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손톱을 먹은 쥐의 삶

150804019663320_thumb_1024_w.jpg

<이탈리아 피사 대성당. 로마네스크 특유의 석재 구조물로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잘 나타낸다. 뒷편에 피사의 사탑도 보인다>

 

피사의 대성당(Duomo di Pisa)은 이슬람 교도들을 대패시킨 팔레르모 해전에서의 승리를 기려 건축되었다. 본래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피사는 이후 지중해 무역 거점으로 급부상하면서 직전까지 비잔틴 제국과 각축을 벌여 온 이슬람 세력과 분쟁을 일으켰더랬다. 인근의 제노바와 함께 이교도에 직면한 피사는 맹렬하게 무슬림들을 공격했고, 1016년엔 사르데냐 섬에서, 1063년엔 팔레르모에서 이슬람 세력을 정벌했다. 이렇게 해서 막대한 전리품을 얻은 피사가 자축의 의미로 대성당을 세운 것이다. 피사 대성당은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 형태를 띠도록 설계 됐고, 정 중앙에 돔 모양의 둥근 지붕을 씌워 놓았다. 외부는 각종 조각상으로 치장했으며 층층이 아치형 기둥으로 떠받쳤고, 이탈리아 화가 치마부에의 "전능하신 그리스도"를 비롯한 많은 예술 작품들이 내부를 수놓아, 대성당의 안팎 어느 곳을 보더라도 미적 가치는 탁월하다고 하겠다.

 

그치만 진짜 유명한 것은 따로 있다. 그래, 피사의 사탑 ! 피사의 사탑은 물론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모양새지만, 기울어져 있다는 특징 때문에 유명해졌다. 지을 때부터 기울어져 있는 바람에 공사 기간만 200년에 달하도록 늘어졌고, 그러고도 계속 기울자 1990년에 경사각 수정 공사를 실시했다. 탑의 남쪽이 기울어있으니, 북쪽 기반을 깎아버리는 거지. 결과는 대성공하여 더 이상 탑이 눕는 일은 없어졌고, 안전 상의 이유로 금지되던 관광객들의 탑 입장도 허가 됐다. 덕분에 오늘날에도 탑을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지경이다.

 

한데, 피사의 사탑은 본래 대성당에 딸려있는 종루였다. 피사 사람들은 이것을 지금의 두 배는 되는 높이까지 쌓아서 이탈리아 제일 가는 첨탑을 세우려 했지만, 땅이 꺼지는 바람에 거기서 그쳤다. 말하자면, 설계 당시 본연의 기능과 의미는 대성당 본관에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탑을 구경하러 왔다가 대성당을 곁다리로 볼 뿐, 그 반대로는 하는 법이 없다.

 

사실, 인간사에서 이러한 일은 제법 자주 벌어진다. 맥도날드의 해피밀을 사먹는 사람들은 조그만 버거보다 사은품인 장난감을 더 애지중지 하지 않던가? 죠스는 소설이 원작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너무 성공하는 통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영화만 회자되고 있다. 주객전도(主客顚倒)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주객전도 현상이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qihg1.jpg

 

 

<춘추오패도. 왼쪽에서 두번째 인물이 송 양공이다. 때때로 춘추오패에서 그의 이름을 빼기도 한다>

 

송 양공(襄公) 자보(玆甫)는 송 환공(桓公) 어열(御說)을 이어 즉위한 춘추시대의 군주다. 태자에 임명될 당시, 자보는 배 다른 형 목이(目夷)의 자질이 더 뛰어나니 그가 더 적합하다며 자리를 고사하려 했는데, 서출인 목이보다 적자가 더 나을 것 같았던 환공이 거부했다. 이윽고 양공이 나라를 물려받자, 그는 목이를 재상으로 임명함으로써 우애를 돈독히 다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송 양공이 도리를 아는 군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기원전 643년, 등극 8년만에 그의 본색이 드러난다. 제 환공의 죽음으로 천하에 패자(覇子)가 사라진 것이다. 제 환공은 아들만 여섯을 낳았으나, 그 중에서 적장자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제나라의 후계구도는 아수라장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송 양공은 마침 송 땅에 망명 중이던 태자 소(昭)를 지원해 공위에 앉히는데 성공하니, 그가 바로 제 효공(孝公)이다.

 

일짱 조진 사람이 일짱 먹는 게 국룰이잖아? 패권국이었던 제의 후계자를 손아귀에 넣고 좌우하게 됐으니, 콧대가 솟을대로 솟은 양공은 제 환공이 그러했듯이 타국 제후들을 소집하면서 맹주를 자처했다. 그러나 졸렬하게도 송 양공이 집결을 명한 제후들은 증(鄫), 등(), 조()처럼 한결 같이 잡국이었고, 강대국들은 부담스러울까봐 부르지도 않았다. 그마저도 끗발이 안 먹혀서, 증나라 같은 경우 이틀이나 늦게 참석했다고 한다. 대노한 송 양공은 증의 군주를 잡아다 가마솥에 삶아버렸고, 그 고기로 오랑캐 신인 수수에게 제를 올렸다(= 동이족을 포섭하기 위해). 이 같은 행태에 대경실색한 조나라 군주는 말도 않고 집에 가버렸고, 여기에 또 킹 받은 송 양공이 군사를 일으켜 조를 쳤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때마침 정(鄭)이 초, 노, 진 등의 나라와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에 후방을 염려하는 척 하며 이 실속 없는 전쟁을 끝낸 송 양공은, 그들 중 우두머리 격인 초에게 회맹을 갖자고 청한다. 이 기회에 초의 속국들이라 할 수 있는 제후들과 다리를 놓아달라는 취지였다. 송 양공의 계산에 따르면 강대국인 초의 위세를 빌려 열국들을 불러 모은 후, 자신의 은덕으로 감화시킨다면 송나라가 패국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어이 없는 요구에 초는 순순히 응했지만, 실은 다른 꿍꿍이가 초에게도 있었다.

 

송 양공을 비롯한 많은 제후들이 회맹한 기원전 641년, 누가 맹주를 맡을 것인지를 두고 송과 초가 다투었다. 당시 초의 군주는 초 성왕(成王) 미군(!!!)으로, 왕을 자칭했지만 작위는 자작이었는데, 공작위인 양공이 회맹연에서 노골적으로 초 성왕을 모욕했다 : "나는 조상의 공로로 상공의 벼슬에 오른 고로, 천자조차 나를 대할 때 빈객의 예로 맞이하십니다. 그대(= 초 성왕)는 주 왕실에서 내린 벼슬(= 자작)을 버리고 멋대로 왕이라 칭하니, 가짜 왕이 어찌 진짜 공작에 비하겠소?" 하지만 송 양공은 어리석어도 한참을 어리석었으니, 초 성왕이 되받아쳤다 : "그래요? 그럼 여기 제후국들을 당신이 불러 모았어야지, 왜 나더러 불러달라 한 것이오? 이래도 내가 당신에 비하지 못한단 말이오?" 그러고는 복병들을 시켜 송 양공을 납치해버린다.

 

초 성왕은 송 양공을 붙잡으면 송에서 내란이라도 날 줄 알았지만, 다행히 목이가 송을 잘 건사했다. 때문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진 양공은 그냥 풀어주게 되었다. 하지만 패업을 꿈 꾸던 양공이 감읍하며 물러날 리가 없지.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 송 양공은 초의 앞마당인 정나라를 치고자 했고, 이에 정에서도 초에 원군을 요청했다. 초군과 송군은 홍수(泓水) 강에서 대치한다.

