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라크전쟁의 역사적 재평가에 관하여

북한의 개혁과 통일로 가는 시나리오 

러시아가 바라보는 한반도의 통일에 관하여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관하여

일본자위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중국해군에 관하여 (1)

일본자위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중국해군에 관하여 (2)

인도의 가성비있는 중국목조르기 전략

동남아의 깡패국가 베트남, 왜 그들은 깡패가 되었는가

동남아시아(육상)국가들의 입장과 전략

동남아시아(해상)국가들의 입장과 전략 

왜 미국경찰은 중무장하게 되었는가? 

사우디의 왕자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사는지에 관하여 

미국 국무부의 대중국 성명에 관하여 

중국의 세계관과 中-韓의 민족주의에 관하여 

왜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파병을 결정했는가?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의 유사성에 관한 추측

"소련의 붕괴는 지정학적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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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지금까지 쓴 글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개드립의 ㅇㄱㄸ 관련 공지를 준수하기 위해 ㅇㄱㄸ관련 내용을 최소화했습니다.

저의 관심은 국제정치학이지 국내정치에 있지 않습니다. 다만 본 글에서는 ㅇㄱㄸ없이는 진행이 되지 않기에 마지못해 등장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해당 부분은 학술적인 관점에서 서술되었으며 가능한 이에 관련된 댓글을 피해주시길 희망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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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이 글은 기본적으로 왜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파병을 결정했는가?에 이어서 왜 이라크전쟁에 한국군이 참전했는가에 대한 글이야

 

한국군의 베트남참전과 이라크참전은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의 딜레마로 인한 결과물들이야.

 

그리고 동맹의 딜레마와 같은 용어들을 왜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파병을 결정했는가?에서 설명했기에 먼저 이것부터 읽고 오는 편이 좋아

 

베트남전쟁이 대중적으로는 돈벌려고 갔던 전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포기의 공포를 줄이기 위한 전쟁이었잖아?

 

반면 이라크전쟁은 대중적인 인식자체가 거의 없어. 이 글을 읽는 개붕이들도 한국군이 이라크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꽤나 모를거야

 

그래서 이라크랑 한반도의 평화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그냥 미국이 시켜서 마지못해 파병한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단순히 미국이 시켜서 한국군이 참전한 것이 아니고 다른 목적을 가지고 참전했음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쓰게 되었어

 

 

1. 외부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이라크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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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확실한 건 한국이 미국-영국에 이어 3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는 점이야. 이유가 어찌되었든 한국이 그만큼 강한 의지를 갖고있었다는 거지

 

물론 미국이 한국의 참전을 요구했고, 한국이 이에 응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하지만 미국이 원한 건 전투병이었어

 

한국의 대규모 병력은 비전투병력이었고 재건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의료지원, 이라크재건에 집중했지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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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파병한 지역이 이라크북부였다는 점이 상당히 주목할 점이야. 북부는 쿠르드족 자치구라서 전쟁의 위험이 전혀 없는 지역이야

 

실질적인 전투는 남부에서 시작되어 바그다드가 있는 중부에서 끝났으며 북부는 끝날 때까지 전쟁의 포화에서 빗겨나갔던 곳이야

 

그래서 한국군은 전투사상자가 없었고 재건할 폐허도 없었기에 의료지원과 학교건설에 주력했어

 

이러다보니 현지주민인 쿠르드족과 좋은 관계를 쌓았고 한국군은 조용히 있다가 철군하게 되었지

 

어때? 미국이 시켜서 참전한 것치고는 미국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지? 미국입장에서는 한국군도 연합국의 일부로 참전했다라는 상징적인 의의말고는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상황이었지. 다국적군이 계속해서 한국군에게 비전투부대라도 좋으니 격전지에 가서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한국군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부했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이라크 자체를 안와야하는거 맞는데 왜 온걸까?

 

한국군이 내세운 공식적인 참전 이유는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확보하겠다였는데 순전히 표면적인 이유야

 

북부 쿠르드족 자치구는 애초에 전쟁과는 무관한 지역이었기에 평화와 재건에 기여할 게 없었고, 

 

오히려 이라크의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을 지원하면서 이라크정부로부터 경제적인 불이익을 받았어.

 

돈도 안되고 적극적인 참가 의지도 없는데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다? 근데 막상 파병해서는 미국이 눈치줘도 시간만 때우다가 돌아왔다?

 

이런식으로 한국 외부에서 한국군의 이라크파병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넌센스야. 합리적인 이유가 하나도 없어

 

그럼 이제 한국 내부에서 한국군의 이라크파병을 바라보면 설명이 되겠지?

 

 

 

 

 

2. 내부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의 이라크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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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쟁기념관에 가서 직접 찍은 사진이야. 파병 명분을 국제평화, 질서유지, 한미동맹 등으로 말하고 있지만 정말 명분일 뿐이지

 

2003년의 한국을 다루기 전에 당시 국제정세부터 알고 넘어가자.

