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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노잼] 아버지 이야기 - 하

상편 : https://www.dogdrip.net/303109357

 

안녕, 개붕이들.

 

뜬금없이 쓴 일기같은 글에 눈치없이 마무리 지으러 왔음.

 

상편은 좀 '안됐네, 어쩌라고?'싶은 느낌이어서 왠지 미안했지만

 

하편 내용은 나처럼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겪을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음.

 

댓글써준 개붕이들, 고맙다. 담배는 많이 줄였고... 꼭 끊을게. 조언 고마워. 욕참기 힘든거 안다.

 

글 칭찬해준 개붕이도 있었는데 하편은 수필이랑 정보랑 섞다보니 상편보다 별로네? 미안하다.

 

수필 좋아하면 허지웅이 쓴 수필 3권 다 추천함.

 

 

 

기분좋거나 웃긴 내용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써볼게.

 

동시에 이 글이 쓸모가 있을 일이 모두에게 최대한 늦게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아버지가 내 품에 안겨 돌아가셨다.

 

수없이 상상해왔던 일이어서 되도록 침착하게 우는 동생과 엄마를 두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주소 어디어디, 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다.

 

사람을 보낼테니 오면 문을 열어달라, 10분정도 걸릴 거다. 이런 얘기를 했다.

 

잠시 기다리던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보았다.

 

그제서야 눈물이 주륵 흘렀다.

 

아직 시디플레이어에서 U2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With or Without You>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데, 제목까지 참... 꺼버렸다.

 

그리고 외가쪽의 삼촌, 그리고 친가쪽 당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른은 어른이다. 길게 묻지 않고 바로 갈테니 잘 추스리고 있으라고 하고 끊었다.

 

 

 

 

동생과 엄마에게 사람이 올테니 옷 따뜻한 걸로 갈아입으라고 말했다. 마스크도 쓰고.

 

가장 먼저 온 건 두 경찰이었다.

 

50은 넘어보이는 나이 많은 분과 30대 정도의 형사분이었다.

 

형사는 정말 영화에 주연급 조연으로 나올 것 같은 인상이었다. 청바지에 건강한 몸, 짧은 스포츠머리.

 

짧게 상투적인 인사치레를 건네고 설명이 이어졌다.

 

내가 울지도 않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있으니 약간 당황하는 것 같기도 했다.

 

곧이어 현장을 확인할 사람이 올테니 방은 비워두시는게 좋다고 말해주었다.

 

전에 엄마와 했던 얘기였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호스피스를 찾는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집에서 사망할 경우 사후처리가 복잡해 질 수 있어서이다.

 

장례와 이후 바쁜 와중에 경찰서에 여러번 가야 할 수도 있다고.

 

병을 오래 앓고 있었고 누가보기에도 모습이 그랬으니 우리는 별탈 없이 넘어가기는 했으나

 

만약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경우 힘든 와중에 수사까지 이루어 질수도 있는 거다.

 

이름과 주소, 사망 시각등을 물어보고 병의 경과까지 세세하게 물어댔다.

 

언제 진단받고 경과가 어땠는지, 거동은 가능했는지, 근래 증상까지.

 

말하면서 꼭 친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더 울어야 할 것 같은 기분.

 

밤늦게라서 법의관? 검시관? 그 사람이 퇴근한 후라 오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릴거라고 들었다.

 

전문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사망확인을 받아야 하고, 사망 원인을 까다롭게 검사해야 한다.

 

한참 묻고 거실에 다 모여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엄마는 계속 흐느끼고, 경찰이 있는 거실이 불안할까봐 동생은 자기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나이 많은 경찰아저씨가 침묵속에서 입을 열었다.

 

사투리가 섞이고 목소리가 껄끄러워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위로하려는 것 같았다.

 

어색함을 피해 주방에서 물을 마시던 나는 짜증이 났다.

 

위로한답시고 "집에서 가족들 있는데서 가셨다니 호상입니다." 그 말에.

 

세상에 씨발 호상이라니.

 

나이 50에 암으로 죽는 게 얼마나 억울한건지 저 등신은 모르는구나.

 

좆같은 생각인 건 알지만,

 

어차피 죽는 게 확정이라면 심장마비같은 걸로 한번에 가시는 것도 좋겠다 여러번 생각했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먹지도 못하고 몇달을 보냈다. 본건 형광등 불빛뿐이었다.

 

애매하게 발전한 현대의학은 우리 모두에게 애매한 희망을 주었다.

 

그게 나쁘단 건 아니야. 50년 전이었으면 뭘로 죽는지도 몰랐겠지. 3년 사는 건 말기 폐암 환자에게 긴 편이다.

 

 

 

사실 3년동안 우릴 가장 많이 괴롭힌 건 주변의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공고에 야간대학을 나온 깡촌 출신의 범생이었다.

 

어릴때부터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다니던 회사에서도 최연소 과장을 달았다.

