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비트코인 관련 개붕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글

일단 글에 앞서 나는 비트코인이 가치저장수단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나머지 알트코인들은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스타트업 회사 같은 개념이구

이 글을 공유하는 이유는 경제학과로 전과를 계획하면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다가 경제에 대한 내용을 쉽고 깔끔하게 설명해주는 글을 발견해서 개붕이들이랑 공유하려구

요즘 코인이 대세기도 하고 나도 코인에 관심이 많아서 일단 코인에 관련된 글부터 올려볼게!!

(해당 글은 2017년에 작성됐어)

[◆ 화폐의 역사성 – 금본위제, 대공황 ... 그리고 비트코인까지 ]

(@@ 분량이 상당히 많은 글입니다. 그래서 먼저 죄송스럽다는 말을 전합니다. ~ 죄송합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가상화폐(비트코인)가 과연 한 나라의 "통화"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즉
<공동체의 공인된 화폐>로서의 가능성에 대해서만 얘기해볼 생각입니다. 가상화폐(비트코인)로
돈(수익)을 벌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두 개인의 선택사항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히 논하지
않을 것입니다. ... 더불어 가상화폐의 국가공인화폐 가능성에 대해 저의 결론을 먼저 얘기한다면

< "가상화폐의 국가 공식화폐 가능성은 제로(Zero)다!" > ... 라고 미리 밝혀둡니다.

물론 저의 개인적 주장입니다. ... 그리고
이 주장에 대한 논거를 위해 저는 지금부터 아주 긴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해 볼 것입니다.

본인을 비롯한 본인의 부모님 그리고 형제자매 등을 우리는 보통 <가족>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가족들이 여럿이 모여 살면 이제 그 곳은 작은 (마을)공동체가 형성되며, 이러한 소규모
마을 공동체가 또 다시 여럿이 모인다면 이때는 <거대 공동체>, 즉 사회가 되고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오래전 인류가 자급자족을 하던 시절에는 <화폐>라는 개념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생산된 대부분의 것들은 공동체 내부에서 모두 소비가 되었기 때문에 <교역>의
중요성이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끔은 자신이 사는 공동체 안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 필요하기도 했었는데, 이럴 경우에는 자신의 물건과 상대의 물건을 서로 맞교환하는, 즉
<물물교환>이라는 (원시적)형태의 교역 방법이 존재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화폐의 필요성은 크게
관심 받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물물교환>이라는 거래형태는 교환되는 수많은 물건(상품)들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해줄
판단근거가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에 모든 거래(교역) 참가자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 바로 <화폐(가치척도)>입니다.

‘화폐’는 <가치를 측정하는 도구>입니다. ... 병원이나 사우나를 가면 몸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저울이 있고, 줄자만 있으면 본인의 키도 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울과 줄자만 있다면 우리는
누가 누구보다 크거나 무거운지를 객관적 수치로서 확인할 수 있고, 또 비교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한마디로 세계인의 (외형적)가치가 비교 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가치를 측정하는 <척도(표준)>가 되는
것이죠. ...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화폐의 많고 적음은 부(재산)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화폐는 부(富)를 측정하는 단위의 일종이므로 그 단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단위 바뀜'을 보통은 <화폐개혁>이라고 부릅니다.

인류가 수천 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사용해온 가장 오래된 마력의 가치척도(화폐)가 있습니다.
바로 <금(Gold)> 입니다... 그리고 금(Gold)은 오늘날의 경제에서도 여전히 건재하게 살아남아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금본위제도가 사라진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가 발행하고 있는 자국의
지폐 돈은 법으로 지정한 <법화(法貨)>입니다. 한마디로 국가가 “너는 오늘부터 돈이다!” 라고
종이에 힘(法)을 실어준 것 뿐이죠. 이렇게 오늘날의 현대경제가 종이돈(법화)을 사용하게 된 이유와 함께
지폐사용의 근원이 바로 <금본위제>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그 <금본위제>라는 화폐의 역사성속으로
깊게 들어가 살펴보는 것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 ~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공업생산능력은 세계 최고수준이 되었고 ... 자동차(포드 T모델), 라디오,
세탁기, 청소기, 영화(헐리우드), 의료 및 화학 등 ... 산업 전반에서 엄청난 생산과잉이 있었습니다.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초과한 상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재고가 늘어났고, 조금씩
가격도 떨어지기 시작합니다(디플레이션) ... 또한 비슷한 시기에 농업공황도 함께 진행되면서
농업종사자들의 구매력 수준도 하락했으며, 임금의 하방경직성(한번 올라간 임금은 잘 안 떨어진다.)에
의한 실업증가로 도시의 비농업 인구들의 구매력 수준도 마찬가지로 떨어지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농산품과 공산품 모두에서는 과잉생산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 상품을 구매해줄 소비자들의
구매력 수준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공황 당시의 디플레이션은 공급과 수요
부분에서 이미 구조적인 문제가 시나브로 고착화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그런데 당시의
디플레이션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금본위제도’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20여 년 전인 19세기말 즈음에는 돈 자체가 바로 <금(Gold)> 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그 당시 금본위제도를 채택한 많은 국가들에서는 금으로 만든 주화가
사용되었습니다. ... 또한 통화 당국이 발행한 지폐도 사용되었는데 지폐를 통화 당국에 가져가면
언제든지 <‘법에서 정한 무게의 순금’> 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발발 이전(1914년 이전)에는 영국은 1파운드(Pound Sterling)에
순금 113.0016 그레인(grain) 비율로 지폐를 금(Gold)으로 바꿀 수 있었고, 미국에서는 1달러($)에
순금 23.22 그레인(grain) 비율로 지폐를 금(Gold)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 스털링 파운드(sterling pound): 영국의 화폐]
[@ 그레인(grain): 금(gold) 1그램과 밀가루 1그램은, 그 무게는 동일하지만 가치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이렇게 무게에 비해 가치가 상당히 높은 물건[금(gold), 약(drug)] 등의 무게를 측정하는데 사용되는
야드파운드법(yard pound法)의 무게단위가 그레인(grain)입니다.... 1그레인은 약 0.0648그램(기호는 gr)]

[◆ 영국 = <1파운드> = <순금 113.0016 그레인> = <7.32 그램>
[◆ 미국 = <1달러 $> = <순금 23.22 그레인> = <1.504 그램>
=> 따라서 <1파운드> = <4.86 달러($)> ... (7.32/1.504 = 4.86)

만약 당시에 런던에 사는 베컴이 1파운드를 순금 7.32그램(113.0016그레인)으로 바꾼 다음에
미국 뉴욕으로 가서 순금 7.32그램을 내놓으면 4.86 달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1파운드 = 4.86달러($)> ... 이렇게 당시 금본위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던 국가들 사이에서는
그 나라 화폐(파운드, 달러, 프랑, 등등)의 1단위에 순금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를 비교하여
각국 통화의 교환비율을 산출할 수 있었습니다 ... 그리고 이렇게 자국화폐 1단위에 순금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 다시 말해 지폐를 제시하면 얼마만큼의 금(Gold)으로 교환해줄지를 평가한 것을
소위 <금평가(Gold parity)> 라고 말합니다.[@ 길가다가 1파운드를 줍게 되면 금 7.32그램을 주운 것과
같고, 1달러($)를 주웠다면 금 1.504그램을 주운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 더불어 금본위제도를 시행한
국가들은 금으로 교환(태환)할 수 있는 지폐의 발행규모를 자신들이 보유한 금의 양에 따라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 예를 들어, 위에서 미국은 1달러($)를 순금 1.504그램으로 교환(태환)해 주어야 했는데,
만약 미국의 금 보유고가 1킬로그램(kg) 이었다면 지폐의 발행규모는 약 665달러($)[1,000/1.504] 가
된다는 것입니다 ... 또한 이렇게 각국(금본위제도 국가)의 화폐는 모두 일정량의 금(Gold)으로 교환해
주어야 했기 때문에 환율도 모두 자연스럽게 고정되어(고정 환율)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순금 7.32그램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이 금으로 영국에서는 1파운드, 미국에서는 4.86달러($)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1년 뒤에도 마찬가지로 순금 7.32 그램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 금으로 1파운드나 4.86달러($)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 이렇게 금본위제하에서는 교환할 수 있는
화폐(ex. 파운드, 달러)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고정된 금액으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통화당국이 통화량을 이처럼 모두 정확한 금의 중량(무게) 만큼만[금1kg=665달러($)]
허용하게 된다면, 경기침체나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 처했을 때는 신속하고 유연한 대처가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다수의 국가들은 금본위제도라는 기초위에서 통화량(지폐발행)에
조금은 유연성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은 1844년 제정된 <은행허가법 Bank Charter Act>에 의해서 중앙은행의 발권부가 발행하는
<금으로 교환(태환)가능한> 지폐의 발행규모를 자신들의 금보유고에 1,400만 파운드를 더한 금액까지는
허용했었고 ... 독일은 1876년 제정된 법에 따라 독일제국(국립)은행[Reichsbank 라익스뱅크]의
금보유고 및 재무성증권 보유고의 3배 까지는 지폐발행을 허용했으며, ~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시기 즈음인 1913년에 중앙은행(Fed)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연방정부에게서
발권허가를 받은 국법은행(National Bank)들이 발행한 은행권이 유통되었습니다. 여기서 국법은행들이
발행한 은행권의 금태환은 일차적으로는 발행은행들에게 책임이 있었지만 ... 궁극적인 책임은
미국 재무성이었기 때문에 당시 민간은행(국법은행)들은 은행권 발행고의 5%에 해당하는 상환자금을
재무성에 예치하도록 하였습니다. ... 그러나 보시다시피 당시 금본위제도를 시행했던 국가들의
지폐발행은 조금씩은 차이가 있었지만, 이러한 지폐발행(규모)의 최종 결정은 결국 <금(Gold) 보유고>
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발행된 지폐가 한 날 한시에 모두 금으로 태환(교환)될
가능성은 낮았기 때문에 통화당국이 지폐의 발행량과 정확히 같은 양의 금(Gold)을 보유하도록
강제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 하지만 통화당국이 통제수준을 벗어나 자신들이 보유한 금보다 훨씬 더
많은 지폐를 발행하게 된다면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위 영국이나 독일, 미국처럼
법과 규제로서 항상 지폐발행 규모를 자신들의 <금보유고에 연동>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대 금융경제에서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은행제도의 안정성을 위해 <‘지급준비율’>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지만, 고전적 금본위제도 시기에는 법적 규제가 없는 국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에는 금보유고 라는 기초위에서 지급준비율 제도가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
당시의 금본위제도하에서 <시중의 통화량>은 먼저 통화당국의 금보유고(금화,금괴 등의 실물 금)와
이를 근거로 발행된 지폐(@ 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그리고 지폐(현금)를 가지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은행에 저축도 하고 대출도 받으면서 형성되는 은행의 예금통화 등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 [예금통화, 예금통화, 예금통화, 예금통화, 예금통화, 예금통화, 예금통화, 예금통화 ]
[2] - [금태환지폐, 현금, 금태환지폐, 현금, 금태환지폐, 현금]
[1] - [실물 금, 금괴]

결론적으로 금본위제도에서 통화의 공급은, [3],[2],[1]의 모습처럼 역피라미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리고 총통화의 공급을 결정짓는 건 가장 하단에 있는 실물의 금(Gold)이 되는 것이고, 또한 그 나라의
통화당국은 이러한 역피라미드가 쓰러지지 않도록 법과 규제로 금의 보유량을 조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 참고로 통화량을 결정짓는 하단의 실물의 금(Gold) ... 즉, 그 나라가 보유한 금의 총량을
화폐적 금스톡(Monetary Gold St.ock), 또는 금스톡(Gold st.ock) 이라고 합니다.]

당시의 금본위제도 하에서는 금의 수출과 수입은 생각보다 많이 자유로웠는데 ... 다시 말해
금(Gold)의 국제적인 이동이 자유로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열강들의 제국주의로 ...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대륙 등 본국을 포함한 수많은 식민지에서 금의 생산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금스톡(Gold st.ock)은 증가하고 있었고 이러한 금스톡(Gold s.tock)의
증가는 (시중)통화량을 증가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위 역피라미드에서도 나타나듯이 금의 생산이 꾸준히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신용화폐(지폐, 예금 등)의 증가속도와 규모가 훨씬 더 컸기 때문에 총 통화량
중에서 중앙은행이 보유하는 금(Gold)보유고[금스톡(Gold st.ock)]의 비율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 다시 말해 <고전적 금본위제도 시기였던 1870년~1913년> 동안에 역피라미드가
점점 더 불안정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 다만 중앙은행의 금보유고 비율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앞서 살펴본 영국, 독일, 미국처럼 상당수의 금본위제 국가들은 자국이
설정한 금본위제도와 관련된 법과 규제의 한도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중앙은행의
금태환성을 희생하면서까지 통화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예를들어 경기회복을 위해서) 정치적 압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선거권은 주로 소득과 재산이 일정수준 이상인 성인 남자들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에 ... 따라서
경기악화로 투자활성화와 실업구제를 위한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 같은 건
사회적으로 그렇게 강력하게 제기되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 간섭이 적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많이 확산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어느 정도는 유지될 수 있었고, 특히 중앙은행의
책임은 통화의 공급 보다는 <금태환성>이 더 중요시 되던 시기였습니다. 다시 말해 지폐를 가져오면
언제든지 (정부가)약속했던 금(@정해진 금의 양)으로 교환(태환)해 줄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를 대내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철저히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었다는 것입니다.
[◆ 고전적 금본위제도(1870년~1913년) 시기에는(중간에 불황기간이 있었지만...)
국제통화체제나 금본위제도 국가들의 국제수지가 비교적 <균형>을 이루며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

만약 A라는 국가가 B국가와의 무역거래에서 흑자를 기록했다면 ... 즉! 수입보다 수출이 많았다면,
B국가로부터 금(Gold)이 유입됩니다. 그리고 외국(B)으로 부터의 금(Gold) 유입은 A국의 금스톡(Gold
s.tock)을 증가시키게 되며 통화량이 늘어나 물가가 상승하게 됩니다. 또한 물가상승은 외국상품에 비해
자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려 기존의 흑자구조를 축소시키며 양국 간의 무역불균형을 자동적으로
조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 더불어 무역수지뿐만 아니라 자본수지 측면에서도 흑자국 A국은 통화량이
증가하면서 이자율이 낮아지게 되고, 반면 적자국이었던 B국은 금(Gold)유출로 인한 통화량 축소로
이자율이 상승하게 되어 ... 결국 (국제)자본은 이자율이 낮은 A국에서 이자율이 높은 B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 한마디로 이러한 메커니즘은 불균형을 곧 균형으로 회복하게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금본위제도의 안정적인 국제통화체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무너지게 되는데 ...
모두 잘 아시겠지만, 전쟁은 재정지출의 확대가 불가피합니다. 더구나 제1차 세계대전은 총력전의
양상이었기 때문에 전쟁참여 국가들은 자국의 금스톡(Gold st.ock) 한도를 지키면서까지
재정지출(통화공급)을 준수할 여유가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더불어 당시에는 금(Gold)의 국제적 이동이
자유로웠는데 이것은 정치적 안정과 평화가 전제된 상황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 그런데
전쟁(1차 대전)은 이러한 안정과 신뢰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면서 금본위제도는 이제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 전쟁중에 금(Gold)으로 교환해주지 않는 불환지폐(不換紙幣)가 남발되었음.]

