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

https://www.jungto.org/pomnyun/today/

 

오늘 이 시간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의 생활 속으로 가지고 와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부처님이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비오는 날, 베사카 부인이 찾아 왔어요.

우산도 안 쓴 채 비를 다 맞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을 찾아 왔어요.








"부인, 웬 일이요?"








"부처님, 저는 너무 너무 슬픕니다.

제가 아끼고 사랑하던 손자가 오늘 아침에 죽었습니다."








이럴 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슬프고 괴로워 죽겠다는데, 같이 울어줄까요?

중생은 이럴 때 같이 울어주겠지요.

같이 울어주면 약간은 위로가 되겠지만 슬픔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손자가 죽었는데 뭐가 슬퍼요? 난 것은 다 죽게 마련인데."








이러면 어떨까요? 말은 맞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아무리 믿음이 강한 보살님도

'아이고, 이놈의 중아, 니는 장가도 안 가고 애도 안 낳아 봤으니까 그런 모진 소리를 한다.

니 손자 있어 봐라. 니가 그런 소리를 하겠나.' 이렇게 해서 마음이 팩 돌아서 버려요.

여러분도 스님이 하는 말이 마음에 안들면,

"스님이 장가도 안 가 봤으니까, 애도 안 낳아 봤으니까 그런 소리하죠."

이렇게 갖다 붙입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이고, 그렇소, 그런데 부인......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이면 좋소. 두 명이면 좋소?"

(부처님 말씀의 가장 큰 특징은 자비롭게 들어 주고,

대화의 국면을 순간적으로 바꿔 버리는 데 있습니다. )








"부처님, 둘이면 더 좋죠."








"그러면 둘이면 좋소, 셋이면 좋소?"








"셋이면 더 좋죠."








"부인, 다섯이면 어떻소?"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할 겁니다."








"부인, 사랑하는 사람이 사위성에 사는 사람 수만큼 많다면 어떻겠소?"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부인, 우리 사위성에서는 하루에 몇 명이나 죽소?"








"부처님, 아마 한 명은 죽을 겁니다. 아니, 하루에 두 명은 ..... 아니, 열 명은 죽을 겁니다."








"부인, 그러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매일 매일 슬피 울겠구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베사카 부인은 탁 깨쳐서, 얼굴이 환해졌어요.

이 기쁨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은 기쁨, 욕망이 충족된 기쁨이 아니라

깨달음의 기쁨, 해탈의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슬프다.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사람이 많으면 하루에 한 명은 죽는 사람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랑은 매일 매일 슬피 운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순이다.' 우리는 이 모순을 깨쳐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슬픔이 사라지고 해탈의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문제 하나 낼게 맞춰 보세요.

쥐가 쥐약을 먹고 배가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다가 죽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1번 전생에 죄가 많아서,

2번 하느님을 안 믿어서,

3번 사주팔자를 그렇게 타고나서,

4번 쥐약인 줄 몰라서, 어느 거예요?

4번, 와 굉장하시다. 어떻게 그걸 알았어요?

그러면 하나 더 물어 볼게요.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돈도 안 벌어오고, 술 먹고 집에 와서 부인을 두들겨 패요.

이 부인의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몇번이예요?

1번이라고요? 저기는 2번, 또 3번도 있네요. 똑 같은 이야기인데,

쥐 얘기하면 잘 맞추는데, 사람 얘기하면 헷갈려요?

어리석어서 그렇지요.

불교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 무지에 있다고 합니다.

무명, 어리석음, 그래서 12연기의 첫 번째가 무명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고통은 무지로부터 시작됩니다.

쥐 얘기는 잘 아는데. 사람 문제는 잘 몰라요.

남의 문제는 잘 보이는데, 자기 문제는 잘 안 보입니다.

남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걸 잘 알아요.

또 세월이 흐르고 나면 잘 알아요. '아, 맞다. 그 때 그랬어야 했는데....'

이런 것들을 우리는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지요.

'사람이 그렇지 뭐.'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문제를 자신이 더 잘 알고, 지금 일어난 일은 지금 가장 잘 알 수 있어야지요.

손자가 죽어서 슬프다 하는데, 거기에 뭔가 어리석음이 있는 것이지요.

손자가 죽었기 때문에 슬픈 게 아니라 무지가 눈을 가렸기 때문에,

어리석음 때문에 슬픔이 생긴 것입니다. 그걸 베사카 부인이 깨친 거예요.