 

여기서 송 양공은 어처구니 없는 실책을 범했다. 초군이 홍수를 도하해 넘어오자, 이를 기회라 여긴 장군들이 "지금 대열이 흐트러진 초군을 쳐야 승산이 있습니다. 무기와 사기가 우리보다 뛰어난 초군을 이길 수 있는 기회는 지금 뿐입니다."라고 간했는데, 송 양공은 "저들은 무기도 많고 훈련도 잘 되었지만, 인의가 없도다. 나는 인의로써 적을 상대할 것이니, 주 무왕이 3천 군사만으로 은나라 억만 대군을 상대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인의 덕분이니라." 라며 거절한다. 강을 다 건너와 대오를 정비한 초군과 정정당당히 맞서겠다는 뜻이었다. 참모진은 "전쟁터는 사람을 살육하는 곳인데 인의 타령이라니, 이런 개소리가 어딨는가." 라며 혀를 찼다고.

 

당연히 정예 초군에게 상대도 안 되는 송군은 깨강정이 되도록 털리고, 송 양공 본인도 허벅지에 화살을 맞아 시름시름 앓다가 1년 뒤에 죽고 만다. 사람들은 송나라 군주가 쓸데 없이 초나라 군병들한테 인자했다면서 대차게 까는 의미로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고사성어를 만들기에 이른다. 재밌는 점은, 송을 칠 적에 제 효공도 가담했다는 점이다. 인의를 논하면서 사람을 삶아죽였던 놈 답게, 자신이 효공을 후원해 놓고도 그다지 인덕을 베풀지 않았던 모양이다.

 

Huizong.jpg

<송 휘종(徽宗) 조길(趙佶). 후일 금나라에 붙잡혀서 혼덕공(昏德公)으로 불리운다>

 

북송의 정세는 신종, 철종의 2대를 거치면서 굉장히 심각해져 있었다. 아시다시피, 북송은 이상하리만치 군대가 약해 여기저기 평화유지비 명목으로 외국에 바치는 재물이 막대했다. 또한 세대를 거듭하면서 정착한 관료제의 규모가 과하게 커졌고, 지주들이 부당하게 토지를 잠식하는 사태가 비일비재했다. 한마디로, 나라 안에 새는 돈이 너무 많았다. 이에 신종은 왕안석을 위시한 개혁파 신료들을 앞세워 국내의 부정부패 척결과 줄어든 세수 확충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기득권 세력과의 반발로 인해 개혁은 지지부진했고, 그 사이 이도 저도 아닌 미봉책들만 남발되어 부작용이 더욱 심해졌다. 이를 놓고 신하들끼리 서로 지지하는 사안 별로 나뉘어 당파싸움을 벌인 것은 물론이다. 신종의 뒤를 이은 철종도 이 문제를 고쳐보려 했으나, 그가 뜻밖에도 25살에 요절하면서 다음 차례인 휘종에게 대업이 맡겨졌다.

 

송 휘종 조길은 신종의 서출이자 철종의 이복 동생이라서 본래 황위와는 관련 없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철종이 후사 없이 죽은데다, 평소 황태후가 총애했기 때문에 조길이 황제에 오를 수 있었다. 그에게 3대에 걸친 구법/신법 당파 싸움과 현실 정치의 묵은 모순을 해결할 무거운 과업이 주어졌는데, 조길은 과연 잘 풀어낼 수 있을까?

 

우선 휘종은 잡기에 굉장한 소질이 있었다고 전한다. 보통 황제가 뭘 해봤다고 자랑하면, 높으신 분 비위 맞춰주느라 사장님 나이스샷을 외쳤겠지만, 휘종은 진짜로 실력자였다. 글씨면 글씨, 그림이면 그림, 악기면 악기, 그야말로 못 하는 게 없었다. 수금체라는 본인만의 서체를 만들었으며, 시도 잘 지었고 산수화에도 능했다. 예악을 정비해 고려에도 영향을 끼쳤을 지경. 뿐만 아니라 바둑도 잘 두었다고도 하며, 대관다론(大觀茶論)이라는 다도 문화에 대한 글을 집필하는 등 차 문화를 발달시키는데도 앞장 섰다. 게다가 축국도 잘 했단다. 황순원과 천경자와 김광석과 이세돌과 손흥민이 한 몸으로 태어났다면 진작에 주모는 과로사 했겠지.

 

그러나 정치는 쥐뿔만큼도 몰랐다. 분명히 아버지 대에 국고가 비는 문제를 인지했고, 그것을 고치고자 다시 2대에 걸쳐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휘종은 오히려 돈을 물 쓰듯이 써버렸다. 응봉국(應奉局), 조작국(造作局) 등의 조직을 신설해 안 그래도 비대한 관료 조직을 더 키웠는데, 이들이 하는 일도 오직 휘종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기 위한 일 뿐이었다 : 응봉국은 멋지게 생긴 수석이나 아름다운 화초를 수집해 황제의 정원을 꾸미는 업무를 맡았고, 조작국은 골동품과 희귀한 질료를 모아 황제의 공예품을 만들어 올리는 일을 했다. 그 규모도 놀라워서, 고작 휘종의 갬 - 성을 위하는 일로 배 열 척 씩을 동원했다고 한다. 열 척의 선단을 강(綱)이라 불렀으므로, 사람들은 휘종의 취미를 돕는 수집단을 일컬어 "화석강(花石綱)"이라 했다.

 

이 따위로 사치를 부리니 버틸 재간이 있나. 휘종은 망하지 않으려고 백성들에게 중과세를 부여했으며, 토지를 재측량한다는 명목으로 일부러 짧은 척도를 동원한 뒤 남는 땅은 국유화하는 식으로 세수를 늘렸다. 하지만 진작부터 지주들의 농간, 화석강 놀음으로 인한 부역 때문에 이중고를 겪던 농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기어이 1120년, 방랍의 난이 발발한다. 방랍과 반군은 거병한지 열흘만에 10만 명에 이를 정도로 크게 호응을 얻었고, 응봉국과 조작국이 설치된 항주를 먼저 칠 만큼 독기가 가득차 있었다.

 

방랍의 난은 송 조정에 지대한 타격을 입혔는데, 규모도 규모였지만 타이밍이 문제였다. 휘종은 당시 송이 화평을 구걸해오던 요가 여진족 국가인 금과의 교전으로 휘청이는 것을 보았다. 이에 요에게 빼앗긴 옛 땅을 되찾을 꾀를 생각해내고, 금과 연합해 요를 치려 했던 것이다. 휘종은 앞으로 요나라에 바치던 공물 만큼을 금나라에 보내겠으니 요를 나눠먹자고 꼬드겼고, 이에 금이 응하여 요를 쳤다. 그런데 방랍의 난이 터지는 바람에, 금군과 협공을 가하려던 송군은 반란을 진압하는데 동원되어야 했다. 비록 방랍군은 1년만인 1121년에 궤멸되었지만, 그 1년 동안 출병을 지체한 탓인지 금에서는 송 군주가 차도지계(借刀之計)를 쓰려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부랴부랴 군을 재편성하여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요를 막타 치러 보낸 휘종은,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 한다. 금이 혼자서 요 황제를 수도까지 몰아넣어 놨건만, 이걸 못 이겨서 연전연패만 거듭했기 때문이다. 금 입장에서는 충분히 송과 요가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볼 만 한 상황. 결국 송이 더 많은 공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개입한 금이 단숨에 요의 연경을 함락하면서, 요는 멸망하였다. 송군이 약하다, 약하다 했지만 이 정도로 약할 줄은 송 휘종 자신도 몰랐으리라.

 

자, 요가 끝장 났으니, 약속대로 송도 할 일을 해야지? 그러나 송 휘종은 갑자기 헛바람이 들었는지, 금에게 줘야 할 재물과 땅들을 쥐고서 놓지 않았다. 도리어 휘종은 요의 패잔병들과 은밀히 접촉해 금에 협공을 가할 계획까지 세운다. 이게 잘 됐으면 또 모를까, 금방 누설되면서 금나라를 진노하게 만들었다. 결국 1125년, 금 태조 아골타가 친병하여 송을 에워쌌다.