제1차 세계대전 기간(1913년 ~ 1919년) 동안에 전쟁 참여국들은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통화증발(增發)[@ 돈을 계속 찍어냄]을 시작했습니다.. 금태환성의 신뢰는 무너졌고, 금본위제도는
사실상 정지되었습니다. 통화량이 증가하고 전쟁 중 물자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으며 전쟁기간 동안에(1913~1919) 독일의 도매물가는 4.2배, 프랑스는 3.6배,
영국 2.4배, 미국은 2.1배가 상승하게 됩니다.(@ 독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hyperinflation은 1921년부터
1923년 사이에 일어남)

그리고 드디어 전쟁이 끝났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은 전쟁 때문에 수요가 거의 소멸되어 불황이
찾아오리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1919년 여름부터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는데
전쟁 때문에 파괴된 도로와 다리, 수많은 생산 시설물 등의 재건을 위해 유럽 국가들은 통화 공급을
더 확대하였고 대규모 적자재정은 물론, 전쟁 중 발행된 공채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재건비용 때문에
지속적인 공채(국채) 발행이 이루어졌습니다.(@세금만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음.) ... 이런 상황 속에서
국채에 대한 이자부담 때문에 이자율 또한 낮게 유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낮은 이자율의 기반위에서
통화량은 계속해서 증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후 일시적 호황을 가져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후의 이러한 지속적인 통화 공급 확대로 인플레이션이 우려된 유럽은 다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고(금리인상), 과거(전쟁전) 평화로웠던 시절로의 회귀를 생각하게 됩니다. ... 한마디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자! ~ 이제 다시 금본위제로 돌아가자!” 를 외쳤던 것입니다.
[@ 금리인상, 즉 통화긴축은 금본위제도의 재건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 고전적 금본위제: 1870년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13년 동안의 금본위제를 뜻함]
[◆ 전간기(戰間期) 금본위제[Interwar Gold Exchange]: 1차 세계대전 종전 후부터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인 (1919년~1939년) 사이에 있었던 금본위제를 뜻함. ]

미국은 전쟁(1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날 무렵에 개입했기 때문에 전쟁기간 동안 물가수준은 유럽국가들
보다는 상당히 안정적 이었습니다 ... 따라서 전쟁전의 환율수준으로 금본위제도가 재건된다면 미국은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가장 우월적 위치에 있게 되어(물가수준이 가장 낮았으므로) 무역에서는 흑자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따라서 국제수지 적자로 인한 금(Gold) 유출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미국은 전쟁이 끝나고
1919년에 바로 전쟁전의 금평가(Gold parity)에 따라 달러($)의 금태환성을 회복하고 금본위제도로
복귀하게 됩니다. ... 그리고 종전 후인 1919년에 미국은 금(Gold)의 자유로운 수출과 수입을 허용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는데 ... 반면 미국과 상황이 달랐던 유럽은 금(Gold) 수출은 철저히 통제하면서,
동시에 금(Gold) 수입은 꾸준히 늘리고 있었습니다.(@금본위제로 돌아가자!) ... 그 결과
미국의 금(Gold)이 조금씩 국외로 유출되기 시작했고, 금보유고(금스톡) 또한 줄어들었습니다. 그러자
미국 연준(FRB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은 금(Gold)보유고 고갈을 막기 위해 통화긴축(금리인상)으로
대응합니다. ... 결론적으로 유럽의 금본위제 재건(금본위제로 돌아가자!)과 미국의 통화긴축이 맞물려
1920년 중반부터 서서히 물가와 생산규모가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불황의 조짐!]

전쟁에 참여한 유럽 국가들 대부분은 전쟁비용 조달 때문에 계속적인 통화증발(增發)과 대량의
공채발행으로 물가(상승)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 따라서 과거 <고전적 금본위제>
시절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물가 문제와 함께 전쟁전의 금평가(Gold parity)로 인한
유동성 문제 등 여러 골치 아픈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19년 말부터 선진공업국들은 과거 좋았던 시절인
‘고전적 금본위제’로 돌아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게 됩니다. ... 하지만 방금 언급했던 소위
<금평가(Gold parity)> 문제 때문에 곧바로 금본위제(고전적)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물가가 안정되었던 과거 (고전적)금본위제로 돌아가려면 재정지출 축소와 수요억제 및 통화량
축소 같은 소위 <디플레이션(Deflation) 정책>을 사용해야 하는데 ... 이것은 엄청난 실업과 생산위축을
초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 물론 금(Gold)의 양을 늘리는 것도
‘고전적 금본위제’ 시절로 복귀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금본위제 재건 준비를
위해 대부분 금수출을 통제하며 서로가 금을 수입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금(Gold)의 양을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 또한 고전적 금본위제 시절의 금평가(Gold parity)를 물가가 상승한
전쟁후에도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면 심각한 <유동성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전쟁 전의 영국은 <금 7.32g = 1파운드> 라는 금평가(Gold parity)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때 사람들은 1파운드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당시(전쟁 전) 영국 중앙은행의 금보유고[금스톡(Goldstoc.k)]가 금 732g 뿐이어서
통화량(태환권 지폐)도 금평가에 따라 정확히 100 파운드만 발행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후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정부는 전비조달을 위해 금본위제 원칙을 깨고 화폐(태환권) 100 파운드를
추가로 발행하였다면 이제 전체 통화량은 200 파운드가 됩니다 (@ 금보유고는 여전히 732g 뿐임) ...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보니 물가도 상승했고(@커피 한 잔에 2파운드), 시중 통화량은 200 파운드인데
비해서 보유하고 있는 금(Gold)의 양은 여전히 732g 뿐인 상황입니다. ...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정부가
과거 전쟁이 발발하기 전의 (고전적)금본위제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금평가(Gold parity)였던
(금 7.32g = 1파운드)의 원칙을 따라야 했는데, 그 원칙을 따르려면 금(Gold)의 양을 추가로 732g
더 늘리던지(금보유고) ... 아니면 시중 통화량을 다시 줄여야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금(Gold)의 양을 늘리는데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해결방법은 시중 통화량을 줄여서 다시 예전처럼
금보유고 732g에 딱 맞아 떨어지는 통화량인 100 파운드 수준으로 시중통화량을 조절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보니, 영국 안에서 더 이상 1파운드만 가지고서는 커피를 마실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물가상승. 커피 한잔 2파운드) 전쟁 전의 고전적 금본위제 시절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실질통화 공급감소> 라는 유동성 부족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 올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 고전적 금본위제로 복귀시도: 시중 통화량을 200파운드에서 전쟁 전 수준인 100파운드로 줄임.]

......... (실질통화 50파운드) = [명목통화 100 파운드 / 2파운드(커피 한잔)]

보시다시피 ... 고전적 금본위제로 복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던 ‘디플레이션(Deflation) 정책’은
가능은 하겠지만 실업과 생산축소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고, 특히 그 당시(고전적 금본위제)의
금평가(Gold parity)에 맞춰서 통화를 공급하게 되면(100 파운드) 물가수준이 상승한 경우에는
유동성부족(실질통화공급감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물가(상승)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면서 ‘고전적 금본위제’로 복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는데 ... 그것이 바로
<통화의 평가절하>입니다.

금본위제도 아래에서 통화(화폐)의 가치는 바로 지폐가 과연 얼마의(중량) 금으로 태환(교환)
가능한가에 따라서 결정되어 집니다. 더불어 화폐(지폐) 1단위당 어느 정도 중량의 금(Gold)으로
교환할 수 있는가를 금평가(Gold parity) 라고 얘기했습니다.

영국은 전쟁 중에 물가도 상승했고(커피 2파운드) 금평가(Gold parity)도 여전히 (금 7.32g = 1파운드)인
상황입니다 ...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의 파운드화를 <평가절하> 하게 되면, 교환해주는 금(Gold)의 양을
줄여야 합니다. 결국 금평가(Gold parity)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인데 ... 그래서 위의 영국 사례에서
파운드화를 평가절하 한다면 금평가(Gold parity)는 (1파운드 = 금 3.66g) 으로 바뀌게 됩니다.(7.32/2)
그리고 2파운드 커피는 이제 금 3.66g 으로 마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전쟁(1차 세계대전)중에,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인플레이션으로 통화가치가 60% 이상 하락했었던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국가들에서는 디플레이션(Deflation) 정책으로는 과거의 안정적인 물가수준을
회복하기는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에 통화의 평가절하를 선택합니다. (@ 평가절하로 무역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면 국외로부터 금이 유입됩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정책은 실업과 생산위축 이라는 사회적
희생이 수반되게 됩니다.)

[◆ 당시 통화의 평가절하를 통해 금본위제를 재건한 국가는 독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포르투갈,
체코 등이었으며, 전쟁 인플레이션 속도가 비교적 완만해서 통화가치 하락정도가 나름대로 감당할만한
수준이었던 국가, 즉 디플레이션(Deflation) 정책을 선택한 국가에는 영국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이 있습니다.]

전쟁 종료 후 재정적자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국가는 바로 패전국 독일 이었습니다.
전후 재건비용과 천문학적인 배상금, 프랑스와 국지전(루르지방) 등으로 인한 계속적인 전비지출 등
특히 1921년부터 시작된 배상금은 같은 해 국민소득의 10% 수준 이었고, 1921~1922 동안 배상금
규모는 독일 수출액의 80% 수준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당연히 재정이 적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러한 어려움을 세금증가와 민간차입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역부족 이었고
더구나 전쟁기간 중에 공채의 발행도 엄청났기 때문에 ... 결국 당시 독일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통화증발(增發)”, 즉 돈을 마구마구 찍어내는 수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 세금증가를 통해 재정적자를 문제를 해결하려했던 당시 바이마르 정부의 재무장관 에르츠베르거
(Matthias Erzberger)는 민족주의자에게 암살을 당합니다.]

통화증발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게 됩니다. ... 더불어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 이라는 생각이
사회전반에 퍼지게 되면(@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실질이자율이 감소>하게 되고, 이것은 저축률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저축이 줄어든다는 것은 정부의 공채를 사줄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기도 하므로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조달을 결국 돈을 더 찍어내는데(@통화증발) 더욱더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 (실질이자율 감소) - 1만 원짜리 갈비탕을 먹으로 갔다가, 지금 사먹지 않고 은행에 저축하고,
1년 뒤 원금 1만원과 이자를 포함한 돈을 모두 찾아서 다시 갈비탕을 사먹으러 갔는데 ... 만약 돈이
부족하여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면 ... 이 상황이 바로 실질이자율이 감소인 것입니다.]

또한 물가가 계속적으로 상승하면, 당연히 실물자산 가격이 오르고 현물형태로 자산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 이것은 투기적 수요와 물가상승을 더욱더 부추기는 요인이 됩니다. ... 더불어
정부가 세금을 걷는 동안에도 인플레이션이 강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면 ... 결국 세수의 실질가치도
하락하게 되는 것이고, 재정적자는 더욱더 악화되게 됩니다. ...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은 정부에게
“돈을 더 많이 찍어내! ~ 더 찍어내야 한다!” ... 라는 최면을 걸게 만듭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사회전반에 퍼지게 되면 “통화증발(增發)” ~ 즉! 돈을 더 찍어내서
부족한 재정을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도는 점차 힘을 잃게 되고, 재정조달 방식으로서의 의미도
상실하게 됩니다! ... 결국 남는 건 괴물처럼 변해가는 인플레이션(inflation) 뿐입니다.

