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제논의 역설은 어떻게 풀렸는가? (5) - 진정한 뜻

 

 

 

 

 

1

“...그것은 다음과 같은 물음이다. ‘보편적인 논리학이 얼마만큼 가능한가?’ 달리 말해서 최소한 이론적으로라도 논변들을 제시하는 형식과 거기에 기대어 그러한 논변들을 비판하는 표준들 두 가지 모두 영역에 따라 불변적이게끔 논변들을 제시하고 비판하기를 바랄 수 있는가?”

(스티븐 툴민의 “논변의 사용” 중에서)

 

제논의 역설은 무엇을 뜻할까요?

바로 보편적 논리, Universal Logic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런 생각은 라이프니츠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현재는 라이프니츠라고 하면 수학에서 미적분으로, 철학에선 모나드와 예정조화설로 유명하지만, 이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가장 많은 학문적 활동을 한 것은 바로 보편기호학이라는 것입니다.

이 곳에서 인간의 모든 지식을 기호로 넣을 수 있고, 이 기호를 기계를 통해 연산할 수 있다는 일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철학은 그가 말한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지적 논쟁이 ‘이성의 위대한 도구’라고 불리는 한 기계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날 때, 더 이상 목소리를 높여 떠들지 않고, 단지 '계산하자'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논의 역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완벽한 언어, “유리알 유희”, 보편기호학, Universal Logic이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토론의 수학화”는 이중적으로 거짓입니다. 토론은 수학화될 수 있다는 환상과, 수학화라는 환상.

 

이것은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철학계의 공공연한 비밀에 불과합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스티븐 툴민이라는 사람이 “논변의 사용”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보편적인 논리학이 가능한가를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철학자들이 말하는 가능성과 필연성, 그리고 법학자와 과학자와 일반인들이 보는 가능성과 필연성이 얼마나 다른지를 300페이지를 들여 논증합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말의 일부분을 부분적으로 인용하겠습니다.

“천문학자들이 확신에 찬 예측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 하지만 철학자가 필연적 함축을 요구하기 시작하는 순간, … 그 적합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사용된 실험들과 관찰들이 … 인식론자들에게는 가치가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천문학자들의 계산들을 산출해서, 강철처럼 견고해 보이는 논변에 의해서 그들이 예측과 관련된 천체의 과거의 위치에 관한 자료로부터 미래에 그것이 차지하게 될 위치에 관한 예측에로 이행하는 데 그 이론들을 사용하는 방식을 지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철학자의 가혹함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 철학자는 그 정당한 이유에 대해서 그 이론이 제공하는 지지작용을 계속 물고 늘어질 것이다. … 천문학자의 주장은 미래에 관한 것이고, 그의 자료와 지지작용은 현재와 과거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형의 비약 자체가 난점의 원천이며,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어떤 시도가 없는 한, 모든 주장은 모두 다 위험에 빠진다.”

 

이 “논변의 사용”은 현재 “논증의 탄생” 등의 책에서 나오는 등 비형식적 논증을 체계적으로 구성했다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제가 이 책을 읽어보니 이 책은 그런 비형식적 논증의 구성을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이 가장 중요시한 것은, 형식적 논리학의 비판, 그리고 그 당시 분석철학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스티븐 툴민이 목적한 것은 더 나은 논증이 아닙니다. 차라리 리처드 로티의 “교화적 대화”라는 개념이 훨씬 더 비슷한 것입니다.

리처드 로티와 “교화적 대화”가 무엇인지는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2

그러나 우리는 논증에 너무나 많은 힘을 주고 있습니다.

토론에서 또 “논리”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Universal Logic은 존재하지 않으나, 토론에서 “논리”라는 단어가 나온다면 거의 모두 Universal Logic을 지시하거나, 이것과 정반대인 것을 가정합니다. 모두 Universal Logic을 지시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당신은 “논리”라는 단어를 주의해서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Universal Logic을 지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

이 제논의 역설 이야기와 Universal Logic의 이야기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고답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중요함을 알려주는 예를 들어주겠습니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전에 새로운 무신론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유신론을 지지하는 논변을 만드는 신학자이자 분석철학자입니다.

그는 도킨스에게 한번 토론을 해보자고 승부장을 내밀었지만 도킨스가 그 토론을 포기함으로서 유명세를 탄 사람입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논증은 kalam cosmological argument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원인이 있다는 것이 그 논증의 축약인데, 그는 굉장히 길고 엄밀하게 이 논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논증의 전제 중에서 “시간에서 실무한은 존재할 수 없다”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줄곧 이야기한 것입니다. 러셀을 따른 제논의 역설의 가장 표준적인 해답은 실무한이 존재한다고 전제하지만, Max Black이나 James Thomson이나 Jean Paul Van Bendegem은 그것에 의문을 던졌던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놀랍게도 kalam cosmological argument를 비판하는 가장 중요한 반론자 중 한 명이 바로 Adolf Grünbaum입니다. 그륀바움은 논리실증주의자로서, 러셀을 지지하여 러셀적인 제논의 역설 해결법을 제시한 사람입니다. 그는 시간에서 실무한이 논리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크레이그는 실무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위해 supertask를 반론으로 제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제논의 역설은 고답적일 수 있지만, 신은 가장 중요한 논쟁 주제 중 하나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과연 신에 대한 문제는 풀릴 수 있을 것인가?