 

휘종의 대응은 심플했다. 아들 조환에게 황위를 물려주는 게 그것이다. 그가 바로 북송 마지막 황제 흠종이다. 일단 흠종은 사태 수습을 위하여, 더더욱 많은 공물과 땅뙤기를 바치겠다는 약조를 하고 원흉이라 할 수 있는 간신들을 처형함으로써 겨우 금군을 물릴 수 있었다. 하지만 조정 내의 주전파들이 밀어붙이자 태도를 바꾸어 또 다시 금을 엿먹였다. 이번엔 제대로 빡친 금나라가 요보다 더 빨리 송을 박살내는 바람에, 흠종과 휘종은 나란히 포로가 되었다.

 

두 사람은 금나라 땅에서 죽었다. 흠종이야 무슨 잘못이 있으랴만은, 휘종은 일국의 황제로서 결코 지탄을 피할 수 없었다. 애국하는 마음이 예술에 대한 애착의 1/10이라도 있었더라면, 차라리 일찌감치 선위하고 상황으로 물러나 그토록 하고 싶었던 예술을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미 과오가 지나쳐서 나라와 일가, 자기 자신의 신세를 망쳐버렸고, 금에서는 한껏 조롱하는 의미로 혼덕공(= 덕을 망친 놈)이란 작위를 내렸다.

 

MingShenzong1.jpg

<명 신종(神宗) 주익균(朱翊鈞).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응당 만력대제라 불러 마땅하다>

 

주익균도 준비된 군주는 아니었다. 부황 융경제가 고작 6년만에 죽는 바람에, 열 살 나이로 대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송 휘종과 달리, 신종에게는 장거정이라는 필두 재상이 있었다. 장거정은 황제의 스승으로서 신종에게 제왕학을 엄히 가르쳤고, 섭정으로서 내외 국정에 지대한 업적을 세웠다. 먼저 토지를 재측량해 은닉된 땅을 찾아내고, 쓸데 없이 복잡한 세금들을 하나로 통폐합했으며, 향후 모든 세금을 은으로 납부하도록 정했다(= 일조편법). 이같은 조치는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유구하게 이어진다. 그 뿐인가? 남과 북으로 국경을 정비하여 왜놈이나 오랑캐가 준동하지 못하게 방비한 것도 그의 공이다. 장거정에 힘입어 명나라는 한 시름 돌리게 되니, 사람들이 이 시기를 만력중흥이라고 불렀다.

 

1582년, 장거정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성년이 된 신종이 친정을 할 시간. 그런데 신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름 아닌, 장거정의 일가붙이를 몰살하고(장거정은 부관참시), 그의 당여들을 궐 밖으로 내쫓는 일이었다. 생전에 장거정이 부정부패했음을 들은 신종이 처음엔 그를 두둔했으나, 조사를 명해 실상을 파악한 뒤 대노하여 일으킨 사건이다. 이 때 장거정의 식솔들은 문초가 진행되는 동안 물 한 모금도 못 마셔서 굶어 죽는 이가 속출했고, 장거정을 거드는 이는 여지 없이 파직 당해 쫓겨났다. 특히 장거정이 중용해 장군이 된 척계광은 왜구와 여진족을 모두 박살낸 최영급 명장임에도 불구하고 옷을 벗어야 했으며, 그만한 사람 없으니까 재기용해야 한다고 건의한 사람들도 벌을 주었다.

 

그러더니 그 유명한 칩거에 들어갔다. 신종은 그야말로 국가의 대소사에서 거의 손을 놓았고, 제발 조정에 복귀하시라는 신하들이 땡볕에 쓰러지도록 호소해도 눈썹 하나 까딱 않은 채 30년을 파업했다. 때문에 명나라는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되다시피 했다.

 

일각에서는 신종이 받은 정신적 충격 때문에 벌인 일 아니냐는 주장을 한다 : 앞서 말했듯, 장거정은 신종을 엄히 가르쳤다. 경전을 외게 하고는 못 해냈을 때 불같이 날뛰었고, 10년 내내 공부를 시키면서 도학군주가 되도록 쉼없이 채찍질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알짜배기 땅마다 알박기를 시전했고, 대궐보다 더 큰 집을 지었으며, 뇌물로 착복한 돈만 해도 황제 자신의 재산보다 많았단다. 여기에 현자 타임이 와버린 신종이 "인간 따위는 쓰레기다, 큭큭..." 하며 인간불신을 드러낸 행위가 파업이란 뜻.

 

또 한 편으로는, 장거정의 개혁에 반발한 지주층 및 기득권 세력과 결탁한 중앙 정계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신종이 결단한 것이라고도 말한다 : 장거정은 서원을 철폐하고 언관들을 핍박해 선비들을 옥죄었고, 조정의 기강을 잡겠다고 법가적 엄벌주의에 기반한 통치 풍조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개혁파 인사들을 문무 요직에 발탁했으니 그 반발이 컸다. 다만 장거정 생전에 신종의 총애와 신임이 두터워 감히 대적할 자들이 없었는데, 이제 그가 죽었으니 복고주의가 고개를 들었고 신종이 장거정 없이 그들을 다루기 어려웠지 않았냐는 뜻.

 

하지만 내 생각엔 신종이 충격 먹어서 삐뚤어진 것이나 신하들과의 파워게임에서 진 게 아니라, 원래 성정이 그랬던 것 같다. 신종이 군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일에 몰두한, 권위주의적 인간이란 말씀이다 : 신종은 재위기간 내내 백성들의 곤궁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자신의 열락을 위해서는 탕진하기 일쑤였다. 어려서부터 술과 여자를 좋아해서 장거정이 몇 번이나 뜯어 말려야 했으며, 초호화 무덤을 축조하는데 혈안이 돼서 명의 1년 예산을 훨씬 웃도는 돈도 흥청망청 써댔다. 뿐만 아니라 신종이 내시나 궁녀 같은 아랫사람들을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등의 학대를 자주 했다고 한다. 장자를 낳고도 맘에 들어하지 않아서 태자 책봉을 20년이나 미뤘고, 결정한 후로 황태자를 홀대해서 파란을 일으켰다. 임진왜란에서의 행보도 그렇고, 신종은 희한하게도 실리보다 자신의 고집에 따른 결정들을 많이 내렸는데, 모두 제왕적 풍모가 있었다. 명색이 황제니까 제 맘대로 하겠다는 거지.

 

특히 신종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도운 일이야말로 황제의 권위를 위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신종 당시 명나라에는 3번의 큰 변란이 있었는데, 영하의 역/임진왜란/파주의 역을 통틀어 만력 3정이라 한다. 이 때는 영하의 역을 진압하고 2년이 겨우 지난 시점이었고, 누르하치가 건주 여진족을 통합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 외국으로 원군을 보내겠다는 결정은, 본토로 왜적을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전략적 판단 외에도 정무적 동력이 필요했다. 명 조정 내에서도 참전론자와 반대론자로 나뉜 신료들 간의 파벌 싸움이 극에 달했다. 장기간의 칩거, 무리한 축재와 이를 위한 중과세로 황권이 위태로움을 안 신종은 조공국인 조선에 관대한 원조를 결단함으로써 따꺼의 품격을 대외적으로 널리 표방하고, 왜놈처럼 감히 정명가도(征明假道) 따위 헛소리를 하는 놈들의 기를 꺾는 효과를 노렸다. 그래야 또 놀지.

 

때문에 그의 별명은 조선황제였다. 자기 나라 일을 열성적으로 돌봤어도 모자랄 판에, 남의 나라에 위엄을 떨치기 위해 군대도 두 차례나 보내주고(1차는 5천 명, 2차는 20만 명) 식량도 어마어마한 양(양곡 백 만 석 = 대략 10만 톤)을 쏟아 부었다. 자국민들은 이미 두 번의 전쟁과 황제 본인의 사치, 무덤을 짓는 대토목 공사로 피골이 상접할 지경이었지만, 지존이신 황제 폐하께서 알 게 뭐람. 그의 기록적인 태정(怠政)은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조선의 연산군을 봐. 갑자사화 이후 고작 2년 동안 정사를 방치한 걸로 반정에 왕위를 잃고 묘호도 못 받았고, 신하들이 두고두고 임금 꼽 주는 수단으로 써먹혔잖아?  

