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펌] 어떤 이별 (2)

그래서 나도 별수 없는 속인이다.

 

왜 비구니 스님이나, 수녀님이 너무 아름다우면 그렇게 처연해 보일까?

 

출가자는 그저 그렇게 평범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도 출가자가 너무 빛나면 왠지 속인의 관점에서 무엇인가가 텅 비어 버린 것같은

 

느낌을 가지는 것은 단지 나만의 고정관념이었을까?

 

하기는 아무리 두눈을 부릅떠고 본데도 기껏해야 껍데기만을 볼 뿐인 속인의 관점에서 무엇인들 제대로 보일까..

 

어쨌거나 나는 그날 스님과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심장외과에서 내게로 컨설트되어 오신 환자분을 앞에두고, 앞서 말한 상황을 다시 설명했다.

 

일단 심장약을 중단하거나 용량을 줄여서 프로트롬빈 타임 이라는 응고시간을 적정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는 점,

 

아울러 지금 심장의 상태가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닌듯 한데 일단 심장 내과에서 현재의 심장 상태를 다시 한번 평가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담낭의 용종은 자라는 속도로봐서 제거할 수 박에 없다는 점, 그리고 그에 따른 위험들을 환자와 스님께 다시 설명을 드렸다.

 

두분의 반응이 모두 잔잔했다.

 

잔잔하다는 표현 말고는 사실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스님이야 그렇다치고 환자분까지 그랬다.

 

나는 그렇게 잔잔한 분들을 대하면 내가 스스로 흥분하는 버릇이 있다. 괜히 안절 부절하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괜히 불필요한 말이 많아지고,

 

손에 땀이나고 얼굴이 붉어진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내가 대학시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개신교계열의 이상한 신흥종파에 가담해서,

 

그야말로 제 정신이 아니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찾아갔던 분이 "사라" 수녀님이었다.

 

나는 그때 "사라"수녀님께서 내손을 잡고 들려주시던 마귀들린 자매의 이야기와, 마귀들린 사람들을 구제하는 신부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엉뚱하게도 "사라"수녀님의 그 잔잔하고 마치 거울같은 평정심에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잔잔 할 수가 있을까? 저런 얼굴과,몸짓,표정은 과연 어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것일까?

 

 .. 나는 그때 사라수녀님에게서 유함이 가지는 강함의 진정성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으로 실감했었다.

 

그리고 그후 두번째로 스님에게서 아니, 스님 모녀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두분이 모녀라고 했다.

 

속가의 어머니, 출가한 스님.

 

환자분의 보호자로 스님께서 계속 따라나서시는 것을 보면 환자분의 다른 자제분이나 가족은 없는 듯 했지만,

 

그렇다고 두분의 얼굴에서 어떤 고난이나 상처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두분사이에는 출가한 자로서 속가의 인연을 놓지 못하는 갈등이나,

 

꽃같은 나이에 고운 딸을 출가시킨 어머니의 안타까움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두분은 마치 도반처럼, 친구처럼, 혹은 여느 모녀처럼 그렇게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내 설명을 들었다.

 

내 설명이 끝나고 두분은 동시에 아무 말없이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내 생각은 어떠냐는 질문이었을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그렇게 눈이 맑고 몸짓이 고운분들을 뵈면 말을 더듬고, 얼굴이 먼저 달아 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마초적 근성과 같은 얄팍한 것으로서는 아니다.

 

나는 왠지 그런분들의 눈에는 세속의 욕망과 갈애와 희노애락의 때가 묻을대로 묻은 내 영혼이 숨김없이 꽤뚫어보여지고,

 

나도 모르는 내속에서 나도 모르는 또다른 어떤것을 찾아 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희안하게도 신부님이나 비구스님들께는 그렇지 않은데. 수녀님이나 비구니 스님들 같은분들 앞에서는 가끔 그렇게 주눅이 들 때가 있다.

 

어쨌거나 수술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일단 수술을 하기로 작정하고, 환자분의 병력을 자세히 청취하는데, 뭔가 약간 걸리는것이 있었다.

