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제논의 역설은 어떻게 풀렸을까? (1) - 배신당한 상식

글이 굉장히 깁니다. 줄이려고 해도 크게 좋아지진 않았습니다.

너무 길거나 어렵다고 느껴지면 "뇌절 파트"라고 괄호를 친 게 있으니 그걸 빼서 읽으세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물음이다. ‘보편적인 논리학이 얼마만큼 가능한가?’ 달리 말해서 최소한 이론적으로라도 논변들을 제시하는 형식과 거기에 기대어 그러한 논변들을 비판하는 표준들 두 가지 모두 영역에 따라 불변적이게끔 논변들을 제시하고 비판하기를 바랄 수 있는가?”

(스티븐 툴민의 “논변의 사용” 중에서)

 

이 글의 원래 제목은 “토론의 수학화 불가능성” 입니다.

 

이 글은 예전을 위한 글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토론으로 얻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보는 글입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거의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6

"제논의 역설은 미분의 개념과 운동의 개념을 고안한 근대 고전 물리학의 발달에 의해 반박되었다. 제논은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면서 물체가 이동한 거리만을 고려하여 물체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려하지 않았다. 실제 물체의 이동은 움직이는 데 걸린 시간으로 움직인 거리를 나누어서 속도를 구하여 비교해야 한다. 즉 물체의 이동은 속도에 의해 표현된다.

 

수학적인 해결법으로는 고등학교 2학년 과정에서 배우는 무한등비급수를 이용할 수 있다." - 위키피디아

 

이것은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제논의 역설의 반박 방법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반박이 아닙니다.

이 반박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설에 나와 있는 더 깊은 토끼굴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 역설을 진짜로 푸는 방법을 설명할 것입니다.

 

 

7

그 전에, 사람들의 생각처럼, 하나의 방법을 제거해봅시다.

철학적 문제를 제외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오직 과학적인 문제와 수학적인 문제에 맡겨서 상황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물리학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물리학을 공부함이 없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가망 없는 것이다. 만일 이런 철학적 문제에 해답이 있다면 그것은 수리물리학의 방정식으로 씌어지게 될 것이다."

논리와 확실성을 추구한다고 해봅시다.

그리고 철학적인 방법은 될 수 있는 한 제거해보도록 하죠.

 

 

8

제논의 역설에 있는 두 가지 문제점을 먼저 제시하겠습니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보다 10배 빨리 달릴 수 있다고 가정하고, 거북이를 아킬레스보다 100m 앞에서 출발시킨다. 아킬레스가 100m를 달려가면 거북이는 10m를 가고, 따라잡기 위해 아킬레스가 10m를 가면 그동안 거북이는 1m를 나아간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기 위해 달린다 하여도 그 시간동안 거북이는 움직이므로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 위키피디아

 

제논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분명 잘못 전제한 두 가지의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하나는, 저기에 있는 해결 방법이 말한 것처럼, 물체의 운동에서의 거리만을 고려했지 물체의 운동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도라는 개념에서 시간이 필요함에도 시간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어떠한 값을 무한하게 더하는 것의 답이 필연적으로 무한해지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무한히 더한다는 것으로 무한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이것을 무한등비급수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역설이 전부 반박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논증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전부" 반박되었다고 하기에는 다른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단지 전제일 뿐이므로, 역설에서 문제가 된 전제가 고쳐진 새 역설을 보여준다면 어떻게 할까요?

 

 

9

이제 지금 상황에서 제논의 역설이 진짜로 어떻게 적혀 있었는지 말하는 게 좋은 것 같네요.

이 역설이 온전히 남겨져 있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서 나옵니다. 거기에 있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우리가 알던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논의 역설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운동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첫번째는, 움직이는 것은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에 앞서 먼저 그 중간에 도달해야만 하기 때문에 운동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에 관한 논변이다.”