반야는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깨쳐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말이 반야바라밀입니다.

바라밀이라는 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지요.

우리 인생의 모든 과제를 이렇게 이치를 탁 깨쳐서 벗어날 때,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에 대한 믿음, 실천적 행위 이게 동시에 다 일어납니다.

'베사카 부인이 왜 그렇게 갑자기 얼굴이 밝아졌는가? 이게 어려운 이야기입니까? 아니지요.

자기 문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이렇게 쉽습니다.

우리는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아닌 일을 큰일로 만듭니다.

거기에 미쳐 있을 때는 남의 말이 귀에 안 들어오고, 눈에 뵈는 것도 없습니다.

보되 보지 못하고, 듣되 듣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걸 탁 깨치면 정신이 번쩍 들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제가 어떤 단체에서 법회를 해 달라고 해서 청주에 갔어요.

11시부터 법회를 하기로 했는데. 10시쯤 도착해서 식사나 하려고 국숫집에 들어갔어요.

"국수 한 그릇 퍼뜩 좀 삶아주십시요."해서 먹고 있는데,

이 보살이 앞에 딱 앉더니 뭐 하나 물어봐도 되느냐는 거예요.

"그러세요." 했더니

올해 대장군이 북쪽에 서서 이사를 북쪽으로 못 가게 하는데,

분양 받은 아파트가 북쪽에 있어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나더러 어쩌면 좋겠느냐는 거죠.

'이사도 가고, 안 좋은 것도 없애는 그런 부적 하나 없을까?'하는 소리예요.

그래서 내가 그거 쉽다고 했지요.

얼마나 드느냐고 묻기에

"그거 돈 안 듭니다. 이사 가기 전에 새 집에 가서 찬물 한 그릇 떠 놓고

정성을 기울여서 반야심경 열 번만 독송하고 이사 가세요."라고 말했어요.

"반야심경에 제법은 다 공하다고 했으니 대장군도 공해.

그러니 북쪽 길이 막힌 게 아니고 보살님 마음이 지금 막혔으니

반야심경 열 번 독송하고 가면 아무 문제가 없겠소." 그러니까

"아, 스님.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얼굴이 환해졌어요.

그런데 방안에서 남자애 하나가 문을 열고 보더니 쏙 들어가 버렸어요.

그러니까 보살이 "하나 더 물어볼게요. 아까 저 애 봤죠? 그 애가 내 아들이거든요.

저 아들이 잘 될까요?" 이렇게 물어요. 그래서 내가 화제를 바꿔서 "남편은 어디 갔소?"

이러니까 대답을 안 해요.








"없어요? 돌아가셨어요?"








"아니요."








"그러면 어디 갔는데요?"








"따로 살아요."








"왜 따로 사는데?"








"이이고, 그 인간에 대해서는 말하기 싫어요.

아들에 대해서 물었는데, 왜 남편 얘기는 자꾸 해요? 우리 아들 어때요?"








"음, 아들이 안 되겠는데."








"왜요?"








"음, 아들이 인간 되기 틀렸다."








"아니, 스님. 이게 무슨 얘기예요?"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의 아들이니까 그게 인간이 될 리가 없잖아요."








"스님, 그건 해결하는 비방이 없어요?"








"비방이 있지."








"좀 가르쳐 주세요.."








"요건 조금 힘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글쎄, 보살이 못할걸."








"아이, 제가 어쨋든 할게요. 제가 저 아이 하나 믿고 사는데 잘 되어야지요."








"그러면 오늘부터 3년은 기도를 해야 되겠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기도를 할 수 있겠소?

108배 절을 하면서 남편한테 참회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가 왜 그 인간한테 참회를 해요?"








"아까 나한테 비방 써달라며? 애 잘 되도록 해달라며?"








"그거 말고 딴 거 해 주세요. 참회는 내가 죽어도 못 해요."








"비방이 여러 개 있는 줄 아나, 비방은 한 개밖에 없어요.

남편에게 '여보,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당신 정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리석어서 당신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요. 여보,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참회를 하세요."








"스님,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내가 남편한테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요.

그 인간이 다 잘못했지. 제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이 보살님한테 법회시간이 다 되어서 제가 설명을 길게 못 했어요.








"할거요, 안 할거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못 한다더니 자식이 좋다니까








"하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적어줬어요.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깊이 참회합니다.

저희 남편은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내가 정말 바보 같았습니다."

