐
- 시노하라 마사토는 쓰러진 오우치 히사시를 구하러 가다 3걸음 만에 구토를 하며 같이 쓰러짐.
- 요코카와 유타카 역시 벗어난 이후 몇 분 후에 구토를 하며 의식을 잃고 쓰러짐.
- 사고 직후 공장 주변에 있던 21개 방사선 감시장치 중 적어도 두 곳에서 통상 측정치의 4,000배가 넘는 0.84mSV의 방사능이 감지됨.
- 사고 발생 1시간 후 현장 목격자에 의해 체렌코프 현상을 봤다는 진술 했고, 임계사고로서 이바라키현에 보고가 됨
(그러나 이미 출동한 소방관들은 방사선 보호복을 갖추지 못했고 그 중 3명은 피폭됨.)
- 사고 발생 5시간 후인 오후 3시 30분, 사고현장 반경 350M 주민 40세대가 공공시설로 대피 시작
- 오후 5시 사고현장 주변 방사선 측정치가 3.5~4 밀리시버트(연간 피폭 허용량의 4배)로 나왔다.
이에 기존 350M에서 500M 이내의 주민에게 대피범위가 확대
- 한 편 침전조에 부은 우라늄은 계속해서 연쇄반응 중이였다.
- 이 사고로 공장 주변의 방사능 양이 평상시보다 최고 1만 6,000배에 이르는 유출량 발생
- 이 후 다음날 오전 5시 기점으로 겨우 일단락 시킴
----------------------
▲도쿄대학병원 의과학연구소에 국립 미토병원에 실려온 직후 촬영된 '오우치 히사시'
▲의료 헬리콥터를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오우치 히사시. 비닐에 덮혀 누워있는 사람은 '시노하라 마사토'
- 도카이무라 인근에 있는 국립 미토병원에 갔다 의료 헬리콥터(대한민국 기준 닥터 헬리콥터)를 동원, 중증 피폭자 3명 모두 차바현 방사선 의학 종합 연구소에 이송했고 오우치 히사시는 도쿄대학교병원에 이송됐다.
▲방사능 보호복을 착용한 구호요원과 직원들이 '오우치 히사시'를 부축해 방사선 의학 종합연구소 - 중립자 치료센터로 이동중인 모습.
헬기 탑승때와는 다르게, 가장 심하게 피폭당한 그의 오른손이 방사선 화상으로 인해 빨갛게 부어올라있는 모습이 보인다.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구도의 사진.
- 당시 두명 (시노하라, 요코카와)은 의식에 문제가 있었으나 오우치 히사시는 의식 문제 없이 멀쩡히 걸어 다녔다.
▲ 두꺼운 비닐에 덮여진 채 '도쿄대학병원 의과학연구소'에 실려오는 '오우치 히사시' 피폭자. 3명 중 한명인데 오우치인지 시노하라인지 불분명 하다.
- 오우치 히사시는 당시 그는 눈이 조금 충혈되고 얼굴이 조금 붓고 붉혀졌으며 가장 심하게 피폭된 팔이 빨갛게 조금 부어올랐을 뿐
나머지는 너무 멀쩡하였고 정상적인 대화를 했다. 또한 너무나도 침착하기 까지 했다.
- 추가적으로 그는 오른쪽 귀 아래 부분의 통증을 호소했다. 이는 엄청난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 임파구가 파괴되어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였다.
-----------------------------
10월 1일 오전 10시. 방의연 중립자 치료센터 3층 회의실에서 17명의 피폭 의료 분야 전문가가 모였으며 이들을 주축으로 한 긴급피폭의료네트워크회의(98년에 만들어 짐) 임시회의가 개최됨.
- 그리고 곧바로 히라이 히사마루, 응급 의료 전문가이자 원자력안전연구협회 피폭의료대책전문위원회 위원장인 마에카와 가즈히코(前川和彦) 교수등이 도쿄대학병원을 통틀어 당시 세계 최고의 피폭 치료팀 진료 체계를 Task Force 형태로 구성
▲10월 1일, 회의에서 오간 내용을 기록한 메모의 일부. 오우치가 8SV의 피폭량으로 추정한 가운데, 림푸구 감소에 대한 내용도 기술돼있다.
- 혈액 검사 결과 백혈구 수치와 적혈구 수치 그리고 혈소판 수치가 급격히 감소한 것이 보고됨.
