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그림 보고 떠오른 잡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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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미텐스 2세, 멜레아그로스와 아탈란테. 공주에게 작업 거는데 멧돼지 머리만 한 게 또 없지>

 

멜레아그로스는 요절한 영웅이다. 그의 전성기와 죽음은 거의 동시기였고, 때문에 영웅으로서의 삶이 몹시 짧았다. 그를 영웅으로 칭송하는 아이톨리아에서는 업적, 비참한 최후를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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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자코보 알라리 보나콜시, 멜레아그로스. 이름대로의 생김새를 잘 표현했다>

 

멜레아그로스는 그 뜻이 "검둥이"라고 한다. 비슷한 이름인 멜람포스가 "검은 발"이라는 뜻인 반면, 그는 아예 대놓고 흑형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당대인들이 보기에도 잘 익은 게 아니라 새카맣게 탄 외형을 했던 모양. 그러나 멜레아그로스는 본래 별종이었던 것은 아니고, 그의 운명이 살갗을 다 태워버렸다. 

 

멜레아그로스의 어머니 알타이아가 운명의 세 여신들로부터 천기누설을 받았는데, 멜레아그로스가 대영웅이 될 자질을 갖췄지만 명줄이 짧아 화로 속 장작개비와도 같았다나. 놀란 알타이아는 얼른 불을 끄고 장작을 꺼냈는데, 이로 인해 멜레아그로스는 까무잡잡하게 탄 채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하지만 멜레아그로스가 대영웅으로 거듭나리라는 여신들의 말이 무색하게도, 신화 속에서 그의 활약상은 썩 대단하지 않다. 멜레아그로스, 하면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 이외에 딱히 손꼽을 만 한 업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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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 보에르만스, 멧돼지를 사냥하는 멜레아그로스. 활로 사냥을 돕는 아탈란테가 보인다>

 

오늘날에도 멧돼지로 인해 농가가 피해 보는 일이 왕왕 있고, 전방 초소에서 집채만 한 멧돼지를 보았다는 육군 장병들의 목격담이 흔히 들려온다. 아마도 칼리돈을 초토화시킨 멧돼지 역시 무지막지하게 거구였나본데, 그도 그럴 게 아르테미스 여신이 보낸 멧돼지여서 특출나게 사납고 거대했던 것이다. 이걸 잡기 위해 그리스 전역의 영웅들이 칼리돈에 모였지만, 실질적으로 아탈란테와 멜레아그로스만이 유효타를 먹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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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프 요르단스, 멜레아그로스와 아탈란테. 한입만 달라는 모두를 뒤로한 채, 운명의 여인에게로 가는 멜레아그로스의 눈빛이 그윽하다>

 

멜레아그로스는 아탈란테에게 사냥의 공을 돌리고자, 가죽과 머리를 갖다 바쳤다. 이에 여편네가 상과 영광을 모두 차지하는 것에 심사가 뒤틀린 톡세우스와 플렉시포스는 거세게 항의하며 멧돼지 가죽을 빼앗으려 했다. 두 사람은 멜레아그로스에겐 외삼촌되는 사람이지만, 개빡친 흑형은 그 자리에서 외숙부들을 도살해버렸다. 

 

이것이 멜레아그로스를 죽게 만들었다. 알타이아는 동생들이 자기 아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크나큰 슬픔과 고뇌를 겪었지만 이내 아들을 단죄하기 위해 소중히 보관해 왔던 운명의 장작을 아궁이에 던졌고, 멜레아그로스는 영문도 모른 채 타죽어 버렸기 때문.

 

그래, 이게 다야. 그리스 신화에서  멜레아그로스 생전의 지분은 여기서 끝이다. 죽은 이후에 헤라클레스가 지옥으로 수행갈 적에 영혼으로 등장해서 자기 여동생인 데이아네이라를 아내로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하는 내용도 있지만 말이다. 