첫번째 역설은 이분법의 역설입니다. 시작점 A에서 목적지 B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A로부터 B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선분 AB의 중점 C를 통과해야 하고, 또 선분 AC의 중점 D를 통과해야 하고, 이렇게 무한개의 중점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것은 무한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므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대의 방향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선분 AB의 중점 C를 통과해야 하고, 또 선분 BC의 중점 D를 통과해야 하고, 이렇게 무한개의 중점을 통과해야 한다는 역설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두번째는 이른바 아킬레우스의 역설이다. 달리기 할 때에 가장 느린 자는 가장 빠른 자에 의하여 결코 따라잡히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따라잡기) 전에 쫓는 자는 달아나는 자가 출발했던 곳에 도착해야 하고, 그래서 더 느린 자가 항상 약간이라도 앞서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 역설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입니다. 아킬레스는 조금이라도 먼저 출발한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킬레스가 거북이의 위치에 닿았을 때, 거북이는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가 있을 것이고, 이러한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테미스티오스라는 주석가가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의 이 부분에 “가장 느린 자” 대신 “거북이”로 바꿔서 주석을 달았는데, 이 이후부터 아킬레스와 거북이란 말로 남게 되었습니다.)

 

“세번째는, 움직이는 화살이 정지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지금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하는 데서 나온다.”

세번째 역설은 화살의 역설입니다. 시간은 최소의 단위인 ‘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제논은 말합니다. 이제 쏜 화살은 움직이거나 멈춰 있어야 하는데, 만일 화살이 움직인다면 순간은 적어도 어느 순간의 시작점이란 부분과 끝점이라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최소의 단위인 ‘순간’을 분할할 수 있다는 얘기로 모순이 되므로 화살은 정지해 있어야만 합니다. 날아가는 화살은 각 순간마다 정지해 있고, 정지로 이루어졌으므로 운동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역설은, 지금 말하지 않을 것이지만, 거의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글 이후부터는 이 역설들은 마치 하나인 것처럼 언급되고 서로 바뀌어가며 쓰게 될 것이니 이 점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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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논의 역설이 저 두 가지 문제점에 어떻게 대응하는 지를 생각해봅시다.

 

첫번째 지적은 물체의 운동에 필요한 시간이란 개념을 도입한 속도가 그렇게 잘 정의가 되지 않았다고 대응할 것입니다.

화살의 역설을 생각해보죠. 화살의 속도가 무엇인지 확인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제논이 정지되어 있다고 말하는 화살은 그 시간이 “지금들”에서의, 순간으로서의 지금입니다. 직선에서 점의 길이가 0이라고 하는 것처럼, 여기서 나온 시간은 0입니다. 정지되어 있다고 말했으니 거리는 0이죠. 이 화살의 속도는 0/0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값은 정해지지 않는 값이고, 따라서 아직까지 문제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지적은 무한히 더한 값이 무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 이 무한히 더한 값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대응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무한급수의 값이 유한하느냐 무한하느냐를 두고 수렴한다, 발산한다고 하는데, 발산하지 않는 무한급수가 있다는 사실이 지금 이 급수, 100미터를 달려간 뒤 10미터를 달려간 것을 반복한 이 급수가 발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급수가 수렴하거나 발산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1

여기서 또다른 제논의 역설에 대한 논박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하나는 시간이나 공간이 플랑크 시간, 플랑크 길이로 나뉘어져 있다는 물리학적인 논박입니다. 플랑크 길이라는 게 있어서 이것이 나뉘어질 수 없으니 무한히 나뉘어지지 않으므로 제논의 역설은 풀려진다는 입장을 가지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위에 있던 대응에 대한 재반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수렴판정법을 도입하면 이것이 수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하급수의 수렴판정법을 쓰면 100m부터 뛰어간 아킬레스는 길이가 1/10만큼 줄어들으니까 수렴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0/0이 되는 화살의 경우에 대해서도 현대의 미분법을 사용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을 할 것입니다.