 

병이 아니었으면 부장된 지도 꽤 지나서 임원은 확정이라고 했다.

 

최연소 부장도 가능했지만 부장급은 진급하려면 윗선에 선물(은 사실 뇌물)을 돌려야 한다는 걸 우리만 몰랐댄다.

 

명절때 우리도 안 먹어본 한우 세트 뿌린지 2년만에 진급했었다. 과장은 한참 늦게 단 동기들보다도 늦게.

 

그뿐이었나, 조금 잘나간다고 동창회, 동호회 가면 아버지가 술값을 내곤 했다.

 

어릴때부터 아버지는 술먹고 12시는 되야 들어오는 날이 안 그런날보다 많았다.

 

혼자 드시진 않았겠지, 회사 생활에 필요한 인맥쌓기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아프고 회사를 쉰 3년, 아버지가 같이 술먹고, 술사고 한 씨팔새끼들 중에 연락한 사람은 단 3명이었다.

 

우리집은 할아버지 넷에 아버지 친형제, 즉 작은 아빠가 둘 있었는데,

 

나와 아버지가 맏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대가족의 맏이였다.

 

아버지랑 동생들, 사촌동생들까지 열명은 되는데 3년간 카톡한번 한 새끼가 반도 안됐다.

 

제일 가까운 둘째 작은 아버지는 술처먹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씨발련이라고 욕을 했단다.

 

막내 작은 아버지는 밴드에 형 벌써 죽은거 아니지? ㅎㅎ 하고 농담을... 했단다.

 

아버지 밴드 가입되 있는거 모르지도 않고 아픈 것도 아는 그 개새끼들은

 

몇달마다 아버지를 빼놓고 자전거 여행을 가고 모여서 술마신 사진을 필터없이 올렸다.

 

형제 사이니까 놀리는 거겠지, 하고 넘어가려했다. 나도 남잔데 친구끼리 친하면 어떤지 알지.

 

근데 선이라는게 있지 않나.

 

일단 이야기가 샜으니 다시 돌아가겠다.

 

한참의 쓸데없는 시간 후 집에 검시관이 왔다.

 

과학수사대처럼 흰 옷을 입고 신발에 비닐같은 걸 씌워 발자국이 안보이게 했다.

 

간단하게 병이랑 증상같은 거 묻더니 아버지 누워있는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잠시 후 외삼촌이 왔다. 엄마와 얼싸안고 또 한바탕 울었다.

 

검시관이 나와 시체검안서를 하나 주고 갔다.

 

사망진단서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쉽게 말하면 병원에서 의사 관리 하에 죽으면 사망진단서,

 

그 외의 상황에서 죽어 사후 검증이 필요하면 시체검안서.

 

이 시체검안서는 보험, 사망신고 등 아주 중요하고 쓸데가 많으니 이런 상황에서 꼭 챙겨두어야한다.

 

또 이 검안서는 프린트한 사본과 검시관 측에서 뽑은 사본이 차이가 있어서,

 

10장정도는 검시관한테 직접 사본을 부탁하는 것이 좋다. 돈도 꽤 든다. 그야 그럴게 사람 목숨에 관한 거니깐.

 

그리고 운구하시는 분이 왔다. 119에서 연락을 받았는 듯 하다.

 

시체를 운구할 큰 접이식 휠체어?같은 걸 가지고 혼자 오셨다.

 

나와 삼촌 도움이 필요하대서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동생은 안 보는 게 좋다고.

 

사람이 죽으면 온 몸의 구멍에서 뭐가 나온다 하는 얘기가 있는데 약간은 과장된 듯.

 

얼굴쪽은 평온한 표정 그대로였다. 아래는 모르겠다.

 

하얀 천으로 이래저래 시키는 대로 싸서 그 운반차에 실었다.

 

얼굴까지 전신을 꽁꽁 싸매고 운반차에 달린 끈으로 꽉꽉 조여댄다.

 

그 광경은 심약한 사람은 적지않은 충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물건처럼 변하고 또 취급받는다.

 

영정사진 있으면 갖고 오라고 했다.

 

부모님 나이 50 이상이면 꼭 준비하는 걸 추천한다.

 

영정사진 준비한다고 죽으라고 고사 지내는 거 아니다. 이런 발상, 보편적이지만 꼭 없어져야 한다.

 

적어도 정면으로 잘 찍힌 사진 파일 하나쯤 들고다녀라.

 

안그러면 장례식때 영정사진 아무렇게 찍힌거 장례식장에서 대충 확대하고 배경 짤라서 해놓고 그러면

 

마음 찢어진다. 불효라 생각말고 사진 꼭 준비해라, 성인 된 개붕이들은.

 

당사자한텐 알리지 말고. 어지간하면 싫어하실테니. 우리도 아버지 모르게 준비해놨음.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다.

 

그거 들고 나랑 운구차 아저씨 둘이서 운구차에 탄다.

 

우리 집 20층인데 1층까지 가면서 누구 안마주친거 진짜 다행이었다.

