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심히 창대한 끝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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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라파엘 멩스, 성 요셉의 꿈. 당신의 아내에게 성령이 잉태됐다고 하는데, 꿈 꾸는 중인데도 팔뚝에 힘이 꽉 들어간 게 보인다>

 

크리스마스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마무리를 엉성하게 하다보니 시일이 지체됐다. 하지만 걱정은 않는다, 어차피 인싸들은 이 글을 읽지 않을테니까. 뭐, 지금 읽고 있다고? 그럼 여러분은 내 형제라는 뜻이다. 환영한다 !

 

사람의 인생이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잘 풀릴 것만 같다가도 마가 끼고, 엉망으로 치닫다가도 또 호전되는 게 인생이다. 혹시 모르지, 여러분 중에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캐롤과 눈꼴 신 잉꼬 무리들, 음욕과 계략과 사특한 속물들이 우글대는 성탄절 거리로 나갈 사람이 있을지도. 나자렛의 요셉을 봐봐. 그는 쾌락 없는 책임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아니던가. 이 때 요셉이 계시를 헛소리 치부하고 아내를 돌팔매로 쳐서 죽였더라면, 그냥저냥 목수로 살다 말았을 것이다. 또한 우리도 오늘을 기념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그러나 요셉은 그러지 않았고, 덕분에 오늘날 성인(聖人)으로 널리 추앙 받고 있다. 우리도 인생이 어떻게 풀려 나갈지 속단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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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박육후 곽광(霍光), 자맹(子孟). 오른쪽의 인물이다. 왼쪽은 훗날 그가 직접 골라 올린 황제, 선제 유병이이다>

 

곽광은 변방의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본래라면 그저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복형제가 당대 최강의 무장이자 흉노 믹서기로 이름 높은 곽거병이었다.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곽거병은 친부를 찾아뵙고 낳아주신 은혜를 갚겠다며 열 살배기 곽광을 궐에 데려갔다. 그 덕분에 곽광의 인생은 한 바탕 전환점을 맞이한다.

 

곽광은 입궁하자마자 제조시중(= 황제의 비서)에 임명되더니 나날이 승승장구했다. 이는 아마도 황제의 처조카였던 곽거병의 입김이 작용한 탓일 가능성이 큰데, 곽광은 별달리 인정받을만 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곽광은 오만하기까지 한 곽거병에 비해 인품이 괜찮아 악명은 떨치지 않았다. 오히려 한무제의 총애를 받은 곽광은 봉거도위(= 운전수. 비서도 겸함), 광록대부(= 국무조정실장)를 겸하는데까지 이른다. 외척을 극도로 경계해 죄없는 황후들을 자결시키는 등, 황권강화를 위해 포악한 짓을 벌인 무제의 경향으로 추측컨대, 조정 내에 끈이래봤자 요절해버린 곽거병 뿐이었던 곽광이야말로 자신의 친위세력 삼을만 했다고 여겼을 수 있겠다.

 

한무제는 임종을 앞두고 하필이면 가장 어린 아들 유불릉을 황태자로 앉힐 생각을 품고, 보정대신을 임명한다. 당시 무제에겐 장성한 아들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의 자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때 중요한 점은, 곽광이 섭정단에 포함됐다는 것이겠지. 심지어 곽광은 황제로부터 주공 단의 그림까지 하사 받았는데, 이는 어린 천자를 잘 보필한 주공처럼 곽광에게 유불릉의 장래를 맡겼음을 드러내는 처사다. 직후 무제는 곽광을 대사마(= 국방부 장관)에 봉했다. 즉, 보정대신 가운데 으뜸은 다름아닌 곽광이라는 선언 !

