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펌] 뇌사 (5) - 完 -

그렇게 녀석의 뇌수술이 감행되었다.

 

친구의 아들에게 뇌절제술을 하려는 신경외과 과장님도, 회복에 대한 1%의 기약도 없이 아들의 뇌수술을 받아 들여야하는 부모의 심정도,

 

오로지 녀석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한다는 강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중환자실에서 목을 절개하고, 인공호흡기가 연결된 녀석의 주기관지를 통해 인공호흡기는 끊임없이 "쉭쉭" 소리를 내며 바람을 불어 넣고 있었고,

 

녀석의 가슴 6부위에 연결된 심전도 도자와, 양팔의 동맥으로 연결된 동맥혈 분석기, 경정맥을 통해 주입된 중심정맥압 측정 카데타 등등,,

 

현대의학에서 이용되는 모든 기계장치들이 녀석의 몸을 휘감고 있었지만, 의사인 내눈에도 그것은 가끔 문어의 흡판처럼

 

수십개의 징그러운 촉수를 들이들이대고 있는 괴물처럼 보일때가 있었다.

 

우리는 그때 녀석을 두고 많은 것들을 고민했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의학적 한계와 그것을 뛰어넘는 또 다른 무엇,, 그리고 그것들의 유용성에 대해 거듭 고민했다.

 

사실 이때 의사가 보호자가 아닌 다른 부모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과연 뇌사에 가까운 아들의 머리를 열고 뇌의 일부를 절단하는 수술을 선택 할 수 있을까?

 

나는 병원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죽음보다 깊은 사랑을 목격하기도 했고, 또 그만큼 가족이라는 이름의 이기심도 같이 경험했다.

 

내가 그동안 병원이라는 무대에서 목격한 장면은 이후 내가 사회에서 부딪혀갈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지옥을 같이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같이 뒤를 따르는 처절한 사랑을, 또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부여안고 십수년을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던 남편을, 자식을 떠나보내며 결국 실어증에 걸려 평생 말문을 닫아버린 어머니를,,

 

다른 한편으로는 의료사고의 보상금을 좀 더 타내기위해 여름날 육탈물이 뚝뚝 떨어지는 아버지의 시신을 한달동안 병원 로비에 방치하는 아들을,

 

또 교통사고 합의금을 더 받기위해 홀어머니가 사경을 헤매는 중환자실 앞에서 형사합의금을 더 받아내려고 가해자를 협박하는하는 딸과 사위를,

 

혹은 병원비가 부담이 되어 울며 겨자먹기로 숨이 붙어있는 부모를 들쳐입고 병원을 떠나던 아들딸의 눈물겨운 사연을,.보았다.,

 

그런데 이경우는 과연 무엇일까?

 

가능성이 없는 아들을 위해, 뇌수술을 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이기심일까? 사랑일까? 아니면 집착이었을까..?

 

단지 "나는 부모로서 너를 위해 최선을 다 했노라.."라는 자기선언이었을까? 아니면 살아나기만 한다면 뇌의 일부가 없는 사람으로 살아도 좋으니

 

어떻게던 0.1 % 라도 살아남아서 제발 내 옆에 있기만 해달라는 부모의 애끊는 사랑이었을까?...

 

혼돈스러웠다.,.

..........................

......

 

수술이 이루어졌다.

 

수술전날 녀석의 머리에는 하얀색 비누거품이 칠해지고, 신경외과 일년차가 면도칼을 들고 녀석의 머리카락을 모두 깨끗이 제거했다.

 

녀석의 두피 곳곳에는 암벽에 부딪혀 입은 좌상의 흔적들이 아직도 곳곳에 피멍으로 남아 있었다,

 

녀석이 수술실에 들어가기전, 임상실습을 하던 녀석의 동기생들이 종교를 가리지않고 모두 중환자실앞 복도에 줄을지어 무릎을 꿇고 녀석의 회생을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녀석은 마치 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사열식을 치르듯, 스트레치카에 누운 채 자신의 동기생들이 도열한 복도를 지나 수술실로 들어갔다.

 

마취과에서 마취를 걸고, 신경외과에서 두피를 절개하고 두개골의 앞부분을 열었다.

 

두개골을 자르는 날카로운 전기톱의 소음이 멈추자, 엄청난 뇌압으로 억눌려있던 녀석의 뇌조직들이 열려진 두개골의 앞부분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어렵사리 수술이 마무리지어졌다.

 

신경외과 과장님은 가능한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덜 미치는 부분을 골라 뇌의 전두엽과 두정엽의 일부를 제거했다.

