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닌겐상의 괴력난신 이야기~ 궁정묘(宮亭廟) 이야기

궁정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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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민이 강하태수가 되자 궁정묘(宮亭廟)의 신에게 은으로 만든 지팡이를 바치겠다고 약조하였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자 쇠로 된 지팡이에 은 칠을 하여 궁정묘의 신에게 바쳤다. 그랬더니 무당이 말했다.

 

"진민이 준 이 굴욕 용서하지 않아요~"

 

그리고는 지팡이를 호수에 던졌는데 던진 지팡이가 물 위를 떠다녔다. 진민이 탔던 배가 풍랑을 만나 전복되었다. - 술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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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을 읽으면서 중요한 건 단순히 내용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찾아내는 거라고 생각해. 궁정묘라고 하면 어떤 사당 말하는 건지 감이 안 올 수도 있지만 '호수'가 나왔다는 점에서 이 궁정묘는 궁정호 옆의 사당임을 알 수 있어. 궁정호는 팽려호의 다른 이름이고, 팽려호는 지금의 포양호의 옛 이름이야. 오늘날 강서성이 배경인거지.

 

"중국 장시성[江西省] 북부에 있는 호수. 면적 5,050km2로 호수의 북쪽 끝은 양쯔강[揚子江]과 이어진다. 장시성 주위의 산지에서 발원하는 간장[贛江] ·슈수이강[修水] ·푸허강[撫河] ·포장[鄱江] 등이 흘러든다. 옛날에는 광대한 호수였으나 유입 하천의 토사(土砂)로 메워져서 주위에 평야가 형성되었다. 북쪽의 호구(湖口)에서 양쯔강과 연결되는데 증수기(增水期)에는 양쯔강의 물이 역류하므로 양쯔강의 수위(水位)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담수어장(淡水漁場)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뱅어(白魚)가 많이 잡힌다. [네이버 지식백과] 포양호 [鄱陽湖(파양호)] (두산백과)"

 

이 호의 주변에 있는 유명한 산이 여산(廬山)이야. 기억나는 사람 있을지 모르지만, 이 호수와 산의 신은 예전에 내가 올렸던 다른 글에서도 단역으로 나온적이 있어. 

 

https://www.dogdrip.net/index.php?_filter=search&mid=politics&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A%B4%B4%EB%A0%A5%EB%82%9C%EC%8B%A0&page=1&division=-219919396&document_srl=216703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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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난 호수와 산 주변에 있던 사당이니만큼 여기서 모시는 신, 신들의 위세도 좋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관련된 이야기도 제법 많아. 아마 실제로 많은 사람이 자주 방문하는 사당이었을 거야.

 

여산신만 하더라도 낮은 벼슬에 있던 조저라는 사람을 불러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서 사위로 삼은 이야기가 있고 - 수신기

 

궁정호의 사당 아래에서 두 여인이 상인에게 신발 두 켤레를 받고 갚겠다고 약조했는데, 상인이 나중에 배를 타자 호수에서 잉어가 올라왔고 그 잉어의 배를 가르니 서도(書刀)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 수신기

 

궁정묘의 신이 손권에게 진상하게 되어 있는 무소뿔로 만든 비녀를 빌려 간 이야기도 있어 - 수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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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진민처럼 신한테 사기치다가 당하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 

 

유송 원가 연간(424~453)에 남강군 펑고현 사람인 황묘는 주부의 관리였는데, 휴가를 받아 쉬다가 돌아갈 날을 어겨버렸다. 그가 돌아가는 길에 궁정호를 지나가다 사당을 보고는 소원을 빌었다.

 

"벌을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루어진다면 제가 돼지를 잡고 술을 바치겠습니다."

