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2ch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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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까지 앞으로 2주일.
주역으로 쓰는 게 처음이라 느릴지도 모르지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해서 스레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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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5년이나 지난 이야기지만...
초등학교때 나한텐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소꿉친구인 여자아이.
언제부터 좋아했던 건진 기억나지 않는다.
내 마음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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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상대가 누구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는 정반대인 성격. 덕분에 싸움도 많이 했다.
일단 그 아이의 이름은 가명으로 사키라고 해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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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땐 아침마다 집단 등교를 했다.
내가 살던 곳은 학교까지 가는데만 4 킬로미터가 넘는 시골이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동갑인 여자아이는 사키뿐이었고,
그보다 어린 아이는 사키 여동생과 남동생뿐.
연상은 우리 누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와 사키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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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5년때 나는 이미 사키에게 완전히 반해있었다.
평소 별 재미없는 이야기를 나눠도 기분이 좋아서
이상할 정도로 텐션이 높아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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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의 생일은 12월 24일이었다.
사키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을 무렵,

사키 [난 생일이 크리스마스라서 선물을 한번 밖에 못받아.]

사키 [동생들은 생일이랑 크리스마스 선물을 각각 따로 받는데.]

이런 푸념을 들은 적 있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5학년 크리스마스때,
누나한테 조언을 받아 반년간 모은 용돈으로 사키에게 선물을 했다.
당시 유행하던 가수의 CD와 곰 봉제인형.
선물을 줬을 때의 활짝 웃는 얼굴.
그때의 추억은 아직도 내 안에 선명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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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귄다던가 하는 관계는 되지 않았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야구 클럽에 소속해 있었지만, 
사키랑 같이 집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연습을 자주 쉬었다.
덕분에 한번도 주전 선수로 뽑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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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이 되서도 그런 상태였다.
헌데 마지막 공식 대회가 2개월 앞으로 다가왔을 무렵,
사키가 시합 응원하러 가고 싶단 말을 꺼냈다.
나는 연습을 자주 쉬어서 야구 실력이란곤 그저 그런 상태.
감독이 몇번이나 주의 줬지만, 그때쯤에는 날 완전히 방치하고 있다.
시합에 부를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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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와서 나가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나 [조, 좋아! 나한테 맡겨둬! 내 활약으로 우승해보일테니까!]

이런 사망 플래그.
평소 폼을 잡으며 연습하러 가지 않아도 시합에서 활약할 수 있다고
뻥을 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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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다음날부터 연습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감독은 뭘 이제와서, 라는 느낌으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동급생이자 야구 클럽 주장인 H는 이유를 헤아려준 것 같았다.

H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죽을 생각으로 해봐.]

이 때 처음 알았지만, 
내가 사키를 좋아하는 걸 반 아이들 전부 알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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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부터 나는 무모할 정도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간 연습 못한 만큼을 따라 갈 수 있으리라 생각진 않았지만, 
우리 클럽은 인원수가 적은데다 6학년은 날 포함해 5명뿐.
그러니 어쩌면 스타팅 멤버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 찬스를 살려 활약할 수 있도록.... 
아니 최소한 한심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노력했다.

처음에는 별 신경 쓰지 않던 감독도 내가 노력하는 걸 보고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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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 1주일전.
슈퍼에 어머니를 따라 갔다가 사키네 어머니를 만났다. 
가족들 모두 알고 지내는 사이라 어머니들끼리 잡담을 나누던 중
갑자기 사키네 어머니가 나한테,

사키 어머니 [그러고 보니 xx군, 좋아하는 도시락 반찬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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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질문에 놀라서 가만히 있자니 어머니가

어머니 [아, 이 아이? 계란 부침을 좋아해.]

그렇게 웃으며 대답했다. 왠지 부끄러웠다.

사키 어머니 [그래? 사키가 고민하는 것 같던데, 알려줘야 겠네.]

그걸 듣고 어머니는 또 싱글 벙글하며 웃으며,

어머니 [어머나~ 그런 거였어?]

시합 날 사키가 도시락을 싸온다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 일을 가지고 나를 놀렸다.

나 [딱히 특별한 건 아냐!]