이렇게 적어줬어요.

"소리내서 읽어봐요." 이랬더니 읽는 동안에 눈물을 줄줄 흘려요.

"그래, 눈물 흘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원망의 눈물인지 참회의 눈물인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렇게 좀 하세요."








"이러면 좋아져요?"








"좋아지고 말고."

왜 좋아질까요?

'우리 남편은 훌륭한 사람입니다.제가 좀 어리석어서 그렇지.'

이렇게 생각하면, 바로 그 훌륭한 사람의 자식이니까 자기 자식이 잘 되는 거예요.

죽었든, 이혼했든 상관없는 문제죠.

그리고 '남편은 훌륭한 사람인데 내 성격이 조금 나빠서 그랬다.'라고 받아들이면,

받아들인 '나'도 괜찮은 사람이예요. 왜? 훌륭한 사람 만나서 그래도 몇 년 살았잖아요.

자신의 지난 세월이 자기한테도 의미가 있어요.

그 세월이 후회가 안 되지요. 그런데 '그 인간, 인간도 아니야.'

이렇게 얘기하면, 우선 자기 눈이 삐었죠, 그런 인간을 좋다고 만났으니까.

그런 인간하고 10년을 살았으니 10년이 헛되잖아요.

인간도 아닌 것의 자식이니까 그 자식도 잘 될 수가 없지요.

바로 이런 원리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그래서 전도몽상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겪고 있는 인생의 괴로움을 '자기학대'라고 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괴롭히는 거.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는 거죠.

우리 인생이 다 이렇습니다. 자업자득이지요.

그건 '내가 누구를 한 대 때리니까 그 사람이 나를 한 대 때렸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자기 마음을 잘 못 써서 화를 자초한다는 뜻이지요.

여기도 지금 이렇게 화를 자초하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불교는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가장 소중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지혜를 주는 가르침입니다.

얼른 생각하면 '나를 희생하고 남편을 위해서, 그저 복종해라.'

이렇게 들릴지 모르지만 천만에,

부처님이 우리하고 무슨 원수가 졌다고 우리에게 손해나는 얘기를 하겠어요?

꽃을 보면서

"야, 그 꽃 예쁘다."

이러면 꽃이 좋아요. 말한 사람이 좋아요? '우리 남편 참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부인한테 좋아요, 남편한테 좋아요? 부인한테 좋지요.

남을 이해하지 못하면 누구 가슴이 답답하지요?

'아, 그래서 그렇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누구 가슴이 시원해져요? 자기 가슴이 시원하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전도몽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거꾸로하는 것을 떠나야 마침내 열반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색이 뭍어서 불편하겠지만 한번쯤 읽어볼만한 글들인거 같아

 

진실의 모든 모습을 알아보자 

열등감에 우는 아이 눈물 멈추게한 진리

잔소리가 아들을 망치는 이유

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니?

어느날 제자가 물었다.

25개의 댓글

2021.02.01

개드립에 불교개붕이가있네 좋은글 ㅊㅊ

1
2021.02.01

아침부터 정화되버렷

0
2021.02.01

행복하지마요~행복하려면~사랑한날~~잊어야하잖아~

0
2021.02.01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거임

0
2021.02.01
@사텐루이코

그건 헌법이고

 

말을 잘 못 적은 것 같지만 묘하게 다른 말임

1
2021.02.01

부처 오빠, 오빠는 왜 내 말에 공감해주지 않는거야?

2
2021.02.01

좋은글추

1
2021.02.01

내가 많이 비뚤어졌나보다

시종일관 말장난에 공허한 소리같다

3
2021.02.01
@고오오옴

나도 이런말에 관심 없었는데

군대에서 불안증 때문에 진짜 죽을것 같았는데 원인이 뭔지 알고싶어서 간절해지니까

이런 말이 필요해지고 마음 다스리는 길잡이가 됐음

그래서 성경에는 고통속에서 구원이 있다고 말하기도 함

0
2021.02.01
@지극히미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공허하지 않지

4
2021.02.01
@고오오옴

너의 마음에 별다른 고민이 없거나, 아니면 마음에 이런 말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거나 그래서 그런것이 아닌가 싶다.