 

황묘가 주부에 도착했는데 일이 풀려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가진 재물과 노잣돈이 적다보니 사당을 들르지 않고 지나치고서는 주의 경계에 이르러서 배를 정박하고 동행인과 잠을 청했다. 그러자 한밤중에 배가 강에 떠내려갔는데 마치 바람이 부는 것처럼 빠르게 떠내려갔다. 밤, 사경이 되자 궁정호에 도착했는데 그제서야 황묘가 일어났다. 배 위에는 세 명의 사람이 보였는데, 그들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밧줄을 들고 있었으며 황묘를 잡아 사당 계단 아래로 데려갔다. 황묘는 40세 정도의 신령과 마주했는데, 신령의 얼굴을 황백색이었고, 비단으로 만든 도포를 입고있었다. 대들보 아래에는 구슬 하나가 메달려 있었는데 그것이 사당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문 밖에서 말했다.

 

"평교출신 황묘는 소원을 빌때 돼지와 술을 바치겠다고 말했으나 그냥 집으로 달아나버렸기에 이렇게 포박하여 데려왔습니다."

 

신령은 명을 내려 황묘를 외진 곳으로 3년간 귀양 보내고 30명을 잡아 가져오라 했다. 신령은 관원에게 명하여 황묘를 산 속 숲으로 데려가 쇠로 된 사슬로 허리를 나무에 묶고서는 날마다 생고기를 먹였다. 황묘는 근심에 빠져 있었는데, 곧 몸에 오한이 들고 열이 나더니만 종기가 생기고, 털이 났다. 열흘이 흐르자 털이 몸 전체에 났고, 발톱과 송곳니가 생겼으며, 아무것이나 잡아 씹어 먹고 싶었다. 그러자 관원이 그를 풀어주었다. 황묘는 3년간 29명을 잡아먹었다. 이후 신감현 출신의 여자 하나를 잡아먹고자했는데, 그 여자는 사족집안의 사람이었기에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그 여자가 여동생들과 뒷문으로 나가 친척을 방문하고자 했는데, 그제서야 맨 뒤에 있던 그녀를 잡아 먹을 수 있었다. 그녀를 잡아 먹기가 어려웠기에 5년이 걸려 30인을 채웠다. 관원이 사당으로 그를 끌고가자, 신령이 그를 풀어주게 하였다. 황묘에게 소금 넣은 밥을 먹이자 그의 몸에 있던 털이 빠지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났으며, 발톱과 송곳니도 옛것은 빠지고 새것이 났다. 그렇게 15일이 지나서 사람같은 모습으로 돌아와 정신 또한 회복하자 관원이 그를 큰길로 데려다 주었다. 현령이 황묘를 불러 지금까지의 일을 기록했으며, 그가 잡아먹은 사람을 조사하며 집마다 물었더니,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황묘의 다리에는 과거 창에 찔린 상처가 하나 있었는데 그 흉터가 남아 있었다. 황묘는 집에 돌아오고 8년 뒤 병으로 죽었다. - 술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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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얘를 '려서'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얘가 나오네. )

 

그런데 역으로 이 궁정묘의 신 혹은 신의 하수인이 당하는 이야기도 있어.

 

  • 진(秦)나라 주방(周訪)은 젊을 때에는 상인(商人)들과 함께 강을 거슬러 위쪽으로 올라가다가 저녁이 되어 궁정묘(宮亭廟) 밑에서 잤다. 저희들끼리 의논하였다.

    "누가 저 사당 안에 들어가 잘 수 있겠는가?"

    주방의 성품이 담대하고 용감하였으므로 주방이 사당에 올라가 잤다. 밤이 다 지날 때까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그는 사당 안에서 머리가 하얀 노인을 보고 그를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숫오리로 변화했다. 주방은 그것을 잡아 가지고 배로 돌아와서 삶으려 했다. 그런데 그것이 곧 날아가 버렸다. 그 뒤에 아무 일도 없었다. - 법원주림(동국대 한글대장경)

 

 

곽박이 강을 건너오자 신성군 태수 은우는 그에게 참군의 자리를 주었다. 당시 신성군에는 괴물이 하나 있었는데 크기는 무소만하고, 색은 회색빛에 다리는 짧았는데 마치 코끼리 다리 모양처럼 생겼으며, 앞가슴과 꼬리 윗부분은 흰색이었다. 힘이 강했으나 움직임은 느렸는데 이 괴물이 성까지 오자 사람들이 괴이하게 생각했다. 