겉으론 그렇게 말했지만, 내심 너무 기뻐서 몸이 붕 뜨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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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동안 지금 생각해봐도 기분 나쁠 정도로 들뜬 상태로 보냈다.
학교에서 사키랑 만나면 얼굴을 빨갛게 붉히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남자애들한테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야구 연습 하던 중 동급생인 K한테 한대 맞았다.
K는 사키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걸 알고 괜시리 더 K한테 자랑 하다 K가 던진 공에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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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시합 전날,
연습은 빨리 끝났기 때문에 근처 신사에 가서 
시합 도중 활약할 수 있기를 빌었다.
저녁 밥을 먹던 중 내일 사키가 싸올 도시락이 생각났다.
덕분에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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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시합날 당일.
감독이 아침밥은 든든히 먹고 오라고 했지만,
도저히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냐면 나한테는 사키가 만들어온 도시락! 이라는 
최강 아이템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외할머니에게 아침밥을 든든히 먹어야 힘낼 수 있다며 꾸중 들었지만
이유를 알고 있는 어머니는 그저 웃기만 했다.

누나가 그런 거 맛있을 리 없다고 말했지만...
괜찮아, 나는 누나가 만든 카레보다 맛없는 건 모르니까.
결국, 된장국을 원샷하고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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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장에는 어머니와 함께 8시가 되기전 도착했다.
어머니는 오늘은 야간 근무니까 시합 보고 나서 일하러 갈거라면서, 
관중석에 있는 야구 클럽 학부모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사키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 팀 시합 순서는 4번째 였기 때문에 11시부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시간에 맞춰서 올 거라고 했지.
분명 지금쯤 도시락을 만들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웃는 게 멈추질 않았다.
주장은 나를 놀리며 웃었고, K는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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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식 이후  3번째 시합까지 끝나 마침내 우리 차례가 왔다.
나는 우익수로써 스타팅 멤버로 참가할 수 있었다.
1회전 상대가 우리보다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덕분이었지만
처음으로 스타팅 멤버가 될 수 있었던 것에 순수하게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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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팀이 정렬한 뒤 인사.
시합 개시, 후공이었기 때문에 수비자리로 달려갔다.
외야에서 관객석을 봤지만 사키는 아직 오지 않았다.
버스로 온다고 했는데, 늦진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중 플라이볼을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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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한 게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에 이후부턴 시합에 집중했다.
그리고 공수가 몇번에 걸쳐 바뀐 뒤 내 첫타석이 왔다.
타석에 서기 전 관중석을 봤다. 
아직도 오지 않았다.
아니 찾아내지 못한 것 뿐이야...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시합에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시합동안 3타수 2 안타라는 기적같은 성적을 냈다.
신사에 기원한 것이 통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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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이 끝나고 애타게 기다렸던 점심 시간.
클럽 아이들이 모여 학부모들이 싸온 주먹밥을 먹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도시락이 있다.
주장과 팀 아이들한테 격려받으며, K의 떨떠름한 시선을 받으며
관중석으로 갔다.
사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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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황했다.
관중석 구석 구석까지 뒤졌지만 어디에도 사키는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동안 관중석을 배회하고 있던 중 어머니가 나를 발견했다.
사키가 안보인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같이 사키를 찾기로 했다.
처음에 어머니는 차인 거 아니냐며 웃으며 말했지만,
점점 진지한 얼굴로 바뀌더니 

어머니 [잠깐 전화하고 올테니까 아이들 있는데 가 있어.]

그러면서 어디론가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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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있는 곳에 돌아왔더니 감독이나 아이들이 나를 놀렸다.
하지만 내 기색이 이상하단 걸 알고 모두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꼈다.

H [무슨 일이야?]

주장인 H는 나를 걱정해줬다. 안 왔다, 라는 나의 말에.

H [그래...] 

이 한마디만을 했다.
K는 날 보며 웃고 있었다.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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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2회전 시작해야 되니까 어서 밥을 먹어둬.]

하지만 주먹밥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2회전도 1회전처럼 스타팅 멤버 였지만, 할 의지가 사라진 상태였다.
2회전은 선공이었다. 
팀 타선이 연결되어 결국 내 차례까지 왔다.
분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타석에 들어섰다.
처음 공은 헛스윙
관중석을 봤다. 역시 오지 않았다.
2 스트라이크, 2 볼.
그 때, 감독이 타임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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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이나 연습에 엄격한 감독이니, 내 기운빠진 스윙에
분명 화가 난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감독의 손짓에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덕아웃에는 어머니가 서있었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어머니 [사키가...여기 오다가 사고를 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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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어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어머니 [지금 병원에 가봐야 된단다.]