 

dc6fe785fee564ffc47005dcd1067263bf925dc82e50db1c1ba07e06aec9584cd6692d54c4ab61deb6dcf4914ec28eb614888102986190f8eb6a23131ca.jpg

<로마 황제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Lucius Aurelius Commodus Antoninus). 헤라클레스인 줄 알았지?>


콤모두스는 20살에 즉위하여 로마를 물려 받은 사람으로, 오현제 시절의 전성기를 끝내고 군인 통치기를 연 장본인이다. 영화 「조커」에서 명연기를 선보인 호아킨 피닉스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콤모두스 역을 맡은 바 있는데, 이 인물은 실제 콤모두스와 많이 다르다. 영화 속 등장인물인 콤모두스는 부황의 사랑을 받지 못한 데서 비롯한 애정결핍과 황위를 향한 갈망, 누이인 루실라에게 품은 금단의 애욕 등으로 뒤엉켜 혼돈한 사람으로 표현되는데, 실존인물 콤모두스는 그냥 방탕했다.

 

콤모두스는 검투 경기를 너무도 좋아해, 자주 경기를 베풀어 시민들과 함께 관람했다. 로마 황제들이 여론의 불만을 잠재울 때 쓰는 상투적 방법이지만, 콤모두스의 경우 순전히 본인이 검투사를 매우 동경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가 직관하던 경기에서 베테랑 검투사들이 서로 죽을까봐 미적거리며 소극적이게 싸우자, "오늘 이 경기장에서 검투사는 한 놈도 살아 나가지 못 한다"며 모든 검투사들이 죽을 때까지 싸우게 했다. 마산아재들도 롯데가 죽쑤면 똑같은 대사를 날릴테니, 그의 펜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할 수 있겠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자신이 검투사를 자청했다. 중세 시절 마상 창 시합을 벌이던 기사들과 달리, 당시 로마에서 검투사의 사회적 지위는 싸우는 광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걸 1등 시민인 황제가 해먹겠다고?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콤모두스는 검투사가 되기 위해 검투사 조합에도 가입하고, 개인 연습장도 축조했으며 자신과 대전할 상대를 신중히 고르기까지 했다. 젊은 황제가 혈기를 주체 못 하고 중2병에 빠져 헛짓거리를 하는구나.

 

... 라고 하기엔 너무도 실력이 출중했다. 콤모두스는 700전이 넘도록 검투 경기에 참여해 전승했다. 그가 상대를 직접 지목했으니만큼 약골만 상대한 것 아니냐, 또는 명색이 황제인데 상대방이 어떻게 전력을 다 했겠느냐는 지적도 일리 있다. 그러나 콤모두스는 짐승들을 상대로도 엄청난 전적을 올린 바 있다. 그 당시 베스티아리(Bestiarii)라고 맹수들과 모의 사냥을 연출하는 검투사도 인기 있었는데, 콤모두스는 이 직종에도 도전해 코끼리, 호랑이, 하마, 곰 등을 잡아 죽였으며 타조나 말 같이 발빠른 짐승들은 활로 쏘아 잡았다. 카시우스 디오에 따르면 하룻동안 사자 100마리를 죽였단다. 곰이 무슨 안목이 있어서 황제를 알아봤겠어. 이같은 기록은 콤모두스의 강건함이 초인적이었고, 따라서 검투사로서 그가 이룩한 전적이 가치 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철인황제(哲人皇帝)라고 불리웠던 부황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는 달리, 콤모두스는 위정자로서의 덕목은 그다지 갖추지 못 했다. 정사는 일절 돌보지 않았고, 허랑방탕하게 놀아재끼며 국고를 탕진하며 나라를 좀먹었다. 콤모두스 시절 로마는 계속된 전쟁과 전염병, 기근과 대화재로 시민들의 피로가 극에 달했는데, 황제라는 작자가 처첩 300명(+ 미소년 시동)을 끼고서 공공연하게 매관매직으로 돈 놀이나 했으니 민심이 고울 리가 없다. 끝끝내 로마 군중이 들고 일어나 황궁으로 향했고, 대경실색한 콤모두스는 자신을 대리해 정무를 보던 클레안드로스를 참수해서 책임을 묻고서야 성난 시민들을 잠재울 수 있었다.

 

물론, 콤모두스에게도 변명의 여지가 있다. 즉위 2년 차에 그가 의지하고 따랐던 큰 누나, 루실라에 의한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루실라는 야심만만하고 표독스러운 인물로 기록 되어 있는데, 남동생이 황제가 되자 그를 죽여버릴 계획을 세웠더랬다. 이 일에는 원로원과 근위대장, 심지어는 콤모두스의 장인까지 참가했다. 죽을 뻔한 경험 이후 크나큰 배신감을 느낀 콤모두스는 루실라 일가를 유배에 처한 뒤 죽여버렸고,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을 줄줄이 박살냈다. 일각에선 콤모두스가 노회한 루실라계 정치인들을 역모로 엮어서 한 큐에 보내버리는 수완을 발휘했다고 보기도 하는데, 나는 단순히 공포와 실망감 때문에 무분별하게 벌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로원씩이나 되는 사람들을 재판도 없이 처형했으며, 그들의 인망을 고려해 행여나 복수할지도 모르는 식솔들까지 다 죽였으니까. 이후 마테르누스의 역모, 로마 봉기 등을 겪으면서 사람이 완전히 넋을 놓아 버린 게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콤모두스가 원로원에게 자신을 신격화 해 달라고 요청한 건은 욕 먹어 마땅했다. 망상이 도진 콤모두스는 자신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이 아니라 주피터(= 제우스)의 아들이고, 그 중에서도 천하무적으로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환생이라 주장하며 숭배를 강요한 것이다. 콜로세움에도 자기 석상에 곤봉을 추가하고, 사자 동상을 발치에 둬서 매우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연출을 지시했다. 사자가죽과 곤봉을 장식한 그의 흉상은 이 때문에 만들어졌는데, 실로 과분한 물건이다. 콤모두스가 무슨 치적이 있다고 살아 생전에 신으로 추앙 받아야 한단 말인가? 한술 더 떠서 아예 로마의 건국 군주 로물루스와 맞먹으려고 들며 달력도 새로 지정하고, 로마에 자기 이름을 붙이려는 등 망발을 일삼았다. 죽기 직전에는 검투사이자 집정관으로서 행세하려고 하는 통에, 시민들과 귀족들의 공분을 샀다.

 

검투사로 태어났더라면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쳤을 콤모두스는, 자신이 믿었던 침실 시종과 레슬링 교관에 의해 암살 당했다. 콤모두스 사후 권력 승계는 마치 예정된 수순인 양 신속하고 기계적이게 이뤄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암살에 가담하고 기대했음을 의미한다.

 

30171031_1676535169097472_4650054762310253516_o.jpg

<현대건설 '트렌드 콕' 2018년 12월 게시물. 요즘은 저만한 타르트도 꽤나 비싸지?>

 

여러분들은 "소확행"이란 말을 아는가? 소하지만 실한 복이라는 뜻의 신조어란다. 2018년의 청년 문화를 주도한 동력은 소확행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벌써 2년 전이니까 딱히 신조어는 아니겠네. 이러한 말과 개념이 청년들 사이를 넘나들며 문화의 한 요소로 정착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소확행은 사실 이시국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으로 쓴 말이다. 풍요로운 물질 문명을 구가한 일본에서는 점차 자본 만능주의에 빠져 소모적이고 퇴폐적인 문화가 퍼졌다. 이에 하루키는 일상에서의 작은 기쁨으로부터 고갈된 정신적 행복감을 보충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소확행이란 개념을 창안하고 실천하길 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이 직전에 유행했던 미니멀 라이프, 욜로(YOLO) 등과 함께 쓰이면서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보다 지금 당장의 고된 현실을 위해 작게나마 힐링을 하라는 의미로 변화했다.