은우가 매복하여 그것을 잡고 곽박에게 점을 치게 하였다. 둔(遁)의 괘가 고(蠱)의 괘로 변했다. 원래 괴물의 이름은 려서(驢鼠)였다. 점을 보자 매복했던 사람들이 창으로 괴물을 찔렀는데 그 깊이가 한 자 정도 들어갔다. 군의 기강을 관리하는 관원이 사당으로 가 괴물을 죽이도록 청했다. 그러자 무당이 말했다.

 

"사당의 신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궁정호 여산신의 사자로 형산으로 가는 중이었기에 이곳을 잠시 지나간것 뿐입니다. 그러니 손을 댈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괴물을 풀어주자 괴물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 수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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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보면 궁정묘는 중국 사람들이 자주 모시는 호수나 산, 토속신들을 모신 사당 같아. 쉽게 말하면 잡신 사당인거지. 그래서인지 유명록에 취급이 좋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

 

남강군 궁정묘에는 신험함이 있다.

진효무제때의 일이다. 승려가 하나 찾아오니 궁정묘의 신상(神像)이 눈물을 흘렸다. 승려가 연유를 묻자 신상이 이름을 말하였는데 알고보니 옛 친구였다. 신상이 말했다. 

 

"내가 죄가 크니, 그대가 날 해탈할 수 있게 해주겠소?"

 

"내 진실로 노력해 책임을 다해보겠소."

 

승려는 경문을 낭독하다가 말했다.

 

"그대와 나는 친구이니 그대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겠소?"

 

"내가 그것처럼 생겼으니, 그대가 학대할 것 같아 꺼려지는구려."

 

그러나 승려가 계속 청하자 신상이 마침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였는데, 몸 길이가 몇 자가 넘어가는 커다란 뱀이었다. 그러나 승려는 아무렇지도 않게 경을 읊으니 뱀 또한 따라 들었다. 마침내 뱀이 눈에서 피를 흘리고 죽었다. 7박 7일에 걸쳐서야 뱀이 죽었는데 이 또한 해탈한 것이다. 그 후 사당 또한 문을 닫았다. - 유명록

 

 

사당신이 해탈하면서 사당이 망했다는 이야기. 결국 불교한테 발렸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시대적으로 불교의 세가 강했던 시절이라에 쓰인 이야기라면 나올 수 있는 이야기야.

 

순서대로 따지면 수신기 -> 유명록 -> 술이기 -> 법원주림 순으로 지어진 책들인데

 

궁정묘의 신에 대한 묘사를 정리라면

수신기에서는 기이하고 영험하긴 하지만 악신으로 나오는 모습이 없음

유명록에서는 불교가 개입한 이후 사당이 문을 닫음

술이기에서는 벌을 줘서 사람을 죽이거나, 아예 사람을 요괴로 바꿔 살인을 명하는 조금 문제가 있는 신으로 묘사

당나라때 지은 불서인 법원주림에서 백발노인이 잡혔다가 도망친 이야기도 본래 술이기에서 나오는 이야기야. 다만 법원주림에서 굳이 안습한 이야기만 가져다 기록한건 의도가 있을 수 있지. 불서인데 궁정묘의 신이 부처보다 더 잘났다는 이야기를 기록할 수는 없잖아.

 

 

나중에 지어진 이야기집일수록 점점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이런 경우 대체로 실제로 이 지역에서 사당의 신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서, 신격이 떨어지고, 모습이 변화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궁정호-파양호에서 일어난 일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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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양호 선박 실종사건

 

중국 장시 성 파양호에서 1945년 4월 16일 일본의 2,000톤급 운송선 고베마루 호가 실종된 이후 파양호 호수 상류 노야묘(老爺廟) 근처에서 수백여 척의 선박이 실종된 사건을 말한다. 이른바 중국판 버뮤다 삼각지대 사건이라고도 한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inemabooks&logNo=221374802886&categoryNo=29&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老爷庙라는 사당 주변에서 일어났다는데 아무리 봐도 돼지랑 술을 접대하지 않은 놈들 잘못같다.

