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듀랑고 생존메모 "턱막이의 회고"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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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막이의 회고 #1 

스캐빈저는 자신이 죽이지 않은 동물을 먹는다. 프레데터는 자신이 죽인 동물을 먹는다. 인간은 어디에 속할까? 커다란 우리를 짓고 가축을 키워 도살한다. 자신이 잡은 고기를 직접 먹는 사람은 프레데터이고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사는 사람은 스캐빈저라고 봐야 할까? 

 

 

 #2 
나는 턱막이다. 생소한 일이다. 몰이꾼은 짐승을 몰고 덫꾼이 덫을 놓아 짐승의 발을 붙잡고 칼잡이와 활잡이, 창잡이가 짐승의 숨통을 끊는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강한 턱이 달린 짐승이 사람을 물면 큰일난다. 누군간 갑옷을 걸치고 다른 사람을 대신해 턱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턱막이의 일이다. 

 

 

#3 

사냥꾼에겐 흉터와 문신이 많다. 턱막이는 물린 자국이 특히 많다. 갑옷을 단단히 두드리고 여며도 짐승이 물 때의 그 감촉은 여전하다. 미늘이나 판이 부서지고 살과 뼈가 찢길 거란 공포를 견디며 버텨야 한다. 짐승이 턱을 놀리면 그만큼 그 짐승에게 빈 틈이 많이 생긴다. 턱막이는 짐승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4 
턱막이 사이엔 미신이 많다. 앙코라의 진흙을 갑옷에다 바르면 유황 냄새 때문에 짐승이 물다가 놀라 입이 비틀린다고 한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나도 진흙을 갑옷 위에 바르고 있다. 하지만 미신이 아니라 징크스다. 우연히 내가 진흙을 바른 날에 짐승 입이 비틀렸을 뿐이다. 

 

 

 #5 
처음엔 쓸 만한 금속을 구할 수가 없어서 가죽을 모아 여러 겹으로 꿰매 갑옷을 만들었다. 갑옷을 입고 다니면 이동 사우나였다. 문외한이 티타늄으로 만드는 게 어떠냐고 아이디어를 냈다. 티타늄을 만들 기술력이 있다면 총부터 만들었을 거라고 답했다. 문외한은 아이디어를 냈을 뿐이라며 자유로운 의견 제시가 기술 진보를 이끈다고 주장했다. 

 

 

 #6 

짐승들은 목덜미를 물려고 한다. 그래서 목덜미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커 보이는 것도 큰 일이다. 투구와 어깨에 큰 깃털을 달고 목도리 도마뱀처럼 뛰어다니면 짐승은 긴장한다. 영리한 놈들은 금방 알아차리지만 몇 초 정도는 헤맨다. 그 몇 초가 비싸다. 사냥꾼이나 슈퍼볼 광고나 다 몇 초 안에 결판이 난다. 

 

 

 #7 
턱막이는 겁쟁이가 많다. 흥분한 짐승한테 관심을 끄는 건 겁이 없는 사람은 할 수가 없다. 겁이 없는 자들은 몇 초 못 버티고 자기 성질에 물린다. 겁쟁이는 어떻게 하면 자기 몸을 간수할까 그 생각 밖에 없다. 겁이 없는 자들이 주로 턱막이로 입문하지만 곧 죽거나 겁쟁이가 된다. 

 

 

 #8 
싸우다가 다친 놈, 무리에서 떨어져 굶은 놈, 병에 걸린 놈. 놀란 짐승은 다 비슷한 소리를 낸다. 덫을 친다. 몰이꾼이 징을 치며 몬다. 턱막이가 갑옷에 피와 진흙을 바른다. 짐승이 오는 방향으로 연기가 가게 불을 낸다. 불길에 독특한 풀섶을 던지면 짐승이 미쳐 날뛰는 냄새가 난다. 사람은 못 맡는 냄새지만 나는 좀 맡는다. 

