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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 낳은 야쿠자 양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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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의 악명과 해체

 

그후 계속되는 이들의 잔인한 행동은 야나가와 조직의 악명을 날로 높였고 야마구치

 

(山口) 조직에 포함된후 세력은 더욱 강성해져 당대 全일본 암흑가의 가장 강력한

 

악명높은 집단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 있던 중, (자신의 딸과 동갑인)15세 동포 여학생의 편지를 받고

 

조직을 해체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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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본을 떨게한 한국계 야쿠자 양원석(梁元錫.柳川次郎야나가와 지로.1923~1991)

                                                     

 

 

 

양원석은 일본 재일교포로서 일본 야쿠자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야쿠자는 지금은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초기에는 대부분이 한국계교포 였다 한다.

 

굶주리며 차별이 심한 일본사회에서 악착같이 살려면 폭력에 의지해야만 했으리라

 

재일동포로서 야마구치구미의 명성을 극에 달하게한 가장 전설적인 실전 싸움꾼은

 

양원석 ,야나가와 지로(柳川次郞)이다.

 

잔인함과 폭력성에서 이 사람을 따를 사람은 야쿠자 사상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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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의(최배달)선생이 황소를 맨손으로 제압하는 사진.

 

 

 

한창 시절 최영의가 야나가와 지로(양원석)와 밤길에서 시비가 붙었다.

 

양원석의 살기(殺氣)에 최영의가 먼저 통성명을 제의하며 사귀기를 청하는 바람에 양원석이 한국이름을 밝혔고,

 

사건이후 두사람이 친구가 되는데 양원석이 후일담에 최영의가 계속 덤볐다면 그의 손목이 남아있지 않았을거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최영의는 어두운밤에 좁은 길에서 무도인의 싸움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싸움을

 

피했다는 일화가 있다.

 

(후일 양원석은 최영의를 많이 도와주었다 한다.)

 

양원석은 안주머니에 일본식 단도를 항상 지니고 다녔다 한다.

 

 

 

 

*양원석(일본명 야나가와 지로(柳川次郞) 은 누구인가*

 

재일동포로서 일본 최대의 야쿠자조직 야마구치구미의 명성을 극에 달하게한 사람으로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 잔인함과 폭력성에서 이 사람을 따를 사람은 야쿠자 사상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양원석이야 말로 현재의  '야마구치(山口)파'를 고베의 군소 깡패 집단에서 10만명 이상의 세계

 

최대의 폭력조직으로 성장시킨 주인공이다.

 

양원석은 이 야마구치파의 가장 전투적인 조직 야나가와(柳川)구미의 초대 오야붕으로

 

당시 일본 전국의 군소 야쿠자 조직들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다른 조직을 박살내버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태양이 비치지 않는 날은 있을지라도 야나가와의 피의 소나기가 내리지 않는날은 없다'

 

라는 말들이 생길 정도였고 특히 자신의 조직원 7명과 함께 100여명의 야쿠자

 

(오사카의 오니아타마 조직)들을 상대로 벌인 사상 최악의 혈투(8:100의 신화로 불린다)

 

는 그를 전일본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린다.

 

 

 

*소년기

 

그는 해방후 다른 가족들은 고국으로 귀국했으나 귀국선을 타지못해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홀로 싸움판을 전전하며 잔뼈가 굵어진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강동화등 교포 소년들 7명을 규합했다.

 

그를 따르는 굶주린 소년들은 무리를 지어 야쿠자들의 청부폭력 관련 일들을 맡아

 

싸움을 거듭했다.

 

 

 

*조직원을 구하러 소굴에

 

양원석과 동생들의 활동영역이 점차 커지자 기존 조직과의 세력 다툼으로 발생하는

 

충돌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동생중 한명이 오니아타마(鬼頭)조직의 야쿠자들에게

 

잡혀 린치를 당하고 피투성이가 된 채 본부 사무실로 끌려갔다는 급보가 날아왔다.

 

그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호랑이 굴로 뛰어들 수 밖에 없다고 의견을 모은 그들은

 

죽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구조대 8명이 칼을들고 달려온다는 정보를 접한 상대 야쿠자들도 1백명의 조직원들을

 

동원해 전투태세를 갖추고 미리 사무실 입구 도로에 잠복하고 있었다.

