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팀펑크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자

스팀펑크는 역사적이다


 

보통 스팀펑크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하늘을 떠다니는 거대 비행선이나,

 

증기기관,

 

정교한 자동기계(오토마톤),

 

뭔가 다들 낙관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틀려 있는 도덕관 같은 것들이다. 이런 요소들은 대체로 19세기 유럽의 모습을 바탕으로 한다.


 

형님 격의 장르인 사이버펑크가 미래를 바라본다면, 스팀펑크는 과거를 바라보기 때문에 스팀펑크는 역사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 

 

 

사이버 펑크에 미래 기술을 예상하는 재미가 있다면, 스팀펑크엔 과거 기술을 다시 생각해보는 재미가 있다.

 

 

다시 생각해보는 것을 넘어서 스팀펑크는 역사적 소재들을 이리저리 비틀어 과장한다.

 

‘스팀’펑크라는 용어에서부터 알수있다시피, 스팀펑크가 과장하는 대상은 증기기관, 그리고 나아가서 흔히 빅토리아 시대로 불리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의 초기 근대사회 그 자체다. 

 

 

예를 들어 스팀펑크 장르가 근대 초기의 기계공학을 과장한다면,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외연기관에 기반한 자동기계들이

 

현대의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만큼 미세한 나노 태엽들에 의해 정교하게 구성되어서,

 

마침내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 오토마톤이 되고, 

 

기계 귀족이 되어 제국의회에 출석하는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다.


 

사실적 역사소설이 현대인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그 시대를 고증해서 드러내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것과 달리, 

 

스팀펑크는 다소 비현실적이더라도 근대 사회 초기의 시선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부터 상상을 시작하고, 가능성을 추구합니다. 이렇듯 가지않은 길에 대해 상상하는 부분이 대체역사물과 겹치기 때문에 스팀펑크는 대체역사물의 하위장르로 정의되기도 한다. 


 

(스팀펑크가 과장하는 19세기는 오늘날 현대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많은 기술들의 태동기였기 때문에, 묘하게 친숙한 느낌이 있다.)


 

미지에 대한 낙관적 불안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또한 사이버펑크에 미래에 대한 비관적 예측에서 오는 공포, (그리고 과거의 몇몇 사이버 펑크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이 이미 현재를 예측했다는 걸 깨달으면서 오는 씁쓸함) 가 있다면, 

 

 

스팀펑크에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데에서 오는 낙관적 불안이 있다. 

 

왜냐하면 19세기의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던 세계 자체가 지금 현대인들의 세계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공간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팀펑크는 호러물의 성격도 가질 수 있다 (블러드본)

 

 

초기 근대는 이전 시대인 근세나 중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변혁이 이루어졌다.

 

이전 수세기동안 이루어졌던 변화보다 다음 몇 년동안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바뀔거라고 기대되는 시대였고, 미신을 쫓아내고 어둠을 밝히던 발전과 진보의 시대로 여겨졌다.

 

지구 공동설 (메이드 인 어비스 짱재밌음)
미지의 아프리카 (흰색부분 들어가면 못나옴)

하지만 19세기는 아직 세계의 많은 부분이 미스테리로 남아있던 시기였다.

 

 

열강들은 아직 남아있는 미지의 공간에서 자원을 채취하고, 전 세계를 정복한 뒤 지배하기 위해 탐험과 개척의 기치를 내걸었다.

 

북극의 북서항로와 북동항로는 대항해시대부터 수많은 용감한 모험가들을 좌절시킨 바 있었으며, 개척하는 자에게는 막대한 부와 명예가 보장되어 있었다. 

 

 

초기 sf 소설가이자 스팀펑크 장르의 조상 중 한명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도, 북극점이 소설의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 

 

주인공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의 뒤를 쫓아 북극 끝까지 찾아간다. 