- 오우치 히사시의 토사물을 분석 결과 '나트륨 24'가 검출됨. (곧바로 그가 16~20Sv에 피폭 됐다는 것이 확인됨)
- 백혈구 수치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보고 받은 후 무균실에 입원
- 오우치는 유리 벽을 통해 가족들과의 면회를 하며 대화를 주고 받음
- 오우치는 아내에게 입 안에서 금속맛이 난다며 말을 함 (방사선 피폭의 영향)
- 10월 3일 실시간 종합 효소 연쇄 반응(Real Time PCR)을, 골수세포의 샘플을 채취해 분석을 했으며 10월 5일 결과가 발표
결과
- 염색체의 현미경 사진, DNA가 산산조각으로 파괴되어 동정이 불가능
- 그 시점에서의 의사들은 오우치가 2주를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판정을 내림.
- 같은 날인 10월 3일, 오우치의 형으로 부터 제공받은 말초 줄기세포를 오우치에 이식을 시도
- 10월 7일, 오우치의 여동생으로부터 채취된 말초혈액 간세포를, 백혈구 생산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90분에 걸쳐 주입을 시도
(세계 최초 피폭자에 대한 조혈모세포 이식 시도)
- 조혈모세포 성공적으로 안착, 백혈구 수치가 300개를 시작으로 정상인과 다름없는 8000개 선으로 상승하며 면역 반응이 활성화 됐다.
- 10월 9일, 의료용 테이프를 붙여둔 피부가 같이 붙여 탈락되기 시작. 즉 피부가 자멸을 일으킴. 그리고 이 후 그가 전신의 70%가 방사선 화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후 테잎 사용이 금지 됨
- 호흡기관에 대한 X-ray 촬영 결과 오른쪽 폐를 중심으로 그림자가 져 있음을 식별
- 혈중 산소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강제로 폐를 확장시키는 작업과 동시 인공호흡기를 본격적으로 부착 및 시행을 했으며 곧 오우치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짐(고통을 최소화 하고자 대량의 진정제와 진통제를 투여)
- 오우치 히사시에 대해 피부 탈락을 조금이나마 방지하기 위해(체액 손실 방지) 온 몸을 거즈와 붕대로 감싸는 작업을 실시
- 눈을 깜박일 수가 없게 되어 계속해서 눈에 연고를 바르는 조치를 함
눈에서는 이따금 피가 나왔으며 눈이 노랗게 말라있었다고 한다.
- 피폭 15일 이후 장기의 점막이 소실돼가기 시작
- 가장 심하게 피폭을 받은 오른쪽 팔을 중심으로 신체가 부패되기 시작.
이로 인해 미오글로빈이 녹아 내려 나와 신장에 엄청난 부담을 주기 시작
- 이 시점서 하혈, 피부에서 스며나오는 체액, 혈액의 양을 계산, 몸에서 빠져나가는 수분은 무려 하루 10리터에 이름.
- 11월 21일, 여동생에게 이식받은 조혈모 세포 검사 결과 30개 중 3개의 DNA가 파괴됐음을 확인 (나트륨 24의 영향).
당시 도쿄대학병원이 소유한 15만개의 DNA 중 2개만 손상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것이다.
- 나트륨 24의 영향으로 기형적으로 증식된 메크로파지가 백혈구를 없애기 시작.(혈구탐식증후군)
이에 맞서 의료진들은 스테로이드를 비롯해 각종 약물을 총 동원해 메크로파지의 활동을 줄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 설상가상 남아있는 백혈구 마저 나트륨 24의 영향으로 백혈구가 변이(mutation)을 겪어 치명적인 면역 반응(fatal immune response)을 유발
- 방사선 피폭에 의한 폐기능 장애를 예방해주는다는 펜톡시필린이라는 약물을 주사기 형태로 주입 및 각종 임상실험중인 궤양성 치료제 양성자펌프억제제 역시 태국에서 공수해와 점적 형태 주사로 긴급 투여
- 11월 27일 첫 심장 정지. CPR 및 인공 신장투석 후 소생
- 12월 초, 피폭 이 후 피부가 자멸하는 와중에도 상대적으로 적게 된 몸 뒷부분과 옆면에 동그란 형태의 피부가 자생. 및 내장 역시 조그마한 원 형태로 점막 재생. 이에 따라 체액 유실 방지를 위한 세계 최초 피부 이식 시도 (내장역시 피부이식 시도를 하려 했으나 방사선이 너무 강해 포기)
- 당시 대학병원 등지에 '연구용'으로 활용중인 '배양피부'의 '성장인자'를 기대하며 70매를 오른쪽 배와 오른쪽 발에 이식함.
추가로 오우치의 여동생 피부를 활용해 피폭자에 대해 피부이식 시도하였다.
