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경험의 테두리에 대한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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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급하기도 민망할 만큼 짧은 기억이지만, 한 무슬리마와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혹시 단어가 익숙치 않으신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해드리자면, 이슬람을 믿는 회교도 여성분을 무슬리마라고 합니다.)

 

이슬람문화권 국가 출신이신 분이셨지만,

세속주의가 강한 곳에서 사시던 분이라서 여러분이 흔히 생각하는 히잡을 쓰는 분은 아닙니다.

 

그래서 확연하게 구분하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혹시 종교가 어떻게 되냐고 조심히 여쭈어보았더니 잔뜩 긴장하며 먼저 이야기합니다.

 

"너무 놀라거나 싫어하지 말아주세요, 이슬람교를 믿어요."

전 놀라거나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말하시면서 주눅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치만, 테러단체때문에 편견이 있어서 이슬람교라고 하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쪽께서 우리 집 근처에 폭탄을 심어놓을 사람은 아닌거 알아서 괜찮아요."

"그래요, 말씀 감사하네요. 그 쪽은 혹시 종교가 있으세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교회를 다녔었는데, 이제 종교는 없어요."

 

"아, 괜찮아요. 우린 신 안에서 모두 평등한 인격체니까요."

 

그냥 그 뒤로는 별로 이야기가 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대화가 유난히 오랫 동안 기억에 꽂혀서 남아있는 이유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로 인해서 우리가 판단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그런 반면 어떤 공동체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경향이나 공동체에서 힘을 찾으려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2. "아, 괜찮아요. 우린 신 안에서 모두 평등한 인격체니까요." 라는 말은 분명히 따스하지만, 그 말을 구조적으로 살펴보아야합니다.

만약 나와 불특정한 당신 사이에 있어서 어떤 위화감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굳이 구태여 '우리는 평등한 인격체다.' 라고 언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종교적 교양이 강한 문화가 두드러지는 곳에서 자란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최선이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다른 뜻이나 체계를 수양하는 타지인, 그리고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사람 이하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종교도 안 믿는다고, 저러고도 사람이라고 살고 있냐?"라는 빈축을 사거나 구조적인 박해을 당하는 것입니다.

 

영어 위키피디아에도 따로 항목으로 정리된 바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Discrimination_against_atheists

 

가령 터키어에서 'Ateist'는 영어로 무신론자를 뜻하는 "Atheist"와 같은 단어인데, 실제로는 욕으로 쓰입니다.

 

단순하게 제가 종교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가 그 문화권의 현지인이라면 배척당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 무슬리마분께서 제가 종교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절 하찮게 여겨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존중을 뜻 하는 의미에서 "우리는 평등하다"라고 이야기를 해준 것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 편견이 작용하는 사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장환경이 반영되어버린 나머지 이런 이야기를 해준 것이지요.

 

그래서 따스한 말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진정한 의미로 평등한 관계에서는 다분히 불필요한 말입니다.

 

 

//

 

저는 이런 생각의 가지 끝에 어떤 방식으로든 너가 잘났고 내가 잘났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름표는 제각기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자신이 태어난 곳과 시간 속에서 어느 정도의 불필요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게 됩니다.

 

이따금 우리는 사는 방식에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은 가장 약한 사고의 부위를 마주하게 되곤 하는데,

그것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깨부수고 탈출하는 건 모두에게 정말 엄청난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듯 합니다.

 

전 그나마 서 있는 이 곳에서 까치발이라도 조금 더 들어보고자 합니다.

 

 

 

 

5개의 댓글

2021.01.23

자신의 환경 경험 속에서 형성되어온 생각의 줄기에 조건 반사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임. 왜라는 이유보단 어떻게란 방법이 더 익숙한 사람들. 모두가 자기 자신은 사고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자신도 모르게 형성해온 생각의 틀에 따라 행동함. 새로운 사실과 부정에 부딪치면 틀에 맞게 바꾸거나 틀을 조금 수정하거나.. 내 생각엔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선 자신의 생각을 사고하는 방법을 배워야함.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방법. 관찰자의 입장에서 자기의 생각을 바라보는 법.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생각의 줄기를 갖고 있는가

1
2021.01.23

난 생물학과를 나와서 그런지 뭐든지 생물학적으로 생각해보는 편인데 고정관념, 편견이라는게 진화생물학 적으로 괜히 생긴게 아니라고 알고 있음 예전에는 이런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인류는 말그대로 처절한 생존을 할 수 있었으니까 피부색이 달라? 일단 배척, 이방인? 배척 이런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죽거나 약탈당해 결국 굶어 죽는 일이 흔했을 거임 이런 사고 방식을 바꾸기엔 아직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닌가 싶음 진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지

0
2021.01.25

터키에서 3년 반 주재원 근무했는데, 외국인 거주증 신청하려고 보니 종교쓰는 난이 있더라. 그냥 무교라고 쓸거라 했더니 현지직원이 터키에서 무교라는건 거의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라며 아무거나 써넣으라고 해서 가톨릭 써넣었음. 그 현지직원 본인도 실은 무신론자인데 귀찮아서 이슬람이라고 쓴다고 하니 이슬람이 90몇%라는 통계도 믿을게 못되지.

0
2021.01.25
@charlote

아! 주재원으로 근무하셨다면 현지 사정에 대해서는 저보다 훨씬 잘 알고 계시겠네요 :>

0
2021.01.25
@LOGIE

10년전에는 터키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슬람국가였는데 점점 사회전반에 이슬람이 깊이 파고들더군요. 13년말에 들어온뒤로 다시 간 적은 없는데 아마 더 좆같아졌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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