 

남극의 내륙 지역은 당시 지도에서 비어있는 대표적 미지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남극은 애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에서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에 이르기 까지, 19세기 사람들에겐 기괴하고 몽환적이고 공포스런 장소로 느껴졌다.  

 

(남극은 포에게 있어선 근대성이 도전 받는 곳이 되고, 러브크래프트에게 있어서 기이한 괴생물체와 고대 도시가 있는 공간이 된다. )


 

 또한 남극 탐험가들은 그 자체로 인류 과학의 진보를 상징했다. 

 

 

탐사를 통한 지식 습득을 넘어서, 훌륭한 육체적 조건을 지녔던 위대한 탐험가들이 그토록 극한 환경에 내몰리는 광경은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우생학적 과학 실험, 적자생존의 장으로 여겨졌다. 

 

 

 “가장 최고의 혈통이 가장 최악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거의 광기에 가까운 과학에 대한 숭배와, 극한 환경에서도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하다는 확고한 믿음은 스팀펑크 장르에서도 특히나 강조되고, 또다시 기괴하게 비틀리곤 한다.

 

 

비디오 게임 프로스트펑크는 혹한을 무대로 하여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와 스팀펑크 장르를 섞은 생존 게임이다. 

 

 

인류는 빙하기 때문에 멸망의 기로에 섰고, 희망은 오직 증기심이라는 스팀펑크 요소, 과학의 결실에 달려있을 뿐이다.

 

 실제 역사에선 소수의 선별된 탐험가들이 북극과 남극으로 향했지만, 프로스트펑크는 이를 과장해서 전세계를 남극과 북극으로 만들어버렸다. 

 

 

적자생존의 극한 환경에 내몰린 사람들은 곧바로 생존에 있어서 가장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데, 그것은 그들이 인간성이라 불렀던 것이었다. 아서 고든 핌의 모험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프로스트펑크에서도 벌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스팀펑크 장르가 제국주의를 옹호하며,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프로스트펑크는 전혀 스팀펑크적이지 않고, 오토마톤 같은 것들로 스팀펑크 흉내만 내며, 오히려 스팀펑크를 비꼬는 작품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스팀펑크는 무턱대고 낙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대부분의 작품들이 어두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확실히 스팀펑크가 배경으로 하는 빅토리아 시대는 분명 낙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던 시대였지만, 사실 그 속에는 불안과 모순 또한 깔려있었다. 

 

교육이 개선되고 문맹이 퇴치되는 한편 아동노동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으며, 

머릿가죽 뜯긴 시체 (북미 원주민들에게는 시체의 머리가죽을 전리품으로 삼는 전통문화가 잇엇는데, 이건 나중에 서양애들이 따라함니다(사실 훨씬 많이 함)
머리가죽뜯기 아웃소싱

 

세계의 중심부에 있던 귀족들이 예의범절을 발달시킬때 세계의 외곽에서는 폭력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고, 

(코맥 매카시의 핏빛 자오선은 이 시대의 외곽에서, 서로 엉겨붙어 있던 질서와 폭력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큰 전염병 유행없이 위생과 영양이 개선되면서 인구는 크게 늘어났지만, 

 

동시에 그만큼 빈민도 늘어나는 시대였다.

 

산업혁명이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온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기에 그 어마어마한 충격의 파장을 몸소 느끼며 살던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휙휙 바뀌는 세상에 한편으로는 기대를, 한편으로는 불안을 가졌다. 

 

이렇듯 산업혁명 이후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는, 거대한 공장들이 내뿜는 매연과 함께 거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극단적인 대립과 모순을 드러냈다. 

 

 

이렇다 보니 스팀펑크 장르의 작품들도 이러한 대립들 중에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이 된다. 

 

낙관과 불안, 어느 관점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대한 문제 말고도, 스팀펑크 장르는 여러 지향점들에 따라 sf에서 판타지, 그리고 뉴 위어드 픽션에 이르기까지 느슨하고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다. 

