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라즈에서 반다르 아바스로 육로로 내려가는 길.
12시간에 걸쳐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중 휴식구간에 정차할 수록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름을 느꼈다.
뜨거운 공기만큼이나, 이곳 사람들과의 만남은 더욱 특별하게 남았다.
항상 좋았던 기억이 남았던 것은 아니지만, 인생이란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할 수 없지 않은가.
불행한 일은 무사히 헤쳐나갔음에 감사하고, 남았던 아쉬움과 상처는 나를 되돌아보고 극복해야하는 과제라고 여긴다면 그 또한 언젠가 단지 추억이었을 뿐이라고 회상할 수 있을테니.
이른 새벽에 도착한 반다르아바스의 항구에는 짭 KFC 간판이 서있었다.
4~5시의 이른 오전임에 불구하고 젊은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소리를 지르며 질주했고, 종종 나에게 찾아와 인사를 해왔다.
그들중 한 무리가 나에게 오더니 "여기 폭주족들이 많아서 귀찮은 무리들이 있을수도 있으니 안전한 장소로 가면 좀더 편하게 쉴 수 있을거야"라며
나를 어떤 곳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이른 아침에 청소를 시작하는 청소부들과 건물을 지키는 경비원이 서 있었는데 폭주족 무리들은 그들에게 나에 대해 소개했고
이 사람들과 있으라고 말하고는 주먹인사를 건네고 사라졌다.
처음 인사에는 니하오 차이니스였지만 헤어질땐 굿바이 코리안으로 인사하고나니 더위속에서 느껴지던 불편함은 다시 한번 설렘과 좋은 기분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청소부 아저씨들이 주는 아침밥과 물을 마시며 항구가 오픈하길 기다리던 도중 항구 경비원으로부터 어쩌면 파고가 높아 출항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아침 배들이 모두 끊긴 상황이고 오후에는 배 스케쥴이 없다는 말에 낙담했지만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피곤하니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염없이 배를 기다리며 주변을 돌아다니던 중 흰 옷을 입은 청년을 만났다.
자신을 발루치인이라고 소개한 젊은 남자는 가족을 보러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번역기로 소통하다보니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이 청년은 다른 목적지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후에 동쪽으로 향할수록 발루치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다른 이란사람들보다도 어두운 피부에 길게 늘어진 흰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 옷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듯, 다른 도시에 사는 이란 사람들은 그들의 피부색과 옷을 보면 그들이 발루치인임을 알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그러하듯, 이란에도 지역감정이 존재하고 또 지역민들의 특색이 존재하는데, 땅이 넓다보니 그들은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느끼는 지역정체성 그 이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 느끼는 감정에는 단순히 서로간의 역사와 성격을 떠나 종교와 정치적인 괴리감과 차별감또한 존재했다.
때문인지 발루치인들에게는 자신이 이란인이라는 정체성이 조금은 적어보였다.
특히 그들이 사는 지역으로 갈수록 그곳에는 정부에서 벗어나 자치를 하고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우리의 구역엔 경찰이 없어. 우리가 총을 들고 치안을 책임지지. 그들이 할수 있는 거라고는 우리가 뭘 하는지 지켜보는것 뿐이야"
서너시간을 기다리자 다행히도 배의 출항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렸고 나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호르무즈 섬으로 가는 매표소 앞에 설 수 있었다.
등록되지 않은 외국인 여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온라인이나 기계로 티켓을 예매할 수 없어 맨 마지막에 한 직원의 수기 도움으로 티켓을 살 수 있었는데
나와 함께 호르무즈에 가는 사람의 말로는 여전히 파고는 다소 높았지만, 사람들이 계속해서 떠나지 않고 항의하자 그들은 출항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한가지 문제가 남았다면 그곳에 있는 숙박업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는 것이고 아무도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들에게 있어 지금 7월은 너무나도 무더운 비수기이기 때문에 손님들이 거의 없어서 영업을 하지 않는거 같았다.
남은 선택지는 큰 호텔에 가서 머물러야 한다는 거였는데, 예산을 좀 아끼고 싶었기에 인터넷에 나온 개인숙소들을 찾아 수소문했었고 기대했던것과는 다르게 도착해서도 아무도 내 요청에 답장하지 않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큰 호텔로 가기로 마음먹고 선착장을 나서려는 찰나였다.
"헤이, 숙소가 필요해? 2만원에 돈 조금만 더 주면 가이드 해줄게"
어느새 난 마중나온 숙소 아저씨들 중 한명의 손에 이끌려 삼륜 오토바이에 짐을 맡기고 있었다.