그러면서 내 손을 잡아 당겼지만,

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시합중이라구!]

그렇게 소리치며 타석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감독이 내 목덜미를 낚아챈 뒤,

감독 [그렇게 힘빠진 스윙을 하는 녀석은 내보낼 수 없다. 교체야.]

이 말에 나는 더욱 더 곤혼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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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싫어! 난 그런 거 몰라!]

그렇게 말도 안되는 생 떼를 썼지만,

어머니 [정신 차려!]

내 어깨를 잡으며 소리치는 어머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난 그걸 보고 단번에 절망감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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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어머니는 사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밖에 몰랐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쁜 쪽으로 생각하지 말라며 나를 격려해줬다.
그 말에도 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다만, 제발 이게 질 나쁜 농담이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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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도착했다.
어머니가 접수대에서 병실을 물어 보고 있을 때
나는 대합실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앉아 있으면 사키한테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내 돌아온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집중 치료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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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사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사키 어머니는 평소의 밝은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울고 있었다.
사키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나 초췌했고, 잘보니 오른손 손등이 붉었다.
사키 어머니가 달려와 나를 껴안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해줬다.
사키는 그 날 아침, 빨리 일어나 도시락을 만들었다.
헌데 계란 부침을 잘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몇번이나 만들어서 간신히 완성했다.
계란부침에 시간을 너무 잡아 먹은 사키는 서둘러 집을 나와 
버스 정류장에 가는 도중 졸음 운전을 하던 차에 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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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를 처음 사키를 친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전신주에 부딪힌 사고라 착각했다고 한다.
결국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에서야 알았다고.
그 후 당황하며 구급차를 불렀지만, 응급처치를 하지 않고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차안에서 떨고 있었다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니 그후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일을 알게된 사키 아버지가 상대 운전자를 때렸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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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치료실 안에선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밖에 본 적 없는 기계들이 잔뜩 보였다.
하지만 사키의 모습은 안 보였다.
기계와 의사, 간호사들 때문에 그녀의 얼굴이 안 보였다.
언제나 옆에서 보아왔던 그녀의 얼굴이 안 보였다.
나는 그녀를 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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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상황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두세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사키 부모님은 그런 말을 들은 듯 했다.
사키 어머니는 나한테 숨기지 않고 말했다.
뒤에서 어머니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울면 사키를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가 일하러 가셔야 했기에 오늘은 이만 가자고 말했지만,
나는 싫었다. 가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 [마음은 알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어머니는 그렇게 설득하려 했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키 아버지 [제가 나중에 집까지 데려다 주겠습니다.]

사키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나를 부탁한단 말을 남기고 
병원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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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나간 뒤 사키 어머니가 종이백을 가져다 주었다.
그게 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도시락이었다.
오늘 시합에 가지고 오려 했던 도시락.
안에는 도시락상자와 젓가락, 작은 부적이 들어 있었다.
필승을 기원하는 부적.
도시락 상자를 열자 사고를 당했다는 게 거짓말처럼 보일 정도로
깨끗하게 놓여진 밥, 반찬, 그리고 계란부침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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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보자 또 울고 싶어졌다.

사키 어머니 [먹어 주겠니?]

그 말에 나는 사키가 만든 도시락을 먹었다.
계란부침을 하나 먹었다.
달다.
분명 설탕을 한가득 넣은 것 같다.
녹지 않은 설탕 덩어리가 씹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끝까지 울지 않고 도시락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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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을 다 먹은 나는 지금 보이지 않는 사키에게,

나 [맛있었어.]

하고 말을 걸었다.
유리창 너머로 그 말이 들렸을지는 의문이지만.
선물을 건네줬을 때 활짝 웃던 사키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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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면회 시간이 끝날 때까지 병원에 있었다.
사키 아버지가 나를 집까지 바래다 줬다.
집에 돌아오니 누나가 울면서 나를 꼭 껴안아줬다.

누나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나는 내 방에 돌아왔다.
그 날 밤은 잘 수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하룻동안 있었던 일이 한꺼번에
머리속에 흘러 들었다.

