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국가사회주의 시대의 나치형법 ②

 

 

 

 

법원(法源)으로써의 건전한 국민감정

 

대한민국 민법은 제103조를 통해 善良風俗 其他 社會秩序違反事項內容으로 하는 法律行爲無效로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선량한 풍속, 사회질서, 소위 사회통념이라고 대변되는 것은 오늘날의 판결에서도 가치판단의 척도로써 중히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치형법은 더 나아가 이를 모든 형법의 원천이라고 여겼습니다. ‘건전한 국민감정(Gesundes Volksempfinden)’을 나치형법에서는 특정 행위를 의무로써 요구하거나 범죄로써 처벌할 수 있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즉 범죄사실 자체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로 쓰인 것입니다. 나치형법에서의 범죄는 건전한 국민감정에 위배되는 모든 행위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지난 시대의 형법이 실질적인 사회정의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자성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자유주의적 형법에서는 도덕윤리에 어긋나거나 공동체에 피해를 끼치는 행위라도 형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참고). 그런데 형법의 제정 시점에 이후 이루어질 모든 행위를 염두에 두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나치형법학자들은 재판관이 형법을 유연하게 해석하고 가벌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새로이 삽입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1935년 형법개정에 반영되어 제2조에 법률이 가벌적이라고 선언한 행위 또는 형법의 기본사상과 건전한 국민감정상 처벌을 받을만한 행위를 저지른 자는 처벌된다.(Bestraft wird, wer eine Tat begeht, die das Gesetz für strafbar erklärt oder die nach dem Grundgedanken eines Strafgesetzes und nach gesundem Volksempfinden Bestrafung verdient. Findet auf die Tat kein bestimmtes Strafgesetz unmittelbar Anwendung, so wird die Tat nach dem Gesetz bestraft, dessen Grundgedanke auf sie am besten zutrifft.)”고 밝힘으로써 완수되었습니다. 건전한 국민감정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고, 어떤 행위가 건전한 국민감정에 위배되는지 판단할 소임은 판사에게 위임되었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 시대 법관의 재량과 책임, 의무는 그 어느 때보다 컸습니다.

 

 

 

 

RGBl. 1935 I, S. 839.jpg

<1935년 7월 5일 형법개정안. 좌상단 제2조에 건전한 국민감정이 명시되어 있다.>

 

 

 

 

의사형법(Willensstrafrecht)

 

자유주의적 형법은 법익침해의 결과를 야기한 행위를 처벌합니다. 따라서 행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여 법익침해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경우는 다르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즉 미수(未遂)와 기수(旣遂)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자유주의 형법이 범죄행위의 파악근거를 행위자의 의지가 아니라 행위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경구처럼 자유주의적 형법은 행위와 행위를 저지른 주체를 엄격히 구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치형법학은 이와는 반대로 범죄행위의 파악근거를 행위자의 의지에 두고 있습니다. 범죄사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를 실행하려는 의지이며 행위 자체는 의지의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치형법학자 게오르크 담(Georg Dahm, 1904~1963)은 범죄의 구성요건이 행위의 위법성과 책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의 공동체에 대한 적대적인 의사와 불법을 행하려는 의식에 있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 역시 건전한 국민감정 이론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에 피해를 주었어도 법익에 대한 침해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못했던 행위에 위하를 가하고자 도입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범죄의 본질은 질서를 파괴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는가가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침해하려는 의사와 의식을 지녔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따라서 선한 의도였더라도 법익을 침해했다면 형법에 따라 처벌받는 자유주의적 형법과는 대조적으로 나치형법에서는 법익을 침해하였더라도 의도가 선했다면 형법상의 범죄가 아닌 것입니다.

 

한편 나치형법의 의사형법 시각에 따르면 죄형법정주의에 따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예컨대 소급처벌금지의 원칙은, 법률화되기 이전에 범했더라도 이미 해당 행위로써 공동체에 적대적인 의사를 가진 인물임이 증명됐기 때문에 현 시점에도 처벌할 수 있다는 주장에 따라 파기되었습니다. 1933년 제국의회 방화사건의 주범인 네덜란드인 반 데어 루베가 사형된 것도 이 논리에 의한 것입니다. 반 데어 루베가 방화했을 당시의 형법은 방화범에 대한 사형 규정이 없었으나, 나치당은 형법에 사형을 추가했습니다. 이후 반 데어 루베는 제국의회에 불을 질러 사회혼란을 야기하고 국가 권위에 도전하려는 의사를 지닌 인물이므로 사형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1934년에 그를 단두대에서 처형했습니다.