 

1980년대 말부터 미국과 소련이 전쟁보다는 대화를 선택해서 냉전이 끝나게 되었고 이를 데탕트시기라고 불러.

 

미국과 소련이 화해하고 서로 수교하니깐 한국도 분위기 타서 북방외교라는 공산권과의 수교가 시작되었지

 

그렇게 전쟁의 위험이 줄어들고 한국에서는 북한에 대해 새롭게 보는 시각이 등장하게 되겠지. 

 

이런 사람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대통령을 배출하자 햇볕정책이 시작되었고 이런 바탕에서 평양에서 김정일과 악수까지도 했어

 

즉, 북한과 남한의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졌다는 말이야. 남북관계의 개선은 역설적이게도 한미관계에 상당한 악영향을 주는 편이야

 

애초에 한미동맹이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남한을 지키기 위한 조약이잖아.

 

미국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통해 한국을 원하는 대로 유도하지만, 한국은 언제나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근데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할 이유가 있을까? 굳이? 이른바 한국의 독자적인 자주노선이 등장하게 되는거야

 

혹시 2000년대 초중반이 기억나는 개붕이들이 있으면 한 번 생각해보자, 그 당시 미국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

 

효순이 미선이 장갑차 사건 기억나? 싸이가 반미적인 가사가 담긴 노래를 신곡으로 내던 시절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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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2008년에는 광우병을 계기로 반미감정이 극단적으로 치솟아 올랐고 이 때가 한참 주한미군철수가 공공연하게 거론되던 시절이었어.

 

이 때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인식이 정말 최악이었어. 반면 북한에 대한 인식도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지

 

당시 난 초등학생이었는데 한번씩 통일관련그림그리기라는 걸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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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느낌의 포스터들을 그리는게 초등학생들의 수업이었지.

 

가끔 한명씩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느낌으로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같은 민족"이라는 논리로 선생님들이 "교육"했던 기억이 나네

 

이런식으로 2000년대는 북한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민족주의적 시각이 최고를 찍었고 그 영향으로 미국을 거의 미제국주의로 바라보던 시절이었어

 

국민들 반미감정이 미쳐날뛰는데 어떤 정치인이 미국과 뭘 하려고 하겠어? 그 시간에 평양가는게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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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한국입장에선 미국과 뭘 하기엔 기껏 친해진 북한이랑 멀어지는 거같아서 잘 안하게 되는거고

 

미국입장에선 한국이 동맹국이기는 하지만 북한이랑 더 친하니깐 뭘 하기가 싫어지는거야. 실제로 이때 한미동맹은 실질적으로 정지상태였어

 

당시 미국은 한국의 ㅇㄱㄸ에 대해서 대단히 반미적인 인물로 간주하고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을 정도였어. 

 

그럼 한번 정리를 해보자

 

ㅇㄱㄸ부터가 반미적이고 자주적인 성향이 강한데다가 여론도 반미쪽으로 기울어있어.

 

게다가 ㅇㄱㄸ의 정치적 기반인 여당도 친북적인 성향을 가지면서 이라크파병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야

 

야당은 ㅇㄱㄸ와 정치적 반대파고 전투부대파병을 원하고 있는거지 비전투부대파병은 의미가 없다고 봐

 

따라서 당시 한국군을 이라크로 파병하는 것은 ㅇㄱㄸ의 개인적인 신념에도 반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위태롭게 만들며 국민들로부터도

 

상당한 반발을 각오해야만 하는 일이야. 또한 정치적 반대파로부터도 비전투부대파병이기에 겁쟁이라고 욕만 먹을 일이었지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보면 봤지 파병을 통해 얻을 경제적 이익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어

 

즉, 한국군의 대규모 비전투부대파병은 대내적으로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거야.

 

한국은 대외적으로는 비전투부대의 안전지대 파병을 통해 미국의 실망과 눈치만 받았고,

 

대내적으로는 명분없는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해서 ㅇㄱㄸ의 정치적 기반을 상실하면서 정치적 반대파로부터의 비난만 받았어

 

하지만 ㅇㄱㄸ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대규모병력을 파병할 것을 강한 의지로 추진했고 성공했지. 과연 무엇을 위한 파병이었을까?