 

이윽고 8살 나이에 유불릉이 제위에 오르니 그가 한소제다. 소제는 영민한 군주여서, 곽광을 다른 어느 신하들보다 신임했고 중용했다. 이미 대사마로서 정군일체(政軍一體)의 권력을 쥐고 있던 곽광을 택한 것은 현명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곽광의 역모를 고변하는 상소가 연왕 유단으로부터 제기되자, 사리와 개인적 신임을 들어 곽광을 두둔했다. 나아가 곽광에게 뭔가 꺼림칙한 일이 있었으니 이런 말이 나오는게 아니냐며 지속적으로 탄핵을 종용하는 상소가 제기되자, 아예 "그는 내 어버이 같은 분이니, 또 한 번 이딴 상소 올리면 용서치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곽광은 그에 보답하듯, 자신의 정적과 함께 소제의 정적에 해당하는 유단 등을 박살내버리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곽광의 위세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소제가 죽은 다음이다. 소제는 불과 21살 나이에 후사도 없이 떠났는데, 이 때문에 조정에서 누구를 후계로 세워야 할지 의논이 많았다.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무제의 아들 가운데 장성한 광릉왕 유서였는데, 인품이 졸렬하여 소제가 생전에 아들 없이 일찍 죽었으면 하고 저주하는 역굿을 연일 벌여댔다. 곽광은 이 인간은 안 된다고 생각해, 무제의 손자이자 창읍왕 유박의 아들인 유하를 후계로 밀었다. 유하는 황위계승권으로 따지면 유서 바로 다음이었으니, 역전 만루홈런을 친 셈. 그 소식을 듣자마자 기뻐 날뛰며, 친위대를 이끌고 장안까지 올라간 유하는 소제의 상중임에도 고기를 뜯고 술을 마시며 개판을 쳐댔다. 이것이 곽광 눈에 거슬렸고, 곽광은 대신들을 소집해 비상 회의를 열고는 유하를 폐위하는 쪽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군을 동원해 번개 같이 유하 일당을 잡아들였다. 그것으로 유하의 폐위는 결정나 버린다.

 

그래서 결국 다음 황제는? 역시 곽광의 의중대로, 무제의 증손자인 유병이가 대통을 이었다. 유병이는 한무제가 할아버지 유거를 반역 혐의로 죽인 바람에 장성할 때까지 평민 신분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어쨌건 무제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니만큼, 정통성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즉, 곽광 입장에선 지지 기반은 없으면서 황손이기까지 한, 100점짜리 황제감이다. 유병이는 곽광의 비호 아래 즉위하여 선제(宣帝)라 불리웠다. 선제는 만들어진 황제였던 고로, 곽광 살아 생전에 절대 그와 대립하지 않았다. 선제는 곽광이 죽을 때까지 기를 못 펴고 살다가, 그의 죽음 이후 옛 일을 회상하며 "망자재배(芒刺在背)"란 말을 남겼다. 이는 "가시가 등을 찌른다"는 뜻으로, 곽광의 존재감이 그만큼 숨막혔다는 의미다.

 

면류관을 줬다 뺏는데도 역적 간판이 붙지 않을 정도로 권세가 대단했던 곽광은 어느 누구의 견제나 위협도 없이 편안히 살다가 죽었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삶의 전형이라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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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왕(晉王) 사마소, 자상(子上). 아들 사마유에게 권모술수를 직강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다>

 

사마의가 조조에게 출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사마소를 얻었다. 그러나 사마소는 그의 형이나 아버지에 비하면 다소 순진한 인물이었던 듯 한데, 하후현, 하안 등 당대 엘리트 식자층과 놀아났기 때문이다. 이들로 말하자면 모두 조씨 문중의 핵심들로, 아버지와 삼촌, 형이 그토록 고군분투해가며 맞섰던 황족 종친 세력들이었다. 혹시 사마의가 아들을 시켜 적의 의중을 파악하라고 일부러 그들과 가까이 지내게 한 건 아닐까, 하기엔 사마소는 너무나 안일했다 : 훗날 하후현을 죽이지 말라고 울면서 애원했을 정도였거든. 하후현은 구품관인법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사마의를 정면으로 비판했고, 사변 이후 입궐하라는 사마의의 소환령에도 당당히 응할만큼 결기가 있는 인물인데, 이걸 살려뒀다가 무슨 역풍을 맞으라고? 이렇듯 사마소는 정치적 식견이나 가문의 위상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사마의도 차남의 이런 면모를 알았나 보다. 그는 고평릉 사변을 일으키기 전 날에야 사마소에게 계획을 알렸다. 다시 말해, 사마소는 쿠데타라는 중대사를 논해 본 적도 없이 그저 아버지가 등떠밀어서 거병한 셈이다. 이 때문에 사마소는 그 날 밤 잠도 못 이뤘을 정도로 불안해 한다. 다행히 이 도박수가 성공하여 사마씨는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고, 조상 일파는 완전히 몰락해 역적으로 죽었다.