나 [괜찮아. 분명 괜찮아.]

나는 몇번이나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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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교실이 조용했다.
사키가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진 것이다.
주장인 H가 나한테 와서 괜찮냐고 물었다.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던 K가 울고 있었다.
반 여자아이들도 몰려와서, 사키가 괜찮은지 물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헌데 그걸로 일이 심각하단 걸 간접적으로 느낀 아이들은
웅성 웅성 떠들기 시작했다.





69

병문안을 가자던가, 천마리 학을 접자는 아이들
울기 시작한 여자 아이들.
그저 떠들기만하는 남자 아이들.
그러다 갑자기 K가 크게 소리쳤다.

K [이건 전부 네 잘못이야! 네가 나쁜 거라구!]

K는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70

교실이 다시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내가 폼을 잡으며 시합 나가겠단 생각만 안 했다면...
내가 계란 부침을 좋아한다고 아줌마한테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사키한테 도시락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내가 사키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여자아이들이 K를 비난했다.
주장이 나한테 달려들려는 K를 붙들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남자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소란을 듣고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 왔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토했다.





72

담임 선생님 손을 잡고 양호실에 간 것까지는 기억하지만
그 날 어떻게 보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방과후 마중 나온 어머니가 또 병원에 데려다 주었지만
사키의 병실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담임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어머니 [네 책임이 아냐!]

사키 부모님도 그렇게 말하며 격려해 줬지만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74

다음날부터 학교를 쉬었다.
병문안 이외는 집에서 나가지도 않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전부 너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비난하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나 누나가 매일같이 해주는 격려의 말에도
불쾌한 기분밖에 들지 않았다.





76

식사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하루종일, 이불 안에서 보내며 문병갈 때만 방에서 나왔다.
사키는 변함없이 의식을 차리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조금이지만 회복될 조짐이 보인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아주 조금 마음을 놓았다.





78

얼마 뒤 사키는 집중 치료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
한달 반이란 시간이 지나 처음 본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없었다.
손을 잡아도 반응이 없었다.
그저 자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에게

나 [도시락 고마워. 맛있었어.]

그렇게 말했다.
면회를 끝내고 병원에서 나오자 격렬한 자기 혐오를 느꼈다.
그녀를 저렇게 만든 건 내 책임이란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81

다시 방에 틀어 박힌 생활을 계속했다.

그 무렵의 나는 그저 그녀의 문병을 하러 가기 위해서만 
살아 있는 것 같은 상태였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해 할아버지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철이 들기 전 이혼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친가에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1년에 한, 두번 정도 만날 뿐이지만, 
할아버지는 나랑 누나를 아주 귀여워해주셨다.
운동회도 보러와주셨고, 추석에는 할아버지 집에서 보내기도 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아주 좋아했다.





83

할아버지는 내방에 와서 나를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나를 방에서 끌고 나왔다.
나는 격렬하게 저항했다.
할아버지는 나한테 얻어 맞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화내지 않고 나를 달래면서 차에 태웠다.
차에 타서 한동안 간 끝에 도착한 곳은  할아버지네 집이었다.
이 때까지 나는 꽤 지독한 욕설을 마구 내뱉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85

도착하니 할머니가 저녁 밥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나를 보며,

할머니 [어서 오렴.]

단지 한마디를 한 뒤 저녁 밥 준비를 계속하셨다.
분명 처음부터 날 데려올 생각이었을 것이다.
저녁 밥은 3 인분이 준비되었다.





86

할머니가 밥공기를 내밀었지만,

나 [필요없어!]

그러면서 받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무 말없이 밥공기를 내 앞에 두었다.
결국 밥은 먹지 않았다.





87

다음날 아침 일찍 할아버지가 나를 깨웠다.

할아버지 [일 좀 도와주지 않을래?]

할아버지네 집은 농가였는데, 그 일을 하러 따라오란 것이었다.
이때도 나는 고함을 쳤다.

나 [마음대로 끌고 와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 [집에 돌려보내줘!!]

그러면서 마구 아우성쳤다.
할아버지는 내 말에 한마디로 대꾸하지 않고,

할아버지 [일 좀 도와주지 않을래?]

단지 그 말만 했다.
난 마지못해 심부름을 해야 했다.