 

 

 

 

3. 911테러, 미국의 분노와 한국

 

 

2001년에 엄청난 사건이 터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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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는 미국의 심장부를 때렸고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은 분노에 가득차서 이성을 잃어버려

 

이성을 잃었다는게 참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게 미친놈들도 진정한 광기를 보면 정상인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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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조차도 미국의 광기를 보고는 필사적으로 살려고했어. 또 파키스탄과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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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 유명한 석기시대드립이 탄생하기도 했지. 어찌되었든 911로인해 미국은 내부적 단결과 지지를 얻었고, 국제적으로도 정당성을 부여받았지

 

내부의 지지와 외부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미국은 아프간을 때려부수는 건 좋았는데 문제는 이라크전쟁이라는 뇌절을 쳐버린거야

 

근데 뇌절을 친 게 2000년대 초반의 미국이라는게 엄청난 문제였어

 

소련은 무너졌고, 중국은 일본도 못이기고, 영국이나 프랑스는 군축중이니 군사적으로 미국 원맨쇼에다가 경제력도 압도적인 시기야

 

그 당시 911로 빡친 미국은 아프간부터 조져놓고 "악의 축"이라는 개념을 전세계에 알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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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행정부는 기독교의 영향이 강했기에 미국은 신의 선택을 받은 기사이며, 신을 위해 악을 제거해야 한다

 

고로 이라크-이란-북한이라는 악의 축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라는 복음주의적 외교정책을 추진했어

 

현재의 관점에서 지켜보면 참 우스운 소리지.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하는 걸 넘어 국가개조를 시도했던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어떤 실패를 겪고 상처만 입고 도망쳐나왔는지 모두가 알고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반드시 알아줬으면 하는 점이 "당시에는 몰랐다"라는 거야

 

미국이 전력을 다해서 전쟁준비를 했고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 현대전쟁(Modern Warfare)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지

 

전쟁 패러다임의 변화를 목격한 각 국들은 미국의 힘에 공포에 떨었고 중국이나 북한이 군 현대화를 추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

 

우선 아프간-이라크부터 박살내고 완전한 친미국가로 개조한 뒤, 이란으로 가고 이란이 끝나면 북한으로 간다는게 미국의 전략이었고

 

당시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는 이것이 가능할 것으로 봤어. 그만큼 미국이 이 꽉 깨물고 덤볐거든

 

2001년 당시의 한국 ㅇㄱㄸ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하고 사이가 좋아져서 잘만하면 통일이 될거같기도하고 욕심도 좀 나

 

근데 미국이 악의 축이니 뭐니해서 북한을 조질거래. 미국이 북한 조진다는데 한국은 어떤 태도를 보여야할까?

 

한미동맹이니깐 모처럼 친해진 북한을 버리고 그냥 조질까? 그러기에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ㅇㄱㄸ였지

 

미국이 북한 조지더라도 한국은 그냥 모른척하고 참가하지말까? 전시작전권때문에 중립이라는 선택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야

 

그럼 북한편에 서서 미국이랑 싸울까? 아무리 반미주의자라지만 현실적인 사람이었고 미국이 얼마나 화가났느니 알기에 불가능한 선택이었어

 

아프간, 이라크에서 약 1년, 이란에서 최대 2년. 즉 약 3년 뒤에는 美-北간 대규모 전쟁이 예상되던 시점이었고 ㅇㄱㄸ는 선택을 해야만 했지

 

그런데 때마침 아프간-이라크에서 전쟁은 이겼지만 국개개조가 생각만큼 잘 진행이 되지 않는 시점이었고 이게 해결이 안되면 이란으로는 못가게 되었어

 

여기서 ㅇㄱㄸ는 미국의 요구에 응해서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되, 북한에 대해서는 전쟁이 아닌 대화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게 되었어

 

미국은 한국의 이런 요청에 응했고 그 결과가 한국의 대규모 비전투부대의 파병과 6자회담이 나오게 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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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003년에 6자회담이 뜬금없이 시작되었는지 감이 오지?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막기위해 예방차원에서 이라크로의 대규모 파병을 결정했다라고 보는게 맞아

 

물론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국가개조에 실패하고 덫에 갇히게 되어 이란으로 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정된 시기가 되면서

 

이란도 못가는 미국이 북한은 말그대로 언감생심이기에 6자회담이 진지하게 추진될 리가 없었고 북핵문제는 그대로 방치되었지

 

당시 ㅇㄱㄸ는 민족간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나름 대의를 품고 이런 결정을 한 듯 하지만, 정작 이런 배경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해

 

자신의 지지세력인 여당조차도 왜 명분없는 전쟁에 참여하냐며 ㅇㄱㄸ에게 등을 돌렸고, 국민들도 불필요한 전쟁이라며 비난했지

 

야당은 할거면 전투부대를 해야지 왜 비전투부대로 시간만 때우냐며 여전히 비난했어. 즉, 이런 배경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는거야

 

따라서 한국의 이라크참전은 北美간 한반도에서의 대규모 전쟁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실행되었지만

 

미국이 이라크에서 발이 묶이는 바람에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면서 당시 정치권과 국민들에게는 불필요한 참전으로만 기억되었어

 

 

 

4. 마치며

 

당시 ㅇㄱㄸ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대규모 전쟁이 예상되고 이를 막기 위해 파병을 하는데 여-야당과 국민이 하나되어 반대하고 이를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소모하면서 강행할 때 말이야

 

ㅇㄱㄸ는 이라크파병을 통해 얻은 건 없고 모든 걸 잃었다고 표현해도 좋아. 그 자신이 민족주의자였기에 가능했던 강행이 아니었을까싶어

 

물론 2000년 초반 당시의 파병결정이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졌는지는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묻혀있고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는 인물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파병은 일국의 지도자로서 훌륭한 결정이라고 평가하고 싶어.