 

사마의가 1년 뒤 죽고, 사마사가 그대로 직책을 승계한다. 사마사는 사마소에 비해 훨씬 아버지와 닮아, 일처리가 냉혹하기 그지 없었다. 일단 사마의는 네 명의 천자를 모신 사직의 중신이고, 몇 번이나 조위를 위난에서 구해낸 전쟁 영웅으로 명성이 높아, 하후현, 제갈탄, 관구검 등등 본래 조상 일파와 한 패였던 자들도 충분히 다룰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공이 없는 사마사는 이들을 모두 용인할 수 없어 숙청이 필요했는데, 하후현을 맨 먼저 참했다. 사마소는 형이 자신과 친했던 하후현을 죽이려 하자, 눈물로 호소하며 살려줄 것을 청했다고 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사마소는 전형적인 귀공자에 해당했다.

 

그러나 사마사마저 죽자, 뜻하지 않게 사마소가 일군의 우두머리가 되면서 그의 삶도 크게 바뀌었다. 당시 사마사와 사마소는 관구검이 난을 일으켜 이를 진압하고 돌아오던 와중이었는데, 사마사의 급사로 분위기가 위태롭자 동생이 군을 수습했다. 사마씨의 두 독사가 죽어 마침내 정권 재탈환의 기회가 왔다고 여긴 황제 조모는 사마소더러 군권을 반납하라며 입궐을 명했다. 만약 순진했던 사마소가 그대로 따랐으면, 역적으로 몰려 처형 되고 끝났을 것이다. 사마소는 그 대신 종회의 건의를 채택, 군대를 이끌고 낙양까지 진군했고 겁에 질린 조모는 사마사의 생전 직위를 그대로 사마소에게 물려주었다. 이로써 조정의 대권은 사마소가 가져가게 된다.

 

사마소는 확실히 윗대에 비해 완성되지 못한 리더십을 보였다. 제갈탄이 난을 일으켰을 당시 사마소는 제갈탄군의 포로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는 등 가혹하게 굴었고, 뒷날에는 촉정을 보낸 장군들이 임무를 완수하자 모두 처분해버리고 공은 자신이 낼름 가로챘다. 사마사가 제갈각과의 대치에서 패전한 이후 과(過)를 자신이 떠맡은 것과는 확실히 대조되는 처사다.

 

가장 심한 행실은 천자를 죽여버린 일이다. 조모는 사마소의 수중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가지 정치적 공세를 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노복들과 내시를 이끌고 사마소를 치기로 했다. 군대가 와도 안 될 일이었지만, 명색이 천자니까 제깟 놈이 어쩌겠어. 하지만 사마소는 가충을 보내 대처토록 했는데, 가충이 자신의 부하더러 "사마 공께서 너희를 거둔 것은 오늘의 일을 대비하셨기 때문이다. 무엇을 망설이느냐?"며 채근했다. 결국 몸소 칼을 뽑고 싸우던 조모는 가충이 데려온 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했다. 사마소는 정작 이 사태로 천자를 시해했다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대역죄를 범했건만, 당시 천자를 절명시킨 성제라는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삼족을 멸하는 걸로 황급히 발을 뺀다. 진태가 "가충을 죽여서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며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려 했지만, 당연히 이게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아는 사마소는 한 귀로 듣고 흘렸다고 한다.