 

 

 

 

5. 나치형법에 대한 현대 독일형법의 평가

 

1962년의 서독 형법 서문 2<나치時代改惡經過>에서는 나치형법에 대해 전체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형법이라며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1次世界大戰後獨逸刑法改正作業從來單一的方向止揚하고 各種曲折經過하여 複雜發展을 한 것이다. 그 하나는 와이말 共和國民主主義體制下에서의 改正試圖였던 것이다. 1919, 1925, 1927, 19304刑法草案 改正公布其後 1933의 나치獨裁國家轉換되자 民主主義的 刑法改正否定되고 나치政權所謂民族國家人種立法的인 나치 刑法樹立邁進한 것이다. 刑法典1933부터 1936하여 3改正을 하였고 그特色國家權力絶對化個人價値否定하는 權威主義에 있고 모든 價値源泉으로서 國家理解하는 全體主義立脚하여 普遍的倫理的 意思로서 國家에 의하여 公布된다는 理念下罪刑法定主義原則否定되었으며 이에 代替하여 健全國民感情에 의한 處罰認定되고 類推解釋規定採用되었던 것이다. 同時에 나치刑法犯罪人危險意思處罰하는 意思刑法, 俊嚴刑罰에 의한 國家權威明示코저 하는 權威主義刑法原理立脚한 것이다.”

 

죄형법정주의를 대체하는 건전한 국민감정의 도입과 유추해석의 채용, 의사형법 및 국가 권위를 명시하려는 권위주의 원리를 나치형법의 주요한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맺는말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을 분할 점령한 연합국은 독일에서 국가사회주의 요소를 모두 배제하려고 했습니다. 형법도 마찬가지로 국가사회주의 시대에 제정된 형법과 이에 따라 이루어진 행위는 모두 무효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따라 표면적으로 나치형법은 청산되었으나 나치형법이 제기한 새로운 이념적 시도들, 즉 법률적 판단근거로써의 법감정 이론이나 의사형법론은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의사형법론은 적형법론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에 쓰이는 수단들을 뒷받침하는 주요근거가 되었습니다. 애국자법이나 국방수권법에서도 이러한 요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치형법 자체는 사라졌어도 그 이론적 토대를 분석하는 것은 여전히 크나큰 가치가 있다 하겠습니다.

17개의 댓글

5. 나치형법에 대한 현대 독일형법의 평가

 

1962년의 서독 형법 서문 2절 에서는 나치형법에 대해 전체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형법이라며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후의 독일형법개정작업은 종래의 단일적방향을 지양하고 각종의 곡절을 경과하여 복잡한 발전을 한 것이다. 그 하나는 와이말 공화국의 민주주의체제하에서의 개정의 시도였던 것이다. 즉 1919년, 1925년, 1927년, 1930년의 4회에걸쳐 연마한 형법초안 및 개정공포가 그 후 1933년의 나치 독재국가로 전환되자 민주주의적 형법개정은 부정되고 나치정권은 소위 민족국가를 위한 인종입법적인 나치 형법의 수립에 매진한 것이다. 이 형법전은 1933년부터 1936년에 통하여 3차의 개정을 하였고 그 특색은 국가권력의 절대화와 개인의 가치를 부정하는 권위주의에 있고 모든 가치의 원천으로서 국가를 이해하는 전체주의에 입각하여 법은 보편적인 윤리적 의사로서 국가에 의하여 공표된다는 이념하에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이 부정되었으며 이에 대체하여 건전한 국민감정에 의한 처벌이 인정되고 유추해석의 규정이 채용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나치형법은 범죄인의 위험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형법, 준엄한 형벌에 의한 국가의 권위를 명시코저 하는 권위주의형법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일본식 한자가 많아서 번역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단 읽을수 있게 작업했습니다.