89

심부름이 끝나자 말도 안되게 피로했다.
아침 식사도 안하고 일했으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일.
할머니가 아침 밥을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아무 말 없이 찻잔을 내 앞에 두었다.
그리고, 계란부침.
그것을 본 순간 눈물이 넘쳐 흘렀다.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눈물이었다.





92

할아버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들어 알고 있어.]

할아버지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게지. xx는 인내심이 강하니까.]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할머니는,


할머니 [자아, 많이 먹으렴. 많이 먹어서 기운을 차리는 거야.]

그러며 미소지어 주셨다.
밥을 한입 먹을 때마다 눈물이 흘러 넘쳤다.





95

식사가 끝나자 단번에 긴장이 풀려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사키와 만났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녀의 웃는 얼굴.
눈을 떴을 때 나는 또 울고 있었다.
할아버지한테,

나 [병문안 하러 가고 싶어요.]

라고 말했더니,

할아버지 [그래, 가자 꾸나.]

그러며 또 미소지어 주셨다.





97

출발하기 전 할머니가 나를 꼭 껴안아 주셨다.

할머니 [뭐든 틀어 안고 있으면 병이 난단다.
           지금은 자신이나 남의 탓을 하고 있을 때가 아냐.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만을 생각하렴.]

할머니는 그리 말하셨다.
지금도 이 말이 내 마음속에 깊게 박혀 있다.





98

병원으로 가는 도중 할아버지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해주시며,

할아버지 [당시 나도 그 일을 후회하며 괴로워했어.
             하지만 지난 일을 후회해봤자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았지.

             그래서 나는 후회하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걸 선택했단다.
             지금 네가 해야할 일도 바로 그것이야.]


그 격려는 그 누구의 말보다 따뜻했다.





99

병원에서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나에 대해 몹시 걱정하고 있었다. 

나 [이제 괜찮아요.]

담임 선생님 [목소리가 밝아진 것 같네. 다행이야.]

그리고 사키를 만났다.
단지 이틀밖에 만나지 못했을 뿐인데,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00

병실안에는 종이학과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어제, 반 아이들이 가져온 것 같았다.
사키 부모님도 계셨다.
나를 웃는 얼굴로 반겨 주셨다.
사키 손을 잡자 반응은 없지만 체온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10

돌아오는 길에 사키 어머니에게,

사키 어머니 [어제, 의사 선생님이 상태가 점차 호전되고 있다고 했어. 
                  언제 눈을 뜰지는 모르지만 
                  목소리는 들릴 테니까 말을 걸어 주라면서. 

                  그러니까 xx 군, 사키를 격려해 줘.]

내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사키 어머니는 몇번이나 고맙다고 말했다.
그 말은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103

다음날부터 나는 학교에 나갔다.
처음에는 반아이들이 나를 걱정스렇게 보는 게 괴로웠지만,
그 시선도 곧 이어 사라졌다.
다만 K는 변함없이 나를 적의에 가득 찬 눈으로 쳐다 봤다.
그 날 이후 K는 반아이들과 멀어진 것 같았다. 
교실 구석에서 혼자 있는 일이 많았다.
H는 지금까지 나간 수업 진도를 가르쳐 주거나 하면서
며칠 동안 내 뒷바라지를 해줬다.
그러다 마침내 12월달이 왔다.





105

12월 24일은 그녀의 생일.
나는 그 해에도 선물을 두개 준비했다.
크리스마스 선물과 생일 선물.
고민한 결과 음악 CD와 CD 플레이어를 주기로 했다.
소리는 들린다고 했으니까.
세배돈과 지금까지 저금해온 것을 전부 사용해 선물을 구입했다.
작년에는 기뻐하는 얼굴을 보여줬지만...
올해는 자는 모습밖에 볼 수 없었다.





106

생일 축하합니다, 라고 사키 부모님과 동생들이 말했다.

나 [축하합니다. 올해는 이거 가져왔어.]

그러자 조금이지만 사키의 혈압이 올랐다.

사키 어머니 [기뻐하는 것 같네.]

사키 어머니의 말에 조금 쑥스러워졌다.





107

그 해 그믐날이나 정월도 그녀의 병실에서 보냈다.
2월이 지날 무렵, 절망적이었던 그녀의 상태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의사는 위험한 상황은 지났다고 진단 내렸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08

사키는 졸업식에 나올 수 없었기에, 내가 졸업 증서를 가지고 갔다.

