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90년대 그린베레와 스페츠나츠의 연합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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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지아코니아 (Mark Giaconia)는 미육군 제 10 특수전 그룹 (US Army 10th Special Forces Group), 속칭 '그린베레'로 20여년간 복무했다. 그의 첫번째와 두번째 해외 파병지는 200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한창이었던 보스니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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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의 민족 분포도는 보통 3개로 나뉘는데, 로마카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 수니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계, 그리고 동방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였다.)

 

 

이 시기 유고슬라비아 곳곳에서는 세르비아계 민병대와 보스니아계 민병대가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고 양민학살을 하는등 매드맥스 저리가라 할 무법천지의 세계였다. 그 와중에 남부 코소보의 이슬람계 주민들이 분리독립을 외쳐대며 무장세력을 조직하여 세르비아 영토를 들쑤시고 다녔다.

 

 

지아코니아의 팀은 두번째 파병 때 특별한 임무를 수행했다. 바로 평화유지군으로 들어와있던 러시아군의 옵저버 겸 나토측 연락책으로 배속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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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고슬라비아에 파견된 평화유지군은 미국 주도의 NATO군과 러시아군으로 나뉘었다. NATO가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보스니아의 편을 들었다면 러시아는 동방정교를 믿는 세르비아의 편을 들었다. 그래서 전쟁범죄를 일으킨 세르비아 민병대를 러시아군이 감싸주며 NATO측과 알력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담당구역도 NATO가 보스니아 영토, 러시아군이 세르비아 쪽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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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코니아의 팀은 러시아군 공수부대(ВДВ) 기지에 배속되었다. 이 부대에는 특수정찰소대, 즉 스페츠나츠(спецназ)들도 있었다.

 

(주: 스페츠나츠는 특정부대를 말하는게 아니라 러시아어로 '특수부대' 자체를 뜻하는 단어임. 그래서 공수부대 소속 스페츠나츠, 내무군 소속 스페츠나츠, GRU 소속 스페츠나츠등등 수많은 '스페츠나츠'가 존재함. 지아코니아가 만난 부대는 공수부대 소속으로 추정.)

 

 

마침 지아코니아의 팀 리더가 국방 어학원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해서 이들과 유창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이는 양측이 협력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되었다. 처음엔 스페츠나츠 대원들은 미국인들을 경계했으나, 이윽고 의심을 허물고 친구가 되었다.  두 부대는 같이 체력단련을 하거나 러시아식 스팀 사우나에서 누가 더 오래 견디는지 시합도 하는고 밤에 러시아군 막사로 가서 보드카를 마시고 노는등 허물없이 잘 어울렸다. (참고로 지아코니아는 사우나가 너무 뜨거워서 1빠로 탈출했다고 함.)  가끔은 서로 국뽕에 취하여 '니네 나라랑 우리나랑 전쟁나면 누가 이기겠냐?' 같은 유치한 주제로 키배를 벌이기도 했으나 마지막에는 서로 웃어넘겼다.

 

그린베레와 스페츠나츠들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적으로 대립하던 서로에게서 동지애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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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베레와 스페츠나츠, 스웨덴군이 도로정찰 임무 도중 함께 찍은 사진. 얼핏보면 비슷비슷 해보이지만 장구류와 위장무늬등으로 구별이 가능하다.)

 

 

 

 

지아코니아는 스페츠나츠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다.

 

"사격술, 훈련도, 피지컬면에서 매우 뛰어난 군인들이다. 전술적으로도 아주 훌륭하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있자면 마치 우리들을 보는 것 같다. 그들과 우리는 매우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항공지원에 많이 의존하는 반면, 이들은 그 부분을 동물적 감각과 본능으로 커버했다. ''

 

 

지아코니아의 일과는 러시아군들과 함께 바퀴가 8개 달린 장갑차(BTR을 의미함) 위에 타고 매일 관할지역 순찰을 도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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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들이 담당하던 구역에는 알바니아계 이슬람 무장세력인 UÇPMB (Ushtria Çlirimtare e Preshevës, Medvegjës dhe Bujanocit, UÇPMB)가 설치고 있었다. 이들은 총 든 동네 양아치 정도의 세력이었지만, 세르비아 남부 일대 지역의 분리를 주장하며 가끔씩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런 세력들이 으레 그렇듯,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어느날 지아코니아와 러시아군 보병들이 여느때와 다름없이 순찰을 돌던 도중, 러시아군 한명이 UÇPMB 반군 스나이퍼에게 저격을 당했다.

 

 

지아코니아는 곧바로 쓰러진 러시아군에게 달려갔다. 머리 한쪽이 날아간 상태였고 두개골 파편이 대롱거리며 매달려있었다. 그린베레 대원들이 빠르게 공조를 해준 덕분에 NATO측 의료 헬리콥터가 날아왔으나 이미 러시아군 병사는 사망한 상태였다.

 

러시아군들은 전우가 죽은 것에 대해 울부짖으며 욕설을 퍼부었고, 어떤 어린 병사는 친구의 얼굴을 보려고 시체를 후송하려던 헬리콥터에 타려다 쫒겨나고는 슬프게 울었다. 지아코니아도 러시아 인들의 분노에 공감했다. 이 사건 직후 러시아군 부대 전체는 3차대전이라도 일으킬 기세였다고 한다,

 

 

며칠 후, 그린 베레와 스페츠나츠는 국경 근처의 길가에서 홀로 걷고 있던 군복을 입은 코소보인 1명을 발견하고는 체포했다. 러시아군 기지로 잡혀온 이 코소보 인은 어느 막사로 끌려가더니 1시간 만에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를 불었다. (지아코니아는 러시아군들이 그를 어떻게 심문했을지는 신만이 아실거라고 답했다.)