 

다만 베트남전쟁과 마찬가지로 한국군이 왜 이라크로 갔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게 안타까워서 글을 쓰게 되었어

 

베트남전쟁에 관련해서 글을 쓰고 나니 이라크전쟁도 써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라크전쟁은 ㅇㄱㄸ를 중심으로 진행되니깐 부담이 되더라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서도 글이 매끄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ㅇㄱㄸ부분을 최소화하다보니 생긴 불상사라서 유감스럽지만 어쩔 수 없어

 

나중에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이 망하고 다른 나라가 들어설 때즘 되면 교과서에서 "한국은 미국의 요구에 의해 이라크로 파병했다"라고 

 

짧은 한 줄로 남겠지. 우리가 역사교과서를 통해 "조선은 청의 요구에 의해 나선(러시아)정벌을 도왔다"라고 배우듯이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거진 동시대를 살아가고있기에 이렇게나 자세한 뒷배경을 알 수 있고 이건 한국이라는 국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특권이지싶어

 

 

요약

 

1. 미국은 이라크-이란-북한 순으로 조질려고했고 한국은 이를 막기 위해 이라크전쟁에 참전했다

2. 미국이 이라크에서 발이 묶여서 6자회담이 흐지부지되었고, 한국의 이라크참전은 목적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게 되었다

3. 21년 현재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은 이라크파병의 목적을 모른다

 

궁금한거있으면 질문하고 댓글이나 남겨주라 그 맛에 글쓰는중

 

50개의 댓글

2021.02.13

이라크 이란 북한 순으로 전쟁을 불사한 국가 개조를 시도하려는대 왜 우리나라가 파병을 한거야? 개조가 더 빨리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전쟁은 앞 당겨지는 거랑 같잖어

0
2021.02.13
@눈 째지마

미국이 원하는건 많은 국가가 참전하여 전쟁의 정당성을 더하고 각 국의 병력이 주둔하여 이라크를 안정시켜야 국가개조가 더 쉽게 될텐데 한국이 대규모 병력을 파병해주는 대가로 북한에 대해서는 전쟁이 아닌 대화(6자회담)를 통해 해결하자고 딜했거든

당시 미국은 생각보다 이라크가 빨리 안끝나서 애를 먹고있었으니 우선 이라크부터 끝내자는 생각이 강했고 북한은 이라크나 이란보다는 우선순위가 떨어져서 한국의 그런 딜을 받아줌

4
2021.02.13
@골방철학가

그렇구나...당시로선 나쁘지않은 딜이였네.

0

나도 저때 ㅇㄱㄸ 둘다 별로 안좋아하는데

그때의 햇볕 정책은 어릴때는 미친짓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9.11로 미국이 미쳐버리기 전까지는

충분히 할만했었다는 생각으로 바꼈는데

이라크 전쟁 파병도 이렇게 해석이 되는구나

ㅊㅊ

1
2021.02.13
@손씨네원조비빔밥

나도 햇볕정책이 말도안된다 생각했는데. 공산권이 무너지면 그런 바람이 불었다고 생각하면 아주 말이 안되는건 아니였네...

3
2021.02.13

항상 재밋게 본다

0
2021.02.13

미국의 이라크전 실패는 국가개조가 얼마나 어려운건지, 현대전에서 얼마나 민간과 군사를 구분해내기 어려워졌는지 알수있는것같아

옛날 몽골형님들 같았으면 그런거 걱정없겠지만 윤리적 대의를 등에 업고 싸운다는게 상당히 복잡한일이지

8
2021.02.13
@황해도특산

ㄹㅇ 그냥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이고 나온다가 목표였으면 미군 단독으로 끝내고 이란갔지

1
2021.02.13

아무 이야기나 하나 해줄 수 있어?

0
2021.02.13
@테슬라떡상

? 옛날옛적에 산토끼가 살았습니다. 행복하게 살았다네요~

0
2021.02.13
@골방철학가

정치야사 같은걸루 부탁해

0
2021.02.13
@테슬라떡상

오 그러면 미얀마관련해서 나중에 하나 써봄

5
2021.02.13
@골방철학가
0
2021.02.13
[삭제 되었습니다]
2021.02.13
@오또대디
0
2021.02.13

복음주의적 외교는 지금생각해보면 상상도 못할 또라이짓인데 유일 초강대국타이틀이 매섭긴 매서웠네...