“통화증발(增發)”을 통해 배상금, (국지적)전비, 전후 재건비용 등 ... 엄청나게 늘어난 재정수요를
해결하려했던 독일은 결국 인플레이션만 더욱더 악화시키게 되었고 ... 1921년에서 1923년 동안에
독일에서 일어난 이러한 누적적인 악순환의 과정은 결국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이라는
희대의 괴물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특히 당시 독일의 천문학적인 배상금 규모가 재정적자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었는데,
이러한 전쟁배상금 지불은 곧 자본유출을 의미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또한 배상금 지불을
위한 바이마르 정부의 세금인상이 공공연하게 기정사실화 되자 민간자본의 해외도피가 시작됐고,
이것은 자본수지 악화와 국제수지 악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 (민간)자본이 독일을 떠나기 시작하자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도 하락했고 결국 수입품의 가격상승을 유발시키며 국내(독일)의 물가상승을
더욱더 부채질하게 됩니다. [◆ ex). 독일 주식에 투자되었던 달러($)가 독일을 떠나기 위해서는
주식을 팔고 받은 마르크화를 다시 달러($)로 바꿔야 합니다. 때문에 당연히 마르크화의 가치는
하락하며 달러($)의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달러($)의 가치는 상승하게 됩니다. - 환율상승]

배상금 지불이 시작되면서부터 독일의 물가는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 1918 년 물가지수
<107>이 1923년에는 무려 <"820만">에 도달하게 됩니다. 또한 독일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오스트리아와 중부 유럽으로 이러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여파가 조금씩 퍼지게 됩니다.
[◆ 배상금 지불 때문에 국제수지가 악화되면서 발생한 ‘환율상승’과 재정적자 때문에 일어난
‘통화증발’의 두 요인 중에서 과연 무엇이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에 더 큰 원인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1920년대 초에 의견대립이 있었습니다. 케인즈(Keynes) 같은 영어권학자들
사이에서는 통화증발을 원인으로 보았고, 독일의 정치가 칼 헬퍼리히(karl helfferich)는 환율상승을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중요한 원인으로 생각했습니다.(이 부분은 지금도 견해차이가 있습니다.)]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으로 중부유럽이 경제적 위기에 빠지자 ...
승전국(특히 미국)들은 이 지역이 잘못하면 정치적으로도 불안해져서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 같은
사회주의가 물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우려 때문에 승전국들은
일시적으로 독일의 배상금 지불중단을 허용해 주었고, 1924년 8월에는 향후 5년간 독일이 연간
배상해야 하는 액수를 경감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스안(Dawes Plan)>인데 ... 이것은 독일에게
한 해(1년) 동안 갚아야 하는 액수를 줄여준 것뿐이지 배상 총액을 줄여준 것은 아닙니다. 더불어
도스안(Dawes Plan)에 의해 독일은 미국에게 8억 마르크의 차관을 얻을 수 있었고, 독일은 이 돈으로
영국과 프랑스 등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게 됩니다. ...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 등의 승전국들은 독일에게서
받은 배상금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게 진 빚을 갚게 됩니다.
[◆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당시 빚을 진 국가들은 아무튼 미국의 개입이
없으면 채무관계가 해결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미국의 자본”이죠. ]

도스(Dawes Plan)계획과 미국 자본 유입으로 배상금 지불 문제와 재정적자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자 독일은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을 끝내기 위해서 1923년 11월에
당시 통화단위였던 라이히스마르크(Reichsmark)의 1조 배에 해당하는 새로운 통화
<렌텐마르크(Rentenmark)>를 도입하여 화폐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 [ 1조 라이히스마르크(Reichsmark) = 1렌텐마르크(Rentenmark) ]

이후 ...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렌텐마르크의 탄생에 의해 완전히 소멸되었고,
새로운 통화 렌텐마르크는 소위 ‘기적의 통화’로 이름을 높였습니다. 또한 독일은 렌텐마르크의
가치(통화가치) 유지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렌텐마르크의 발행액은 24억(렌텐마르크)을 초과할 수
없었고, 토지나 건물 같은 실물자산을 담보로만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 이렇게 화폐 개혁으로 통화가
안정되면서 ... 독일은 1924년 드디어 금본위제로 복귀하게 됩니다.

프랑스는 독일보다는 심하지 않았지만 ... 비슷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승전국이라 배상금 문제는 없었고, 재정적자도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후 재건비용이 커서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있었고 전시공채에 대한 원금과 이자상환 문제 때문에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 더불어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노동계급의 입지가 강화되었고,
전후에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 정치영역에서는 (정치)권력이 분산되면서 세금부담을 과연 누구에게
부담시키느냐로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세금인상 논의는 사실상 접점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 1924년~1926년 사이에 프랑스 재무장관은 10번 교체됨)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프랑스도 편한 방법을 선택하게 됩니다. 바로 “통화증발(增發)” 이었습니다.
그리고 독일보다는 덜 했지만, 물가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라 불리 울 만큼 심각한 수준까지 다가가게
됩니다. ... 그러자 1926년 집권한 푸앵카레(Raymond Poincaré) 정부는 세금 인상과 재정지출 감소 같은
재정 안정화 정책을 실시합니다. ... 이후 물가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고 환율도 안정이 되면서
드디어 1928년 프랑스도 금본위제로 복귀하게 됩니다.

다만, 프랑스는 전쟁과 전쟁 이후에도 상당한 통화증발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 이전의 금평가(Gold parity)를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 보유하고 있는 금(Gold)보다
발행된 화폐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금태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기가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통화의 평가절하’를 선택하게 됩니다. ... 다시 말해 금평가를 전쟁이전에 비해
5분에 1로 낮추었던 것입니다.[@전쟁 전에 지폐를 제시해서 금(Gold) 10을 받았다면, 평가절하 이후에는
2를 받게 되었다는 것임.]

독일과 프랑스에 비해서 영국의 인플레이션은 상당히 완만한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가수준이 높지 않았다면 영국은 큰 고민 없이 전쟁전의 ‘고전적 금본위제’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겁니다. ... 물가가 높지 않았다는 것은 화폐발행(통화량)이 적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결국 발행된 화폐를
금(Gold)으로 교환(태환)해 주는데 부담이 적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세기 초(1913년)에
영국은 이미 제조업에서 독일과 미국에게 뒤지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역에서 경상수지 적자와
금(Gold) 유출이 예상되던 상황이었습니다.[@1913년 세계 산업생산 - 미국36%, 독일16%, 영국14%]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이 전쟁전의 (고전적)금본위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디플레이션(Deflation) 정책’ 이나 ‘통화가치 평가절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제조업에서의 경쟁우위도 사라졌고, 물가수준도 미국 등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던 영국은 ‘고전적 금본위제’로 돌아가기 위해서 고심 끝에 ‘디플레이션(Deflation) 정책’을
택하게 됩니다.

[@ 가격이 4.86달러($)인 빵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몇 년 지나서 빵의 가격은 3.40 달러($)로
떨어졌습니다. ... 여기서 만약 빵의 가격을 예전가격인 4.86달러($)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과연 어떠한
방법을 써야 하겠습니까? ...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빵의 공급을 줄이는 것입니다.]

전쟁 전, 고전적금본위제 시기에 4.86달러($)와 교환되던 파운드화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 1파운드당
3.40달러($)로 교환되고 있었습니다. 파운드화의 가치가 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전쟁 전 4.86달러($)
수준으로 가치를 회복하려면, 파운드화의 공급을 축소해야 합니다(@ 빵의 공급을 줄이는 것처럼 ~ )

결국 고전적 금본위제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통화긴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디플레이션 정책은 실업과 생산축소 같은 사회적 희생이 수반되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 케인즈(Keynes)도 긴축정책을 통해서 금본위제로 돌아가는 것은 재앙이 될 것이라 경고했고,
영국의 경제 불황은 통화긴축이 아닌 통화팽창 정책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재무성은 어떠한 고통이 있더라도 전쟁전의 <고전적 금본위제> 시절의 금평가를 그대로 적용해서
금본위제를 재건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 이러한 생각은 당시 영국의 금융 중심지였던
런던의 시티(@ 오늘날 뉴욕 월가, 한국 여의도와 비슷한 지역임.) 지역의 국제금융업계의 생각이 많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 만약 영국이 프랑스처럼 ‘통화의 평가절하’를 통해서 금본위제로 돌아간다면
파운드화의 대외 신인도와 위상을 크게 손상시키게 되어, 파운드화의 기축통화 역할이 위축될 것이고
자신들의 밥그릇인 국제금융업이 심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 물론 디플레이션
정책에 반대도 많았지만, 전쟁 전 금평가를 그대로 유지해서 <파운드화의 가치안정>을 계속해서 지켜야
한다는 견해가 전반적으로 우세했었고 ... 파운드의 가치안정은 무역과 투자를 활성화해서 영국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 또한 영국정부를 도취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영국은 1925년에 금본위제로 복귀하게 됩니다.(@ 전쟁전 금평가를 그대로 적용!)
더불어 파운드화의 가치를 안정되게 유지하려면 ... 당연히 금(Gold)으로 태환(교환) 하는데 제약이
없어야 하고, 전쟁 전에 교환해 주었던 금(Gold)의 양을 보장해야 합니다(@ 전쟁전의 금평가 유지)
이것이 가능하려면 결국 영국 정부가 금보유고를 늘리던지 아니면 통화량을 더 이상 증가시키면
안되었기 때문에 긴축정책을 써야 했던 것입니다.... 지적했듯이 긴축정책(디플레이션 정책)으로 물가는
하락하겠지만 이것은 실질임금을 상승시켜 기업들의 고용과 투자를 위축시키게 됩니다.(@ 실업증가)
또한 투자위축은 총수요를 정체시켜 경기침체 상황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기업들이 만든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니 당연히 기업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이것은 고용축소나 투자를 위축시키게 됩니다.]
[◆ 제1차 세계대전으로 세계금융의 중심이 뉴욕으로 옮겨간 분위기였는데,
이때 영국 런던의 시티 은행가들은 전쟁전의 금평가를 그대로 적용해서 금본위제로 복귀하게 된다면
런던이 다시 금융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따라서 파운드화는 가치안정에 최대한 집중해야
하며, 절대로 평가절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 하지만 케인즈(Keynes)는 전쟁 이후,
많은 유럽 국가들이 미국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었고 대부분의 금(Gold)이 미국으로 유입된 상황에서
만일 영국이 파운드화를 금에 고정시키면 그 순간 파운드화는 금이 아니라 달러($)에 종속될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특히 그는 전쟁이후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이미 미국으로 이동했으며,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고전적 금본위제도’ ... 즉, 전쟁(1차 세계대전) 이전의 금본위제도하에서 무역불균형 및 분쟁 등이
발생했을때, 특별히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했던 국제기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으로 국제수지
적자나 또는 흑자를 내는 국가는 거의 없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당시의(고전적)금본위제도 하에서는 금평가(Gold parity)에 의해서
환율이 고정되어 있었고, 경상수지 흑자에 의해 상대국으로부터 금(Gold)이 유입되면 결국 통화량이
늘어나서 물가가 올라가고 ... 이것은 상대국 상품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다시 흑자구조가
줄어들게 되는데 ... 금본위제도는 이러한 국제수지 불균형을 자동적으로 조절해주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성적인 적자국이나 흑자국은 고전적 금본위제 시기에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920년대에 재건된 <(전간기)금본위제> 국가들은 조금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 전간기(戰間期) 금본위제 - 1차 세계대전 종전 후부터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인
(1919년~1939년)사이에 있었던 금본위제를 뜻함. ]

먼저 전쟁의 최대수혜자였던 미국과 과감한 평가절하를 선택했던 프랑스의 국제수지는 흑자를
나타냈는데 프랑스는 금본위제를 도입하기 1년 전인 1927년부터 1931년까지 국제수지 흑자였고,
미국은 1920년대 내내 흑자였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1927년부터 1931년 동안 적자를 나타냈습니다.

1925년, 당시 영국의 재무장관 이었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런던의 은행가들의 여론을
반영하여 “대영제국의 영광을 재현하자!” 를 외치며 금본위제를 도입했지만 ... 도입당시 선택했던
긴축정책(디플레이션정책)은 생각보다 영국의 물가를 만족할 만큼 떨어뜨리지 못했습니다. 또한
앞에서 사례를 살펴보았듯이 ... 통화의 평가절하[@교환해주는 금(Gold)의 양을 줄임]를 하게 되면
화폐의 신뢰에 손상이 가겠지만[@예전보다 금(Gold)을 적게 바꿔주니까] 대신에 가격경쟁력이 생깁니다.
따라서 당시 물가가 안정됐던 미국과 통화의 평가절하로 가격경쟁력이 우월했던 프랑스는 경상수지가
흑자였지만, 제조업경쟁력도 잃었고 경기침체 상황에서 오히려 긴축정책을 펼치고, 파운드화도 과대평가
되어있던 영국의 경상수지는 적자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보았던 금본위제도의
암묵적 규칙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영국은 국제수지 적자로 인해 금(Gold) 유출이 일어나 통화량이
감소하고 물가가 하락할 것이고 미국과 프랑스는 흑자로 인해 금(Gold)의 유입이 일어나 통화량이
증가하고 물가가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불균형은 금본위제도의 자동조절기능으로
얼마 뒤에 해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프랑스의 흑자는 수년 동안 지속되었고, 영국의 적자상태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해소되지 못하고 지속 되었습니다 ... 이것은 국제수지 흑자국(미국, 프랑스 등)이
금본위제도의 기본 룰(Rule)을 지키지 않고, 소위 <불태화정책(不胎化政策)>을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 흑자국 중앙은행은 금(Gold)이 유입되면 통화 공급증가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증권, 즉
국채나 통안증권을 팔아서 민간으로부터 통화량을 흡수합니다! ~ 물가상승이나 투기가 일어날 것을
대비하는 것이죠! ~ 반대로 금(Gold)이 유출되면 통화 공급이 줄어들지 못하도록 민간에게서
증권(국채, 기업어음, 은행채 등)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풀어버립니다! ... 결국 불태화정책은 오늘날
중앙은행의 "공개시장조작"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가가 만족할 만큼 떨어지지도 않았고, 더구나 그런 상황에서 금본위제로 복귀한 영국에게
국제수지 흑자국들이 금(Gold) 유입에도 불구하고 통화 공급을 확대하는데 있어서 자국(흑자국)의
물가상승과(@프랑스의 하이퍼인플레이션 공포) 투기우려 때문에 ... 금본위제의 (암묵적)규칙을 무시한
불태화정책(不胎化政策)을 실행함으로써 영국의 국제수지 적자와 금(Gold) 유출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 하지만 영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본위제도의 유지를 위해서 긴축정책을 더욱 더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1920년대 초반에는 고전적 금본위제시절로의 복귀를 위해서, ... 그리고
1920년대 후반에는 재건한 금본위제 유지를 위해서 디플레이션 정책을 계속 실행했던 영국에게
1920년대는 그야말로 불황의 늪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장기적 침체 속에서 1926년에
영국에서는 전국적인 총파업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고전적 금본위제’ 시절에는 금스톡(Gold s.t ock)과 이를 근거로 발행된
화폐(태환권)의 비율이 적정했었고, 금본위제 국가들도 자신들만의 법과 규제로 역피라미드가 쓰러지지
않도록 통화량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 다시 말해 발행된 지폐가 금 태환(교환)요구를 하면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금스톡과 통화량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종료 후,
세계는 금스톡(금보유고)에 비해 발행된 통화량이 엄청났습니다. ...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는
가장 아래의 [1]금(Gold)을 상단의 지폐에([2],[3]) 골고루 분배하는 <평가절하>를 선택한 것입니다.

