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펌] 뇌사 (2)

인공 호흡기가 부착되었다는 것은 단지 사람의 손으로 불어 넣던 숨을 기계가 대신한다는 것,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신경외과에서는 만니톨-코마 테라피 라는 레지멘을 이용한 만니톨과 안정제 투입외에는 달리 다른 수단이 없는

 

그야 말로 속수무책의 상황이었다. 소변량은 무서운 속도로 증가했다. 뇌부종을 가능한한 신속히 줄여주지 못하면

 

뇌 자체의 압력으로 뇌 조직의 괴사가 일어나므로 어떻해서던 뇌압을 낮추어야 했고,

 

그러자면 고농도 삼투압을 지닌 만니톨을 투입해서 몸안의 수분을 가능한한 밖으로 빼내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뇌 부종을 가라앉히기 위해, 만니톨을 계속 투여하면 뇌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만큼 몸안의 수분이 수분이 급속도로 사라지게 되고,

 

그것은 곧 최종적으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변량이 계속 증가했다.

 

그렇다고 뇌부종이 줄어들지도 않는데, 만니톨은 계속 주입되었다.

 

우리는 신경외과에서 하는 일이라, 지켜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이 상태가 하루종일 지속되자 더 이상 지켜 볼 수가 없었다,

 

사실 환자는 신경외과 소속이고 신경외과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지만, 신경외과에서도 만니톨- 코마 레지멘 외에는

 

달리 해줄 것도 없었고, 오히려 우리과에서 동맥관,경정맥관,인공호흡기를 컨트롤 하기위해 그녀석의 옆을 지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본과 4학년 학생들이 2명씩 조를 짜서 병상을 24시간 지키기로 했고. 총의국에서도 ( 전체 전공의 협의회) 각과의 인턴과 레지던트 선생들에게

 

최선을 다해 보살필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는데다, 교수회의에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기로 결의했다.

 

그것은 동문선배의 아들이자, 우리들의 후배인 환자에 대한 예의였다.

 

혹여 일반인들은 역시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비난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난센스다,

 

경찰관이 도둑의 손에 살해당하면 전 경찰이 스스로 특근을 하면서 범인체포에 나서고 전장에서 전우의 죽음에 눈이 뒤집히듯이.

 

그점에서는 의사도 사람인이상 다르지않다.

 

의사란 모든 생명에 경의를 표하고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손을 내밀어야 하지만, 동료의 죽음 앞에서는 인간적인 무엇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 뿐이었다.

 

실제 우리가 녀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수술도, 치료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니톨만 속절없이 들어가고, 소변량은 무서울 정도로 증가했다. 이제 곧 한계가 오는 것이다.

 

신경외과 일년차에게 물었다,

 

" 최선생, 만니톨 언제까지 이렇게 줄거야? 이러다가 ECF 볼륨이 고갈되는거 아냐? 하이포 볼레미아가 오면 그때는 어떡하지?

 

일렉트로라이트는 어때? 이정도로 유린이 나오면 포타슘이나 나트륨은 문제가 없어? 만니톨 몇 병째야?"

 

그러자 어제 밤새 한줌도 자지못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신경외과 일년차의 입에서 "아.. 아직 만니톨이 아직 들어가나요?

 

일렉트로라이트요? 아참,, 그러고보니 스터디를 못해봤네요.."라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 다혈질인 우리 2년차 김선생의 주먹이 최선생의 턱을 향해 날아갔다.

 

최선생이 주먹에 맞아 비틀거리는 순간, 연이어 김선생의 주먹과 발길질이 최선생을 향해 날아들었고,

 

나는 갑자기 일어난 사태를 말릴 겨를도 없이 순간 멍하니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김선생이 최선생의 멱살을 끌고 중환자실과 이어져있는 당직실로 끌고 들어갔다, " 야이 개새끼야..!! 니 후배가 저렇게 사경을 해메는데,

 

주치의라는 새끼가 뭐? 만니톨이 아직 들어가냐고? 뭐 일렉트로라이트를 몰라? "

 

성질급한 김선생이 최선생을 거의 초죽음을 만들고 나서야 다른사람들이 나서서 겨우 상황을 수습했다.

 

그랬다..

