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펌] "미친 편의점 알바가 700만 원 요구"를 쓰면서 느낀점 (2014)

원본: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tock_new&no=5619059

 

약 한 달 전 난리가 났던 글이다.  이 글은 내가 썼다. 그리고 난 편의점 점주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예전에 내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본다면 알 수 있겠지만 (링크 : http://blog.naver.com/sung_ryun/220115944296)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을 정도로 악덕 업주 밑에 충성을 바쳐왔던 1년이 있었기에 시작한 일이다.

 

주방 일이었는데 당시 같이 일하던 사람 중에는 그 사장 밑에서만 7년 동안 일한 4살 위의 형이 하나 있었다. 최저 임금은 아니더라도 최저 '시급'은 받고 일했고, 같이 일하는 남들도 다 그러겠거니 했다. 하지만, 사장과 관계를 끊은 뒤 내 처지는 양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이 일하던 누군가는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바로 7년 경력의 직원이었다. 

 

급여를 시간으로 나누니 2014년 최저 시급인 5,210원이 안 됐다. 7년의 시간이다. 남 밑에서 온갖 고된 일 맡아주고 재료 손질서부터 청소까지 안 하는 게 없는 사람의 청춘이 7년이었다. 어리숙해 보였지만 악의는 없던 사람이기에 느낀 약간의 친근함도 있었고, 내 처지와 같다는 연민도 있었다. 그래서 노동부에 진정서를 접수 후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형이 받지 못한 임금이 얼마고 법정 가산수당이란 것이 뭔지, 퇴직금이 어떻게 정산되는지, 30분 가까이 열변을 토했다. 내 처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시작된 일이 적어도 내 주위의 부당함을 감싸 안고자 하는 의로움으로 번진 일이었다.

 

하지만 반응은 내 예상과 많이 달랐다. 7년 동안 일했으면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그 형이 오히려 나를 질책했으니까.

 

'우리는 직원이고 상대는 사장님인데 어떻게 네가 그럴 수가 있느냐. (나 : 계약관계이지 종과 주인의 관계가 아니다.) 그래도 직원된 도리라는 게 있다. 사장님이 나쁜 면도 있지만, 반면 좋은 점도 있다. 사장님 굉장히 인간적인 분이다. 네가 그렇게 사장님을 대하면 안 된다. 사회생활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사장님도 네게 미안한 마음이 있으니 빨리 사과하고 다시 들어와라. 우리 예전처럼 즐겁게 일하자.'

 

긴 통화였지만 요약하자면 뭐…. 이런 얘기였다. 그때 받은 충격은 동정과 혐오가 뒤엉킨 잔잔한 멸시로 내게 다가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형이 투잡으로 노래빠 뛴다며 역겹다고 자른 사람이 사장이에요. 그런 고용주가 인간적이에요? 인간적이어서 형 그렇게 2~3번 자르고 재고용 해줄 때마다 퇴직금 정산해서 줬어요? 한 푼이라도 받은 적 있어요? 7년 동안 따랐으면 고맙다고 점포는 못 내줘도 관리직은 시켜줘요. 근데 형 최저 시급도 못 받는다면서요. 도대체 인간적인 기준이 뭡니까?' 

 

긴 침묵이 흘렀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그래도 네가 그러면 안 된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되뇔 뿐이었다. 그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을 끊었다. 

 

21세기다. 하지만 시기와 상관없이 정신이라는 것은 사람을 충분히 노예로 길들일 수 있다. 벌벌 떠는 바보로 세뇌할 수 있다. 무슨 큰 권력을 지닌 '빅 브러더'까지 필요도 없었다. 일개 요식업 사장도 충분히 가해자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 점에 나는 큰 역함을 느낀다.

 


 

사건 이후 당분간 버틸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근처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지역에서 손으로 꼽히게 잘 되는 곳이라 저녁 물류가 들어오면 가득 찬 상자를 20여 개씩 옮겨 분류하고 손님 맞는 것이 거의 고행에 가까운 곳이었다. 다만 육체적 고됨과 별개로 일하는 내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의문은 '만약 내가 이곳을 그만두는 날 내 권리, 하지만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권리를 요구한다면, 나는 이 사회 속 공공연한 악(惡)이 되는 걸까?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던 7년 차 형이 그랬듯 오히려 내가 손가락질받는 인간인 걸까? 사회 부적응자인 건가?' 였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된거다.