 

악의축 지정한게 지금의 경제제재 수준이 아니라 진짜로 전쟁벌여 조지겠단 의미인것도 정신이 아득하다

1
2021.02.13
@스카우루스

자료가 없어서 아쉽긴한데, 악의축 발표하고 이라크전쟁중일때 이란이랑 북한이 어떤 생각을 하고있었는지가 ㄹㅇ 궁금함

0
2021.02.14
@골방철학가

악의축 발표했을때는 진짜 핵으로 공멸할 생각하고있지 않았을까 시프요. 부시 행정부는 진짜 어떤 의미에서는 트럼프는 쨉도 안되게 정신나간 정부였네요, 21세기에 종교적 십자군을 외교정책으로 삼다니...

 

http://dk01337.egloos.com/category/%EB%AF%B8%EA%B5%AD%EC%9D%98%20%EC%9D%B4%EB%9D%BC%ED%81%AC%20%EC%A0%90%EB%A0%B9%EC%82%AC

 

미군의 이라크 점령사 다룬 게시글 시리즈 인데 왜 저런 막장 똥꼬쇼가 벌어졌는지 이제서야 얼핏 알거같습니다

1
2021.02.13

누가 이자식 컴터앞에 묶어놓고 연재만하게해봐 좀

 

무튼 결국 파병자체는 범국민적으로 반미정신이 극에 달햇던 00년대, ㅇㄱㄸ 및 정부의 햇볕정책, 미국의 삽질이 서로 엮이고 엮여 나온 결과물이구나

뭐 지금이야 옛날일이고 큰사고는 없어서 다행이긴하지만..

4
2021.02.13
@유투브빌런
0
2021.02.13
[삭제 되었습니다]
2021.02.13
@Neutrino

햐 연설문은 찾아볼 생각도 안했네.. 감사한데 이러다 글 삭제될듯..

0
2021.02.13
@골방철학가

연설문 자르고 다시 올렸지요

0
2021.02.13

이라크 참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였지 않았나 생각이 듦

 

당시 한국 사회는 효순이,미선이 사건, 오노 사건 등으로 국민적으로 반미 정서가 극 이었을 때이면서도

 

미국은 북한 핵실험과 관련되어 정치적 리스크까지 짊어지면서 북한을 비핵화할려는 목적으로 중유 지원을 해오다가 갑자기

 

2002년에 북한에서 고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개발을 시인해 왔으니 미국입장에서는 북한을 정상적인 외교 대상으로 볼 수가 없었을 것임

 

그래서 1차 북핵 위기 때처럼 북한 폭격에 대한 의견이 미국에서 나왔던 거였는 데

 

당시 정부는 북한 폭격과 같은 사안을 받아들이지는 못했고 당연히 한미 동맹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음

 

거기에 소위 국가적 자부심을 운운하면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할려던 시점이라는 걸 보면 한미 동맹이 정말 위태로웠던 시점이라 봄

 

그 상황에서 미국이 미친 듯이 달려들던 이라크 전쟁에서 파병을 안한다? 한미 동맹을 포기하자는 이야기나 다름없던 거라 봄

 

당시 정부의 워커힐 연설에서도 이라크 전쟁에 생각을 볼 수 있는데

 

한 마디로 한미 동맹의 바로메타로 보던 거였음. 진지하게 파병을 안보내게 되면 반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한미 동맹이

 

해체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한미 동맹이 해체되면 군사적/외교적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시점이었는데

당시 전작권 전환을 외치면서도 실제 한국군 상황은 전작권 전환에 대해 대비가 되있지 않은 상황이었음

 

보병/포병 전력에 대해서만 북한을 압도하지 감시/정찰, ISR 자산에 있어서는 관련 전력이 전무햇으며 공군 자산의 경우도

 

공군 전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글로벌호크, 스텔스기 등 관련 자산이 전력화 안되어 있던 상황이며

 

해군 자산들도 완비성을 못갖추던 때였음 (최근에서야 거의 모든 자산을 전력화 하면서 경항모라는 전혀 한국 전구에 맞지 않는 함정을 소요를

 

제기하기 시작했지)

 

현재도 해병대 상륙작전을 할려면 동원선박을 끌고 가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걸 보면

당시 미군 없는 한국군은 처참한 상황이라 볼 수 있었음

 

 

 

한미 동맹이 대북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의도로 만들어졌긴 하지만 대러, 대중 위협에 대해 외교적/군사적 대응이 가능하고

 

일본과 안보적으로 협력을 할 수 있는 핵심 주축이라는 걸 보면 한미동맹은 유지되어야만 했던 상황이고

11
2021.02.13

훌륭한 글입니다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1
2021.02.13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잘 읽었고, 다만 글쓴이가 그 당시 성인이 아니어서 그런지 실제와 다르게 추측한 부분이 꽤 있네.

당시를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평을 하자면,

 

- 일단 이라크 파병은 당시부터 북한 문제를 앞두고 한미 공조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미국과 타협한,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인식이 대체로 많았음.

당시 세계적으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고 많은 비난을 받는 상황이었음.

