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삼국지] 이릉대전은 굳이 왜 했을까?

얼마전 형주쟁탈전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후에 이릉대전은 왜 안하냐는 외부의 압..이 아니고 요청이 있어서 그럼 까짓거 한번 해보죠!라는 기분으로 이릉대전 이야기를 짧게 해볼까 합니다.

 

이릉대전을 원래 계획하지 않았던 이유가 사실 별로 할이야기가 없어서입니다. 이릉대전은 관도대전, 적벽대전과 더불어 삼국지 3대대전으로 불리지만 앞의 두 대전에 비해서는 의외로 이야기거리가 그다지 없는편이에요. 얼마나 없었으면 나관중도 이릉대전 전에 사망한 법정,황충,감녕같은 장수들을 예토전생 시켜서 참여시켰습니다. 막바지에 이르러선 인기장수인 조운도 급하게 투입시켰고 그과정에서 오나라 차세대 에이스인 주연은 20년기록삭제형을 받아 희생당했습니다. 그리고 앞선 두 대전은 강vs약이었죠. 강력한 원소vs나약한 조조. 최강 조조vs연약한 유손연합. 누가봐도 강이 이길거라 예상하는 전쟁에서 약이 온갖 수단을 총동원하여 역전승을 거둬내는게 관도대전과 적벽대전인데 반해, 이릉대전은 처음부터 강대강이었습니다. 물론 유비군이 병력수는 좀더 많긴 했지만 육손군도 결코 적지 않았고 병사들의 사기는 양쪽 다 강했습니다. 서로 스쳐도 한방인 그런느낌? 둘다 고수라 먼저 한방 치는쪽이 바로 겜 끝날때까지 무한콤보를 넣을수 있는 대결이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끝났죠? 초반에 유비군이 밀어내는 느낌을 주긴하는데 이거 실제로는 육손군이 그냥 전장바꿀려고 후퇴한겁니다. 

 

제목 없음.png

 

이릉의 현재 모습인데 이창시가 이릉입니다. 보시다시피 이릉에 도착하기전까지는 그냥 강이에요. 길밖에 없어요. 쭉 길만 이어져있습니다. 이 좁을 길에서 그냥 정면승부 붙으면 당연히 숫자많은 유비군이 이기겠죠. 게다가 산악지형은 어찌됐든 유비군이 더 유리한 지형입니다. 경험이 많으니까요. 유비가 유리한 전장에서 육손이 굳이 싸워줄 이유가 없겠죠? 그래서 평야지대 나오는 이릉까지 슬금슬금 빠진겁니다 그냥. 물론 유비도 바보는 아니죠. 자기가 유리한 산악지형에서 싸울려고 복병 숨겨놓고 침공을 유도합니다. 이에 오나라 몇몇 장수들은 저거 내가 딱 처부술수 있으니 싸웁시다! 하는데 육손이 전부 간파하고 마 정신차리라 해서 말리고 유비도 텃다텃어 하면서 이때부터 대치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러다 기 끌어모은 육손군이 필살기 쓴거 유비군이 못막고 그냥 그대로 게임 끝나는게 바로 이릉대전이죠. 손에 땀을 쥐게하는 위기상황이나 반전역전극이나 그런것도 없어요. 유비군이 진지를 길게 늘어놔서 화공의 위험을 눈치챈 제갈량이 기겁했다는거 다 소설입니다. 보시다시피 그냥 길이 그래서 진지가 길게 늘어질수밖에 없어요 원래부터. 그래서 뭐랄까 개인적으로 이릉대전은 드라마틱함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형주쟁탈전은 관우가 급발진했다는 음해. 유비가 형주를 안돌려줬다는 오해. 그리고 손제리놈 얄밉지만 얘도 나름 주인공인데 너무 소인배취급 당하는게 불쌍해보이기도 하고 해서 제가 그부분에 좀 덜알려진 이야기를 붙여서 진행했던건데 이릉대전은 그런것도 없습니다. 그냥 널리 알려진거대로 유비가 빡쳐서 일으켰다 말아먹은거에요. 문자 그대로 팩트입니다. 아이고 벌써 이야기 끝나버렸네;; 아쉬운대로 과연 유비가 뭐 얼마나 빡쳤던건지에 대해 좀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관우를 잡고 형주를 차지한 손권은 이어서 자신의 휘하장수인 주태를 '한중'태수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과거 유비가 익주를 차지한후 원래 익주목이었던 유장은 형주 무릉군으로 가서 말년을 살고 있었는데 손권은 이 유장을 익주목으로 삼습니다. 형주로 끝난게 아니라 추가적인 도발이 있었던거죠. ㄴㅁ위키등을 보니 '이는 그저 허봉일뿐이다. 촉한도 오일을 형주자사로 두지 않았느냐'하며 도발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더군요. 허봉은 부하장수한테 포상을 줘야하는데 관직TO가 없어서 마땅히 줄게 없을때 자기땅이 아닌 다른지역의 관직이나 봉작을 주고 그에 준하는 급여를 따로 수당으로 챙겨주겠다 하는 그런 방식입니다. 실제로도 많이 쓰였어요. 그러니 그저 허봉일뿐 도발은 아니다라는 내용이던데... 한중을요? 다른 지역도 아니고 익주 한중군인데요? 유비가 무슨왕인지 잊은건 아닐텐데말이죠. 유비가 한중을 자기 영토로 선포하고 한중왕에 오른 그해에 관우를 통수쳐죽이고 형주를 빼앗아간 바로 그 직후 한중에 태수를 임명한다는건 그 한중왕을 인정 못하겠단 소린데 이게 도발이 아닐리가요. 또한 유장은 전리품입니다. 형주쟁탈전에 참여해서 전투를 치룬 손권의 휘하장수가 아니라 걍 무릉에서 씹 인생... 하면서 세월낭비하던 유장을 손권이 포상해줄 일이 뭐있다고 허봉으로 챙겨주겠습니까? 당연히 찔러보는거죠. 지금 익주목(유비)는 인정못하겠으니 유장 아직 널 지지하는 호족도 있지? 가서 뭐라도 좀 해봐라~ 하는 의미로요. 사실 형주를 별 피해도 없이 싹 흡수한 손권군 입장에서 기세를 타 익주까지 노려보는게 딱히 이상한일도 아니죠.