 

아무리 꽁꽁 싸매도 누가봐도 사람 시첸데, 말했듯이 누가보면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무서운 모습이다.

 

장례식장도 근처에 알아둔 곳으로 가달라고 했다.

 

장례식장도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가능하다면.

 

장례식을 하면 2,3일 하고 친지분들 많이오고 하는데 멀면 왔다갔다하기 힘들다.

 

술마신분도 많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도 이런저런 서류, 옷가지, 기타 등등 챙겨오려면 한보따린데

 

실수로 없으면 후딱 갔다오고 해야됨. 우리 아버지 장례식 가는데 버스로 몇십분? 지하철? 안 그러면 좋겠지.

 

힘들겠지만 장례식 손님맞이도 중요하다. 시설같은 거 참고할만한 후기나 홍보책자 같은거 보고 미리 골라놓으면 편하다.

 

부모님 편찮은 개붕이 있다면 그런거 미리 알아보기 싫은거 백번 이해하지만 내말듣고 꼭 해놔.

 

운구차 아저씨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또 중요한게 상조회사를 하느냐 마느냐임.

 

사망 전에 미리 상조 가입하는 게 어려운 건 또 이유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모르겠다고? 부모님께 물어본다고 생각해봐. 상조 미리 해둘까? 참 좋아하시겠다.

 

중요한 건 돌아가신 후에도 상조 가입이 가능하다는 건데, 그럼 안하는 선택지도 있느냐? 있다.

 

장례식장에서 알아서 해주는 선택지도 있고, 이 두가지 선택은 확실한 우열이 없다.

 

상조 가입은 당연히 돈이 더 들지만 장례식장부터의 수많은 선택에서 좀더 편리하다. 이 선택들은 잠시후 설명.

 

장례식장에서 해주는 건 돈은 확실히 덜 들지만 선택할 게 더 많고 조언이 없다... 정도로 일단 해두겠음.

 

부친상인데 돈이 문제냐? 하고 물을거면 이 글 다 읽고 판단해. 우리 집 결코 못살지 않지만 진짜 어마어마하게 들어감.

 

 

 

 

아버지 안쪽으로 옮기고 나 혼자 식장에 남겨졌다. 어쩌냐고? 얼탔지.

 

사무실에서 간단한 서류작성하고 장례 어떡할지 묻는다. 25살 처먹고도 선택장애 세게 온다.

 

식장에도 여러 선택지가 있는데, 당연하지만 가격별로 다르다. 판단기준은 위치와 크기임.

 

위치야 뭐 크게 중요한 건 아닌데 장례식 보면 영정사진 있는 방 있고 밖에 손님들 밥먹는데 있자너.

 

영정있는 방에 따로 상주 전용방이라 해야되나. 돌아가신 분 가족들 있는 방이 있음. 거기에 화장실 유무나 방크기 정도 급차이 있음.

 

또 밥 며칠동안 차려야 되니까 간단한 주방같은거, 또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도 고려해야됨.

 

앉을때 손님들 한칸씩 띄어 앉아야 되서 원래 100인용 식장이다, 하면 50이하로 봐야되지.

 

단어 표현이 거북하다면 미안하다. 못배운놈이라 그런가보다 해줘.

 

 

 

뒤늦게 외삼촌이 엄마랑 어른들 태우고 왔다.

 

나는 멀뚱히 앉아만 있고 어른들이 결정했다. 돈 좀 더 들어도 큰 곳으로 하기로 했다. 누구 왔는데 자리 부족하다고 쫓아낼 수는 없으니.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원래 관례대로면 장례는 3일 해야됨.

 

근데 늦저녁에 상치르게 생겼는데 이것도 원래 바로 해야되거든?

 

코로나 때문에 저녁 10시 이후로는 조문객을 못받는다는 거야. 그때가 이미 9신가 그랬다.

 

빨리 준비해도 그날은 조문객도 없이 자리 지켜야 된다는 건데, 1박 돈이 200인가 그랬는데 그거 더 내고... 그럴 필요 있나 싶었지.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찍 식장 시작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밖에 상주인 나랑 동생, 엄마 상복 빌릴건지, 빌릴거면 사이즈같은거 체크하고.

 

식장에 영저앞에 차리는 상, 꽃, 조문객들 대접할 식사 어떤걸로 할지, 이런거 결정할 거 수도없이 많다.

 

우리는 상조회사 없이 하기로 해서 직접 식장에서 보여주는 카탈로그 보면서 골랐다.

 

제일 싼건 진짜 집에 돈 없고 빚만 있다 하면 안할 허접한 거고,

 

당연히 비싼 거 하고 싶지. 근데 단계마다 가격이 수십단위 더 들어가는거 보면 이거 결국 식장에서 먹는거거든.

 

상조관련 해서 비싼거 하고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는데, 그거 다 남 배불리 먹이는거지, 돌아가신 아버지 드리는 게 아니야.