이런 가운데 미국의 파병 압력이 가해지면서 조선일보 같은 곳에서는 "전투병 1개 사단을 파병해 미국을 적극 도와야 한다. 아니면 너 반미"식으로 설레발을 쳐댔지.

파병지도 북부 모술이 안전하다며 모술로 가야 한다는 식으로 써댔는데, 이후 모술 상황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었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3/10/19/2003101970200.html

조선 주장대로 전투사단을 거기 보냈으면 전사자 수십명은 가뿐히 찍었을 듯.

하여간 당시 정부는 정말 고심을 거듭하다가 결국 사단규모 병력, 하지만 재건지원 중심의 비전투병과 병력을 상당히 평화로운 지역인 아르빌에 보낸다는 결정을 내렸어.

세계 제3위의 파견병력 규모로 미국의 면을 어느 정도 세우면서도 전투에 휘말릴 위험성은 최소화한 결정이었지.

물론 미국 입장에선 애초 요구인 전투병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유엔에서도 까이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 가운데 한국의 파병 결정이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니 이후 그 때문에 한국에 대한 불만은 상당 부분 사라졌던 것이 당시 분위기임.

그래서 당시 이라크 파병이 처음에는 진보세력 등의 반발을 샀지만(특히 김선일씨 납치 참수사건마저 감수하며 밀어붙이느라) 이후에는 여론이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해. 그러니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허무한 파병은 아니었다고 생각함.

개인적으로는 당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보고 있어.

 

- 그리고 2008년 광우병 집회로 반미감정이 극에 달했다는 주장은 상당히 사실과 달라.

당시 광우병 집회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신기했던 점 하나가 반미 구호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음.

물론 반미 좋아하는 누군가는 반미타령을 했겠지만, 당시 정부에 대한 비난이 압도적이었고 반미는 거기에 묻혀 거의 부각이 안되는 분위기였음.

그걸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당시 미 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들이 있어.

이후 위키리크스에서 방대한 양의 미국 외교 문서를 폭로해서 세상에 공개된 내용이지.

 

미국이 본 2008년 촛불시위(2011-09-07)

美대사관 전문 "反美 아닌 對정부 불만이 원인"

 

"촛불집회는 반미주의 아닌 정부의 국정 전반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다."

지난 2008년 전국을 뒤흔든 촛불시위를 바라보는 주한 미국 대사관의 시각이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서 최근 공개된 미 외교전문을 통해 드러나 눈길을 끈다.

당시 미 대사관은 한미 쇠고기협상을 둘러싼 촛불시위가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촛불시위와 같이 반미시위로 번지지 않을까에 처음부터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해 5월 30일자 전문에 따르면 미 대사관은 민족주의 문제를 연구하는 국내 학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촛불시위 저변에 반미 민족주의가 깔려 있는지를 탐색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시위 사태에서도 뚜렷한 반미주의 흐름이 발견되지 않자 미 대사관은 최대 규모의 촛불 시위가 벌어진 다음날인 그해 6월 11일자 전문에서는 시위대가 "많은 사람이 우려했던 반미주의는 대체로 피했다"며 안도감을 드러냈다.

대신 대사관은 시선을 돌려 정부의 국정 운영 쪽에서 시위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이하 생략)

https://www.yna.co.kr/view/AKR20110907177100009

 

- 마지막으로 하나.. ㅇㄱㄸ가 정말 반미였으면 그 욕을 먹어가면서 한미 FTA를 밀어붙이지는 않았을 것임.

8
2021.02.13
@2pac4eva

사람마다 보는 관점은 다 다르고 기억도 시간과 함께 변화하기 마련이니깐 추가적인 자료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야 그 당시에 초등학교저학년이었으니 실질적으로 성인이되고 자료로 배운게 전부이기는 하죠

저와 관점이 다르기에 대상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겠지만, 개인의 기억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쓴 베트남전쟁에 관한 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당시 개인의 기억들이 모여 베트남전쟁은 돈때문에 시작되었다라는 오해가 퍼졌으니 말이죠.

또한 제가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한국현대사의 양대 미스테리중 하나가 한미fta의 체결과정입니다.

문제는 체결과정까지 이르는 흐름이 적힌 자료들이 퇴임과 함께 개인소장으로 유출되었고 지금까지도 비공개로 남아있어서 왜 FTA가 체결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0
2021.02.13
@골방철학가

(존댓말로 답을 다셨으니 저도 존댓말로..)

물론 저 개인의 기억이 정답은 아니죠.

다만 당시 일반적인 인식과 차이가 꽤 있으니 당시 자료 등을 좀 더 폭넓게 찾아보시면 좋겠다는 조언을 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한미FTA가 체결된 이유는, 정말 미스테리 같은 것 없습니다.

당시 중국경제가 급속히 치고 올라오면서 이러다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서 죽겠다, 앞으로 뭐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워낙 널리 퍼져 있었고, 당시 대통령도 심각하게 고민을 했겠죠.