 

일련의 수술과 지혈과정을 거쳐 몇시간만에 수술이 끝났지만, 녀석의 두개골에서 게거된 두개골의 일부는 그자리에 덮여지지 않았다,

 

여전히 뇌가 부어있었기 때문에 두개골을 덮지 못하고, 그대로 두피를 덮어쒸운 채 봉합했기 때문이다.

 

녀석의 수술실에는 신경외과 수술팀 뿐 아니라, 외과 이식팀도 같이 대기했다, 만약 수술중에 환자에게 안좋은 일이 생기면 즉시

 

장기적출을 감행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 모든과정들에서 현기증을 느겼다,

 

혹시 녀석의 수술중에 문제가 생기면 이식수술이 이루어 질 수 있으므로 대기하고 있던 이식수혜자들의 또 다른 실낫같은 희망과,

 

혹시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공여자의 장기를 그자리에서 하베스트하겠다는 우리 이식 스탭의 집요한 의지,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이 가능성 없는 수술을 통해서라도 아들의 회생을 간곡히 기도하는 부모들의 간절한 기도까지...

 

세상의 모든 모순과 삶의 불확정성이 이 모든것에 모여져 있었다.

 

구토를 하고 싶어졌다.

 

삶과 죽음은 무엇일까? 그토록 집요하게 붙들어야 할 만큼 삶이란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들은 ,혹은 우리는 정말 삶에 대한 그 지독한 연민 만큼이나 자기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일까?.........

.....................

....

 

중환자실로 옮겨진 녀석의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수술후 일시적으로 뇌압이 더욱 상승하면서 혈압이 200 까지 치쏟았다, 의료진은 만니톨과 나이푸라이드를 쏟아부으면서

 

녀석의 뇌압을 떨어뜨리고자 안간힘을 섰지만 녀석의 뇌압은 떨어질줄을 몰랐다,

 

그렇게 하루,이틀,사흘,나흘이 흘렀다..

 

녀석의 상태는 다시 수술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뇌를 짤라내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수술로 인해 얼굴이 퉁퉁부은 점과,

 

뇌수술 후 머리에 칭칭 동여진 압박붕대를 제외하면 다시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식물인간,, 녀석의 모습은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벤틸레이터 ( 인공호흡기)의 알람 경보가 울렸다.

 

마침 그 순간을 지나치던 간호사는 "설마.." 하면서 기계를 잠시 살핀 후 무심코 지나쳤다.

 

그로부터 십분 후 다시 인공호흡기의 알람이 울렸을 때는 중환자실이 발칵 뒤집어졌다.

 

우리과와 신경외과뿐 아니라 ,신경과, 호흡기내과,흉부외과, 마취과 의사들까지 모조리 호출되었다.

 

인공호흡기의 CMV 모드에서 경보음이 울린다는 것은 자발 호흡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인공호흡기의 CMV 모드는 사람이 전혀 숨을 쉴 수 없거나, 혹은 약물로 숨을 쉬지 못하게 완전히 근육을 이완시킨 후에 사용하는 모드이다,

 

즉, 사람의 호흡근육은 100% 가만있고, 기계가 체중 1 킬로당 10-12 CC 의 숨을 환자의 폐속으로 불어 넣어주는 모드이므로,

 

만약 이때 환자가 스스로 호흡을 하려고 하면 적당한 간격으로 바람이 들어가고 나오는 기계장치에 혼란이 생기면서 경보가 울리게 되는 것이다.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의 인공호흡기에서 알람이 울렸다..........................

 

이 엄청난 사건은 보호자들 뿐만 아니라 병원의 모든이들을 흥분시켰다.

 

그는 비록 미약하지만 자기 스스로 가슴근육을 움직여 호흡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호흡기를 전공한 의사들이 그의 옆을 지켰다.

 

이것은 그가 동료이어서가 아니라,의학적으로도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이틀 후 그의 인공호흡기의 모드는 SIMV (환자의 자발 호흡이 있을 때 인공호흡기가 숨을 도와주는것,

 

일방적인 인공호흡이 아닌, 환자의 호흡을 보조해주는 모드)로 변환되었고, 그로부터 20일 후 녀석의 목에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녀석의 뇌가 완전히 죽지 않았으며, 후두엽에 있는 숨골이 아직 살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호흡이 돌아왔다고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어쩌면 호흡이 돌아 왓다는 그 사실은

 

이제 녀석과 가족들이 투쟁을 벌여야 할 끝이없는 기나긴 여정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녀석은 뇌사자에서 문자 그대로 녀석은 튜브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손가락 발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완벽한 식물인간으로 전환된 것 뿐이었다.

.............

,...

 

아들을 향한 노선배의 눈물겨운 재활투쟁이 시작되었다.