 

그런데 유장입장에서는 진짜 울화통이 터지지 않았을까요? 그게 원인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후 유장은 바로 사망해버립니다. 그러자 그의 아들 유천을 다시 익주자사에 임명해서 익주와 교주 경계로 보내 살게 합니다. 사실 유비가 익주를 완전하게 장악하진 못했습니다. 소위 남만이라 불리던 지역 근처로 이 유천을 보낸거에요. 그리고 그 바로 밑 교주 교지군태수인 사섭에게 하청을 줘서 분란을 유도합니다. 이에 특히 유비에게 적대하던 옹개라는 자가 반란을 일으켜서 익주(익주 익주군)태수 정앙을 잡아 죽이고 그 후임으로 온 장예를 납치해서 손권에게 보내버립니다. 나중에 제갈량이 찾아오죠. 여튼 그래서 이릉대전 당시 조운을 안데려가고 이 남쪽경계인 강주현의 수비를 맡기는겁니다. 단순히 조운이 이릉대전에 반대했다고 좌천시키고 그런게 아니에요. 위험지역이니까 베테랑 장수한테 맡긴겁니다. 이 옹개는 결국 나중에 유비가 사망하자 남만의 왕을 자처하며 본격적으로 반란을 주도했고 보다못한 제갈량이 가서 만두로 만들어버리는거죠. 이런식으로 손권은 형주를 차지한 후에도 익주를 노리며 간을 봤습니다. 물론 제대로 각잡고 노린건 아니고 적당히 찔러보다 안되면 꼬리자르려고 했을겁니다. 그래서 하청주는거 아니겠습니까? 더러운 갑질같으니

 

유비는 칭왕하자마자 영토한쪽 날려먹은것도 모자라 계속 쪽당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에는 유비편만 적혀있으니 그렇지 실제 다른 호족들은 '아 우리 새주인 괜히 갈아탔나? 유장보다 나을게 없는데?' 이런식으로 불손한 태도를 보였을지도 모르죠. 특히 칭제를 권하는 상소문에 이름올린 신하들이 대부분 익주 외부사람이었던것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게다가 유비에 대한 평가는 위나라에서도 박했습니다. 위황제 조비가 신하들에게 유비가 과연 손권을 공격할지에 대해 논하는데 대부분의 신하들이 '유비 금마 관우원툴이었어요. 근데 이제 관우 없잖아요. 암것도 못함 ㅋㅋ'이라고 무시했고 오직 같은 유씨인 유엽만이 유비를 만만하게 보면 안되며 유비와 관우는 군신관계 그 이상이라 분명히 보복할거라 했죠. 물론 이 이야기가 유비귀에까지 들어갔을런지는 알수없지만요. 뭐 이런식이다보니 유비는 위엄이 안서죠. 황제까지 됐는데 위엄이 부족한게 느껴지죠. 그러니 유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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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태가 되는게 이상한것도 아니겠죠??