 

적당히, 죄책감 많이 들지 않는 선에서 고르는 게 좋다. 그래도 충분히 비싸고 좋아.

 

 

 

차타고 집으로 가는데 친가쪽에서 전화가 왔다. 장례식장에 도착했대.

 

그래서 외삼촌이랑 나만 다시 식장으로 돌아갔다.

 

작은아버지라는 작자 둘이랑, 당숙 둘이었음. 당숙이라하면, 작은할아버지 아들.

 

작은아버지가 날 보자마자 붙잡고 엉엉 우는거다.

 

이새끼가 엄마한테 씨발련이라고 욕했던 그 작자.

 

아가리 한번이라도 잘못 놀리면 줘 팰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한 5년만에 봤다. 나한테 생전 연락한 적 없었다.

 

나 붙잡고 미안하다고, 자긴 사람새끼도 아니라고 막 우는데...

 

눈물이 안 보이는거야.

 

내가 찐따같이 생겨서 이래저래 등쳐먹으려는 놈년들이 참 많았는데,

 

관상과는 다르게 눈치는 드럽게 빨랐다. 주변사람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새끼 연기하는 구나. 단박에 알았다. 하기야 사람이 50먹고 바뀌겠냐? 콩가루 집안 썰풀자면 이것도 역대급인데.

 

쨌든 그렇다고 좆까지말고 장례식 내일이니까 꺼지세요. 하고 내칠수는 없었다.

 

적당히, 그런 말 마세요. 용서 할게 어딨음까, 하고 등 두들겼다. 속으로는 어이없어서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지만.

 

코로나때문에 오늘 조문객 못받는다, 내일 아침일찍 하기로 했다하고 밤늦게 돌아왔다.

 

덧붙이자면 그딴거 상관없이 장례식 하는게 맞긴 하다. 까다로운 어른 있으면 안통할 이야기다.

 

합리적으로 한답시고 내일로 미루기는 했는데, 시체...보관소라 해야되나. 그런 곳에 아버지 두고 돌아온건 기분이 영 별로였다.

 

 

 

 

돌아온 집에는 이제 진짜 아버지가 없었다.

 

가부장적인 사고가 시대착오적인거니 뭐니 해도, 집에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은 사람을 참 나약하게 만든다.

 

지금에 와서야 편부모 가정의 진짜 고충은 돈따위가 아니었구나 싶기도 하다.

 

솔직히 돈버는 거 빼고 아빠 노릇이라고는 참 안했던 양반이었다.

 

내색한 적은 없지만 참 미웠다. 지금도 똑같이 밉다.

 

가끔 그런 거 보지. 돈잘버는 부모님(배우자) vs 못벌어도 따뜻한 부모님(배우자), 이런거.

 

글쎄. 한 쪽 고른다고 다른 쪽이 안 부러울까? 나는 따뜻한 아빠를 둔 사람들이 부러웠다.

 

더없이 무뚝뚝하고, 가끔 하는 말은 공부 열심히 해라, 건강 챙겨라 같은 말뿐이었다.

 

술 그렇게 좋아하고 많이 마시던 양반인데, 나한테 술 한번 마시자 한 적이 없었다.

 

 

시트콤도 아니고, 따뜻하고 좋은 조언해주고 돈까지 잘 버는 완벽한 아버지가 어디 있나, 나도 안다.

 

근데 소주 한잔 따라주면서 힘든 건 없냐? 하고 묻는 거, 그 정도는 바래도 되지 않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보낸 카톡이 잊혀지지 않고 가슴에 박혀있다. 아니, 새겨져있다.

 

죽기전에 한번이라도 네가 열심히 사는 거 보고싶다. 정말 이렇게 써 있었다.

 

최고는 아니더라고 서울 시내 괜찮은 학교 다니다가, 때려치고 꿈 쫓겠다고 하는거 지지받은 적 없었다.

 

수없이 얘기했고 호소했지만 못들은 척 하셨다. 가끔 무덤덤하게 "나중에 졸업하면, 회사 들가면..."하는 말을 하고는 했다.

 

모순적이게도 내가 하고싶은 일 쫓겠다고 결심한 건 아버지 영향이 컸다.

 

취업 준비생에게는 꿈같은 회사지만, 아침 6시에 일어나 오후 6시에 퇴근하고 술마시다가 날짜가 바뀌어야 비틀거리며 집에 오는 그 모습이 

 

회사 복지가 최고든, 돈을 무려 얼마를 주든, 안정적이든... 진심으로 존경했지만, 그렇게 되기는 싫었기에.

 

한번이라도 내가 열심히 사는 걸 보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유언같은 그 카톡은... 내 남은 인생 가장 많이 씹는 안주가 될테지.

 

 

 

 

상주로 힘들테니까 자두라는 어른들 말에 나는 잠이 오겠어요, 하고 살짝 웃어보였다.

 

그리고 눕자마자 순식간에 잠들었다.

