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150일간의 세계 여행, 5 - 다시 바쿠, 그리고 이란으로...

https://youtu.be/ECa1TtibT6w?list=PLG0MfqGvt6PDSYD_-sSoNohcEndWW-k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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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에서 아스타라로 가는 여행길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차창 너머 바깥은 매우 더웠고 창문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밀려들어왔다.

인도에서의 더위가 습하고 뜨거운 증기를 마시는 느낌이라면, 이곳에서의 더위는 숨을 들이마쉴때마다 입안이 갈라지는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런 더위에도 불구하고 들판은 푸르렀고 소들이 풀을 뜯다가 고개를 들어 지나가는 차량을 잠시 응시하곤 했다.

 

아침 일찍 바쿠에서 란케란으로 가는 버스를 탄 후,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국경이 있는 아스타라로 가는 길이었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을 보내기 위해 강원도 끝자락에 위치한 외할아버지댁으로 가는 여정의 기분을 느끼며 평화로운 들판을 바라보던 때 까지는

모든게 순조롭게 느껴졌지만, 여행이란 언제나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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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앞에는 몇번이고 신기루가 끝없이 펼쳐졌다. 오래전 이곳을 지나던 여행자들과 상인들도 타들어가는 날씨 아래 이 물의 환영을 보곤 했을까.

색깔마저 타들어간 듯 이곳에 사는 달팽이들이 껍질은 하얗게 새어있었고 마치 암모나이트 화석처럼 오랜 시간 활동을 멈춘 채로 바람에 흔들리는 풀에 몸을 맡긴 채 기약없는 비를 기다리는듯 했다.

 

 

 

내가 이 달팽이 사진들을 사진을 찍고 있던 이유는 바로 차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곧 아스타라로 도착함을 알리는 표지판을 막 지났을 무렵 차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차내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소리없이 바퀴는 굴러갔지만 나와 기사 둘다 이 차가 곧 멈출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차는 더운 날씨에 오랜 잠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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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롭게 풀을 만지며 사진을 찍고 담배를 피웠지만, 많은 짐을 옮겨야 했던 탓에 물을 따로 챙기지 않은게 화근이었다.

30분정도 기다리자 갈증이 나서 담배를 피우기가 찝찝해서 그냥 아스팔트 도로에 걸터앉았다.

기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아마 시간이 좀더 걸릴거 같다고 했다.

 

중간중간에 다른 기사들이 와서 무언가 도움을 주려했었던거 같았는데 아마 도울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곧 떠나버렸다.

다행히도 중간에 트럭을 몰고 가던 한 남자가 나를 태워주기로 했고 내 짐을 싣고 아스타라로 가는듯 했는데

 

"내려"

"여기서?(여전히 고속도로)"

"ㅇㅇ 여기서 기다리다가 다른 차를 타고 가."

"어떤 차를...?"

"마르슈르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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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공산권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종종 마르슈르트카라는 밴을 볼수 있는데, 일종의 버스다.  가격은 택시요금보다 훨씬 저렴하고

차를 타고 가다가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내리면 된다.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트럭 기사와 땡볕에 짐을 들고 서있는데 정말로 마르슈르트카가 오기 시작했다.

트럭기사는 마르슈르트카 기사에게 대충 이 중국인이 아스타라로 가려하니 잘부탁한다고 말하는듯 했고 마르슈르트카 기사는

엄지로 좌석을 가리키며 차를 타라고 했다.

 

 

 

나, 위탁수하물 캐리어, 기내수하물 캐리어 총 3인분의 자리를 차지한채 차가 핸들을 돌릴 때마다 바퀴와 함께 굴러가는 캐리어를 부둥켜안고

어쩔줄몰라하니 한 손님이 자리를 양보해주려고 했지만 짐을 안고 있을수가 없어 괜찮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지나다니는 소가 신기해서 카메라를 들어 사진과 영상을 남겼다. 

