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은 서부의 작은 마을로 가는 길.
아스타라의 국경을 넘자마자 환전소를 찾아야 했다. 돈을 환전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란의 문화중에는 스페인과 비슷한 점이 있다. 바로 더운 여름철의 오후에 대부분의 가계는 문을 닫고 휴식을 취한다.
많은 식당들이 점심시간을 마치면 곧바로 문을 닫았고 저녁이 되서야 문을 열었다.
그 외에도 작은 구멍가게, 그리고 카페 등도 그러했다. 국경을 넘기 전에 미리 외워두었던 환전소 길을 되새기며 그곳에 도착했지만
야속하게도 환전소 문은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잠시 후에 돌아와 문을 열거라는 기약없는 메모와 함께.
위탁수하물가방과 기내수하물 가방, 그리고 배낭을 메고 30도가 넘나드는 길을 정처없이 걷는건 쉽지 않았지만, 운 좋게도 나는 한 여행사를 찾을 수 있었고 거기서 환전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가져온 돈은 총 3000달러로, 3달동안 머물기 위해 가져온 돈이었다.
사실 이곳의 환율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란의 숫자조차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나에게는 커다란 모험이기도 했다.
이 작은 환전소 가게가 나에게 어떤 환율로 돈을 건네줄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래서 300달러만 일단 바꾸기로 했고 나는 그들에게 300달러와 약간의 아제르바이잔 돈을 건네었다.
"미안, 돈이 없어. 200달러어치가 전부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대도시보다 좋은 환율로 나에게 돈을 바꾸어 주었고 200달러어치로 받은 돈은 너무도 많아서 가방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였다.
사진속의 저 돈 옆에 100묶음 다발로 여러개가 더 있었다. 돈을 셀줄도 몰라서 그냥 고맙다고 하고 가방에 어떻게든 집어넣고 나왔다.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무게였지만, 이번에는 휴대폰 유심을 사러 갔다.
더운 날씨에 인내심이 바닥났고 이란 말과 숫자를 읽을 수 없는 통에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들에게 돈 다발을 건넸다.
그리고 말했다.
"원 먼쓰 플리즈, 앤 굿 인터넷"
그들은 대략 5천원정도를 받고 나에게 1달동안 사용이 가능한 10기가바이트정도의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유심을 주었고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한 무료 VPN 설치와 연결까지 도와주었다.
마트에서도 똑같이 음료를 사고 돈 다발을 건넸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정확히 필요한 돈만 받고 나에게 나머지 돈을 모두 거슬러주었다.
인내심이 바닥났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냥 내 운명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이곳 사람들은 나에게 북한사람들처럼 신비한 존재였고 한번쯤은 속아봐도 괜찮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정직했다.
당시 공식 환율은 1달러에 대략 40만 리알(잘 기억나지 않지만, 40만리알 중반쯤)이었고, 비공식 환율은 1달러에 57만리알이었다.
그리고 보통 이곳 사람들은 리알보다는 토만이라는 단위를 더 익숙하게 사용하는데, 토만과 리알의 비율은 1:10이었다.
즉 내가 200달러로 환전한 돈은 1140만 토만이었다.
저기 초록색 지폐가 1장에 10만리알(1만토만)이고, 파란색 지폐가 100만리알(10만토만)이었다.
인터넷이 개통되고 난 후에서야 이란 동부로 가는 루트를 불러올 수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이란 동부로 가느냐였다.
현지인의 도움 없이는 교통편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현지인이 도와주고 싶어도 다른 지역의 교통편을 안다는것은 매우 어려웠다.
그만큼 이란은 외부와 단절된 나라이다.
아스타라의 버스터미널로 가는 여정.
택시어플을 사용해 호출하자 히잡을 쓴 여성 택시기사가 도착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불편해할까봐 뒷좌석에 앉았고 대략 10분정도가 소요되었다.
가격은 31만리알 ->대략 0.6달러정도.
택시어플은 직접 택시를 잡아타는 경우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장거리일수록 택시기사가 취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처음에는 그냥 곧바로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위해 시외택시를 호출했지만, 모든 택시기사가 거절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버스터미널로 가는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터미널에 버스가 없었다...
버스 터미널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작은 건물에 불과했다. 그냥 아파트 상가 건물보다 작은 사이즈에 버스도 얼마 없는 정류장..
그곳에 있는 직원에게 물어보자, 내가 원하는 도시에 가는 버스는 없고 며칠 기다려야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더 유의미한 대화가 통하지도 않을거 같아 어쩔 수 없이 버스터미널 밖에 나와 계단에 앉아 '이제 어떡하지' 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더니
두 택시기사가 다가왔다.