0
DPs
2021.02.03
@고오오옴

왜냐하면 공허한 질문이거든

손자가 죽었는데 장례비용 자문받으러 온게 아니잖아

0
2021.02.01

다람쥐는 그런거 몰라. 깨달을때까지 못살아. 다람쥐는 눈 앞의 도토리 한 알이 훨씬 소중하고 그리워 ㅠㅠ

5
2021.02.01
@골방철학가

참 이말도 맞는 말이지... 개붕이는 눈 앞에 햄버거가 더 소중하다규...

0

고맙다 게이야.. 진짜 힘이 되는 글귀였어ㅠㅠ 조금은 환기가 되넹ㅠ

1
2021.02.01

모든일은 마음먹은일에 따라 세상이 돌아간다는 일체유심조가 생각나는 불교일화구먼

1
2021.02.01

나만 내가누구 드립 생각나냐 ㅋㅋ

0
2021.02.01

원래 통찰력이 좋은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거임

1
2021.02.01

나도 처음엔 말장난 아니냐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가장 힘들고 괴로워하는 부분을 다르게 보고 이겨낼 수 있는 시각을 준다는 것에서 좋더라. 어차피 정답이 없는 문제니까. 저 설법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설법대로 바꿔 생각할 수 있는 유연하고 넉넉한 마음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인 것 같음

1
2021.02.01

난 무종교긴 한데 불교는 좋게 봤던게 군대에 있을때 군종스님?이와가지고 이야기 해주는데 좋은 이야기 많이해주더라고 재밌어서 집중해서 들은기억나네

1
2021.02.01

제목 권리가 아니라 자격이 아닐까

권리는 누구한테 요구할수있는건데 글 내용은 내 행복을 누구한테 요구한다는 내용이 아니잖아

0
2021.02.01
@고봉밥빌런

똑같진 않지만 그말이 그말이긴 한데

저 말은 누구나 다 부처의 성품을 갖고 있다는 말을 풀이한거야

내용대로라면 자격이 더 어울리긴 하네

0
2021.02.01

법륜추

0
2021.02.02

불교적 깨달음은 우리가 보고듣고 느끼는 세상(현상계)이 본래면목(혹은 바탕계) 위에 세워진 연기로 이루어진 세상이며 하늘을 덮는 그물속 각각의 그물코가 독립적이지 아니하듯 우리또한 그러하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소멸되기에 저것이 소멸되는 것처럼 우리또한 고정되지 아니하고 불변하지 아니하고 변하고 바뀌는, 연기로 이루어진 유아는 실은 무아임을 깨치며 그렇게 해탈의 순간을 맞이한다.

 

우리나라에 익숙한 대승불교와 선불교를 주로 읽다 어느날 남방불교와 근본불교(혹 초기불교)를 접하게 됐는데 뜻밖에 서로 향하는 바가 정 반대였다. 근본불교는 철저히 죽음을 향한다. 깨친자도 살아있다면 유여有餘열반이며 죽어야만 무여無餘열반으로 화한다. 더이상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이천오백년전 북인도인들의 심상세계가 어떠한지 잘 모르지만 윤회에서 이탈하여 완전한(남김없는) 죽음을 바라는 것이 초기불교의 목적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난 깨달음을 얻고싶지만 모든 정념을 태워버린 아라한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윤회따위의 신앙이 없기도 하고.

 

불가의 글을 읽기 전엔 주로 장자와 니체를 읽었는데 사실 읽으면서도 한구석 불안이 있었다. 고타마는 결국 조국의 멸망을 막지 못했으며 이적을 일으키던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신통제일이라던 목건련은 몽둥이와 돌에 맞아 죽었다. 니체는 변변찮게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채찍맞는 말을 잡고 부둥켜 울으며 광증으로 죽어갔다. 인세에 가장 유명한 깨달은 자들의 말로는 그리 좋지 못했다. 난 초월은 아니더라도 아픔을 진정시킬 무언가를 얻고 싶었는데 현실은 냉엄하게 보여주었다. 깨달음은 초월이 아니다. 깨달음은 네가 완벽무적의 초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바라 깨달음을 찾는 것인가?

 

 선종에선 깨달음은 불립문자라 가르친다. 편린을 볼 수 있되 명확한 설명은 불가능하다. 이름 붙일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 의미와 단절된 바탕계의 명백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는 커다란 시험을 마치고 위버멘쉬가 되어 다시 힘차게 살 방법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글쓴이에게 답을 구하고자 쓴건 아니고 불교글 주로 올리기에 그냥 주절주절 거려봤음..

3
PSY
2021.02.02

아 좋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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