 

0
2019.08.09
@힐과행복을드려요

바이마르를 와이말로 표기하는 것도 일본식이지요. 원문을 존중한다는 미명 하에 귀찮아서 그대로 복사해 왔는데 대신 한글로 적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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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ksgemeinschaft

제가 오히려 감사를 표하고싶습니다. 사실 형법을 공부하면서 미수범의 형벌경감과 의사형법의 위험성과 죄형법정주의의 필요성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암기에 치우쳐 있었는데 나치케이스를 통해서 공부하니 더욱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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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힐과행복을드려요

한 국가의 법은 그 민족의 오랜 세월에 걸친 철학적 사유와 현실상의 투쟁에 따른 산물일 것입니다. 비록 우리나라는 광복 직후 당장의 법률이 부재하다는 상황에 직면해 일본 법을 무분별하게 계수해왔으나 지금부터라도 해외의 법률을 피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주체적 사고에 입각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와닿으셨다니 참 글을 쓴 보람이 있네요.

0
2019.08.09
@힐과행복을드려요

한편 그런 면에서 이번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의 경과는 참 안타깝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형법정주의 등의 형법원리를 스스로 사고해서 얻어낸 것이라면 누구보다 그 의의와 침해소지에 대해 민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추적 법집행기관인 경찰이 주거침입 실행의 착수를 넘어 해당 인이 강간 실행의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해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했다는 것은 형법에 대한 몰이해와 무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며, 이는 형법원리의 주체적 건설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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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그동안 암기하기에 급급했던 법학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보여주는 좋은 글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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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lawp

도움이 되셨다니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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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뭐냐 법학과냐?

우리나라 법이 독일형법이라더니 걍 우리나라 법이자나

국민정서를 의식하는 법 씨발 나치법이 우리나라 법의 근원지였네

근데 왜 부자한테는 국민정서 무시하고 자유주의 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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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vxcfdhgsadsfz

나치형법의 특징을 가벌성의 전치화 및 불온의사자에 대한 권리박탈로 잡는다면

현대 독일에서의 형법 제30조, 제129조, 제243조, 형사소송법 제98조, 제100조, 제110조, 마약법 제30조가,

현대 미국에서는 애국자법, 국방수권법이,

현대 영국에서는 대테러법, 반테러법, 테러방지법이,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형법 제87조, 제90조, 제114조, 국가보안법 제3조, 제8조,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9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2조, 제21조가 이의 부분에서 나치형법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국민 일반의 법감정에 기초한 판단에 관하여는 성문법이 사회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므로 각국이 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법감정론을 절충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나치형법은 법감정을 법원으로 보고 가벌성의 완전한 확대를 꾀했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법감정론을 발전시킨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 이전 글에 서술되었듯이 법률의 문리적 해석만을 중시하면 사회현실의 요구에 무력해지기 때문입니다.

 

무전유죄 무전유죄는 형법학에서 비롯된 문제라기보단 사법계의 부패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고...

 

법학과는 아니고 취미삼아 공부하고 있습니다

0
2019.08.10
@Volksgemeinschaft

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뉨 프랑스형 독일형

우리나라는 일본 식민영향으로 독일형임 진짜 힘없으면 국민정서로 처벌받음 개좆같음 판사 개색히 판사색히 내가 법 모를줄알고 법원에서 좆같이 판결하는데 판사색히나 검사색히들 일반인들 상대로 법대로 안함 법조항 다 무시하고 꼴리는대로함

어짜피 이색히들은 모를꺼라고 생각하니까 항소할려다가 귀찮아서 걍 벌금내고 맘 아 좆같아

국선 개색끼도 말대꾸하지 말고 빨리 끝내자고만하고 새 ㅆㅂ 공무원색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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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vxcfdhgsadsfz

혹시 성인지 감수성인가 뭔가 하는걸로 이상한 판결 받고 벌금 내셨나요?

2

나 개드립에서 이렇게 훈훈하고 스마트한 댓글 처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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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님닉네임이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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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

아조시 뭐하는 사람이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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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
@EndorsToi
0
2019.08.11
@Volksgemeinsch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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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2

법학사학도 아재 한문을 국문과 병기하여 표기해 주십쇼 일자무식한 인민에게는 가독성이 너무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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