 

 

12

하지만 이 논박들은 사실 잘못되었습니다.

 

첫째로, 플랑크 길이와 플랑크 단위에 대해서는, 이것이 사실 이런 의미를 전혀 지니지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플랑크 길이는 플랑크 상수로부터 정의되는데, 광자의 에너지와 진동수의 관계로서 나오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나뉘어져 있다는 있다는, 이산적이라는 논의는 오직 이것을 쓰는 성질에서 나올 뿐입니다. 광자가 내는 에너지가 양자화되었으므로, 그때까지 연속적이었던 현상들이 계단처럼 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이것이 에너지 그 자체의 양자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플랑크 길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랑크 길이는 빛의 속도로 가는 광자가 플랑크 시간만큼 간 거리로 정의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양자역학이나 중력의 공식들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입니다. 그래서 플랑크 길이가 의미 있는 최소한의 거리라고 불리게 되죠. 하지만 이것이 플랑크 길이가 우주의 최소 길이임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비유를 들어보죠. 어떤 외계인이 지구를 관찰합니다.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아파트에서 내려갈 때 계단을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계단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계단과 그 위에 있는 계단 사이에 있는 의미 없는 공간은 사용하지 않고, 오직 계단이 나와 있는 “의미 있는” 공간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플랑크 길이가 우주의 최소 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이 아파트에서 계단을 사용한다”에서 “아파트의 공간 자체가 이산적이고 단절적이다”를 이끌어낸 외계인이나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주는 이산적일까요 연속적일까요? 이것에 대한 물리학자의 의견은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플랑크 길이만으로는 이 논의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실험상의 결과가 아니더라도 물리학자들은 이에 대한 이론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 물리학자인 헤르만 바일의 논증을 살펴볼까 합니다. 헤르만 바일은 공간이 이산적이게 된다면 큰 결함이 생기기 때문에 공간이 연속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 큰 결함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있는 공간이 사각형으로 구성된 이산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만일 이런 상태에서 직각삼각형은 어떻게 구성될까요? 이산적인 공간에 가로로 8칸, 세로로 8칸인 직각삼각형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직각삼각형의 대각선은 사각형의 이산적인 공간에 있으므로 가로, 세로와 같은 8칸을 가지게 됩니다. 사각형이 더 촘촘해져서 10칸, 15칸, 30칸으로 삼각형을 만든다고 한들 똑같이 대각선은 가로나 세로와 같은 길이를 가질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빗변의 길이가 n√2 -n만큼의 차이가 가까워지지 않은 채 계속 나므로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공간은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죠. 따라서 공간은 연속적이라는 논증입니다.

플랑크 길이나 이산적인 공간을 가정하므로 풀린다는 결과는 틀렸거나 더 이상한 문제들을 끌어들이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다른 논박을 살펴보겠습니다. 수렴판정법을 쓰면 이 등비급수가 수렴한다는 것은 극한의 정의가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판정법이 기하급수 판정법이든, 근 판정법이든, 비 판정법이든 극한의 정의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가 먼저 물어보아야 하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극한값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극한값이 무엇인가를 따지기 위해서 현대 수학은 엡실론 델타 논법이라는 것을 사용합니다.

 

 

{A

뇌절 파트 A입니다. 괄호 안에 들어간 글은 많이 어려우니 넘기셔도 됩니다.

 

 

100m 뒤에 10m를 뛰어간 아킬레스를 생각해볼 때, 여기에서 쓰이는 엡실론 델타의 내용은 이것과 같습니다. 

