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니체의 위버멘쉬와 삶에 대해

니체면상.JPG

위버멘쉬란 무엇인가

니체 철학의 용어이다. 한국어로는 흔히 '초인'으로 번역되지만,

초능력자 등과 오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단어 그대로 옮겨 쓰는 경우도 있다.

초인은 영어로는 'Superman'으로 번역되지만 니체의 위버멘쉬는 'Overman'으로 번역된다.

 

양자간의 차이는 일단 니체의 위버멘쉬는 기존의 환경을 지배하고 있는 도덕과 계율

(그의 시대에는 기독교적 윤리)을 벗어나 자신의 정신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인간인 동시에

그 초인적 사상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저서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도 자주 등장하듯,

위버멘쉬는 인간 정신의 한계를 극복한 인물이며, 인간에 대한 동정이나 정념 등을 떨쳐낸 인물이므로

인간임을 초월한 존재라고 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니체가 생각했던 위버멘쉬의 핵심은 몰락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초반부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산에서 10년 간의 고독을 마치고 속세로 되돌아온다.

산에서 평지로 내려온다는 하강적 이미지와 초인의 경지에 가고 있던 차라투스트라가 인간세에 돌아온다는 내용이 그의 몰락을 암시한다.

그러나 니체는 파멸과 몰락을 구분하는데, 파멸은 말그대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완전히 자아를 상실하는 상태인 반면,

몰락은 재창조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즉,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재창조의 전제인 것이다.

이는 창조적 파괴로 이해될 수 있다.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OverMan)의 속성들

낙타, 사자, 어린이

 

낙타

노예 정신 - 의무 금욕 성실 헌신 / 고통에 대한 수동적 형태 

 

낙타는 주인의 말에 항상 긍정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목숨을 다해 목적지까지 주인과 동행한다. 황무지 한가운데서도 물을 발견해내며 주인을 오아시스로 이끈다. 그저 묵묵히 등짐을 쥔 채, 그는 고통에 적응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흘러간다.

 

차라투스트라는 나귀라는 동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주인의 명령에 항상 ‘예’라고 답하는 동물이라고
니체는 낙타나 나귀와 같은 정신을 지닌 자들은 자신의 삶을 
더 높은 차원으로 고양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사자

자유 정신 - 고독 오만함 주인의식 /

고통에 저항하며 자유를 위해 능동적이며 이기적인 형태


차라투스트라는 사자의 자유 정신을 
‘황금빛 비늘’을 가진 용과 사자의 대결을 통해 설명한다.
자신의 모든 주인을 물리친 사자는 용으로 변신한 ‘신’과 대적하는데, 
용은 사자에게 “너는 해야만 한다”고 의무와 당위를 강요한다. 
“너는 해야만 한다”는 말은 “너는 이것만을 꼭 지켜야 한다.”, 
“너는 이것만은 꼭 해야 한다”와 같은 도덕과 법의 원칙을 대표하는 절대적인 말이다.


황금빛 비늘은 모든 사물의 가치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빛내는 신의 절대적 위치를 뜻한다.
그러나 사자는 그러한 신의 명령과 황금빛의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으르렁거리며 “나는 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즉,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욕망을 신뢰하겠다는 것이다.


니체는 자유를 이루고자 한다면 낙타의 정신에서 
사자의 정신으로 옮겨가는 변신을 겪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는 모든 권위, 가장 절대적이며 신성한 신의 권위에 대해서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동물.
우리는 그런 사자의 ‘아니오’를 배워야 한다.


사자의 정신을 지니려면 우리는 수많은 위협과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스스로 자신만의 욕망에 따른 가치를 창조하고 그것을 세상에 당당히 내세운다는 것은 
분명 어렵고 힘든 길이다. 하지만 사자의 정신은 신과 함께하며 안락하기보다는 
기꺼이 고독과 굶주림을 선택한다.
사자는 낙타처럼 비굴한 노예는 아니지만, 그의 삶이 유쾌하고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진정한 승리를 이루었다면 사자의 얼굴에 그토록 많은 고민과 고통의 흔적이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싫어하는 것만을, 즉 ‘아니오’라고 부정하는 법만을 알고 있을 뿐, 
삶을 긍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

조건에 지배받지 않는 거룩한 긍정 /

순수한 욕구를 추구하는 그 자체.

배설,창조,파괴의 혼돈을 가진 다면의 존재. 


[‘어린아이는 천진난만이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자신의 힘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이고,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어린아이는 사자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욕망에 충실함.

도덕과 법에 관심도 없고 그저 웃기만 하지 않는가?
어린아이에게는 양심의 가책이란 것도 없다.