 

하지만 내 나이 유행에 민감한 방년 22세, 나는 물론이고 우리 동년배들도 누구 하나 소확행이란 말을 실제로 입밖으로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이 단어를 SNS와 광고지에서 많이 본 기억이 난다. 이 말은 희한하게도 "가성비"라는 또 다른 신조어와 잘 붙어다니며 제품을 열심히 홍보해댔다. 올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나만의 소확행 미니 선풍기, 남편 도시락을 채워줄 가성비 냉동식품으로 소확행하세요 ~ 같은 문구로 많이 접했지. 이는 내 기억력이 고작 그것 밖에 안 되는 소치이기도 하나, 소확행을 유행어로 밀고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시사한다고 하겠다.

 

또한 소확행으로 대표되는 소비 트렌드에는 몇 가지 발칙한 전제가 엿보인다 : 첫째, "소소한" 소비 규모의 정의다. 우리가 소확행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서 소비해야 하는 물건들은 결코 소소한 가격으로 매대에 오르지 않는다. 당신이 퇴근해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려면 야근을 안 해야 하는데, 이 경우는 야근 수당이 곧 샤워값이다. 가족과의 여행? 물론 좋지. 하지만 여행 경비는 한 두 푼이 아니다. 가성비 맛집, 가성비 물건, 내 지갑이 얇으니 우선은 택한다만, 싼 게 비지떡인데다 웬만해선 브랜드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할 뿐 그다지 싸다고 할 수 없다. 이는 소확행이란 생활 방식에 있어서 요구되는 지출은 소소하지 않은데도, 기업에서 "이 정도면 소소하죠."라고 설득하면 우리는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확실한 행복" 에 대한 보장이다. 소확행은 욜로족들의 소비 행태를 근원으로 하는 신생 트렌드다. 그러니 욜로족의 라이프 스타일과 소확행이 추구하는 삶의 형태는 본질적으로 같다 : 미래의 불확실성을 배제하고, 현실의 확실함만 취하는 경향이 도드라진다. 사실 소확행의 "확실한"이라는 말은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에 비해 "(지금 당장) 확실한" 행복을 수식하기 위해 있는 말이다. 이는 행복의 즉시성을 강조하는 개념일 뿐, 정말로 당신이 행복하도록 해주겠다는 뜻은 아니다. 즉, 소확행으로 당신이 확실하게 행복해지는 선택을 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행복"과 "힐링"의 혼용이다. 소확행이 유행을 타기 직전까지 청년들의 삶에서 오르내리던 사회 현상은 "힐링"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정서적 동요가 끓어오르는 청년들은, 사소한 보상을 통해 안정감을 선사하는 힐링 라이프에 매료됐다. 소확행은 그저 힐링이 장착했던 미래관을 좀 더 어둡고, 확정적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 우리 미래는 계속 불투명할 테고, 우리는 그것에 기대기에 너무 지쳤으니까, 그냥 지금 사소한 것으로 행복하자는 게 소확행 아닌가. 그런 점에서 소확행과 힐링은 결말이 같다.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청년들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무한재생에 빠진다. 힐링과 소확행 모두 지금 행복해져도 괜찮다는, 일종의 감성 회복에 가까운 생활양식이지 본질적인 행복의 취득이 아니다. 이를 망각한 채 소확행의 정신을 따르다보면, 순간적인 만족이 끝나고 남는 공허감이 다시 새로운 단기적 욕구를 부채질 한다. 그렇게, 청춘들은 소확행의 덫에 점점 빠져든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치자 꽃.png

<치자꽃. 3월부터 피기 시작한다. 꽃말은 행복, 한 없는 즐거움>

 

소소하고 확실하게 우릴 행복하도록 만들어주는 것도 분명 존재한다. 잠시 시간을 내서 모교를 방문하거나, 노을 질 때 하늘을 보거나, 퇴근하고 맥주 한 캔 마시거나, 저녁 반찬 뭐가 나올지 궁리하며 길을 걷거나, 인강 대신 영화 한 편 보는 것은 눈부시게 값지다. 이러한 삶의 한 모습들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다들 한 번쯤 겪어본 경험들이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이런 부분들을 놓칠 만큼 치열하고 무료하게 살아간다는 뜻이 된다. 무엇 때문에? 바로 그 불확실하지만 위대한 가능성으로 빛나는, 행복한 미래를 위한 준비 때문 아니었나? 어떻게 일개 기업 따위가 감히 우리의 미래를 함부로 불행하다고 단정 짓는단 말인가? 당신들은 어차피 넘을 수 없는 벽 안에 갇혔으니,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장기간의 불황과 청년실업, 고도로 가열된 경쟁 체제는 우리로 하여금 탈력을 느끼게 했다. 여기서 따지기엔 너무나 거대한 담론이 될 숱한 문제들로 청년들은 상처 입고 울분이 쌓였다. 때문에 우리 삶에 위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인생과 노력과 업적을 인정해주고, 내가 나아갈 수 있게 기회를 주고, 나로 하여금 세상이 더 발전했다는 확신이 들도록 해주는 진짜 위로다. "해도 어차피 안 될 텐데, 뭐하러 노력하니, 그냥 이대로 눌러 앉으렴" 하고 기업이 선심 쓰듯 팔아주는 소확행 따위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런 위로. 

 

그것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삶을 긍정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찾고, 우리가 있어 세상이 더 좋아졌다는 생각을 퍼뜨리는 일은 우리 몫이다. 비록 고되고,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될 수도 있지만, 저들 말대로 무가치하고 부질 없는 낭비는 결단코 아니다. 행복을 위해 미래에 투자하는 우리들의 노력을 쓸데 없는 짓 하는 걸로 바라보는 저들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 우리 삶의 주객이 뒤바뀌지 않도록, 우리부터가 부단히 애써야 할 때다.

50개의 댓글

2020.01.28
[삭제 되었습니다]
@히로세스즈

고마워 :)

0
2020.01.29

개추

1
@남자간호사

감사!ㅋㅋㅋ

0
2020.01.29

... 아니 제목만 보고 왔는데 자작임? 캬 좋네.

1
@Miracle31792

수제만 고집하는 정성으로 늘 고객님들을 모시겠습니다 :)

0
2020.01.29
[삭제 되었습니다]
@휴고빤스

고맙습니다. 제 글이 귀해질 수 있는 것은, 귀하게 읽어주신 덕분입니다 :)

0
2020.01.29

자기얏... 너무 길어...

2
@이츄이츄

등짝을 보자

0
2020.01.29

ㅆ부랄 뭔 스물두살이 글을 이래 잘써 앍!!!

1
@오스만유머

뻥임 22살 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

0
2020.01.29

ㅊㅊ이다,, ㅊㅊ각이다,,

1
@작은투자자

고맙습니다 :)

0
2020.01.29

머여 시불 나보다 젊어?

1
@lIlIlIlIlIlIlIlI

뻥이야ㅋㅋㅋㅋㅋㅋ 집에 아내가 있어

0
2020.01.29
@한그르데아이사쯔

아 ㅋㅋㅋㅋㅋㅋ 나이때매 난 이나이먹고 이런글도 못쓰는데 하면서 자괴감 개 오지게 들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빡치는 김에 님 닉으로 디씨 갤질해도 됨?

 

 

1
@lIlIlIlIlIlIlIlI
0
2020.01.29

캬 아침부터 좋은 글 읽는다 ㅊㅊ

1
@고질라

좋게 읽어줘서 좋은 글이 될 수 있었던 걸 거야ㅋㅋㅋ 고마워!

0
2020.01.29

진지하게 왜 유머?

내용도 제목이랑 다른데?