 

 

 

*8대 100의 혈투

 

8명의 떠돌이 재일동포 청년들과 야쿠자 100명이 벌이는 피의 혈투.. 긴 일본도를

 

치켜든 양원석과 그와 함께 죽기로 맹세한 강동화(姜東華.다니가와고타로.2대두목.별명死神)가

 

나란히 앞장을 섰다. 상대는 당시 오사카 일대를 주름잡으며 유흥가와 사창가를

 

무대로 온갖 악행을 거듭해 온 야쿠자 오니아타마 조직.

 

1958년 2월 10일 오전 5시. 밤새 내린 함박눈으로 세상은 하얗게 변했고 거리에 쌓인

 

눈이 어두운 새벽거리를 희뿌옇게 밝혀주고 있었다.

 

야나가와 지로(柳川次郞)라는 일본명으로 불린 양원석이 동생을 구하기 위해

 

8명이 칼을들고 달려온다는 정보를 접한 야쿠자들이 1백명의 조직원들을 동원해

 

전투태세를 갖추고 미리 사무실 입구 도로에 잠복하고 있었지만, 정작 기습당한 쪽은

 

그들이었고, 싸움이 붙자 양원석이 휘두르는 긴 칼에 튀어나오던 야쿠자 한명의 팔목이

 

날아가며 혈전은 시작되었다. 목숨을 내어놓고 덤벼드는 양원석의 조직에게 참변을 당한

 

야쿠자들은 오히려 그들에게 본부 사무실 진입을 허용하고 뿔뿔이 달아나 버린다.

 

승리를 거둔 양원석측의 부상자도 있었으나 사망 1명, 중경상자 15명의 피해가 발생한

 

오니아타마는 조직의 기반이 흔들릴 정도였고 얼마후 사분오열, 조직이 와해 되는

 

운명을 맞게 됐다.

 

이때의 처절한 사투는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계속됐으며 한명이

 

백명의 야쿠자라도 겁내지 않고 상대한 사건은 야쿠자 세계에 널리 알려 졌다.

 

1958년 11월, 이사건으로 오사카교도소에 수감된 양원석은 9개월만에 보석으로 나왔다.

 

(8명대 100명 싸움 이라는 중과부적의 정당방위등 참작)

 

그는 곧바로 오사카의 기타구(北區)에 사무실을 마련, 야나가와구미(柳川組)라는

 

간판을 내걸고 야쿠자 조직으로써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했으며 당시에는

 

일본경찰도 조직폭력배 단속에 대한 완전한 체제가 갖춰지지 않은 시기였다.

 

오야붕이 된 양원석은 그때 35세의 나이였다.

 

그후 야나가와구미는 야마구치두목의 설득과 회유로 야마구치구미의

 

전위조직(前衛組織)으로 들어간다.

 

 

 

*메이유카이 간부전원이 손가락을 자르고 빌다*

 

그외에도 1960년 8월 야쿠자 조직간에 맞붙은 항쟁사상 가장 유명한 '메유카이(明友會)

 

사건’을 지휘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재일동포들로 구성된 폭력조직 메유카이는

 

당시 오사카를 주름잡는 강력한 집단이었는데,

 

이들중 겁없는 한명이 야마구치 조직의

 

간부를 구타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고, 양원석조직의 철저한 공격을 받아

 

메유카이는 불과 2주일만에 궤멸상태에 빠지고만다. 이들은 조직의 전멸을 면하기 위해

 

간부 전원이 손가락을 자르고 사죄문을 보내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사건 이후 야나가와의 전투력은 전일본 당대 최고로 인정받게 된다.

 

야나가와의 두목인 양원석이 "메유카이는 우리와 같은 동포들이 아닌가"라며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는 최후의 일격만은 금지시켰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죽음의 군단

 

이후 한명이 백명을 상대한다는 일인백살(一人百殺)정신을 강조하며 야나가와는

 

'죽음의 군단'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렸다. 양원석의 조직은 대부분 재일동포로 구성되었는데

 

파이터로서 생전에 양원석은 일본도 하나면 자위대 1개중대도 그를 막을 수 없다는 평을 듣는다.

 

신화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10시간동안의 사투끝에 8:100의 숫자적인 불리함을

 

극복하고, 상대파를 싹 쓸어버린 신화는 바로 고베의 군소조직이었던 '야마구치구미'가

 

도쿄를 점령함과 동시에 전일본 최고의 야쿠자집단이 되는 밑거름이 된다.