 

하지만 마냥 쓰지는 않았다. 최대한 멀리 퍼져야 하고,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능한 많은 반응이 필요했다. 그래서 논란의 중점인 '퇴직 후 고용인의 권리 요구, 당연히 보장할 생각이 없던 사장, 그래도 된다는 사회 인식, 어떤 의미에서건 양측의 억울함, 자극적인 액수, 신뢰성을 얻기 위한 규칙적인 게재, 짜증 섞인 답변'을 버무렸다. 그리고 인터넷 이용률이 높으면서 실제 사회생활 연령층이 많은 곳을 찾아 게시했다. 

 

그곳이 주식갤러리였다. 

 

고용인 입장에서 쓴 글은 으레 그런 푸념 글이 될 수 있다 생각했기에 당연하지만, 당연히 지켜지지 않던 금기들을 기분 나쁘게 긁는 고용주를 화자로 삼아 글을 썼다. 예상대로 그 글은 엄청난 반향으로 온갖 사이트에 퍼져 나갔고 3일째 되던 날, 웬만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안 퍼진 곳이 없이 재확산되어 갑론을박으로 뜨거운 주제거리가 됐다. 법적 권리를 요구하는 고용인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지만, 매우 부정적인 반응도 꽤 보였다. 그중 몇 가지를 캡처해서 올려본다.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던 차였기에 덤덤했지만 느낀점도 많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일색인 한국에서 사장은 '을'이다. 하지만 그 '을' 밑에 '병'으로 살아가는 고용자의 위치는 어느 수준인지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법적으로 보호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가장 말단의 임금 착취가 이뤄지는 곳인 '영세 자영업의 고용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는 어디까지인지 이해하고 있을을지 궁금했다.

 

참고로 상시 근로자 5인 이하 영업장은 아래와 같다.

  • 해고 등의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제23조 1항) 

  •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 (제27조) 

  • 부당해고 구제의 적용이 없다. (제19조) 

  • 휴업수당의 적용이 없다. (제46조) 

  • 근로시간 제한의 적용이 없다. (제50조 ~ 제53조) 

  • 연장. 야간 및 휴일 근로에 대한 임금 할증 적용이 없다. (제56조) 

  • 연차 유급 휴가 적용이 없다. (제60조) 

 

최소한 인간답게 살라고 정해놓은 근로기준법 가이드조차 모두 보장받지 못한다. 때문에 '여자라서', '못생겨서' 라는 이유로 해고할 수 있고, 사실 이유가 없어도 마음대로 자를 수 있기에 부당해고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합의만 있다면 주 100시간을 일해도, 새벽에 일해도, 연장근무로 인해 생활이 망가져도 정해진 시급 이상 받지 못하며 휴가도 없고 물론 유급 적용도 되지 않는다.

 

그런 비정규직 고용자에게 보장된 것이 단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법정 시급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 주를 만근하고 다음 주에 출근 시 지급되는 하루 치 급여인 주휴수당이다. 법정 최저 급여는 사회적 합의이기에 지켜져야 하는 것이고 만약 지킬 생각이 없다면 인지하고 있건, 인지하고 있지 못하건 '착취'고 '횡령'이 된다. 무지는 참작의 이유지 면죄의 이유가 아니다.

 

그럼에도 근로자에게 반감을 갖는 주된 요인이 있다면 '뒤통수' 친다는 이미지 때문일 텐데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배신이란 말 그대로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인데 침묵한다는 이유로 부당이익을 취하는 고용주가 고용자 대비 의리가 있다고 보긴 힘들지 않을까? 대부분의 비정규직 고용자가 첫 월급을 받을 때부터 정당한 수당을 못 받고 뒤통수를 맞는 형국인데 이 관계에 의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나는 좀 이해하기 힘들었다. 만약 그 상황에서 비정규직 고용자가 '사장님. 첫 월급에 주휴수당 정산이 안 됐는데요? 다시 확인해주시겠어요?' 한다면 '아! 그렇구나. 네가 말하지 않아서 몰랐구나. 이제부터 챙겨주도록 할게.'라고 대답할 사장이 얼마나 될까? 