0
@dasbootz

고맙습니다.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0
2020.01.30
@dasbootz

이새끼 맨날 호기심 유발하는 관련없는 제목으로 유머 카테고리에 낚시질 하는 샛기임

0
2020.01.29

난 또 대학원생 손톱 먹은 쥐 얘긴줄 알았는데

1
@zazazan

어쩌면 나도 주인 손톱을 먹은 쥐라서 이렇게 챗바퀴를 굴리고 있고, 진짜 주인은 어딘가서 놀고먹는 것 아닐까?ㅋㅋㅋ

0
2020.01.29

송양공이 춘추오패에 들어간다는게 신기하네?송양지인 고사에 대해 다른해석으로는 어차피 강건너는중 쳐봐야 승산없으니 님들하고 싸울생각없음하고 그냥 때굴멍하려고놔뒀다는해석도 있던데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맞을것같다. 약한군주한테는엄하게 굴고 강한군주한테는설설기는행태를보인게 송양공이니 평소에 강대해서 내가 잘보인게있으니 초에서도 내가 때굴멍하면 한번쯤봐주겠지 하고 생각했을것같다.저시대는특히나 명분싸움같은게 강했던시기라.. 함봐주세요 엉엉 이러면 그래 이번만봐준다 하고 넘어갔을수도 있었다고봄.

1
@닉네임은2

그런 해석도 재미있네 :)

0
2020.01.29

문과인가 ㄷㄷ

1
@온천두부정식

모두에게 있을지 모를 생각을 대신 전했을 뿐이야 :)

0
2020.01.29

유머로 분류했길래 가볍게 보려고 했는데, 괜찮은 글 이었습니다 센세..

1
@180122

고맙습니다. 뇌피셜이 담긴 글은 항상 유머로 분류했는데, 많은 분들께 혼란을 주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0
2020.01.29

가정과 아이가 있는 22살이라....... 아주 조숙하군요. 한그르데아이사쯔짱?

1
@얻어걸린말투

데엣....? 내게... 아이가...?

0
2020.01.29
@한그르데아이사쯔

아 아내만 있다고 했네 ㅋㅋㅋ 쏘릿

1
@얻어걸린말투
0
2020.01.30

쥐 이야기 보러 왔는데;;;

1
@란란란란다

쥐의 해 기념:)

0
2020.01.30

잘보고갑니다

그런데 패자 한자가

霸者 이거 아닌가요?

태클거는게 아니라 한자 잘몰라서 찾아보다보니 이렇게 나와서 ㅋㅋ..

1
2020.01.30
@나니누

어쩌면 아들자나 놈자나 둘다 써도될수도있겠네

1
@나니누

둘 다 써도 될 것 같습니다. 子는 공자, 맹자, 노자, 한비자 등의 위인들을 일컬을 때 쓰는 존칭이고, 者는 일반명사니까요. 제 환공을 첫번째 패자로 인정하는 의미에서 子를 쓰는 사람도 있어, 그렇게 썼습니다. 고맙습니다 :)

0
2020.01.31

이런 인터넷 변방에서 썩고 있을 글 실력이 아니다. 본업이 따로 있을듯

1
@Awrfs757fswr

좋게 봐줘서 고마워. 글 관련된 직업은 아니지만 본업이 있긴 해 ;)

0
2020.01.31

선생님 책 하나 내실 생각 없으세요?

1
@오렌지카운티

기회가 된다면 좋은 책을 낼 수 있었음 좋겠네요 :)

0
2020.02.01

글이 참 좋네. 글 써서 먹고 사는 나보다 좋다 오우야

1
@호려ㅛ욘

프로에 어찌 비하겠습니까.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0

ㅇㄷ 이 분 글은 다 재밌음

1
@스리썸플레이스

고맙습니다, 다른 글도 잘 부탁합니다 :)

0
2020.02.01

난 글이 안읽혀서 여러번 읽었음. 솔직히 글 자체의 문제점이 너무 많아...

 

0. 이 글의 제목은 손톱을 먹은 쥐의 삶이고, 글 내용은 "주객전도"에 집중한다고 한다. 이건 OK다. 그런데 글이 정말로 주객전도에 집중하고 있는가?

 

1. 피사의 사탑은 기울어져있기 때문에, 중력실험에 적합했다.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게 '뭔가를 안전하게 떨어뜨릴' 만한 곳이 얼마 없었는데, 정말 그때 그 당시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근처에 피사의 사탑같은게 있었다는거는 일종의 신기한 우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과학 성지'로써 의미가 있는 곳이지, 단순히 기울어져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이 사례를 든 것이 주객전도 아닐까? 기운것을 다시 세우는 공사를 한것도 안전 문제때문이다. 기울어지는 피사의 사탑을 세운다고 해서 과학사적 가치가 떨어지는것도 아니고, 과학하는 사람들이 '기울어진채로 둬라' 라고 할만큼 빡빡한 사람들도 아니니. 피사의 대성당은 어떤 전투 (존나 거대하긴 하지만 아무튼)의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가 있긴 하다. 하지만 중력의 발견과 증명이라는 과학사적 사건에 견주면, 오히려 피사의 사탑 '객' 이었다가 더 큰 '주'를 상징하는게 아닐까?

 

2. 첫 사례의 송양. 송양이 송나라의 양공이라는걸 의미한다는걸 첫 문단에서 슬슬 소개하고 있고, 두번째 문단의 '그'가 송양이라는걸 또 어렵잖게 짐작할수있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인데, 왜 '증, 조, 등' 같은 나라들은 잡국이라고 불렸는가? 송양이 환심사려고 한 그 동이족은 우리가 알던 동이족인가? 그럼 조선이라는건가 아니라는건가? 아니면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아닌, 중국에서 얘기하는 정말 그냥 동쪽의 오랑캐인가? 그래서 동이족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사실 '주객전도' 라는 큰 틀에서 본다면, '물론 동이족은 송양의 비상식적 제의에 대해 쥐뿔도 관심보이지 않았다' 라고 서술했다면 동이족이 누구건간에 "아 그렇구나" 라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3. "초 성왕은 송 양공을 붙잡으면 송에서 내란이라도 날 줄 알았지만, 다행히 목이가 송을 잘 건사했다. 때문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진 양공은 그냥 풀어주게 되었다." 부분에서, '송양이 아닌 목이가 진짜 왕이고,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구나' 라고 짐작할만 하지만 목이가 무슨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 없이 (기록이 없을수도 있다만은)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 송 양공은 초의 앞마당인 정나라를 치고자 했고,"... 송양 이야기가 계속된다. '주객전도'라는 큰 틀에서 본다면 역시 어떤 주와 어떤 객이 전도되었단 말일까? 글이라는 큰 나무의 기둥이, 소나무 기둥이 아닌 등나무가 되고있는 꼴이다.

 

4. 그 다음에 나오는 문단은 송양지인과 송양의 죽음이다. 워낙 유명한 일화고, 누군가 븅신같이 정의나 인정을 내세우며 헛짓거리 할 때마다 나오는 고사니 주객전도를 이야기할 때 좋은 사례이다. 그래서 이 일화의 '주'와 '객'은 뭘까? '전쟁터나 국제외교에서의 승리'와 '인정'이 각각 주와 객이라는게 전도되었다는걸 추론할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위의 부분과 같이 주와 객을 더욱 명시했더라면 더 술술 읽히는 글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5. 그 다음 사진 이후에 나오는 일화는 갑작스럽게 혼란스럽다. 왜냐면 직전에 나온 일화는 '전국시대 송'이고, 후에 나온 일화는 중세 중국 왕조인 '북송'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나라들이 상당한 시간을 두고 차이가 있다는걸 알고있는데, 이게 익숙한사람이 있을까? 혼란스럽다. 시간적/공간적으로 다른 사례를 소개할 때는 사진이 아니라 글로써 언제의 어느 사람의 사례라는걸 명시하는게 좋아보인다.