금스톡은 고전적 금본위제때와 거의 같은 양인데 비해, 상단의 화폐규모가 더 늘어났으니 분배되는
금의 양[교환되는 금(Gold)의 양]은 당연히 줄어들게 됩니다. ... 이미 설명 드렸듯이 통화의 평가절하인
것이죠. ... 또한 영국은 상단의 지폐규모를 줄여서(긴축정책) 과거의 좋았던 시절인 <고전적 금본위제>
시절로 돌아가려 했던 것입니다.

미국은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영향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전적)금본위제로 돌아가기 위해서
디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금(Gold)을 빨아들였기 때문에 통화의
평가절하도 필요 없었습니다. ... 세계 최고의 산업생산능력과 넘치는 자본, 광활한 대륙과 자원 등 ...
1920년대의 미국은 엄청난 호황이었던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엄청나게 늘어난 통화량과 (고전적)금본위제 재건을 위한 긴축정책 ... 그리고
금본위제의 기본적 룰(Rule)을 무시한 채 국제수지 흑자국들이 실행한 불태화정책 등 ...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는 전반적으로 긴축적 기조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영국의 고집스런 파운드화
가치안정을 위한 긴축정책은 대량실업을 양산했고 이로 인해 1926년에는 전국적인 총파업이 발생하게
됩니다.

영국의 총파업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불안을 초래하면서 국외로 자본도피를 부추겼습니다.
자본의 해외도피는 영국의 자본수지를 악화시켰고, 같은 해(1926년) 프랑스에서는 푸앵카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플레이션이 위협수준까지 오르자 안정화 정책(세금인상, 재정지출감소)을 실시했는데,
이것은 곧 프랑화 가치에 신뢰감이 쌓이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 즈음 (프랑스가 불안할 때)영국에
도피해 와있었던 프랑스 자본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 여기에 더해 1926년
말부터는 금본위제 복귀 준비를 하던 프랑스가 금보유고 확충을 위해 (프랑스)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파운드화를 금(Gold)으로 바꿔달라고 영국에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프랑스가 인도나
필리핀, 라틴아메리카 등의 후진국들처럼 파운드화를 준비금으로 하는 <금환본위제도>를 전혀 선택할
마음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 후진국들: “우리는 금(Gold)대신에 영국 파운드화를 보유고로 정했습니다. 후진국 이다보니
금(Gold)이 너무 부족했어요! ~ 그래서 ‘금환본위제도’를 택하게 되면 중앙은행이 금(Gold)을 보유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돈을 은행에 제시하면 영국 파운드화로 바꿔줄 겁니다. ... 그런데
파운드화는 언제든지 금(Gold)으로 바꿀 수 있잖아요! ~ 결국 영국이 금본위제도에서 이탈하지 않는
이상 우리 같은 후진국들도 금본위제도를 택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죠! ~ 이게 바로
<‘금환본위제도’> 입니다. ]

영국은 막막했습니다. ... 자본은 계속해서 영국을 빠져나갔고, 프랑스마저 파운드화를 가져와서
금으로 바꿔달라고 하니 어떡하든 해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희망은 미국뿐임을
알게 됩니다. 미국 연방준비이사회는 1927년에 1,200만 파운드를 받고 영국 중앙은행에 금(Gold)을
공급하기로 결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적자상태가 지속되던 영국의 경상수지를 개선시키기 위해
미국은 앞서 얘기했던 ‘불태화정책(不胎化政策)’을 버리고 금리인하, 통화 공급증가와 같은 확장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 이 당시 잉글랜드 은행총재였던 노먼(Montagu Norman)과 연방준비이사회
총재인 스트롱(Benjamin Strong)이 매우 친밀한 관계였기 때문에 협상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영국을 돕기 위해 실시한 미국의 확장정책(통화 공급증가)은 곧바로 미국의 물가와 주식가격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1928년 여름, 주식가격에 거품이 있다고 판단한 연방준비이사회(FRB)는 대출규모를
축소하고 이자율을 인상합니다.[@ 1928년 7월 초에서 8월 말 사이에 다우존스 산업평균(DJIA) 지수는
208 수준에서 240 까지 상승합니다. ]

<1928년 1월 ~ 1929년 9월>
@ 재할인율 4회 걸쳐 인상함 ( 3.50% => 6% )
@ 콜금리 ( 3.50% => 20% )

미국의 금리인상은 가장먼저 (국제적인)자본이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자율 상승으로 해외에 투자되었던 자본들이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전쟁(1차 세계대전) 종료 후
세계에 가장 많은 자본을 수출한 미국의 자본수출이 급감하게 됩니다.

1925년에는 8억 9,000만 달러($), 1928년에는 약 15억 달러($)로 증가했다가
1929년에는 약 8억 달러($)로 급감했습니다.[◆ 자본수출에는 기본적으로 2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외국에 신규법인을 설립하는 것과 철도, 도로, 광산개발 같은 형태로 투자해 이윤을 얻는
산업자본의 수출이며, 또 다른 자본수출 형태는 외국정부 채권의 매입과 차관 공여 및 은행대부 등
이자소득을 목적으로 하는 대부(대출)자본 수출입니다. ]

이러한 상황은 해외자본 의존도가 특히 높았던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등 저개발 국가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 자본이 빠져나간 (저개발)국가들은 국제수지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저개발 국가들은 긴축정책(@금리를 높여서 최대한 자본을 묶어두려고 ..)을 실시하게
됩니다.. 또한 수입을 자제하면서 최대한 금본위제도를 지키려 노력했습니다(@금유출 방어) ... 하지만
이러한 강도 높은 긴축정책은 결국 생산위축과 실업을 양산하면서 실물경기를 더욱더 침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 (1924년 ~ 1929년), 미국의 대외 대부규모 [단위: 백만달러($)]

@ 1924년 - (유럽: 527), (아시아.오세아니아: 100), (캐나다: 151), (라틴아메리카: 191) = (합계: 969)
@ 1925년 - (유럽: 629), (아시아.오세아니아: 147), (캐나다: 137), (라틴아메리카: 163) = (합계: 1076)
@ 1926년 - (유럽: 484), (아시아.오세아니아: 38), (캐나다: 226), (라틴아메리카: 377) = (합계: 1125)
@ 1927년 - (유럽: 577), (아시아.오세아니아: 164), (캐나다: 237), (라틴아메리카: 359) = (합계: 1337)
@ 1928년 - (유럽: 598), (아시아.오세아니아: 137), (캐나다: 185), (라틴아메리카: 331) = (합계: 1251)
@ 1929년 - (유럽: 142), (아시아.오세아니아: 58), (캐나다: 295), (라틴아메리카: 176) = (합계: 671)
==================================================================
@ [합계] - (유럽: 2,957), (아시아.오세아니아: 644), (캐나다: 1,231), (라틴아메리카: 1,597) = (6,429)
<출처: League of Nations, Balance of Payments, 1930 Geneva, 1932, P.30 >

[@ 1930년 전 세계 무역총액(수입액기준)이 25억 달러($)규모였던 걸 감안한다면,
1924년~1929년 동안의 미국의 대부총액 64억 달러가 얼마나 엄청난 규모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1924년 도스안(Dawes Plan) 에 의해 미국자본을 도입해서 전쟁 배상금을 갚았던
독일에게도 상당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 1928년 하반기부터 미국자본의 유입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독일의 국내투자 환경도 얼어붙기 시작했는데 ... 이러한 투자위축과 자금경색은 결국 독일경제에 불황을
몰고 왔습니다. 또한 자본유입 감소로 국제수지가 악화되자 결국 독일정부도 긴축정책으로 대응하기
시작했고, 특히 1930년에서 1932년 사이에 당시 브뤼닝(Heinrich Brüning) 정권은 세금인상, 공무원임금
삭감, 복지축소 등의 (긴축)정책을 펼쳐서 독일경기를 더욱더 악화시켰던 것입니다 ... 그리고 독일의
경기악화는 실업과 함께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비참하게 만들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요한
정치세력이 탄생합니다. ~ 바로 <나치(Nazi)> 였습니다. [◆ 브뤼닝 정권의 긴축정책이 나치(Nazi)를
등장시켜 결국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당시 브뤼닝 정권의 디플레이션 정책이
과연 적정했느냐, 아니면 다른 더 좋은 대안은 없었느냐 ... 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이 논쟁을 <'보카르트(Borchardt)'> 논쟁이라고 합니다.]

정리해보면 ~ 미국의 (통화)긴축은 해외 자본에 의존하고 있던 자본수입국들을 불황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중에 특히 저개발 국가들은 더 이상 미국에서 자본을 얻기가 힘들어지자, 영국(런던)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영국도 미국에 기대고 있던 상황이라 자본수지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금리를
인상하게 됩니다. 그 결과 영국의 경기도 점점 불황으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세계최고의 채권국이 된 미국은 차관 및 대부형태 방식으로 세계에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수출했습니다. ... 독일은 도스안(Dawes Plan)에 따라 미국의 자본이 유입되어 배상금을
지불할 수 있게 되었고,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게서 배상금을 받아 미국에게 전시채무를 상환했습니다.
아르헨티나 등의 중남미 국가들과 캐나다로 유입된 미국자본은, 무역적자와 채무상환 형태로 다시
영국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 이러한 자본의 <순환적 환류>는 1920년대 내내 미국의 경기를 호황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과잉유동성은 조금씩 미국의 주식과 토지투기(@플로리다가 가장심했음)로
이어지게 됩니다. ... 그러나 1928년 여름부터 시작된 미국의 통화긴축(금리인상)은 미국자본에 의존했던
수많은국가들뿐만 아니라, 결국 미국의 경기도 침체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 미국 금리인상 이후
유럽국가들도 자국 통화가치 방어와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서 금리를 인상함.]

앞서 언급했듯이 풍부해진 (과잉)유동성은 1920년대 미국의 경제를 호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잉 유동성은 1923년 ~ 1929년 동안에 부동산관련 (투기적)대출을 48% 증가시켰고,
1920년대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주식시장에 투기적 열풍이 불면서 조금씩 거품이 형성되어 갔습니다.
특히 주식시장의 거품(투기적 주가상승)은 미국의 투자자들에게 마치 당장 부자가 된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게 만들었습니다.
[@ 당시 주식 열풍이 불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만기가 2361년, 2862년 이었던
철도채권이 유통되기도 했었습니다. -_-;]

1929년 다우존스 산업평균(DJIA) 지수를 살펴보면, 9월 3일 <381.17>을 기록하고(당시 최고신기록)
드디어 암흑의 10월! ... ... 10월24일 지수는 폭락을 기록했다가 장 막판에 <299.47>로 끝나 간신히
지수만회를 했지만(@은행가들의 협의로 지수방어), 우선 <‘300 포인트’>라는 경제호황의 상징적 의미가
무너졌다는 것이고, 이날(10월24일 목요일) 하루 동안에만 무려 1290만주가 팔리면서 종전의 400만주
기록을 처참하게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 시카고와 버팔로 거래소는 오후 12시 40분에 문을 닫았고,
문 닫기 바로직전까지 11명의 투자자가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5일 뒤인 10월 29일(화요일)
지수는 <230.07> 포인트로 장을 마감합니다. 이 수치는 전날(10월 28일)의 260.64에 비해 30.57 포인트
하락한 것인데 ... 이것은 하락률 기준으로 다우지수 폭락 10대기록에 포함되는 수치인 것입니다. 더불어
이날(10월 29일) 하루 동안에 무려 1640만주가 팔렸습니다. [@ 대공황의 시작! => 1929년 10월
다우지수 대폭락 이후, 약 3년 뒤인 1932년 7월에는 다우지수가 무려 <40 포인트>대로 떨어집니다.]

주식시장의 투기거품과 함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는 변화가 또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신용(빚)의 사용입니다. ... 대출을 이용해 부동산(토지)을 사들였으며 대출을 받아 철도와
철강주식들을 사모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용(빚) 사용은 비단 부동산과 주식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구재 소비>에서도 빚을 내어 구매하는 것이 일상화 되었고, 이러한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속도로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 더불어 당시 농업부분에서 농부들은
이미 빚을 경험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도시의 임금노동자들도 농부들 보다는 덜했지만
비참하긴 마찬가지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1929년 10월 29일 ... (다우)주식의 폭락은 사람들에게 미래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주입하면서
내구 소비재의 수요를 급감시켰습니다. 더불어 주식시장이 불안해지자 대출받아 투자했던 수많은
투자자들은 은행들의 대출상환요구에 주식을 팔아야 했고, 이것은 또다시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당시 주식시장은 마비에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에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으며 이것은 결국 사람들의 자산유동성을 감소시켜(@주식이 팔리지 않아 현금 확보가 어려움)
당장의 소비할 여력이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 여기에 앞서 보셨듯이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유럽 및
저개발 국가들의 경기침체까지 동반되자 미국기업들의 수출이 감소했고, 이런 상황은 경제가 공황으로
빠져드는데 또 하나의 요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대공황은 1929년부터 1933년 3월 뉴딜정책이 실시되기 전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용과 산출이 다시 완전고용 수준에 도달한 시기가 1941년이기 때문에, 이때의 12년의 기간을
대공황 기간(1929 ~ 1941) 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대공황이 한창 진행되던 1932년 7월의 미국의 공업생산은 3년전인 1929년 7월(다우지수 폭락전)에
절반수준으로 하락했고, 생산자 물가는 40%나 떨어졌습니다. 실업률은 1933년이 되면 무려 37.6%로
상당히 심각 했었습니다 ... 이렇게 사태가 심각해졌던 이유 중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은행공황(Banking Panics) 입니다.

