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펌] 어떤 이별 (3) - 完 -

수술계획이 잡혔다.

 

일단 입원을 한 후 일차적으로 코우마딘 복용을 중단하고 헤파린을 이용해서 혈액 응고시간을 조절한 다음,

 

혈액이 심장에 혈전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수술후 지혈은 가능한 수준으로 세팅이 되면,그다음 수순으로 심장외과에서 국소마취로

 

심내막에 고인 삼출액을 제거하는 수술을 먼저하고, 그로부터 며칠 후 상처가 아물면 전신마취를 통해 우리가 개복수술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일단 환자는 우리과로 입원하고, 심장내과와 심장외과에서 동시에 환자를 돌보기로 했다.

 

처음에 환자가 입원 수속을 끝내고 병실에 입원했을 때는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소속만 내환자지 우선 당장은 심장내과에서

 

응고조절을 시작하고 나는 그동안 하루 한번씩 병실에 들러 환자를 만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 외에는

 

당분간 내가 의학적으로 해줄 일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과에서 응고반응을 조절하는 동안 점점 환자와 정이들기 시작했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늘상 고통에 시달리고 얼굴을 찌푸린 환자들만 바라보다가, 오히려 편안하고 때로는 도리어 위로받고 싶은 환자를 만나게되면

 

저절로 마음이 환자에게 기울기 마련이다.

 

매일 병원복도를 지나며, 회진때 병실을 들리며, 불과 몇 달전까지만 해도 건강하던 이들이

 

간암에 간경화에 위암,식도암,췌장암,당낭암,대장암,직장암에 걸려 복수가 부풀어오른 배를 고통스럽게 감싸쥐고 울부짖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누렇게 스며드는 황달을 못이겨 시커먼 얼굴로 간성 혼수에 빠져 지쳐 쓰러지는 사람들을 늘상 바라본다는 것은 실로 괴로운 일이다.

 

아니 어쩌면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종합병원에서 수많은 환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심지어 내 환자가 하루에만 다섯명이 사선을 넘어가버리는 일들을 당하면서도,

 

그 당시 그것은 내게 있어서 하나의 고단한 일상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많은 누군가의 슬픔을, 절망을, 그리고 견디기 어려운 비탄을 몰고 오겠지만,

 

그 누군가가 내가족이나,친구, 친지의 죽음이 아니고서는 그것은 내게는 늘상 경험하는 일상적 사건에 지나지 않았었다.

 

나는 그당시 의료라는 거대 시스템의 한 부속품이되어 모던타임즈의 채플린처럼, 기계적으로 오늘은 누군가의 장을 자르고,

 

또 내일은 누군가의 종양을 들어내고, 그다음날은 또 다른 누군가의 위장과 췌장을 제거하고 이어붙이는 기술자에 지나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날 그 치열한 전선에서 스스로 낙오되어 후방으로 물러난 뒤, 지난 싸움들을 돌이켜보면서 그제서야 내가 그때 그랬었음을 깨달았다.

...................

.....

사실 이곳에서도 처음에는, 들일하다 찟어진 상처나 소독하고, 닳아버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관절염이나 신경통들을 다루면서,

 

이제 내가 삶과 죽음의 첨예한 전장에 서있지 않음을 안도하였지만, 돌아서서 생각하면 나는 어쩌면

 

의사가 가야 할 진정한 길을 외면하고 비겁하게 한쪽으로 비껴서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상에서 일상을 돌보는 의사로 물러나 문자 그대로 시골의사로 살면서, 그제서야 내 이웃의 삶을 조금씩 내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삼년을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시면서 삶은 달걀을, 손자들이 건넨 카라멜 사탕을, 혹은 사과나 배 한쪽을 내 책상위에 올려주고 가시는 할머니들이

 

한동안 보이시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게되고, 그러다가 오랫동안 응답이 없는 전화기의 신호음이 곧 내가 상상한 어떤 사건으로 실체화되면

 

그제서야 나는 그분들의 떠나가심에, 또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어떤것인지를 새람 다시 깨닿곤 했다.

 

왜 그랬을까?

 

내게 그분들을 구할 수 있는 작은 능력이 있을 때는, 내게는 타인의 불행은 그저 일상이었는데,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달랑 한장의 소견서와 각별히 잘 부탁한다는 담당의사에게 전하는 편지한장을 적어드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에는 내 이웃들의 그것이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사무치는 것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그것이 지금 어떤 상황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과, 제 삼자적 관찰자로서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 차이가 아닐까..