 

결국 사마소는 남아 있는 종친 가운데 조환이라는 어린애를 황제로 옹립하고, 자신은 조모 시해 사건을 만회할 빅 이벤트 "정촉 전쟁"을 일으킨다. 여기까지 보이듯, 사마소는 분별 없이 권력을 휘두르며 그릇이 부형에 미치지 못함을 광고하고 다녔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쉰 살이 넘도록 산 그는, 아들이 황위에 오르면서 진 태조라는 거창한 시호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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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부원군 한확, 자유(子柔). 한명회와도 일가붙이이다. 마땅한 화상이 없어 드라마 "인수대비"의 등장인물로 대체>

 

한확이야말로 운 때를 만나 크게 성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서원부원군이라는 작호에서부터 알 수 있듯, 소혜왕후로 올라가는 군부인 한씨가 그의 소생이다. 음서를 통해 관직 생활을 시작한 한확이지만, 정작 그는 조선 조정이 아닌 명나라에서 더욱 높은 지위를 누렸다. 명 성조 영락제가 후궁으로 한확의 누나를 골랐기 때문.

 

그의 집안이 전부 잘 생긴 집안인가본데, 한확에 대한 기록에서 외모가 준수했다는 표현이 나오는만큼, 누이들도 한 미모 했던 모양. 영락제는 한확이 데리고 온 누나를 보고 만족하여 여비로 봉하고, 한확 또한 광록시소경(= 혼례 부총괄자)에 임명해 우대한다. 이것이 한확의 첫 커리어다. 그러나 한확이 차라리 참하관을 전전했을지언정 이래서는 안 됐는데, 명은 다들 알다시피 순장제도가 버젓이 남아있는 나라였다. 허조가 "허수아비로 순장을 해도 대가 끊긴다던데, 중국 것이라고 다 받들어 모실 바가 못 됩니다"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한확은 제 누이더러 같이 죽으라고 수레에 태워 보낸 뒤 자기는 한 자리 해먹은 것이다.

 

태종이 물러나 세종이 즉위하자, 한확은 명나라에 세종의 즉위 신고서를 들고 다녀온다. 명에서는 흔쾌히 책봉해줬고, 한확은 그 공으로 조선에서 내리는 판한성부사(= 서울시 행정, 사법 총괄)의 직책을 또 받았다. 물론 이는 임금이 자신의 정통성 수립에 힘써준 신하에게 사례하는 것이니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명색이 세종대왕으로서도 명에 강력한 뒷배가 있는 한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아닌가, 한다. 후일 한확이 어린 여자와 간통했다가 탄핵을 당하자, 세종은 "그는 내가 죄를 줄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궁색한 답변과 함께 도리어 고변한 사람을 무고죄로 다스렸다고 한다. 이는 한확의 권세가 도를 넘어섰음을 반증한다. 나중에는 통금시간 지나서까지 돌아다니다 대문을 지키는 숙위병에게 호통을 친 한확을 그대로 파직시켰지만, 이마저도 금방 복직됐다. 있는 거라곤 명에 빽 좀 센 게 전부인데, 그걸로 조정 내에 대적할 사람이 없다니.

 

한확의 누나 여비 한씨는 시집 간 지 6년만에 황제가 죽으면서, 통탄스럽게도 생매장을 당해야 했다. 그러자 한확 이 독한 놈은 명 선종 선덕제에게 다른 누이를 보내 섬기도록 했다. 그녀가 공신부인 한씨로, 한확의 여동생이자 선덕제의 후궁에 해당한다. 당시 사람들도 한확의 비정한 짓거리를 놓고 손가락질 하며, "생송장(生送葬) 하신다"고 했다. 송장은 시체의 송장이 아니고 장례를 치른다는 말이다. 여비 한씨처럼 공신부인 한씨도 곧 순장 당해 죽을테니, 제삿날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다. 당시 병중이어서 누워있던 공신부인 한씨는 공녀로 뽑혀 가게 됐으니 얼른 기운 차리라며 오래비가 약을 지어 오자, "이 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누이 팔아서 권세 누린 게 그리 좋더냐"며 깽판을 치고 시집 가려고 모아둔 혼수를 주변에 뿌리며 처연하게 울었다고 한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공신부인은 후궁급이 아니어서 순장되진 않고 천수를 누리긴 했다.