아저씨와 약간의 흥정끝에 기억은 잘 안나지만 4만원돈에 숙소 + 다음날 가이드 약속을 받았다.
숙소는 매우 오래되었지만 에어컨과 조리도구는 있어서 나름 만족스러운 가격대였다.
"너가 가는 곳은 걸어서는 못가니까 오늘은 숙소에서 잘 자고 내일 아침 6시에 문밖에서 만나"
"나 내일 10시쯤에 배타는데? 지금 밖에 구경하러 가면 안돼?"
"그래도 되는데, 너무 더워."
"괜찮아, 난 할 수 있어. 1시간만 걸어가면 되잖아."
"못가 차 없이는 위험해...내일 내가 다 데려다줄게."
"ㄴㄴ 난 갈 수 있음. 내일 봐."
그의 충고에도 나는 1시간정도 걷는건 문제가 안될거라고 생각하고 길을 나섰는데, 정말 위험했다.
살인적인 더위와 뜨겁고 습한 공기를 마시며 10분정도 걷자 기진맥진해져서 이대로 더 걸으면 정말 죽을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숙소로 돌아가는길에 숙소 아저씨와 마주쳤는데 그가 왜 다시 돌아오냐고 물었고 너무 덥고 기진맥진해서라고 말하자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거봐, 내말이 맞잖아. 거긴 차없이 못가. 그리고 지금은 너무 더워."
단언컨대 태국 남부보다도 훨씬 살인적인 더위였다.
그는 추가 교통비를 받진 않았고 마트에 가서 시원한 물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살면서 가장 힘겨웠던 10분간의 구보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숙소의 삼륜차를 타고 호르무즈섬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매우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뜨거운 햇볓에 지표면 모든 곳들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체 이런 곳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 뿌리내리고 살아왔던 것일까...
암염으로 된 흰 산 아래 놀라운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붉은 지대와 그곳을 하얗게 물들인 소금들이 뒤섞인 땅은 가시처럼 하늘로 솟구쳐져 있어 마치 화성에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괴이했고 동시에 고요하고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기원전 부터 페르시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한때 잠시나마 독립 왕국이기도 했던 호르무즈 섬의 주민들은 어업과 소금을 채취해서 생계를 유지해왔으며 동시에 이 아름다운 섬은 각종 향신료와 무역품들을 교환하러 온 상인들로 북적였던 번영의 섬이기도 했다고 한다.
해안가로 가까워지는 길에 방문했던 습지대에는 반다르아바스에서 만났던 발루치인의 의복을 입은듯한 하얀 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인기척에 모습을 감추었다. 작은 호르무즈 섬에서도 작은 습지에 사는 이 독특한 종은 오랜 세월동안 이곳의 독특한 종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내가 그들을 잡으려고 애쓰자 숙소 주인은 웃으며 그것들은 너무나도 빠르다고 말했다. 단지 카메라에 모습을 담을 수 있을 뿐이었다.
절벽을 지나 은빛 해변가에 들렀는데 해변가는 은색으로 눈부시게 빛났지만 카메라에는 그 반사광이 담겨지지 않아 사진속에서는 흑색 해변에 불과했다.
카메라에도 담기 어려운 풍경을 옛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속에 담아 사람들에게 그곳의 경치를 설명할 수 있었을까.
페르시아의 왕들이 아꼈던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장소였다.
세상에는 여전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장소들이 많다.
위험한 곳도 있고 기대와는 달리 실망스러운 곳도 있을것이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자주 가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일수록 그 만큼 더 많은 불편과 어려움을 감수해야하고 때로는 실패도 겪을 때도 있다.
각자가 추구하는 세계 여행 방식에는 저마다 사정이 있고 이해관계가 다르기에 어떤 여행이 더 옳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겠지만
미지의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느껴지는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막막했던 감정들 모두가 여행의 과정이고, 멋지고 아름다운 경치 그 이상으로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더욱 여행이란 말에 걸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목적지는 정말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호르무즈 섬은 매우 아름다운 장소였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장소로 향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곳에서 겪은 일들 역시 아름다운 경치 그 이상으로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았다.
드립은개드립
포민
Renaissance
방안에서 멋진 호르무즈 섬을 볼 수 있다니!
가리비잇
와 개재밌네
또해원
charlote
호르무즈 해협은 많이 들어봤어도 호르무즈 섬은 처음 보네 진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같다
버럭코
낭만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