..............

....

 

어쨌거나, 그때 두분의 병실을 찾는 일은 당시의 내게는 하나의 작은 즐거움 이었다.

 

아침나절 상태가 나빠진 환자를 생각하며 잔뜩 찌푸린 마음으로 병실문을 열고 들어 갔을 때,

 

거지런히 두손을 모아 합장으로 나를 맞이하는 환자분과 스님의 잔잔한 미소는, 모든것이 마음에 있다는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소리없는 법문으로 묵묵히 전하는 듯했다.

 

내가 회진에서 두분에게 건네는 짧은 대화는 대개 밤새 별일이 없었는지, 숨은 차지 않은지.

 

통상적인 인사와 아울러 수술이 잘될 것이니 걱정 마시라는 의사로서의 상투적인 위로가 전부였지만, 두분은 늘 그것을 고마와했고,

 

그때마다 두분이 보여준 잔잔하고 고운 미소는 정말 저분이 위험한 수술을 앞두고 있는 환자인지 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동요의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

.....

 

그렇게 약 열흘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매일 회진때마다 그 병실에서 맡던 이름을 알 수 없는 은은한 향 내음에도 어느듯 익숙해졌다.

 

그리고 어느 토요일 수술실에서 환자분의 심막 절개술이 시작되었다.

 

심막 절개술이란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무서운 수술로 들리지만, 외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간단한 (?) 시술에 속한다.

 

심장자체는 원래 바늘구멍만큼의 손상도 허락하지 않는 대단히 민감한 장기이지만,

 

심막에 물이 차서 마치 물주머니에 심장이 둥둥 떠있는 것처럼 된 상황에서는 주머니만 절개하는 것은

 

심막과 심장사이의 물이찬 공간만큼의 남는 공간이 있어 실제 심장에 손상을 입히지는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생각보다 시술이 위험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수술실 앞에서 수술동의서를 받는 심장외과 스텝의 설명도 명쾌했고, 그 옆에서 주치의로서 과정을 지켜보던 나도 그리 걱정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직업적 본능에따라 기계적으로 수술의 위험성과 합병증 그리고 예측가능한 모든 부작용들을 설명했지만,

 

당사자인 환자와 보호자인 스님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예의 그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시술날자는 일부러 토요일에 잡았다.

 

평일에는 정규수술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간단한 시술하나 하는데도 환자가 너무 오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환자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토요일 오전나절 응급 수술외에는 정규 수술 스케쥴이 잡히지 않는 조용한 토요일 오전으로 시간을 잡은 것이다.

 

환자는 스트레치카에 실려 수술실로 옮겨졌고, 스님은 수술실 자동문 앞에서 조용히 두손을 모아 합장을 한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마 속가의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이리라..

 

저 두분사이의 뭔가 특별해 보이는 그 사연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두분의 관계는 어머니와 딸이라는 혈연적 관계

 

그이상의 다른 끈끈한 연이 맺어져 있음에 틀림 없었지만, 내가 그것을 알 도리도, 또 그것을 알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스님에게 합장으로 걱정 마시라는 인사를 하고, 같이 수술실로 들어 갔다.

 

아무리 내 환자지만 일단 심장외과에서 하는 시술이라 굳이 수술실에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왠지 이 환자의 경과는 내 손으로 따라가고 싶었다.

 

환자가 수술대 위에 뉘여지고, 천장의 무영등이 켜졌다, 서로 각도를 조금씩 달리한 밝은 할로겐 전구 20개가 동시에 불을 밝혔고,

 

수술실 간호가가 초점을 맞추가, 20개의 램프는 일제히 환자의 명치끝을 향해 불을 밝혔다.

 

국소마취라 굳이 마취과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바취과 스텝이 환자분의 머리쪽에 서서

 

환자에게 가벼운 진정제를 투여하고, 코를 통해 산소를 소량 주입하기 시작했다.

 

 마취과에서 혈압을 재고 심전도를 다시 확인한 다음 마취과 스텝의 고개가 끄떡여지자, 포비돈으로 양팔을 스크럽 하고 들어온 심장외과 스텝이

 

베타딘 볼을 들고 명치끝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소독을 시작했다.

 

환자의 상복부가 베타딘에 의해 깨끗히 멸균이 되고, 대공포가 씌어졌다.