 

이 사건이후 '야나가와 지로'라는 이름은 많은 무도가,야쿠자들에게는 공포 그자체였고

 

더불어 그에 대한 존경은 거의 절대적인 신앙 그 자체였다.

 

다른 조직들은 아무리 거대한 조직이라도 야나가와구미가 나타났다 하면 공포에 떨며

 

감히 맞서려 하지 못했다 한다.

 

 

 

*최대의 악명과 해체

 

그후 계속되는 이들의 잔인한 행동은 야나가와 조직의 악명을 날로 높였고 야마구치

 

(山口) 조직에 포함된후 세력은 더욱 강성해져 당대 全일본 암흑가의 가장 강력한

 

악명높은 집단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 있던 중, (자신의 딸과 동갑인)15세 동포 여학생의 편지를 받고

 

조직을 해체하는데..편지 내용은

 

"야나가와 씨, 우리 동포들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아주세요"라는 글을 읽고나서

 

무언가 가슴속에 결심한 양원석은 드디어 야나가와구미 해체선언을 하게 되고

 

2대 회장이된 강동화(일본명 다니가와 고타로)가 처음엔 반발했지만

 

‘오야붕이 만든 조직이니 맘대로해..’ 하며 울면서 승복했다한다.

 

강동화 역시 무시무시한 '사신 死神'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잔인한 야쿠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폭력단을 미화하거나 영웅시하려는 것도 더욱 아니다.

 

외국 타향에서 배를 주리며 차별속에서 처절하게 살아가야했던 재일동포들의

 

절박함과 동포 소녀의 편지 한장에

 

감화되어 공포의 거대한 조직도 해체하는 진정한 참회를 엿보자 함이다.

 

 

 

 

3.日야쿠자 20%가 재일동포?...왜 그들은 폭력배가 됐나? 재일동포 그들은 누구인가]

 

-의사와 야쿠자

 

(출처 제주의소리2011년,신재경교수님 칼럼)

 

 

 

존경하는 분이 계시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자랐고, 대학은 1960년대 한국 서울에서 공부하신 분이다.

 

사모님은 서울에서 대학때 연애결혼을 하셔서 한국에서 오신 분이다.

 

이분 내외는 세상을 정확히 보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이분과 사모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존경한다.

 

이분의 아들에게 어릴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한국사람이 일본에서 밥을 먹고 살려면, 야쿠자를 하던지 의사를 해라'

 

야쿠자? 한국말로 하면 조폭(조직 폭별배, 깡패)이다. 사회에서 아주 천하게 보는 양아치들이다.

 

누구도 자기 아들이 깡패 즉 야쿠자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야쿠자도 자기 아들 야쿠자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분은 자기 아들에게 서슴없이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며 자란 아들은 의사가 되어서, 지금 모대학 병원에서 아주 잘 나가는 의사이다

 

일본에서 밥을 먹으려면 야쿠자 아니면 의사. 이것이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현실이다.

 

그러면 일본 야쿠자들은 어떤 인물들 일까?

 

일본 야쿠자들은 한국 조폭들보다 더 조직적이다.

 

한국의 군대보다 더 충성스러운 조직으로서, 조직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리며,

 

또 교도소 가는 것도 아주 쉽게 생각하는, 싸움꾼들의 모여 있는 곳이다,

 

회사 간판도 걸고, 돈 되는 일이라면 오만 못된짓 다하는 그들이다. 경찰과 교도소와는 항상 옆에 있다.

 

또 이들 구성원이 되면, '오야붕'은 '꼬봉'들을 먹여 살려야 되고,

 

꼬봉이 교도소에 가게되면 나올때까지 모든 책임을 다 해준다.

 

일본에서는 자기 친척중에 야쿠자가 있다면, 절대로 야쿠자가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집안은 천하게 하시(下視)보게 되고, 만약 싸움 할 일이라도 생기면 야쿠자를 데려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안 친척 중에 야쿠자가 있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만약 있어도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 야쿠자 세계에는 우리 한국사람(재일동포) 들이 많다.