 

증기기관 기술이 훨씬 발달해서 컴퓨터가 실제 역사보다 백년 앞서 출현한다던지,(차분기관)

마법과 과학기술이 융합한 마법공학이 발전한다던지,(필트오버)

 

 

우중충한 뒷골목에서 벌레의 머리를 가진 기괴한 나타난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차이나 미에빌)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스팀펑크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스팀펑크는 접점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스팀펑크가 과거 기술의 과장에 기반하기 때문에, 현대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기술발전이 딱 단절되어서 그 선 밑으로만 

 

(예를 들면, 증기기관은 계속 복잡해지고 더 정교해지는데 디젤엔진은 절대 발명되어선 안되는 세계관은 다분히 현대 기준에서 보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증기기관만 계속쓰면 나무 석탄 전부 금방 고갈돼서 세계가 환경오염 개쩌는 디스토피아 내지 멸망으로 달려가고) 

 

발전할 수 있는 세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근데 여기에 아무 이유없이 기술발전이 단절되고, 증기기관 기술의 과장에서 오는 어색함이 있을수밖에 없는데 그 단절의 계기를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메꿔줄 수 있다. 

 

왜 증기기관이 발전할 수 밖에 없었지? 라는 질문에  “세계가 멸망 직전의 위기를 겪어서 대부분의 문명이 파괴되었기에 증기기관 로스트 테크놀로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여러 중간기술들이 실전되었기 때문에 증기기관이 필연적으로 단절적이고 과장스럽게 보일 수 밖에 없음” 이라 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물도, 시대가 시대인만큼 스팀펑크적인데, 메리 셸리의 최후의 인간이 바로 그것.

 

일본 스팀펑크

 

데즈카 오사무가 일본에 스팀펑크를 들여온 이후,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스팀펑크의 결합은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두드러지게 된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모두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스팀펑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삼천포로 잠깐 빠지자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일본 스팀펑크’ 라는 소분류로 일컬어질 정도로

 

(사쿠라 대전, 턴에이 건담,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드읃읃ㅇ)

 

스팀펑크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많다.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한 안노 히데아키는 천공의 성 라퓨타와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에 영향을 받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1990) 를, 아키라로 유명한 오토모 카츠히로는 스팀보이(2004)를 제작했다. 

 

 

일본 스팀펑크의 특징은 대체로 밝은 분위기의 스팀펑크를 지향한다는 것인데,(물론 다 밝은것도 아니고 밝아보이지만 나름 어두운것도 있고 그렇긴하지만) 

 

 

이건 사실 위에서도 계속 말햇듯이 스팀펑크 장르 전체를 놓고 보면 예외적인 모습이다.

 

 

스팀펑크의 기원


 

스팀펑크 장르의 역사적 기원은 19세기에 있다. 

 

이 시대에 이루어졌던 수많은 급진적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은 문학계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sf 라고 부르는 장르 또한 이 시기에 탄생했다.


 

허버트 조지 웰스, 쥘 베른, 메리 셸리와 같은 초기 sf 작가들이 스팀펑크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타임머신(1895)에서 당시의 극단적인 사회계층간의 대립(이 사람은 한때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였음)과 진화론을 엮어, 인간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예측을 내놓는다.  

 

 

먼 훗날 인류는 두개의 상이한 종으로 나뉘어 버린다. 

 

 

부유한 자들의 후손인 엘로이 족은 순수하지만 지능이 낮으며, 가난한 자들의 후손인 멀록 족은 그런 엘로이 족을 사육해서 잡아먹는다.

 

이런 미래 예측은 19세기가 변혁의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모든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어 버리는 세상에서 허버트 조지 웰스는 음울한 미래를 상상한 것이다. 

 

 

쥘 베른은 해저 2만리에서 심해를 보여준다. 남극처럼 아직 미지의 베일에 싸여있던 심해로 가기 위해, 쥘 베른은 당시로서는 아직 조잡했던 잠수함 과학 기술을 과장해, 노틸러스 호를 상상해냈다. 