 

대공포는 사람의 몸을 덮는 커다란 포에 큰 구멍을 뚫은 것이라,그것으로 사람을 덮으면 수술할 부위만 남기고 몸은 전부 소독포에의해 가려지게 된다.

 

심장외과 스텝이 레지던트 한사람을 데리고 시술을 시작했다.

 

나는 " 최선생님 한 10분 이면 끝나나요? 주말인데 마치고 내방에 가서 오랜만에 바둑이나 한판 둘까요? "라고 농담을 건냈고,

 

심장외과 스텝도, "좋지요. 얼른 끝내고 한판 두지요.." 서로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 받고, 마취과 스텝도 우리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토요일 오전의 한적한 수술실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심장외과 스텝이 리도케인이 재워진 주사기를 환자의 상복부에 찔러넣었다.

 

" 환자분 따끔 하시지요? 마취한 겁니다, 이제 안 아프실 거고요,, 아프면 말씀하세요.." 환자는 따끔한 자극이 힌들었는지,

 

가볍게 신음 소리를 한번 낸 다음, 예의 그 잔잔한 표정으로 돌아가서 우리들에게 고개를 끄떡임으로서 견딜만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심장내막을 찢어서 고인물을 밖으로 배출하는 수술은 명치끝에 잡히는 "검상돌기"라고 불리는 작은 물렁뼈를 제거하거나 옆으로 제친다음,

 

조심스럽게 상복부 명치끝의 피부를 절개하면서 왼쪽 가슴쪽을 향해 복부를 박리하면서 작은 구멍을 내고, 그 구멍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으면

 

손가락끝에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지게 되는데. 이때 그곳으로 가느다란 가위를 넣어서 심장을 싸고있는 물주머니를 찢어주면 끝나는 것이었다.

 

흉부외과 스텝의 손에 메스가 들리고, 마취한 자리를 따라 약 3센티 정도의 작은 절개가 시작되었다.

 

불과 일이분만에 환자의 명치끝의 복벽이 약 3센티정도 열리고 그곳으로 그의 두번째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들어가는가 싶더니, 그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떡였다.

 

절개가 제대로 된 것이다.

 

그의 손가락에 물이 차서 늘어진 심막이 만져진다는 뜻 이었고, 이제는 가위를 넣어 그것을 살짝 찢어주면 끝이나는 것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메쩸바움 시져라 불리는 절개용 가위를 들고 그곳으로 밀어넣은 후, 살짝 가위를 벌려 심막을 절개하는 몸짓을 하더니,

 

다시 천천히 가위를 꺼집어 냈다.

 

절개가 끝났다는 뜻이다.

 

가위와 함께 들어가 있던 그의 좌측 두번째 손가락이 구멍에서 빠져나오면 그곳을 통해 심막에 고인물이 쏟아져 내릴 것이고,

 

그럼 그것으로 환자는 심장을 압박하던 모든 요인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가 좌측 손가락을 상처의 구멍에서 조심스럽게 빼냈다.

 

그런데, 그가 손가락을 빼자, 절개창을 통해 쏟아져 내린것은 물이 아니라, 붉은색 선혈이었다.

 

그가 절개한 상처를 따라 선홍색 붉은 피가 마치 압력호스로 뿜어내듯이 분사되어 쏟아졌다.

 

그 작은 절개창으로 뿜어진 피는 금새 수술자의 가슴을 적시고, 무영등을 향해 치쏟았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당황했다.

 

지금 상황을 논리적으로 유추 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물에차서 심막 주머니에 둥둥 떠있어야 할 심장의 한부분이 심막에 닿아 있었고,

 

그는 그 심장을 심막으로 판단하고 절개를 했을 것이다. 지금 왜 심막에 물이 가득한 사람의 심장에 가위가 닿을 수 있는지는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지금은 "왜?"라는 물음보다 무조건 찢어진 심장을 도로 막아야하는 것이었다.

 

......................

.....

 

수술실이 발칵 뒤집혔다.

 

심장외과 스텝이 다급한 목소리로 수술실 간호사들에게 스터날 쏘 (sternal saw)라 불리는 흉골 절단기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마취과에서도 이머젼시콜이 전해져서 여러명의 의사사 순식간에 양팔과 목을 통해 수혈관을 확보하고

 

빠른 속도로 수액을 주입하면서 혈압을 유지하기위해 애를 썼다.