 

구성원의 20% 정도는 동포들이 아닌가 하는 말이 있으며, 또 오야붕(우두머리)중의 약 10% 정도는 동포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많은 것은 이유가 있다. 우리 동포들은 성장과정에서 학교나 사회에서 차별을 받으며 크게 된다.

 

사춘기때 '조,센진' 이라며 이유없이 얻어맞게 되고 왕따를 당하게 되면, 누구도 싸움을 하게 된다.

 

야쿠자를 하는 동포들에게서 야쿠자가 된 이유를 들어보면,

 

다들 이런 이유때문에 싸움을 해 오다보니 그런 길로 가게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야쿠자는 국적과 관계가 없다.

 

싸움만 잘 하면 되는 것이며, 싸움판에서 넌 조,센진이니까 오지마, 라는 것이 없다.

 

야쿠자. 이거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싸움 잘하는 것. 아무나 할 수 없다.

 

주먹도 세어야 하지만, 배짱도 좋아야 한다. 공부 잘하는 것보다 싸움 잘하는 것이 더 어렵다.

 

의사 또한 국적과 관계없다. 어떤 병을 잘 보는 의사가 한국사람이라고 하자.

 

몸이 아프면 일본의사라 했던들 한국의사라 했던들 병을 잘 낳게 해주는 의사를 찾아간다.

 

또한 정중하게 머리 숙여 인사까지 잘 하게 된다. 차별있는 사회에서,

 

차별없이 존경까지 받으면서 할 수있는 직업은 의사밖에 없다.

 

의사는 아무나 될 수 없다. 의과대학을 들어가야 의사가 될수 있다.

 

의과대학을 입학 하려면 공부를 잘해야 된다.

 

일본에서 의과대학 입학하기란 한국에서 의과대학 입학하기보다 더 힘들고 더 실력이 있어야 된다.

 

그러나 우리 한국사람들은 자식 공부시키는데는 세계 최고의 민족이다. 의사가 되면, 죽을때까지 좋은 생활이 보장된다.

 

또 집안 친척중에 의사가 있으면, 우리 누구는 의사. 라며 어깨를 으쓱대면서 자랑까지 할수 있다. 가문의 영광인 것이다.

 

관서지방(關西지방, 오사카 교토 고베가 중심인 지방)에는 12개의 의과대학(국공립 8교, 사립 4교)이 있다.

 

각 대학마다 입학 정원이 약100명, 약1,200명의 학생이 매년 입학을 하게된다.

 

오사카에서 의대를 졸업한 어느 동포의사의 말을 빌리면,

 

관서지방의 어느 의대나 약10%정도는 우리 동포학생인란 말을 했다. 1,200명중 약120명이 우리 동포라는 숫자이다.

 

일본 전국에는 80개의 의과대학(국공립과 사립의대를 다 합쳐서)이 있다.

 

어느 의과대학이나 1개 학년 정원은 약100명이다.

 

의사 면허 취득율이 약 90%정도이고, 매년 약 8천명의 의사가 배출되고 있고,

 

그중에서 매년 약 200명에서 300명정도가 동포출신 의사가 배출 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러면 전체에서 의사중 약 3%가 우리 동포라는 추측 계산이 된다.

 

일본 인구 1억2천만명, 우리 동포숫자 약 60여만명, 일본 인구중 약 0.5%가 동포의 비율이 된다.

 

그러나 동포의사의 비율은 약 3% 정도라는 추측이다.

 

일본 의료계에서 우리 동포들의 공헌도를 알수 있다.

 

내가 잘 아는 분이 있다.

 

술 한잔하면 형님이라고도 부른다. 좋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인물도 좋다. 거기에 음악에 소질이 있어서 트럼펫도 아주 잘 분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동내에서 흔히 볼수있는 아주 조그만 쌀가게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좋은 대학 출신에, 좋은 인물에 왜 저런 구멍가게를 하고 있을까?

 

저 정도 실력이라면 큰 기업 중역은 해야 할 인물인데, 라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뼈아픈 차별이란 과거가 있었다.

 

이분이 대학을 졸업했을 때는 지금보다 더 깊은 차별이 있는 시대였다.

 

좋은 대학에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건만, 한국사람이라고 취직이 되지않는 것이다.

 

이 회사 저 회사의 입사시험을 봐 봤지만, 너는 한국사람이니까 오지마,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운영하는 쌀가게에서 부모님과 같이 일하다가, 지금은 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의대을 선택하지 않아 의사가 않된 경우의 삶이다.