 

또한 노틸러스 호는 당시의 해양전설을 sf적으로 기묘하게 뒤틀어버린 결과물이기도 했다. 

 

유럽식 교육을 받았지만 영국에 침탈당하고 있던 식민지 인도의 왕자 출신의 복수귀 네모 선장은, 제국주의가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뒤바꾸었는가를 나타낸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비단 스팀펑크 뿐만 아니라 모든 근대 영문학 sf 소설의 조상이기도 하다. 앞의 두 소설과 마찬가지로 프랑켄슈타인은 우울하고 비관적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갈바니즘에서 영향을 받았다. 

 

죽은 개구리 뒷다리에 전기를 흐르게 하면 꿈틀하는 걸 보고, 당시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게 전기를 흘려서 되살리는 상상을 했다. 

 

메리 셸리는 이 부분을 과장했고, 당시 인간 이성과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어떤 결말을 초래하는지 말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기에 소설은 인간 이성이 닿지 않는 극한의 오지인 북극에서 끝을 맺는다.








 

‘스팀펑크’의 탄생

 

장르로서의 스팀펑크라는 단어는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난다.  스팀펑크는 1980년대 사이버펑크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1987년, 케빈 웨인 지터는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대체역사 소설을 쓰던 팀 파워스, 제임스 p. 블레이록, 그리고 자신의 소설들을 묶어서 최초로  ‘스팀펑크’ 라는 표현을 썼다.  이들은 사이버펑크 장르의 조상님이었던 필립 k 딕을 마음속 깊이 존경하던 젊은 작가들이었고, 당연하게도 초기 스팀펑크는 사이버펑크에 깊은 영향을 받아,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공유하게 된다. 

 

팀 파워스의 아누비스의 문(1983)은 스팀펑크 문학의 효시격 작품으로 유명하다. 초기 sf문학들처럼, 아누비스의 문도 음울한 뒷골목의 냄새를 풍긴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는 허버트 조지 웰스에게서, 당대 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파헤치는 모습은 찰스 디킨스에게서 각각 계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누비스의 문에는 걸어다니는 자동기계도 없고, 어딘가 sf적이라기보다는 마법이 난무하는 판타지 세상에 가깝다는 특징이 있다. 

 

사이버펑크 걸작인 뉴로맨서(사이버스페이스 개념과 매트릭스에 영향을 미친걸로 유명.)로 유명한 윌리엄 깁슨도, 브루스 스털링과 함께 이후 스팀펑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작품을 썼다. (차분기관 1990)

 

차분기관은 실제 역사에서 찰스 베비지가 설계한 증기기관 기반 계산기인데, 전기가 아니라 증기를 동력원으로 해서 계산한다는 점이 매우 스팀펑크적이다. 

 

실제 역사에서 차분기관과, 그 후속작이자 일종의 증기기관 컴퓨터였던 해석기관은 끝내 만들어지지 못했지만, 소설속에서 해석기관은 1824년,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곧 증기기관 컴퓨터의 대량생산으로 이어졌다.

 

애니악이 1946년에 출시되는 걸 생각해보면, 실제 역사를 100년도 더 앞지른 것이다. 튜링 완전을 만족하는 컴퓨터가 19세기 초에 대량생산되었기 때문에 정보 혁명이 앞당겨지는 등 역사는 크게 바뀌었다. 

 

 

과학적으로 상상가능하지만 실제 역사보다 고도로 발전한 증기기관 기반의 대체역사적 빅토리아 시대는 이후 스팀펑크의 프로토타입이 되었다.




 

최근의 스팀펑크

 

원래 이쯤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뭔가 살짝 허전한 것 같아서 스팀펑크의 영향을 받은 최근 작품 몇개도 간단히 소개하겠다.