어디 가냐는 질문에 '노땡큐'라고 말하며 거절했지만 생각해보니 버스가 없으면 여기서 하룻밤 자야하고, 숙박비를 그만큼 손해봐야하는셈이니
그냥 택시가격이 얼만지나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구글 지도를 가리키며 '잔잔'이라는 도시까지 가는데 얼마냐고 물었고 그들은 둘이서 대화를 주고받더니
250만 토만을 제시했다. (당시 시세로 약 42달러). 이란 현지에 사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나쁘지 않은 가격이라고 말했고
나는 콜을 외쳤다. 흥정할 것도 없었다.
370km에 이르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잔잔까지는 대략 7시간정도 걸린다고 구글 지도에 안내되어있었지만, 실제로는 저녁먹고 쉬어갔다가 하는
시간까지 합쳐 9시간정도 소요되었다.
잔잔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사난다지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동쪽 국경에 가까운 마리반이라는 작은 마을에 갔다가 그곳에서 우라먼 탁흐라는 아주 작은 산기슭의 시골 마을에
갈 계획이었다. 그곳까지 2일만에 도착할 계획이었기에 모든게 잘 풀리기를 기도하며 나는 택시에 탑승했다.
처음에는 익숙한 강원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울창한 수풀을 지나 30분쯤 여행하자 이번에는 낯선 높은 고원이 펼쳐졌다.
인도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풍경들이었다. 그리고 중앙선을 참 많이 넘었다.
평소에는 차만 타면 항상 잠들곤 하지만 스릴넘치는 운전 덕분에 졸음이 잘 오지 않았다. 눈도 즐겁고 심장도 즐거운 여행이었다.
해가 저물수록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이란의 밤하늘은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다.
탁 트인 밤하늘에 별빛들이 하나 둘 반짝이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난 직후 떨어질듯 말듯 처마에 맺힌 수많은 빗방울처럼 곳곳에 수놓아지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바라보는 그런 밤하늘의 무수한 별빛들은 군 시절 이후로 정말 오랫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중간에 음식점에 들러 택시기사와 저녁을 먹었다. 그 지역 특색이 담긴 수프인지 음식 사진을 전송하자 내 친구는 그 수프의 정체를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수프와 케밥(이곳에서는 쿠비데라고 부른다)을 먹었던걸로 기억한다.
이란은 큰 나라이고, 다양한 거주민들이 오랜 역사를 거쳐 번성했다가 사라지곤 했다고 한다.
6세기 무렵에 페르시아 제국이 이슬람에게 정복당한 후 이란인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페르시아의 문화와 강대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듯 했다.
한국 처럼 작은 나라에도 지역차별이 존재하듯, 이곳도 당연히 그러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란속에 나뉘어진 그들만의 전통과 식생활을 접해보는것도
즐거움중에 하나였다.
나는 양고기와 향신료에는 익숙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곳의 양고기는 다른 나라 음식에 비해 잡내가 적은것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친구가 말하기를, 자신들의 요리에서는 고기의 잡내를 없애는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꽤 만족스러운 한끼였다. 약간 새콤한것만 제외하고는.
때는 여름이라 주변에 과일들이 정말 많이 있었는데, 차를 타고 수백미터를 갈 때마다 수박과 메론을 파는 행상인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수박 한통에 15000토만이라고 적혀있었는데 정말로 15000토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내가 지내던 도시에서는 한통에 천원에서 2천원정도 정도
주고 먹었던거 같다.
이곳에서는 차 문화가 잘 발달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만나거나 손님을 맞이하면 항상 차를 대접하곤 한다.
마트마다 일회용 종이컵에 홍차 티백 한개씩 담아서 계산대 옆에 내어 놓았는데, 그것을 구매한 후 옆에 뜨거운 온수기를 틀어서 물을 담아마시면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사프론을 넣어서 설탕 한 조각과 함께 대접했는데 향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장시간 운전하는 택시기사들은 졸음을 쫒기 위해 커다란 해바라기씨 봉지를 옆에두고 하나씩 까먹으며 운전하곤 했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서 장시간 운전동안 택시기사와 나는 운전 내내 서로 침묵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운전했다.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잔잔에 도착했고,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드리자 다음번에도 아스타라에 온다면 자신에게 또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네주고는 떠나갔다.
혹시 몰라서 그 명함을 한국에 가져왔는데, 지금은 내 귀중품 보관함에 보관해두었다. 언젠가 다시 그곳에 간다면, 그때보다는 좀더 유창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호구호구
택시 앞유리 살발하네 ㅋㅋㅋ
금고남
낭만 넘치네
charlote
이란에서 석류 지겹도록 먹었던 기억 나네. 한국 가격의 10%정도였던듯.
포민
과일이 그립긴하다. 맛있었지.. 지금은 환율이 57000:1달러에서 81000:1달러가 되어버렸으니 거의 5%에 가깝게 되어버렸을듯
드립은개드립
계속 읽고 싶어지는 글!
포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