 

 

 

 

 

개구리를 살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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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소메(置染)오미(臣-일본에서 이 '오미'는 가바네[姓]라고 해서 세습 지위 중 하나다) 다이히메(鯛女)는 나라 도미노데라절(富尼寺)의 비구니 사찰에서 상좌의 자리에 있던 호니(法邇)의 딸이었다. 불심이 깊어 수행하고자 함이 순수하여 남자와 관계를 가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정성을 들여 나물을 캐다가 매일 교기대덕에게 올렸다. 어느 날 산에서 나물을 캐는데 큰 뱀 하나가 개구리를 삼키려고 하니, 이에 여자가 말했다.

 

"개구리를 내게 줘"

 

뱀은 무시하고 마저 삼키려고 하였다. 그러자 여자가 다시 말했다.

 

"내가 네 부인이 되어줄게. 그러니 내게 줘."

 

큰 뱀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여자를 보더니만 개구리를 내주었다. 여자는 뱀과 약속했다.

 

"초이렛날에 나를 찾아와줘."

 

약속한 날, 여자는 집의 문과 구멍 등을 막고 긴장한채 방 안에 있었다. 뱀이 찾아와 꼬리로 벽을 두드렸다. 여자는 겁에 질려 다음 날 교기대적에게 이 일에 대해서 말했다. 교기대덕은 이코마산의 절(山寺)에 머물고 있었는데, 여자에게 말했다.

 

"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굳게 계율을 지키고 있거라."

 

여자는 전심을 다해 삼보와 오계를 받고서 내려왔다. 오던 중에 노인 하나를 만났는데 큰 게를 들고 있었다. 여자가 물었다.

 

"어디의 어르신인가요? 제게 게를 주세요."

 

노인이 답했다.

 

"나는 셋츠국 우하라군(兔原郡)에 사는 사람으로 에도이(画問) 니마로(邇麻呂)라 합니다. 일흔 여덞이고 대가 없어 어찌살지 모르곘소. 나니와에 갔다 이 게를 얻었다만 약속한 사람이 있으니 드릴 수는 없소."

 

여자가 웃옷으로 게를 사려고 했으나 노인이 거부했다. 치마까지 벗어 주자 마침내 노인이 받아들였다. 여자는 게를 가지고 교기대덕에게 돌아가 주문을 외우고 놓아주었다. 교기대덕이 말했다.

 

"고귀하고, 선한 일이로다."

 

팔일 째의 밤에 뱀이 다시 찾아와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의 풀을 뚫고 안으로 들어오자 여자는 두려워하였다. 그런데 침상 앞에서 무언가 튀어 오르는 소리가 났다. 다음날 확인하니 커다란 게 한 마리가 있고 그 옆에 뱀이 찢겨져 있었다. 여자가 놓아준 게가 은혜를 갚았으며 이 모두 계율을 지킨데서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일의 진실을 알고자 노인의 성과 이름을 찾았으나 다시는 찾지 못했다. 노인은 성자의 화신이었으리라. 기이한 일이다. - 영이기

 

 

 

 

동물을 방생해서 복을 받는 평범한 불교 설화. 다만 지명이 좀 익숙하지 않아서 영이기 관련 일본 자료를 구해봤는데 세로읽기여서 고생했다는게 함정. 웃긴건 뱀이 개구리를 놓아줄 때, 고개를 들어 여자 얼굴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여자가 미인임을 알 수 있다는 점. 위에서 상좌의 자리에 있다고 하는 언급이 있는데, 절에서 상좌는 고참 스님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삼보 - 불, 법, 승

오계 -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

 

교기대덕은 나라시대의 실존 인물로 유명한 고승.

 

 

우지(氏)-가바네(姓)는 네이버 백과를 참고하도록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07777&cid=62089&categoryId=62089

 

우지(氏) · 가바네(姓) 제도

 

야마토 정권은 대왕(大王, 오기미)을 중심으로 야마토(大和)와 가와치(河內) 주변을 기반으로 하는 호족의 연합에 의해 구성되었다. 대왕가(大王家)는 야마토 분지 남동부의 미와야마(三輪山) 산록을 기반으로 하여 그 세력을 넓혀 갔다. 대왕가 중심의 지배 체제에 각지의 호족을 끌어들이기 위한 신분 질서로서 우지·가바네 제도가 만들어졌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전반에 성립된 이 제도는 야마토 정권의 정치적 질서를 나타내며, 야마토 정권의 권력과 연결된 자의 신분 표식으로, 대왕과 각 씨족 간의 인격적 결합 관계를 상징하였다.