먼저 그 당시 미국에는 소규모 단일점포 형태의 <단점은행(Unit Banking System)> 들이
난립하고 있었는데 ... 당시에는 거대기업(트러스트)과 거대금융자본(J.P 모건)들의 폐해가 상당히
심각한 시절이었습니다. 산업적 측면이든, 금융이든 ... 규모의 경제로 산업을 거의 독점했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들의(독점트러스트) 일방적 가격을 수용해야만 했었던 것입니다 ... 따라서
지자체 입장에서는 지역사회 사업자들과 농민, 금융소비자들에게 좀 더 신속하고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단점은행들을 환영했지만, 규모가 작다보니 업무처리가 원활하지 못했고
소규모의 독립적 형태였기 때문에 (금융)산업측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없었으며, 다른 지역의
은행들과의 협조체제도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지적이고 지역적인 작은
규모의 은행공황에도 상당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 이러한
단점은행들의 문제점(단점)은 곧바로 1920년대의 농업공황과 1929년 시작된 대공황에 의해 무참히
쓰러졌던 것입니다. 특히 은행공황은 산업과 금융 중심지였던 동부가 아니라 내륙부터 공황의 조짐이
싹트고 있었는데, 농산물 수요가 급증했던 전쟁(1차 세계대전)중에 지역 농촌에 많은 자본을 대출해줬던
은행들이 전쟁종료 후 농업분야의 과잉생산에 의한 몰락(농산물가격하락)과 함께 부실(채권)을 떠안고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 당시 미국에는 소규모 은행점포들이 전국적으로 난립하고 있었습니다.
<단점은행제(Unit Banking System)> 라고 하는데, 은행 하나에 점포가 하나뿐이었던 것이죠.
다시 말해 지점 없이 오직 본점 하나만 존재하는 은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규모가 작다보니 은행에
허점이 많아 항상 부실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 아니나 다를까 대공황 터지고 나서 1929년~1933년
동안에 미국에서는 무려 9,755개의 은행들(단점은행포함)이 도산을 하게 됩니다. ]

1929년 10월, 다우지수의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 은행공황(Banking Panics) 에 의해
그 정도가 심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은행의 공황은 실물부분의 공황을 초래했고
실물부분, 특히 기업들의 영업활동을 위축시켜 또다시 은행들에 부실채권이 쌓이면서 은행들을
도산시켰습니다. ... 결국 은행의 위기가 공황의 과정을 심화시켰고, 또 그것이 결과로 귀결되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당시 은행들의 보수적 경영(@신용좋은 기업.사람만 상대하겠다!)과 은행을 믿지 못했던 소비자들의
현금선호 현상이 맞물리면서 신용창조 기능을 떨어뜨렸습니다. 다시 말해 은행들이 신용 좋은 고객들만
선별적으로 상대하다보니(@더이상 부실채권이 생겨나지 않게 하겠다!) 평소보다 대출규모가 줄어들었고,
고객들도 은행을 믿지 못해 은행에 돈을 맡기는 대신 그냥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이렇다보니 은행입장에서는 대출에 활용할 자금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 이것은
결국 통화량을 감소시켜 이자율을 높이고, 높아진 이자율은 기업들의 투자나 영업활동을 더욱 더
위축시켰습니다. 특히 당시 주식이나 채권발행이 어려웠던 중소기업들은 오로지 은행차입형태로만
자금을 조달했었는데 ... 이러한 은행들의 (추세적인)보수적 경영과 도산 등으로 기업들의 투자 및
영업활동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게 어려워졌다면 결국 해법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나서야 했는데 ... 당시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긴축정책에 한계를 느낀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자(1931년)> ... 주변에서
미국의 금본위제 이탈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게 됩니다. ... 그러자 연방정부이사회(FRB)는 금(Gold)의
유출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보고, 이것을 막기 위해 금융긴축정책(금리인상)을 실시합니다.

[@ “영국이 금본위제도를 포기했어!
미국도 포기하지 않을까? ~ 만약 포기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

[@ “더 이상 달러($)를 금(Gold)으로 바꿔주지 않겠지! … 그리고
금(Gold)으로 바꿀 수없는 달러($)의 가치도 급격히 하락할 꺼야! ~ 아무튼
영국이 금본위제를 이탈한 지금은, 남들보다 하루라도 더 빨리 달러($)를 금으로
바꿔야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 같다!“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의 파운드화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전쟁전의 금평가를 고집했던 영국은
파운드화의 과대평가로 수출이 위축되었고, 저개발 국가들에게 (장기)자본수출국의 입지를 굳히려했기
때문에 자본계정도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 여기에 자산에 비해 단기부채비율이 너무나 높아졌고,
때문에 파운드화의 가치도 점점 하락하고 있었습니다. ... 이러한 상황에서 대공황까지 터지자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던 영국은 결국 1931년 9월 20일 금본위제도를 포기하게 됩니다.

금융의 두 중심축이었던 영국의 금본위제 포기는 미국의 금본위제에 대한 이탈 우려를 낳았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연방준비은행의 보유금이 유출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931년 9월이면
대공황의 가장 깊숙한 곳에 세계가 빠져있던 시기인데, 이때에 미국 연방정부이사회(FRB)는 달러($)를
방어하기 위해 이자율을 대폭 인상했던 것입니다.

1928년 여름에 시작된 미국의 긴축정책(금리인상)이 대공황의 불을 지폈다면
1931년 영국의 금본위제 포기 이후에 실행한 미국의 통화긴축(금리인상)은 세계 경제가 더 깊은
늪으로 빠져 들어간 결정적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 미국의(FRB) 금리인상은 곧바로 시중은행들의
대출회수와 투자증권의 매도세로 이어졌고, 앞서 언급했듯이 ... 오직 은행의 차입으로만 자금조달이
가능했던 농민과 소규모 사업장 및 중소기업들의 도산이 줄지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미국의 투자자들은,
미국보다 리스크가 훨씬 더 높았던 유럽의 투자도 극도로 기피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해외자금으로 방만한 경영을 했던 오스트리아의 최대은행인 크레디트안슈탈트[Creditanstalt)가
1931년 5월 파산을 하고, 이것은 독일 등 유럽전역에 금융위기를 전파하게 됩니다. 이러한 금융위기는
당시 예금자보호에 관한 개념정립이 미비했던 상황 하에서 사람들의 예금인출사태(Bank Run)를
초래했고 이것은 금융 중개기능을 마비시켜 통화 공급을 더욱 더 축소시켰던 것입니다 ... 그런데도
당시 상당수의 각국 정부(중앙은행)들은 예금인출로 인한 금(Gold)유출을 우려해 통화 확장정책을
제대로 펼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금본위제 유지와 긴축고수!)

미국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금본위제 이탈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에서 자국의 금(Gold)유출을
우려해 경쟁적으로 긴축정책(금리인상)을 실행하고 유지하자 ... 이것은 오히려 실물경제를 악화시키며
국제수지의 불균형을 더욱더 심화시켰습니다. 더불어 실물경제의 위축은 당시 빚(Debt) 때문에 고통받던
수많은 경제주체들에게 채무부담을 가중시켰습니다.

경기침체로 물가가 하락하자(디플레이션) 대출을 통해 집을 사고, 자동차를 구입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부채의 상환부담이 더욱더 가중되는 ... 소위
<“부채-디플레이션(Debt-deflation)”> 이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 부채디플레이션은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피셔(Irving Fisher)가 대공황을 설명하면서 만든 개념인데 ... 물가가 하락하면
실질금리(명목금리 – 물가상승률)가 상승하고 이로 인해 부채상환에 부담이 가중된 경제주체들이
빚(대출)을 갚기 위해 서둘러 자산을(부동산) 매각하고 ... 이것은 결국 다시 자산 가치를 떨어뜨려
경제전체가 더 깊은 디플레이션으로 빠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김철수가 2억짜리 아파트를 모두 은행대출을 받아 구입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첫해에 김철수는 열심히 일해서 대출원금 2천만 원을 상환했는데 ... 그해에 물가가 20% 하락해서
아파트 가격이 1억 6천만원이 되었다면, 그 시점에 김철수는 은행대출금(부채) 2천만 원을 상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팔아(1억 6천)도 대출금 갚는데 오히려 2천만 원이 부족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 물가하락의 영향으로 부채상환 부담이 더 늘어나서 소비를 위축시키고, 위축된
소비는 실물경제에 타격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빚을 갚기 위해 집(아파트)을 서둘러 팔게
되면 집값 하락이 더 가속화 된다는 것입니다.

[1] 최초 부채의 실질가치 = [(부채 2억)/(실질 자산 가치 2억)] = 100%
[2] 1년후 부채의 실질가치 = [(남아있는 부채 1억 8천만 원)/(실질 자산 가치 1억 6천만 원)] = 112.5%

[◆ 첫해는 집값(자산)도 2억이고, 부채(은행대출)도 2억 이기 때문에 김철수 부채의 실질가치는
100%(2억)입니다 ... 하지만 1년 뒤, 물가가 20% 하락해서 보니 집은 1억6천이고 은행대출(부채)은
1억8천이라서 김철수가 갚아야 하는 부채의 실질가치가 오히려 12.5% 더 늘어난 것입니다.
2천만 원을 상환했는데도 말이죠 ~ ]

이러한 <부채디플레이션(Debt-deflation)>으로 인해 은행들의 담보가치와 자기자본이 감소해
이것은 결국 금융위기와 신용경색을 더욱더 심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대공황의 신음 속에서
모두가 고통 받고 있을 때, 세계 각국들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관세율을 인상하고 수입할당제
같은 수입제한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특히 미국은 1930년 6월 스무트-홀리 관세(Smoot-Hawley Tariff)법을 도입하면서 관세율을 대폭
인상하자, 본격적으로 전 세계가 보호무역주의에 빠져들게 됩니다. ... 이후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됩니다.

고전적 금본위제 시절을 그리워하던 세계와 미국 다우지수붕괴, 은행공황, 공황 속에서 계속되는
각국의 긴축정책, 부채디플레이션(Debt-deflation) ... 여기에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등, 당시의 상황들을
보면 모두가 대공황 속에서 헤엄치기 너무나 알맞은 조건들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1929년 ~ 1933년) 동안에 세계 공업생산은 36%, 세계무역량은 25%가 감소했습니다.
대공황의 원인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1929년 10월 미국 주식시장(다우지수) 붕괴가 원인이라는
견해들이 많지만, 사실 당시의 주식시장 붕괴는 1928년 여름부터 시작된 미국의 통화긴축(금리인상)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이 부분도 조금 더 인과관계를 살펴보게 된다면
제1차 세계대전이후 <고전적 금본위제 복귀>를 시도했던 세계 각국들의 긴축정책 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하지만 이렇게 원인을 환원하고 환원하며, 과거로 계속해 거슬러 올라간다면
과거 역사 전체가 모두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렇다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사건과
장면들의 중심에는 항상 <금(Gold)>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 그렇다면 도대체
금(Gold)의 정체는 무엇이고 얼마나 대단한 마력(魔力)을 지녔기에 수천 년의 인류역사가 금(Gold)을
이토록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금(Gold)은 하나의 원소이며, 특히 화학적으로 상당히 안정적입니다. 다른 원소들과 거의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산화하지 않고 산(酸)에 대한 저항력이 커서 수백, 수천 년을 바다 속이나
땅속에 파묻혀 있어도 변질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밀도가 매우 높고 다른 금속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르고 가단성(@얇게 펴서 늘릴 수 있는 성질)이
매우 좋기 때문에 ... 만약 금(gold) 1온스(31g)를 두드려 얇은 판으로 만든다면, 무려 9m2(약 2.7평)의
판(금박)으로도 만들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얇은 금박을 녹여서 다시 덩어리 형태로 복원할 수
있습니다.

금(Gold)은 부서지거나 깨지는 법이 없고 밀도가 높아서 위변조도 불가능합니다.
인류가 선사시대부터 2001년 까지 채굴한 금의 양은 대략 1억 3,000만 킬로그램[13만톤]입니다.
이것은 한 면이 약 20미터인 정육면체 크기에 해당하는데 ... 유럽의 평범한 4인 가족이 사는
연립주택규모 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는 매년 약 2,500톤의 금(Gold)이 생산(채굴)되고 있으며, 대부분은 장신구로
가공되고 일부는 의료용(치과)과 산업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더불어 지금까지 생산된 전체
금(Gold)의 약 25% 정도는 금괴의 형태로 전 세계 중앙은행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데, 전 세계에서
금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미국 정부입니다.

미 재무부의 금 보유량은 약 8천톤 정도이며, 이 수치는 세계 각국 정부 금 보유량 전체의
3분의 1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단일 기관으로 따지면 뉴욕연방준비은행이 맨해튼의 지하 수장고에
약 2만 5,000개의 금괴를 보관하고 있으며, 뉴욕연방준비은행의 금 보유량만 해도 전 세계 금의 3%
수준에 이릅니다. 또한 이와 비슷한 양의 금(Gold)이 켄터키주 포트녹스(Fort Knox)의 지하금고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제국 로마에서는 금(Gold)이 곧 권력이자 민중을 통치하는 수단 이었습니다.
카이사르(Gaius Julius)는 오늘날의 스페인이었던 지역에서 재정담당관으로 근무하다 로마로 돌아오면서
정치판에 뛰어들기 충분한 엄청난 양의 금(Gold)을 가져왔는데 ... 그때 정치와 군사적 성공을 바랐던
부유한 로마인 크라수스(Crassus)와 동맹을 맺었지만, 크라수스(Crassus)는 기원전 53년경에 전투에
나섰다가 파르티아(Parthia 고대 이란계 유목민의 왕국)인들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당해 처형됐는데 ...
워낙 부(富)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지라 파르티아인들은 그에게 아주 독특한 처형을 내리게 됩니다.