 

가는 길에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거대한 트럭이 갑자기 핸들을 돌려 옆길로 꺾었고 트럭에 실려있던 짚더미들이 마르슈르트카를 덮치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사람들은 그냥 욕설과 탄식만 했을 뿐 별일 없었다. 돌덩이가 아니여서 참 다행이다. 기사와 승객들은 별일없다는 듯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이곳이 내 아제르바이잔의 마지막 여정이었기에, 주머니에 있던 모든 동전들을 기사에게 건네고 따봉과 함께 감사의 말을 남기고는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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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슈르트카에서 내리자마자 그곳에 있던 한 농부할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란으로 넘어간다고 하자 어깨를 으슥하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하고는 국경검문소로 안내해주었다. 

 

외교 공관테러사건 이후로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고 듣기로는 서로의 육로 입출국을 제한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곳을 지나갔던 한 외국인 여행객의 후기를 찾을 수 있었고 나도 외국인이니깐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가본건데 정말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망한거 같았지만

다행히도 국경을 통과할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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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쓰레기통에 담배꽁초가 있길래 담배를 피우고 있자 잠시후에 검문소 군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간단한 짐 검사와 인터뷰 끝에 굿바이라는 말과 함께 출국장 문을 가리켰다.

 

문득 이란 대사관에서 직원으로부터 안내받았던 말이 떠올랐다. 

 

"포민씨, 이란에 가시게 되면 정치,종교적인 발언을 삼가하시고 항상 조심하십시오."

이란 국경에 입문하기 전에 인터넷은 이미 끊겨있었지만 이란 친구들과 나눈 대화내용을 모두 삭제했고 두번째 짐 검색을 하고는 인터뷰실로 향했다.

 

검은 히잡을 쓴 여성 직원이 내 캐리어와 가방을 모두 열어 하나하나 만져보며 확인했고, 의심가는 물건이 있으면 모두 하나하나 물어보기에

긴장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별일은 없었다.

 

인터뷰실에서는 아빠이름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이란에 어떤 친구가있는지, 그 친구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물어보고 대화내용을 보여달라고 하기에 당황스러웠다.

 

대화내용 안 보여주면 통과 안시켜줄거같은 분위기라 하는수없이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창 하나를 열어 보여줬더니

분명 왓더뻑이라고 말한걸 들은거같은데... 직원이 뭐라 중얼거리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 대화내용중에는 히잡없이 사진을 찍은 사진이 여러개 있었는데 그게 문제였던거 같다.

 

직원이 말했다.

 

"미스터 포민, 이란에 온걸 환영합니다. 다만 이곳에서 정치적, 종교적으로 문제가 생길만한 발언을 삼가해줄것을 약속해주십시오"

"물론이죠 약속합니다."

 

 

국경소를 나가자마자 페르시아언어가 보였고 낡은 차량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안될 줄 알았는데 내가 해냈다...  사실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잘 안될거라 생각했는데.

어쨋든 육로입국에 성공했고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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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국제 신용 카드도 사용할 수 없고 인터넷조차도 엄격하게 검열되는 곳이기에 정말 고립된 세상이 따로없다.

페르시아어와 함께 곳곳에 걸려있는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보니 잠시동안 북한의 모습이 떠오르는거 같아 정말 낯선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내가 방문했던 이 나라가 지난 10년간 여행한 곳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슴벅차오르는 추억을 선물하게 될 줄은...

 

 

 

 

 

 

 

https://www.youtube.com/shorts/Qy1ifQeVfaE?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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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으로 떠나기 전날, 바쿠에서의 친구와 마지막 저녁식사를 가졌다.

친구는 특별히 나를 '캐러밴세라이'라는 곳에 초대해주었다.

 

위키에 따르면, 과거 실크로드 무역길을 다니던 상인과 여행객들이 안전하게 머물수 있도록 마련된 숙소였고

그곳에서 상인들은 서로 무역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며 머물고 가곤 했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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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구글 http://www.peraair.com/caravanserais-of-cappadocia)

 

비록 내가 초대받은곳은 실제 캐러밴세라이는 아니었고, 그런 분위기를 주는 식당이었지만 꽤 전통있는곳이었다.