우지(氏)란 혈연을 바탕으로 한 정치·사회적 조직이었다. 소가(蘇我)·가즈라키(葛城)·이즈모(出雲)·헤구리(平群)·고세(巨勢) 등과 같이 지명이나, 모노노베(物部)·오토모(大伴)·나카토미(中臣)·하지키(土師器)·가시와데(饍) 등과 같이 직명에 따라 명칭되었다. 야마토 정권의 관직, 지위는 우지에 의해 세습되었고, 토지와 인민이 나뉘었다. 가바네(姓)는 본래 인명에 붙은 히코(彦)·네코(根子)·기미(君)·와케(別)·스쿠네(宿禰) 등의 존칭으로부터 기원된 것으로, 대왕이 우지의 수장에게 사여함으로써 성립되었다.

가바네는 직무나 집안의 공적과 지위, 우지의 서열을 나타내며 세습되었다. 다시 말해, 야마토 왕권과 정치적 관계가 없는 씨족 집단에는 우지의 명칭이 없었으며, 가바네가 없는 우지도 많았다. 우지의 구조를 보면, 일족의 통솔자인 우지의 가미(氏上)는 우지가미(氏神)를 받들고, 대왕에게 가바네를 받아서 조정에 봉사했다. 직계·방계의 혈연 또는 비혈연자 일족의 구성원들은 우지비토(氏人)라 하며, 우지가미를 따랐다. 일족 아래에서 생산에 종사하는 사유민인 가키베(部曲), 그 아래에 누히(奴婢)가 있었으며, 일족이 가진 사유지는 다도코로(田莊)라 불렸다.

가바네에는 중앙과 지방의 호족에게 준 오미(臣)·무라지(連), 지방 호족에게 준 기미(君)·아타에(直)·미야쓰코(造), 한반도나 중국에서 온 도래인에게 준 오비토(首)·후히토(史)·이미키(忌寸) 등의 30여 개가 있었다. 이 가운데서도 오미·무라지의 가바네를 받은 호족이 야마토 조정의 중추를 형성하였으며, 오미·무라지 중에서도 유력 우지는 오오미[大臣, 마에쓰키미(大夫)]나 오무라지(大連)에 임명되어 정치의 중추를 담당하였다.

중하층의 중앙 호족의 도모노미야쓰코(伴造)는 도모(伴)·시나베(品部) 등의 기술자 집단을 이끌고 조정의 직무나 제사 등을 분담하였다. 초기의 야마토 정권에서는 그에 복속한 지역 중 중요한 것을 아가타(縣), 그 수장을 아가타누시(縣主)라 하였으나, 5세기 말부터 7세기 초에는 그를 대신하여 지방의 유력 호족을 구니노미야쓰코(國造)에 임명하여 재지에서의 통치권을 담당하게 하였다.

구니노미야쓰코는 그 통치권을 인정받는 대신에 야마토 조정에 대해 그의 아들을 도네리(舍人)나 유게이(靭負)로, 딸은 우네메(釆女)로 출사시켰고, 지방 특산물이나 말, 병사(國造軍) 등을 바치며 대왕가의 사유지인 미야케(屯倉)를 관리하였다. 대왕가는 미야케와, 그곳을 경작하는 농민인 다베(田部)를 소유하였다. 또한 지방 호족이 지배하는 농민의 일부를 나시로노타미(名代の民)나 고시로노타미(子代の民)라 하여 직속의 부민으로 삼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지(氏) · 가바네(姓) 제도 (일본사, 2009. 4. 20., 박석순, 손승철, 신동규, 서민교, 위키미디어 커먼즈)

 

 

 

두영은 어째서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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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두영은 자는 왕손이고, 효문제 두황후의 사촌 오빠의 아들이다. 위기후에 봉해졌으며 승상이 되었으나 후에 면직되었다. 두황후가 죽자 두영의 세가 약해져 조정에서 내쳐져 뜻을 펴지 못하였다. 태복 관부와 서로 교분을 맺어 너무 늦게 서로를 안 것에 대해 후회하였다. 효경제 왕황후의 배다른 동생인 전분이 승상이 되자 총애를 등에 업고 전횡하여 두영이 소유한 성 남쪽의 전답을 요구했는데, 두영이 주지 않았다. 