“임의의 e>0에 대하여 M>0이 존재하여 x>M이면 항상 dist(f(x)-L)<e 일때, L은 f(x)의 극한값이다”

어려워보이는 이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x와 f(x)를 맞추기 위해, x는 뛰어간 것을 실행한 횟수로 두고, f(x)는 뛰어간 거리라고 두었습니다. 이 함수의 정의역은 자연수밖에 없습니다.

e는 마치 error를 뜻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dist(f(x)-L)의 error, 차이가 어떻게 나는지를 검증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dist(f(x)-L)이라는 것은 f(x)-L의 절댓값입니다. f(x)-L와 L-f(x) 중에서 양수인 값을 고르는 함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지금 아킬레스의 경우에서는 L-f(x)만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M이 하는 역할을 보면, x가 커질 때 L-f(x)를 만족하는 것을 두고 M보다 큰 경우라고 둔 것이나 다를 바 없어집니다.

M을 사용하는 것 대신, “x가 충분히 커진다면”이란 말로 교체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이것대로 저 엡실론 델타 논법의 정의를 좀 알기 쉽게 보겠습니다.

 

“임의의 e>0에 대해, x가 충분히 커진다면  L-f(x)<e를 유지할 때, L은 f(x)의 극한값이다”

 

이제 직접 대입해봅시다.

f(x)는 뛰어간 거리가 되었고, L은 111.1111...입니다.

error인 e가 커지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e를 100으로 잡는다면 x가 1일때 L-f(x)는 11.1111...이 되므로 이미 조건을 만족하죠.

e가 작아지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e가 1/1000이라고 둡시다. x가 몇이 되어야 L-f(x)임을 만족합니까? x가 계속 커져서 f(x)가 110, 111, 111.1 로 계속 반복할 것인데, 그렇게 된다면 L과 f(x)의 차이가 0.1111..., 0.0111..., 0.0011... 로 계속 줄어들 것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x가 5 이상인 때부터는 0.0001...에서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L-f(x)<e를 유지한다고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e에 어떤 값을 대입하더라도 계속 줄어드는 L-f(x)를 보아서  L-f(x)<e가 나올 것이고, 이 방법을 통해서 현대수학은 L이 이 함수의 극한임을 정의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인가 설명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f(x)가 L에 그래서 도달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여기서 하고 있는 말은 L과 f(x)의 차이가 e보다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뿐이고, x가 커질 수록 그 차이가 점점 줄어듬을 보여줄 뿐입니다. 

 

 

뇌절 파트 A가 끝났습니다.

}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L에 도달하는지,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잡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치 아킬레스와 거북이는 이만큼 가까이 있을 수 있다고만 알려주는 것 뿐입니다.

 

왜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냐면, 이것이 가무한만을 사용한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가무한이란 잠재적 무한이라고 불리는데, 단지 원소들이 추가될 뿐 무한해지지는 않는 경우를 가무한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자연수로 나열된 수열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수열에서 유한한 자연수만을 선택할 경우 그 끝나지 않은 수열 뒤에서 그 선택한 자연수보다 더 큰 자연수가 있을 것인데, 이 상황은 그 어떤 유한한 자연수를 선택하든 똑같을 것입니다. 완결되고 확정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오직 “그보다 더 많아질 수 있다” 는 점으로 무한에 대한 일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 때문에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사례는, 또한 극한에 대한 설명은 가무한만을 사용한 설명입니다. 확정적으로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잡는 일 없이,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가까워진다고 해도 “그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는 점으로 현대 수학은 극한을 설명합니다. 이 방법으로는 무한한 일에 대한 설명을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글이 어려우니까 여기서 좀 쉬세요...}

 

 

 

13

이렇게 된 상황에서, 이 역설에는 더 중요한 점이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논이 역설을 만들 때 더 큰 목적이 있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제논이 이 역설을 만들어낸 이유는 운동을 부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운동을 부정하고자 했던 이유는, 그의 스승이자 동료였던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을 지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파르메니데스도 제논처럼 운동을 부정하는 사상을 취했는데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소크라테스 전 시대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자연과 천체를 탐구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중요한 관찰을 하나 하게 되었습니다. 달이 그 모습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불빛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어두워지는 것뿐이고, 달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여기서 그는 자연을 어떻게 접근해야 진정한 진리를 얻는지를 알아내려 했습니다.

