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첫 노가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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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방학 알바로 물류센터 알바를 알아보다가 월 200이 겨우 넘는단 말 듣고 '이럴바엔 노가다 하는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날 바로 수원역에서 교육받고 오늘 첫 노가다 다녀왔습니다.

 

전날 동네 인력사무소에 전화하니까 군부대에서 하는 일이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 새벽에 인력사무소에 찾아갔습니다.

 

생양파가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파격적인 인테리어에 흠칫 했습니다만 애써 무시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돈이 급했거든요.

 

사장님이 같이 가라고 짝 지어준 분이 평소 수원역에서 자주 보던 노숙자를 닮아서 또 다시 흠칫 했지만 애써 웃으면서 인사했습니다. 돈이 진짜 급했거든요. 7시 20분쯤 다른 인력소에서 오신 두분이 차를 끌고 나타났고 바로 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군부대라고 해서 어딘가 했더니 국군수도병원이더라구요. 현역때도 가지 못했던, 상상속의 수도병원은 생각보다 근사하더라구요. 

 

수도병원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신병동을 지나 도착한 현장은 그야 말로 참혹했습니다. 생활관 6개 크기의 방은 부숴진 석고보드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습니다만, 작업자로 보이는 사람은 저를 포함한 4명이 전부였습니다. '설마 우리들 끼리만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그걸 오직 4명이서 치우기 시작합니다. 

 

저는 제 사수분(노숙자 닮으신)과 함께 2인 1조로 오함마로 석고보드를 부수고 눈삽으로 퍼서 마대자루를 체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8시 5분전이였습니다. 

 

이른 새벽 안개를 방불캐하는 석고 먼지를 들이마시며 발정난 망아지 마냥 뛰어다니는 중노동에 전역후 급격히 나약해진 제 몸뚱아리는 어릴적 여름 방학 과제로 키웠던 강난콩처럼 빠른속도로 시들어갔습니다. 그야말로 황소처럼 일하시는 사수분(노숙자 닮으신)이 아니였다면 저는 욕을 먹고 쫓겨 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선배님들에게 묻습니다. 원래 노가다는 휴식시간이 없나요? 오전 7시 55분부터 오후 5시까지 저는 점심먹고 5분을 제외하고는 단 1분도 쉬지 못했습니다. 

 

12시 5분이 되자 끔찍했던 오전 노동이 끝나고 저는 비로소 점심을 먹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설마 짬밥을 먹나 했지만 전역한지 1년이 갓 지난 저도 아니고 프로 노가다꾼들이 그런 개밥을 먹을리가 없지요.

 

국군수도병원 앞에는 연예인 사인이 즐비한 유명한 고깃집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육회비빔밥을 먹었습니다만, 맛은 더럽게 없었습니다. 프로 노가다꾼 입맛도 별건 아니였나 봅니다. 이럴꺼면 px를 갈껄 후회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복귀하니 12시 55분이였습니다. 반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담배를 피고 올테니 바로 시작할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잠시후 1시부터 오후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오후 5시가 될때 까지 저는 1분도 쉰적이 없습니다. 원래 다른 현장도 이런식인가요?

 

오후 작업중 저는 뜻밖의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반장님 인줄 알았던 그 분이 저의 고용주 였던 겁니다. 다른 작업자들도 알고보니 그분과 호형호제를 하는 같은 회사 소속이였던 것이였습니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풀렸습니다. 오전 오후 포함해 휴식 시간을 1분도 주지 않은것, 아무도 우리 조금만 쉬자고 말하지 않은것, 저를 제외한 모두가 친근해 보였던 것 모두 그런 더러운 흑막이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저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제 사수분을 노숙자에서 황소로 평가를 상향했지만 이제 그는 제게 더러운 배신자일 뿐이였습니다. 아무도 말을 안해주다니! 이 모든 사실을 군무원에게 들은 제 심정을 여러분이 아십니까?

 

이 이후의 일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너무 괴로운 기억이라서 제 뇌가 잊어버린것이겠지요.

 

길었던 노가다를 끝마치고 제게 남은것은 11만6천원과 호흡할때마다 석고 냄새 풀풀 나는 호흡기였습니다.

 

선배님들은 이런 고생을 매일같이 하고 계시는 군요.

존경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제 널브러진 양파와 더러운 석고 안개를 떠나 따뜻한 평택의 사다리 잡이가 되고자 떠나려 합니다.

 

어디선가 구슬픈 석고보드 냄새가 난다면 부디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좋은 밤 되십시오. 여러분.

52개의 댓글

2020.07.11

목공이나 전기 같은건 .. 나중에 살면서 도움 될텐디 하필 철거 일을 해부렸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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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미없는데 당첨되부럿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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