음식과 분위기 모두 당시의 느낌을 연출하기위해 꽤 공을 들인듯 했고 저녁시간에 맞춰 시작된 공연도 만족스러웠다.

 

 

"포민, 오래전에 이곳을 지나는 상인들이나 여행객들은 캐러밴세라이에 머물곤 했어. 너가 잠시나마 그들의 된 기분을 느껴보라는 마음에 널 초대했어. 짧은 만남동안 아쉬웠고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 여행은 원래 조금씩은 아쉬운 법이야. 그리고 이란에서는 항상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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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제르바이잔에서의 여행은 끝났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는 이미 모두 얼굴이 잊혀져버린 호스텔의 여행객들, 그리고 버스터미널에서의 아주 짧은 대화와 미련, 그리고 가보지 못했던 장소들.

편지만 나눈 채 만나보지 못했던 친구들 모든게 아쉽게 느껴졌다.

 

아제르바이잔 사람의 말 처럼 원래 여행이란 그런것 같다.

마음을 풍족하게 채우는 여행이란 존재할 수 없고 아쉬움과 함께 남기고 와야 하는 것들도 역시 여행의 과정이라는 것을.

 

 

아쉬움과 슬픔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던 그날 아제르바이잔의 국경을 넘었고 그와 동시에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희미하게 유지되던 인터넷 데이터는 끊겨버렸다. 

 

 

 

여행자여, 캐러밴새라이에 어서 오십시오

그곳에서 들었던 노래들 중 한 곡의 내용이 대충 그렇다고 한다.

 

그들의 노래를 듣다보니 마운트 앤 블레이드2 배너로드의 여관술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혹은 나도 전생에 실크로드를 걷던 상인이었기에 아제르바이잔을 떠난 이후로도 계속해서 그 노래가 머릿속에 이따금 연주되던것일지도.

 

 

10개의 댓글

2024.12.28

와 이란! 저는 아제르에서 서쪽으로 조지아로 나갔는데 남쪽 으로 가시다니 멋집니다. 여행기 잘 보고 있습니다.

1
2024.12.29
@북극곰의눈물

감사합니다

0
2024.12.29

세계는 넓고 세상은 아름답다는걸 느낍니다

당신의 세계를 보여주어서 감사합니다

 

1
2024.12.29
@르네상스콜라

부족한 여행긴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
2024.12.30

아제르바이잔 일때문에 몇번가봤는데 처음을 조지아로 해서 거기서 봤던 개발도상국의 전형적인 느낌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막상가보니까 그나라가 가진 잠재력을 확인할수 있었고 외교적으로도 많이 노련한 유라시아의 스위스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잠재력이 크고 생각보다 평가절하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1
2025.01.06
@바람개비2

유라시아의 스위스 저도 동의합니다.

0
2024.12.31

추억이네 나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배타고 카스피해 넘어서 바쿠로 갔는데 ㅋㅋㅋ

여친이랑 참 즐겁게 여행했다..

0
2025.01.06
@기하찡

투르크메니스탄은 어떻게 입국했어? 내가 알기로는 입국절차가 매우 까다로운걸로 알고있었는데

0
2025.01.02

이스탄불에도 카라반사라이 유적도 있고 그 이름 붙은 식당도 있던거 생각나네. 이란은 22년전에 테헤란 출장가서 열흘정도 있었는데 양고기도 잘 못먹고 한식당도 없어서 꽤 고역이었다.

0
2025.01.06
@charlote

최근에는 테헤란이랑 이스파한에도 한식을 다루는 곳이 하나씩 있었던걸로 기억해. 근데 여전히 내가 이스파한에서 먹은 짜장면과 떡볶이는 한식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음식이긴 하더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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