그때 김현종 같은 미국 사정 비교적 잘 아는 인사가 한미FTA로 미국 시장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고, 거기에 꽂힌 통이 밀고 나간 거죠. 어르신들 표현을 빌리면 워낙 곤조가 있는 인물이라..

이라크 파병도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아주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4
2021.02.14
@2pac4eva

FTA와 이라크파병은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미FTA가 체결된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체결과정에서 한국수뇌부의 의사록이 유출되어서 그 세세한 과정을 알 수 없는 점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조선왕조실록에 간략하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왕이 노하였다"라고는 쓰여있지만 승정원일기가 소실되어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왜 왕이 화를 냈는가에 대한 설명이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청와대에서 한미FTA와 관련된 의사록을 자료로서 접할 수 없기에 FTA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청와대 외부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통이"와 "곤조"가 무슨 뜻일까요... 검색해보니 통이는 못찾겠고 곤조가 고약한 성질의 비표준어라고 나오는데 고약한 성질을 가진 인물이라는 뜻일까요..?

1
2021.02.14
@골방철학가

대통령을 '통'이라고 줄여서 쓰곤 합니다. 곤조는 근성의 일본어인데 옛날 어르신들이 많이 썼죠.

근성+고집+성깔 정도 뉘앙스입니다.

0
2021.02.14
@2pac4eva
1
2021.02.14
@골방철학가

“체결과정까지 이르는 흐름이 적힌 자료들이 퇴임과 함께 개인소장으로 유출되었고” 라고 하는데 어떤 근로 대통령기록물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되지 않고 개인소장으로 유출 되었다고 하는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비공개”라고 말한 부분은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경우 최장 30년까지 비공개가 가능하도록 법률로서 규정하고 있는데, 이 경우 기록물이 대통령기록관에 정상적으로 이관되었다는 것이 선행함을 의미함.

0
2021.02.13

중간에 부칸 폴란드볼이 m4들고 있는거 보니깐 불-편하네요

0
2021.02.13
@트레이더스

ㄷㄷㄷ 저 작은 총그림만보고 총기이름이 나오는 당신은 도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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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재미있게 봤고 몇 가지 부분에서 쟁점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음.

 

한국의 이라크 전쟁 파병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국제정치적으로는 별 효용이 없었다고 봄 .

 

부시 행정부 시기 벌어진 9.11로 인해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WOT(war on terror)에 초점이 맞춰졌고, 직접적인 적의를 드러낸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지금까지도 미국의 주요 목표가 되어서 전 세계에서 두들겨 맞고 있지만 북한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었음.

 

부시 행정부는 당장 본토를 때린 중동의 무력집단과 이걸 비호하는 국가를 무너뜨리는데 모든 쟁점이 맞춰져 있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았고 클린턴 행정부의 제네바 합의가 맘에 안들기는 했지만 당장 엎어버릴만한 구실은 없었음.

 

그러다 북한 자신이 HEU 프로그램을 시인하는 상황이 오자 2차 북핵 위기가 벌어졌고, 여기에 대해서 당시대에는 공방이 많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북한의 HEU 프로그램은 굴러가고 있었고 북한의 전술적 실수라고 보여지지만, 당대에 느꼈던 ㅇㄲㄸ의 공포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한국의 피해망상에 가까웠고 미국의 의사결정에서 북핵은 언제나 후순위에 머물렀다고 생각됨.

 

그러니까 부시 행정부는 WMD의 위협 측면에서는 기술적으로 북한이 가장 위험했지만, 정치적-상황적 측면에서 이라크를 때리는데 집중하였고 거기에 여력을 죄다 투입한 까닭에 북한을 대상으로 군사적 행동을 할 여력이 없었지만, 당시 미국의 분노가 굉장했고 또 국제사회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한 까닭에 눈치를 심하게 본거지.

 

그래서 한국의 이라크 파병이 미국의 북한에 대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나면 솔직히 부정적이고, 미국의 전직 관계자들에게서 그러한 발언이나 인식이 있냐면 극도로 회의적임. 즉 다른 국가들과 비슷하게 미국의 눈치를 보았지만, 실제로 미국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친건 별로 없었다는거지.

0
2021.02.13
@비마조추

지금시점으로보면 결과론적으로 말하게 되니 이라크참전은 사실 큰 의미가 없었다란 말에 동의함

또 당시 ㅇㄱㄸ가 느꼈던 전쟁공포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감정적인 공포에 가까운 것도 사실임

피해망상은 좀 과격한 표현이기는 한데 그것도 동의함

그리고 당시 미국 수뇌부가 우선 이라크부터 완전히 끝내고 이란을 거쳐서 나중에야 북한에 갈테니 북핵은 후순위대상이었음

 

하지만 너무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당시 ㅇㄱㄸ가 느낀 공포는 미국이 이라크에 발목잡히지 않았다면 실현될 위협이었고, 현재의 우리는 그것을 알기에 이라크참전이 불필요했다라고 말하는게 가능하지 않을까. 이라크에 발목이 잡혔기에 이라크참전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지도 못했다고 생각함.