 

일단 자발 호흡이 돌아온 이상, 다른 기능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는 아들의 병상을 하루동일 지키면서 축 늘어진 팔다리를 움직이고, 자극했다, 심지어 자부담으로

 

EST (전기충격 물리치료기) 를 사서, 녀석의 옆에 두고 치료를 계속했고, 어머니는 하루종일 녀석의 귀에 사랑과 기원을 담은 말들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녀석은 사고 두달만에 드디어 손가락을 불수의적으로 움직이게 되었고, 몸에 자극을 가하면 근육들이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기적이란 말 밖엔 달리 이 상황을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몇달 후 녀석은 그렇게 병원문을 나섰다. 목까지 올라오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호킹박사보다 백배는 더 무력한 모습으로,

 

녀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은 눈꺼풀을 움직이는 것 뿐인 상태로 6년을 공부했던 교정과 학교를 가로질러 천천히 우리곁을 떠났다,,

 

그렇게 녀석은 우리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졌지만, 그래도 녀석과 같이 등반을 했던 친구를 비롯한 녀석의 동기들이

 

그 다음해 인턴으로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했기 때문에, 가끔 녀석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녀석은 필사적인 재활에 매달려 있고, 노선배는 병원을 접고 하루종일 아들의 재활에 매달려 있다고 했으며,

 

지금 녀석의 상태가 아주 많이 좋아져서 몇마디 말도하고, 보조기를 짚고 일어서기도 한다고 했다.

 

정말 기적이었을까?..

 

부모란 그런것일까? 부모에게 자식은 무엇일까? 당신의 뱃속에 자신이 아닌 생명체를 열달이나 품는 어머니의 사랑은 또 어떤 것일까?..

 

어쩌면 그 사랑이 곧 기적일지도 모른다.. 그를 낳아준 부모님, 그를 사랑했던 연인, 그리고 그를 아끼던 수많은 동기생들의 염원이 곧 기적이었을지 모른다..

...............

....

 

 

그로부터 몇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글을 읽는 분들은 정말 믿기어렵겠지만,, 녀석은 그로부터 4년 후 의사국가고시를 통과했다.

 

비록 동기들보다 4년이나 늦었지만 그는 결국 스스로 일어서고, 걷고, 말하고, 생각했다.

 

녀석의 동기생들의 입에서 전해진 얘기로는 최근의 기억중에 일부 구간을 잃어버리기는 했어도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고 학업이나 삶에 전혀 영향이 없는 지적능력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녀석은 올해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시험을 통과했으며 드디어 올 4월말에는 전문의 자격증을 받게된다.

 

아울러 녀석은 마침 이지역에 소재한 모종합 병원을 자신이 전문의로서의 일할 첫 근무지로 선택했고,

 

때문에 지난주에 그 병원에 들러 미리 부임절차를 밟은 다음, 인사차 선배이자 당시 자신을 치료한 담당의사중의 하나였던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날 녀석과 함께 안동댐의 까치구멍집에서 헛제사밥을 먹고 들어와 이글을 쓴다..

 

삶과 죽음...

 

내가 그 당사자가 되기전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지 할 수 있을까...?

 

혹은 내가 그 당사자가 되었을 때 과연 얼마나 초연 할 수 있을까...? 나는 혹은 당신은 삶에 대해 얼마나 충실할 수 있을까..

 

그의 극적인 삶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렵고도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출처] blog.naver.com/donodonsu

6개의 댓글

2013.10.19
장기기증을 위해 했었던 과정이 아이러니하게 환자 본인이 살아나게된 계기가 됐다는게 참 아이러니네
환자는 살아나서 기뻤겠지만 이식 대기자들은 또 절망으로 빠졌을거라 생각하니 삶과 죽음의 경계가 종이 한장 차인거 같음

잘봤다
0
2013.10.19
애초에 벼랑에서 거의 뒤질뻔한것도 하늘의 뜻이었지만
부모의 지극정성에 반해 회복시켜준것도 결국 하늘의뜻 아니것음?

만약 부모가 뇌수술감행 안하고 장기기증 시켰으면은 맨처음 하늘이 의도했던 대로 풀린것이었을듯
0
2013.10.19
@양파맨
논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어서 웃는 거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군요
0
하늘의 뜻?
그딴게 어딨냐

이게 다, 한 생명을 살리려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 때문 아니겠냐..
0
2013.10.20
내가 누워서 꼬추 긁으면서 개드립 하는것도 하늘의 뜻인가ㅋㅋㅋ
0
2013.10.20
덕분에 재밌는 글 잘 봤다 ㅋㅋㅋㅋ 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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