 

 

 #9 
내 원래 직업은 중학교 수학 교사였다. 주말이면 탁구를 치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요새는 주말이면 이곳 태생인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친다. 주중에는 부서진 갑옷을 수리하고 짐승들의 행동 패턴을 연습한다. 짐승은 제각각 자랐지만 본능이 표준의 역할을 한다. 짐승의 본능을 알면 흘릴 피를 체계적으로 줄일 수 있다. 

 

 

 #10 
짐승은 버릴 것이 없다. 뼈, 살, 가죽, 피, 그 외 모든 게 다 쓸 데가 있다. 이렇게 말해야 사냥에 사람들이 참여한다. 광고의 핵심은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감추는 데 있다. 다 쓸 데가 있는 건 사실이다. 가격차이도 천차만별이고 초심자에게 중요한 부위를 안 준다는 것도 사실이다. 

 

 

 #11 
턱막이로 일하다 보면 갑옷의 두께와 짐승의 턱 힘과 이빨 길이가 서로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 받는지 알게 된다. 감각은 계산기나 연필, 종이 없이도 상호작용을 매끄럽게 정리한다. 감각 덕분에 기술이 놓치는 틈을 메꿀 수 있다. 물론 살아 남았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긴 하다. 

 

 

 #12 

신비주의 같은 얘길 하자는 건 아니지만 가끔 짐승이 턱을 벌리는 순간 시간이 느리게 갈 때가 있다. 이빨에 맺힌 침방울이 선명하게 보인다. 가시를 잔뜩 세운 완갑을 휘둘러 짐승의 턱에 물리면 다시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내 목숨이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고 갖은 수를 다 쓰는 모양이다. 사실 뻥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날 좀 우러러 보고 내 삶에 실존이 있다며 감탄한다. 

 

 

 #13 
다른 턱막이가 자기 경험을 얘기하면 머리 속에 질투심이 솟구친다. '어쩌라고? 그래 너 잘났군. 그런 경험을 얘기하면 네가 잘난 줄 아나? 난 가시 완갑으로 네 턱을 부술 수 있어. 넌 눈물을 질질 흘리겠지.' 그러곤 입으로 대답한다. "유익한 이야기입니다. 무전 채널 교환할까요?" 

 

 

 #14 
난 너무 뒤틀린 것 같다. 나에게 권력이 없다는 데 감사한다. 하지만 턱막이는 진짜 좋은 직업이다. 나 같은 겁쟁이도 용기 있는 사람으로 덮어주는 게 턱막이다. 정말 다행이다. 짐승들이 턱이 아니라 전략미사일로 공격을 했으면 미사일 방어체계가 이런 영광을 뺏어 갔을 것이 아닌가? 

 

 

 #15 
사냥꾼들의 모임에 나갔다. 누가 날 추켜세우더라. 같잖은 일이다. 입이 벌어진 건 사냥하다 다쳐서 근육이 내 마음대로 안 움직여서 그렇다. 그 사람이 말하더라. "정말 대단해요. 턱막이님 같은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아쉬워요." 빈말이다. 같잖은 빈말. 그 사람이 계속 발끝으로 내 발끝을 건드렸다. 같잖다. 아마 사냥꾼 무리를 옮기게 하려고 유혹하는 걸 거다. 뭐 옮겨도 상관은 없다. 

 

 

 #16 
살다 보니 꼭 속는 게 나쁜 건 아니다. 현명한 사람은 속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현명한 사람은 속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인생 편하게 퉁치려는 인간들 말이다. 그런 현명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현명함은 현명하지 못 한 삶에서 현명함을 끌어내는 것이다. 

 

 

 #17 
그 여자는 사냥꾼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우두머리 때문에 처음으로 티라노사우루스 사냥에 나섰다. 엄밀히는 나도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사실 정말 해보고 싶었다. 프로는 자신의 상황을 원망하지 않는다. 발끝을 살랑이던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들었단 이유로 위험한 계약에 서명해도 동기 부여할 수 있는 게 프로다. 