 

잠깐 자고 해뜨기도 전에 일어나 이것저것 준비했다.

 

장례식이 시작되면 보통 3일은 못 돌아온다.

 

서류같은 건 필요한가 싶으면 무조건 챙기는 게 좋다. 아무리 챙겨도 결국 부족할거다.

 

중요한 건 돈, 카드. 이체 한도까지 고려해서. 스포하자면 넉넉잡아 2000만원은 되어야 좋을거다. 

 

 

 

식장에서 빌린 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는 불편함의 연속이다.

 

군생활동안 나다싶의 정석으로 자부하던 나지만 그곳에선 얼만 탔다.

 

그저 영정사진 앞에 앉아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이모들은 조문객 줄 식사준비로 바쁘고, 남자 어른들은 각자 역할을 나누어 따로 또 바빴다.

 

그와중에 멍청히 앉아있자니 눈치가 보여 나가도 할 수 있는 것도, 시켜주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앉아서 영정사진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활짝 웃는 아버지 사진. 살면서 그렇게 웃는 걸 영정으로 처음 봤다. 신기해서 계속 봤다.

 

저렇게 웃은 적이 없었는데. 가능한 거였구나. 왜 안 웃으셨을까? 나도 한몫 했으려나? 그런 생각할 시간은 차고 넘쳤다.

 

앉아있으면 친지어른들이 와서 얘기를 꺼내고는 했다. 난 어차피 그곳에 있기에 묵묵히 들었다.

 

염따의 하이파이브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가 참 재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곡인데.

 

엠생으로 살았던 염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떤 분이 다짜고짜 호통을 치셨단다.

 

너임마! 너희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 줄 알아! 똑바로 살아!하고.

 

아버지와 사이가 안좋았던 염따는 그제서야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장례식장의 나는 그 노래가 떠올랐다.

 

한분씩 아버지가 자신에게 베풀었던 은혜를 얘기해주고 갔다.

 

참 무뚝뚝하고 말없던 아버지에게 동생들은 괴롭히기도 하고, 부탁도 많이 했던 듯 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던 당숙은 술자리에서 쌍욕도 무지하게 먹었다고 했다.

 

집에서는 나한테는 물론 엄마한테도 손찌검한번 한 적이 없었다. 화내는 것도 못봤다. 생소했다.

 

답례로 아버지와의 재밌는 일화같은 걸 얘기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쥐어짜도 나오지가 않았다.

 

어릴때 내 친구가 학교에서 "너 어제 피자집에 있더라? 나너 봤음." 이러는데 알고보니 그건 내가 아니었다.

 

나랑 똑같이 생긴 아버지였다. 그게 그나마 재미있는 일화였다.

 

그거라도 해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생긴 것만 기가막힐 정도로 닮았지 그 외에서는 너무나도 달랐기에.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그럴수록 허탈함만 커져갔다.

 

뭘 좋아했고, 젊을 때 뭘 했고, 뭘 하고 싶어했고, 어쨌고... 죄다 처음듣는 얘기였다.

 

내가 물어볼걸. 말해주길 기다리지 말고. 하는 죄책감이 계속 피어올라 원망으로 애써 덮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버틸 수 없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식장에 도착해 여기저기 문자를 돌렸다.

 

특이한 건 코로나때문에 오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이런 문구도 있었다.

 

엄마는 안 오는 조문객들을 위해 계좌번호를 넣자는 걸 반대했다. 하지만 내가 우겨서 결국 넣었다.

 

아버지 장례식 팔아 돈 조금 벌자는 게 아니었다. 진짜 오고 싶지만 못 오는 분들의 죄책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가족 외에 조문객을 부르지 않았다. 충격받을까봐 외할머니한테도 연락을 안했다.

 

나도 부르지 않았다. 애초에 부를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그나마 친한 단톡방 하나는 고민하다가 관두었다.

 

가장 친한, 친했던 친구가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두달전쯤, 자취할 때.

 

군대 휴가나오는 친구와 제일 친한 친구, 나 셋이서 약속을 잡았다.

 

근데 그 날 점심때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그 때 뒤늦게서야 아버지 병세를 세세히 알았다.

 

거동이 힘든 건 알고있었지만,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병원도 돌려말하지만 사실상 거부하고,

 

하루에도 수십번 기저귀 갈고 하는 게 지쳐 최후의 최후에 나한테 도움을 청한 거였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하고 사과했다. 간단한 안주에 소주 두병을 빠르게 들이켰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 두 놈이 내 집을 습격했다.

 

낄낄대면서 들어와 화장실을 쓰고 들쑤시다가 나갔다.

 

정말로 나는 꿈을 꾼 줄 알았다. 아주아주 기분 더러운 꿈.

 

아침에 일어나 변기 커버에 오줌이 묻은 걸 보고서야 꿈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예전부터 나만의 공간에 대한 집착이 병적으로 컸던 나였다.