나 [졸업 축하합니다.]

이렇게 말했더니 또 사키의 혈압이 올랐다.




109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같은 반에 초등학교때 동창 몇명이 같이 올라왔다.
H와 N, L이란 여자애 두명, 그리고 K 였다.

H [또 잘 해보자구~]

K는 그 이후 이야기 나눈 적 없지만, 나를 노려보진 않게되었다.
중학교에서 새 친구를 사귄 것 같았다.





110

입학식이후 1개월 정도 지나 4월의 마지막.
사키가 눈을 떴다는 연락을 받은 나는 바로 교실을 뛰쳐나왔다.





111

수업 도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실에 들어온 어머니한테 놀랐지만
그보다도 사키가 눈을 떴다고 하는 말이 더 기뻤다.
담당 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H가

H [빨리 가라!]

했던 소리만이 귓전에 남아 있다.





113

병원에 도착하니 사키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있는 사키.
사키와 시선이 마주쳤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될까, 망설이고 있던 중

사키 [너무 많이 바뀐 거 아냐?]

허스키한 목소리로 사키가 말했다.
나는 정말 큰소리로 울었다.





117

사키의 손을 잡으며 울었고, 도시락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며 울었다.
사람이란 이렇게 많은 눈물을 쏟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사키는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얼굴이 조금 야위었지만, 사키가 웃는 걸 마침내 볼 수 있었다.





120

그리고 일주일, 나는 학교 수업을 빼먹고
매일아침, 병원에 가서 하루 종일 사키와 이야기나눴다.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만큼의 이야기를.
너무나 행복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122

내가 교실을 뛰쳐 나온 뒤 일주일.
간만에 등교해보니 교실 분위기가 이상했다.
H는 사키의 회복을 기뻐해주었다. 
그렇게 이야기 나누는 건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반애들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123

그리고 점심시간.
다른 반이라 생각되는 한번도 본 적 없는 불량배가 나한테 와서,

불량배 [너, 사람 죽였다면서?]

나는 뭐가 뭔지 몰랐다.





124

그리고 나를 노린 괴롭힘이 시작됐다.
무슨 이야기가 어떻게 전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괴롭힘이란 건 처음에는 이유가 있어도 이후에는 별 의미없이 진행된다.
난 그 이유가 되는 것도 모른 채 괴롭힘 대상이 되었다.





126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내가 교실에서 나간 직후
무슨 일인지 모르는 반 아이들에게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던
여자애 L과 N이 나랑 사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드라마 같다며 나에 대해 좋게 말하는 여자애들도 있었는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무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내가 없는 사이, K가 그 애들한테 나에 대한 험담을 퍼뜨렸다.
이것이 괴롭힘의 시작.
하지만 괴롭힘이 후반에 달했을 때는 그런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128

사키는 눈을 뜬 후에도 상당 기간 입원해있어야 했지만, 
하루가 지날수록 안색이 좋아졌다.
병문안 하러 갈 때는 학교일을 숨기고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내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한 사키가,

사키 [무슨 일 있어?]

...라고 묻는 일이 잦아졌다.

나 [응? 아무 일도 없는데.]

이런 대답을 나누는 게 어느샌가 당연해졌다.





130

그러다 한가지, 아주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됐다.
사키가 평생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133

사키 부모님은 몹시 슬퍼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결심했다.
내가 평생 사키를 지지하겠다고.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꼬맹이 였지만, 
이 때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35

얼마 지나지 않아 사키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 들을 듯 했다. 하지만,

사키 [난 살아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

그렇게 밝게 말했다.

사키 [아빠, 엄마, 미안해요. 난 괜찮으니까.]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울고 있었던 주제에...강한 척 하기는.





139

나에 대한 괴롭힘은 점차 심해졌다.
경험한 사람은 알거라 생각하지만.
실내화가 사라지거나 내몫의 급식이 없는 건 기본이 됐다.
하지만 굽히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이때쯤 H는 날 괴롭히는 녀석들을 막으려 
이리 저리 바쁘게 돌아다녔다.