 

지도자들이 이럴때 위엄을 세우기위해 택하는 수단은 보통 3가지입니다.

첫째, 사면령. 황제만이 할수있는 사면령으로 권력자랑하는거죠. 유선이 40년제위기간동안 13번, 조예가 13년간 6번하죠.

둘째는 대규모 토목공사입니다. 조조가 적벽대전에 패해 돌아온뒤 동작대를 건설하죠. 나 아직 건재하니까 허튼수작들 말아라 이런겁니다. 

마지막은 예상되시겠지만 전쟁입니다. 네 가장 하이리스크지만 당연히 성공시 가장 하이리턴이죠. 사실 이런 이유로 일어난 전쟁이 딱히 이릉대전뿐인게 아닙니다. 조비가 손권한테 세번이나 꼬라박아서 손권을 키워주는데 사실 조비의 전쟁 이유도 이와 비슷한거였습니다. 손권한테 물 제대로 먹었거든요. 그저 실패해서 리스크만 기록될뿐. 그래서 신하들의 반대도 심하지만 자존심에 스크래치 난걸 보듬기위해 전쟁을 해버리고 마는거죠.

 

흔하게 알려져있는 관우의 복수나 형주수복후 융중대의 복구 이런건 다 부가적인거에요. 특히 융중대의 복구는 계획에 있긴 했겠지만 이는 형주를 수복하면 그냥 자연스레 클리어되는 서브미션같은 부분이지 융중대복구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융중대 자체는 상용을 통해서 양양을 접수하면 비슷하게 보완이 가능해져요. 굳이 손권 쳐서 형주 남군을 되찾지 않아도 가능은 하단 얘기죠. 다만 관우의 복수... 이부분은 단순 명분으로만 쓰인건 아니었을겁니다. 유비는 황제에 오른후 기존 장군직을 재정비하는데 이때 기존 서열등으로 생각하면 마초는 대장군, 장비는 표기장군이 적절하지만 둘다 한단계씩 낮춰 각각 표기장군,거기장군에 임명했습니다. 대장군이 공석이었어요. 관우자리라 이거죠. 아마 형주를 되찾고 거기서 손권 모가지로 관우의 제사를 지내면서 명예 대장군직도 주고 시호도 추증하려는 계획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냥 개같이 패배해서 못한거죠. 어쨌든 유비의 이릉대전 개전이유는 이런식으로 자존심과 위엄을 세우는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안하기도 어려웟어요 가만 있으면 걍 가만있는대로 찐따취급당할 상황이었거든요. 뭐 그렇게 유비는 결국 이릉으로 출격합니다. 그러자 이때까지 계속 분탕치던 손권은 갑자기 돌변해서 화해메세지를 보냅니다.

"아 유비형 관우건은 일부러 그런게 아니야 그리고 한나라의 진정한 적은 조씨잖아 우리 둘이 싸우면 조씨놈만 좋잖아 진정해"

뭐 사실 대의를 생각하면 말은 맞는말이긴하죠. 근데 그걸 손권이 말하면 유비귀에 뭐 옳게 들리겠습니까? 당연히 그자리에서 사신 모가지 날려도 이상할게 없죠. 하지만 유비는 오나라의 사신에게 예우를 다합니다. 역시 유비가 인격자라서 그럴까요? 아니요 사신이 제갈근이었거든요. 아무리 빢쳤어도 이거 건드렸다간 갈량이랑 척지는거거든요. 그러니 사신 못건듭니다. 손권도 다 알고 보낸거구요. 다만 이런걸 보면 유비가 빢치긴 했지만 이성을 잃었다거나 그런건 절대 아니었음을 확실히 알수 있죠. 그리고 이릉대전때 유비가 모든걸 쏟아부었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의외로 아닙니다. 후방대비 든든히 해놓고 나갔어요. 우선 유선을 황태자로..... 삼고 제갈량을 승상으로 붙여줘서 자기가 없더라도 익주의 내정이 잘 굴러갈수 있게 해놨구요. 다른쪽 국경에는 마초,위연,조운등 짬바 있는 베테랑 장수들에게 수비를 맡겨 위협에도 대비해놨습니다. 올인은 결코 아니었어요. 뭐 이렇게 되니 손권도 계산기 새로 굴려서 조비한테 가서 신하를 자청합니다. 이제 위나라의 신하들은 '지금 손권치면 바로 천통각이다 유가놈은 익주에 냅두면 알아서 말라죽는다'라고 했으나 조비는 자신을 황제로 섬기겠다는 손권이 맘에 들었는지 신하들 싹무시하고 손권을 받아주며 오왕에 봉해줍니다. 이때 드디어 왕 되는거에요 손권은. 위왕과 한중왕은 자칭이긴 해도 한나라의 제후왕이었으나, 손권은 정식으로 받은 대신 위나라의 제후왕인거죠.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전쟁에서 이릉대전 유비측 최고 네임드였던 황권이