 

감정적으로야 최선생이 무심했던것은 분명하지만, 어쩌면 최선생의 머리속에는 이미 죽은 아이를 그렇게 괴롭힐 필요가 뭐 있느냐는

 

현실적인 판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의 매일밤을 잠한숨 못자고 시달리던 외과계 일년차의 머리속에는

 

그저 가능성이 있는 환자와 없는 환자, 그 둘만이 존재 할 뿐, 그 사람이 누구이건 그것에 대한 분별심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일년차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화를 삭이지 못하는 김선생에게 가벼운 주의를 주고, 입술이 터져서 피를 흘리며 당직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최선생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최선생,, 힘들고 정신이 없는줄은 알지만, 그래도 우리동료잖아,, 설령 이대로 죽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쓰러지기전까지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닌가? " 하고 타박을 하고는, 역시 수술실에서 이틀째 못나오고 있는

 

신경외과 치프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음 상황을 논의했다.

 

역시 다른 수단은 없었다.

 

신경외과에서 잠정적으로 만니톨 투여를 중단하기로 했다.

 

만니톨을 중단해서 뇌부종이 생기건, 만니톨을 투여해서 저혈량성 쇼크가 생기건 결과는 같았지만,

 

이제 만니톨까지 중단된 이상 더이상의 실제적인 의학적 치료는 모두 중단된 셈이었다.

 

녀석은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동공은 열려있었고. 동공에 프래쉬를 비추어도 동공의 움직임이 없었다,

 

이제 기계가 밀어주고 당겨주는 강제호흡과, 아직은 뛰고있는 심장의 박동, 이 두가지만이 아직 이녀석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였을 뿐 녀석은 서서히 실제적 뇌사상태에 접어들었다.

 

병상을 지키며 밤새 울어 눈이 퉁퉁부은 녀석의 동기들 , 녀석의 여자친구, 그리고 걱정스레 오가는 전공의들과,

 

녀석의 아버지이자 우리들의 선배인 한 중년남자의 애잔한 울먹임.이 중환자실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게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

...

 

다음날 아침 의국회의에서 이식파트를 담당하는 스텝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박선생 신경외과에 있는 그 본과 4학년 학생 말이야, 뇌사라며? 혹시 보호자가 도너로 장기를 제공할 의사는 없는지 한번 물어보지?

 

지금 간이식을 기다리는 레시피언트가 있는데. 그나마 도너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전에 장기를 하베스트 해야 하지 않겠어? "

 

분명 타당한 이야긴데.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당시만해도 간이식은 거의 시행되지 않았고, 그나마 국내에 시도된 몇 케이스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뇌사에 대한 정의나 규정도 확정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제 막 이식수술이 시도되는 발아기에 해당했다.

 

세상의 모든 의술이 다 그렇듯이.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또 그만큼 많은 희생자들이 있다,

 

지금 심장 수술은 상당히 보편적인 수술에 속하지만, 당시만 해도 심장 수술, 그것도 인공심장 수술은 시도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당시 심부전을 앓던 "닥터 클라크"라는 미국 의사가 스스로 자신을 인공심장 이식수술의 대상자로 자원했고,

 

그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듯이 수술 후 일주일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런 닥터 클라크의 희생을 시작으로 또 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고서야. 오늘의 이식수술의 결과가 있게 된 것이다.

 

당시에도 그랬다.

 

그러나 간이식의 경우는 문제가 달랐다, 이식받은 사람의 문제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공여자를 구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사회에서 죽은자의 몸을 훼손한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때였다,

 

지금도 겨우 사후 각막 이식을 위한 공여는 하는 분들이 있지만, 자신이 뇌사에 빠지면 자신의 간과,심장,신장,각막을 모두

 

타인에게 주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구나 사체에서 장기를 제공받는 것도 아니고 상태가 좋은 생체에서 공여를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내가,혹은 내 가족이 누군가의 몸을 물려받아야 살아 날 수 있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자,..

 

혹은 나나 혹은 내 가족이 이식외에는 대안이 없을 때 의료수준이 그만큼 따라가지 못한다고 상상해보자,,.

 

우리는 타인에게 바라는 만큼 나를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을까..

...............

....

