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부동산은 언제부터 이렇게 비쌌을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집은 어떻게 보면 사람이 자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일 뿐인데, 그 조그마한 공간이 어째서 중산층의 몇십년치의 노동량과 맞먹는 가격을 지니는가? 이해가 안될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부동산은 거품인 것인가? 신석기 시대엔 집이 가지는 가치는 거의 없었을 것이고 (동굴에 사니까), 지금도 빈 공간에 텐트치고 노숙을 하면 되는데, 왜 좀더 편한 공간을 제공할 뿐인 주거비가 이리 비싼가? 매달 버는 월급의 적게는 20% 에서 많게는 30%를 월세로 내고나면 이런 생각이 한번 쯤은 들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렇게 주거비가 비쌌을까요? 한정된 대지를 갖고 있는 도시의 부동산은 원래 비싼것인가요?

그래서 산업혁명의 원조인 영국을 살펴보았습니다. 19세기의 영국의 월세나 주거비는 어땠을까요?

벤치, 1인당 1펜스

 

참고로 당시 남성노동자의 주급은 10실링이었다고 합니다. 1실링당 12펜스 였으니 일주일 봉급이 120펜스 였던 셈이죠. 한달이면 대략 500펜스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벤치는 하루 1펜스였는데요, 이는 잘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앉아서 쉬는 공간일 뿐이지만 한달에 30펜스는 나갑니다. 이건 사실 주거지라고는 볼수 없습니다.

 

좌식 + 밧줄, 1인당 2펜스

 

이제부터 잘수 있는 공간이 허용되는데요, 사실 제대로 자는 것도 아니고 밀집대형으로 앉아서 밧줄에 기대서 자는 수준이었습니다. 벤치와 수면실의 중간쯤 될텐데요, 극히 열악해 보이는 이 주거 환경이 한달에 60펜스가 나갔다고 합니다.

 

관짝, 1인당 4펜스

 

드디어 누워 잘수 있는 공간입니다. 원조 캡슐호텔 쯤 되어보이는 이 공간은, 사실 관짝을 밀집해서 모아놓은 것입니다. 적어도 누울 수는 있고, 베게와 담요가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 자려면 잘 수는 있을 듯 합니다. 이 정도면 일주일에 숙박비로만 28펜스가 나가고, 한달에 115펜스가 나갑니다. 이 정도만 해도 일반 노동자 남성의 월 소득의 1/4이 나갔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세후 연봉 3000만원 버는 노동자가 월세 60만원 짜리 오피스텔에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옛날 런던에 비하면 21세기 서울이 확실히 주거환경 측면에선 살기는 좋네요. ㅎㅎㅎ

 

쪽방의 침대. 1인당 7펜스

 

그리고 드디어 개인의 방을 갖게된 사람의 케이스 입니다. 사진을 보면 완전히 낡은 쪽방에, 가난한 과부 같은 이미지로 찍혀져 있어서, 당시 비참한 시대상과 불쌍한 서민을 묘사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당시 개인방의 침대는 하루 7펜스, 월 210펜스가 나가는 비교적 중산층을 위한 거주지였습니다. 일반 남성 노동자 월급의 40% 이상을 투자해야, 겨우 이런곳에 살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월세 100만원이 넘는 반전세 아파트 느낌일 것입니다. 즉, 일반 노동자를 위한 곳이 아니거나, 노동자가 거주하려면 모든 가족을 다 데리고 와서 같이 살아야 수지가 맞는 공간이었습니다.

대략 이런 느낌으로요.

 

실제로 당시엔 이런 쪽방에는 노동자의 7~8명에 달하는 대가족이 한꺼번에 거주했다고 합니다. 7명을 전부 각기 다른 곳에서 재우는 것 보다, 좁아도 한 공간에서 지내게 하는게, 비용 측면에서도 안전 측면에서도 훨씬 나았을 테니까요.

 

하여튼 쪽방에만 살아도 월세를 내고 나면 가족들 먹일 빵과 식수, 그리고 옷을 사고 나면 남는게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몰론 이 때문에 가장 뿐만 아니라 성인여성, 아이까지도 일을 했지만 그들은 주급이 더 박해서 여성은 5실링(60펜스), 아이는 1실링(12펜스)을 주급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한 가족이 다 나서서 노동을 하면, 잘 하면 월 1000펜스는 벌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경우엔 그나마 사정이 나아지므로, 온 가족이 희생해 아이 한두명이라도 학교에 보내면 그것만으로 큰 행운이었죠.

그런데 주목해야 할것은 부동산 입니다. 이 당시에 가장 기본적인 쪽방도 한 남성 노동자의 월급의 40%를 요구하고, 요즈음 찜질방 수면방 마냥 몸이라도 누울라 치면, 노동자 월급의 25%를 요구했습니다. 21세기도 마찬가지인게, 최근 영국 런던의 아파트 월세는 월평균 2159파운드(319만원)였다고 합니다. 반면 영국인이 세금을 제외하고 벌어들이는 평균 실소득은 1976파운드(약 290만원)였고요. 런던이면 소득이 더 높다고 해도, 실소득을 죄다 월세에 투입해야 겨우 잠을 잘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렇게 집값이 미친 정도는 아니더라도, 19세기 산업혁명 당시에도 월세 40% 내고, 생활비 내고, 각종 약값, 의류, 거기에 약간의 교육만 받게 해도 일반 노동자가 쪽방 하나 사는게 거의 불가능 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자기 가구소득의 10%도 저축하기 어려운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집값이 요즘에도 최소 월세의 수백배임을 감안하면, 노동자가 저축해서 자기 집을 갖는 거 자체가 불가능 했던 것입니다.

19세기 부터, 그러니까 산업혁명이 생기고 도시화가 생겨난 그 시발점에서 부터, 노동과 저축으로 집을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평균적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을 따라 수백년을 꾸준히 올른게 부동산 가격이고요. 조선시대 같은 농경사회의 시골 초갓집은 굉장히 저렴했다고 하지만, 이건 1) 그땐 초가집도 자급자족 했으며 따라서 인건비나 자재비가 크게 들지 않았고, 2) 또 농촌마을 특성상 수요가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3) 상공업이 미비비해서 외부에서 부동산으로 유입될 자본도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막말로 금융상품화된 현대 도시의 부동산 개념이 아니라, 신석시 시대 원시인이 움막을 짓는 주거지 개념으로 생각해야 할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어쩌면 "월급 모아서 수십년 걸려야 집을 사는게 말이 되냐, 이건 거품이다" 라고 하는건, 역사를 돌이켜 볼떄 별로 알맞은 분석이 아닐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계속 그러했으니까요. 애초에 노동자의 소득수준과 부동산 가격을 대입하는 계산 자체가 틀릴 수도 있으며, 부동산 가격을 지탱하는 건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죠.

9개의 댓글

2021.01.10

결국 초기자본주의로 되돌아가고있는거구나

 

자본가가 아니면 노비보다 못한 삶을 살겠네

0
2021.01.10

재밌게 봤습니다. 다만 내용이 길지 않다면 한번에 묶어서 올리는게 낫지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3
2021.01.10

월급을 모아서 집 사는게 가능한 시기가 별로 없었군요..

0
2021.01.10

개드립에서 보기 힘든 영양가 있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0
2021.01.10
@lllIIlllIII

ㅎㅎ 고맙습니다

1
2021.01.11

좋은글이네여

0
2021.01.11

7080산업화 시기가 유일한 기회였다는건가 하

0
2021.01.11

테크노마트부터 재밌는 글이네요 ㅋㅋ

0
2021.01.12
@Kyress

ㅎㅎ 감사합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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