 

새파란 장정들이 모여서 큰 멧돼지를 하나 간신히 잡고, 그걸 배분하는 과정에서 혈족끼리 싸우기까지 한 일을 두고 영웅의 업적이라 하다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질문 : 고작 이 정도로도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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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 고드워드, 아탈란테. 여장부로서의 아탈란테가 아니라 공주로서의 아탈란테를 묘사한 듯 하다>

 

나는 아탈란테가 이 의문을 해결할 열쇠라고 생각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보기 드문 여걸인 아탈란테, 그녀야말로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 이벤트에서 중요한 복선이라 할 수 있다. 전승이 여러가지라 출신지는 보이오티아 또는 아르카디아로 갈리지만, 어쨌거나 공주로 태어난 아탈란테는 어려서부터 버려져 산속에서 컸다. 이 때 아탈란테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게 아르테미스 여신으로, 그녀가 내려보낸 암곰이 젖을 물려 아탈란테를 키웠단다. 또한 다 커서는 순결을 맹세하고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길 것을 자처했다. 말하자면, 아탈란테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양녀 포지션인 셈이다.

 

그런 그녀가 아르테미스 여신이 내려보낸 신수를 자기 손으로 때려잡는다고? 게다가 칼리돈을 징벌할 목적으로 온 신수를? 이것은 논리정연한 전개를 즐기는 그리스 문학에서 흔히 발생하는, 후대에 신화를 덧붙이다가 실수한 흔적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아탈란테가 이 곳에 사냥하러 온 이야기를 왜 덧붙이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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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조제프 르페브르, 아르테미스. 처녀신이라는 정체성을 초승달로 드러내고 있다>

 

당연히 아르테미스 신앙의 흔적 때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아르테미스 여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 체계에 무언가 변화를 꾀하려다 아르테미스 여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아탈란테를 붙여주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무슨 변화를 꾀했는지 궁리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에우리노메가 창조한 일곱 별과 그 지배자들. 펠라스고이족의 2세대 신들이다>

 

아르테미스는 레토와 제우스의 딸이고, 레토는 포에베와 코에오스의 딸이다. 그런데 그리스의 선주민족인 펠라스고이족이 믿었던 창세신화에 따르면, 포에베는 창조신 에우리노메의 딸에 해당한다. 말인즉슨, 아르테미스는 에우리노메의 증손녀, 창조신의 직계 혈통이란 뜻이다. 올림포스 신앙이 정립되면서 펠라스고이족의 신화체계로부터 상당 부분 영향을 받는데, 아르테미스 역시 그렇게 올림포스 신으로 흡수 된다. 재미난 점은 모두 외가로 이어진다는 점인데, 펠라스고이족의 창세신화에서 서로 부부인 포에베와 아틀라스/메티스와 코에오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임자가 뒤바뀌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는 안 바뀐다. 아마 전통이 오래되어 뿌리 뽑기엔 역부족이어서 흔적이나마 남았나 본데, 바로 이 점이 의미심장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다.

 

과거 펠라스고이족은 모계 중심 사회로, 가족구성원에 대한 여성들의 지배력이 훨씬 강했던 모양이다. 고대 사회에서 흔히 있는 양상인데, 자손들이 번창할 경우 여성들은 자기 배 아파서 낳은 자식들이니만큼 혈족관계를 확신할 수 있는 반면, 남성들은 관계한 여성에게 자기 씨가 들어섰는지 아닌지를 알 도리가 없으므로 핏줄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때문에 가족들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뭉치고, 어머니가 가장으로서 큰 발언권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다. 당연히 그 시대에 강력한 신들은 모두 여신이었고, 여신들의 권능 또한 무섭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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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세페 세자리, 아르테미스와 악타이온. 벌써 머리에 사슴뿔이 돋는 악타이온과 그를 물어뜯으려는 사냥개들을 여신이 무심하게 바라본다>

 

아르테미스 여신의 권능 중 특이하게 여길 부분은 바로 사냥과 관련한 영역인데, 사냥의 "여신"이 숭배받는 사회의 특징과 맞닿아 있다고 하겠다. 일반적으로 수렵과 같이 거칠고 험한 일은 남성들이 수행하기 마련으로, 펠라스고이족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여신을 하필 수렵신으로 모신 것은, 사냥을 여자들이 맡았기 때문에 그랬다기보단 당대의 여성들이 사회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 신성 또한 여신이 가져야 옳다고 여겼던 게 분명하다. 아르테미스는 사냥감을 남자들에게 몰아주고, 가족구성원들을 배불리 먹이게 해주는 위대한 여신으로 섬겨졌으리라.