 

 

코소보 인은 반군 소속이었고 그의 말에 따르면 남쪽의 'Velja Glava'라는 지역에 1개 중대 규모의 반군 주둔지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러시아군을 저격한 것도 이들 소행이었다고 말했다. 지아코니아는 그 순간 그린베레 팀 리더가 '이번엔 우리 차례다'라고 읊조리는 걸 똑똑히 들었고 자신도 피가 끓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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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베레와 스페츠나츠 팀원들은 짧은 작전회의 끝에 반군 기지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본래 PKO 활동 시 선제공격은 금지되어있으나, 이 UÇPMB 반군이 워낙 나대던 탓도 있고, 러시아군은 국제법 따윈 별로 상관하지 않던 부류라 그냥 무시하고 실행한 것 같음.)

 

그린베레도 MK19 유탄기관총이 달린 험비 1대를 끌고 작전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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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스페츠나츠들을 싣은 BTR과 그린베레의 험비는 야밤에 Velja Glava에 도착했다. 이 일대는 울창한 삼림이었으나, 스페츠나츠들은 곧 작은 오솔길 하나를 찾아냈다. 안쪽에는  UÇPMB의 이름이 적힌 간판과 검문소가 있었고, 반군 경계병들은 스페츠나츠 대원들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만 두들겨 맞았다. (지아코니아는 사람 턱이 박살 나는게 어떤건지 이때 처음 봤다고 함.)

 

 

반군 캠프는 나무들로 교묘하게 가려져 외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솔길은 너무 좁아 BTR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험비 정도는 통과할 수 있었다. 스페츠나츠 측은 이를 이용해 그린베레 팀에게 화력지원을 부탁했다, 지아코니아는 유탄 기관총을 맡았다.

 

스페츠나츠들이 나무들 사이로 접근하던 도중, 두번째 초병에게 발각된 건지 알바니아어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아코니아는 바로 전방에 있는 시야를 가린 나무들을 향해 유탄을 쏟아부었다. 참고로 이것이 그의 첫 실전이었다.

 

그는 너무 긴장해서 턱이 아플 정도로 이빨을 깨물었다. 처음에는 집에 있는 가족들 때문에 죽는게 겁이 났지만, 곧 저 앞의 러시아 친구들이 곤경에 쳐해있을 거란 생각에 분노하였다. 아드레날린이 얼마나 분비됐는지, 방아쇠 당기는게 1년 처럼 느껴졌고 모든 것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험비가 뿜어내는 유탄세례에 시야를 가리던 나무들이 전부 박살났고, 이 화력에 놀란 반군측 지휘관은 항복을 선언해버렸다. 지아코니아는 자신이 혹시 러시아 친구들에게 오인사격을 한건 아닐까 염려했으나, 나중에 스페츠나츠 대원들은 이 지원사격 덕분에 전투가 빨리 끝났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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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들은 곧바로  반군들을 전부 세워놓고 며칠 전 아군을 저격한 군인과 책임자를 색출해냈다. 작업은 순식간에 끝나서 지아코니아는 몇 명의 용의자가 처량하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부대로 복귀한 그린베레 팀원들은 늦은 새벽에 장구 정리도 안한 채 스페츠나츠 대원들을 초대하여 막사에서 술판을 벌리고 작전의 성공에 대해 축배를 들었다고 한다. 그 후 UCPMB는 불과 몇 주 뒤에 자체적으로 무장해제를 하고선 UN측에 항복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왜냐하면 이 작전이 있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아코니아의 팀원들은 탈레반과 싸우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야 했고, 역사상 다시는 없을 그린베레와 스페츠나츠의 짧은 우정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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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코니아는 2011년 전역할 때 까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오가며 군생활을 했다. 전역 후에도 ISIS와 싸우는 쿠르드족 특수부대에서 민간군사 자문역으로 활약했으며 현재는 은퇴 후 버지니아에 살고 있다. 참고로 그는 2016년 쿠르드족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린 오바마 행정부의 행동에 대해 '미국이 동맹을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이하 이 내용들은 그의 자서전인 'One Green Beret: Bosnia, Kosovo, Iraq, and beyond: 15 Extraordinary years in the life - 1996-2011'에서 발췌함을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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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지아코니아의 팀과 임무교대를 한 그린베레 대원들이 스페츠나츠 대원들과 찍은 사진이다. 지아코니아는 이 사진을 훗날 인터넷을 통해 접하고선 사진 속 스페츠나츠 대원들이 그 날 같이 작전을 뛴 친구들이며, 한명 한명 누구인지 기억난다고 밝혔다. 특히 중앙에 쭈구려 앉은 검은 비니를 쓴 남자는 복싱을 매우 잘 하던 친구였다고 한다.)

 

 

 

 

 

6개의 댓글

2021.01.28

이런거 보면 이념 때문에 오랫동안 적으로 있어왔어도

서로에 대한 존중/전우애는 뛰어넘는거 같네

 

1차대전때 크리스마스 기적 일화가 생각난다

0
2021.01.28

블랙라군에서 소련해제후 마피아가 된 전직 스페츠나츠 장교가 미군 특수부대에게 한탄하는 장면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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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ㅊ 퍼가도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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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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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9

MK 19 짭인 k4만져본 사람으로 사정거리가 존나 길더라

0
2021.01.29

재미있는 이야기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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