그는 감각적인 경험은 (달의 사례처럼) 진리를 얻지 못하는 방법이고, 오직 이성으로 생각하는 논변만이 진리에 향하는 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논증을 펼치게 됩니다.

파르메니데스가 말하길,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있다”(혹은 “이다”)라는 길이 있고,

다른 하나는 “있지 않다”(혹은 “이지 않다”)라는 길입니다.

그는 그리고 “있지 않다”라는 길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말해지고 사유되기 위한 것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있음을 위한 것”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논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없다는 것은 없다. 없다는 것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있다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는 빈 공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빈 공간이란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은 “있지 않다”라는 길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그는 생성이나 소멸과 같은 개념을 부정합니다. 생성이라는 말이 쓰이려면 “언젠가는 없었다가 언젠가는 있게 되었다”라는 말을 써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한 “언젠가는 없었다”라는 표현은 “있지 않다”는 길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간을 구분하려고 하는 모든 행위도 부정합니다. 구분할 수 있으려면 “여기는 ..이지 않고 여기는 ..이다”라는 말을 써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한 “여기는 ..이지 않고”라는 표현은 “있지 않다”는 길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이 세상은 단 하나의 “있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간에 의해 생성되거나 소멸되는 것 없이 “그 자체로 놓여 있으며”, 모든 방면으로부터 완결되어 있다고 논증을 펼쳤습니다. 진흙을 “잘 둥글려진 공의 덩어리” 모양으로 만든 것처럼, 이 세상 하나가 존재로 꽉 차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학설을 위해 그는 운동을 부정합니다. 운동이라는 것이 있으려면 “이때 ..에 있었다가 이때 ..에 있다”라는 말을 써야 하지만, “..에 있었다”라는 표현은 “있지 않다”는 길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그 모든 운동은 무엇일까요? 달이 햇빛에 가려지기만 할 뿐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처럼, 감각적인 경험은 사람들을 많이 속이고 있습니다. 파르메니데스는 감각은 기만적인 것이라 믿어서는 안되고,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굉장히 나쁜 논리로 보일 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논증입니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논증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논증이라는 점을 중요시한 칼 포퍼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파르메니데스의 증명이 논박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하나의 논박이며 경험적인 이론에 대한 그리고 변화가 존재한다는 이론에 대한 분명히 많은 시험을 가진 논박이다. 제논과 고르기아스의 증명도 그러하다. 그리고 물리 수학적 증명들 중 대부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 증명은 간접적이기 때문이다. 논박은 논증의 논리, 즉 증명의 논리 영역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린다. 이것은 예전의 소크라테스에게 그리고 내 생각에는 플라톤에게 최고의 영예를 얻고 있다.”

 

제논은 파르메니데스와 20년의 터울을 갖는 제자이자 동료였으며, 파르메니데스의 의견을 반대하는, 특히 운동의 없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반박들을 논파하기 위해 이 역설을 세운 것입니다.

제논이 제자가 된 뒤부터 약 30년 동안 논증의 형태는 제논의 역설의 형태처럼 고도로 추상화되었습니다.

 

이것까지가 제논의 역설에 대한 뒷배경입니다.

 

 

 

14

제논은 최초로 논리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전달한 사람입니다.

그의 스승인 파르메니데스는 내용은 있었으나 형식은 하나의 운율을 가진 시로 자신의 철학을 표현했고, 파르메니데스의 라이벌인 헤라클레이토스는 오직 명언으로만 자신의 철학을 표현했죠.

바로 이 제논이란 사람부터 자기의 이론을 논리로 전달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제안이 나옵니다.

이것이 원래 역설이 아니라 제논의 논증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봅시다.