143

중학교 1학년, 마지막 학기
사건이 일어났다.
그 날은 눈이 많이 왔다. 
드물게 쌓일 정도로 눈이 많이 오자 반아이들 대부분이 흥분했다.
그 날 점심시간.
나는 등뒤에서 눈덩어리를 맞았다.
범인은 다른 반 불량배.
처음에는 한명이었지만, 점점 인원수가 늘어났다.
그러다 눈덩어리가 아닌 얼음덩어리를 던지는 녀석도 나타났다.
이마에 얼음 덩어리가 부딪히자 찢어졌다. 피가 흘렀다. 
여자애들이 비명을 지르며,

여자애 [그만해! 너무 하잖아!]

그러자 불량배 녀석이,

불량배 [저 새끼는 죽어도 돼! 맞아 뒈져라!] 

그렇게 말하며 얼음을 계속 던졌다.




144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반격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이미 그 불량배한테 달려든 사람이 있었다.
H 였다.
H는 불량배를 마구 두들겨 패서 코피를 쏟게 만들었다.
이게 원인이 되서 H는 정학 처분을 받게 된다.





145

이 사건은 결국 학부모 회의에 알려지게 됐다. 
나는 학교에서 특별 취급 받기 시작했다.
마음놓고 학교에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된다





149

결국 사키도 이 사건을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걱정을 끼쳤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결국 나는 전학을 가기로 했다.
계기는 자신이 사는 곳에 오지 않겠냐는 할아버지의 권유
할아버지네 집은 꽤나 먼 곳이라 사키를 만나는 게 힘들어지지만,
사키에게 더 이상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전학을 가기로 했다.





151

사키에게 전학가게 됐단 이야기를 했다.

나 [지금처럼 자주 올 수 는 없어. 하지만 휴일에는 꼭 올께.]

사키 [지금처럼 자주 오는 게 이상한 거야. w]

라고 말해줬다. w
H 에게도 전학가게 된 걸 말했다.

H [...친구인데도 힘이 되주지 못했어. 미안.]

그러면서 아주 진지하게 사과했다.
그렇지 않아.
너는 나한테 아주 큰 힘이 되줬으니까.
내 인생에서 너 같은 친구와 알게 된 건 평생 자랑할 일이야.
고마워.





152

전학을 가게 되니 주변 환경이 극적으로 변했다.
전학간 중학교는 학년 인원수가 꽤 적은 곳으로,
나만 빼고 반애들 전원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었다.
하지만 전학생인 나를 꽤나 시원스레 받아들여줬다.
사키랑 나눈 약속대로 휴일이 되면 만나러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사키도 퇴원했다.





155

나는 졸업하고 나서 할아버지네 집 근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내심 친가쪽에 있는 고등학교로 가고 싶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나이가 너무 많으신데. 두분만 생활하게 하는 것도
걱정되었기 때문에 이쪽으로 결정했다.
16살이 됐을 때 생일날 오토바이 면허증을 땄다.
이걸로 사키네 집에 언제든 갈 수 있게 됐다.





156

학교 허가를 얻어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그리고 휴일은 오토바이를 타고 사키네 집에 가서 보냈다.
고등학교에서의 친구도 많아져 충실한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158

그때쯤부터 였다. 
생각에 잠긴 사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건.
슬프다고 할까, 그런 표정을 자주 지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교육을 통신교육으로 받고 있었다.
처음에 그 표정을 봤을 때 내가 즐거운 듯이 고등학교 생활을
말했기 때문인가 싶어 그 이야기를 삼가했지만.
그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는지, 때때로 아주 슬픈 얼굴을 보였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지만 참고 있는 것 같았다.





161

또 다시 12월 24일이 왔다.
사키의 생일.
이 날 나는 또 선물 두개를 가지고 갔다.
목걸이와 그녀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





162

평소처럼 선물을 건네줬다.

나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해피 버스 데이 투 유~]

처음에는 고맙다고 말하며 웃었지만, 
이내 그녀의 눈매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그녀가 우는 이유를 알 지 못했다.





163

사키 [이제 더이상 나한테 맞추지 않아도 돼. 
        앞으로는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녀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키 [나는 이제 걸을 수 없어. 분명 평생 네 인생에 짐이 될 거야.
        넌 나한테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해.]

사키는 울면서 말했다.

