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식량국 정책과 상속농지법에 대한 고찰 ②

 

 

 

 

4. 토지공개념의 도입 : 제국상속농지법(1933)

 

토지공개념(土地公槪念)이란 토지는 시장원리에 따라 자유롭게 취급되는 사적재화(일반재화)가 아니라 공공성과 유한성을 지녀 사회기속성이 강한 공적재화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토지공개념은 19세기 산업사회를 겪으면서 토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는 공감이 형성되면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생산수단에 대한 국유화를 내세우는 공산주의 국가는 물론이거니와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제국(諸國)에서도 20세기 초 순수자본주의를 포기하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자연스럽게 토지공개념을 받아들였습니다.

 

독일에서 토지공개념을 수용하고 법률로써 강력히 실시한 것은 1933929일 제국*상속농지법(Reichserbhofgesetz)이 시행된 이후부터입니다. 다레는 이 법률이 농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믿었습니다. 제국상속농지법은 토지를 사적재화와 다르게 취급하여 시장원리에 지배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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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상속농지법, 1933년>

 

제국상속농지법 제3조제1항은 제5조제2항에서 명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이 125 헥타아르를 초과하는 농지를 상속농지로 보유할 수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상속인이 1만 제곱미터를 초과하는 농지를 보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우리 법과 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이는 개인이 광대한 토지를 소유해 농촌 경제가 붕괴하는 일을 막고자 한 것인데, 전통적으로 프로이센에서 큰 세를 누리던 대지주인 융커(Junker, 토지귀족)가 완전히 몰락하고 봉건제정시대의 잔재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국상속농지법 제2조제12항과 제2조제15항을 통해서는 독일 시민권을 가지고 실제로 농업에 종사하여 농민능력을 지방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자만이 농지를 보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농업 목적이 아닌 농지의 보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규정은 비단 이 시대의 독일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각국이 채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제12조제2항을 통하여서는 농지를 담보로 하는 법인에 속할 수 없다는 것과 제37조제1항을 통하여서는 결코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것을 통해 제국상속농지법은 농지를 보유한 농민이 자신의 농지를 담보로 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법률을 위반했을 때는 제국상속농지법에서 보장되는 권리를 포기해야 했으므로 섣불리 농업경제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농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소임은 제38조제1항 농지는 채권자의 금전적 청구권 집행이 불가한 불가침이라는 것과 제38조제2항 농지에서 산출된 농산물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로 불가침이라는 것을 명시함으로써 다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의 재산권을 법률로써 불가침을 확인하여 보장해주는 일은 다레가 말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불확실성으로부터 농민들을 안심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만 제39조에서 농지 자체에 대하여는 불가하나 산출 농산물로부터는 농민과 그 부양가족의 생계가 방해되지 않는 한에서 국가의 공공자금청구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통해 다른 국민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대한 의무는 성실히 이행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농업경제의 부활과 농민층의 중산층화를 꾀한 나치당은 제국상속농지법을 강력하게 밀어붙여 일반법에 대한 우위를 확보했습니다. 제국상속농지법과 관련한 송사는 동법 제40조제1항에 의거하여 의장 1, 판사 2, 농민 2인으로 구성된 지방특별재판소에서 관할하도록 했으며 동법 제40조제2항은 지방특별재판소에서 내린 판결에 대해 일반법원은 항소할 수 없다고 밝혀 다른 법률보다 제국상속농지법이 우선한다는 것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193541일부터는 아예 제국법무성 직속으로 송사를 관할한다는 개정(RGBl. I. S. 68)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또 동법에 대한 지지층을 넓히기 위해 상속에서 제외되던 여성에게도 상속권리를 인정해주는 1943930일의 개정을 통해 환영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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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메클렌부르크의 농장>

 

제국상속농지법은 1947220일 연합군 통제명령 제42호에 의거하여 소멸했으나 법정신으로 노정된 토지공개념은 살아남아 서독에서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가 1949년까지, 동독에서는 동독이 해체되는 1990년까지 100 헥타아르 이상의 농지를 무상몰수하는 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다만 서독이 국가사회주의 시대의 토지공개념을 현대적으로 재정립해 활용한 반면 동독은 소련공산당의 지휘 하에서 무조건적 몰수와 신농민 체제의 건설을 꾀했으나 실패하고 해체 직전까지도 농업경제의 육성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상속농지(Erbhof, 혹은 Anerbenrecht)란 중세시대의 전통으로, 봉건영주의 법률적 보호하에 해당 농지에 대한 소유권이 있고 이를 개간하던 농민이 자손에게 토지를 물려줄 수 있는 제도임. 일반법(민법)의 영향을 받는 여타 상속과 달리 상속농지는 지방특별법에 귀속됨.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므로 해당 토지가 어느 지방법 혹은 연방법의 영향을 받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히 다루어짐.

3개의 댓글

2019.08.12

절대농지,그린벨트=토지공개념.

0
2019.08.12

사적재화(일반재화)가 아라 ► 아니라

0
2019.08.12
@하쿠맨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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