 

아르테미스 여신의 위상은 그녀와 관련된 여러 신화에서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악타이온과 오리온, 니오베와 암피온의 자식들을 한 큐에 보내버리고 불경죄를 저지른 인간들을 동물로 바꾸거나 재해를 내리는 등, 아르테미스는 포악하고 무자비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는 노처녀 히스테리로 볼 게 아니라 구복신앙의 전형적인 주신이 갖추는, 신상필벌을 조율하는 모습으로 봐야 한다. 특히 악타이온과 오리온, 칼리스토의 아들은 모두 사냥꾼으로, 아르테미스에게 찍혀 처형 당하거나 별자리가 되는 등 제 명에 못 죽었다. 이는 과거 아르테미스에게 잘 보이면 풍족한 수확을 약속 받지만, 밉보이면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신화로 이어져 온 증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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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카레스, 베르사유의 디아나. 디아나는 아르테미스의 로마 버전이다. 건강하고 당찬 여신의 모습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이렇듯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큰 위치를 차지하던 시절의 신화이니,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것도 당연지사. 멜레아그로스의 생사여탈권은 시종일관 어머니(가 가진 장작)에게 있었다. 그녀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징벌에 맞선 아들을, 그리고 자신의 친형제들을 죽여 가정에 불화를 일으킨 아들을 목격했고 이내 결단을 내렸다. 즉 멜레아그로스 신화에서 그가 요절한 까닭은, 아르테미스가 높이 떠받들어지던 시절의 모계 사회가 중시한 가치인 "가정을 수호하는 것"의 중요성을 전달하고, 더불어 위대하신 어머니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일반적인 교훈을 주고자 쓱 - 싹 해버렸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런 뉘앙스는 멜레아그로스의 여동생인 데이아네이라 신화도 보여주고 있다 : 헤라클레스의 아내가 된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 신화 최후반부 등장인물이지만, 신조차 모독하는 사상 최대의 영웅 헤라클레스를 죽이는데 일조한다. 제 아무리 산천을 뒤흔드는 영웅도 아녀자의 손속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니, 결국 가족 관계에 있어서 여성들의 입지가 이만큼 대단하고 절대적이라는 메시지를 함의하고 있다. 거역이란 있을 수 없다. 살고 싶다면 여성들의 질서에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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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하는 펠레우스와 아탈란테가 그려진 도자기. 흰 살결의 아탈란테가 드세보인다. 참고로 이 경기는 아탈란테가 이겼다>

 

아탈란테는 여성의 몸으로 사냥까지 능한 당대의 알파걸이다. 신화적 이미지로만 볼 때, 아탈란테는 이브지만 아담이 필요 없는 이브, 다시말해 중성적인(혹은 양성적인) 존재다. 그녀는 남성들이 전유했던 엽꾼, 씨름 선수 등 당시의 성 역할에 도전하여 당당히 입지를 다졌던 자주적인 여성이다. 펠라스고이족의 관점에서 볼 때 이처럼 완벽한 여자에게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멜레아그로스가 그녀에게 영광을 바치고, 구혼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삽입된 신화일 것이다.

