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거대한 파도가 한 순간에 산이 되고 그 위를 위태롭게 항해하던 방주가 부서져 내리기 직전에 가까스로 마을이 된 것 처럼, 작은 마을의 아침은 여전히 아찔하면서도 웅장하고 장엄하게 느껴졌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비교적 작은 체구에 강인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웠지만, 초등학교를 갓 입학했을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심부름에 여동생을 데리고 차의 운전대를 잡는 것을 보았다.
단지 주차를 하려 했던것인지, 저 멀리 내리막길 아래에 있는 가족들을 데리러 가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삼십이 넘은 나이에 장롱면허를 가진 나로서는 가까운 곳일지라도 이런 험한 산길에서 차를 몰고 어디론가 향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식당에서 알게 된 알린이라고 하는 젊은 남자의 집에 초대받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호박처럼 생긴 오이와 난, 두흐(Dough)와 차를 대접해주셨다.
한국사람들의 주식이 쌀밥이라면, 이곳 이란 사람들 역시 쌀밥을 즐겨먹는다. 하지만 그 쌀밥보다도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난'이라고 불리는 빵이다.
인도에서도 비슷한 이름의 빵을 본 적이 있어, 이것을 친구들에게 공유했더니 인도친구와 이란 친구간에 서로가 원조라고 다투는 통에 약간
당황스러운 일이 펼쳐졌었지만, 그만큼 아주 오래 이어져내려온 전통깊은 음식이다.
이란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할때마다 따로 시키지 않아도 항상 음식과 함께 담겨오던 마치 이란 사람들에게는 차 만큼이나 필수적이다.
사람들은 이 난에 고기나 음식을 싸먹기도 하고, 심심하면 조금씩 뜯어먹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남은 난은 작게 잘라서 새들을 위한 간식으로 나무 위에 걸어두기도 했다.
투명한 유리병에 들어있는 하얀색 음료인 두흐(Dough)는 톡 쏘는 막걸리같은 맛이났다. 취향에 조금 맞지는 않았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졌다.
한국에서는 밤송이가 나무에서 떨어진다면, 이곳에서는 밤송이처럼 생긴 것들이 땅에서 하늘로 자라난다.
공통점은 만지기에는 억세고 따끔거리지만 차이점은 아쉽게도 먹을 수는 없었다.
마을을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낯선 침입자를 경계하는듯한 신비한 생물도 눈에 들어왔다.
거미는 아니지만, 마치 거미줄에 매달린 채로 거미줄을 흔드는 경계심많은 거미처럼 이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내가 떠나갈 때 까지 특이하면서도 거친 곡예비행을 제자리서 반복했다.
작은 마을에 길었던 해가 지고, 따가운 햇빛에 달궈진 땅과 공기가 식어갈 즈음엔 보석으로 수놓인 대지가 하늘을 비추고
어둠속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뜀박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마을의 조명이 비추는 길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기도 내려가기도 하고 삼촌들이 몰고가는 오토바이 뒤를 따라 뛰어다녔다
그리고 하나 둘 모여 호텔 앞 작은 공터에서 놀다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하나 둘 집으로 사라지고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나자 다시 모여들었다.
풀을 뜯으러 절벽위로 올라갔던 소들도 각자의 집을 찾아 걸어내려왔다.
소들은 자신의 주인의 집 앞에 다다르자 울음소리를 내며 문 밖에 서 있었고 잠시 후에 주인이 문을 열어주자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마을의 일상이 끝나고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시간이 깊어감에 따라 하나 둘 적막으로 자취를 감추었음에도
길거리의 조명은 새벽 밤늦게까지 밝게 마을을 비추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카메라를 확인해보니 밝은 조명탓에 고프로가 별빛을 모두 담지는 못했지만, 마치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듯한 별자취 영상을 남겨주었다.
밤하늘의 별빛을 볼때마다 생각이 깊어지곤 하는데, 오래전에 살던 이 곳 사람들은 밤하늘을 보며 무슨 생각에 빠지곤 했을까.
황량하고 어두운 산속에서 밤하늘을 홀로 바라보면서 드는 다양한 생각들과 기억들은 이곳에서 잡음없이 생생하게 회상되지만 한편으로는
적막속에서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따금 어둠속에 저 멀리서 살랑이는 착시와 실루엣은 종교와 과학이 뿌리내리기 전에는 다양한 전설속의 존재들을 남기고 이야기로 전승되며 아이들의 밤을 두렵게 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아침이 찾아오고 날 이곳에 바래다 주었던 택시기사가 10시쯤 도착한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알린은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며 급하게 어디론가 내려갔고, 그를 기다리는동안 택시기사는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게 있다며 나를 어느 집 앞마당으로 데려와 낡은 도구를 보여 주었다. 그가 페르시아어로 설명하는 통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신기했다.
그 외에도 이곳 사람들이 만든 수공예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 긴 여행길이라 아쉽게도 구매하지는 않았기에 그들이 섭섭해하지 않길 바랄뿐이다.
6편에서 만났던 하미드씨의 형제가 기다리는 서부의 마을 파베를 거쳐 케르만샤로, 그리고 사막이 펼쳐진 이스파한으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charlote
난은 뭐 터키에서도 먹고 중동에서도 먹고 인도에서 동지중해연안까지 모두 먹는 국제적 음식 아닌가. 아마 예수님 마지막 만찬때 그 빵도 난이었을테지.
포민
구글검색해보니 나라별로 조금씩 형태는 달라도 만드는 방식이 비슷한가보네. 여기서는 어느 도시를 가도 곳곳마다 팔기 위해 내놓은 난을 상당히 흔하게 볼 수 있었음. 세탁소에 옷 맡기면 비닐에 쌓여서 오는 옷들처럼 거의 셔츠만한 사이즈의 난들이 비닐에 싸여서 수십장씩 걸려있더라. 신기했어. 특히 생긴것도 뾱뾱이 터뜨려놓은 것처럼 생겼기에 난 하면 나는 이란에서 만든 형태의 난이 떠오르더라. 생각해보니 터키에서 먹은 케밥에 싸주던 빵도 난인건가...
군붕악리
존나이쁘다
드립은개드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