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괴담

[자작] 자취 (2/2)

자취 (2/2)

 


가위를 처음 눌린 그 날 이후로 나는 방문을 닫고 자게 되었다.
문 틈새로 내 쪽을 바라보던 흰 자위밖에 없는 눈이 생각나서
며칠 동안은 잠드는 것이 무서웠지만 얼마 지나자 공포심은
시간에 의해 점차 희석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 다시 밤비가 내리는 어느 날
나는 다시 가위에 눌린 채로 깨어나게 되었다.

저번과 마찬 가지로 가장 먼저 깨어난 감각은 청각이었다.


시계 초침소리와 빗물이 내려가는 배수관 소리.

이번에도 눈은 반쯤만 흐릿하게 떠졌다.
주변은 온통 어둠에 덮여 있었고 방문도 내가 닫고 잤기 때문에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방문 밖에 뭔가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한층 예민해진 청각을 통해

어린 아이의 발자국 소리.
나무로 된 의자를 뒤로 끄는 소리.
무겁지 않은 뭔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불안한 기분이 들어 나는 빨리 가위에서 벗어나려 온몸에 힘을 주었다.

 

"으으으.. 으으..."

무슨 소리지? 
힘을 주는 것도 잊고 소리의 근원을 찾다가
그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온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일순간 밖에서 나던 소리가 멈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가위가 눌린 채로 겪는 정적 또한 
참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쯤
아주 작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방문을 두드리는 위치는 문고리보다 아래인 듯 했고
나는 저번에 가위 눌릴 때 보았던 그 아이가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올 것만 같아서 필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똑. 똑. 똑. 똑. 똑.

 

노크를 두드리는 소리는 아까보다 일정하고 또렸했다.
나는 제발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느 새 눈물이 맺히는지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노크하는 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가위가 풀리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숨이 쉬기 편해지고 시야가 확장되면서 
마치 이 방을 덮고 있던 알수 없는 엷은 필터가 벗겨져
정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깨어나기 직전. 눈을 뜨려는데
갑자기 나의 의식이 빨려들어가 듯 다시 가위에 눌린 상태로 돌아왔다.
너무 놀라서 정신적인 비명이 흘러나왔다.

 

방문 쪽에서 다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노크소리는 계속해서 빨라졌다

 

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
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

 

노크는 끊기지 않고 점점 빨라지다가 
이제는 방문이 세게 흔들릴 정도로 강해졌다.

눈가에 눈물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닦을 수도 없었다.
나는 귀를 막고 싶은 심정으로 단속적으로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파묻히듯 의식을 잃어갔다.

 

다음 날 나는 룸메에게 어제 겪었던 얘기를 해줬다.
룸메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지만
한층 초췌해 보이는 내 얼굴을 보곤
'기가 허해진 거 같은데 잘 챙겨먹어라.'
하고 걱정하면서
'그래도 이번 학기까지 나간다는 말은 하지마.'
하는 진담이 섞인 듯한 농담을 건넸다.

 

----

 

너무 무서웠던 가위 눌림을 겪은 이후로
나는 잠이 드는게 무서워졌다.

그래서 새벽에 친구가 들어오고 나서 잠이 들거나
방에 불을 다 켜놓고 자는게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그런 일상이 2주일 정도 지났을까?
나는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밀린 레포트를 작성하다가
잠깐 침대에 누웠는데 이제껏 설친 탓에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는지 그 상태로 잠이 들었다.

 

깊은 잠을 자던 나는 갑자기 들려온 쿵하는 소리에
의식이 수면 위로 천천히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깨어났다. 

 

눈꺼풀이 아직 덮여 있었지만 방 불을 켜고 잔 덕에
눈꺼풀 위로 밝은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안들리네.
하고 생각하자 마자 문고리를 돌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몸이 막대기처럼 경직되었다.
방문을 열려는 걸까?
혹시 이 방문이 열리면 그때 그 아이와 마주치게 되는 걸까
하는 극도의 공포감에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웠다.

