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띠동갑 아르바이트 학생 이야기

예전 다니던 회사에서 항상 일손이 부족했던 우리 팀은 어쩔 수 없이 업무를 보조해줄 사무보조 아르바이트생을 뽑아야만 했다. 
서류 정리를 꼼꼼히 할 수 있는 세심함과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를 항상 밝게 응대할 수 있는 친절함으로 무장하고 있으면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본부장님과 다른 팀장들은 까다로운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학생 한 명을 뽑았다.
우리 팀의 아르바이트생을 뽑는데 팀장으로서 서류심사부터 면접의 과정에서 제외된 점에 대해 나는 격렬하게 본부장님께 항의했다.

"본부장님 저희 팀 아르바이트생을 뽑는데 팀장인 제 의견은 왜 묻지 않으십니까?"

"넌 분명 사심으로 뽑을게 눈에 보여서, 지원서 보는 네 눈빛이 심상치 않았어..뭔가 이글이글 불타올랐다고 해야 하나..."

"제 눈빛은 원래 이렇습니다! 일할 때도 그렇고 항상 이글이글입니다. 그리고 단지 이력서 사진을 집중해서 봤을 뿐이었습니다."

단순히 노총각이었던 약점 때문에 면접에서 제외된 점이 억울하긴 했지만 나는 하늘을 우러러 본부장님께 단 1%의 사심도 없었음을 강조했다.
(사실 0.7% 정도는 있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얼마후 아르바이트생 Y가 입사하게 되었다. Y는 전혀 사심이 발동되지 않는 친근한 사내자식 같은 외모였다. 미소년 까지는 아니고 그냥 
건전한 청년 같은 외모라고 해야 하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지만 Y는 첫날이라 그런지 긴장한 표정이었다. 훗날 Y는 내 얼굴을 보고 
"실수하면 이 아저씨한테 맞겠구나. 그나저나 이 아저씨 여자 좀 때려본 얼굴인데..그런데 한국 사람 맞아?"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며칠 후 "이 아저씨 여자한테 많이 맞고 다녔겠구나 . 그런데 한국 사람 정말 맞는 거야?" 로 바뀌게 된다. 나는 그녀에게 간단하게 
전화응대 방법부터 그녀가 해야 할 사무실 업무들, 그리고 회사 분위기에 대해 꼼꼼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다면 좋았을 텐데....

"Y씨 오후에 회사에 책이 들어오면 사무실로 옮기는 것도 도와줘야 해요. 제가 없을 때는 Y씨도 해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녀 앞에서 책 덩이를 들고 자신 있게 앞장서서 걷던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강하게 미는 느낌을 받아 우아하게 앞구르기를 했다. 그녀가 
웃어야 할지 아니면 "괜찮으세요?" 라고 물어야 할지 고민할 때 그 모습을 바라 본 팀원들이 달려와 

"팀장님은 이런 험한 일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한 번에 10권 이상 옮기지 마라니까..힘도 없으면서.."

"어.. 미안.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 거 같아 30권을 한번 들어봤는데.."

팀원들은 달려와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내가 떨어뜨린 책들을 들어줬다. 신생아 체력의 연약한 사무직 팀장을 유일하게 챙겨주는 정말 고마운 
여자들이다. (아.. 우리 팀은 총 4명이었는데, 팀장인 나만 남자였고, 나머지 세 명은 여포, 관우, 장비처럼 듬직하고 믿음직한 여성이었다.)
그후 Y는 빠르게 적응해서 업무는 기본이고 선배들과 원만한 관계로 지내는 것은 물론 심봉사를 봉양하는 심청이처럼 연약한 팀장을 봉양하는 등 
완벽한 우리 팀원으로 녹아들었다.

신생아 수준의 연약한 체력의 나를 Y는 가끔 안쓰럽게 바라보며 "팀장님 늙지 마세요."라고 했는데, 그 말이 나오게 된 계기는 평소처럼 팀원들과 
다 같이 시래기 국밥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절대 내 턱에 힘이 없는 게 아니고 시래기가 뜨거워서 먹다가 옷에 흘린 뒤 그 것을 다시 주워 먹는 
모습을 본 Y와 팀원들은 "어머 어머 어떡해..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턱에 힘이 없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네..턱받이 해 드려야겠어요.." 하며 
안쓰러워 했다. 그리고 실제로 다음날부터 턱받이를 해줬다. 

Y가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내가 부장님 유우머를 남발할 때라고 했다. 사무실 분위기가 좋지 않거나 팀원들의 사기가 저하된 것 같으면
나는 분위기 전환용으로 깔깔 유우머를 했는데, 이건 웃으라고 한 건지 아니면 자신을 한 대 때려달라는 사디스트의 몸부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고
한다. Y는 팀원들을 대표해 "팀장님은 얼굴만으로도 팀원들에게 웃음을 주는 분이에요. 그러니 애써서 노력 안 하셔도 되요." 라면서 팀원들을
아끼는 나를 응원 해줬다. 그리고 난 '내가 그렇게 보기만 해도 웃음을 주는 얼굴인가' 하며 거울을 보다 "이 오라질 뇬.." 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Y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바뀐 본부장은 직원들과 거리낌 없이 지내는 Y의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오히려 Y에게 아르바이트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Y는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힘없는 팀장이었던 나는 그것을 막지 못했다. 

같이 일할 때 잘해준 것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억울하게 그만두는 상황을 막아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Y는 
뜬금없이 한 번씩 가끔 내 안부를 묻는 연락을 한다. 물론 나도 가끔 Y의 재기발랄한 글솜씨나 말이 듣고 싶을 때는 연락을 먼저 하곤 한다.

"아저씨 아니 팀장님 늙지 마세요."

"어.. 그래 넌 양심이라는 게 있으면 이제는 좀 예뻐져라..."

우린 이렇게 서로에게 덕담을 주고받으며 가끔 만나는 좋은 띠동갑 친구로 지내고 있다. 몇 년 전 Y가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펑펑 운 적이 있었는데
Y에게 좋은 남자친구가 생기고, Y는 요즘 시나리오를 공부하고 있는데 좋은 작품 하나 냈으면 좋겠다. 띠동갑 친구로서 응원한다. 

9개의 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웃긴네
0
2016.01.07
ㅋㅋㅋㅋㅋ
0
2016.01.08
비정규직의슬픔
0
2016.01.08
양심이 있으면 예뻐지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
0
2016.01.08
글재밌게 쓰는사람들 부럽다 ㅋㅋ
0
2016.01.08
잘쓴다 이야
0
2016.01.08
이거 본인이 쓴거 아니고 퍼온글 아니냐
오유에 성성2라는 사람이 쓰는 글인데 주기적으로 올라옴
그사람 글 잘써서 재밌음
0
너가쓴거야? 퍼온거야?
0
2016.01.09
제목보고 우리집얘기인줄ㅋㅋㅋ 알바하다 사장님이랑결혼했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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