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제란?
신경세포의 기능을 가역적으로 억제하는 것으로써, 마취작용을 갖는 화학물질의 총칭이다.
보통은 통증없이 수술을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임상의학상의 약제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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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초 영국의 의사 로버트 리스톤과 제임스 심은 영국에서 가장 빨리 수술을 끝내는 것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당시 외과의사의 자질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빠르게 수술을 마치는가?"에 달려있었는데,
제임스 심은 90초 만에 하지 절단술을 마치는 기록을 세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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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리스톤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메스를 입에 문 채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빠른 수술에 집착했던 것일까?
19세기 초 빠른 외과 수술이 각광받던 이유는 바로 마취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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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중 뼈를 깎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던 환자들은 수술을 앞두고 도망가기 일쑤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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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 자살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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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빠르게 수술을 끝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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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리스톤이나 제임스 심과 같은 의사들을 선호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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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마취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고대에는 통증이 악마의 소행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를 쫓아내기 위해 주술이나 부적에 의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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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양귀비같은 식물이 일시적으로 통증이 사라지게 하는 효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치료전에 그 식물을 달여 마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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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집트에서는 대마같은 식물을 태워 연기를 흡입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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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은 아편을
![마취13.jpg](/files/attach/images/18567743/435/013/031/2197963c745c7fbe54ba9c3e6e1b5066.jpg)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코카나무 잎을 씹어서 마취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바로 술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몸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기 전에 들이키던 위스키...
알코올은 효과도 좋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취시간이나 강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술 도중,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들은 생살이 찢기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고,
통증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쇼크사하는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의사들에게는 보다 합리적으로 사람들을 마취시킬 수 있는 물질이 절실해졌다.
1846년 10월 16일 보스턴 매사추세츠 제너럴 병원에서 마취 공개 시연회가 끝나가고 있었다.
최초의 마취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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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취의 개척자가 된 한 남자, 그의 이름은 윌리엄 모턴으로 하버드 의과대학의 학생이었다.
어떻게 아직 학생인 그가 수백년간 무수히 많은 의사들이 해내지 못한 마취제의 개발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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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턴은 사실 2년 전까지만 해도 최초로 마취제를 개발할 뻔 했던 사람의 조수였다.
1844년 코네티컷 주, 미국의 치과의사였던 호레이스 웰스..
그는 조수였던 모턴과 함께 우연히 참석하게 된 사교파티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들이마시며 괴상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웰스는 웃음가스를 들이마신 후 상처를 입어도 태연하게 행동하다가
가스 효과가 사라진 후에야 다쳤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을 보고 웃음가스가 가진 효과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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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가스는 사실 1772년 최초로 산소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화학자 조셉 프리스틀리가 자신의 연구장치를 이용해 우연히 발견한 기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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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틀리가 발견한 기체는 바로 현재까지도 치과에서 마취용 가스로 사용되고 있는 아산화질소였고, 웃음을 유발한다고 하여 '웃음가스'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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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장에서 아산화질소를 알게 된 웰스는 자신에게 직접 웃음가스를 실험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1845년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새로운 마취법을 개발했다고 생각한 웰스는 곧 유명해질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마취 공개시연회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 날은 웰스에게 가장 비극적인 날이 됐다.
공개시연회에서 웰스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실험자가 마취가 되기도 전에 발치를 지시했고, 엄청난 통증을 느끼게 된 환자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웰스는 사람들에게 비난당하며 그곳에서 쫓겨났고 모든 명성을 잃은 채 미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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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웰스의 조수였던 모턴은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하버드 의과대학에 진학해 화학 교수 찰스 잭슨을 만난다.
그리고 모턴은 이 자리에서 역사를 바꿀만한 한마디를 잭슨에게 듣게 되는데...
'그럼 이산화질소 말고 에테르를 쓰는 게 어떻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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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이 말한 에테르는 아산화질소처럼 일시적으로 통증을 사라지게 하는 효과가 있던 물질로
1842년 미국의 시골 외과의사였던 크로퍼드 롱이 연구하던 물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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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크로퍼드 롱은 이미 에테르 마취를 이용하여 8번의 성공적인 실험을 마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1844년 웰스가 공개수술에서 망신을 당하고 쫓겨난 탓인지 섣불리 자신의 발견을 발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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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아직 에테르의 마취효과는 공식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잭슨의 제안을 받아들인 모턴은 에테르 연구에 돌입했고 몇 번의 임상실험을 통해 에테르의 효과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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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846년 10월 16일 보스턴 매사추세츠 제너럴 병원에서 열린 모턴이 마취 공개시연회를 열었다.
흡입용 에테르를 사용한 종양 제거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모턴은 이 날 마취의 개척자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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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턴의 에테르 마취제는 1846년부터 1960년대까지 무려 110년간 사용됐다.
현재는 많은 부작용으로 인한 위험성이 입증되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공식적인 마취제로 사용된 최초의 물질로 남아 있다.
하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을 차지한 지 얼마되지 않아 모턴은 최초의 자리를 두고 법적 분쟁에 휘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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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화질소 마취제를 개발했던 호레이스 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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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시기상으로는 모턴의 마취제를 앞섰던 크로포드 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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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제의 개발에 에테르 사용을 권했던 찰스 잭슨 등이 최초로 마취제를 발견한 것은 자신들이라며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오랜 법정 다툼 등으로 인생을 허비한 모턴은 파산하기에 이르렀고,
무통을 실현시킨 최초라는 타이틀의 영광을 누릴 새도 없이 진흙탕 싸움에 휘말려 고통스러워 하다가 5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인류의 의학발전에 새로운 기원이 된 마취제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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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마취제 개발의 영광은 한 사람에게 돌아갔지만 수세기 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보다 안전한 수술을 위한 마취제 연구는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서프라이즈
출처 : 준현, 시현이네 퀴즈사랑
작성자 : 해피맘
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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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으로드립치고싶냐
근데 클로로포름도 마취제가 될 수 있나?
이과
감미로운 냄새가 있고 기도의 자극이 없이 마취도입도 빠르기 때문에 옛날에는 에테르와 함께 사용되었는데
그 뒤 이 약의 간독성 등이 강조되고, 또한 뛰어난 마취약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클로로포름은 비점이 61°C 로 높기 때문에 열대지방에서 사용되는 수가 있다.
-간호학대사전
닉으로드립치고싶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