 

한편, 모계로 계속 이어지는 신성 계보를 따른다면, 아르테미스의 양녀에 해당하는 아탈란테가 멧돼지를 잡는 역할을 맡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아르테미스 여신의 사제이며, 당시 사회의 중핵이었던 여성이 아르테미스 여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꼴이니까. 이는 앞서 말했듯 신화가 후대에 덧붙여진 흔적인데, 그 증거는 아탈란테의 신화 후반부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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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할, 아탈란테와 히포메네스의 경주. 두 주인공들이 서로 욕망의 대상을 향해 곧게 뻗은 팔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자신을 버린 왕가에 돌아가 공주로 거듭난 아탈란테에게 시집 가라는 압박이 들어온다. 그녀는 달리기 시합을 해서 자신보다 빠른 남자가 있으면 기꺼이 시집 가겠다며 조건을 내걸었고, 이에 숱한 남자들이 도전했지만 죄다 실패한다. 그러나 아프로디테의 가호를 받은 히포메네스가 그 유명한 황금 사과를 사용하여 경주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아탈란테는 히포메네스와 혼인해야 했다. 결말은? 아탈란테와 히포메네스의 교접에 분노한 제우스가 사자로 만들어버렸다. 한 입으로 두 말 한 자가 괘씸해서, 또는 자신의 신전에서 불경을 저지른 게 가증스러워서 벌을 내린 거라면 할 말 없지만, 그랬다면 아르테미스가 왜 양녀의 구원을 위해 등장하지 않는 건지는 의문이 들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아이러니하게도 멜레아그로스 신화에서 편린을 찾을 수 있다. 일리아스에 따르면 멜레아그로스가 외삼촌들을 죽인 뒤에, 알타이아가 장작더미를 집어넣어 죽인 게 아니고 맹렬하게 저주를 퍼부었다고 한다. 친엄마가 자기 편 안 들어줘서 삐친 흑형은 집안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했는데, 그 때 쿠레테스족이 침공해 전쟁이 발발했단다. 쿠레테스족이 어떤 민족이던가? 바로 제우스가 어릴 적, 그의 울음소리를 감추기 위해 청동방패를 두드리며 춤을 추던 그 민족 아닌가? 멜레아그로스는 이 전쟁에 나서서 승리를 가져오긴 했으나, 전사했다고도 하고 전리품을 못 얻었다고도 한다. 후일 쿠레테스족은 아이톨로스가 이끄는 부족들에게 병합되면서 아이톨리아인으로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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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제우스와 테티스. 여신은 애원하고 주신은 관망한다>

 

여러분도 이미 짐작했듯이, 이는 "순결"이라는 가치에 집착한 남성주의적 판타즘이 반영된 결과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우스의 손에 의해 아탈란테가 징벌을 받지만, 그 죄목은 아탈란테가 평생 맹세한 정절을 어긴 것 뿐이다. 그렇다. 또 다시 제우스다. 제우스와 올림포스 신앙이 토속 신앙이었던 신성 모계 신앙에 "순결"의 키워드를 집어 넣음으로써, 여성들로부터 질서의 주권을 빼앗아 온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남성들은 순결을 맹세하는 법이 잘 없지만, 여성들에게는 유독 순결할 것을 강조한다. 때문에 순결을 지키지 않은 아탈란테를 주벌하는 것은 정당하게 서술하고, 아르테미스도 관여치 않는다. 이것으로 미뤄볼 때 아탈란테 신화는 원전이 따로 없고 후대에 창작되었을 여지가 다분하다.

 

고대 사회에서 자손이 많음은 곧 일손이 많은 것이고, 일손이 많음은 곧 공동체의 부강함을 뜻하니 아이는 많을 수록 좋을 것 아닌가? 모계 중심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순결은 그다지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지만, 청동기 시대로 넘어오면서 가정 권력 구조에 변화가 일어났다 : 정복전쟁이 활발해지고 신분제 사회가 발흥하면서 세상은 힘 있는 자의 것이 되었다. 남성이 여성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때를 같이 하여 변화한 신화 체계에 이렇듯 성 역할에 대한 관념적 변화도 반영되면서, 아르테미스에게는 본래 없던 초승달/처녀의 여신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지고 이전부터 내려오던 여성들에게 모두 정조대가 채워졌다. 남자는 여자를 마음대로 품고 다녀도 되지만, 여자는 오로지 지아비만을 섬겨야 한다는 인식이 자라도록. 그래서 후기 그리스 신화를 보면 여성들은 모두 전리품으로 취급되고, 남성들은 그것을 쟁취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등, 아버지들의 교육이 결실을 맺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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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모스키노, 아탈란타와 멜레아그로스, 그리고 칼리돈의 멧돼지. 얼핏 보면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 같다>