- 그러나 체액 손실로 인해 피부가 들떠버렸으며 성장인자가 방사선에 의해 파괴돼 세계 최초 피부 이식 시도는 결국실패.
- 이 후 두 차례 심장마비가 있었으며 83일 째에 갑작스럽게 심장박동이 멈춤과 동시에 혈압이 급하강 함.
- 운명의 83일, 아내와 아들이 산송장이 된 오우치를 봄. 단 한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씩씩했던 아내는 참았던 그 동안의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조혈모간세포 이식, 혈소판 이식, 피부 이식과 갖은 약물이 동원하며 첨단 의과학술을 총 동원 했지만... 어떻게든 살려 보려 한 의료진들의 노력은 결국 무 참히 깨졌다.
- 그리고 그날 밤 그는 갑작스럽게 심장이 멈춤과 동시에 혈압이 급강하 하게 된다. 이미 승압제 의존 상태에 빠진 그를 뒤로한채 더이상 무의미한 연명치료 는 끝내 중단된다.
그에게는(더이상 피부세포들이 재생되지 않았기에) 수 많은 주사바늘 구멍과 검게 괴사하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오른팔. 그리고 얼굴 가죽이 전부 벗겨져 의료용 특수 거즈로 겨우 형태만 갖춘, 전신의 피부의 허물이 벗겨진 시신만이 누워있었다.
▲ 22일, 부검 후 오우치의 시신이 운구차에 운반되는 모습
---------------------------------------------------------------------------------------------------------
요코카와 유타카 (4SV 피폭, 일반인 연간 피폭량의 4,000배)
- 피폭 몇 분 후 구토 후 의식 불명
- 이 사람 역시 혈액샘플 결과 백혈구 수치가 0이 되어버림.
- 조혈모 세포 및 골수세포를 이식했으며 성공적으로 안착
- 피폭된 지 1달도 채 안된 사이 회복했으며 퇴원 후 2003년까지 NIRS 에서 방사선 피폭 치료를 계속해서 받음
- 2020년 현재까지도 생존중이며 2달에 한 번씩, 콘크리트로 봉인된 두 명의 시신이 안치된 곳에 가 명복을 빌러 간다고 함.
--------------------------------
죽은 두 사람 몸속엔 이미 나트륨 24라는 방사성 물질이 계속해서 방사선을 내뿜꼬 있기 때문에 콘크리트 납관에 봉인 돼 잠들어 있다.
피폭 치료에 종사한, Task force 에 일원이었던 하시마루는 2003년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다. (방사선 피폭 환자들에 대한 중성자 피폭의 후유증일 가능성이 큼)
PS : 기존 개드립에 간 글의 오류를 잡고 그 게시물 보단 좀 더 사진을 많이 첨부해봤어. 그리고 개드립에 쓸가 읽판에 쓸까 고민을 했지만 같은 게시물에 살을 좀더 붙인 것 뿐이라 읽판에 작성해습니다.
출처 : KBS뉴스, MBC뉴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나무위키, 83일 책
작성 : 필자가 직접
황해도특산
1999년 9월 30일 오전 10시 35분에 일본 이바라키현 나카군나카군(이바라키) 도카이촌도카이에서 발생한 레벨 4 원자력 사고.
핵연료 재처리 회사인 JCO가 도카이촌(東海村)에 세운 핵연료 가공시설에서 일어났다. 이 사고로 인해 현장에서 작업 중이었던 오우치 히사시[1](大内 久, 1964~1999, 당시 35세)가 18그레이, 시노하라 마사토(篠原理人, 1959~2000, 당시 39세)[2]가 10그레이, 이 둘을 지휘하던 상사 요코카와 유타카(横川豊, 당시 54세)가 1 ~ 4그레이 가량 피폭방사선 피폭됐다.[3] 1그레이/시버트는 과거의 렘/라드 단위의 100배로, 6그레이 이상 피폭된 후 생존자는 거의 없다.[4] 오우치는 83일 만에, 시노하라는 211일 만에 사망했다. 사망자를 포함하여 피폭자는 667명이 나왔다.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나무위키 앞 부분에 있는 요약문서를 가지고 왔구만 :)
황해도특산
처음에 본문 읽고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잘 모르겠어서 찾아봤어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굿 :). 그리고 더이상 찾아보지 마...
유즈리하
구글로 찾아봤다가 사진 봤는데 그날 하루종일...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ㅠㅠ 그거 트라우마 겪을 수 있음. 이미 본건 어쩔 수 없는데 더이상 찾아보려고 하지마라.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진 않지만 무뎌진다.