 

 

 #18 
가끔 동기 부여가 안 될 때도 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껌을 씹듯 내 갑옷을 씹었다. 내 경험 밖의 문제였다. 다른 사람이면 두 동강이 났겠지만 나는 세 동강이 났다.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우두머리는 내가 없었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거짓말! 다신 속나 봐라! 그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용했을까! 

 

 

 #19 
원래 이용이란 개념 자체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 계약은 서로를 이용함을 문서로 잘 정리해둔 것이다. 나도 우두머리를 이용하고 있으니까. 사실 내가 훨씬 잘 이용하고 있다. 굳이 그 사실을 밝힐 필욘 없다. 사냥할 때도 짐승이 사냥당한다는 기분이 들게 하면 안 된다. 짐승은 턱막이 하나만 바라보게 해야 한다. 정신을 차릴 때 즈음이면 화살로 화장을 하겠지. 

 

 

 #20 
우두머리는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를 아주 하인처럼 부리고 있다. 자유를 얻어야 한다. 굴종의 열매는 언뜻 보기엔 달다. 우두머리가 내 머릿결을 만지거나 갑옷 입는 걸 도와줄 때면 속아넘어가곤 한다. 그러나 나에겐 진실을 보는 눈이 있다. 진실을 보는 눈은 현상의 생김새에 얽매이지 않고 그 안에 든 실질만을 본다. 인간은 굴종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21 
굴종이 나쁠 것은 없다. 한 번 사는 삶이고 각자의 삶의 형태는 다 다른 법이다. 무엇이 나쁘다, 좋다 말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받아들이기 싫은 부분도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안고 사는 게 더 진보하고 발전한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두머리가 이번 일이 끝나면 사냥은 관두고 그 동안 모은 T스톤 들고 작은 섬에 가서 둘이서 밭을 일구며 살자고 했다. 꽤 멋질 것 같다. 

 

 

 #22 
우두머리가 죽었다. 내가 사냥하다 넘어졌고 팔 밖에 붙인 가시가 거꾸로 찔렸다. 짐승이 내 다리를 잡아당기자 우두머리가 갑옷 없이 턱막이 역할을 했다. 그 여잔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수혈했으면 살았을 텐데. 곱씹어도 울분 터지는 일이다. 굴종의 세월도 이젠 끝났다. 밭 같은 건 필요 없었다. 

 

 

 #23 
난 그 여자를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다. 자꾸 생각나고 꿈도 꾼다. 한땐 죽음이란 게 합리적인 제도라 생각했다. 누구나 겪는다는 게. 이제 와서 생각하니 꼭 누구나 죽을 필요는 없다. 죽고 싶은 사람만 죽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알아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죽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죽어야 하나. 

 

 

 #24 
한동안은 우울했다. 이제 괜찮다. 다시 머리에서 질투심도 돌고 열등감, 비아냥도 재를 뿌리고 다닌다. 우두머리는 죽었고 삶은 돌밭에서 뒹구는 거 마냥 굴러간다. 짐승들은 어제도 오늘도 턱을 놀린다. 이제 넘어지지 않게 갑옷을 개량했다. 왠지 며칠 안에 그 여자보다 더 괜찮은 여자를 만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거의 확신이 온다. 난 성욕 넘치는 탐욕스러운 중년 남성이니까. 

 

 

 #25 
오래 생각했다. 그 여잔 못 잊을 거야. 나중에 사냥할 힘이 없을 정도로 늙으면 그 섬에 가 보자.

8개의 댓글

2019.02.09

꿀잼

0

14 23이 넘 맘에 든다

1
2019.02.09

아 스토리텔링 진짜좋네

0
2019.02.09

존나재밌다...시불

0
2019.02.10

턱막이가 저게임에선 탱커 같은건가

0
2019.02.11
@아다킹

인게임에 턱막이같은 거 없음 ㅅㅂ

0

읽다보니 듀랑고는 게임이 아니라 웹툰이나 소설을 만들었어야 했다

0
2019.02.13

스토리 좆되네...

왜 이걸로 좆망겜을 만들었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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