 

동포들은 이런 삶을 수도 없이 봐왔기에 자식에게 '의대 의사' 노래를 부르게 되고,

 

또 자식들도 바로 옆에서 동내 형님들의 삶을 봐 왔기에 공부에 열을 올려 꼭 의대에 들어갈려고 한다.

 

해방후 지금까지 일본사회는 우리 동포들에게 어려가지 차별을 만들어서 어렵게 살게했다.

 

나는 이런 차별을 3가지로 구별해 본다. 법적 차별, 사회적 차별, 마음적 차별.

 

법적 차별이란, 법으로 한국사람이니까 외국인이니까 할수 없는 일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한국사람이니까 외국인이니까 공무원을 할 수 없다, 는 것도 법적 차별인 것이다.

 

사회적 차별이란, 사회가 한국사람이니까 이 일은 할수 없다, 라며 만들어 놓은 차별을 말한다.

 

한국사람이니까 우리회사에 취직 할 수없다, 한국사람이니까 집 빌려줄 수 없다, 라는 차별을 말한다.

 

마음적 차별이란, 마음속에서 나오는 차별을 말한다.

 

너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한국사람이니까 결혼시킬수 없어,

 

저 사람은 한국 사람이니까 앞으로 만나지 마, 조,센진이니까 발로 차버리는 것, 등등의 차별이다.

 

마음의 차별은 각 개인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차별이므로,

 

이런 차별을 없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할 것이다. 사실 우리 마음속에도 이런 차별이 있는지 모르겠다.

 

법적 사회적 차별은, 그 사회가 그 나라가 마음먹기로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도 있다. 또한 차별을 하는 사회도 손해이다.

 

능력있는 사람을 제외시켜서 사회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교육을 받고, 좋은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건만,

 

회사는 취직을 시키지 않았으며, 옆집 일본 사람은 교제를 하지 않을 려고 해 왔으며,

 

조,센진이라고 사람 취급 할려고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우리 동포가 많은 직업이 의사와 야쿠자,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국사람으로 살려면, 항상 차별과 동거동락을 해야 된다. 그래서 동포들은 차별, 또 「차별」이란 단어에도 아주 민감하다.

 

국적과 관계없이 할수 있는 직업은 야쿠자와 의사이다.

 

야쿠자는 존경은 받을수 없지만,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의사는 존경까지 받으면서 할수 있는 직업이다.

 

그러나 공부를 잘해야 될 수 있는 직업이다. 싸움 잘 하는 것과 공부 잘 할수 있는 것,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아마도 싸움 잘 할수 있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13개의 댓글

2021.01.29

살빠진 버거형처럼 생겼다

0
2021.01.29

오니아타마면... 귀두 아니냐?

0
2021.01.29
[삭제 되었습니다]
2021.01.29
@황해도특산

지금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 김미진이 쓴 소설 파칭코가 드라마제작되고 있단다 메가히트작이고

실제 일본 파칭코회사 회장도 한국사람이고 당시 차별로 인해 허락된게 파칭코산업 외에는 없었다고 말한다

범죄는 잘못됐지만

한국인이 일본에서 차별받는 문제를 알고 살기위해 뭐든 해야했던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역사를 안다면 같은 한국사람으로써 한마디로 낙인을 찍는다면 안타까운마음 밖엔 안든다

 

그리고 재일교포가 사는부락에선 야쿠자가 좋은 이미지라고함

0
2021.01.29
@지극히미묘

조선족도 동일하게 생각하면 ㅇㅈㅇㅈ

2
2021.01.29
@에쿠어스

제목 바꿨어잉

0
2021.01.30
@황해도특산

범죄자 미화를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너의 가치관에 문제는 없다고 본다.

 

다만 내 생각에는 관점이 좀 이상한거 같아. 마치 재일이 차별당하는 것이 자업자득이라는 시선이 느껴져서 말이야.

 

재일 출신 중 야쿠자가 많아서 재일 조선인의 차별받는다고? 그전에는 차별이 없던거 아니잖아. 더욱이 60년대에는 차별이 지금보다 훨씬,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을거고. 내 생각에는 애초에 일본 사회에 만연한 조선인 차별이 재일 한인들로 하여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저렇게 틀에서 벗어난 존재들을 만드는 것 같은데?