"금(Gold)을 녹여 저놈의 목에 부어라!"

로마의 제국이 확장되면서 금과 은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당시의 원시적인
채굴기술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통치자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한
방법으로 금화의 질을 낮추는 방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 그리고 그리스인들도 이를 따라했습니다.

금화의 크기를 줄이면서 금(Gold)의 함량도 줄였는데, 당연히 돈의 가치하락이 뒤따랐습니다.
기원후 약 200 년간은 인플레이션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지만, 이후부터는 1.5세대 만에 20배 가까운
물가상승이 있었고 너무나 심각하게 돈의 가치가 하락하자 서기 305년경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자발적으로 퇴위하기 까지 했습니다. 물러난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의 후계자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에 심취해 비기독교 성지를 약탈하여 자신의 금(Gold) 보유량을 4배로
늘리게 됩니다. ... 그리고 순도 98%의 금화 "소리두스" 를 발행해 급격했던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도
했습니다.

무게 4.55그램의 이 금화(소리두스)는 넓은 지역으로 퍼져 중세까지 유통되었는데, 기간으로 따져보면
무려 1,000년의 기간이나 됩니다. ... 인류 역사를 놓고 보면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유통된 통화는
없었습니다. ... 오늘날의 기축통화인 달러($)도 1944년 브레튼우즈체제 이후부터니까 ~ 고작 역사는
7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소리두스 이후인 13세기부터는 피렌체에서
주조된 ‘후로린 금화’, ‘베네치아의 금화’, 1489년 영국 헨리 7세 때 만들어진 1파운드 금화인
‘소브린(sovereign)’ 등 ... 유럽 각지에서 근대적인 통화로서 금화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금(Gold)은 그렇게 유용한 금속은 아닙니다.
치과치료 등의 의료용이나 전자업계를 제외하면 금(Gold)에 대한 "산업적 측면"에서의 수요는
거의 없다고 봐야합니다 ... 물론 반지나 귀걸이 같은 장신구 등이 있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준 화폐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을 뿐(@급할 때 금반지 파는 것 등) 산업용은 아닙니다.

이렇게 금(Gold)은 비화폐적(산업) 용도로 사용되는 수요가 매우 적기 때문에
화폐용 금과 산업용 금의 수요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2006년 독일의 최고 시사주간지 슈피겔에서 발표한 자원관련 특집 내용을 살펴보면,
전 세계에서 전자산업과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금(Gold)의 비율은, 금(Gold)의 연간 생산량의 6%
수준이며, 이는 인류가 지금까지 생산(채굴)한 양의 0.12% 수준 이라고 합니다. ~ 더불어 금(Gold)을
치과 등의 의료용으로 사용하는데 특별히 효율적인 면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 전자업계 에서도
신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적은 양의 금으로도 같은 기술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철과 석유, 식량자원 등은 생산과 동시에 소비가 되는데 ... 보편적으로 생산된 후 1년 안에 거의
소비되어 없어져 버립니다. 하지만 금(Gold)은 생산량이 총 공급량(13만톤)에 비해서 상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연평균 2% 미만수준이며, 최종 소비는 이 수치보다 훨씬 더 적습니다.

금(Gold)은 전 세계에 고루 분포되어 있어 정치적인 영향에 의해 생산량이 갑작스럽게 증가하거나
줄어드는 경우도 별로 없습니다. 세계 최대 금(Gold) 생산지인 남아프리카는 2,000년에 약 450톤을
생산했는데, 이는 전 세계 생산량 2,500톤의 18% 수준이며, 2위는 미국으로 약 340톤이었고, 호주가
300톤으로 3위를 차지했습니다. ... 그리고 금(Gold)생산 상위 10위 내에 속하는 국가들의 생산규모를
모두 합하면 대략 1,500톤 정도 됩니다.

1492년 이후로 세계의 금공급량은 연간 5% 이상 증가하지 않았고, 1850년대 골드러시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후 1890~1910년 까지는 연평균 3~4% 선에 머물다가, 그 이후로 현재까지는
2% 미만수준의 생산량에 그치고 있습니다.

다른 자원들이 어떤 시장요인에 의해 가격이 변동할 때, 금(Gold)은 그러한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통화계의 북극성"으로 불리 웁니다. ... 더불어 금(Gold)은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항상성(恒常性변하지 않는 성질)에 있어서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또한 어느 한 국가의
중앙은행이 대규모로 금(Gold)을 매매하였다 하더라도 인류가 수천 년부터 지금까지 채굴해서 가지고
있는 총량(13만톤)에 비하면 거의 조족지혈인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금(Gold)은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친 세계인의 공통되고 보편적인 가치척도였습니다.
세계가 금본위제를 유지하다 실패한 이유는 금의 가치가 손상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정치)가 안전한
통화체제의 약속을 스스로 어겼기 때문이며, 여기에 오늘날의 세계경제가 부채의 개입과 함께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위(本位.Standard)> ... 라는 의미의 본질을 한 번 생각해봅니다.

파생상품의 예를 들어보면, 주식선물의 본위는 주식입니다. 그리고 주식의 본위는 기업입니다.
기업의 본위는 사람(노동력)과 생산설비 같은 생산수단입니다. ... 이러한 생산수단은 우리에게
자동차와 스마트폰, 빵, 건물, 컴퓨터, 우유, 볼펜 같은 수많은 실물(상품)을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도 가능해 보입니다.

“금(Gold)의 본위는 무엇일까? ~ 금(Gold)에도 본위라는 개념이 성립할까?”

바로 <“역사성”> 입니다. 고대 인류 문명 역사로부터 현대까지 함께한, 그 어떤 물질로도
대체 불가능한, 그리고 범접할 수 없는 <금(Gold)의 역사성>이 바로 금의 본위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얘기를 한다면 ~
비트코인(가상화폐) 또한 금(Gold)과 마찬가지로 변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즉 항상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금보다 더 우월하다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100% 변질 불가능하겠죠. 디지털이므로) ... 다만
여기에는 <영구적 전력시스템> 이라는 전제가 붙습니다. ... 전쟁이 발발하면 보통은 가장 1순위
목표로 전력(@ 발전소)과 통신 시스템 같은 그 나라의 국가인프라 시설을 꼽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험이 바로 고강도 전자파 펄스로 상대국의 전자 장비를 무력화시키는
EMP(Electromagnetic Pulse attack) 공격입니다. 더불어 가상화폐의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실물과 본위가
없다는 점입니다. ... 앞서 얘기했듯 금(Gold)은 수천 년 인류역사와 수많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야말로
<"통화계의 북극성">입니다.

비록 지금은 금본위제도가 사라졌지만 국제결제은행(BIS)은 현재도 금(Gold)을 각국 정부의
외환보유고로 인정하고 있으며, 세계 무역거래에서도 금(Gold)은 여전히 결제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또한 국제통화기금(IMF)은 기금에 가입하려는 가맹국에게 신청서를 받고 그 나라의
경제규모에 따라 쿼터(IMF Quota)를 할당하는데(@일종의 가입회비) 납입하는 회비(쿼터) 중
25%는 금(Gold)으로, 나머지 75%는 자국통화로 받습니다. ... 다만 이후에 금으로 납입하던 25% 부분이
현재는 특별인출권 이라는 SDR로 대체되었습니다.[@SDR: 그냥 전 세계 어딜 가도 금이나 달러($)처럼
돈(국제통화)으로 인정해주는 만국 공용 상품권 정도로 생각하시면 편합니다.(제 3의 기축통화)]
이렇듯 금(Gold)은 여전히 건재하며 국제통화와 같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와 금(Gold)이 함께 살아온 시간만큼의 미래를 비트코인도 살아갈 수 있다면, 즉
향후에 인류의 그 어떤 충돌(전쟁)에서도 비트코인이 끈질기게 살아남는다면 ... 그때에 가서는
가상화폐(비트코인)의 역사성에도 <본위(本位.Standard)>의 개념을 충분히 부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이 혹시 모를 전쟁 발발에 대비해 이중, 삼중의 다중백업으로 서버의
안정을 도모하고, 여기에 금(gold)의 역사성이라는 어마어마한 난관까지 모두 이겨냈다고 가정한다면
이제는 가상화폐(비트코인)를 진정한 한 국가의 대표통화로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 다시말해
넘어야할 산은 모두 넘었기 때문에 가상화폐를 국가의 공인된 통화로서 인정 가능하겠느냐는 말이죠.
저는 아직 넘어야할, 아니 어쩌면 도전 불가능한 가장 험준한 산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병을 치료하는 자정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수반됩니다. ... 그리고 또 다시 자본주의는 병들어 갑니다.
이것을 좀 더 알기 쉽게 표현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공황 – 불황 – 회복 – 호황 – 공황 ... ...... ]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탐욕은 공황을 만들고, 여기서 자본주의는 스스로 만든 가치를
파괴하며 모순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칩니다. 이러한 절박함은 모순을 해결하며 조금씩 회복의 단계로
접어듭니다. 그리고 건강을 되찾고 최고의 전성기를 보냅니다. 여기서 과거의 아픈 상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자본주의는 또 탐욕의 불씨를 살려내죠. ... 그렇게 자본주의는 또 다시 병들어갑니다.
이것은 어쩌면 자본주의의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무리 자본주의가 뛰어난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과거에 비해 너무나 복잡하고 방대해서 그 모든 치료의 과정을
혼자서 감당할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의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오늘날 병든 자본주의를 낫게 하는 가장 좋은 치료제는 과연 무엇일까?”

모순되지만 바로 <부채(Debt)>입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즉 현대경제는 <부채(Debt)> 없이는 불가능한 경제체제입니다.
국가(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이 낸 세금만으로는 운영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비대해졌습니다.
기업들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따라서
경쟁자보다 한 발 늦은 투자는 기업 도태의 불씨가 되며, 기업 투자의 상당부분은 부채(Debt)에
의존합니다. ... 개인들은 더 이상 자신이 번 돈 안에서만 소비를 하지 않습니다. 아파트를 마련했다고
기뻐하지만 실질은 최소 20~30년은 은행에 월세(대출상환금)를 내야하는 신세입니다.
[◆ 참고: 시중 통화량을 의미하는 광의통화(M2, 평잔 기준) 규모는 2,002년에는 대략 820조원
수준이었는데, 2016년에는 2,340조원 수준입니다. (@ 한국은행 상세통계)]

우리는 은행에 현금(실물)을 예금하면 은행은 종이(통장)에 나의 예금액수를 프린트해줍니다. 더불어
언제든지 디지털(ATM, 인터넷 뱅킹)로 본인의 예금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은행은 이러한 현금을
(일종의)본위로 삼아 신용(대출)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즉 은행에 내가 맡긴 돈은 기록상(디지털)으로는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다른 제3자에게 내 돈(@수많은 예금자들의 돈)을 본위로 시장에 새로운
신용(대출)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모두 잘 아시겠지만, 우선 실물(현금)이
존재하고 모든 예금자들이 한날한시에 돈(실물)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 설령 같은 날 동시에 모든
예금자들이 자신의 예금을 찾는다고 했을 때, 은행에 돈(실물)이 부족하다면 민간은행은 중앙은행에서
현금을 빌려올 수도 있고 해외에서 차입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 이것은 발권 권한을
국가(정부)가 독점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럼 비트코인은 어떨까? ... [◆ 대한민국 공식화폐 – 비트코인 가정]

(1) 김사장, 박사장, 이전무는 각각 100btc 를 A, B, C 은행에 예금합니다.(총통화량 300btc)
(2) C 은행은 정이사에게 100btc 대출합니다.
(3)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총통화량은 400btc로 증가했으며, 실질(본원) 통화는 여전히 300btc입니다.
(4) 정이사는 대출받은 100btc로 드론을 해외(미국)직구로 구입하고 국외로 송금(이체)했습니다.
(5) 국외로 100btc를 송금했기 때문에 이제 한국에 남아있는 실질(본원) 통화는 200btc입니다.
(5) 김사장, 박사장, 이전무는 각각 자신의 주거래 은행을 방문하여 예금전액을 인출합니다.

(6) 시중의 실질 btc는 300btc 였으나, 정이사가 이미 국외로 100btc를 송금한 상황이므로
현재 시중에 남아있는 btc 실질 양은 200btc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때에 부족한 100btc를 은행은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가? ~ 발권 권한이 중앙은행(한국은행)이 아닌 민간영역에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에서 돈(btc)를 빌려올 수도 없습니다. ... 그렇다면 은행이 총력을 다해 마이닝 작업을
해야 할까? ... 방법이 하나 있긴 있습니다. 바로 해외에서 100btc를 빌려오면 됩니다. 아니면 한국의
공식 통화인 비트코인을 다른 국가의 가상화폐와 교환(@ 일종의 외환매매거래)해야 합니다.
마치 우리의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것과 같은 현재의 외환거래 말이죠. ... 그러나 해외에서
사올 자금은 지금은 원화(실물)가 아니라 비트코인입니다. 해외에서 가상화폐를 사오기 위해
또 다른 가상화폐가 필요한 거죠. 더불어 (해외에서)차입을 하더라도 <상환>이라는 의무는 여전히
계속해서 남습니다. 결국은 부족한 100bt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국내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여기에 최초 예금 당사자들이었던 김사장, 박사장, 이전무의 각각의 예금액
100btc에 대한 이자 역시 비트코인(btc)으로 지급되어야 합니다. ... 여기서 이자(interest)의 의미가
정말로 중요한 것은, 최초 실질(본원) 통화 300btc에서 추가로 본원통화가 증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특히 은행이 존재하는 경제체제에서는 <통화량 증가>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부채의 증가는 필연적이라는 뜻입니다. 김사장, 박사장, 이전무의 이자수익은 은행입장에서는
일종의 부채입니다. 또한 드론을 구매했던 정이사도 은행에 이자를 납입해야 합니다. ... 결론적으로
“이자(interest)”는 그 나라의 <통화량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성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국가(중앙은행)뿐인 것입니다.