 

일흔 두 글자

 

“눈에 보이는 물질적 우주와는 별도의 어휘적인 우주가 존재하며, 어떤 물체와 그에 조응하는 이름을 결합하면 잠재된 힘이 발현한다고 보는 것이 최근의 추세였다. 어떤 물체가 단 하나의 ‘진정한 이름’을 가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물체는 그 정확한 형태에 따라서 몇 개의 이름을 가질 수도 있고, 이런 이름들은 적명(適名; euonym) 이라고 불린다.”

 

단편집 당신인생이야기에 수록된 일흔 두 글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조금 다른 과학법칙이 작용하는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스팀펑크 소설이다. 테드 창은 이 소설에서 고대의 유대 골렘설화와 이름 숭배, 중세의 호문쿨루스 설에서부터 이어지는 전성설과 현대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한데 섞어서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페르디도 기차역

 

“살찐 육식조肉食鳥의 그림자들이 하늘을 배회했다. 마치 도시의 핵이 비어 있는 것처럼 구르릉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코크스와 목재 그리고 철강과 유리를 실어 그 무게로 살짝 물에 잠긴 다른 배들 사이를, 검은 바지선이 어슬렁거리며 지나갔다. 이곳의 강물은 물을 끈적끈적하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무지갯빛 오물과  폐수, 화학물질 사이로 별빛을 반사했다.”


 

바스라그 연대기로도 불리는 차이나 미에빌의 이 소설 시리즈는 스팀펑크에 마법과 러브크래프트를 첨가한듯한 기괴함을 보여주는 판타지지만, 현실보다 더 냉혹하고, 영웅은 없다.

 소설의 배경인 뉴크로부존에는 개구리 인간도 살고, 머리가 벌레인 인간도 살고, 새 인간도 살고, 뮤턴트도 살고, 인공지능도 살고, 나무 인간도 살고, 악마도 살고, 마법사도 산다. 도시의 한편에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초고층 아파트들의 마천루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역겨운 오폐수가 흐르는 슬럼가 게토가 있다. 이 소설에서는 선악구도가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가장 추악해보이는 등장인물도, 결국 뉴크로부존이라는 도시 자체가 뿜어내는 욕망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좋은 사냥이 되길

 

보통의 스팀펑크가 서구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달리, 동양을 배경으로 하는 스팀펑크도 있는데, 이걸 실크펑크라고도 부른다. 

 

(예전에 올린 글에 지적이 있었는데, 실크 펑크는 켄리우가 자신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만든 단어지 동양풍 스팀펑크를 일컫는 용어가 아니란 것이었다. 맞는말이긴 한데 그냥 실크펑크가 어감이 찰지기도 하고 다들 동양풍 스팀펑크=실크펑크 라는 식으로 쓰는듯? 그럼 그냥 동양풍 스팀펑크라 합시다.)

 

 

켄 리우의 단편집 종이동물원에 수록된 ‘즐거운 사냥을 하길’ 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요괴의 시대가 저문 뒤의 19세기 영국령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데, 넷플릭스 러브 데스 로봇이라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에피소드 중 하나로 영상화 되었으니까 넷플릭스 구독하고 계시다면 시간날때 한번 보세요. 전 엄청 재밌게 봤습니다.

 

 

 

 

 

 

 

 

+이 글 어디서 봤다 싶은 사람도 있을텐데, 옛날에 올렸다가 유튭 조회수 손해볼까봐 지웠던 글임. 근데 지우지 말아달란 사람이 있었던게 마음에 걸려서 그냥 손해볼 생각하고 다시 올림. 

 

 

++이미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글이니까 렉카 유튜버 여러분들 렉카해가지 말아주세요

4개의 댓글

2021.12.21

이름 멋있네. 팀 파워즈 ㅋㅋ

0
2021.12.22

이런거 좋음 ㅋㅋㅋ

0
2021.12.26

와! 바쇽 인피니트!

0
2021.12.26

나디아는 명작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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