유즈리하
후아 진짜 ㅠㅠㅠ 계속 생각나서 멍때리게 되도라구요 ㅠ 저 사람들이 넘 불쌍하고 그 사진들이 넘 징그러워서 ㅠ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설마 그 6개의 얼굴변화 사진 본거야...?ㅁㅊ;;
유즈리하
오래된 블로그에 올라와있던 사진들이었는데... 스크롤을 멈추지 않은걸 매우 후회합니다... 첨엔 Dna 사진만 있길래 드르륵 드르륵 드ㄹ륵 했는데 ㅠㅠㅠㅠ 와 진짜 토할뻔 했어요... 막 몸 피부 다 벗겨진채로 침대에 걸려있고 ㅠㅠㅠㅠ 얼굴변화 사진보다 더 징그럽고 잔인한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하유ㅠㅠ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맞아 그게 정상이야. 체르노빌 사태때 피폭돼 실려온 소방관들을 치료하던 배테랑 외상 의사들 조차 화장실에서 토할 정도였다고 하더라.
음... 그 블로그가 오해한 사진을 몇 장 올린 것 같네. 오우치 히사시는 온 몸이 붕대에 감겨있는 짤과 검게 괴사된 오른손, 피로 점철 되고 죽은 세포들이 허옇게 떠서 나뒹구는 창자 사진들 뿐임.
그게 아니라면 님이 본건, 어떻게든 살려고 끝까지 버티고 버틴 시노하라 마사토겠네요...
더 이상 찾지말고 잊는게 최선...
JCO
최근에 스톤포브라는 사람이 알려준건데 또 구글에 도카이촌 치면 나오는 컬러 얼굴사진도 "시노하라 마사토"라고 합니다 왼쪽은 1월3일 아침에 찍은거고 오른쪽에 사진은 1월6일 아침 9시에 찍은거고요 사진의 날짜는 사진속에 다 나와있습니다 또 왼쪽 사진은 흑백으로 되있는 1월4일 사진과 비슷합니다.
0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그럼 오른쪽에 있는 사진은 사후사진이다. 이건 사실이 아니고, 한참 살아나기 위해서 고군분투 하고 있을 즉, 살아있을 때네요.
근데 그 사진을 보고싶진 않아요...
JCO
저도 초딩때 유튜브에서 보다가 트라우마 생김 지금은
상관없음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그렇군요..그나저나 시노하라 마사토 같은 경우는피부뿐만이 아닌 내장기관에 대한 피부이식도 성공했나 보군요... 211일씩이나 살고 휠체어에 타고 돌아다닐 정도면...
JCO
심지어 자신이 직접 휠체어 타고 다녔어요 말도하고 가족이나 의사랑 농담도 하고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요즘 '라듐걸스' 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그 때(~1920년대까지)는 여공들이 점점 쓰러져가는지에 대해 이유도 알 수 없었고 심지어 라듐이 몸에 좋은 만병통치약으로 여겼던 시대에서 70년이 지난 후에는 치사량을 넘어 과거였으면 2~3주 버티는 것 조차 기적이라고 여겼을 정도의 피폭량을, 발달한 의료 기술로 농담하고 일반 환자들 마냥 돌아다녔을 정도로 만들어 놓다니...
나무위키에 boca135님이신거 같은데, 시노하라 마사토에 대한 치료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기술해줄 수 있을까요?
JCO
일단 찾은거는 10월4일날에 도쿄 의과학 연구소에서 제대혈 이식을 받고 10월 5일날에는 형(41세)에게 줄기세포수혈을 받았다는건데 더 있을겁니다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줄기세포..? 형에게 조혈모세포 이식 받았다는 거죠?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그나저나 나트륨 24는 반감기가 원자력 발전등으로는 쓰일 수 없는 15h에 불과한데, 시노하라 같은 경우는 오랫동안 생존 했으며 그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서 나트륨 24의 위력 또한 점점 약해졌을 것인데 왜 2월 말에 방사선 장애를 겪은거지...
JCO
1달만에 호전에서 악화라 불쌍하군요 그 행복이 빨리 끝나다니
오이는맛있어
오우치경우 현대의학의 발달로 저정도로 연명했다고 하던데, 지금 보면 꼭 살리려고 치료를 한게아닌 신체실험처럼 느껴지네요...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이게 오해가 있을 수 밖에 없는게, 본문 자체를 사건에 비해 축약을 많이 해서, 사건 원인과 결과 그리고 의사들에 대해 과거 이력과 치료 과정에서의 트라우마등이 생략된건데, 테스크 포스팀에 소속돼있는 17명 중 일부는 이미 방사선 피폭에 관해 독보적인 사람들이 다 수 있었음.