 

평생 갈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친구가 며칠 후에 다시 찾아오자 나는 이제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언제나 힘들때 술 한잔 마셔달라면 주저없이 나와주던 친구놈을 내손으로 쳐냈다. 내 좆같은 성격때문에. 

 

그 친구가 있는 단톡방에 와달라고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조문객은 깔끔했다. 아버지쪽의 사람들 뿐이니까.

 

점심때가 지나서야 슬슬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앉아서 멍하니 있다가 사람 오면 일어나고. 맞절하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 기분보다 약간 더 우울하게 말했다.

 

친절한 사람들은 아버지와 어떤 관계인지 직접 말해주었다.

 

아버지와 같은 회사 다니는 이모부가 옆에서 설명을 덧붙여주기도 하고,

 

고향 친구는 아직 거기 사는 당숙이 말해주고 알았다.

 

화환도 하나씩 왔다. 어디서 왔는지 잘 찍어두라고 했다. 나중에 갚아야 한다고.

 

나중에 조의금 정산을 하는데 참 재밌었다.

 

아버지 젊을때 오래 모시던 상관 새끼. 지금은 회사 사장이다.

 

그 새끼 장인장모 환갑잔치도 쫓아갈정도로 극진히 모셨다.

 

그쪽 축의금 조의금 뭐시기 다 합치면 천만원은 된다고 했다.

 

조의금 10만원. 장례식 오지도 않았다.

 

아버지 젊을 때 새벽에 회사 급하게 갈 일 생기면 전화해서 깨워 차 얻어타던 새끼.

 

조의금 5만원. 3년간 연락 한번 없었다.

 

우리가 남이가!하면서 시골로 불러서 술사라 하던 고향친구들. 5만원.

 

결혼식에 혼수 가전 보내고 돌잔치때도 갔던 사촌동생. 조의금 0원.

 

엄마가 그랬다. 아버지 병 아니고 엄마가 병으로 죽었으면 다들 0하나씩 더 붙였을 거라고.

 

아버지 죽었으니 잘보일 필요 없지 싶어서 이지경인 거라고.

 

이제 세상 알만큼 안다고 자신했던 나는 그저 욕지기만 뱉어댔다.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왔다.

 

콩가루 집안에서도 궤를 달리하는 엄청난 분이시기에 오면 무슨 사단이 날 줄 알았다.

 

오자마자 쓰러져 우시는 모습에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다.

 

불효자 자식아. 어떻게 애미를 두고 먼저가. 하는 말에 아무리 할머니를 싫어했어도 그전에 한 명의 어머니 였음을 알았다.

 

한참 오열하다가 엄마를 만나러 들어갔을 때 눈물자국 하나 없었다는 후일담은 덤. 연기천재 가족이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할머니 할아버지는 병세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고 했다.

 

자식 장례는 오는 게 아니라는 관례가 있다고 얼마 안 있다가 다시 내려가셨다.

 

 

 

저녁때쯤에 사건이 있었다.

 

원래 장례는 돌아가신 날을 포함해 3일을 치루는 게 원칙이지만 요즘에는 그보다 짧게 많이 한다.

 

그리고 요즘은 화장을 보통 하기에 화장을 기준으로 하면, 오전에 장례식장에서 화장터로 옮겨 화장을 하고,

 

거기서 다시 납골당으로 간다.

 

문제는, 화장터와 납골당 모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우는 님비, 즉 Not in my backyard 라는 거다. 집값떨어진다고.

 

납골당은 묘에 비해 차지하는 공간이 작지만 반영구적으로 사용을 하기에,

 

서울시내는 당연히 자리가 없고 근교에서도 찾기 매우 힘들다.

 

화장터는 덜할 줄 알았더니 또 다른 문제다.

 

아무리 준비해도 화장까지 미리 예약잡는 건 아니기에 다들 장례가 잡히면 서둘러 하는데,

 

며칠동안의 화장터 예약이 다 차버린 게 문제였다.

 

엄마는 장례식을 가능하면 짧게해서 일요일 하루만 하고 월요일에는 화장을 하고 싶어 했는데,

 

월요일 화장 일정이 전국적으로 꽉 차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화요일 일정을 간신히 잡았는데.

 

그 일정을 계속 확인하던 외삼촌이 저녁 6시에 취소된 자리가 풀린다고 얘기를 들었다.

 

마치 수강신청처럼 수백명이 그 자리를 노리는데, 취소된 자리가 꼭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무실에서 삼촌과 나는 진땀을 빼며 기도했다.

 

6시가 몇분 지나고, 잠시 홈페이지가 마비되면서 반쯤 포기했을 때 급작스럽게 우리는 수원에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얘기를 왜하냐고? 만약 화장 일정을 설렁설렁 잡으려다간 부모님 며칠동안 성불못할수도 있다는거다.

 

숨막히는 창고같은 곳에서 시간 보내야 된다고. 남은 가족들 마음이 어떻겠나?