 

그렇지만 나는 이식담당 스텝이 못마땅했다,

 

스텝의 논리는 그나마 보호자가 의사인데다, 환자가 의학도 였으니, 어쩌면 장기를 제공 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것 이었지만,

 

나는 아직 뇌사에 대한 확신이 없는 후배의 몸을 두고 아직 그런 논의를 한다는 것을 참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나는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의사의 공명심이란 무서운 것이다, 자신의 의료술기를 발전 시키는 것은 곧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의사들의 공명심은 때때로 상당히 위험한 도덕적 경계선을 넘는 수가 있다. 예를들어 이식수술의 대가가 되고 싶은 외과의사는

 

눈에 불을 켜고 장기공여자를 찾게 마련이고, 이런 경우 공여자의 몸이 정말 회생가능성이 100% 없는 것인가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덜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뇌사판정을 할 때는 이식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는 뇌사판정에 참여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나는 내 오해인지 모르지만 우리 스텝의 눈에서도 바로 그 공명심으로 인한 초조감을 읽었다,

 

일단 알았다고 대답하고 회진을 마치고 다시 신경외과 중환자실로 갔다. 녀석은 여전히 COMA 상태였고.

 

내눈에도 회생의 가능성은 1%도 없어 보였다, 녀석의 동기들이 교대로 킵을 하면서 지키고,신경외과 스텝들도 수시로 드나들면서 녀석을 살폈지만,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처치도 없는 셈이었다.

 

녀석의 아버지도 의사였으므로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 들였다..

..............

...

 

우리과 이식담당 스텝의 압력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나는 처음 3-4 일간 그 지시를 애써 무시했지만, 4일이 지나면서 나도 그것에 동의했다, 주변의 다른 동료들의 의견도 이제는

 

차라리 그것이 낫지 않겠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순간에 " 이식을 위한 공여자가 되어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한 우리들과, 사고 다음날 아침에 "이식수술"이야기를 꺼낸 이식담당 스텝의 생각은 출발선이 다른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를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결과적으로 희생적 이식을 고려하는것과, 이식도너가 되어줄 가능성이 높은 뇌사환자가 하나 생겼다고 기뻐하는것은 결과적으로는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관점에서는 엄연히 다른것이었기 때문이다.

............

......

 

나는 결국 선배,, 그러니까 녀석의 아버지와 당직실에서 대면했다.

 

누가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겠는가?

 

나는 신경외과와 내과 치프를 같이 불러서 셋이서 선배에 대해 정중한 예의를 갖춘 다음,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다 .

 

" 선배님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어떻게던 살려내야 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신경학적 검사를 해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의 판단으로는 거의 뇌사상태에 접어든것 같습니다,, 이제 이녀석의 죽음을 어떻게하면 헛되게 하지 않을까,, 그것을 고민하는 것만 남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허락하신다면 더이상 장기의 기능이 악화되기전에 이식을 위한 장기제공을 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녀석도 의업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그것을 마다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침 간과 신장을 필요로하는 대기자가 있고 ,

 

다른병원 대기자중에 심장을 필요로하는 환자도 한사람 있다고 하는데, 만약 가능하다면 시기를 늦추면 안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공여자가 될 수 없을만큼 장기기능이 악화 될것 같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애써 담담하게 우리의 뜻을 전달했다.

 

노선배는 한참동안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면서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그분이 거절하기를 바랬다, 나는 아직 생명체로 존재하는 후배의 몸에 칼을 대고,

 

아직 살아있는 몸에서 간과.신장,심장을 제거하는 수술에 참여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녀석의 몸에서 장기를 떼어내는 순간 녀석의 생명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자가 아닌 사람이 사체이식도 아닌 생체이식을 감행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그점에서는 아직도그 난감한 철학적 고민에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노선배가 조용히 눈물을 훔치면서 말을 했다.

 

" 박선생,, 내가 의사지만 그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야,, 내 생각만으로 결정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집사람과 상의해보고, 오후에 내가 답을 주지.. 만약 저 애가 장기를 기증해서 몇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그래야겠지만,,

 

그래도 집사람 의견을 들어야겠지.. 그동안 너무 마음 써줘서 미안하네.. 내 이상황이 끝나고나면 자네들하고 술한잔하고 싶네.."

 

그는 말을 마치고 조용히 일어나서 그의 아내가 기다리는 대기실로 향했다..

 

 

[출처]  blog.naver.com/donodonsu

 

근데 이거 글 몇개 연속부터 도배임? 5개정도 연속될꺼같은데

 

 

2개의 댓글

2013.10.19
그렇군
0
2013.10.19
재밌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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