 

수술 후 아직까지 일상생활은 큰 문제가 없는데 최근 몇달간 운동을 하거나 계단을 오르면 숨이 좀 많이 찬다는 것이다.

 

나는 심장수술후의 환자경과도 자세히 알아볼 겸, 또 우리 수술에 필요한 응고반응에 관한 자문도 구할 겸, 겸사겸사해서 심장내과로 일단 환자를 의뢰했다.

 

그런데,심장내과의 회신이 좀 문제였다.

 

뜻밖에도 환자의 심장내막에 물이 차 있다는 것이다. 심장은 그자체만으로 가슴안에서 움직이면 흉곽과 마찰이 생기므로,

 

심장은 원래 얇은 랩과 같은 막으로 둘러쌓여있는데 그 막을 심내막이라고 한다. 그런데 환자분이 심장수술 후 어떤 이유로 심장과 심내막사이에 물이 찼고,

 

이렇게 심내막에 물이 차면 마치 물을 가득넣은 고무풍선처럼 심장이 늘어지기 때문에 심장이 제대로 뛰지않아 숨이 차게된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나는 일단 우리과 수술 일정을 잡은 다음, 다시 환자의 판막수술을 한 심장외과 스텝에게 다시 컨설트를 하면서 컨설트 쉬트에는 이렇게 섰다.

 

" 제게 의뢰하신 환자분 000 님의 담낭 용종은 일단 다음달 15일경 수술하기로 하였고, 지혈문제는 수술전 10일경부터 내과에서

 

코우마딘 복용을 조절해서 수술하기로 하였습니다만, 심장내과의 의견으로 심내막의 삼출액이 과다하여 심장에 부담을 주고 있으므로,

 

심내막의 삼출액을 미리 제거하지 않고서는 전신마취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따라서 동봉한 심장 초음파 사진을 참고하시어 심내막의 삼출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필요하면 환자분을 다시 흉부외과로 전원하겠습니다 "

 

흉부외과 스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방을 찾아왔다.

 

"그분 수술은 잘 된 편인데, 불과 두달전에 우리가 체크 했을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하필 수술을 하려니 두달 상관에 삼출액이 생기다니

 

그리 마음 편한일은 아니군요, 괜히 느낌이 않좋은데 수술을 보류하시지요? 꼭 해야한다면

 

일단 우리가 심장 내막을 조금 절개해서 삼출액을 빼드리는 것은 별거 아닙니다만, 갑자기 그런게 생겼다는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네요.."

 

그랬다.

 

하필 이런환자가 용종이 생기고, 또 용종이 빨리 자라고, 그와중에 담관결석까지 생기고, 그나마 그것을 어렵게 수술하려니 난데없는 심장삼출액이라니,,

 

의사들의 징크스는 이럴때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룰수도 없고, 둘째 우리가 설령 수술을 안한다고 하더라도

 

심장의 삼출액은 무조건 빼줘야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심장에 부담이 가게된다.

 

어쨌거나 현재상황에서 주치의는 나였다.

 

나는 환자와 스님 두분을 다시 불러 상황을 설명했다.

 

" 일단 다음주에 지난번에 수술하신 흉부외과에서 간단하게 국소마취로 심장내막을 조금 찢어서 삼출액을 제거하는 간단한 시술을 할 생각입니다.

 

그렇게되면 심장주변에 고인 물주머니가 사라지게되니까 숨차는것은 좋아지실 것이고, 그후에 약 10일간 항응고제 용량을 조절해서,

 

우리가 정식으로 복부수술을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흉부외과에서 다음주에 하게되는 심막 절개술은 간단한 시술이니 걱정은 마시고요,,

 

다만 저희가 하게 될 수술이 좀 큰 수술이라 신경은 쓰입니다만, 아마 잘 될것이라 믿습니다. 스님도 같이 기도하시고 저희들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두분은 조용히 합장하고 가벼운 미소를 짓는것으로 내말에 대한 동의를 표시했다.

 

 

 

[출처]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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