 

쨌든 누구 돌아가시면 슬퍼하지만 말고 재빠르게 화장터 잡는 게 예의라는 것이다.

 

하루치 장례식장 대절비용 몇백이 굳는 것은 덤이고.

 

 

 

 

장례식 도중에 화장과 납골을 도와주시는 분이 온다. 뭐라고 호칭이 있는데 잘 기억은 안난다.

 

와서 생각해둔 납골당 있는지, 없다면 추천 장소, 설명 해주신다.

 

화장해서 시체를 태우면 남는 유골을 모실 유골함도 고르도록 도와준다.

 

유골함도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디자인은 물론이거니와 그냥 평범한 도자기같은 데에 담는 게 아니다.

 

비싼 건 밀폐포장 같은 걸 해서 손상을 막는다고.

 

음? 그말은 손상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렇다. 싼 유골함을 고르면 나중에 깨지거나, 습기가 차서 물이 고인다거나 해서

 

유골함을 바꿔야 하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이부분은 그때가면 설명을 들을테니 생략.

 

납골당이 큰 문제다. 앞서 말했듯이 기피시설이면서 수요는 많기 때문에,

 

지방이라면 덜하지만 수도권이라면 선택에 골머리를 썩게 될 것이다.

 

미리 조사를 해서 알아두었지만 전문가에게 의견을 듣는 것은 또 다르다.

 

교통편은 중요하다. 자차라면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너무 멀면 자주 가기 힘들기에.

 

실내, 실외도 나뉘어져 있다.

 

돌아가신 분 영혼이 그 좁은 함에 계속 있는가 하면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남은 가족들 입장에선 기왕이면 눈높이 정도의 위치에 코너 말고 가운데쪽, 햇볕드는 곳으로 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조건을 맞출수록 자리는 이미 다 차 있고, 있어도 턱이 빠질 정도로 비싸다.

 

또 실외라고 해도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은 습기가 차 '대참사'의 위험도 있다고 한다. 

 

종합하자면 좋은 곳에 모시려면 끝없이 비싸지고, 돈을 아끼면 그 어마어마한 죄책감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가 결국 고른 곳은 분당쪽이었는데, 최고는 아니고 적당히 괜찮은 조건과 자리에 부부용 큰 칸을 골랐다.

 

제일 좋은 건 어르신들이 자식 부담되지 않게 미리 자리를 사놓는 건데 말 안해도 쉽지 않은걸 알겠지.

 

참고로 덧붙이면 자리 미리 사서 비워두어도 되고, 살때와 같은 가격에 판매-양도도 가능하다. 합법이다.

 

얼마냐고? 내가 많이 조사해 둔 건 아니지만 500에서 1000단위로 보면 된다. 편차가 크지만 대략 느낌만 전한다.

 

참고로 우리 시골에 선산이 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생전에 아버지 먼저 모시기도 좀 그렇기도 하고,

 

제대로 관리하기가 엄청 힘들다. 군대 갔다온 개붕이들은 잡초의 성장속도와 예초병의 고충만 봐도 알 거야.

 

화장이 이렇게 힘들다라는 걸 장황하게 썼지만, 요즘 추세는 대체로 화장인 듯.

 

수목장이라 해서 나무 심고 거기에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나무 죽으면 어쩔건데? 뽑고 다시 심어? 그건 그거대로 고충이 있다. 납골당보다 비싸기도 하고.

 

 

 

 

덕분에 하루 일찍 장례식이 끝나게 되었다.

 

몰랐는데 유족, 즉 엄마, 나, 동생은 물론이고

 

친지들까지 보통 장례식장에서 자더라고.

 

이부자리 없이 그냥 패딩베고들 잤다.

 

원래 이렇게 대충인건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장례식 중간에 여러 할 일이 생긴다.

 

시키는대로, 알려주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된다.

 

음식이 부족하거나 용품같은 건 여러번 결제할 일이 생긴다.

 

수의나 차량 대절 등 수십은 기본이라 앞서 말했듯이 돈이 넉넉해야 한다.

 

 

또 시신을 마지막으로 보고 인사하는 게 있다.

 

전문가 분들이 시신을 깨끗이 닦고, 면도도 하고 수의를 입힌다.

 

화장도 시켜준다. 메이크업 맞다. 시신의 새하얀 얼굴에 기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얼굴에 생기를 더한다고 한다.

 

팁으로는 관에 넣어 함께 보낼 고인의 물건같은거 미리 챙기지 않으면 그때가면 늦는다.

 

알았으면 뭐라도 챙겨갔을 텐데, 멍청하게도 몸만 보냈다.

 

 

가족들끼리 모여서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을 준다.

 

누군가 혼절하거나 하면 받을 준비를 해야한다.

 

직접 마지막으로 만지고 쓰다듬으면서 줄서서 인사를 한다.

 

미리 주의를 주는데, 엎드려서 오열하거나 하면 시신이 눌리면서 그... 뭔가 터지듯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쓰다듬고 손을 만지고 하면서 조심해서 해야한다.