인류역사에서 <화폐>의 권한(발권)이 국가가 아닌 민간이었던 적인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국가(정부)에 발권 권한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국가로서의 의미가 상실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무정부주의>인 것이죠. 따라서 제가 내린 핵심적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상화폐! ~ 해도 국가(정부)가 한다!”

만약 국가(정부)가 가상화폐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이후 가상화폐의 변동성은 (거의)사라지게 됩니다.
한 나라의 화폐변동성이 지금의 비트코인과 같은 모습이라면 ... 그건 도저히 화폐가 될 수 없습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무려 800~1,000%로 변동하는 화폐라면 과연 누가 우리와 무역을 하겠습니까?






[@ 긴 글임에도 매 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는 많은 이슈인 분들(영자님 포함)에게
죄송스럽고 고맙다는 말씀을 먼저 전합니다. ... 분량이 많다보니 어쩌면 글 중간에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부터 가상화폐에 대한 저의 견해를 듣고 싶다는 분들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가상화폐' 하나만의 짧고 파편적인 얘기보다는 세계 근현대사에서 <화폐 경제>가
어떠한 사건과 경험을 통해 현대까지 흘러왔는지를 살펴보고 그 안에서 화폐의 본질적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 우리가 향후 미래의 가상화폐 시스템을 가장 잘 이해할수 있는 판단근거를
제공해줄거라 생각했습니다. ... 더불어 그러한 판단근거는 바로 금본위제와 대공황이
가장 잘 설명해 줄수있는 이야기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날씨가 상당히 추워졌는데 모두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

 

 


한가지 궁금한 것은 ‘화폐전쟁’을 보면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은 민간은행의 집합이고 미국 정부가 소유하지는 못하는 화폐 발행 기관인데 이는 화폐발행 권한이 민간에 있는것은 아닐런지요?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Fed)는
미행정부의 공적기능과 민간은행의 사적영역이 절묘하게 결합된 형태의 조직입니다.

주요기관은 워싱턴에 있는 소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라는 FRB(Federal Reserve Board)입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뉴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됐던 곳이기도 합니다. FRB에는 대략
1,800여명 정도의 직원들이 근무하는데 주요 업무는 조사연구와 (통화)정책 및 통계 등을 집계 합니다.
그리고 단일 (공적)기관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경제학자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 상당수의 박사급)

FRB에는 13개의 부서가 있는데 ... 특히 경제학박사학위 소지자들은 대부분 '국제금융부서'에서 근무하며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을 관찰합니다.(@ 국제금융부서 과반이상이 모두 박사급.)

FRB는 연방정부기구 성격이 가장 강한 곳인데 ... 의장을 포함한 주요 요직(7명의 이사)이
모두 미국 대통령에 의해 임명됩니다. 더불어 FRB 의장(우리의 한은총재)과 7명의 이사(14년 임기)들은
상원의 인준을 통과해야하는 공식적인 <공무원> 신분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중앙은행 총재격인 FRB의장과 주요 이사직의 임명권한이 법적으로 미국 대통령에게
있으므로 ... 비록 민간과 공적기능이 결합된 형태라 하더라도 여전히 미국의 발권($) 권한은 정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폐량의 증가가 없다. 비트코인이 실물이 없고 수량이 정해져 있지만 사람들의 투기심이나 경제적이고 조금은 탈법적인 쓰임새 때문에 비트코인의 사용 편의성으로 사람들의 기대가치가 계속해서 올라가면, 그 자체로 통화량 증가같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이미 비트코인이 암호화폐의 금 같은 격으로 체제가 바뀌고 있는거 같은데..

 

 

인간의 탐욕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바로 인간의 <"불안"> 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다 가진것을 본인만 가지지 못한다면 마음속에서는 서서히 <불안>이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어느순간부터는 본인도 남들처럼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불나방처럼 달려듭니다.
이렇게 불나방처럼 그것(?)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표현해보면
이것이 바로 <"수요증가"> 입니다. ... 그리고 그것(?)의 정체는 당연히 재화(상품)가 되겠죠 ...

어떤 재화에 수요가 증가하면 그 재화의 가격이 상승합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재화의 내재적인 '가치의 상승'이 아니라 '가격의 상승'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재화의 내재가치 높아져서 수요가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 여기서는 '가격의 상승'만 강조하기 위한것임)
예를 들어 요즘 청소년들에게 인기있는 A라는 패딩이 있는데, 이 A패딩은 작년과 비교했을때
디자인도 올해 신상품과 비슷하고 품질 또한 월등히 나아진것도 아닙니다. ... 단지 유행 등
그 어떤 이유에서 갑자기 사려는 사람이 늘어난것입니다. ... 그래서 가격이 작년보다
50% 상승해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럼 상승한 50% 가격만큼의 통화(화폐량)는 어디서 마련해야 하나요? ~ 마이닝(채굴)해야 할까요?
재화의 가격이 상승할때마다 사회전체가 채굴작업에 들어간다면 사용편리성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불편함이 증가하겠죠.

님께서는 비트코인의 사용편리성 같은 장점때문에 사람들의 비트코인에 대한 "기대가치"가 올라간다고 하셨는데
비트코인을 한 국가의 공식적인 "화폐"로 인정한다면 화폐의 기대가치 상승은 곧 물가의 하락을 의미합니다.
디플레이션이죠! .... 만약 비트코인의 가치가 현재와 같은 광풍적 현상(변동성)을 보인다면, 그리고
비트코인이 현재 한국의 공식화폐라면 ..... ... 으 ~ 으 끔찍합니다! ~ 대한민국은 그냥 한순간에 폭망하는겁니다.

다시 A패딩 사례를 들어보죠 ...
A패딩을 생산하던 기업이 작년에는 패딩 한 벌을 1btc 가격에 판매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런데 님의 말처럼 올 한해 비트코인의 기대가치가 대폭적으로 상승했다면
이제 A패딩을 생산하던 기업은 패딩 한 벌을 0.1btc, 즉 10분의 1 수준의 가격을 받아야 합니다.
더구나 화폐의 가치가 계속적으로 상승하는데 "소비(A패딩구입)"를 왜 합니까? ~ 이럴땐 그냥
손에 화폐(비트코인)만 꼭 쥐고 있으면 저절로 부자가 될 텐데요 ~ 그런데 이게 바로 함정이죠!

물건이 안 팔려요 ~ 모든 사람들이 계속해서 화폐를 손에쥐고 화폐의 가치상승만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
그럼 기업은 상품(패딩)의 가격을 내려야 합니다. 상품가격은 투입된 비용과 동일한 수준까지
하락하게 될겁니다. 그리고 그 변곡점을 깨뜨리며 그 아래로 가격이 더 내려간다면 이제 기업은
적자구조로 전환됩니다. ... 생산을 줄여야 합니다. 공장과 기계를 팔겠죠. 공장 임대료를 받던 토지주의 소득이 줄어듭니다.
직원도 해고해야 합니다. ~ 그럼 직원들의 밀린 임금이나 퇴직금은 또 어디서 마련해야 하죠? ~ 여기에
기업이 패딩사업을 위해 은행으로 부터 대출까지 받은 상황이라면요? ~ 그 돈(btc)을 어떻게 감당해야 합니까?
지금같으면 국가의 파산제도라도 있어서 다행이지만 만약 공식화폐주권이 민간으로 넘어간 상황이라면,
'공적자금' 투입 자체가 불가능해 집니다. ... 나라가(정부) 더 이상 돈을 생산(발권)할수 없기때문입니다.

본문에서도 이미 자세히 설명했지만
은행 제도가 존재하는한 현행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서는 통화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제가 장문의 글 중에서 '금본위제도' 대한 이야기를 상당부분 할애한 것입니다. 금본위제도에서는
통화량이 금에 구속되기 때문입니다.(@통화량 제한) ... 그리고 그러한 금본위제도 하에서 대공황이라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고요 ~

현재의 비트코인 광풍에서 비트코인은 단순한 '(금융파생)상품'의 의미밖에 찾을수 없습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가상화폐가 아니라 "가상의 (금융)상품"이죠 ~

그 어떤 내재가치도 존재하지 않는 비트코인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블록체인' 이라는 기술적부분뿐 입니다.
제가 장문의 본문 글을 쓰기전에 가상화폐에 관한 많은 글을 읽어보았는데, 그 어디서도 통화량 증가부분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임에도 말이죠.

그래서 저는 글 처음시작에서 비트코인 투자로 수익을 낼수 있을까 없을까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오직 가상화폐(비트코인)라는 시스템이 한 국가의 공식적인 화폐(기능)가 될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얘기하겠다고 한 겁니다.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수 있다. 없다를 언급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은 이미 비트코인을 '화폐'가 아닌 '투기적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무지랭이한테 누가 설명좀 해주세여

"그렇다면 이때에 부족한 100btc를 은행은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가? ~ 발권 권한이 중앙은행(한국은행)이 아닌 민간영역에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에서 돈(btc)를 빌려올 수도 없습니다"

라는 부분이 잘 이해가 안가는데, 어차피 발권 권한이 중앙은행에 있는 지금도 민간은행의 bank run(대량인출사태) 를 중앙은행에서 신규발권으로 막아주는건 아니지 않나요?

 

 

한 나라의 중앙은행의 역할이 단순히 '머니프린팅(신규 발권)' 하나에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뱅크런 사태는 (민간)은행에게는 가장 큰 위협이자 은행의 생존을 좌우하는 매우 큰 사태입니다.

사람들이 은행에 예금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뢰" 입니다.
필요할때 자신의 돈을 언제든지 찾을수 있다는 암묵적인 믿음과 강한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우리는 은행에 별 거부감없이 자신의 돈을 맡기는 것입니다. ... 따라서 만약 A라는 민간 은행이 부실경영으로
뱅크런 상황에 처했다면, 이후 다른 건전한 은행 B, C, D ... 등의 은행들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의 불안심리가 사회전반으로 확산(전염)되는 것이죠 ... 그럼 사회는 엄청난 혼돈속으로 빠져들게 될겁니다.

그래서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이 필요한 겁니다.
물론 중앙은행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은 상당히 위협적이며 해결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뱅크런)이 닥쳤다면 중앙은행은 우선 돈을 풀어야 합니다. 신규발권을 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중앙은행 자체의 신용(국가신용)만으로 다른 나라에서 차입이나 스왑(Swap) 형태로 돈을 모아
(민간)은행에 자금을 대여할수 있고, 뱅크런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면 통안증권을 발행해(보통은 RP거래)서
마련한 자금으로 민간은행들에게 대여해 줄수도 있습니다. ... 그래서 중앙은행을 소위 '최종대부자'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정부는 '예금자보호'라는 법적 안정판을 사회에 제공해줌으로서 사람(예금자들)들의 흥분을 진정시킬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모두 현재 실제 운영되고 있는 중앙은행시스템이라는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 그 나라의 공식 화폐에 대한 발권 권한을 정부(중앙은행)가 '독점적'으로 관리하기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과의 신용거래와 스왑도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의 공식적 화폐(발권) 권한이 국가(정부)가 아닌, 민간 영역에서 가상화폐라는 형태로 창출되고 있다면
더 이상 중앙은행은 존재할수없게 됩니다. ... 그 나라에 '중앙은행(역할)' 자체가 사라지고 발권 권한이 민간영역 전체로
고르게 분산된 상태인데(@개나 소나 채굴) ... 중앙은행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또한 정부도
예금자들의 돈을 '예금자보호' 라는 법적 제도로 보호해줄 근거가 없습니다. 예금자 개인이 채굴하다 못 받게 된 돈(btc)을
왜 정부가 보상해야 하죠?(@법 전공이 아니라 이 부분은 저의 개인적 생각입니다.)

가상화폐 시스템이 과연 한 국가의 공식적 화폐 기능을 할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현재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그 중에 저는 부정적의견을 피력한 것이며 이에 대한 근거를
과거 금본위제도와 대공황사태를 살펴봄으로서 향후의 가상화폐 가능성을 점처본 것입니다.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로써 기능하기 위해서는 발권 권한이 필수불가결 하다' 라는 의견이신걸로 요약할 수 있을것 같은데,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는건 어디까지나 중앙은행 자체 유동자산으로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경우에 한하지 않습니까? 임의대로 찍어낼 수 있는 화폐에 무슨 신용이 있을까 싶고, 찾아보니 2008년경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이 파산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정부가 국가운영을 하려면 돈(재정)이 필요합니다.
도로와 철도를 만들고, 공항과 항만도 만들죠 ... 국민들이 생명과 안전을 위해 경찰과 군대도 만들죠.
자신이 사는집에 불이 나면 소방인력이 출동해 불도 끕니다. 위생환경을 위해 청소하는 인력도 필요하겠죠.
방역을 위해 보건인력도 필요합니다. ... 아무튼 나라 운영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정부(국가)는 국민들에게 세금을 걷어 충당합니다. ... 그런데 현대국가는 너무나 돈 쓸일이 많습니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걷은 세금만으로는 부족해여 ~ 그래서 국가도 빚(부채)을 내야 합니다.
채권을 발행합니다. '국채'라고 하죠. 그리고 국채의 상당부분은 중앙(한국은행)은행이 돈을 찍어 사줍니다.
이렇듯 중앙은행은 민간은행 뿐만 아니라 정부의 금고역할도 합니다.