그저 재미와 놀이가 중요할 뿐. 
그래서 어린아이는 비도덕적 존재. 
니체가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본 것은 이처럼 욕망에 충실하고 
도덕적 선과 악을 넘어선 비도덕적인 특성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어린아이가 가진 웃음.

어린아이는 사자처럼 으르렁거리지 않는다. 
어린아이는 용을 보고도 웃음을 지을 것이다. 
사자에게 용이 커다란 부정의 대상이요 적이었다면, 어린아이에게 용은 그저 웃음거리, 놀잇감일 뿐.

사자는 힘겹게 싸우지만,

어린아이에게 사자의 전투는 흥미로운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는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때론 악마와 같은 무심함으로 또는 무엇이든 양보하는 이타적인 존재로

다양한 얼굴들을 갖고 있다. 욕구에 따라 서슴없이 배설 행위를 하고 배가 가득차게 어머니의 젖을 갈구하며

흥미로운 무엇인가에 이끌려 세계를 탐구한다.

 

이 세가지 특성은 사람을 구성하는 요인들이다.

때에 따라 낙타,사자,어린이가 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그대이다.

 

[네이버 블로거 비누방울님의 니체의 철학이야기를 인용했습니다.]

 

 

[고찰] - 인간의 삶 그것은

시간에 따른 인과는 동시 다발적,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황혼으로

밤의 공허함은 새벽녘이 밝아 오는 황혼으로

달걀은 닭으로 닭은 달걀을 낳고 달걀은 닭으로     
어린아이는 성인으로 성인은 아이를 보내고 
노인이 된 성인은 공허의 이불속에 안식을 가진다.

 

시간을 따라 긍정과 부정이 세포 안으로 침입한다.
우리를 이루는 세포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닫혀 있으면서 열려 있는 알이다.

긍정의 과정에선 번식을

부정의 과정에선 생존을

적응에 성공한 변이를 통해 생명을 재생산해낸다.
한 번의 탄생과 죽음으로 기록되는 우리는 
세포 단위로 보면 매 순간 탄생과 죽음을 매번 다르게 반복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인가 묻는다면

그 시점에서는 닭이 먼저다.
알의 형태가 더욱 더 안정적으로 생존을 확보할 수 있는 
닭의 형태로 변화했기에 근원으로 회귀한다면 단세포와 같이 닭과 달걀은 같다. 
생존에 적응한 변태의 의미는 개구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알에서 나온 올챙이는 아가미에 모세혈관이 자리잡고 있어 수중에 산소를 농도차에 의해 흡수한다.

폐의 폐포에서 일어나는 산소교환을 외부에 돌출된 아가미로 직접하는 것이다. 

개구리로 변태하며 아가미는 사라지고 폐가 생기면서 호흡법이 바뀐다.

물이냐 뭍이냐에 따라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태하는 것이다.

닭과 달걀도 마찬가지다.

절망적인 환경에 생존하기 위해 세포는 적응하여 저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천천히 변태를 한 것이다.

 

삶과 죽음은 동시와 비견 할 수 있을 만큼 짧게, 전체적으로,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털이 그러하고 손톱이 그러하며 피부가 그러하다.

몸 안에서도 같은 일들이 반복된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마치 드라이아이스가 기화되는 것과 같이 사람은 환경에 산화되어 흩어진다.
삶의 긍정과 부정, 죽음과 탄생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육체와 정신은 샴쌍둥이 같은 관계이며 서로를 돕는 동반자이다.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며 생존 할 수 있도록

지배권을 다투는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육체적 이기심과 정신의 이기심이

서로 화합과 반목을 때에 따라 다르게 반복하며 
정반합의 진리 혹은 쾌락의 배설이란 양면성을 지니게 된다.
육체와 정신의 이중 나선은 배아 단계서부터

생존에 위협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에게서 엿볼 수 있다.
아기의 육체는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고있다.
작은 죽음은 곰팡이가 번지듯 더 많은 죽음들을 가져오며
이윽고 육체는 안식을 원하지만,

정신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찬란한 새벽녘을 맞이하고 있다.

몇년도 안되는 짧은 삶을 보내지만, 차갑고 공허한 병실안에서

그를 바라보노라면 살고자 하는 원초적인 의지를 볼 수 있다.
두 손안에 들어가는 작은 생명의 불은 꺼지고 있으나

그 무엇보다 맑게 비친다.
'순수한 정신'이란 이토록 작은 무지의 존재에서 발견 할 수 있다.
살고자 하는 힘. 무한의 긍정이란 그것에 맞닿아 있다.