의사 아니면 야쿠자가 되라는 말은 그점을 잘 지적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졸업하고 회사원되는 사회에서 재일에게는 회사원이 되지말라는 거잖아. 입사할수도 없고, 어떻게 들어간다 한들, 개인이 아니라 출신과 배경 먼저 보는 좆같은 일본사회의 차별 속에서 제대로 성장할 수도, 사회생활을 할수도 없을테니까 애초에 능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직업을 하라는 뜻인데, 그게 의사 아니면 야쿠자라는 뜻이지. 그럼 애초에 의사나 야쿠자가 될 수 없는 재일들은? 뭐라도 해서 빌어먹고살거나 어줍잖게 안좋은 길로 빠지는 게 아닐까. 

 

날 때부터 2등 시민으로 분류되어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의 기분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결과만 보고  함부로 지적하는건 옳지 않다고 본다.

책임을 회피할 수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재일은 차별이 낳은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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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9

잘 읽히다가 맞춤법 하나 틀리니 주르룩 내리게 되네

1
2021.01.29

글 ㅈㄴ 못쓰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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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0

너무 미화된거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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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0

병을 잘 낳게 해주는 의사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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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

한국도 의사가 참 좋은게.. 대기업이라도 정치력없으면 단물만 빨리고 빨리.나와야되는 경우가 많지만

 

의사는 우리같은 아싸도 취직 잘 되고 평균적으로 돈 잘 벌고 개인 사업(개원)해도 아싸인게 크게 상관없거든.

 

반면 같은 전문직인 변호사는 아싸가 인싸에게 많이 밀리지..

 

출세욕 없는 아싸에게 최고의 직업이

의사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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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이민진작가의 '파친코'라는 책을 읽어보면 일본내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정도인지 가슴으로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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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4 [기타 지식]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국내 항공업계 (수정판) 2 K1A1 6 7 시간 전
5243 [기타 지식] 도카이촌 방사능 누출사고 실제 영상 21 ASI 2 4 일 전
5242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2부 20 Mtrap 6 4 일 전
5241 [기타 지식] 100년을 시간을 넘어서 유행한 칵테일, 사제락편 - 바텐더 개... 5 지나가는김개붕 1 7 일 전
5240 [기타 지식] 오이...좋아하세요? 오이 칵테일 아이리쉬 메이드편 - 바텐더... 3 지나가는김개붕 2 8 일 전
5239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1부 30 Mtrap 12 8 일 전
5238 [기타 지식] 칵테일의 근본, 올드 패션드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야기 15 지나가는김개붕 14 9 일 전
5237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2부 22 Mtrap 14 8 일 전
5236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1부 13 Mtrap 20 9 일 전
5235 [기타 지식] 서부 개척시대에 만들어진 칵테일, 카우보이 그리고 프레리 ... 3 지나가는김개붕 5 13 일 전
5234 [기타 지식] 모던 클래식의 현재를 제시한 칵테일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4 지나가는김개붕 2 14 일 전
5233 [기타 지식] 브라질에서 이 칵테일을 다른 술로 만들면 불법이다, 카이피... 5 지나가는김개붕 1 16 일 전
5232 [기타 지식] 럼, 라임, 설탕 그리고 다이키리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 2 지나가는김개붕 6 17 일 전
5231 [기타 지식] 1999년 도카이촌 방사능누출사고 대량 방사능 피폭 피해자들 ... 9 ASI 5 17 일 전
5230 [기타 지식] 진짜 레시피는 아무도 모르는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편 - 바텐... 3 지나가는김개붕 2 17 일 전
5229 [기타 지식] 통계로 보는 연애 상황에서 외모의 중요성 8 개드립에서가장긴... 11 20 일 전
5228 [기타 지식] 추울 수록 단맛이 유행한다, 위스콘신 스타일 올드 패션드편 ... 1 지나가는김개붕 8 21 일 전
5227 [기타 지식] '얼마나 걸릴까?'를 찾는데 걸린 시간은.. 1 동부전선이상무 5 21 일 전
5226 [기타 지식] '누구나 아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 9 동부전선이상무 20 26 일 전
5225 [기타 지식] 알코올 중독에 빠질 수 있는 칵테일, 브랜디 알렉산더편 - 바... 2 지나가는김개붕 5 28 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