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의외의 금기-6.25전쟁(4)

정의로운 전쟁

 

2000년대 항미원조전쟁 공적 서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의'라는 단어의 빈도수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인민일보"사설은 물론 중국 국가 지도자의 기념 담화에서도 '정의'가 눈에 띄게 빈번해졌다. 특히 2010년 시진핑 중앙군위 부주석이 60주년 기념 담화에서 '항미원조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명제를 제기한 후, 이 명제는 2020년 70주년 기념 사설과 담화, 그 당시 개봉된 항미원조 관련 영화(장진호), 드라마(38선을 건너)에서 강조되었다.

 

사실 정의라는 단어가 그 정의가 어떤 이념이나 강령으로 제시되기엔 두루뭉술한 개념이다. 너무 자주 사용되면 그 단어가 지시하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의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선 문맥과 다른 단어와의 연결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중국이 항미원조 서사에서 내세우는 정의란 단어는 '애국주의'와 '혁명영웅주의'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50년 전 중화의 우수한 자녀들로 구성된 중국인민지원군은 평화의 보위, 침략에 대한 저항이라는 정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용감하고 씩씩하게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 항미원조전쟁의 승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인민의 위대한 승리이자 정의를 수호하고 강권에 저항하는 영웅적 장거壯擧이며 애국주의와 혁명영웅주의의 장엄한 서사시입니다."

6.25전쟁 참전 50주년 기념 장쩌민 주석의 기념 담화

 

2010년 시진핑 부주석의 담화는 마오쩌둥 시대의 항미원조전쟁의 서사가 정의를 주축으로 재구성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담화는 항미원조 전쟁의 승리의 원인을 "항미원조전쟁의 정의성"에서 찾고 있다.

 

 

"위대한 항미원조전쟁은 평화를 보위하고 침략에 반대하는 정의로운 전쟁입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역량의 원천과 승리를 획득했던 근본원인은 항미원조전쟁의 정의성입니다."

2010년 6.25전쟁 참전 60주년 기념 시진핑 부주석의 담화

 

 

2000년에서 2020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서 언급되는 정의는 결국엔 "애국주의와 혁명영웅주의"를 포장하기 위한 겉포장에 불과했다. 정의라는 모호한 단어는 중국 공산당에서 과잉 수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는 아마 "애국주의와 혁명영웅주의"라는 본심을 흐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인민일보의 사설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항미원조전쟁에 대한 정의란 단어는 서구의 "민주"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미국과 서방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의 특수성이 들어간 "인민전쟁"이라는 단어보다는 불명확한 "정의"가 대응하기 적절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0월 항미원조 기념식에서 "머리가 깨어져 피 흘릴 것"이라는 문구도 정의의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1023/103598412/1

해당 기사

 

 

"애국주의와 혁명영웅주의"를 내면화한 '항미원조전쟁의 정의성'은 궁극적으로 "항미원조정신"이란 개념을 완성했다. 이 단어는 2010년 시진핑 부주석의 60주년 담화에서 였다.

 

 

"항미원조전쟁은 감격적인 개선가를 연주했을 뿐 아니라 위대한 항미원조정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국과 인민의 이익을 다른 모든 것보다 높이 두고 조국과 민족의 존엄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분투하는 애국주의 정신이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하고 강인한 혁명영웅주의 정신입니다. 그것은 간난과 곤궁을 피하지 않고 시종 사기를 드높이는 혁명적 낙관주의 정신이자, 조국과 인민이 부여한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분투하는 국제주의 정신입니다.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은 중국 공산당과 인민군대의 숭고한 풍격의 생생한 반영이자 중화민족 전통의 미덕과 민족품격의 집중적 현현이며, 애국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민족정신의 구체적 체현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중국 인민의 영원토록 고귀한 자산입니다."

2010년 시진핑 부주석의 담화 중에서

 

 

위의 항미원조정신은 '혁명적 낙관주의'나 '국제주의' 같은 혁명 시대의 이념까지 녹여낸 '애국주의'와 '중화민족주의'로 귀결되고 있다. 10년 후 2020년 담화에도 거의 원용되었다.

 

2000년대 항미원조 서사의 재구축은 중국 공산당의 이념적 빈곤을 보여주고 있다. '인민전쟁'이나 '국제주의'라는 70년 전 전쟁을 이끌던 혁명 서사는 더 이상 현대 중국에 들어올 수 없는 이념이 되었다. 그 빈자리를 채운게 애국주의와 중화민족주의라는 70년 전 보다 앙상하고 자국우선주의적인 구호 밖에 없었다. 그런 앙상한 이념을 채우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정의"라는 기호였다.

 

현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항미원조전쟁의 정의성"이나 "항미원조정신"이라는 자기반복적인 담론으로 6.25 전쟁이 재구축되는 2000년대 이후의 중국 정치의 현상은 애국주의나 중화주의가 아니고선 중국의 정치성을 채울 수 없는 중국 공산당과 중국 사회주의의 정신적 곤경을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출처: 중국인들의 한국전쟁-항미원조抗美援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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