 

역사에 if가 없듯이 이라크에서 발목잡히지 않더라도 이란에서 잡힐수도 있기에 니가 하는 말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함

영화 암살의 대사만 생각남 "염석진: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0
2021.02.14
@골방철학가

글쌔, 그당시의 ㅇㄲㄸ의 공포감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해가 안가는건 아닌데, 당시에 제한적인 정보와 상황을 가지고 판단했던게 후대에서 보자면 미국의 사정을 제대로 모르고 결정했다는걸 부정할 수도 없다는거지.

 

그 당시에도 ㅇㄲㄸ의 경솔함을 비판하는 여론과 주장은 많았고 실제로 그게 당시에 부담도 많이 되었음. 지금 와서는 미국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해서 여러가지 증언과 증거가 나왔으니까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많고, 당시 ㅇㄲㄸ의 불안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 부분도 그런 증거에 따른 결론이지.

 

어찌됬건 당시 ㅇㄲㄸ의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이란 침공 또한 현실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는 실패한 의사 결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봄.

 

물론 그 당시에 내가 의사결정권자였나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당시에 의사 결정이 올바르지 않았다는건 바뀌지 않으니까.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당시 일본의 사정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정 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완전히 틀렸다는건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역사적 판단에 의해 나오는 결론인 거지.... 2차 대전이 그렇게 끝날 줄 알았으면 일본이 절대 진주만 공습 안했을거자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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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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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4

글 잘 읽었음.

 

다만 중간에 데탕트 언급된 부분은 조금 잘못된 것이 있어 부연설명하고 갑니다.

 

1980년대 말부터 미국과 소련이 전쟁보다는 대화를 선택해서 냉전이 끝나게 되었고 이를 데탕트시기라고 불러.

 

-> 데탕트 시기 아님. 데탕트는 1970년대 닉슨 독트린이 발표된 후 핑퐁 외교, 닉슨의 중공 방문 등을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양진영간 전면전의 가능성이 완화되었던 시기를 말함. 데탕트가 전개된 원인은 중공의 급부상과 외교 다변화 시도, 베트남전으로 인한 사회변화와 68혁명, 반둥회의 등이 꼽히지만 뭐니뭐니해도 양진영이 "서로를 무력으로 완전히 분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냉전 체제를 받아들였기 때문.

 

즉 데탕트란 '냉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냉전이 고착화 되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5
2021.02.14

고마워 잘읽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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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4

팟캐스트나 유튜브는 안하니 지하철에서 듣고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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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4
@랑롱랑링

이 글 쓰고 현타만 온다. 앞으로 한국 국내정치가 포함되는건 아에 쓰지를 말아야지. 미얀마처럼 한국과는 무관한 거나 다뤄야겠다..

유투브는 생각중인데 일단 현생부터 살아야하니 당분간 없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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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5

이거 관련해서는 어둠의 옳그떠사모 주기도문 ; 1시간 10분짜리 작통권 환수 연설 들어보면 답 많이 나옴.

 

결국에는 한미동맹 굳건하다 명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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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5

종교사적으로 보면 저 당시 조지고 부시고가 미국 대통령이면서 반쯤 신정국가처럼 행동할 때 미국 내에서 신사도주의도 겁나게 많이 퍼졌음. 이 여파는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여과없이 밀려들어왔고 이 여파로 한국교회는 양적팽창과 은사주의, 알파코스 등등 외형적 가치 추구에 풀악셀을 밟아버림. 소위 번영신학이라는 것이 유행한것도 이 시기고 청부론/청빈론 논쟁이 붙었던 것도 이 시기임. (백투 예루살렘으로 유명해진 인터콥이 본격 활동을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하고 아프간과 이라크 등지로 선교사를 파견한것도 이 무렵이며, 개신교에서 이단시하는 아류작인 신천지가 산옮기기 등으로 한국교회 자체를 잠식해 나가기 시작한 것도 2006~2008년 무렵이 시점인데 난 이러한 개신교의 두뇌에 우동사리 넣은 것 같은 행동의 근원이 결국 이 당시 들어온 번영신학이나 신사도주의 같은것들이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보거든)

3
@마리괭이

조지고 부시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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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6

개붕아 내가 알바로 지정학 지도들 모아둔 거 있는데 메일로 보내줄까? 저작권에 위배 안 되는 것들만 모아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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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6
@자두맛자두
[삭제 되었습니다]
2021.02.16
@골방철학가

현업 방송작가인데 선배 통해서 어떤 교수님 방송 자료 찾는 알바 함 ㅋㅋㅋㅋ 쓸만한 지도들 몇 개 있는데 그걸로 계속 글 써주면 나야 ㄳ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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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6
@자두맛자두

자료가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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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0
@골방철학가

일해라 개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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