 

6. 사실 송은 생각보다 돈이 무시무시하게 많은 나라라서, 평화유지금 등으로 외부 지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송이 가진 돈은 당대 주변국들이 가진 돈에 비해 좀 압도적으로 많아서 송이 생각한 평화유지금이 그렇게 체감상 크지 않다. 예를들면 대한민국의 예산 400조를 고려하자면 현재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음으로 인해서 나가는 비용 약 1조원(트럼프가 더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는 1조원수준)은 전쟁억지력에 의한 효용보다 비용이 훨씬 적지만, 반대로 북한이 연 1조원을 소비하면서 중국군을 북한내에 주둔시킨다면 북한에 엄청나게 큰 부담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평화유지금만 믿고 군대를 양성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군대를 약하게 한 것도 '조씨 왕가 시조로부터 내려오는 트라우마' 때문임을 고려한다면 그렇게까지 문제될 것은 아니다. 당파싸움이나 관료제 역시, 그 당시의 유행대로 '왕이 하잔대로 하자' 였으면 송은 그보다 훨씬 빨리 무너졌을 것이다. 관료제라는 것이 참 명암이 너무나 선명한 제도지만 그렇다고 암만 집중하고 명은 보지 못한다면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의 문제다.

 

6-1. 아쉽게도 멸망했지만은, 북송을 이은 남송은 그래도 세계최강이었던 몽골군의 정면침공을 받고도 무려 40년이나 버텼다. 그 당시에 이게 가능했던 나라는 없다. 고려의 항쟁이나 베트남의 쩐흥다오 등이 언급되지만 고려의 항쟁은 항쟁이 아닌 그냥 하드코어 질럿러시 오는 프로토스에게 테란이 커맨드센터 띄우고 이상한곳에 쳐박아놓은후 '찾아봐라'며 약올리며 50분동안 드랍거는거랑 비슷한 짓거리다.불쌍한건 학살당한 SCV였지... 쩐흥다오같은 장군은 디펜스가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베트남이 40년을 막을수 있을까? 여튼, 잡설은 제하더라도, 송나라는 어떤식으로든 몽골을 실질적으로 막는 당대 최강국이었다.

 

7. 송나라 유감은 본문에서 언급한 외교실패이다. 요와 금을 동시에 뒤통수치며 격노하게 만들었기에, 또 송나라는 현대처럼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쳐발라버릴 수 있는 미국같은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대로 당하게 된다. 외교적으로 서로 속고 속이는 경우야 너무나 흔하지만 그걸 들킨게 참으로 병신짓거리다. 하지만 다시 '글의 비판'으로 되돌아가자면 그럼 이게 주객전도인가? 그냥 병신짓 아닌가? 송나라 일화 말미에서도 '과오' 라고 지적했다. 과오와 주객전도는 분명히 다르다. 주객전도에서는, 적어도 '객'에 대해서는 충실했다. 송나라에 대한 유감은 그저 그냥 주와 객이 무엇인지를 언급하지 않고, '객'은 예술을 말하는것인가? 라고 어렴풋이 추론되는데, 계속해서 글이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그냥 잘 하는거나 하지 그랬냐' 라고 하지만 전근대에서의 혈통주의 제왕이 다 그런거 아니겠나? 후계자 태어날때마다 백성들은 가챠 하는 기분일텐데. '이번엔 제발 SSR급 요순같은 황제감이 되어주십쇼' 하면서. 과연 그 후계자가 황제인 '주'가 아니라 '객'이 되는 것을 선택할 수나 있을까?

 

선대가 멀쩡히 살아있을 경우의 후대의 권력이라는게 사람 맘처럼 또 잘 안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조선의 태종만 해도 물러난 상왕 태조의 마음을 얻으려고 그렇게 부단히 애를 쓰지 않았나? 그리고 세종도 태종이 상왕으로 있을 때 실질적인 권력은 당연히 태종에게 있었으나 태종은 조선의 기틀을 잡기 위해 정말 필요한 권력만을 휘둘렀다. 세종도 굳이 태종에게 대들으려 하지 않았고. 태종/세종같은 권력 해피엔딩이 어느 나라에 얼마나 있었을까? 권력앞에서 부자나 혈연이 서로 죽고 죽이는거야 너무나도 흔한데. 그러고보니 당장 세종의 다음 대에서 그런 일이 있었고...

 

8. 이쯤 쓰니까 나도 지친다. 글 읽다가 내리기도 했지만, '주객전도'라는 중심주장이 있다고 생각하고 읽기보다 '아 이런 병신짓거리를 한 왕들이 있구나' 하고 읽는게 더 나아보이지만, 그렇게 해도 좀 읽기가 힘들다. 특히 명 만력제의 경우는 오히려 자기가 못하는 '주'를 포기하고 그냥 '객'에 집중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일화인데다, 하필이면 임진왜란때 자기가 그렇게 못하는 '주'를 다시 잡아서 명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예를들면 송휘종이 지 잘하는 예술이나 하고 놀면서, 관료들에게 자기가 못하는 외교를 일임했으면 그런 외교참사가 일어났을까? 어떤 나라에서는 아예 왕의 권력을 없애버리고 상징으로 만드는 입헌군주제라는 것까지 하는데, 이런것이 과연 주객전도일까? 다른 관점에서 또 보자면 만력제의 조선 지원은, 종주국이 제후국을 지원하는 일종의 '주'이다. 명분이 있단 소리고, 그 반대하는 입장도 명나라의 미래를 생각한 '주' 이다. 이 역시 명분이 있다. 이게 주객전도인가?

 

9. 콤모두스도 그냥 병신짓거리고 '주객전도'라는 중심주제를 언급한다면 동어반복이니까 그냥 건너뛰자.

 

10. 소확행의 경우 진짜 행복과 가짜 행복이라는걸 은연중에 이야기한다. "바로 그 불확실하지만 위대한 가능성으로 빛나는, 행복한 미래를 위한 준비 때문 아니었나?" 행복한 미래를 진짜 미래라고 생각한것 같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다가가보자. '행복이란 무엇인가?' '젊은이들이 고통을 참고 공부한 이후에 제대로 된 행복이나 보상이 따라왔는가?' '미래의 불확실한 보상을 위해 현재의 고통은 참을 가치가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될 것이다. 현재 젊은이들은 이렇게 묻고있다. '과거에도 고통스러웠고 현재도 고통스럽다면, 대체 나는 어떻게 하란말인가? 씨발 모르겠다 돈이나 써야지. 미래에도 고통스러울텐데.'

 

11. 실컷 언급한 병신같은 사례들 역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인물의 병신같은 짓거리였을 뿐이다. 물론 '주객'을 헷갈려서 그런 병신짓이 나왔을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객'에 집중한게 '주'에 집중한것보다 훨씬 이로울수도 있다. 사농공상의 전통이 있고 '사'가 '주'였던 성리학적 체계를 가진 조선에 맨큐의 경제학 책을 갖고 타임슬립하는 경제학도가 어떤 영향을 주긴 할까? 그 경제학도에게는 '상'이 '주'인데. 물론 '농'에 집중하는 생명공학도가 타임슬립한다면 조선이 생각하는 '주'와 일치할 수 있다. 사람의 주객은 정말 사람마다 전부 다 다르다. 상황의 주객은 사람마다 전부 다 다르다. 하지만 병신같은 짓거리는 언제나 병신같은 짓거리다.

 

12. 왜냐면 주객은 1.과 11.에서 언급한대로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질 수 있다. 객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을수도 있다는 것은 물론 본문에도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왜 소확행 편에서는 "본질적인 행복의 취득"이 '주'라고, "단기적인 행복의 취득"이 '객'이라고 정의한다. 정말? 단기적인 행복의 취득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을수도 있을까? 그건 아닌듯 하다. 애초에 역사적인 사례가 실제로 일어난 시간대에서도, 그 과거에 "너네 그렇게 하는거 제대로 병신짓거리야" 라고 언급한 고대 서적이 한둘이 아니었다. 더 본질적인 것을 꿰뚫어본 선현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그 선현들의 말을 들은 좋은 왕들도 많았다. 그러니까 송, 명, 로마 같은 걸출한 제국이 탄생한것이고. 하지만 저 참사가 일어났을 때에는, 그 선현들을 잘 공부한 사람들의 말을 멍청한 지도자가 헛소리라고 취급하는 경향이 항상 있었다. 주객이 아닌, 좀더 본질적인 옳음과 그름을 꿰뚫어 보는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뜻이다.