 

우리 가족과 다르게 친척들은 오랜만에 아버지를 돌아가신 채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어했다.

 

키도 나보다 컸고, 수트핏 잘맞는 건강한 몸을 항상 유지했기에 삐쩍 마른 수척한 모습을 보고는 다들 많이 울었다.

 

엄마 남매가 6남매. 아버지쪽은 당숙 아저씨만 거진 열은 되는데 그 중 살면서 아버지한테 도움 안받은 사람이 없었다.

 

각자 그런 기억이 겹쳐 슬퍼해 주었다.

 

안내하시는 분이 마지막 보내시는 길, 모습을 잘 기억하고 되도록이면 울지 말라고, 고인이 이승을 떠나며 슬퍼한다고 말해준다.

 

소리지르면서 우는 것보다도, 참으려고 끅끅대는 울음은 훨씬 구슬프다.

 

결국 울었지만,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진짜, 정말로 마지막으로 보는 거니까 그 얼굴을 만지고 담아두려 애썼다.

 

평온한 표정. 평온할까?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아버지는 천국에 갔을 것임에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진심이다. 세상 아무도 못가도 아버지는 갔을 거라고 믿는다.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그를 25년간 본 한 사람으로써 그렇게 믿는다.

 

 

 

 

아침일찍 화장터로 향한다. 남자들이 관 귀퉁이에 달린 끈을 잡고 버스까지 옮기는 걸 또 하는데, 그때부터라도 의연하게 행동하려 애썼다.

 

화장터는 수원이었다. 뭘 수원까지 가냐고?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담당하는 사람이 그랬다. 기적이라고. 부산까지 가는 사람도 많다고.

 

화장비용도 또 200만원이 든다. 상주는 함을 잘 들고 댕겨야 한다.

 

혹여라도 깨질까봐 꼭 품에 안고 다녔다.

 

한참을 대기한 후에 작은 방으로 모인다. 벽에 큰 모니터가 있는데, 그곳에서 화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이 불 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똑바로 쳐다보기 정말 힘들었다.

 

많은 생각이 스친다. 정말 죽었나? 끝인가? 혹시 자는데 태워버리는 건 아닐까? 다들 죽은거 확인했나? 막아야하나?

 

그리고 결국 불속으로 사라지고 나면, 화면에는 진행중이라는 문구만 나온다.

 

꽤 오래 걸린다. 우린 좁은 방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세상에, 형부 수척해진 거보고 너무...

 

아직도 언니 집에 가면 소파에 앉아서 손흔들어줄 것 같은데...

 

울기도 하고, 시덥잖은 농담도 하면서 긴 시간을 기다린다.

 

마침내 끝나면 불속에서 철판 하나가 나오고 그곳에는 하얀 재와 뼈 몇조각이 쌓여있다.

 

화면속에서 사람 두명이 그 가루들을 모아 함에 담는다.

 

그 장면은 잊히지가 않는다. 이틀전에 살아있던 사람이 가루가 되서 그 항아리에 담기다니. 참 개똥같은 세상이네.

 

잠시후에 상주인 나에게 그 함이 온다. 그리고 굉장히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해준다.

 

유골함을 든 상주가 탄 버스가 아닌 승용차가 일행에서 앞서서 납골당으로 향해야 한다고 한다.

 

뒷자석에 앉아 뜨끈뜨끈한 함을 소중히 안은 채로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싱숭생숭하다, 그게 제일 적절한 표현이려나.

 

울어야 예의인가 생각도 들고. 너무 안 우는 것과 너무 많이 우는 것중에 나는 차라리 전자를 골랐다.

 

어릴때 자주 보다가 커서는 못 본 세 얼간이라는 영화에서 나온 유골함 개그씬도 기억났다. 다시봐도 웃기려나.

 

 

 

납골당에 가서 간단한 제를 지냈다.

 

함을 두고 돌아가면서 마지막 인사를 또 건넸다.

 

그쯤되니 다들 지치기도 했고 할 말도 떨어져 조용히 지나간다.

 

좋은 자리였다. 제일 좋은 건 아니지만, 산 중턱에 있어 생전에 좋아하던 산들이 보였다.

 

산책가라고 구박하면 카페가서 몇시간을 멍때리고 그랬지,라고 엄마가 울먹이며 말했다. 울 남편 산보면서 멍 실컷 때리겠네~

 

멀지 않은 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친척들은 삶으로 돌아갔다.

 

각자 자기네 인생에서 크고작은 변곡점이 되었을 테지.

 

 

 

다들 그러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고.

 

그 말에는 '어떻게'가 빠져있다. 마치 채워야하는 빈칸처럼, 제목학원처럼 각자 제멋대로 채워나갈 것이다.

 

답은 없을 거다. 채우기만 하면 정답처리.

 

근데 아직 나만은 채울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다들 마스크 잘 쓰고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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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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