 

"노부가 내쫓겼으며, 승상께서는 귀한 분이지만 어찌 자신의 세만 믿고 남의 땅을 탐한단 말입니까?"

 

관부 또한 두영을 비호하면서 분노를 표했다. 그러자 전분은 그 둘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전분이 결혼하여 처를 얻자 왕태후가 열후와 종실에 조서를 내려 축하연을 열어 전분에게 방문토록 하였다. 본래 관부는 술주정이 심하여 이전에 술을 마시고 전분의 뜻을 거스른 적이 있었기에 자리에 가지 않고자 했으나 두영이 권하여 함께 갔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관부가 전분에게 술을 따랐으나 전분이 말했다.

 

"더는 마시기 힘드오."

 

이에 관부가 불손하게 답하여 전분이 분노하며 말했다.

 

"관부가 교만하니 이는 불경죄다!"

 

그리고 관부를 포박하여 장사에게 말했다.

 

"조서에 종실 사람들을 모시라고 하여 모셨다. 그런데 관부가 이 자리에서 욕을 했으니 이는 불경한 짓이다."

 

또한 관부가 향리에서 토호로 지내며 전횡하였기에 그를 죽여 시체를 저잣거리에 내다 버리는 기시형에 처하도록 상주했다. 두영이 집으로 돌아와 부인에게 말했다.

 

"관부 혼자만 죽게 내버려 두고 나 혼자 살 수는 없소."

 

이에 두영 또한 상주하여 관부가 술에 취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말하고, 그 일이 죽을죄까지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황제인 무제가 그들을 모두 불렀는데,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자 조정 신하들에게 누가 옳은지를 물었다. 대부분의 신하는 두영을 지지했다. 왕태후는 이 말을 듣고 노하여 끼니조차 거르며 말했다. 

 

"내가 아직 살아있는데 내 동생이 능멸을 당하는구나. 내가 죽으면 내 동생은 생선이나 고기 취급이나 당할 것이다."

 

전분은 조정에서 나와 다시 한번 두영을 비난했고 이 비난은 황제에게까지 들렸다. 황제 또한 전분이 옳지 않음을 알았으나 왕태후를 생각하여 두영을 기시형에 처했다. 두영이 욕하며 말했다.

 

"죽어서 지각이 없으면 모를까 만약 있다면 내가 혼자 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 달 후 전분은 병에 걸려 누가 떄리기라도 하듯이 온 몸에 통증이 나타났다. 전분은 소리지르며 사죄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황제가 무당을 불러 살펴보자, 두영과 관부가 전분을 매질하고 있었고, 마침내 전분은 죽었다. 황제 또한 꿈에서 두영을 보고 그에게 사죄하였다. - 원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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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실존 인물들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원혼지에 실려있는 이야기야.

 

두영이 효문제 두황후의 사촌오빠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훗날 승상 자리에서 면직되는 데에는 오히려 이 두황후의 불만 또한 이유였어. 우리가 효문제 두황후라고 하면 잘 모르는데, 한나라의 '두태후' 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한 무제 이전까지 한나라는 궁중에서 황로학을 신봉하고 지원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 이 '두태후'야. 두태후는 학자인 원고생을 불러 '노자'에 대해 평해달라고 했는데 원고생이 "노자ㅂㅁ"이라고 답하였고 이에 두태후는 그를 돼지우리로 보내 일하게 하는 형벌을 내리기도 해. 그 정도로 황로학을 신봉했던 두태후와 다르게 두영은 유교의 지지자였고 둘의 사이는 피가 이어지긴 했어도 그리 가깝지만은 않았지. 

