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자작소설]자연

커다란 생명이 쓰러졌다. 자연은 아마 인간들에게 굴복했다.
표면이 바싹 마른 덩그러니 쓰러져있는 나무를 툭툭 차면서 나는 생각했다.
커다란 굉음을 내며 거대한 크레인은 나무를 들어올렸고 한쪽에서는 거대한 나무를 거대한 원형 톱이 톱밥을 흩뿌리며 잘라냈다.
3등분으로 나누어진 나무를 크레인은 육중한 트럭뒤의 적재함에 싣었고 이 작업을 여러번 거치고 나서 트럭은 거대한 나무의 잔해를 짓밟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트럭이 지나간 풍경은 황폐했고 나뭇가지와 잎사귀 거대한 나무의 부속품들은 전쟁이 지나간 장소인듯 자연의 패배를 말해주는 듯 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전의를 상실한 거대한 나무들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지나다녔다. 붉은빛이 나는 가루를 흩뿌리며 하늘을 활공했다. 그 가루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지만 가서 만져보고 싶지는 않았다.
해지기전 노을의 모습이 지구가 멸망하는 날처럼 보이듯, 불길한 가루들은 불안감을 불러왔다.
시간이 지나고 진짜 노을이 지고나서 작업현장에는 거대한 기계들의 굉음을 뚫는 종소리가 울렸고 서로 맞춘듯 기계들은 칼같이 한번에 작동을 멈췄다.

 

***

 

내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거대한 나무를 보고 그 위압감에 몸을 움츠렸었다. 족히 100미터는 넘어보이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으니 저런것들을 내가 베어낼 수 있을까싶었지만 난 도저히 저것들을 베어낼 수 없다고, 절대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작업 현장에 도착해서 일을 하러 온 작업자 모두가 머리가 큰 작업대장의 말을 듣고 있을 때 난 눈을 흘깃거리며 거대한 나무를 바라봤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더 웅장했다. 논밭에 유채꽃이 가득하여 이쁘던 고향 마을의 어귀에 있는 거목보다 훨씬 두껍고 높아 보였다.
다른 작업자들이 백색 연기를 뿜어 내고 있을 때, 난 거대한 나무에 가까이가서 만져보았다. 마치 나무가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대한 나무가 살아왔을 수십수백년의 세월이 내게 느껴졌다. 그 순간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엄숙함만이 느껴져 감히 우러러볼 수 없는 신을 바라보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경외심은 거대한 기계 앞에서 부셔졌다. 한 없이 강할거라고만 생각했던 거대한 나무는 인간의 기술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작업이 끝나고 나서 거대한 나무의 그루터기를 바라봤다. 수많은 갈색으로 그어진 원을 보고 나는 숫자를 세보지 않았다. 
거대한 나무가 살아왔던 긴 세월은 거대한 기계앞에서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했다.

난 최면에 걸린듯 닭이 울면 일어났고 해가 뜰때면 나무를 쓰러뜨려나갔다 종이 울리면 일을 멈추고 식사를 했고 나무를 바라보며 휴식을 가지다가 어영부영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일을 끝내는 마지막 종이 울리면 최면이 풀렸고 시덥잖은 책을 보거나 산책을 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일하는 작업자들은 무언가 깊은 사연이 있는 것같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하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조그마한 구멍가게에 가기 위해서 30분은 차를 타고 나가야하는 깊은 산골에 오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남 모를 기구한 사연을 겪었던것이 아니라면 이곳에 들어올 일은 없다.
때문에 숙소에서는 밝은 목소리로 담소를 나누거나 음담패설을 하는 작업자들이 많았지만 그 세계의 불문율처럼 각자의 과거에 대해서는 절대 묻지 않았다.

어김없이 다시 작업을 하기 전에 잠깐의 남는 시간에 나무의 그늘아래 앉아있다가 떨어진지 얼마되지 않은 나뭇잎위에 자그마한 생명체를 마주했다. 노르스름한 색깔에 꿈틀거리는 모습에 애벌레인가 싶었지만 나뭇잎을 들어 자세히보니 등껍질이 없는 민달팽이였다. 더듬이를 이리저리로 흔들며 움직이는것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꽤나 맘에 들어서 주위에 버려진 담배곽에 나뭇잎은 잘라넣고 민달팽이를 넣어 주머니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니가 이곳에서 살아가기엔 세상은 너무 가혹해. 하얀 몸뚱아리는 강렬한 햇빛에 말라버리고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을 먹고 살아가기는 힘들거야."


나는 주머니속에 민달팽이를 넣어둔 채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되면 민달팽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사람이 그 모습을 본다면 참 기이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숙소로 가려할 때 민달팽이를 보기 위해 주머니에서 담배곽을 꺼냈다. 담배곽속에서 민달팽이는 미동조차하지 않았다. 몇번을 건드렸지만 조금밖에 움직이지 않았고 전과 다르게 마른 표면이 민달팽이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보여줬다. 


"미안하다. 내 관점으로만 너를 바라봤구나 너는 오래사는 것보다는 태어난 곳에서 살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좋은 거구나..."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민달팽이는 더듬이를 3미리정도 움직였다.
정성을 들여 한 나무의 그루터기위에 신선한 나뭇잎을 올리고 민달팽이를 그 위에 올려주었다.


"고마웠어."

 

나는 민달팽이와 작은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식사를 하고 방안에 들어가니 갑자기 우울함이 몰려와서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민달팽이와 함께 이야기하던 순간이 떠오르며 자신이 일하면서 과격하게 움직인 것이 아닌지 잘못을 뉘우치다가 민달팽이가 너무 보고싶어서 무작정 작업장으로 뛰쳐나갔다. 미친게 아니고서야 민달팽이를 보겠다고 걸어서 두시간은 걸리는 먼거리를 걸어나가는 것이 말이 안되겠지만 냉정하게 판단을 할 겨를 없이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걸어갔다. 그는 이렇게 오래걸을 거였으면 운동화를 신고올걸 후회를 하면서 점점 어둑해지는 밤거리를 걸어갔다.
한 시간 정도걸었을까 거리에 가로등도 없어서 도저히 눈앞이 보이지가 않았다. 작업장에 도착하더라도 민달팽이는 절대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망연자실한 채로 말끔하게 잘라진 그루터기 위에 앉았다. 그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며 눈앞을 가렸다. 그렇게 몇분동안 참을 수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모든것에 미안했다. 내가 자른 수천개의 나무들과 그로인해 집을 잃은 수많은 동물들 이기적인 인간이 파괴한 자연. 그는 자신이 앉은 그루터기를 만지며 사죄했다.
그때 나는 자연의 목소리를 들었다. 자연은 내가 저질렀다고 했던 잘못들에 아무런 질책을 하지 않았다. 자연의 파괴, 그 순환, 멸망이 기다리는 끝에서도 어느 누구를 탓하지 않았고 모든것을 받아들였다. 그렇다 숲이 황폐하다는 것은 인간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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