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150일간의 세계 여행, 3 - 아제르바이잔 진흙 화산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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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의 하늘은 비오는 날을 제외하면 대부분 맑았다.

나를 향한 과도한 호기심이나 불편한 시선도 없었고 가끔씩 어느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고 가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

 

이른 오후에도 카페의 간이 정원에는 이야기를 꽃피우는 청춘들로 가득했다. 이미 들어서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바쿠의 시내는 무슬림의 나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자유로움이 가득했다.

 

카페에서 만난 친구와 담배를 피우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어제 내가 다녀온 진흙 화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친구는 신기해했다.

 

"거길 가봤었어? 난 안가봤는데..."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았냐는 질문에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그곳에 가본적은 없지만 대신, 고부스탄 암각화가 있는 자연공원에는 가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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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시내 중심가에서 약 7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부스탄. (사진출처 : 유네스코 사이트)

위키정보에 따르면 대략 5000년~2만년전 사이에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이 남긴 유적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이다.

벽화, 그리고 고대인들의 악기로 연주되던 속이 비어있는 바위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소리를 내며 그곳에 보존되어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갔던 진흙 화산은 전혀 유명하지 않은 다른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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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내가 계획 했던대로라면,  나는 고부스탄 암각화 문화경관과 진흙화산(머드 볼케이노)가 모두 위치한 빨간 원이 그려진 장소에 가야했는데

나는 파란색 장소에 가게 되었다. 

 

택시기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정말 그곳에 가냐고 여러 번 물었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점점 황량하고 인적 없는 곳으로 빠져나가는 순간까지도 내 머리는 여전히 꽃밭이었다.

 

 

 

바쿠시내를 벗어나자 한국의 시골 외곽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진 황량하고 건조한 벌판이 바다와 마주하며 끝없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인적없는 바닷가에는 거대한 발전소와 정제시설이 세워져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과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거대한 파도가 한순간에 모래로 변해 굳어버린듯한 메마른 언덕은 지나가는 이들을 당장이라도 압도하여 덮어버릴만큼 웅장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가는 곳이 관광객은커녕 생명체조차 찾아보기 힘든 곳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찾아왔다.

 

볼트 택시의 지도 경로를 보며 곧 이곳에서 내려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무언가 잘못되어감을 느꼈지만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머드 볼케이노"

 

"여기가 머드볼케이노가 맞아요?"

 

택시기사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해 머드 볼케이노라는 짧은 답변과 함께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머드 볼케이노가 대체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택시기사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거스름돈을 건네주었다.

거스름 돈 땡큐포유어서비스니깐 다 가지라고 하자 미소지으면서 악수를 건넨다. 아니 영어 이해 못하는거 아니었나...

어쨌든 머드볼케이노는 스스로 찾아야했다. 

 

구글지도를 켜자 대충 이곳이 머드 볼케이노가 맞는 것 같긴 한데, 도로를 벗어나자 인터넷이 완전히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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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드 볼케이노 맞지...? 지뢰밭 아니지?

 

번역기 로딩속도를 기다리다가 더운 날씨에 울화가 치밀어 근처에 발전소 시설로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주차된 차도 거의 없고 망한 시설처럼 보여서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입구에는 경비원이 지키고 서 있었다.

 

머드 볼케이노를 찾고 있다고 말하자, 산봉우리처럼 솟은 작은 언덕을 가리키며 저곳에 가라고 알려주었다.

빨간색 정체모를 표지판들이 있는 곳. 

 

저곳에 있는 표지판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머드 볼케이노는 안전한 곳인지, 왜 사람이 없는지 물어보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내성적이고 소심한편이라 그냥 "웨어 머드 볼케이노? 오케 뚜다 예아 땡큐" 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표지판의 정체를 알 수 없어 안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어떤 미친놈이 이런 곳에 지뢰를 깔아놓겠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을 내린 나는 언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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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관광진(아무도 방문 안함)데 위험한 거 있으면 다 치웠겠지ㅋㅋ"하고 떨리는 맘을 애써 잠재우며 닐 암스트롱 빙의해서 한발 한발 표지판을 지나

발을 내딛자 땅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마치 물침대를 밟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땅이 푹 꺼졌다.  엄마가 외국 가서 없어보이지 말라고 사준 예쁜 신발인데 잘못된 도약 한번에 신발이 달고나로 코팅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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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중에 먼 미래에 우리가 화성을 방문하게 된다면 아마 이런 광경이 펼쳐져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봤다.

 

밟으면 움푹 꺼지는 곳(약간 색깔이 어두운 곳)과 그렇지 않은 곳(바싹 말라서 밝은 색깔이 나는 곳)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해서 걸어가야 하고

참호처럼 파여진 곳을 점프해서 지나가는 묘미에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즐거움과 기대만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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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위에 도착하자 작은 모닝글로리가 날 반겼다. 손가락을 넣어봤는데 다행히도 살이 녹지는 않았다. 

잠시 앉아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힌 후 물티슈를 꺼내 신발을 닦고 사진과 영상을 담았다.

 

아쉽게도 읽판에는 사진 용량 제한이 50mb라 굉장히 짧게 영상을 끊어서 올려야 하고 그마저도 많이 올릴 수 없어서 아쉬울 뿐이다.

 

관광객은 아무도 없었고 오직 나 뿐이었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 눈치 안보고 친구한테 선물받은 전통 아제르바이잔 모자를 쓰고 컨셉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썬크림 대용으로 가져온 강도복면도 안심하고 쓴 채로 혼자 재미있게 놀았다.

 

 

 

 

 

 

1개의 댓글

2024.12.16

좋은구경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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