 

인턴선생은 혈액을 가지러 혈액실로 뛰어가고, 외래에 있던 흉부외과 수술팀들에게 빨리 수술실로 모일것을 요청하는 원내 방송이 다급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지난 열흘간 그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위로받았던 근원을 알 수없는 그 깊고 잔잔한 미소와

 

지금 환자분의 명치를 통해 쏟아오르는 붉은 선혈의 불협화음이 순간적으로 시야를 흐리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장외과팀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고, 심장외과 스텝은 베테랑답게 당황하지 않고, 환자의 출혈부위를 손가락으로 막고 있었다.

 

아마 심장이 찢어진 부분을 손가락을 덧대서 막고 있으리라,최대한 빨리 인공심장 체외순환기를 돌리고 개흉을 하고서 찢어진 심장을 다시 꿰메면 될 것이었다.

 

그와 나는 침착하기 위해 애를 섰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하필 토요일이라 스터날 쏘가 소독기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 장비들은 정규수술에만 쓰이는 장비들이라, 정규수술이 없는 토요일에는 집중소독을 위해 오전내내 소독실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고압 소독기계를 멈추고 꺼집어 내 오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길어야 오분의 여유뿐인데. 더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다른 스텝의 손가락이 심장외과 스텝이 누르던 출혈자리는 대신 막고, 그는 도리없이 십여년전에 사용하던 해머와 끌을 들었다.

 

예전에는 심장 수술을 할 때 호박엿 같은 것을 짜를때 쓰이는 커다란 일자드라이버 같은 끌을 가슴 중간의 흉골에 대고 망치로 두드려서 흉골을 짤랐다.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빨리 가슴의 중간에 있는 얿은 흉골을 절개해서 심장을 드러내야 찢어진 자리를 봉합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공십장 체외순환기도, 스터날 쏘도 당장 준비되지 않는 절박한 상황에서 더이상 선택을 미룰 수는 없었다.

 

일단 가슴을 열어야 했던 것이다.

 

예전에 판막 수술을 하면서 한번 절개했던 흉골은 와이어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사이 마취과에서 환자의 마취를 시작했고, 심장외과 스텝은 메스를 들고 소독를 할 겨를도 없이

 

지난번 수술자국이 선명한 가슴의 중간을 따라 길이 방향으로 절개를 했다.

 

피부가 벌어지고 고정되 와이어가 보이자, 와이어 커트로 와이어를 절단하고는 흉골의 상부에 끌을 대고 망치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가 정말 가볍게 몇번 툭툭치는 순간 지난번에 한번 갈라졌던 흉골이 쉽게 갈라졌다.

.............

....

 

그러나,그 이후 나는 의사로서 가장 충격적인 일을 경험했다.

 

흉골아래에 심장의 전면이 유착되어 있었다.

 

이년전에 판막 수술을 하고 다시 봉합된 심장의 상처가 아물면서 새로자란 육아조직이 흉골의 하단과 한덩어리로 붙어 있었다.

 

그로인해 끌과 망치로 흉골을 가르는 순간, 흉골에 붙어있던 심장의 전면이 동시에 갈라졌던 것이다.

 

쇄골에서 명치까지 가슴이 일시에 갈라지면서, 환자분의 심장이 마치 한번에 절개를 한 듯 그대로 열려버렸다.

 

상상 할 수없는 엉청난 양의 피가 쏟아졌다.

 

그 어떤 석션으로 수백장의 거즈로도 막을 수 없는, 마치 바께스를 부어버린 듯한 대량의 붉은 피가 일시에 가슴을 통해 쏟아져 내렸다.

 

어떤 수단으로도, 무엇으로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환자분의 몸에 있던 6 리터의 피가 단 몇초만에 모두 몸밖으로 쏟아져버렸다.

 

피는 환자의 몸을 적시고 넘쳐 수술 테이블을 타고 바닥으로 쏟아져내렸다.

 

나는 외과의사 생활을 하는동안 그정도로 많은 양의 출혈을 본 적이 없었다.

 

온 수술실 바닥이 피로 넘쳤다. 심장외과 스텝은 양팔과 다리에 그대로 피를 뒤집어 쓴채로 끌과 망치를 양손에 쥔 채로

 

그자리에 넋이 나간채로 멍하니 서 있었고, 그자리에 있던 다른 10여명의 의사들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상황을 지켜만 보았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귀에서는 윙,,하는 이명이 들리고, 가슴속에서는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

....