 

정리하자면 아마도 아탈란테 신화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인도로 아탈란테가 거대한 몸집의 멧돼지를 사냥한다는 단순한 내용이 원전이지 않았을까, 한다. 아르테미스의 사제로서 아탈란테는 가족 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사냥감 공수), 그 공을 아르테미스에게 돌리는 정도였겠지. 그리고 멜레아그로스 신화는 남성 사냥꾼들의 일반적인 구복신앙이 기원인 것으로 보인다. 즉, 아르테미스 여신에 대한 숭배를 누그러뜨리고 처녀신으로 격하시키는 공정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긴다는 공통점이 있는 별개의 두 신화를 그리스인들이 엮어 만든것이 멜레아그로스 신화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문제는 올림포스 신앙 특유의 남성 우월주의적 색채가 가미되다 보니, 짜임새가 엉성해진 부분일 것이다. 대영웅이라는 멜레아그로스는 우여곡절 끝에 멧돼지 하나 잡은 걸로 으스대다가 비참하게 죽고, 한 가족을 박살내놓은 원흉인 아탈란테는 공주 신분으로 회귀하는데 아무도 지탄하지 않는다. 아탈란테와 아르테미스가 사냥을 했다는 일화는 생각 하지 않고 정조 관념을 주입하는데 집중하다가 그만 아르테미스와 그녀의 사제가 대립하는 구도를 만들고 말았다. 이렇듯 멜레아그로스 신화의 의아스러운 차림 뒷편에는 멸할 수 없는 증거가 남아 고대의 생활상을 전하고 있다 : 여자들은 무서운 생물이라는 진리 말이야.

 

이 글에도 문제가 많지만, 대략 다섯 가지 문제가 있다 :

 

1. 어디까지나 신화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 신화를 취사 선택한 것과 취사 해석한 문제로 진실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2. 남성들의 판타지를 왜곡했다 - 남성들의, 특히 고대의 남성이 가진 판타지가 꼭 남편만 일편단심으로 사랑하는 여성은 아닐 수 있다. 글의 전개를 위해서 비약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근거 없는 소리이다. 부디 재미로만 이해해 주시길.

3. 아르테미스와 아탈란테의 사이를 설명하는 말은 없다 - 아르테미스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함께 사냥에 나설 영예를 내리는 등, 호의를 베푸는 경향이 있었다. 아탈란테 역시 그 정도 선으로 배려를 받은 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녀는 아르테미스의 양녀 정도의 포지션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 다만 순결을 맹세해놓고 훗날 히포메네스와 맺어졌으니, 아르테미스가 분노할 법도 한데 그렇다는 묘사가 없는 걸로 볼 때 고대신으로서의 신성이 남아 있다는 증거로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4. 멧돼지도 무섭다 - 포수가 사냥을 다녔던 근대 시대에도 멧돼지는 무서운 동물이다. 요즘에도 마찬가지. 당연히 신석기 ~ 청동기 시절에는 호랑이나 멧돼지나 인간의 천적임에는 틀림 없었을 것이다. 멜레아그로스가 골칫덩이인 멧돼지를 처치함으로써 영웅으로 칭송받는다고 해도 괄시할 명분은 못 된다. 하긴, 나더러 맨몸에 목창 들고 멧돼지 잡으라고 했다면 바로 지려버렸겠지.

5. 증거가 부족하다 - 신화에 기반한 뇌피셜이다보니 이렇다 할 증빙 자료는 없다. 위의 네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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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낭비하게 해서 미안

 

8개의 댓글

2019.03.03

재밋당

1
@limkim

고마워 :)

0
2019.03.03
1
@해오라기난초

찡긋 ;)

0
2019.03.03
1
@한화이글스

찡긋 ;)

0
2019.03.07

 

-

아름답다... 아름다워

1
@희망이필요해

그들과 찰나처럼 가까운 우리 삶도 아름다워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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