 

 

4

둘이서 논쟁을 하고, 누군가를 완전히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자기의 뜻을 밝히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토론의 뜻을 이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몇몇 철학자들은 논증, 논쟁, 토론이 아닌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믿었습니다.

 

리처드 로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철학은 체계적 철학이었다고 말하고, 체계적 철학은 인식론을 만들어 그 토대를 만들어야만 했다고, 거기서 철학자들이 논증을 합리화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것을 매우 비판하면서,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철학적 혼란에 빠져 헛돌기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논증 대신 제시한 것은 교양적, 교화적 철학입니다. 우리는 논증을 해야 할 것이 아니라 교화적 대화, 영원한 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모든 서술을 하나로 모아서 본질을 찾으려는 생각은 버려야만 한다고, 대화는 그 대화에 맞는 시대가 지나가면 무의미해질 거라고, 이런 점을 생각했을 때 철학이 발전하거나 체계화되는 것은 오히려 나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논리의 문제로 들어갑니다.

제논의 역설이 보여준 것은, Universal Logic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외의 논리는, 논리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처음부터 설득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체계적 철학은 엄밀하게 살펴보니 애초부터 없었던 이상이란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남은 것은 교화적 철학뿐입니다. 이것도 인식론적이긴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인식론과는 다르게 토대를 세우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아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인식 틀의 변경, 초점 변경 뿐입니다. 이것에 대한 궁극적 목표는 바로 마지막에 남은 치유라는 것입니다.

철학의 함정 속으로 들어간 사람에게 개종할 수 있게 만드는 인식 틀을 주는 것, 설득을 통해 초점을 바꾸게끔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성으로 생각하는 논변만을 중시했던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에 대한 비판이고 제논의 철학에 대한 비판인 것입니다.

누구나 철학적 함정에 빠질 수 있고, 어떻게 보면 모두가 그러한 철학적 질병을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다른 점은 타인에 대한 태도입니다.

훨씬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논쟁으로부터 자신의 의견을 바꾼 사람들은 그 자신이 논증 때문에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논증 안에 있던 대화가 타인과 대화하고 싶었던 그의 태도와 결합했기 때문에 철학적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논리는 철학적 질병의 치유라는 면에서 “ㅋㅋ”나 다를 바 없습니다.

 

“누군가가 디오게네스의 앞에서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을 지지하며 운동을 부정했다.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것이 움직이는 듯이 보이나 실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폴짝폴짝 뛰며 그 사람의 주위를 뱅뱅 돌았다.”

 

제논의 역설에 대한 디오게네스의 비판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이것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5

논리에 대한 예전 생각과 비탄 이후의 생각은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토론을 봅니다.

이 글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제논의 역설은 반박불가합니다. 논증은 끝에선 결국 “단지 우리는 그렇게 한다”란 호소에 불과하기 때문에 라이프니츠적인 Universal Logic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토론의 의미는 애초에 없었거나 잊혀졌고, 교화적 대화라는 것만이 남게 됩니다.

 

저는 정말 이것에 대해 호소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토론을 신격화했습니까?

왜 우리는 원래 재미와 정보를 얻고 싶어서 했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논리와 팩트란 단어를 엉망진창으로 넣어서 쓴 댓글을 봐야 하는 것입니까? 왜 논리와 팩트를 말하는 사람일수록 더 안 좋은 주장을 하는 것입니까? 왜 우리들은, 다른 사람이 말만 하면 일단 아니라고 하고, 남을 존중하는 비판 대신 어떻게든 비꼬기만 하고 앉았고, 대화가 되지 않은 채 자기 주장만 말하는 사람에게, 그저 논리와 팩트라는 단어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주었던 것입니까?

 

저는 그들이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논리", "팩트", "반박", "감성", "명료".

이렇게나 많이 쓰이고, 너무나 분명해 보인 이 단어들이, 사실은 얼마나 낯설고 혼란스러운지, 얼마나 이상한 위치에 있었는지.

 

이제는 토론을 원래의 위치로 옮겨야 할 때입니다.

토론의 진짜 의미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교화적 대화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어떻게 보면 리처드 도킨스와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새로운 무신론자에 대한 비판으로 보일 수도, 조던 피터슨과 벤 샤피로와 같은 대안 우파에 대한 비판으로 보일 수도, 전여옥과 유시민 같은 한국의 유명 토론가에 대한 비판으로 보일 수도, 혹은 키배로 가득 찬 한국 커뮤니티에 대한 비판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은 실제로 그러기도 합니다. 그들은 어떠한 "인식 틀"을 중시했고, 그것을 심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그 "인식 틀" 자체에 대한 비판입니다. 따라서 저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인식 틀에 대해 비판해야겠지만, 여기서 그것에 대해 글을 쓰기엔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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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스는 무의미한 달리기를 멈추었습니다.

아킬레스는 거북이와 대화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자 어느샌가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앞서갔습니다.

 

4개의 댓글

2021.12.08

첫글에 6번글부터 시작하길래 뭔가했더니 이런 빅픽쳐를 그렸었다니ㅋㅋㅋㅋ

뭔가 가독성이 좀 떨어져서 첫글 읽다 말았었는데 내일 첫글부터 쭉 다시 읽어볼게.

마지막 글을 읽고 다시 처음 글로 돌아가게하는 글은 정말 오랜만이었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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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8

너무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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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9

진짜 재밌게 읽었다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몬능적인 거부감이 뭔지 알게된거같아. 추천 백개 주고싶다 중간에 이쁜여자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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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때문에 딱밤 마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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