 

두영이 실각하여 끈 떨어지자 두영을 찾던 문객들이 모두 전분을 찾아갔는데 이때 두영에게 의리를 지키며 남아줬던 사람이 바로 관부야. 그리고 실제로 전분의 전답을 달라는 요청을 거부했으며, 술자리 축하연 사건이 꼬리를 물어 두영과 관부가 나란히 처형당해.

 

이때 두영은 그냥 처형당한 게 아닌데, 왕태후가 끼니까지 거르자 무제는 어쩔 수 없이 어사를 시켜 두영의 죄를 밝히고자 해. 이대로면 관부도 자신도 죽게 생겼으니 두영은 선제인 경제에게 받았던 유조 '황제가 좆같으면 언제든 이걸 써서 상소할 수 있는 1회 찬스'를 사용해버려. 갑자기 선제의 유조를 들고오니 이에 무제가 놀라 이 유조가 진짜인지 확인했는데, 문제는 이 유조라는게 두영의 집에만 있지 황제의 상서함에는 없었다는거지. 그래서 위조죄까지 더해져 탄핵당하고 일가실각 당해버려.  

 

 

그리고 정말 얼마 안 가 전분도 따라 죽어. 웃긴건 이 전분은 과거 회남왕 유안(회남자의 저자, 이 사람도 황로학 신봉, 제후왕이라 왕위 계승권 있음. 엄밀히 따지면 황제인 무제에게는 귀찮은 존재)에게 황제가 되실 것이라며 아첨하고 뇌물을 받은 적이 있다는 거지. 이 회남왕 유안이 무제 때 모반 혐의로 인해 자살하자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무제는 "전분 이 분충이 병들어 죽기 전에 내 손으로 멸족시켰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해. 어차피 지 손으로 죽일(물론 이때까지는 몰랐지만) 전분 하나를 위해 두 노신을 죽이고, 지는 악몽에 시달린 한무제다운 결말이지.

 

 

 

 

식용 가능한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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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개원 28년 봄 2월에 회주 무덕현, 무척현, 수무현, 세 현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흙을 먹으며 말했다.

 

"이 곳 흙 맛은 다른 흙과 달리 참 맛나구나."

 

이런 일이 있기 전에 무덕현 기성촌의 여자들이 들판의 야채들과 식물을 캐면서 말했다.

 

"금년  쌂의 가격은 너무 올라 사람들이 못먹어 굶어야할 판국이니 살 방법이 없네...."

 

그러자 자색 옷의 백마 탄 틀딱이 10여 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말했다. 

 

"왜 먹을 것이 없다고 하소연만 하시오? 여기 도랑 옆 땅의 질이 아주 좋아 그 흙은 사람이 먹어도 좋소. 자자 한번 그대들도 츄라이츄라이"

 

여자들이 먹어보니 그 맛이 특이했다. 노인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리하여 여자들은 그 흙은 들고 돌아와 밀가루와 섞어 떡을 만들었는데, 떡의 향이 매우 좋았다. 이후부터 사람들이 그 흙을 먹기 시작했는데, 이 일로 인하여 도랑의 동서 5리, 남북 십여 걸음 거리의 모든 흙이 없어졌다. 이는 우숙이란 사람이 회주에 있다가 목격했다고 한다. - 기문

 

 

 

38899197_2.jpg

 

조선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세종실록 19권, 세종 5년 3월 13일 갑오 6번째기사 / 함길도 화주에 빛깔과 성질이 밀과 같은 흙으로 음식을 만들어 굶주림을 면하다

함길도의 화주(和州)에 흙이 있는데, 빛깔과 성질이 밀[蠟]과 같았다. 굶주린 백성들이 이 흙을 파서 떡과 죽을 만들어 먹으매,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는데, 그 맛은 메밀[蕎麥] 음식과 비슷하였다.

http://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

 

 

 

 

8개의 댓글

문단 나눠주니까 읽기 너무 편했다 ㅋㅋ 잘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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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야노데스웅챠

[존재하지 않는 개드립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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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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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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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이노오오오오오옴,,!! 쿨럭쿨럭,, 군자는,,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는 법이여,, 쿠ㄹ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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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
0
2019.09.14

잘봤다

0
@야동수당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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