"오나라 사람은 용감하여 전쟁을 잘하고, 또 촉의 수군은 물의 흐름을 따라 행동하므로, 전진하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적군의 허실을 살피고, 폐하께서는 응당 뒤에서 지키시기를 청합니다."

하며 선봉을 맡겨달라고 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황권을 혹시 모를 위나라의 침공에 대비해 전장과 떨어진 북쪽수비를 맡깁니다. 아니 근데 유비 진짜 부하들 말 더럽게 안듣습니다 이자식. 진군말 안들어서 서주날려, 관우말 안들어서 조조 암살 안해, 제갈량말 안들어서 양양 포기해, 아무개말 안들어서 강릉 못가, 또 제갈량말 안들어서 납치될뻔해, 방통말 안들어서 익주먹는데 3년간 질질끌고 방통도 죽어 하여간 마지막 이 황권말까지 안들어서 황권도 놓쳤죠. 저는 특히 이 황권한테 전투를 안맡긴게 이릉대전 패배에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풍습과 장남등을 앞세워 전진한 유비군을 상대로 오군 장수들 역시 높은 사기로 맞서 싸우자 했지만 사령관인 육손은 됐고 무조건 후퇴할것을 명령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육손입장에선 굳이 유비가 잘싸우는 지형에서 싸워줄 이유가 없기에 이릉까지 후퇴했고 거기서 그냥 핵펀치 날려서 이겨버립니다. 그냥 육손이 유비보다 더 잘싸웠다 이게 전부입니다. 사실 이게 이랬니 저런 사정이 있었니 하는 이야기거리도 없습니다. 뭐 유비가 육손을 얕잡아본정도는 있겠지만 변명거리론 쪽팔릴뿐이죠. 순수하게 실력으로 발린겁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유비가 패한 요인을 두가지정도로 보고 있는데 그중 첫번째는 바로 관우의 부재입니다. 이릉까지 후퇴한 육손은 손권에게 서신을 보내 말하길

"나는 유비가 수륙 동시에 진격하는것을 걱정했다. 근데 이제와서 보니 안그랬다. 그래서 유비가 죶밥임을 알았다. 내 승리를 가져다줄테니 가저 배게나 챙겨두시라"

라고 했는데 이 무슨 의미냐면 유비군이 수군을 운용해 장강을 타고 육손군보다 더 빨리 이릉으로 내려가 상륙해서 앞뒤로 쌈싸먹히는것을 걱정했다는 얘기입니다. 유비군에서 진식이 수군을 운용했다고 나오긴 하는데 자세히보면 유비의 본대랑 속도를 맞춰 진격해서 이릉앞에 진을 칩니다. 그러니까 이건 걍 말만 수군이지 사실상 보급물자수송용이었단 얘긴데 육손은 이 수군을 보고 걱정을 했단얘기죠. 왜? 관우의 수군 전투력을 봤으니까요. 2년전 형주에서 육손은 관우가 수군을 운용해 조인과 우금을 상대로 무쌍찍는걸 다 봤죠. 사실 유비군내에서 수군을 조련하고 운용한 경험이 있던건 관우가 유일합니다. 그러니 저 수군이 만약 관우급이면 위험하니까 우선 이릉으로 최대한 빨리 빠진건데 빠지고나서 보니까 저 수군은 걍 빈깡통이네? 하는거죠. 육손이 유일하게 걱정한부분이 해소가 됐으니 이제 두려울게 있겠습니까? 