 

앞서 말했듯이 상시근로자 5인 이하 영업장은 해고 사유 통지의 의무가 없다. '내가 널 착취하지 못할 것 같으니 자르도록 할게.'는 대답도 필요 없다는 얘기다. 준법하며 일하고 싶은 근로자는 더이상 그곳에 남을 수 없다. 아닌 곳도 있겠지만, 그 정도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서면으로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받아야 하는 수당을 근로자와 정산해 지급하고 있지 말없이 넘어갈 일은 없다.

 

엄밀히 말하면 의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 같은 근무환경이 존재하지 않듯이. 가족 같은데 왜 쉬고 싶을 때 집에 일찍 들어가지 못할까? 왜 가족 같은데 매일 고기반찬은커녕 식은 밥을 주지? 왜 가족 같은데 회사가 잘될수록 나는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는 걸까? 그 답은 간단하다. 당신은 가족이 아니니까.

 

당신이 가장 비참할 때에 그 이유로 차별받지 않기 위해 법이 있고 법은 최소한의 기준을 상정하는데 의의가 있다.  우리가 법치 국가에 살고 있는지, 인치 국가에 살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볼 만한 시대다. '너는 법 안 어기냐? 무단횡단 한번 한적 없냐.' 할 수도 있겠지만 벌어진 위법에 책임을 지고자 하는 의식과 위법이 괜찮다는 의식의 차이는 크다.

 

예전에 일본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느낀 건데 마트나, 편의점이나, 아주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더라도 종업원 대부분이 항상 친절했다. 근무 중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딴짓을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그게 나에게는 아주 신기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비록 똑같은 비정규직 고용자더라도 큰 결격 사유가 있지 않은 이상 최저 시급 이상을 지급하는 편이고 법적 휴식 시간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한다. 그 때문에 시간이 되면 사장이 나와서 잠시 교대를 해준다거나 영세하더라도 2명 이상을 고용한다. (우리나라는 4시간당 30분이다. 하지만 지켜지는 곳은 거의 없다.)

일이 힘든 것은 관계가 없다. 원칙을 지키기 때문에 고용자에게 원칙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고, 대부분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원칙에 대한 인식. 사소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

 


 

여담으로 편의점 일은 그만뒀다. 근무계약서도, 교육 당시 시급정산도 없었는데, 역시나 주휴 수당이니 뭐니 알지 못한다며 잡아 때는 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지급을 약속받았다. 당연히 지금 당장 받아야 하지만 분할해 지급하는 정도의 융통성 아닌 융통성과 함께.

 

앞으로 이런 일을 (내 권리를 찾는데 일일이 영수증을 찍어 보관하고 얼굴을 붉혀야 하는 상황이 필연적인) 일부러라도 다시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처음 품은 의로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기대하며 이 글을 쓴다.

 

모 사이트에서 나 같은 사람을 직원으로 쓰겠냐고 묻던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나는 아직도 사회의 악이고 부적응자일까? 궁금하다.

 

추신 : 

1. 주휴수당은 법정 근로시간인 40시간까지만 인정되며 한 주에 15시간 이상 일하고 다음 주에 출근하는 근로자에게 지급된다. 간단하게 (근로시간/40)*시급*8로 계산할 수 있다. 근무 시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평상시 근무 기록표를 작성해 사본을 만들어 두거나, 여의치 않다면 달력에라도 근무 시간을 기록해 놓는 편이 좋다.

2. 최저 시급은 당신의 시간을 빌리는데 지급해야 하는 마지노선이다. 일의 경중과 상관없는 당신의 최저 인생 값이라는 얘기다.

1개의 댓글

2018년 전후로 너무 달라진 이야기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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