 

철컥철컥. 철컥철컥. 철컥철컥.

 

문고리를 돌리는 듯한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 다르게 어딘가 현실적인 소리처럼 느껴졌다.

 

눈을 뜨자. 
하고 마음먹은 순간 눈이 떠졌다.
강한 형광등에 순간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철컥철컥. 철컥철컥. 철컥철컥.

 

문고리를 돌리는 듯한 소리는 실제로 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방문의 문고리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가만히 있고 싶다는 두려움을 견디며 
나는 천천히 자리에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내 방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부엌 불은 꺼져 있었다.

 

철컥철컥. 철컥철컥. 철컥철컥.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는 동기의 방에서 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동기의 이름을 불렀다.

 

일순간 정적이 흐른 다음.
갑자기 문을 쾅쾅 치면서 동기 방의 문고리는
아까보다 더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에 
나는 동기의 방문을 세게 열어 젖혔다.

 

문은 의외로 평범하게 열렸다.
동기는 방문 앞에서 넘어졌는지 바닥에 앉은 채로
잔뜩 축소된 동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깊은 새벽이었지만 더 이상 잠이 오질 않을 것 같아
나와 동기는 식탁에 앉았다.

 

"무슨 일이야?"

 

나는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 듯한 동기에게 조심스럽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동기는 경련하는 듯 조금 떨다가 가슴 쪽을 쓸어 내리며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해줬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 반쯤이었다고 한다.
알바 끝날 때 쯤에 손님이 준 술을 한 두잔 마셔서 인지 약간 알딸딸 기분에
빨리 옷갈아 입고 대충 씻고 잘 생각에 붙박이장에 옷을 정리하려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본능적인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이
붙박이 장의 옷을 살짝 걷었는데 그 곳에 10살 쯤 되보이는 
아이가 쪼그린 채로 자신을 보고 있더라는 거였다.

 

나는 여기까지 듣고 소름이 쫙 끼쳤다.

"혹시 흰자위만 있지 않았어? 마치 목에 졸린 시체처럼."

 

동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곤 계속 말을 이었다.

너무 놀라서 방 불을 켜려고 해봤는데 방불도 켜지지 않고, 
도망치려고 방문 문고리를 돌려봤는데 언제 닫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방문이 아무리 세게 돌려봐도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내가 동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방문을 열어줬고
그제야 다리에 힘이 쫙 풀리면서 바닥에 주저앉게 되었다고 했다.

 

나와 동기는 이제까지 겪었던 얘기를 몇 번 더 나누며
날이 밝으면 다른 곳으로 빨리 이사가는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이사를 위해 간 부동산 중개사업소의 아저씨는 
이상하리 만큼 별다른 질문없이 처리를 해주었다.
한 달 반만에 나가는 거라 왜 나가는 지에 대해 이것저것 물을 줄 알았는데
처리는 아주 조용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모든 처리가 끝나고 사업소 문을 나가려 자리에 일어 서는데
아저씨가 굉장히 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학생, 혹시나 이상한 소문내지는 말아요."

나는 어떤 소문을 말하는 거냐고 되물었지만
아저씨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가라는 손짓 후 등을 돌렸다.

 

----

 

그렇게 소름끼쳤던 자취방은 기억에서 추억으로 천천히 바뀌어 갔다.

2학기가 시작된 후 얼마 지나 학생식당에서 
우연찮게 룸메이트였던 동기를 만나 자연스럽게 합석하게 되었다.
서로 안부를 묻던 차에 동기는 그 때 그 자취방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나 여름방학 동안에도 예전에 일하던 술집에서 계속 일했거든?
 거기에 계신 주방 아주머니한테 그 자취방에 대한 이야기를 어쩌다가 했는데
 깜짝 놀라더니 이 얘기를 해주더라구."

 

나는 한껏 긴장해 이야기를 계속 해보라고 했다.