 

또 하나는 장수들의 격차입니다. 육손군은 반장,주연,서성,한당,반준등 나름 경력이 되거나 실력이 입증된 네임드들인데 비해 유비군은 최고 네임드가 황권뿐이고 이마저도 안썼죠. 방통의 동생인 방림과 제갈량이 아꼈던 마량정도가 미래가 기대되던 유망주긴 했는데 여튼 얘네도 뉴비급이고, 위에 언급한대로 네임드 베테랑들은 전부 본진 수비로 돌려놨죠. 사실 이거 유비의 스타일입니다. 본진수비를 짬좀 되는 장수들한테 맡겨놓고 외부로는 자기가 직접 뽑은 뉴비들 위주로 편성해서 데리고 나가요. 익주 들어갈때도 형주에는 관우,장비,조운,제갈량 다 남겨놓고 당시엔 뉴비였던 법정,방통 손잡고 들어갔었죠. 아니 풍습,장남 이 뉴비들은 대체 누구냐구요 ㅋㅋ 물론 유비가 가챠돌려서 뽑아 쓸리는 없고 나름 눈여겨본 장수들을 뽑았을건데, 이들이 형주출신이라 입촉할때 따라들어갔고 그럼 전투 경력은 익주전,한중전정도인데 이때까진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뿅 나타나는걸 보면 황충의 부관출신들이 아닌지? 하고 개인적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여튼 이릉 입구에서 육손이 버티고 있으니 이를 뚫어야 하는데 풍습,장남 이 애기들이 실력이 딸리니 못뚫다가 화공당해 다 죽는거죠. 다만 유비측에는 원래 상당한 실력자가 참전 예정이었습니다. 바로 장비요. 장비는 본래 이릉대전에 참전 예정이었지만 2달전에 부하들한테 암살당해 사망했죠. 아무리 그래도 명분이 관우의 복수전인데 장비가 전투에 참가했다면 후방이나 지키고 있을린 없고 당연히 최전방에서 돌격했을텐데 장비라면 오나라 장수들을 상대로 압도했을것이라고 말하면 촉빠의 편파판정이겠지만 적어도 풍습장남마냥 빌빌기고 막히진 않았겠죠. 얘네가 이릉입구 못뚫고 늘어지다가 화공맞는건데 장비라면 이사태까지 오기전에 뭐라도 한건 해주지 않았을까요? 

 

정리하자면 유비의 패배요인은 관우와 장비가 없어서라는게 제 감상입니다. 뭐 제갈량처럼 법정이 없어서라고 보는분이 더 많으시겠지만요.

 

여튼 이렇게 유비는 패배해서 후퇴하고 오나라 여러 장수들은 이기세를 빌어 익주까지 쭉쭉 밀자고 하지만 육손과 주연은 이제부턴 조비를 대비해야 한다며 추격을 제지합니다. 역시 에이스들 판단력은 다르죠. 그렇게 손권은 이번엔 조비통수를 치기위해 유비에게 먼저 화해를 요청하고 이번엔 유비도 받아들입니다. 아마 이때 이미 멘탈은 남아있지도 않았겠죠? 이렇게 이릉대전도 끝이나게되죠. 이때 퇴각로가 끊긴 황권과 방림은 그대로 위나라로 투항합니다. 가서 황권은 네임드인증 확실히 했고 방림등도 전부 열후에 올랐다는데 딱히 이름이 남고 그런건 없네요.

 

이때 유비가 잃은 인재가 너무 많아서 훗날 제갈량이 인재부족에 시달렸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던데 개인적으로는 부정하는편입니다. 왜냐면 이 시대에 대규모 전쟁은 딱히 이릉대전 아니어도 엄청 많았잖아요? 당장 앞선 관도대전과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잃은 인재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새로 충원됐죠. 인재는 결국 어디선가 또 나오는법입니다. 중요한건 그 인재를 발굴해서 능력을 발휘할수 있게 적절한 임무를 주는것이죠. 그리고 이게 잘나가는 군주의 덕목아니겠습니까? 삼국지에서 이걸 특히 잘한 군주들이 누구? 유비 조조 손권이죠. 제갈량이 형주에 은거중일때야 인재들을 미리 파악해놔서 유비에게 추천하며 등용할수 있었습니다만, 유비가 죽고 제갈량이 촉한의 정무를 도맡아 하게되니 그럴시간이 있나요? 결국 이걸 유선놈이 해야되는데 안했죠. 유선 이자식 그냥 40년간 지 제위 지키며 노는것밖에 안했습니다. 죤나 놀기만햇다니까요? 이 샹노무색기같으니.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인재부족의 원인으로는 딱히 안맞는단 얘기지 이릉대전 패배로 국력을 개같이 갉아먹은건 당연한 사실이죠. 촉한의 수명이 하트10개라면 이때 유비가 바로 3개 까먹고 시작했다고 봐야죠. 훗날 강유가 2개 더 까먹었고 유선놈이 5개 남았는데 그냥 서렌쳐서 게임오버당했다는게 제 사견입니다.