나는 보통 사람과 달라.
앞으로 계속 함께 인생을 걸어가기엔 짊어져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지금까지 내 이기심만 내세워 함께 있었지만...
이제부턴 네가 원래 가야했을 길을 갔으면 해.

...그렇게 말했다.





164

그리고,

사키 [안녕, 잘가.]

내 머릿속은 새하얗게 됐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 방 침대 위에서 울고 있었다.




166

격렬하게 후회했다.
어째서 그녀의 괴로움을 깨닫지 못했는가.
어째서 그녀가 그걸 걱정한다는 걸 깨닫지 못했는가.
어째서 그 때 아무 말도 못했는가.
나는 한 사람의 평생을 지탱한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꼬마의 제멋대로인 고집을 지금까지 질질 끌어온 것이
그녀를 얼마나 괴롭게 했던 건지 몰랐던 것이다.
나는 또 자신을 혐오하게 될 것 같았다.





168

할머니 [지금은 자신이나 남의 탓을 하고 있을 때가 아냐.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만을 생각하렴.]


할머기가 해주신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 거지?
대답은 하나였다.
나는 사키와 함께 하고 싶다.
그것이외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중학교때의 치기어린 생각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169

그렇게 결정했을 때 생각지도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사키의 동생이었다.

동생 [언니, 이거... 들으면서 계속 울었어요.
        어제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아서...걱정되서 찾아왔어요.]

건네 받은 것은 내가 선물했던 음반.
이 노래가사를 자신과 겹쳐 생각한 것일까.
덕분에 사키의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었다.





170

사키의 동생에게 편지를 건네줬다.
사키에게 보내달라며.
내용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필사적으로.
기다려 달라고 적은 게 기억난다.





171

그리고 남은 시간을 전부 수험 공부에 쏟았다.
평소 성실하게 공부한 덕분에 성적은 좋았고, 
결국 국립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일류 대학은 아니었지만 만족할만한 레벨이었다.





172

한시도 쉬지 않고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동안, 나는 사키와 만나지 않았다.
주고 받는 건 메일 뿐, 그 마져도 횟수가 꽤 줄었다.
그녀는 의류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었다.





173

이어진 대학 졸업.
일류는 아니지만 직장도 정해졌다.
드디어 나는 모든 준비를 끝냈다.





177

작년 12월 24일.
나는 다시 한번 더 사키를 만나러 갔다.
이전처럼 두개의 선물을 들고.
하나는 코트.
하나는 반지.
나는 그녀에게 프로포즈했다.





181

나 [앞으로도 계속 내옆에서 웃는 얼굴을 보여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지금까지 내안에서 계속 숨기고 있었던 말.





183

그리고 올해 12월 24일.
그녀와 결혼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과 생일 선물은
웨딩 드레스와 러브 레터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온 것 처럼, 앞으로도 그녀를 사랑할 겁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85

수고했어!
행복 하게 잘살아!!




190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이야기였어.
사키씨를 행복하게 해줘라! 이 자식아!




191

수고했습니다.
새벽에 이런 이야기가 자주 올라오니까 곤란해요. www
사키씨와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사세요.




192

>>1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줘.




205

눈에서 콧물이 마구 흐르고 있어!!
행복해라!!




210

추울 때는 이런 따뜻한 이야기도 좋지. ww
행복해라. 그리고 다시는 사키씨를 울리지 마 www







256

그리고 두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11개의 댓글

2013.11.24
하루 5개가 제약인가...
0
2013.11.24
하이런거 진짜 좋다 ㅠ...
0
아 진짜 너무 좋다
0
2013.11.24
초집중하며 봤다...이런 가슴깊이 다가오는 수레는 처음이야 ㅠㅠ
0
2013.11.24
진심 드라마같다..ㅠㅠ 눈물날거같애..ㅜㅜ
0
2013.11.24
잘도 지어내내
0
중복인데.. 기대하면서 들어왔지만
0
2013.11.26
K 시발롬 명치존나때리고싶다
0
2013.11.28
피아노 선율이 너무좋아서 나갈수가 없잔아 젠장

이야기 겁나 감동적이네 젠장

난 안될거야 남중남고공대군대라고 씨발 젠장
0
2013.12.11
12월 24일 나도 생일이라서 추천 ㅋ
0
2013.12.11
ㅠㅠ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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