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아이와 태풍

https://youtu.be/oj1BBQy5B58

 

[1]

 

바닥이 시야를 지탱했다

눈은 어딘가를 봐야하기에

 

때때로 동전이나 고양이 따위를 발견할때면, 아이는 바닥을 보는 습관을 칭찬할 수 있었다

그의 목은 굽는법을 잘 알았다

 

바닥엔 그림자가 드리운다

아이는 그림자가 자신의 분신이라기 보단 그 어떤 다른것으로 느껴져서 좋았다

그도 그의 몸에서 난 무언가를 좋아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는 주차된 차 빈틈으로 걷는다

그곳에선 그림자조차 차에 뭉개져 숨는다

아이도 숨는다

그럴때에는 공기가 편안하다

단 하나의 별빛도 그곳을 관음하지 않는다

뭉개진 그림자속에서 아이는 걷고싶지 않았다

그저 부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등교길이었다

아무리 왜곡된 그림자도 테두리가 있고 걸으면 벗어난다

 

등교한 아이는 수업시간에 초점을 흐렸다

눈은 어딘가를 봐야 했기에

입은 무언가를 말해야 했지만 아이는 손이 더 편했다.

그는 종이에 온전한 곡선도 직선도 아닌 삐툴게 그린 선들을 난잡하게 그려대곤 했다

때때로 그것들은 자기도 모르게 형체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는 자기가 낳은것들 중에서도 그것들을 가장 싫어했다.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여기저기 제 자리를 찾으면

시야는 창문을 향한다

 

떨림이 온다

태풍이다

 

창문을 깨고 돌팔매가 날아온다

 

아이는 맞고 쓰러진다

그러나 웃는다

그의 입은 무언가를 즐겨야 했기에

그는 돌팔매를 이해한다

그의 가슴은 무언가를 사랑해야 했기에

 

그토록 용감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도 하교가 시작되면 귀가를 망설였다

그러나 그의 다리는 걸어야 했다

아이는 차들의 터널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걸으며 하는 공상들은 때때로 시간을 잊었다

 

집에오면

 

매일 태풍, 태풍이 온다

아이는 언제나 바람에 휩쓸렸다

휩쓸리는 법을 알았다

산들바람에도 날라가곤 하는 아이였다

태풍은 아이를 넘어뜨리고, 저항시키고, 젖게만들며, 휘말려 돌려버렸다

아이는 그중에서도 휘말려 돌아가는게 가장 싫었다

존재조차 세탁당하는 것 같았기에

 

아이는 태풍의 중심부로 천천히 끌려들어가며

멈춤을 동경했다

 

아직 집에서조차 자신의 공간을 가져본적이 없었기에, 그것을 한번도 느껴본적이 없었으나

막연히 적막을 동경했던 것이다

 

그럴때에 태풍은 시계였다

도는것은 언제나 시계니까

아이는 시계침의 한 구석에서 초침을 발판삼아 선 하나를 정했다.

그리고 그곳을 나, 라고 정했다

 

째깍, 째깍, 째깍

 

초침은 사정없이 움직인다

그곳에 있으면 안됐다

자기가 아니었다

그럴수록 초침은 빠르게 뛴다

방황하는 초침이 한바퀴를 다 돌때까지

아이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중심을 갈며 한바퀴, 그리고 다시 한바퀴

점점 빨라지는

틀림없는, 성장기였다

 

아이는 보았다

태풍에 빨려들어가는 자신을

저 너머 빨려들어가고 있는 고양이를

아이는 보았다

세탁되어 흐릿해져 가는 자신을

저 너머의 돌멩이를

 

때때로 초침은 고양이와 돌멩이를 만났다

아이가 저항하면 그곳에선 잠시 머물수도 있었다

그러나 힘이 딸리면 곧바로 헤어졌다

저항하는 아이와 다르게 그것들은 중심부로 빠르게 사라져갔다

결국 다시 아이만 남았다

그는 오히려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태풍의 안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는 알길이 없었다

그러나 겉에서 보면, 빨려들어가는건 마치 사라지는것 처럼 보였다

아이는 막연히 공포를 상상했다

그러나 곧 무뎌졌다

아이는 저주스럽게, 그리고 신음처럼 읆조렸다

 

나는 삶이 두렵다

 

두려움마저 두려웠던 아이는 한번도 아래를 쳐다본적이 없었다

삶이 더 두려워진 아이는 해야할 일을 했다

 

까마득한 바닥에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테두리도 보이지 않는다

대지를 떠난 다리는 걸을 수 없다

벗어날 수 없다

 

아이는 중심으로 향했다

 

저항이 필요하지 않았다

 

태풍은 아이의 껍데기를 갉아냈다

아이는 버렸다

돌멩이를 갉아냈다

아이는 버렸다

고양이를 갉아낼때, 아이는 잠시 저항했다

그러나 결국 버렸다

 

그는 중심에 도착했다

 

 

 

 

 

 

 

 

 

적막

 

아이는 부유하고 있었다

 

이제 아이가 아니라 청년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그러나 불러줄 이가 없었다

 

중심엔 공기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숨을 쉬는법은 까먹은지 오래였다

 

아이는 시선을 둘러봤다

모든것들이 돌고 있었다

그중에 무언가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비로소

생에 처음으로

쫓기지 않고 쉴 수 있었다

 

그의 눈은 보고 싶은걸 볼 수 있었고

그의 손은 쓰고 싶은걸 쓸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눈을 감았다

어둠속에선

 

무언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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