 

기가 막힌 인맥빨 덕택에 한확은 팔자에도 없을 정난공신 일등 자리에 배석된다. 정난공신이란 계유정난에 동참한 42명에게 내린 자리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칠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의 명단이다. 한확은 세종의 서자인 계양군에게도 딸을 시집 보냈고, 수양대군의 맏아들 도원군에게도 여식을 시집 보냈는데, 수양대군이 자기 사돈이자 명에 한 끗발 날리는 한확을 쿠데타에 끌어들인 것이다. 그의 기대대로 한확은 세조의 즉위에 당위성을 잘 설명하는 방식으로 힘을 보태어주었고, 그 보답을 받아 공신 1등이 된다.

 

한확은 얄궂게도 세종에게 그러했듯, 세조의 즉위를 알리기 위해 명으로 파견 간다. 명에서는 "이거 반란 아님?" 하고 딴지를 걸었으나, 한확이 "양위 받은 거지, 찬탈한 거 아님"이라고 해명했고, 그것으로 책봉이 확정됐다. 한확은 책봉서를 들고 귀국하는 길에 객사한다. 세조가 이 소식을 듣고 비통해 정무를 손에서 놓았다고. 집안 여자들 덕에 과분한 호사를 누린 사람의 최후답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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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에두아르 피콧, 기 드 뤼지냥. 미남이었다는 평판을 반영한듯, 잘 생긴 모습이다>

 

기 드 뤼지냥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 해 큰 사고를 쳤다. 기와 형제들이 엘레오노르 여대공을 호위하며 지나가던 솔즈베리 백작을 급습하여 죽여버리곤, 전리품을 약탈해 간 것이다. 엘레오노르는 사자심왕의 모후이자 아키텐의 영주, 뤼지냥 가문이 속한 땅의 주군이었다. 즉, 가신이 주인을 호송하던 근위대장을 강도질한 대역죄를 범한 꼴이다. 이유는 불명인데, 기 드 뤼지냥이 살면서 보여준 행보들로 보건대, 심심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단순히 행색 좋아보이는 놈이 지나가길래 몸값이 탐나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다분히 뒤가 없는 작전의 여파로, 개빡친 리처드 1세가 당장 나가라고 추방령을 내렸고, 기 드 뤼지냥은 고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 때 기는 그야말로 기가 막힌 한 수를 둔다 : 십자군 원정에 참가키로 한 거지. 기 드 뤼지냥의 형들은 대대로 예루살렘의 왕으로, 보두앵 3세와 아모리 1세가 모두 기의 형들이었다. 보두앵 3세는 제 2차 십자군 원정 당시 예루살렘을 내전으로 뒤흔든 인물이고, 둘째 형 아모리 1세는 이집트를 공격해들어갔다가 낭패를 겪은 인물이다. 아무런 기반도 없는 기 드 뤼지냥이야 가신 자격으로 들어가서 봉록이나 받아먹을 속셈이었겠지만, 이 선택이 그의 인생을 굴곡지게 만들었다. 

 

기가 도착했을 무렵에는 아모리 1세가 이집트의 신흥세력인 살라흐 앗 딘과 한 판 붙었다가 대패하고 골골 거리고 있었다. 때문에 예루살렘 왕국의 존립을 위해 뭐라도 해야만 했는데, 마침 왕국 북방의 누르 앗 딘이 죽자 틈을 노리고 시리아를 쳤다. 한데 아모리 1세도 불과 2달만에 질병에 시달리다 죽는 바람에, 어린 보두앵 4세가 왕위를 이어받아야 했다. 이후로 매우 복잡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했다.

 

보두앵 4세는 날 때부터 문둥병 환자여서 나왕(癩王)이라는 살벌한 별명이 붙었다. 게다가 13살에 집권해 섭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상황. 그래서 부왕 아모리 1세와 친분이 깊었던 트레폴리 백작 레몽 3세가 섭정을 맡는다. 하지만 레몽 3세와 보두앵 4세는 기질적 차이가 있었나본데, 레몽 3세가 주화파라면 보두앵 4세는 주전파에 해당했다 : 레몽 3세는 예루살렘이 양면에서 압박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살라흐 앗 딘과 강화를 맺고 시간을 벌기로 한다. 그러나 이 선택은 보두앵 4세가 원했던 바가 아니었으니, 이후 몽기사르 전투에서 불과 500명의 기사만으로 살라흐 앗 딘의 2만 5천 대군을 박살내버리기 때문이다. 레몽 3세는 또한 보두앵 4세의 누이인 시빌라의 혼사를 주관하며 영향력을 과시했는데, 어차피 나병 환자가 장수하긴 글렀으니 차라리 후계자를 빨리 보게 하려는 심산이었다. 이것 역시 보두앵 4세로서는 불쾌한 일이었을 것이다.