45년 원폭에 피폭된 환자를 치료하고 정기검진을 맡으며 피폭환자들에 대한 자료들을 천천히 쌓고 있는 상황이었고. 급성 피폭 환자들에 대한 자료는 이미 임계사고발생으로 부터 30년 전이 마지막이었으니(소련권 제외) 그 때 보다 훨신 발달한 의과학을 총 동원하면 해볼만 할 것이라는 기대 또한 있었어요. 실제로 시노하라 마사토 같은 경우는 과거였으면 2주일 채 가지 못할 목숨인데 211일 동안 살아 있었는 것도 대목할만한 성과입니다.(심지어 의식불명에 빠진 적이 없었음.) 물론 정말 안타깝게 죽었지만..
그러나 님 의견 또한 맞는것이, 미국은(물론 의학의 한계와 데이터가 전혀 없었던 시기였기에) 고통을 최소화 위주로 치료를 했지만 일본은 어떻게든 살려보기 위해 피해자들의 고통은 뒤로 한 채 모든 방법을 동원한 케이스. 그렇기에 83일 책 저자 역시 이러한 의료행위에 대해 비판하지.
하지만 이 또한 의사들과 간호사들 역시 치료하는 내내 회의감과 악몽. 이에따른 트라우마가 계속해서 발생해서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엄청났다고 해... 안락사 또한 지금도 논란인데 하물며 22년 전 시기이니까...
최후의광휘
근데 정확히 어떻게 사고가 발생했는지는 없네
깔대기는 얼마만한거고 원래 그걸 사람이 옴기는건지
누출원인은 뭐고 피해자 어느방향에서 터진건지 알수가 없음
뭐가 잘못된거고 재발방지를 위해 무슨 규정이 추가됐는지를 알아야 정작 무슨사고였는지 알수있을듯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맞습니다. 위에 댓글에서도, 그리고 제목에서 유추하듯이 이 게시물의 초점은 도카이무라 임계사고 자체가 아닌 도카이촌 '방사선 유출사고 피해자' 그리고 '일지'에 초점을 맞춘 글이라서 그렇습니다.
임계사고 자체의 원인을 알고 싶으시면, 읽을 거리 판에 도카이촌 관련 글이 더 있을 겁니다. 그 글 보시면 될 듯 하네요.
단, 이 게시물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극혐 사진들이 많으니 마음 단단히 드시고 보시길.
곰형
전신에 분자단위로 화상을 입는거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겠네..
DNA가 죄다 파괴되는 수준이라니...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맞습니다. 그리고 방사선에서의 중성자들이 인체 내에 있는 나트륨 23 을 24로 바꿔버려서 사망확정리나 다름없게 만들죠.
곰형
나트륨 원소까지 건드려버리면 원문에서 시도했던 조혈모세포? 골수이식? 같은 방법도 답이 없겠네...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ㅇㅇ 나트륨-24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선이 기껏 이삭한 조혈모세포 속 DNA와 배양피부의 성장인자들을 파괴하니깐
곰형
어우...개무섭...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글고 자세한 정보 찾아보려다간 ㄹㅇ 트라우마 생가니깐 더이상 찾지말고..
나머지 댓글들 보이지?
년뒤 잘생겨짐
공부하다가 봤던 일지네
그때봤던 사진이 떠올라서 거북해지네..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잘 극복하길 ㅠ
JCO
어 근데 오우치가 안경낀 사진은 JCO처음돌어올때 찍은거인데요 당시(80kg)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그렇군요. 수정하겠습니다
포도음료
저기 전혀상관없는 댓글써서 미안한데
펌 밀리터리 스리즈 왜 안나옴?
최근에 c 97수송기 이야기도 삭제된거같아
Guis
원글작성자가 일때문에 쉬어서그럼 그거 다음에 12월말에 하나나옴
포도음료
ㅇㅎ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ㅠㅠ
JCO
생각해보니 도카이촌 문서에 사진들은 작업하는모습 ,오우치 히사시 염색체 손상사진 2개빼고 다 제가올렸네요. 그리고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구도의 사진은 화질이 매우 구려서 수정했는데도 구리네요.역시 1999년
바른말고운말하는사람
사진이 무슨 네모빔 맞은 것 마냥 네모네모 하네요.. 그래도 이런 자료가 있는게 어딥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