 

 

이번엔 별다른 이야기도 없었던거 같은데 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8개의 댓글

삼국지는 개추야

0

결과적으로는 유비가 신하들 말을 안 들은게 소설에서는 엄청난 캐릭터성을 만들게 됨 ㅋㅋ

4
2025.04.19

재밌게 잘 봤으요 추천추천

0
2025.04.19

서주대학살을 서주대효도라 하듯이 이릉대전도 이릉로맨스로 불러야 한다. 관우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존나 못싸우는데도 기어이 가서 개쳐맞고 나라를 골로 보냄 ㅠㅠ

3
2025.04.19

이릉이 없으면 삼국지가 완성이 없음 걍 ㅈㄴ 의미없는 역사 중 하나였을듯 삼국지는 이릉으로 완성 됬다 본다

1
2025.04.20
@llIlIl

??실제 역사 중 의미 없는 역사가 어디있음??? 주나라 부터 청나라까지 단 하나도 의미가 없던 역사가 있었나.

2
2025.04.21
@오발탄

대부분의 사람은 알지 못하는 역사를 말하고 싶었음 하나도 의미가 없는 역사는 없었다는건 뭐 역사학적으로나 해당되는거지 의미를 부여하면 한도 끝도 없는것도 역사니 뭐 당신 말이 말이 맞다

1
2025.04.21
@llIlIl

그러니까 니가 한 말의 의도는 삼국지라는 소설(그로 인해 한나라말기~ 진나라까지의 역사가 다른 역사들보다 더 특히 많은 사람이 알게됨)이 없었을 것 이정도로 이해하면 되는거지 ??

 

그런거라면 나도 동의 ㅇㅇ...

0
2025.04.21
@오발탄

ㅇㅇ

0
2025.04.19

혹시 강유가 왜 두개나 까먹었다고 말하는지 적어줄수 있을까? 난 강유 진짜 억까에 억까를 다 넣어도 끽해야 하나 깔까말까 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1
2025.04.19
@갓정연

강유도 관우맨치로 촉빠사이에서 평이 갈리는 인물이긴 하지

난 개인적으로 강유의 북벌자체가 아무런성과없이 자원만 소비했다고 보고있음 결과적으로만 말여

한중은 수비만해도 여유롭게 지킬수있고 차라리 그 자원을 남쪽을 개척하는데로 돌렸어야한다는 아쉬움이 있음 이부분은 특히 오빠로 갈아타는 애들이 비판하는내용인데 난 인정하는편임

물론 최종승인은 유선이 하는거니 결과적으론 유선이 병신일뿐 강유의 북벌을 부정적으로 본다한들 강유란 인물자체를 저평가하는건 아님 인물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능력좋은거지

그저 북벌을 주도하는 강유의 발언권이 어찌 그리 쎌수 있었는지가 좀 의문임 다른 항장출신중에서도 가장 짬딸리는게 강유잖아

여튼 이것도 유선과 익주호족들이 지들 안위민 지키면 그만이었던 족속들이라 북쪽에서 알아서 해준다는 강유한테 다 떠넘기도 탱자탱자 놀았기때문이라 봐야지

그리고 제갈량도 북벌에 여러번 실패했지만 하트를 까먹었다고 안보는 이유는 제갈량이 아군피해를 최소화하는걸 우선시하는 타입이었기때문에 실제로 제갈량의 패배가 물리적위협으로 이어진적은 없었지만 강유가 수비선 내린건 직접적인 위협으로 작용했으니까

3
2025.04.19
@완전폐품아들
0
2025.04.19

엘프는 숲 속에서 지지 않아! → 으악 뜨거워 내 몸이 타고 있어!!

0
2025.04.19

잘보고갑니다

0

장비만 살아있었어도

0
2025.04.20
@급공무원준비생

법정과 장비만 있었어도 저리 안당했음

0
2025.04.20

이릉대전으로 유비의 서사가 완성 되었음

0
2025.04.22

말 안 들어먹은 유비 시리즈 해보면 어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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