레몽 3세는 시빌라 공주의 신랑감으로 이벨린의 보두앵을 추천했으나, 이벨린의 보두앵은 레몽 3세의 지지자였기 때문에 속이 뻔히 보이는 짓거리다. 이에 보두앵 4세는 기 드 뤼지냥을 추천했고, 시빌라가 직접 기를 선택해 부군으로 삼았다. 시빌라와 기가 강제로 결혼을 허락 받았다고도 하는데, 그랬다면 보두앵 4세가 굳이 기에게 섭정직을 맡기진 않았을 것이다. 보두앵 4세는 이제 나병이 완전히 악화되어 거동도 불편할 지경이었는데, 새롭게 매부가 된 기 드 뤼지냥에게 전권을 이양하다시피 했거든. 어쨌거나 기는 이제 아스칼론 공작령을 다스리는데다, 차기 후계자로 유력한 보두앵 5세의 의부가 되었다 ! 

 

예루살렘 왕국에는 애석한 일이지만, 기 드 뤼지냥은 충동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르노 드 샤티용과 성전 기사단 같이 호전적이고 회교도를 극혐하는 분자들과 어울리다가, 매우 경솔하게 싸움을 벌였다. 이로 인해 예루살렘과 이슬람이 맺은 정전 조약도 파기, 둘 간의 관계가 크게 휘청였다. 대노한 보두앵 4세는 기를 즉시 파직하고 시빌라에게 이혼하라고 촉구했다. 그렇지만 얼마 안 가 보두앵 4세는 사망에 이르고, 이혼 얘기도 흐지부지 된 채 보두앵 5세가 왕위를 이었다.

 

보두앵 5세도 불과 1년 반을 못 넘기고 죽으면서, 상황이 또 요상해졌다. 8살배기한테 후사가 어딨겠어. 결국 왕위는 분쟁 끝에 시빌라가 챙겨갔는데, 레몽 3세가 조건을 걸었다 : 기 드 뤼지냥과 파혼하십시오. 시빌라는 가볍게 수락하여 예루살렘 여왕에 올랐지만, 대관식을 거행하자마자 기와 재혼해서 사람들을 엿먹였다. 이렇게 기는 도움되는 짓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예루살렘의 왕이 되었다.

 

그렇지만 하등 쓸만한 재주가 없었던 기는 주전론자들의 말만 듣고 무리한 원정을 벌이다 참패를 당했다. 그 유명한 하틴 전투로, 이 전투에서 대략 2 ~ 3만 명쯤 되는 병력을 동원한 예루살렘 왕국은 살라흐 앗 딘에게 전멸을 당해 왕과 일부 요인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자가 극소수였다. 기 왕도 살라흐 앗 딘에게 포로로 잡혔지만 관용을 베풀어 준 덕분에 풀려날 수 있었을 뿐, 다른 강경파 대신들은 모조리 참수 당해야 했다. 왕국의 영토 대부분을 상실한 것은 물론이다.

 