 

13. 나의 결론: 주객같은거 생각하지 말고 좀더 본질적인 옳고 그름을 봤으면 좋겠다. 소확행에서의 본질적인 옳고 그름은 뭘까? 이건 글 하나를 통째로 들어서 써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굳이 이 글에서 언급하자면 송 휘종의 사례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거의 그대로 벌어지고 있다고 하고싶다. 방랍의 난 같은 분노와 휘종같은 멍청함이 대한민국을 휩쓸고있다. 그렇기때문에 주객을 어떻게 선택해야할지 헷갈리고, 사회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북송의 말로는 전부 다 알고있을 것이다. 나는 두렵다.

1
@tdtd

제 글의 문제점들을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보며 저도 많은 것을 느껴서 이렇게 다시 공유하려 합니다.

 

1. 피사의 사탑이 피사의 대성당보다 유명해진 상태를 주객전도라고 말하고 싶었던 부분입니다. 탑에 과학사적 가치가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이는 문단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고 성당의 종루, 즉 부속 건물이 본 건물보다 유명한 현상에 집중해서 그렇게 썼습니다. 혼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2. 송 양공이 부른 등, 증, 조 나라가 동이족 국가라거나, 그들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문단 외적으로는, 이들 나라를 호령함으로써 아직 입조하지 않은 동이족들을 복속시키려 했던 행위였지만 이 또한 언급하진 않았습니다. 등, 증, 조 같이 송보다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나라를 호출함으로써 송 양공의 인품이 패자에 걸맞지 않게 졸렬했음을 보이려 소개한 일화였습니다.

 

3.송 양공이 납치됐을 당시 재상인 목이가 대신 나라를 건사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일 뿐, 주제 의식이 들어간 부분은 아닙니다. 송 양공이 초 성왕에게 납치된 이후 초 성왕과 대결하는 장면의 연결을 위한 도입을 설명하기 위해 삽입된 대목입니다.

 

4. 이 일화의 "주"는 양공이 "송의 군주로서 송나라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일반론을, "객"은 "초나라 병사들에게 유리한 판단을 했다"는 송양지인 고사를 가리킵니다. 말씀하신대로 무능한 군주의 삽질에 불과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억지로 주객전도라 표현한 부분은 제가 많이 모자란 소치입니다.

 

5. 북송의 정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함으로써 춘추전국시대의 송과 북송의 구분이 명확히 됐으리라 여겼습니다. 제 미숙함 때문에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6 ~ 7. 북송의 평화유지금 지출 규모가 북송의 국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문단 내에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중의 크고 작음을 떠나, 이 부분이 문제가 되었음을 인식한 것은 휘종 이전의 군주들이었으며 그 제어를 위해 노력한 것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경우, 송 휘종의 "주"는 송에 산적한 정치적 문제 해결이고, "객"은 그 자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예술 활동입니다. 송 휘종이 주에 집중하지 않고 객에 집중해서 나라가 망했다고 표현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된 것 같습니다.

 

8. 명 신종이 권위주의적인 인물이고, 따라서 치세 내내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데만 열중했을 뿐 치국에는 일절 관심 보인 일이 없다는 내용으로 그가 군주로서의 "주"를 저버렸다고 표현하려 했습니다. 즉 조선을 지원한 일 또한 자신의 권위를 다지기 위해서 행한 일이라고 적었습니다. 이를 혼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9. 콤모두스의 본분은 로마를 다스리는 황제 업무이나, 자신은 검투사 놀이나 했던 것을 두고 주객전도라 일컫고 싶었습니다.

 

10. 저 역시 이 부분을 많이 고민했고, 때문에 말씀하신 노력과 보상, 청춘들의 박탈감,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두고 지적하신 것에 공감합니다. 저는 여기서 따지기에 너무나 거대한 담론이 될 것이라고 슬쩍 넘어갔지만, 구조적인 문제와 거대 자본의 사회잠식으로 인해 청녓들이 고통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제가 모자라고 겁쟁이여서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11. 사례로 드신 상행위가 이롭다는 이유로 "객"이 더 나을 때가 있다는 말씀의 요지는 알겠습니다만, 다시 직접 말씀하셨듯이 이로움을 이유로 상행위를 강조하는 현실의 경제학도가 당시의 선비 사회에 영향을 못 끼칠 것이듯이, 당대 사회에서 중시했던 "주"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12. 역시 말씀하신 본질적 옳고 그름, 그 분별이야말로 "주"에 해당합니다. 군주로서 송 양공, 송 휘종, 명 신종, 콤모두스는 무엇이 본질적으로 옳은지를 망각했고, 따라서 주객전도를 겪었으며, 결국 나라와 신세를 망쳤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우리 삶에 있어서 무엇이 본질적으로 옳은 것인지 분별하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13. 이럴 때일수록 주객전도에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구르느라 가방에서 컵라면이 나오는 청년의 죽음에서 우리 사회가 느끼는 바가 없고, 새벽별이 뜰 때까지 바깥 공기는 쐬지도 못한 채 교재에 고개를 처박는 청년이 한둘이 아닌 지금 우리 사회가 무엇을 더 중시하는지를 고려한다면, 주객전도를 조심하도록 일깨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846 [유머] 부산에서 초보 운전이면 이렇게까지 해야함 8 콧물닦아 5 2024.01.16
845 [유머] 인생 7대 쪽 팔림 15 heyvely 10 2024.01.04
844 [유머] 넷플과 ocn의 차이점 19 콧물닦아 39 2024.01.02
843 [유머] [고전] 이무기와 교장 1 매드마우스 0 2023.12.15
842 [유머] 인스타 팔로워 팔로우 (인스티즈 펌 ! 가관이네) 1 Taetae 0 2023.10.01
841 [유머] 카페가서 여자친구 만드는 법 24 콜라개붕이 11 2023.09.26
840 [유머] 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른 아이스크림은? 11 베댓전문가 8 2023.09.24
839 [유머] 뜨겁지는 않지만 따가운 불은? 6 알로에맨 4 2023.09.23
838 [유머] 노래 시작하기 전에 들리는 도시는? 3 알로에맨 5 2023.09.22
837 [유머]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이가 몇이게? ㅋㅋ 21 최씨아닌최씨아닌 28 2023.09.04
836 [유머] 여권 3개나 가지고 있는 연예인.jpg 57 상큼한귤탱 34 2023.08.11
835 [유머] 음료수병 뚜껑의 비밀 ㄷㄷ.JPG 17 상큼한귤탱 41 2023.08.10
834 [유머] 기안84의 씨볶음밥 ㄷㄷ 16 상큼한귤탱 21 2023.08.09
833 [유머] 결혼지옥에 나온 역대급 빌런 ㄷ..JPG 43 상큼한귤탱 42 2023.08.09
832 [유머] 라스트 제다이 안 본 눈 삶 35 한그르데아이사쯔 8 2023.08.09
831 [유머] 나루토의 모든 것이 담긴 짤 12 qowlgh 11 2023.05.17
830 [유머] 딱밤 맞고 안울면 5만원에 도전한 잼민이.mp4 9 알라티 4 2023.04.20
829 [유머] 흔한 직장인의 저녁 김비밀 6 2023.03.28
828 [유머] 스포츠카 구매한 남성 xx 사이즈 작을 가능성 높아! 6 해와달의마녀 6 2023.03.08
827 [유머] 퇴근길 엘베 갇힘 실시간 28 해와달의마녀 16 2023.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