이 논증을 내려놓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운동을 부정한다는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역설은 사라지고, 이것은 오히려 오래 전 사람의 불충분한 주장으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내려놓는 것은 반박이라, 논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제논이야말로 이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꼬여 있는 문제를 제시한 뒤, 상대방이 반박하지 못하면 그 문제가 참이라고 주장하는 수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상대방이 그저 문제를 내려놓는 것에 그친다면, 제논은 그의 이론이 참이라고 계속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토론의 수학화가 가능한가?

과연 논리에 반박하지 못했다고 그의 이론을 참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말입니다.

 

 

제논은 어쩌면 논리라는 오류를 인식한 최초의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는 어쩌면 그 이후의 세상과 인류의 모든 역사를 수반한 논리에 대한 희망엔 맨 처음부터 비논리적인 낙인이 찍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15

러셀은 제논의 역설이 아주 심도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해결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논부터 오늘날까지, 각 세대의 최고의 지성은 차례로 문제를 공격했지만, 대략적으로 말하면,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이것을 완전하게 풀었다. 수학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한 이 해결책은, 더 이상 최소한의 의심이나 어려움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명확하다. 해결법은 데데킨트가 처음 시작해서 결정적으로 칸토어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래서 칸토어가 어떻게 해결한 것일까요?

 

러셀이 말하는 칸토어의 제논의 역설 해결법은, 초한수와 측도론을 사용하는 증명입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역설을 해결할 때는 초한수를 씁니다.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있습니다. 아킬레스가 처음 거북이가 있었던 위치에 도달하면 1번째라고 하고, 아킬레스가 그 뒤의 거북이가 있었던 위치에 도달하면 2번째라고 합시다.

이렇게 3번째, 4번째… 를 반복하여 무한히 반복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 역설이었습니다.

여기서 칸토어가 한 것은 초한수를 둔 것입니다. 무한한 수에 대한 서수를 초한수라고 합니다. 보통의 수는 무엇이 얼마나 있느냐를 확인하는 기수인데, 이것이 아닌 무엇이 어떻게 나열되어 있느냐를 확인하는 서수를 두면 무한에 대한 경우 기수와는 다른 결과를 가지게 됩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초한수는 ω이라고 하는데, 이후부터 ω+1, ω+2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아킬레스는 1번째에도 도달하지 않고 2번째에도 도달하지 않지만, 무한한 수인 ω번째에는 거북이와 같은 위치에 도달하고, ω+1번째에는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는다는 설명으로 역설을 해결합니다.

 

세번째 화살의 역설을 해결할 때는 측도론을 씁니다.

시간은 최소의 단위인 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실수선은 점으로 이루어졌고, 점의 길이는 0입니다. 그리고 0부터 1까지의 구간의 길이는 1입니다. 

측도는 길이에 대한 일반화입니다. 구간이 더해지면 측도가 더해지고, 구간이 평행이동하면 같은 길이므로 측도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 측도는 일반적 산술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직선에 있는 점의 개수로는 측도의 크기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측도가 0보다 큰 점들의 집합은 셀 수 있는 집합보다 훨씬 더 큰 셀 수 없는 집합인데, 그래서 설령 무한한 수의 점이라 하더라도 셀 수 있는 집합, 예를 들어 유리수들을 모은 집합은 측도가 0입니다.

따라서 이 측도를 사용하여, 화살이 순간, 점에 간 길이는 0이고, 무한히 더하는 것은 셀 수 있는 무한으로 제한되었으므로 0을 더하는 것으로는 0밖에 되지 않지만, 그 구간의 측도는 0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으로 역설을 해결합니다.

 

(현재는 이것이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 내용에 필요하므로 참고의 용도로서 여기에 올립니다.)

 

역설을 해결한다고 꺼낸 도구가, 딱 알맞게도, 그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초한수와 측도론인 것입니다.

이것으로 역설은 해결이 된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논의의 끝이라고 보여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논의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2개의 댓글

2021.12.07

근데 왜 문단이 6번부터 시작하는거야? 이전글 있는 줄 알고 찾아봤네

1
2021.12.11

미분 정의를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렇긴 하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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