기는 석방된 이후 마지막 남은 영토인 티레로 향했지만, 이따위 암군을 섬길 생각이 없었던 콘라드 1세가 입성을 거부해 처량한 신세가 됐다... 하고 마칠 줄 알았지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 3차 십자군 원정대가 도착한 것이다. 리처드 1세는 프랑스의 필리프 2세와 예루살렘의 차기 왕위 계승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마침 현직 왕이 눈앞에 나타나자 그를 맞아들였다. 비록 기는 우여곡절 끝에 예루살렘의 왕위는 빼앗겼지만, 리처드 1세가 성전 기사단에게 팔아치운 키프로스를 구매하면서 키프로스의 왕 자리를 해먹으며 천수를 누렸다. 그래서 기는 키프로스의 기라고도 불리운다. 우습게도 기가 예루살렘에 온 계기도 리처드 1세였고, 예루살렘을 떠나게 해 준 것도 리처드 1세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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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월에 연쇄살인범으로 확정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윤 모 씨. 수감 중 20년 형으로 감형돼 2009년에 출소할 수 있었다. 진범을 자처하는 이춘재의 자백으로 혐의를 재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우리 삶은 때때로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그런 누더기 난장판을 볼 때면, 누구나 확 뒤집어 엎고 싹 쓸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이따위 쓰레기 더미를 내 품에 안고 살아가기 싫은 거지. 이른바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도, 가망 없는 상황 속에 놓이면 그렇게 달콤하게 들릴 수가 없다. 지금도 많은 청년들이, 그렇게 하나 둘씩, 치열한 삶에서 움켜쥐는 것보다 놓아주는 것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형제들, 모두 다 놓아주고 도망치고, 그만둬도 좋으니까 인생을 포기하지는 말자. 관뚜껑에 못 박기 전까진 그 누구도 감히 우리 삶을 단정지을 수 없다. 글쪼가리나 써대는 내가 알량한 몇 마디를 감히 보태는 이유는, 적어도 역전의 기회는 살아 있을 때의 기쁨임을 알기 때문이다. 부질 없는 것을 계속 붙들고 있는 고통, 물론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지. 그렇지만 우리 삶이잖아. 절대 절대, 무가치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쓰러지면 카운트 9까지 푹 쉬고, 10이 되기 전에 일어나서 다시 주변을 살펴보자. 당신에게도 분명 놀라운 힘이 숨어 있을 것이다.

30개의 댓글

2019.12.26

좋은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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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철

고맙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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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재밌어 보인다 일단 추천 박고 내일 읽어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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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너무상심하지마요상대가나잖아ㅋ

언제든지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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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긴글인데도 흥미가 생기네 곽광까지 읽고 나머지는 나중에 몰아봐야지

1
@냐하하하하

별 것 아닌 글인데도 두고두고 봐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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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곽거병까지는 알았는데 곽광은 몰랐네.고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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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F91

되도록이면 사람들에게 덜 익숙한 인물들을 고르려고 노력하고 있었어.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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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유머라며... 유머라면서요!

1
@Llorona

찡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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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임마..

 

넌 이게 유머냐?

 

떵싸면서 가볍게 읽으려다가 글보자마자 식겁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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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볼

또 그러시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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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한그르데아이사쯔

글은 재밌게 읽었다만...

 

유머는 아니자너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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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L
2019.12.26

글 재밌게 잘 쓴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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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L

고마워, 다른 글도 잘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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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글 아주 침착하게 잘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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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iq32ofh

다른 글들도 잘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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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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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무맛

But Everyth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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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영화만으로도 암걸렸는데 사서로 보면 두배로 암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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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바마빅흑뱀

그래서 더욱 흥미롭지 않아? 이렇게 살아도 잘 풀리는구나, 하면서 ㅋㅋㅋㅋㅋㅋㅋ

0
@한그르데아이사쯔

흥미로운건 리처드 1세가 도끼 하나로 벌목한 샌드니거들 모가지 숫자가 흥미로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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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바마빅흑뱀

그것도 언젠가의 주제로 다루고 싶네 ㅋㅋㅋㅋㅋㅋ 인간흉기 열전 같은 식으로?

0
2019.12.28

글도 잘 쓰고 담겨있는 지식도 장난아니네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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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

별 볼 일 없는 글을 좋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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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8

정말 좋은글이에요. 덕분에 포기하려고 했던 하고 싶은 일을 다시 한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해볼려고요

정말 좋은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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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째재수중

고맙습니다. 제 글을 읽고 용기를 내어주셔서요. 그리고 부디 깊은 성취를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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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3

선생님 다음 편이 안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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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lIlIlIlIlIlI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로 찾아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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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3
@한그르데아이사쯔

받아라 새해복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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