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나의 폐급 이야기 -9-

-9- 자대의 첫 인상

 

(이제부터 나오는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자대 생활이 주 내용이기에 편의상 이름을 사용하지만 모두 가명임을 말씀드립니다.)

 

이게 내 자대라니...’

 

자대는 말 그대로의 막사(幕舍)였다. 삼국시대에 병사들이 쓰던 천막을 벽돌로 길게 지어 뚜껑을 덮은 채 중간에 화장실과 샤워실을 대충 구겨넣은 느낌이었다. 80년대에 지어놓고 단 한 번도 고치지 않은 것 같았다. 훈련소에서 날 부대까지 인솔해 간 부소대장은 그 막사를 구막사라고 불렀다. 곧 다른 건물로 우리 중대 전체가 옮겨갈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편할 때 잘 왔다. 난 한소철 중사, N소대 부소대장이다. 힘든 거 있거나 하면 나한테 말하면 돼.” 라고 말했다. 아직 소대가 결정된 건 아니었지만 현재 자리가 비는 곳은 자신의 소대뿐이니 나중에 소대를 바꾸더라도 일단은 자기 밑에 있게 될 거라고 했다.

 

한소철 중사는 군인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부모님을 따라 농사꾼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무작정 군대에 들어왔다고 했다. 전라도에서 강원도로 옮겨왔을 뿐인데 삶이 크게 바뀌었다고 했다. 자신이 살던 곳은 정말 오지였다고 했다. 맨날 TV로 도시를 보고 그 생활을 동경했지만 고향을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군대였다. 어차피 한 번 갈 거, 군대에 그냥 계속 있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땐 장기 복무가 확정된 상태였다. 결혼을 하고 가족도 꾸렸기에, 군생활에 충실 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과제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까지 잘 해내고 있었다. 그는 군이 바꿔놓은 삶에 만족하고 있으며 그 직업적 의무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참 군인이었다.

 

한 가지 거북한 점이 있다면 유흥을 자랑처럼 여기는 성관념이었다. 음담패설도 가볍게, 유쾌하게 할 수 있다면 마음 속 거부감이 덜 하지만 한 중사는 그런 재주가 없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음담패설은 유쾌하지도 웃기지도 않았다. 남자 중·고등학교에서나 들을 법한 허세 섞인 경험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번에 몇 명하고 해봤는지, 어느 나이트가 좋은지, 어떤 여성들이 개방적인지(왜곡에 가까운 순화) 따지는 내용이라 사회에서 들었다면 눈살을 찌푸리며 상종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내용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좋았다. 지금은 돌아가진 외삼촌의 젊은 시절을 빼다 박은 외모 때문이었다. 듬직한 체격과 시원시원한 성격까지 외삼촌과 똑같았다. 자대 건물에 처음 들어갈 때, 그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마치 어린 시절 집 앞에서 맞이해주던 외삼촌같은 느낌이었다. 수많은 작업으로 다져진 투박한 손까지도 외삼촌과 똑같았다.

 

생활관 들어가니 동기가 나보다 먼저 와있었다. 통성명은 필요 없었다. 군복에는 박진해라는 이름이 박혀있었다. 까만 피부에 거의 밀다시피 한 머리를 한 그는 삶의 쓴 맛을 본 병아리 같은 모습이었다. 그도 나와 비슷하게 아무 말 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이었다. 부소대장은 정식 면담하기 전까지 잠시 동기끼리 얘기하고 있으라며 우리를 생활관에 두고 나갔다. 저 멀리 문 뒤로 선임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밖에선 일과 중에 뭐하는 짓이냐며 괴롭히지 말라고 고함치는 부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임들의 시선이 사라지고 둘만 남게되자 짧게 나마 서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친구는 보충대에서 나랑 같은 생활관을 썼던 그 친구였다. 진해 역시 보충대에서의 무의미한 대화에 끼기 싫어 그냥 바로 자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작은 공감대를 나눈 뒤 대충 소개를 하고 나니 할 말은 금새 떨어졌다. 뭐하다 왔냐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 할 때, 행보관과 면담을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우리는 인사과 선임을 따라 행정반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방의 대부분의 부대가 그렇듯, 우리 부대 행보관 역시 나이 지긋한 원사였다. 행보관이었던 김판석 원사는 내가 제대할 때쯤 은퇴할 사람라고 했다. 끝을 앞둔 사람 답게 문제 생기는 걸 원치 않았다. 또한 병사 하나하나에 관심을 둘 정도로 열정이 남아있지도 않았다. 우리의 면담도 매우 형식적인 의미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대일 면담을 하며 소대를 알려준 후 개별면담을 하게 됐을 때 나는 내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면담은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행보관은 그때 듣기 싫은 티를 팍팍 냈던 것 같다. 나는 얘기를 털어놓으면 정말 뭔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불필요한 이목을 끌 뿐이었다. 훈련소때처럼 나는 다시한번 관리의 대상이 됐다. 아마 그 면담은 내가 일병이 된 후에도 관심병사 목록에 계속 남아있는 계기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홀로 뿌듯한 면담 이후, 나는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군장을 관물대에 정리해놓고 진해와 아무 말없이 그저 앉아있었다. 고요했다. 적응은 안 됐지만 그 고요함이 좋았다. 그래서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짧은 평온은 일과가 끝나고 신병을 보고자 모여든 선임들에 의해 깨지게 됐다.

 

선임들은 하나같이 모 게임에 나오는 야만용사들 같았다. 내 캐릭터가 모니터를 부수고 튀어나오면 저 사람들일 것 같았다. 포를 다루는 부대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저렇게 강해보이는 사람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내 짧은 삶에서 별로 만날 일이 없었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며, 중졸도 있었다. ‘육군은 대한민국 평균이야라고 말하던 친구의 말이 스쳐지나갔다. 투박한 말투를 듣자마자 거부감이 올라왔다. 군대에서만 볼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들과 17개월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았다. 내가 폐급이 된 이유다. 나는 그때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피하고, 떠나고 싶었다. 중대장식으로 말하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내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었다면, 어쨌든 그들과 함께 해야 하는 군생활을 조금만 더 일찍 현실로 받아들였다면 그렇게까지 자대 생활이 힘들진 않았을 거다. 한마디로 시작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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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유가 좀 생겨서 몰아서 썼습니다

본격적으로 인성 밑바닥 나오기 시작합니다

10개의 댓글

2019.11.29

나도 주변에 대학 안나온 사람 못봤는데

군대가니까 절반은 대학 안갔고 10%는 고등학교도 안갔더라

리얼 인생에 컬쳐쇼크였다.

온갖 인간군상을 보게 해주는게 군대의 유일한 장점인거 같다.

 

0
2019.11.29
@도희

난 공군이였는데 대학안간사람은 1명

나머지 다 명문대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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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30
@도선생

공군이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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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

 수능등급이 그 사람의 수준이라는것에 동의는 안하지만

그사람들까지 포함하면 5등급은 3등급까지 떡상함 레알임

국평5라고 씨부리는 새끼들 수준이 딱 그정도 ㅋㅋ현실을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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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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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30

지금은 고쳐졌지만 군대에 있을 때 말더듬 때문에 진짜 힘들었썼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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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나는 어디에 집중하면 누가 부르는거 잘 못 듣는데 자대에서 존나게 털리면서 고쳐지더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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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1
@여자친구생기면탈퇴할거다

ㅈ 같은 선임이 부르면 일부로 못 들은척 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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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아 그건 ㅇㅈ 들려도 뮷들은거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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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2
@이제 그만

나는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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