 

"이 동네에선 꽤 유명했던 이야기라고 하더라.
 지금부터 2~3년 전에 우리가 살던 투룸에 30대 쯤 되는 미혼모와 아들이 같이 살았었대.
 아들이 어디가 좀 불편했다고 하는데 장애인인지는 모르겠고
 엄마가 행실이 좀 안좋았다더라구.
 매일 애가 우는 소리에 옆집, 윗집, 아랫집 할거 없이 항의도 많이 들어오고
 밤에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새벽에 들어와서는
 새벽부터 아침까지 집에서 뭘 부수는 소리랑 애 우는 소리가 계속 나고 그랬대.

 그러다가 한동안 조용해져서 좀 이상하다 했는데 
 집세가 계속 밀려서 집주인이 찾아가보니 글쎄 모자가 자살한 상태로 발견됐다 하더라.

 엄마가 먼저 아들 목을 붙박이장 문고리 쪽에 매달아 죽이고는 
 자기도 욕조에서 손목을 긋고 죽어서 집주인이 발견했을 때는
 온 집안에 시체썩는 냄새며 벌레들이 우글거렸다고 하더라구."

 

나는 오싹해지는 기분을 다스리며 왜 우리는 그런 소문을 못들었을까. 하고 물었다.

친구는 어딘가 허탈해 보이는 웃음을 보이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꽤 유명한 이야기더라. 
 우리같이 타지에서 온 얘들이나 잘 몰랐던거지.
 하여튼 너무 조건이 좋다 했어."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맛이 없는 학식을 입에 넣으면서
그 때 보았던 중개사무소 아저씨의 탁한 눈빛의 의미를 곱씹었다.

 

 

끝.

1개의 댓글

2021.07.15

중개소 아저씨가 쓰레기네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2760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체포되기까지 28년이... 1 그그그그 6 4 일 전
2759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두 아내 모두 욕조에서 술을 마시고 익사했... 그그그그 2 8 일 전
2758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공소시효만료 11개월을 앞두고 체포된 범인 그그그그 3 10 일 전
2757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범인으로 지목받자 딸에게 누명을 씌우려다... 그그그그 4 11 일 전
2756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국민MC의 죽음. 경찰은 아내를 의심하는데... 그그그그 5 15 일 전
2755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전 아내에게 집착한 전남편. 8 그그그그 3 17 일 전
2754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3,096일 동안 나는 그의 XXX였다. 8년만에 ... 4 그그그그 5 17 일 전
2753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사라진 남성이 이미 카레로 만들어졌다고?? 3 그그그그 2 18 일 전
2752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1년마다 1명씩 잠을 자다 사망한 가족. 홀로... 4 그그그그 5 22 일 전
2751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괴물을 쓰러뜨렸다." 어머니에... 3 그그그그 5 23 일 전
2750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아무도 듣지 못한 죽음의 비명이 들린 357호실 2 그그그그 9 26 일 전
2749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20년만에 해결된 미제사건 4 그그그그 10 2024.03.19
2748 [호러 괴담] [미스테리] 고립된 남극 기지에서 사망한 남성. 근데 무언가 ... 14 그그그그 14 2024.03.17
2747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문자를 차단했다고 살인까지? 3 그그그그 5 2024.03.15
2746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재혼한 남편이 7년 전 살인을 고백한다면? 5 그그그그 5 2024.03.12
2745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헤어진 여자친구가 결혼하자 그의 분노가 향... 6 그그그그 8 2024.03.09
2744 [호러 괴담] (공포,기괴) 한국 아날로그 호러 살인 용의자 몽타주,사건개요 2 찬구 4 2024.03.08
2743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여자친구가 살해되자 경찰은 남자친구를 의... 1 그그그그 3 2024.03.07
2742 [호러 괴담] 유트브에서 가장 유명한 실종자 라스 미탱크 실종사건. 17 그그그그 27 2024.03.05
2741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무죄를 선고받고 나서야 그는 살인을 인정했다 1 그그그그 10 2024.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