 

세포 단위부터 한 사람이 되기까지 그 여정을 통해 
우리는 현실에 저항 할 수 있는 조각가에서 시작해 창조자로 진화한다.

과학이라는 조각과 창조를 동시에 해내는 학문에서 우리는 그 비밀을 발견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래핀이라는 물질이 있다.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고,

반도체로 주로 쓰이는 단결정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전자를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다.

강도는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고, 최고의 열 전도성을 자랑하는 다이아몬드보다 2배 이상 열 전도성이 높으며,

탄성도 뛰어나 늘리거나 구부려도 전기적 성질을 잃지 않는다.

그래핀은 이론상으로는 제작이 가능할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겹겹이 쌓인 흑연에서 그래핀만 분리하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론으로만 존재했다.

러시아 물리학자들이 연필심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떼어낸 뒤,

테이프에 달라붙은 흑연 가루를 반복해서 유리 테이프로 떼어내는 방식으로 그래핀을 처음으로 분리하였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목적이 없는 자연계의 그래핀을

우리는 공상하고 탐구하고 탐색하고 발견하여 목적을 부여해 현실을 조각해낸다. 
이것은 불의 발견도 마찬가지다.
자연계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목적성을 갖고 어떤 것에 대입해 어떤 결과를 하고자 하는 마음, 
선구자의 의지, 위대한 긍정의 힘이다.

우린 그들덕에 추운 겨울에도

봄처럼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삶의 긍정을 통해 고통에 공감 할 줄 아는 연민의 감정과

감사함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위버멘쉬 또한 그러하다.

마치 단계처럼 그려져 있으나 이미 우리는 어린아이였었다.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탐욕적이었다.

작은 이기심이 절대적 도덕과 충돌하여 울었고

부모와 선생들, 용들의 노예가 되었다.

정반합의 진리를 몸으로 맞으며

낙타의 혹 같은 굳은 살을 만들어내어

도덕과 사회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자신의 아집을 죽여 성장하기 위해 살을 보탠것이다.

어느덧 사춘기를 거쳐

부모의 의지에 저항하여 불완전한 자유를 가진

어린 사자는 사회라는 정글에 뛰어들고

흉터로 남은 추억을 통해 '어른이'가 되어간다.

 

정반합이란 긍정과 부정이 충돌하여 만든 불씨이다.

그 불꽃을 통해 내 육체의 반쪽인 아이를 낳는 것만 아니라

선구자처럼 행동하여 마음의 자식인

황혼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세월에 흘러가거나

쾌락을 탐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불을 발견하거나

 

어떤이는 능력에 따라 몇가지씩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이는 한가지도 하지 못한다.

운 또한 있을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그대여, 부디 의지가 꺾여

공허를 쫓아 죽음을 먹고 살지 않길 바란다.

 

삶안에 죽음이 있고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생명이 그랬듯 창조가 존재한다.

 

황혼의 찬란함이 새벽녘을 깨운다.

 

 

16개의 댓글

2020.12.28

삶은 언제나 죽음으로서 결말 짓는다.

0
2020.12.28
0
2020.12.28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

1
2020.12.28

좋네. 퍼온거임?

0
2020.12.28
@고라파독

인용한 부분 제외하면 내가 걍 생각정리한거

1
2020.12.28

와! 블랙 베히모스!

0
2020.12.28

사람을 넘어서 사람으로 사는 법에 대한 얘기지만 보통 다 읽기도 전에 벼락을 맞고 놀라움에 아가리가 먼저 벌어져서 안타까운 책

0
2020.12.28
@한림

형냐 동감 222

0
2020.12.28
@LuminarLidar

쓰니야 아가리가 벌어진다는건 자기 깨달음?에 놀라서 이렇게 포교?하는걸 말하는거야 ㅋㅋㅋ

0
2020.12.28

ㅈㄴ게 똑똑한데 인류사에 다시 나오면 안될 새끼.... 말년에 말 잡고 목놓아 울던 새끼.. 기독교는 싫어하지만 예수는 좋아한 새끼

1

???: 그래서 아리아인이 위버멘쉬라고?

0
2020.12.28

나체!나체!나체!!!

0

노예와 주인

0
2020.12.28

역시 우울할 땐 니첸가

오늘 니체관련 글만 세개째 보네

0
2021.01.02

피마새 등장인물들 낙타 사자 어린이로 구분하면서 보니까 재밌었는데

0
2021.01.03
@flatfish

피마새 공포소설인줄 알고 무서워서 군대에서 안읽었는데 한번 봐야겠넹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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