중앙은행이 민간은행들에게 유동성을 공급할때 공짜로 돈을 빌려주는게 아닙니다.
회수가능성을 따집니다. 다시말해 민간은행도 중앙은행에서 빌려온 돈을 갚지 못할경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부동산, 채권 등)을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은행이 자산을 팔아도
빌린 돈을 다 못갚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 이러때는 정부(국가)가 나서서 (긴급)구제를 해야 합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필요한건 통화량 관리 때문입니다. ... 통화량은 "물가"와 직결되죠.
물가는 서민(국민)들의 삶과 맞닿아있기 때문에 행정권한이 자칫 정치적 포퓰리즘에 빠져 시중에 너무많은
돈을 풀어버린다면 서민들은 고물가에 고통받을 겁니다. ... 이런 상황에서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사태를 파악하려고 정부가 아닌 중앙은행이 필요한 겁니다. ... 정치 간섭에서 벗어나 돈의 양을 조절해
최대한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요 ~ 앞서도 언급했지만 중앙은행의 역할은 돈만 찍어내는
머니프린팅(본원통화 공급)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통화랼 조절에 의한 <물가안정>이
바로 그 나라의 중앙은행의 역할입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고 난 후, 미국은 QE3와 함께 양적완화의 일환으로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 라는 걸 계획했었습니다. ... 실제로 당시 벤 버냉키 FRB 의장은
경기부양을 위해 2011년 9월 21일 만기가 3년 미만인 (단기)국채 4,000억 달러를 팔고, 그 자금으로
2012년 6월 말까지 6~30년 만기의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를 시행한다고
발표 했었습니다. ~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는 시중의 통화량 증가부담도 억제시켜 주기 때문에
중앙은행(FRB)의 머니프린팅(달러를 찍어냄)이나 국채발행의 효과를 대신 할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는
단기채를 팔고, 장기채를 매입하는 것인데 .. 이렇게 단기채를 판 돈으로 장기채를 매입하게 된다면
장기채 가격이 상승하게 됩니다.(채권가격과 금리는 역의 상관관계) ... 그리고 장기채권의 가격 상승은
장기금리 인하를 유도하게 되면서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촉진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리의 부담을 경감 시켜 내수활성을 기대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같은 정책을
업계에서는 보통 '비전통적 통화정책' 이라고 부릅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일종의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할수 있습니다.
정부는 해마다 기업(법인)과 국민들의 재산 및 노동력의 일부를 "세금" 이라는 형태로 지급받습니다.
기업과 국민들이 정부에 월급을 주는 겁니다. ~ 정부 입장에서는 기업과 국민들이 일종의
캐시카우(cash cow)인 거죠 ... 따라서 국가의 정치수준과 조세투명성, GDP, 부채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세계는 나라마다 등급을 매깁니다. ... 국가의 신용이 얼마나 좋냐는거죠 ~ 흔히 뉴스에서 'CDS 프리미엄(국가신용등급)'
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 "한국이라는 나라에 돈을 빌려주면 잘 갚을수 있을까?"

그래서 세계는 CDS프리미엄 수준을 보며 그 나라의 신용수준을 객관적수치로 파악할수 있게 됩니다.
국가의 신용등급이 높아지면 중앙은행 뿐만 아니라 민간은행 및 일반 기업들도 해외에서 돈을 빌릴때(ex.채권발행)
일정부분 유리한 혜택을 받을수 있습니다. ...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발생합니다. 님께서 언급하신 아이슬란드나
1998년 러시아 디폴트(빌린돈 못 갚겠다!) 선언 등이 좋은 사례입니다.

한 나라의 중앙은행은 돈만 찍어내는 역할만 있는게 아닙니다.
머니프린팅은 그 역할 중 (작은)일부일 뿐입니다. ... 중앙은행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하나의 신용이 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캐시카우를 가지고 있는 정부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에서 민간은행이 해외(외국국적은행)에서 돈을 차입하는 경우를 언급했었는데
국내은행과 외국 국적은행(해외은행)들 끼리(업계에서는 보통 '은행간 거래, 은행간시장' 이라고도 함.)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거래를 할때 상당부분은 각국의 중앙은행에 마련된 당좌계정을 이용합니다.
한국의 A라는 은행과 영국의 B은행이 서로 돈을 빌리고, 빌려줄때 이들은 과연 서로를 얼마나 신뢰할수 있을까요?
약간의 의심이라도 존재한다면 거래가 안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항에서도 각국의 중앙은행이 나섭니다.

한 국가의 '중앙은행 역할'은 단순히 돈만 찍어내는게 아니라
그 나라의 전반에 돈의 흐름을 조절하고, 물가 및 시장심리를 안정시키며, 해외에 신뢰를 주어
기업들이 세계를 상대로 경영을 무난히 잘 할수 있게끔 도와줍니다. ... ....

그런데 가상화폐 시스템으로
위에서 얘기한 중앙은행의 모든 역할과 과정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세여 ~ 과연 "국가(정부)" 자체가
성립할수 있을까요? ~ 국민 스스로가 채굴을 통해 돈을 직접 만드는데 정부에 세금을 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면 정부는 그냥 없어지는 겁니다.

러시아와 아이슬란드는 각자의(정부, 중앙은행)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것 뿐입니다.
중앙은행 시스템 자체가 문제인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 결국은 사람(정치)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ㅇㅇ 저번 비트코인 관련글에서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로 기능하기위해 왜 발권 권한이 필수적이라 보는가?
계속 물어봤는데
-중앙은행 역할이 발권만 있는게 아니라 이러이러한 것도 있다
답변만 계속 하드라.

아이슬란드 중앙은행 파산 위기때 왜 걔네는 뱅크런을 신규발권으로 막지 않았던건지 난 아직두 궁금함.

 

 

[그렇게 설명을 드렸는데도 이해를 못하시는것 같아 마지막으로 짧게 부연설명 드립니다. ]

@ 아이슬란드(Iceland)
@ 수도레이캬비크
@ 요약정보 - (1) 면적 10만㎢ 한반도의 0.466배, (2) 인구약 33만명, (3) GDP약 248억4,800만 달러 세계 107위

위의 아이슬란드 정보는 방금 네이트에서 검색한 내용입니다.
인구가 고작 33만 입니다. 서울 마포구(38만) 구민수보다 적죠 ... GDP 248억 달러($)면 현재 환율(1,093원)로
대략 27조원 수준입니다. ... 우리나라 내년 예산안이 429조원입니다. ~ 비교조차 안되죠.

그런데 한국, 아니 서울은 커녕 서울의 어느 한 구(區) 수준의 나라에서 2008년 어떤일이 있었는지 ~ 저는 님께서
아이슬란드에 대해 언급하시길래 최소한의 정보는 스스로 알아보시고 질문을 하신줄 알았습니다.

인구규모와 GDP, 그리고 세계지도를 펴 보시면 아시겠지만,
과거에 아이슬란드가 먹고사는 방법은 오직 고기를 잡는일밖에 달리 먹고사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 어업이죠!
그런데! ~ 1970년대가 들어서면서부터(신자유주의가 막 싹트기 시작하던 시기였음.)
아이슬란드 정부가 하나의 중대한 선택을 합니다. ... 그동안 먹고사는일이 고기잡는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식한 싹쓸이 남획으로 어족 자원이 씨가 마를 위기에 처하자 정부가 고기를 잡을수 있는 권리(어업허가권)를
부여해 어업허가권이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고기를 잡을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 그리고 권리(어업허가)를
시장에서 사고팔수 있도록 만든 것이죠.

그리고 은행들은 이 권리증서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기 시작합니다. ... 여기서 초창기에
정부로부터 어업허가권을 받은 소수의 어부들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과거 1970~1980년대 주택개발붐으로인한 토지보상으로 하루아침에 배추밭 농사꾼이 거부로 탄생한
한국의 땅부자들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후 아이슬란드 상황이 어땠을것 같습니까? ~ 목숨을 걸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것보다
"권리(어업허가)"라는 무형의 법적증서가 많은 돈은 물론, 심지어 거부로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린다는걸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 아이슬란드는 확실히 깨닫게 되죠.

"바로 금융업이다! ~ 배를 버려라! "

1991년 ~ 2004년 까지 아이슬란드 총리를 했던 '다비드 오드손'은
총리를 하는동안 국영은행을 민영화하고 국제 (투기)자본의 이동(진입)을 무제한적으로 열어줍니다.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발상이죠.(@자유시장경제는 만능이다!)

세계의 자본을 끌어오기위해 아이슬란드의 공식화폐 였던 <크로나>의 금리가 2005년에 8~9%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당시 미국의 국채 티노트(T-Note. 10년물)가 대략 4.3 ~ 4.56% 사이에 있었고, 우리나라 국고채(10년물) 또한 5%를
넘지 않았으니 ... 당시 아이슬란드의 금융상황이 어떠했는지는 대충은 짐작이 가리라 생각됩니다.

돈이 몰리니 그 다음 수순은 자연스럽게 아이슬란드 자산시장 거품을 만들게되죠
20년 넘게 배를 타며 고기를 잡던 사람이 어느날 은행의 뱅커가 되기도 하고, 시장에서 생선의 종류를 구분하며
경매일을 하던 사람이 증권 브로커가 되어 런던과 덴마크에 호화 별장을 사던 시기였습니다. ... 그리고
이러한 과정속에서 아이슬란드의 주식시장은 시총기준 대략 8~9배로 커졌고, 부동산 시장은 4배 수준으로
커졌습니다. ... ... 그리고 드디어 2008년 미국에서 세계금융위기(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죠.

해외 (투기)자본은 썰물처럼 아이슬란드를 떠났고, 환율은 무려 2배 이상 상승합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이 대략 1093원인데, 이러한 환율이 수준이 초단기간에 2,000원이 넘어간 상황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쯤되면 거의 국가파산입니다. ... 중앙은행이 손을 쓸수가 없어요 ~ "신권발행"이요? ~ 짐바브웨 꼴날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1조 크로나로 콜라 한잔 못 마십니다! ~ 제가 님 질문에 답을 할때 마지막에 얘기 했었을 겁니다.

아이슬란드는 중앙은행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사람(정치)의 문제였다고 말이죠!
당시 아이슬란드는 전형적인 중앙은행의 <"통화관리 부재">가 원입니다! ~ 사태가 일어나기까지의
배후의 흐름은 무시하고 상황을 단순하게 판단하면 님처럼 시장을 보는 눈이 왜곡될수 있습니다.
당시 아이슬란드는 신규발권을 하고 싶어도 할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 이건 경제에 대한
아주 기본적 마인드, 즉 상식적인 관점만 있어도 누구나 이해할수 있는 겁니다.

참고로 당시 아이슬란드의 은행 손실규모가 대략 1천억 달러($) 수준이었는데
이를 인구수로 나눠보면 국민 한 사람당 약 3억원의 빚을 지고 있는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 인구 5천만으로 따져보면 ... 은행손실 규모가 무려 1경 5천조가 넘는 사이즈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당시의 아이슬란드 사태는 한 나라의 중앙은행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그 중앙은행을 운영하는 사람(정치)의 문제였던 겁니다. ... 더불어 서울의 마포구 수준의 나라와 한국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14개의 댓글

2021.05.02
0
2021.05.02
0
2021.05.02

계속 묻는 말에 딴소리나 하네 ㅋㅋ 전형적인 ㅈ문가 아닌가

0
2021.05.02

두번째 줄 읽고 바로 내림

대부분의 알트코인은 비트코인이 아닌 이더리움 체인 위에서 돌아감

3
2021.05.02

너무길어 ㅜㅜ

0
2021.05.02

자기최면을 읽판에다 싸고있네 얘는

0
2021.05.02

세줄요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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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2

틀린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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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2

3줄요약 어디? 코인은 도박이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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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왜캐 못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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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2

비트에 노출된 세계인구가 2퍼, 그중 유니스왑 쓸줄아는 인구가

0.02퍼 ㅋㅋㅋ 아직 멀었다. 유니스왑 같은거 이해못하면

걍 코인은 도박으로 보이겠지 비트나 잘쟁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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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3

금본위제의 금의 가치는 거디서 나오는가

기축통화의 가치는?

무형자산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다 니즈와 희소성에 의해서 가치가 매겨지는것

코인이 그냥 다 구라같고 병신같고 이해 안되도 지금 사용하는 사회의 제도나 화폐라는 사치도 사실상 허상이라는거

대척점에 있지도 않고 오히려 계승중이라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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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인요정

나도 금과 코인에 관한 너의 의견에는 동의하는데,

사실 글에도 나와있듯이 지금의 화폐와 코인을 이야기할 때 핵심은 화폐량은 국가에 의해 통제된다는 거임.

이 때, 통제는 부정적인게 아님. 경제를 안정화시킨다는 의미임.

만일, 통화량을 조절 할 수 없다면 지금도 1930년의 대공황에서 못빠져나왔을거고, 지금과 같은 코로나 불경기에 '엄청난 양의 화폐를 창조 안하면(양적완화) 코인이고 뭐고 경제 자체가 망했을거임.

그래서 글에서 말하듯이, 화폐와 코인의 대체가능여부는 중앙이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가에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이며, 더 나아가 (화폐량은 통제와 권력의 필수불가결한 도구라는 측면에서) 권력적 싸움에 대한 이해임.

0

정리해줄께

1. 코인과 다르게, 돈은 '금'이라는 실질에 기대고 있음(금본위제도)

 

2. 금은 코인과 다르게 역사성을 가지며, 특히 실물이기 때문에 코인보다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음.

ex) 전쟁, emp테러 등에서도 금은 안정적으로 존재.

 

내 의견 : 금본위제 폐기는 다루는데, 그 이후에 신용화폐로 넘어가는건 은근슬쩍 안다루는건 너무 편파적임.

 

사실 여기서부터가 코인이 지금의 화폐를 '대체'할 수 없는 또는 대체해서는 안되는 본질적 이유임.

 

3. 화폐정책(통화정책)은 국가가 사회의 경제적 상황 특히, 불경기를 통제하는 방법임.

 

3-1, (거시경제학적 원리에 따르면) 디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화폐를 풀지 않으면 대공황이 올 수 있음. = 양적완화

 

내 의견 : 이건 경제학을 공부하면 아는건데, 통화량 컨트롤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경제 상황을 조율하는 필수불가결한 수단임.

 

4. 따라서 국가는 지금의 통화정책 유지하려 할 것임. 따라서 국가의 통화정책과 '코인의 화폐대체'는 국가 권력과 '민간의 효용'의 싸움임.

 

4-1. 앞서 언급한 '권력적 싸움'에서 민간이 이길 확률은 매우 낮음.

 

4-2. 만일 코인이 화폐를 대체해도 그건 '국가'주도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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