 

그렇게 환자는 그자리에서 불과 몇분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불과 십분전에 우리에게 자기는 괜찮으니 신경쓰지말고 계속하라고 천천히 고개를 끄떡이며. 마치 관세음보살의 그것처럼

 

잔잔한 미소를 짓던 환자가 몇분만에 핏기하나 없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수술실 테이블에 누워있었다.

 

...........

....

 

일단 심장외과 스텝의 충격을 수습하기 위해, 흉부외과팀들이 그를 대기실로 데려가고, 나는 주치의로서 이 상황을 환자보호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수술실밖에 기다리고 있던 스님에게 가야했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스님은 좀전에 그분의 어머니의 얼굴에서 보았던 그 미소를 지으며 두손을 합장한 채로

 

" 수고하셨습니다 ,, 수술은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라고 내게 먼저 인사를 건냈다.

 

나는 이 상황에서 가장 정확하고 분명한 상황전달이 가능하게끔,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고 사실 그대로 상황을 스님에게 전했다.

 

스님의 얼굴에 동요가 일었다.

 

그리고 그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내게 몇차례나 그 상황을 다시 질문하신 후에 적어도 겉으로는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다.

 

" 그렇게 가셨단 말이지요,, 그랬단 말이지요... 선생님 가신분을 지금 뵙게 해주시겠어요? "

 

스님은 낮은 목소리로 나무관세음보살을 외면서 비록 시신이지만 지금 가신 분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셨다.

 

도저히 그럴수가 없었다.

 

지금 이 참혹한 상황을 도저히 보호자에게 그대로 보여줄 수가 없었다.

 

나는 잠시 스님을 기다리시게하고, 얼른 수술실로 다시 돌아가 수술복과 덧가운들 그리고 대공포들을 있는대로 바닥에 깔았다.

 

온 수술실 바닥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선 당장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수술복으로 바닥을 깔기위해 수술실에 돌아가자 우리과 여자 인턴선생이 수술실 구석에서 잔뜩 웅크리고 서 있었다.

 

그 경황중에 이 참혹한 곳에서 이친구가 혼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순간 의문이 생겨 힐끗 그녀를 쳐다보자

 

" 수술실에 환자만 남겨두고 다들 나가셔서,, 그냥 환자분이 외로우실 것 같아서요.."

 

마치 뭔가 잘못했다는 듯이 인턴 선생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내게 해명아닌 해명을 했다.

 

그랬다,,

 

우리가 아무리 경황이 없었기로서니, 아무리 지금 상황이 참혹하기로서니. 불과 10분전까지 웃음을 짓던 환자를 우리는 어느새 "시신"으로 대하고 있었다...

 

주치의인 나는 보호자에게 설명을하러 나가고, 흉부외과에서는 수술자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모두 대기실로 나가고,

 

간호사들은 영안실에 연락하러 나가고, 인턴 선생들은 수술부위를 봉합하라는 지시가 내려질 때까지 그방에서 나가서 담배를 피고,

 

수술실에는 환자만 그렇게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인턴선생과 내가 대충 바닥을 수습하고, 수술실 간호사들이 다시 들어와서 테이블과 시신의 몸에 묻은 피를 딲고,

 

내가 다시 니들홀더와 나일론을 들고 상처를 다시 봉합한 다음 스님이 들어오시게 했다.

 

비록 아까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아졌지만, 수술실은 여전히 붉은 피비린내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채, 수술대위에 환자분의 몸만 홀로 남겨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스님이 수술실에 들어서자, 다른 사람들은 내 지시에 의해 모두 자리를 비켰다.

 

스님은 천천히 테이블 곁으로 다가가시더니, 환자분의 손을 잡고 마치 석고처럼 그자리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스님의 눈에는 눈물도 흐르지 않았고, 속인들처럼 호곡도 하지 않았으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아픔을 호소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자리에 가만히서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속가의 어머니의 몸을 바라보는 스님의 모습에서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극한의 슬픔과 인내를 느낄수 있었다.

 

나도 도저히 그자리에 같이 서 있을 수 없었다.

 

뒷걸음질로 조용히 수술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는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버린 속가의 어머니와, 또 그렇게 다정하던 어머니와의 이별을 맞았던 한 출가자의 끝을 알 수 없는 수억겁의 인연과,

 

집도의,주치의,환자,보호자사이에 얽히고 섥켜 도저히 풀리지 않을것 같은 연기(緣起)의 실타래만 주인없는 수술실에 그렇게 남겨졌다..............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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